歌辭1. 명칭과 개념2. 가사의 기원과 장르3. 갈래와 내용1) 사대부가사2) 서민가사3) 규방가사4) 종교가사5) 개화가사4. 형식5. 사적(史的) 흐름1. 명칭과 개념가사는 시조와 함께 조선조 문학의 쌍벽으로서 일제시대까지 면면히 창작·향유되어 온 우리 고유의 문학 갈래이다. 현존하는 작품수가 2000여 편에 다다르고 규방가사와 이본까지 합하면 수천 편으로 국문학 유산 중, 가장 풍성하거니와 내용도 다양하기 그지없다.이러한 가사는 ‘長歌’, ‘長篇’, ‘長辭’, ‘歌詞’, ‘歌辭’ 등 과 같은 여러 명칭을 가졌으며, 국문으로는 ‘가?’, ‘?사’등으로도 표기 되었다. 또한, 가사의 하위 갈래의 하나인 규방가사는 향유 층에 의해 주로 ‘두루말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여기에 쓰인 ‘長歌’, ‘長篇’, ‘長辭’등의 명칭은 시조를 短歌라 부른 데 상응하여 불린 것으로 오늘날의 가사문학 작품만이 아닌 고려속가, 경기체가, 악장 등 시조보다 긴 형태의 우리 고유의 노래를 통칭한 것이다. 문헌상으로 ‘歌詞’, ‘歌辭’에 비해 널리 쓰이지 못했으나 『芝峯類說』,『松江歌辭』『松江別集』등에 쓰인 예가 있다.가사란 명칭은 대개 음악적인 면에서 ‘우리말 노래’를 뜻하나 일반적으로 노랫말, 즉 노래의 ?사를 뜻하는 말이다. ‘歌詞’,와 ‘歌辭’라는 용어는 오랫동안 그 의미를 정확히 구분 지을 수 없어 이견이 분분 했다. 이렇게 명칭이 여러 가지로 사용된 것은 장르의 개념이 없이 편의에 따라 부르거나 표기한 결과이다. 하지만 오늘날 장르 명칭은 ‘가사’로 굳어졌으나 한자 표기는 ‘歌詞’ 혹은 ‘歌辭’로 달리 쓰이고 있다. 歌詞의 ‘詞’자나 歌辭의 ‘辭’자가 다같이 ‘말’이나 ‘말이 글을 이룬 것’이란 뜻이므로 오늘날 우리가 감상하거나 연구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문학상 갈래 명칭임을 염두에 둘 때 음악의 노랫말인 歌詞와 혼동을 피하기 위해 歌辭로 표기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여러 학자들의 견해를 바탕으로 하여 가사의 개념을 정리해보면, 가사란 3·4조 혹은 4·4조가 우세한 4음보사역시 4음보 연속체의 교술 운문인 교술 민요에서 가사가 나왔다고 주장 하였는데, 4음보 연속체란 율격적 특징이 여음이 없는 긴 형태의 민요에서 나왔다는 말은 상당한 설득력을 가진다. 이외에도 신라가요, 신라불교시, 신라말엽, 고려말엽, 조선 초기 발생설 등 다양한 주장이 있다.이러한 기원설에는 각자 그 한계점이 있다. 우선, 고려장가 기원설의 경우 가사의 효시를 정극인의 으로 볼 때만 성립이 되며, 고려 말 나옹화상의 가사 작품이 가사의 효시로 널리 알려진 지금 이 학설을 따르기엔 무리가 있다. 그리고, 3음보 위주의 연장체인 경기체가가 쉽게 4음보의 연속체로 바뀔 수 없다는 문제점도 가지고 있다.다음으로 시조기원설은 시기상 시조가 가사보다 먼저 형성 되었다고 보기 힘든 점과 시조의 늘인 형태인 사설시조가 존재 한다는 점 등 여러 이유가 있다. 악장 기원설의 경우 역시, 각 연이 독립된 분장체인 악장이 비련시인 가사형식으로 이행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와 크게 유행하지 모한 악장 형식이 곧바로 가사로 발생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도 있다. 가사의 발생시기가 고려 말일 가능성도 있으므로 재고되어야 한다.한시 토체의 경우, 7언 한시에 토를 달면 4음보 격이 이루어 질 수 있으나 5언 한시의 경우 거의 3음보가 되어 불가능하다. 또 한시의 서술방식과 가사의 서술방식은 현격한 차이가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마지막으로 교술 민요에서 발생했다는 설은 조선 초기에 교술 민요가 사대부들의 이념적 요청으로 의해 기록문학으로 발전 했다고 한정짓는 것은 적절하다고 볼 수 없으며, 이 주장은 을 가사의 효시로 볼 때 가능하다는 제약적 조건을 가진다.위에서 보았듯이 가사의 기원과 발생시기에 대한 학설은 너무나 분분하고 다양하다. 그래서 가사의 기원은 가사가 지닌 속성, 즉 가사의 내용, 형식, 서술구조, 표현상의 특성 및 향유층 등을 충분히 고려하여 모색 되어야만 한다.요컨대 가사는 무신란 이후 강호에서 시부를 읊조리며 일생을 보내던 사대부들이 그들의 기호에 맞는 4음보격 민요리 하나 체계적인 장르론에 입각한 것이 아니라 재고되어야 할 것이다.이렇게 가사의 장르적 성격에 대한 논의는 아직까지 통일된 결론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근래에 교술 장르에 대한 비판이 확산되면서 가사문학을 차츰 서정장르(시가문학)로 규정하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3. 갈래와 내용가사는 인간이 겪은 삶의 모습과 이념을 읊은 것으로 내용이 다양하고 한 작품 안에서도 복합적인 경험을 읊은 것도 많다. 그래서 내용에 따라 작품을 분류하기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적게는 3종류로부터 많게는 34종류까지 폭이 너무 넓다. 단순히 구분하면 가사의 전모를 구체적으로 이해하기가 어렵고 너무 세분하면 작품 간의 교차분류가 불가피하여 내용상의 특성 파악이 모호해지기 쉽다. 여기서는 사대부가사, 서민가사 규방가사, 종교가사, 개화가사 5가지로 구분하기로 한다.1) 사대부가사양반계급으로 조선조의 지배층으로서 유교이념을 사상적 배경으로 그들의 인생관과 세계관을 펼치고 있다.(1) 강호생활의 즐거움양반 사대부들은 왕도정치를 추구하며 유교적 이상을 자연과의 융화를 통해 실현하고자 하여 이른바 강호가도를 형성하였다. 이들은 자연에 은거하여 내면적 성찰을 통해 은구형 문인들에 의해 주로 읊어졌으며 강호에 거닐면서 한정을 노래하거나 안빈낙도를 토로하였다. 이런 가사로는 정극인의 , 송순의 , 이황의 , 정철의 등이 있다.(2) 정치적 패북과 회귀의지조선시대 사대부들이 정치적 패배로 권력에서 밀려나거나 유배를 가게 되면 재야에 머물거나 유배지에서 각고의 생활을 하면서 권력에의 회귀를 도모하였다. 이 가사에는 임금을 그리워하는 심정을 사랑하는 임에 대한 연정으로 비유해 기술한 연군가사와 유배지에서 겪은 괴로움이나 생활상을 호소하고 유배 도중이나 귀양지 주변의 찬미하면서 임금을 둘러싼 간신들의 발호를 걱정하는 유배가사가 있다. 연군가사는 정계에 복귀하고자 하는 강력한 기원을 표출하는 것으로 정철의 , 조우인의 등이 있고, 유배가사로는 조위의 , 김진형의 등이 있다.(3) 유교적인 이념과 드러낸 가사로는 박인로의 등이 있다. 다음은 창의가사로서 나라에 대한 적개심과 복수심을 읊은 조우각의 , 채득기의 등이 있다. 그리고 의병가사에는 신태식의 등이 있고, 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선정을 베풀어 칭송을 받는 관리들을 찬양한 가사로는 박인로의 문도갑의 등이 있다.(6) 역사와 고실우리나라의 역사, 가문의 역사 개인의 일생을 노래하거나 시대적 풍물과 인사를 재조명하고 고사 중에서 후대에 교훈이 될만한 것을 읊은 것으로 서사적 성격을 띤다.역사를 노래한 영사가사로는 신득청의 , 사공수의와 각종 등이 있다. 그리고 역대 풍물과 인사에 관심을 둔 가사로는 , 박이화의 , 조산두의 등이 있다. 한편 세덕가사 가사로 가문의 역사를 읊은 , , 등이 있고, 고사를 가사체로 읊은 작자미상의 , 등의 가사도 있다. 그리고 개인의 일생이나 과거를 회고한 정습명의 , 김충선의 등이 있다.2) 서민가사서민가사는 서민에 의해 지어졌거나 서민 의식을 가진 양반에 의해 지어진 가사로서, 서민들의 의식과 생활 감정을 잘 드러낸 가사이다. 서민 가사는 음영 위주의 음영 서민가사와 가창 서민가사로 나누어진다.(1) 현실적 모순의 폭로와 비판현실적 모순을 폭로 ? 비판하는 가사는 가혹한 징세와 양반관료의 수탈 및 부정 ? 부패상 등을 비판하여 폭로하고 있다. 이런 가사로는 , , , 등이 있다.(2) 기존 관념에의 도전과 인간 본능의 욕구유교적 이념과 도덕을 표면적으로 부르짖고 있으나 내면적으로는 유교 도덕의 허위성을 드러냄으로써 기존 관념에 도전하고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를 토로한 가사들이 있다. 이런 가사에는 , 등이 있다.(3) 연정 및 신세한탄연정을 내용으로 하는 가사의 경우 남녀의 관능적 사랑이 여실히 펼쳐져 있는데 , 등이 이에 속한다. 그리고 남녀간에 상사의 정을 읊은 가사가 많은데 이는 부부가 아닌 남녀가 상사의 정을 토로한 것과 부부가 생이별이나 사별한 후에 상사의 정을 읊은 것으로 , , , 등이 있다.신세한탄의 가사는 임과 이별한 후의 슬픔, 시집 경상도에서 전파된 것이다.(1) 여성 교훈적인 가사여성교훈적인 가사의 주류는 계녀류 가사이다. 이는 시집살이에 필요한 규범을 가르치는 것인데, ① 소학, 주자가례 등 유교적 규범서의 내용을 전달하는 유형과 ② 규범서의 내용을 바탕으로 자신의 구체적인 경험을 통해 훈계하는 유형이 있다. 등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도덕류 가사는 특정인에게 교훈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일반 부녀들이 지켜야 할 도리를 읊은 것으로, 대개 삼강오륜을 기본으로 하여 언행 등 부덕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유의 가사는 , , 등이 있다.(2) 생활 체험적인 가사생활 체험적인 가사 중 탄식류 가사는 문학적 수준과 양적인 면에서 규방가사의 주류를 이룬다. 이들 가사는 출가의 괴로움, 인생살이의 무상함과 늙음의 탄식, 시절에 대한 한탄, 개인의 부정적인 생활 체험을 개탄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이 중에서 출가의 괴로움과 출가에서 오는 이별을 슬퍼한 탄식류의 가사가 많이 창작 되었는데, 이런 가사로 , , 등이 있다.다음으로 송축류 가사는 자녀의 장래를 축복해주는 가사와 부모의 회갑이나 회혼을 맞아 장수를 송축하는 가사들로, , 등이 있다.4) 종교가사종교가사란 일반 대중에게 포교를 목적으로 각 종교의 교리를 읊은 가사를 말하는 것으로, 현재 불교, 천주교, 천도교 가사가 전해지고 있다.불교가사는 고려 말 나옹화상의 , 등이 전해지고 있는데 창작여부가 문제 되었으나 근래 이두체로 기록된 등의 발굴로 나옹화상의 창작으로 굳어지는 것 같다. 김창옹은 유학자로서 를 지었고, 개회기 이후에는 , , 등이 있다.천주교가사는 1779년에 나온 와 가 효시이고, 그 이후 , 등이 나온다.천도교 가사는 동학가사라고도 하는데, 동학의 창시자인 최제우가 지은 ≪용담유사≫에 9편이 전하고, 상주군 은척면 동학교 본부에 전해지고 있는 천도교 가사는 34책 112편이나 된다. ≪용담유사≫는 동학의 교리를 써놓은 책과 내용이 비슷한데, 일반 민중이나 부녀자에게 서양의 문물을 비판하고 백성이 나라를 일으켜 세워
형식주의 비평목 차Ⅰ. 서 론Ⅱ. 본 론1. 핵심어의 개념 정리2. 이론의 형성3. 이론의 계보와 방법론4. 형식주의 비판 방법의 한계점Ⅲ. 결 론Ⅰ. 서 론형식주의 비평은 역사주의 비평과 대비시켜 이야기 할 때, 소위 비역사적 비평의 한 본보기가 된다. 형식주의라는 말은 1915년에서 1930년 사이에 러시아에서 주장되었던 비평의 한 경향을 지칭하는 것이다. 원래는 이 경향과 반대되는 전통적인 비평가, 다시 말해서 역사주의 비평가들이 이 경향을 비방하기 위하여 사용했던 말인데, 여기에 속한 연구가들이 그대로 사용함으로써 이제 널리 쓰이게 되었다.형식주의자들이 볼 때, 문학연구의 대상은 어떤 작가에 의한 어떤 작품이 아니라, 문학 작품을 문학답게 하는 변별적 특성인 문학성을 살펴보는 일이라고 본 것이다. 형식주의는 작품의 문학성을 형식에서 찾아냄으로써 그 작품의 가치와 그 작품의 새로움을 동일화 시키는 것인데, 한 마디로 말해서 문학 속에 있는 정치적 · 경제적 · 사회적 ? 역사적인 면을 경시하고, 문학의 형식성, 즉 작품 자체의 구조 해명을 중시한다.본문에서는 역사 · 전기적 비평의 반동으로 나온 형식주의 비평을 신비평과 러시아 형식주의 비평이론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이론의 형성, 계보와 방법론, 한계를 살펴보도록 하겠다.Ⅱ. 본 론1. 핵심어의 개념 정리① 러시아 형식주의 : 러시아 형식주의는 20세기 초 러시아와 체코를 중심으로 일어났던 문학이론을 지칭한다. 이 이론은 1915년 러시아 혁명 전야에 모스크바 대학의 20대 청년학도들이 언어학의 새로운 경향에 자극받아 문학의 언어적 특성에 관심을 기울인 것이 그 출발점이다.② 신비평 : 1930년대 초기에서 1960년까지 미국 문학비평을 섭렵했던, 비교적 자유롭게 구성되었던 비평학파이다. 신비평은 작품이나 예술품도 다른 구체적인 사물처럼, 그 의미를 발견하는데 있어서 작가의 의도나 감정적 상태, 혹은 작가나 독자의 가치관으로부터 독립되어서 분석될 수 있는 구체적인 사물이라고 주장한다. 신비평가에게 있어서 는 인식과는 상이하지만, 그보다 결코 덜 중요하지 않다는 형식주의적 개념을 고취했다. 그는 여기서 심미적 판단력을 정의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의 고귀성을 인식시켰다. 콜리지의 상상력 이론은 형식주의 비평의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이해된다. 독일의 선험철학을 익힌 후 『문학적 평전』속에서 이를 문예이론으로 응용하였다. 그는 상상력이야말로 체험을 활성화할 뿐만 아니라, 서로 관련이 없고 외관상으로 어울릴 수 없어 보이는 소재의 조합물을 융합하여 시가 될 수 있도록 하는 힘이라고 하여 상상력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형식주의 비평이론은 1915년경부터 이론적 기반을 다지기 시작한 러시아 형식주의(Russian Formalism)와 1940년대와 50년대에 주로 영국과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문학연구 방법론으로 각광을 받았던 신비평(New Criticism)으로부터 본격화되었다. 러시아 형식주의는 주로 1915년부터 1930년까지 야곱슨(Roman Jacobson), 토마제프스키(Boris Tomashevsky)등이 중심이 된 와 1916년부터 1930년까지 쉬클로프스키(Victor Shklovsky), 아이헨바움(Boris Eikhenbaum) 등이 활동한 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이 강조하는 문학 연구의 주제는 ‘문학성’(literariness)이었으며, 이것에 의해서 문학 작품의 변별적 특징을 찾아내고자 한 것이다. 반면에 신비평은 미국의 비평가 랜섬(John Crowe Ransom)이 1941년 『신비평』이라는 평론집을 간행하면서 본격화 되었지만, 이미 1920년대부터 영국의 I. A. 리처즈(I. A. Richards), T. S. 엘리어트(T. S. Eliot)등에 의해 그 기초가 확립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이후 랜섬을 위시해서 테이트(Allen Tate), 비어즐리(Monroe Beardsley) 등등 영미의 수많은 이론가들에 의해 다양한 형태의 이론적 발전을 거치면서 객관적이고 체계적인 문학연구를 확립시키면서 실제비평으로 존적 저서로는 「문예비평의 원리」(1925)와 「실제비평」(1929)을 들 수 있는데, 그것이 형식주의 비평에 기여한 점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첫째, 문학을 ‘가장 완벽한 양식의 발언’이라고 여기는 견해.둘째, 해석과 판단의 근거를 엄밀한 텍스트의 분석방법에 의존하는 것.셋째, 문예작품의 언어적 측면에 집중적인 관심을 기울이는 것.그는 「실제비평」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기술로서 정확하고 조직적인 분석이 중요하다고 주장함으로써 형식주의 비평이 가까운 장래에 성취하도록 되어 있었던 문학연구방법의 혁신을 예상하게 했다.3) 신비평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살아서 발전하고 있는 문학 자체의 전통을 발견하는 일이나, 작가보다 작품에 더 중요성을 두어야 한다는 엘리어트의 문학관과 ‘가장 완벽한 양식의 발언’이므로 해석과 판단의 근거를 텍스트의 분석에서 찾아야 한다는 리처즈의 문학관이 더불어 1930년대 미국의 신비평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 태어난 것이 텍스트 중심의 비평, 곧 '신비평' 이었다. 이들은 언어의 미학적 구조와 색감에 대해서 최대의 주의를 기울여 작품 외적인 일체의 요소를 배제하고, 작품 그 자체만이 비평의 유일한 기준으로 보는 '신비평'의 길을 터 놓았던 것이다. 이처럼 1920년대에 이미 엘리어트나 리처즈는 신비평을 하나의 확실한 문예운동으로 시작했지만 1930년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존 크로우 랜섬(John Crowe Ransom)은 이 운동에 '신비평'이라는 명칭을 부여했고, 그 중요성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형식주의는 그 분파나 그 강조점이 다채로움에도 불구하고, 형식주의에 기여하는 사람들은 모두 한 가지 근본원리를 인정하는데, 그것은 문예작품 자체의 우위성이다. 이를 증명하듯이, 형식주의 비평가의 저술 속에는 '작품 자체(The work itself)'라는 어구가 거듭해서 나타나고 있다.형식주의 비평에서 강조하는 사항들은 첫째, 시는 시로서 다루어져야 하고, 독립적이고 자조적인 대상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둘째, 신비평가들이 사용하것인가? 작가가 그의 의도를 분명히 말하지 않았을 때에는 어떻게 그 의도를 알아낼 수 있는가? 작품의 의미에 대하여 작가의 의도는 어떤 관계를 갖는가? 등의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이러한 문제들은 비어즐리(Monroe C. Beardsley)와 윔저트(W. K. Wimsatt)가 1946년에 「의도의 오류」라는 유명한 논문을 발표한 이래 현대 문학이론의 큰 문제로 떠오르게 된다. 이 글에서 그들은 앞서의 질문에 대한 답으로 작가의 본래의 의도와 작품에서 성취된 의미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음을 밝히고, 그것들을 혼동하는 데에서 작품의 이해와 평가가 잘못 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시는 비평가나 작가의 소유물이 아니다. 작품은 그것이 탄생하는 순간 곧바로 그 작가의 통제력이 미치지 않는 세계 속에 떠나버린다. 시는 공중(public)에 속하는 것이다.” 라고 말한다.이처럼 비어즐리와 윔저트는 작품의 의미와 작가의 의도와의 차이를 주장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작품 뒤에 숨어 있는 작가의 의도를 제대로 밝히는 일 자체도 결코 수월한 일이 아님을 주장한다. 이미 작고한 사람의 경우에는 작가의 의도를 확인할 도리가 없고 혹시 자기의 의도를 따로 기록으로 남겨 놓는다 하더라도 작품 자체가 가지고 있는 뜻과는 차이가 나는 것이 보통이다. 또한 많은 작가가 자기 작품의 의미에 대해서 명백한 발언을 하기를 꺼리며 자기도 작품이 완성되기까지는 작품의 완전한 뜻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했다고 고백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므로 작가는 누구나 진지한 태도로 창작에 임하지만, 그때마다 그 진지한 의도가 그대로 잘 전달되는 좋은 작품이 생산되는 것은 아니며, 어떤 경험이 사실 그대로 작품 속에 담겨지는 것도 아니다. 결국 작품의 의미는 당시 통용되었던 어휘 ? 문법 등에 따라 그 작품 자체에서 찾아내는 수밖에 없다. 작가가 특수한 의미를 부여하려 했다 하여도 작품 자체가 그 의미를 나타내지 않을 때에는 작품과 하등 관계가 없으며, 만일 그런 의미가 작품 속에서 살아 있다고 하면 그효과의 원인은 대상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한 작품에 대한 감동은 읽을 때마다 다르고 독자에 따라 다른 것인데 어떤 작품을 읽고 감동을 받았다는 것은 곧 그 작품이 꼭 훌륭하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다. 문학비평의 관심의 대상은 오로지 그 작품 자체여야 하는데, 이처럼 독자에게 미치는 가변적이고 사적인 영향에 관심을 두는 것은 작품의 가치를 그릇 판단하는 큰 오류를 범하고 만다고 주장했다.비어즐리의 이론을 미루어 볼 때, ‘감동의 오류’ 가 경계되어야 할 까닭은 보다 근본적인 것에 있다. 그에 의하면 인상주의나 상대주의적인 비평을 포함해서 주관적인 입장을 취한 모든 비평이 한결같이 빠지는 수렁은 자신의 느낌, 감정, 생각 등과 작품을 직접 연결함으로써 일어나는 부작용인 바, 이 때 평가와 판단의 근거가 되는 것은 작품과는 무관한 개인, 또는 시대와 지역의 제약을 받는 평가자의 생각이다. 그리하여 결국 심리적 효과의 올바른 근거를 제시하기 위해서라도 작품 자체가 바로 분석되어야 한다고 본 것이 비어즐리의 입장이었다.이러한 그들의 주장은 우리 문학사를 살펴보더라도 상당 부분 타당한 것이다. 즉, 현대소설이 이미 본궤도에 올라 있던 1930년대에도 우리나라에는 도시의 서책가나 시골의 장터를 중심으로 딱지 본류의 고소설과 신소설이 활발히 유통되었으나, 이 시대를 연구하는 글들에서 이러한 소설들의 문학사적 가치를 논하는 글들은 찾아보기 거의 어렵다. 그 까닭은 여전히 전근대적인 사유(즉, 내용)와 표현방식(즉, 형식)에 묶여 있는 이 소설들이 복잡다단한 현대의 삶과 현대인의 심리를 탐구하고 표현하는데 더 이상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미 장르적 운명이 소진된 그것들이 독서 대중에게 광범위하게 유통된다고 해서, 변화된 시대와 문학의 현실을 제대로 담아 내지 못하는 그것들에 대해 높은 가치평가를 내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3) 모호성‘모호성(ambiguity)' 이라는 용어 역시 신비평의 대두와 함께 중요한 비평용어가 되었다.이것은 난해성과는
景 幾 體 歌- 목차 -1. 명칭과 작품2. 형식과 전통성3. 미학적 특성4. 역사적 흐름1. 명칭과 작품경기체가(景幾體歌)는 고려시대 후기 새로운 이념 세력으로 등장한 신흥 지식인들에 의해 형성되어 16세기까지 지속되었던 정형시를 이름 하는 시가의 한 양식이다.이는 엄정한 형식과 독특한 표현어법으로 여말 선초 문화 변동기의 역사적 전환을 주도했던 신흥 지식인 특유의 사유방식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그 특징이나 성격이 비교적 선명하다. 그러나 이를 실제로 짓고 노래하던 당대의 향수자들에게는 이것만을 따로 내세워 이름 짓는다든가 독자적인 시의 양식으로 구별하여 인식하려는 의식이 별로 없었다. 고전시가가 대부분 그러하듯, 그 생성력과 전파의 힘은 언어형식으로서의 시보다도 음악을 동반한 포괄적형식으로서의 노래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의 장르의식과는 그 기준부터가 달랐던 것이다. 그리하여 고려 후기의 속요(俗謠)나 조선 초기의 악장(樂章)과 명확한 구별을 짓지 않은 채 다만 궁중 음악으로서, 아악(雅樂), 당악(唐樂)에 대비되는 속악(俗樂)(鄕樂)의 형태로, 또는 아악(雅樂)에 대비되는 속악(唐樂 ? 鄕樂)의 형태로 함께 분류되고 창작되는 일이 대부분이었다.이런 까닭으로 문학의 한 양식으로 인식되면서 근대에 들어 붙이기 시작한, 이에 대한 명칭은 아직 통일되어 있지 못하다. 관점에 따라 別曲 ? 別曲體 ? 別曲體歌, 또는 景幾何如歌 ? 景幾何如體歌 ? 景幾體歌 등 여러 가지로 불리고 있어 자못 혼란을 빚고 있다. 제각기 나름대로의 타당한 논리와 근거를 갖고 있기는 하지만, 그 가운데서 그래도 가장 무난한 명칭은 역시 경기체가로 보아야 할 것 같다. 이유는 경기체가가 이의 장르적 성격을 가장 정확하게 드러내 주는 명칭이라는 점, 일반적으로 오늘날 가장 널리 통용되고 있는 명칭이라는 점에 있다.지금까지 발견된 경기체가 작품은 13세기 고려 고종 때의 으로부터 16세기 권호문(權好文)의 에 이르기까지 20여 편을 넘는다. 중종 21년(1526)지었다는 이 작품 4행과 7행)에는 경기체가 특유의 ‘偉(爲)~景 긔 엇더?니잇고’라는 고정된 투식어가 오는 것이 원칙이다. 또한 뒷 절(後小節)의 둘째 행(제6행)은 반드시 첫 행(제5행)의 반복이여야 한다.보다 구체적 형식에 속하는 행 내에서의 음성적 질서, 곧 경기체가의 운율형식은 매우 복잡하고 까다롭다. 먼저, 경기체가는 성질이 다른 세 가지의 율격모형이 결합된 형식을 취한다. 제1~3행은 4음3보격 형식을 취하며, 제5~6행은 4음2보격 형식을, 그리고 제4행과 7행(偉~景 긔 엇더?니잇고가 나오는 행)은 특정한 율격 환경으로 말미암은 변형4보격을 취한다. 다음으로 제1~3행과 제5~6행은 음절의 실현까지 규칙적인 경향성을 지니고 있다. 1, 2행의 첫째 ? 둘째 음보는 3모라만 음절로 실현되고, 나머지 1모라는 율격적 장음(長音)이 오는 것이 원칙이다. 그리고 나머지 음보는 4모라 모두 음절로 실현되는 것이 원칙이다. 그 결과 음절적 실현이 3 ? 3 ? 4음절형(제1, 2행), 4 ? 4 ? 4음절형(제3행), 4 ? 4음절형(제5, 6행)으로 고정되어 경기체가 특유의 음절 정형적 운율형식을 이루고 있다. 끝으로 제4행과 7행의 율격은 원래 ‘~景 긔 엇더?니잇고’가 이루는 4음3보격이었던 것이 감탄사 ‘偉’가 고정된 형식으로 개입됨으로써 4보격으로 변형된, 특수한 모형을 취하고 있다. 이런 까닭으로 둘째 음보에 해당하는 ‘~景’에는 한 음보만 아니라 두 음보 이상이 축약되어 올 수도 있다. 이는 덧음보 ‘偉’의 개입으로 말미암은 운율적 질서의 재편에 기인된 현상으로 시조의 종장에서 보이는 변형 4보격과 대비해 볼 수 있을 것이다.지금까지 설명한 바를 알기 쉽게 정리하면 경기체가는 아래와 같은 규범적 형식을 지니고 있다.1행 ●●●○ ●●●○ ●●●● 3 ? 3 ? 4 4음3보격 a2행 ●●●○ ●●●○ ●●●● 〃 〃 b 앞절3행 ●●●● ●●●● ●●●● 4 ? 4 ? 4 〃 c4행 偉 ~景 긔 엇더?니잇고 변형4보격 d5행 ●●●● ●●●● 4 ? 4 4음2보 4음절을 한 단위로 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우리말 시가의 4음 3보격 형식으로 보아야지 한시의 3언이나 4언 중심의 장단구(長短句) 형식으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역시 그 율격적 기저는 한시가 아니라 우리말 시가 쪽에 놓여 있다. 더욱이 4음 3보격과 4음 2보격은 향가로부터 고려속요로 이어지면서 가장 빈번히 사용된 전통적 율격양식이다. 따라서 경기체가 특징으로 보이는 음절수의 규칙성은 한시적인 작시(作時)의 관행을 우리말식 표현어법 속에 재편해 넣음으로써 얻어 낸 경기체가 특유의 율동적 개성으로 보는 것이 옳다. 작품에 따라 1음절 정도의 넘나듬이 있어도 파격으로 느껴지지 않는 까닭도 경기체가의 운율이 그 기저를 음절 정형에만 근거하지 않는 우리말 시가의 율격체계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경기체가는 그 형식적 연원을 명백히 고려속요로 이어져 내려오는 우리말 시가의 전통에 두고 있다. 그러므로 형식의 특이함은 이를 기저로 해서 그 자체의 미학적 개성으로 이끌어 내는 경기체가 특유의 형식 변용방식과 관련시켜 다루어야 할 문제일 것이다.3. 미학적 특성경기체가가 이처럼 특이한 형식을 취하고 있는 데에는 그 나름의 필연적인 까닭을 지니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경기체가의 형식은 반복과 전환의 구조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앞 절은 1~3행을 통해 4음 3보격이 세 번에 걸쳐 반복되다가 마지막 4행으로 넘어가면서 변형 4보격으로 급격히 전환된다. 뒷 절 또한 5, 6행을 통해 4음 2보격이 두 번 반복되다가 7행으로 넘어가면서 다시 변형 4보격으로 전환된다. 따라서 경기체가는 앞뒤 두 절이 모두 반복과 전환이라는 동일한 구조 모형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앞 절과 뒷 절의 구조가 같은 모형이라 해서 그 질에 있어서까지 동질적인 것은 아니다. 앞 절은 3보격이 세 번 거듭됨에 비해, 뒷 절은 2보격이 두 번만 거듭된다. 더욱이 앞 절은 그 반복이 율격만의 반복인데 비해, 뒷 절은 율격과 함께 의미까지 동일하게 반복된다. 따라서 뒷 절은 앞 절보다 반복의 강도실을 구체적으로 들어서 작품에 제시하는 부분이다. 적어도 반복부에만 한하여 본다면 거기에는 어떠한 주관의 개입도 상상적 재현의 장치도 없는, 순수한 객관적 제시에만 일관하고 있다. 따라서 반복부에서는 주제를 향한 공통의 의미 지향도, 작품에 끌어들여야 할 내적인 필연성도 직접적으로 내보이는 법이 없다. 다만 동질적인 율격의 반복을 통해서 경험적인 사실만 단순히 나열하는 데 그친다.이에 반하여 율격 모형을 달리 취하는 전환 부분은 제시된 사실들을 통합하고 재구성하면서 일체의 시적 의미를 총괄하는 부분이다. 다시 말해서 반복부에 제시된 경험적 사실들이 서로서로 유기적 관계를 맺고 의미화 되면서 하나의 통일된 질서를 형성하는, 모든 시적인 통합이 바로 이 율격적인 전환을 통해서 실현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경기체가는 율격적인 반복-전환의 형식에 따라 사실 제시-의미 환기의 구조로 전개되는 일정한 모형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전개방식은 앞 절의 시상을 완결시키면서 뒷 절에서도 다시 반복된다. 그러나 점층적 반복의 형식에 힘입어 뒷 절은 독자적인 사실 제시-의미 환기의 기능을 가진다기보다 정서 고양의 효과와 함께 앞 절의 시상(詩想)을 확산하거나 심화해 나가는 정도의 발전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데 그친다.그러나 경기체가의 미학적 특성을 밝히는 데 가장 중요한 열쇠는 역시 전환부의 규범적 격식인 ‘偉~景 긔 엇더?니잇고’에 담겨 있다. ‘~景’에 들어갈 몇 마디 외에는 기계적으로 반복해야 하는 투식적 표현에 불과하지만, 이는 경기체가를 경기체가답게 해주는 가장 핵심적이고도 독특한 시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우선 ‘~景’은 반복부에서 제시된 개별적 사실들을 통합하여 하나의 포괄적인 전체상으로 수렴해 내는 주제표현의 기능을 지니고 있다. 이 ‘~景’의 포괄적인 수렴으로 말미암아 반복부는 비로소 표현의 필연성과 의미 지향의 통일성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인식의 주체인 자아와의 관계가 드러나기 이전의 객관적인 세계상으로서의 포괄일 뿐이다.이와는 대조적으로 ‘偉…니잇고’제시한 세계(선택적으로 구성한 지향적 세계)가 나와 조화로운 관계에 있음을 은근히 과시하는, 득의에 찬 감격이다.여기에서, 경기체가가 지닌 중요한 미학적 성격이 더 지적될 수 있다. 1차적으로 경기체가는 삶의 구극적인 아름다움을 세계와의 조화에 두고 있는 시가양식이다. 이는 세계와의 화합을 갈구하는 서정시 일반의 이상과 근본적으로 그 궤를 같이하는 성격이다. 양자는 다 같이 세계를 자아의 정서적 등가물로서 제시하고 자아의 의지가 개입된 지향적 세계로서 설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세계를 상상이나 초월적인 데서 구하는 서정시 일반의 경향과는 달리, 경기체가는 그것을 객관적 현실에서 찾아 선택적으로 구성한다. 자아의 주관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자아의 주관과 세계의 객관을 함께 중시하며, 절대적 진실에 대한 끝없는 갈망보다는 규범적 진실의 현실적인 완성을 지향한다. 말하자면 경기체가가 지향하는 세계는 삶의 규범성과 실천적 가치에 더 큰 비중을 두는 규범적 세계인 것이다. 이러한 점은 경기체가가 서정시로서의 전형성을 이미 벗어나 강한 주제적 성격을 드러내게 되는 중요한 양식적 특성이다.더 나아가 경기체가는 세계와의 조화를 지향하는 정도를 넘어 세계와의 조화가 실현된 기쁨을 구가하는 노래이기도 하다. 이는 지향적 세계(곧 규범적 세계)의 완성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다는 세계에 대한 낙관론적 믿음과 자아의 완성을 세계의 완성 안에서 찾으려는 적극적인 자아실현의 의지가 정서적 감격의 형태로 시에 표상된 결과라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경기체가는 세계와의 조화를 획득한 자아의 득의에 찬 자랑과 자기 과시의 어조가 강하고, 그 시적 정조 또한 밝고 건강하다. 경기체가의 형식이 보이는 동적이고 발랄한 율동, 그러면서도 분방함에 흐르지 않은 정연한 질서의 조성이 필연성을 얻는 것도 여기에서이다.4. 역사적 흐름이러한 특성은 물론 작품을 직접 짓고 즐기던 당시의 시대정신과 직결된 역사적 필연성을 가지고 있다. 경기체가의 중심 향수층은 고려 후기부터 조선 초기에 이르는 기간.
俗謠1. 명칭과 장르적 성격2. 속요의 형성과정과 역사적 배경3.속요의 형식적 특성과 표현미4. 작품세계가. 짧은 형식의 속요나. 펼침 형식의 속요다. 편사(編詞)형식의 속요라. 반복형식의 속요1. 명칭과 장르적 성격속요란 악학궤범 악장가사 시용향악보등 여러 전적(典籍)에 실려 전해지는 고려시대의 노래 가운데, 경기체가를 제외한 우리말로 된 서정가요를 가리키는 명칭이다. 학자에 따라서는 고속가(古俗歌), 장가, 별곡으로 부르기도 하며, 경기체가와 속요를 포괄하여 말할 때는 일반적으로 고려가요나 여요[麗謠] 라는 명칭이 흔히 사용되어 왔다.속요란 백성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하여져 온 시속(時俗)의 노래란 의미이므로, 발생시기와 작자를 알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고, 형식에 있어서도 일정한 틀이 정해져 있지 않다. 고려시대의 국문시가는 구비전승에 의해서 전해오다가 한글 창제 이후에야 비로소 문헌에 정착되어 전해지게 된 것이다. 조선조 성종 중종 대에 와서야 문자로 채록되어졌다. 가사가 남녀상열의 내용을 담은 음사[淫事] 로 규정되어 악정의식[樂正意識] 에 입각한 詞俚不載(사리불재)의 원칙에 저촉되어 산삭(필요 없는 글자나 글귀를 지워 버림), 변개(변경(變更))되는 수모를 겪게 된다. 국가적의식이나 연회에서 연주되던 , , , 등 4편은 악학궤범에 올랐으며 이중 소수의 노래만이 악장가사, 시용향악보등에 채록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여기에 수록된 노래들만 오늘날 그 가사가 현전하게 된 것이다. 다만 속요가 고려가 망한지 한 세기 이상이 지나 조선 초기 궁중음악의 속악가사로 수집되어 정리되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현재 전하는 노래의 가사가 고려시대에 불리던 당시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고려가요는 속요계통의 노래와 경기체가 계통의 노래로 크게 구분된다. 속요계통의 노래들이 언어의 운율미를 잘 살리고 있는 서정가요라면, 경기체가 계통의 노래는 교술적인 성격이 두드러진 노래라는 점에서 서로 구분된다.속요의 형식적 특성으로는 분장체로 되어 있고, 사모하여 지은 것이라 하고, 한편으로 “예부터 이 노래가 있었는데 홍철이 이 노래 가사를 고쳐서 자기의 뜻을 우의(寓意) 했다고도 한다.”고 첨언하고 있다. 이는 이 채홍철이 새로 창작한 작품이 아니라 전래하는 기존의 가요를 재창작한 것임을 의미한다. 대개 과 의 예를 통해 우리는 이나 처럼 향가의 속요화만이 아니라 신라시대의 민요까지도 고려 민간사회에 전승되어 속요에 흡수되었음을 암시받을 수 있다.한편으로 이러한 민요성향의 노래들이 궁중에 유입되는 과정에서 ,,의 경우에서처럼 일부 가사가 삽입되거나 개편되어 성격이 변모되는 예도 찾아볼 수 있다. 두 노래의 첫연을 살펴보면 본사(本詞)와 결사(結詞)의 내용과는 무관한 격식화된 서사(序詞)적 기능을 갖는 내용이 실려있다. 이는 이들 노래의 본사나 결사가 원래는 민간에서 불리던 애정노래였는데, 이것이 궁중에 이입되어 속악가사로 개편되는 과정에서 임금에 대한 충성과 성수만세를 축원하는 송도적(頌禱的) 의미로 삽입된 것으로 볼 수 있다.민간사회에서 생성된 민중의 노래인 민요가 왕실에 유입되어 속악으로 자리 잡는 과정에서 몇 가지 환경을 지적할 수 있다. 그것은 우선, 고려왕실에 계승된 삼국 속악의 일정한 기여와, 광종, 문종, 예종, 충렬왕등 고려 역대 군주의 민요에 대한 기호, 이러한 왕실취향에 영합한 왕립음악기관과 문신들의 역할, 행신(倖臣)들의 아첨과 기녀들의 공헌 등을 들 수 있다. 그밖에 당악의 영향력 또한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요소였다. 당악은 4대 광종 때 처음 고려에 소개된 이래 왕실의 큰 애호를 입어 성행하였다. 당시 수입된 당 악곡의 가사는 대부분 송의 사문학(詞文學)으로, 이는 대곡(大曲)과 산사(散詞)로 크게 분류된다. 이들 가사를 살펴보면 특히, 산사의 경우 대부분 인생의 무상감이나 남녀 간의 사랑과 이별, 이로 인한 그리움을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어 현전하는 고려 속요와 그 주제와 내용에 있어 매우 유사한 작품이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점은 당악에 경도되어 있던 임금이나 없고, 기녀와 악공 나아가 왕과 측근의 신하들도 운반자, 개작자 , 편집자로서 넓은 의미의 작자층에 포함되며, 동시에 향수자로서의 지위도 누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3. 속요의 형식적 특성과 표현미속요의 형식은 크게 단형(單形)과 분장형(分章形)으로 나눌 수 있다. 단형속요는 연구분이 없고 노랫말이 일관된 통일성을 지니고 있으며, 비교적 원래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노래이다. , , , , , , 등이 이에 해당된다. 분장형 속요는 호흡이 긴 연시(聯詩)이며 연마다 후렴이 규칙적으로 붙거나 유사한 사설이 병렬적으로 파생되며, 혹은 여러 노래들이 합성되어 이루어진 노래들이다. ,, , , , 등의 작품이 있다. 단형이든 분장형이든 일부 예외는 있지만, 대체로 한 연의 호흡단위가 의미부 4행으로 이루어지며, 3음보로 1행을 이루며 , 후렴구나 여음을 갖추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나 에서는 민요의 AABA형의 반복구조가 유형화 되어가는 양상도 발견된다. 반복과 병렬에 의한 전개는 우리 민요에서 발견되는 보편적 표현기교이며, 원형적 구조이기도 하다. 반면과 에서는 10구체 향가의 자취를 찾아볼 수 있고, 그밖에 , ,등에서는 넓은의미에서 시조 형으로 볼 수 있는 3행시의 형태도 확인된다. 그밖에 와 , 등의 노래는 매 단락이 서로 상이한 율격과 형태로 짜여져있어 따로 존재해오던 독립된 몇 노래를 편집, 재구성한 것으로 보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 인식이다.여음 및 후렴구와 반복구의 활발한 사용은 속요만의 중요한 특징으로 여음은 일반적으로 악기의 구음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대개 속요가 궁중 무악(舞樂)의 악곡에 맞게 원래의 가사가 개편되면서 남은 흔적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속요의 율격미를 조성하는 동시에 시적구조를 완결시키는데 중요한 몫을 하기도 한다.고려속요의 문학적 우수성은 시적정서면에서 뿐만이 아니라 표현기법의 성취면에서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데, 작품을 통해 확인되는 탁월한 비유와 상징기법, 언어조탁면에서의 세심한 배려가사로 채택되면서 思母曲(사모곡)이란 명칭을 얻게 되는 단계를 밟았던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을 각각 호미와 낫에 비교하고 있는 이 노래는 처음에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불린 노래였던 것으로 볼 때, 소박성과 진솔성이 드러난다. 은 『시용향악보』에 실려 있고, ‘비두로기’로 불리기도 한다. 예종이 자신의 허물과 時政(시정)의 득실을 듣고 싶어 言路(언로)를 열어 놓았으나, 혹시 신하들이 말하지 않을까 근심하여 바른말을 해 줄 것을 유도하려고 불렀다는 노래이다. 반복구를 거듭 사용한 짤막한 형식의 이 노래는 비둘기처럼 울지 말고 뻐꾸기처럼 시원스럽게 바른 말을 해달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데, 이를 예종의 사상적 변민과 연관 지어 작품의 심층적 의미를 분석한 연구도 있다.나. 펼침 형식의 속요짧은 노래들이 형태나 표현에서 거의 민요의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는데 반해, 이들 노래에 오면 상당히 세련된 시적 언어의 구사가 돋보이고, 내용도 교술적 평면성을 벗어나 다양한 양상을 보이게 된다. 는 백제의 노래로 알려진, 가사가 한글로 전해지는 가장 오래 된 노래이다. 노래의 제작 연대에 대해서는 백제설과 신라 景德王(경덕왕) 이후 설, 혹 고려일 가능성도 인정한 설 등 다양한 견해들이 엇갈리고 있다. 노래의 성격에 대해서도 , 남편의 외도를 질투하는 아내의 노래로 이해하는 견해도 있다. 중간 중간 여음구의 효과적 사용으로 시적 긴장을 유지하면서, 남편을 염려하는 아낙네의 소박한 마음을 잘 그려내고 있다. 는 외형적으로는 ‘위 증즐가’라는 여음구에 의해 모두 4연으로 구분되어 있는 분장체이나, 원래는 짧은 형식의 노래였던 것이 속악가사로 편입되면서 음악적 배려에 의해 재배열 된 노래이다.의 경우처럼 지방 민요가 보편화 되어 로 불려 지다가, 속악가사로 개편되면서 으로 불리워진 3단계 수용과정으로 이해하려는 견해도 있다. 그 서정적 미의식을 높이사 일찍부터 동서고금 이별가의 絶調(절조)라는 평가까지 있었을 정도로, 보내고 싶지 않은 님을 떠나 보내는 여 에 기원을 둔 것으로 모두 45행으로 이루어진 긴 호흡의 노래이다. 의 전체 8구 가운데 앞 6구가 약간 변개되어 34~36행에 삽입되어 있다. 형식은 연 구분이 없어 다소 산만하게 느껴진다. 문헌상 와 관련된 기록이 처음 나타나는 것은 고종 23년인데, 이 노래는 고려 초기나 중기부터 불리워진 것은 아니고, 고려 말 만간 사회에서 주로 연행되다가 궁중에 유입되어 채댁되었고, 조선조에 들어와서 본격적으로 궁중 나례에 정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다. 편사(編詞)형식의 속요편사 형식의 속요란 서로 다른 이질적인 노래를 합성하여 이루어진 작품이다. 그 대표적으로 와 , 이 있다. 이들 노래는 민요가 궁중에 이입되어 속악가사로 개편되는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먼저 「악장가사」에 실린 는 전 11연으로 이루어져 있고, 의미 단락으로 나누며 6연으로 구분된다. 서사인 제 1연은 3구로 이루어져 있고, 본사인 제 2-5까지는 매 6구로 되어 있으며 결사인 제 6연은 6구로 이루어져 있고 에도 꼭 같이 들어 있는 유형가사이다. 서사는 성향에 있어 격식화된 의식사의 성격을 띠고 있어 제 1연과 맥을 같이 한다. 본사의 매 연의 끝구는 ‘유덕하신 님을 여히와지이다’라는 후렴구가 규칙적으로 들어간다. 이것은 동일한 구조 위에 어휘만 바꿔 넣는 반복 형식이다. 그 내용은 구운 밤에 싹이 나고, 옥으로 새긴 연꽃에 꽃이 되는 불가능함을 극대화하여 님을 향한 강렬한 사랑을 노래하였다. 그 발상이나 표현에서 민요와 방향을 함께 한다. 그래서 는 민요 계통의 노래(본사)에 당대 널리 전승된 결사를 편사한 위에 서사를 얹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의 성격은 왕실에서 제정한 ‘송도가’로 보는 견해와 민간차원에서 부르던 민요가 궁중에 이입되어 임금에 대한 충성과 성수만세를 축원하는 송도가로 변이됐다는 견해가 있는데 본사와 결사의 어법과 형식상 후자가 옳을 것이다. 제목의 ‘정석’은 사랑하는 대상 이름 또는 노래 첫 구 ‘딩하 돌하’의 차자로 봐서 금속 악기 소리로 보는 것하다.
유음화와 비음화Ⅰ. 서론Ⅱ. 본론1. 유음화1) 순행적 유음화2) 역행적 유음화3) 음운규칙2. 비음화1) 음운규칙Ⅲ. 결론Ⅰ. 서론음운의 동화 현상 가운데 가장 많이 나타나는 것은 자음 동화이다. 자음 동화는 일정한 자음이 어떤 음운의 영향을 받아 그와 비슷하거나 같은 소리로 바뀌는 현상인데, 때로는 양쪽이 서로 닮아서 두 소리가 다 바뀌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자음 동화 현상에는 유음화와 비음화를 들 수 있다.본론에서는 유음화와 비음화의 정의와 종류를 알아보고 관련된 예를 통해 현상을 접근해 보도록 하겠다.Ⅱ. 본론1. 유음화유음화는 ‘ㄴ’과 ‘ㄹ’이 인접할 때 그 순서에 관계없이 ‘ㄴ’이 ‘ㄹ’로 변하는 현상을 통틀어 지칭하는 말이다. 유음화는 치조비음 ‘ㄴ’이 주위에 있는 유음 ‘ㄹ’의 영향을 받아 그와 같은 소리로 바뀌는 것이므로 동화 현상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칼-날→칼랄‘칼날’은 ‘칼’과 ‘날’이 합쳐진 단어인데 두 말이 합쳐지면서 뒤에 오는 말이 ‘날’에서 ‘랄’로 바뀌었다. (‘날’이 그대로 발음되는 ‘톱날[톰날]’과 비교해 보면 그 차이를 쉽게 알 수 있다). ‘칼’의 종성 ‘ㄹ’뒤에서 말의 초성 ‘ㄴ’이 ‘ㄹ’로 대치되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칼날[칼랄]’은 앞에 있는 ‘ㄹ’ 때문에 뒤에 오는 ‘ㄴ’이 ‘ㄹ’로 바뀌었으므로 같은 소리로 바뀌는 동화를 입은 단어인 셈이다. 그러므로 이 경우에는 그러한 대치의 동기를 제공한 유음 ‘ㄹ’이 동화음이 되며 ‘ㄹ’로 바뀌는 것은, ‘ㄹ’과 ‘ㄴ’을 연속해서는 잘 발음하지 못하는 한국 사람들의 발음 습관 때문이다. 그러므로 ‘ㄹ’뒤에 오는 ‘ㄴ’을 ‘ㄹ’로 바꾸어 줌으로써 발음을 쉽게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한편 유음화는 그 동화음과 피동화음의 순서에 따라 순행적 유음화와 역행적 유음화로 나뉜다. 순행적 유음화에서는 앞에 있는 ‘ㄹ’의 영향으로 뒤에 오는 ‘ㄴ’이 ‘ㄹ’로 바뀌며, 역행적 유음화에서는 뒤에 오는 ‘ㄹ’의 영향으로 앞에 있는 ‘ㄴ’이 ‘ㄹ’로 바뀐다.1) 순행적 유음화순행적 유음화에는 두 종류가 있다.(1) 달님→달림 하늘나라→하늘라라 물놀이→물로리 잘 놀아→ 잘로라(2) 훑는→훌는→훌른 앓는다→알는다→알른다 밟는다→발른다(1)은 두 단어 사이나 복합어와 파생어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복합어와 파생어 중에는 ‘솔나무→소나무’(복합어), ‘겨울내→겨우내’(파생어)와 같이 ‘ㄴ’앞의 ‘ㄹ’이 탈락하여 유음화가 일어나지 않는 예들이 있으나 이런 예들에서의 ‘ㄹ’탈락은 역사적인 현상이다. 예전에 ‘ㄹ’이 탈락한 대로 굳어진 형태가 지금까지 계속 쓰이고 있다는 것이다. 요즘 새로 생긴 말이라면 ‘ㄹ’탈락보다 유음화가 일어나 ‘솔라무, 겨울래’가 될 가능성이 많다.또 다른 예를 보자. ‘달님’은 ‘달(月)’을 의인화하여 높여 부르는 말이다. 이를 남의 딸을 높여 부르는 말인 ‘따님’과 비교해 보면 흥미롭다. ‘ㄹ’로 끝나는 명사 ‘달’과 ‘-님’이 결합한 ‘달님’은 유음화를 보여 주는 반면, ‘따님’은 동일한 구성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ㄹ’이 탈락하는 모습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이는 순행적 유음화가 ‘ㄹ’탈락에 비해 후대에 나타난 현상임을 알려준다. ‘달님’은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단어여서 ‘ㄹ’탈락을 겪지 않고 유음화를 보여 주지만, ‘따님’은 유음화가 출현하기 전에 만들어진 단어여서 ‘ㄹ’탈락을 보이게 되었다.(2)는 자음군 'ㄾ’,‘ㅀ’이 ‘ㄴ’앞에 올 때 ‘ㅌ’, ‘ㅎ’이 탈락하고 ‘ㄹ’과 ‘ㄴ’이 만나게 되어 일어나는 것이다. 경상방언에서는 ‘읽는다→일른다, 짧나→짤라’와 같이 ‘ㄺ’,‘ㄼ’과 같은 자음군과 ‘ㄴ’이 만날 때도 유음화가 일어난다. 이는 자음군단순화에서 ‘ㄹ’이 살아남음(즉, ‘읽-’에서는 ‘ㄱ’이 탈락하고, ‘밟-’에서는 ‘ㅂ’이 탈락함)으로써 순행적 유음화를 겪게 된 예다. 물론 표준 발음에서는 ‘ㄹ’이 탈락하여 ‘읽-’에서는 ‘ㄱ’이, ‘밟-’에서는 ‘ㅂ’이 살아남기 때문에 순행적 유음화가 일어날 수 없다. 따라서 [잉는다], [밤ː는다]가 표준 발음이 되는 것이다.2) 역행적 유음화역행적 유음화는 한자어에만 나타난다.신라→실라 천리 만리→철리말리 연루→열루 : 역행적 비음화니은-리을→니은니을, 다운(down)-로드(load)→다운노드 : 치조비음화역행적 유음화에서는 어종에 따른 차이가 명확히 드러난다. 위의 예에서처럼 고유어나 외래어는 한자어와 달리 역행적 유음화를 거의 보여 주지 않는다. 그러한 단어에서는 대체로, ‘ㄴ’뒤에 ‘ㄹ’이 연결되었을 때 선행하는 ‘ㄴ’이 ‘ㄹ’로 바뀌는 변동(유음화)이 아니라 후행하는 ‘ㄹ’이 ‘ㄴ’로 바뀌는 변동(치조비음화)이 일어나는 것이다. 따라서 역행적 유음화는 고유어나 외래어에는 거의 나타나지 않으며 한자어(‘신-라→실라’)에만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이와 같이 순행적 유음화와 달리 역행적 유음화가 주로 한자어에만 나타나는 것은 역사적 현상인 데에 연유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즉 역행적 유음화가 현재 활발히 일어나고 있는 음운 현상이 아니어서, 오래 전에 만들어지고 한 단어로서 정착된 한자어에서만 그것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그러한 한자어에서는 유음화를 겪은 ‘ㄹ-ㄹ’의 발음이 정착 과정을 거치면서 그대로 굳어져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온 셈이다. 물론 역행적 유음화의 생명력이 약화된 이후에는 대체로 치조비음화가 그것을 대신하게 된다.3) 음운규칙음운 규칙은 음운 현상을 일정한 방식으로 형식화하여 기술한 것이다. 이러한 음운 규칙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기본 유형을 외워 두면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A → B/ X_Y : X와 Y 사이에서 A가 B로 바뀐다는 것을 나타내는 대치 규칙A → ?/ X_Y : X와 Y 사이에서 A가 없어진다는 것을 나타내는 탈락 규칙? → B/ X_Y : X와 Y 사이에서 A가 들어간다는 것을 나타내는 첨가 규칙순행적 유음화는 ‘ㄹ’뒤에 있는 ‘ㄴ’이 ‘ㄹ’로 바뀌는 것이다. 좀더 간략히 표시하면 ‘ㄹㄴ→ㄹㄹ’가 된다. 여기서는 무엇이 어떻게 변하는지, 또 어떠한 조건에서 변하는지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따라서 을 ‘ㄴ→ㄹ’로 나타내 주고 을 ‘/ㄹ_’로 나타내 주면 그것이 좀더 명확해진다. 이에 따라 유음화 규칙을 형식화하여 기술하면 다음과 같다.유음화 규칙 : ㄴ→ㄹ/ㄹ_(‘ㄹ’뒤에서 ‘ㄴ’은 ‘ㄹ’로 바뀐다.)2. 비음화비음화란 비음 앞에서 비음이 아닌 소리(이 경우에는 장애음)가 비음으로 대치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여기서 선행하는 장애음이 비음으로 바뀌는 것은 후행하는 비음 때문이므로 비음화 또한 유음화와 마찬가지로 동화 현상의 하나라 할 수 있다.밥(食)-만 →밤만, 잡(執)-는다 → 잠는다위의 예는 명사 ‘밥’에 조사 ‘-만’이 연결된 ‘밥만’이 [밤만]으로 발음되며 동사 ‘잡-’에 어미 ‘-는다’가 연결된 ‘잡는다’가 [잠는다]로 발음되는 것을 보여준다. 이를테면 ‘-만’이나 ‘-는다’ 앞에서는 [밥]이나 [잡]을 [밤]이나 [잠]으로, 즉 [밥]이나 [잡]의 종성 ‘ㅂ’을 ‘ㅁ’로 바꾸어 발음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밥만[밤만], 잡는다[잠는다]’에서 ‘ㅂ’을 ‘ㅁ’로 바꾸어 주는 것은 뒤에 오는 ‘-만’이나 ‘-는다’가 비음(‘ㅁ,ㄴ’) 으로 시작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들은 ‘ㅂ’ 등의 장애음이 비음 앞에 있을 때 그것을 잘 발음하지 못하는데 이러한 이유로 비음(‘ㅁ,ㄴ’) 앞에 있는 자음(‘ㅂ’)을 비음(‘ㅁ’)으로 바꾸어 줌으로써 발음을 쉽게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이때 ‘집만[짐만]’은 뒤에 오는 비음‘ㅁ’의 영향을 받아 앞에 있는 소리(‘ㅂ’)가 비음 ‘ㅁ’로 바뀌었으므로 같은 소리로 바뀌는 동화를 입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잡는다[잠는다]’는 뒤에 오는 비음 ‘ㄴ’의 영향을 받아 앞에 있는 소리(‘ㅂ’)가 비음 ‘ㅁ’로 바뀌었으므로 비슷한 소리로 바뀌는 동화를 입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경우에는 뒤에 오는 비음 ‘ㅁ,ㄴ’이 동화음이며 앞에 있는 ‘ㅂ’이 피동화음이 된다. 뒤에 오는 소리 ‘ㅁ,ㄴ’이 앞에 있는 소리 ‘ㅂ’에 영향을 미쳐 그와 같거나 비슷한 소리로 바뀌게 했기 때문이다.한국어의 비음에는 ‘ㄴ,ㅁ,ㅇ[ŋ]’의 세 소리가 있는데 장애음 ‘ㄷ,ㅂ,ㄱ’와 각각 짝을 이룬다. ‘ㄴ’와 ‘ㄷ’, ‘ㅁ’와 ‘ㅂ’, ‘ㅇ’과 ‘ㄱ’이 코로 공기를 내보내는 성질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데에서 차이를 보이는 대응 짝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ㄷ, ㅂ, ㄱ’소리를 내되 단지, 코로 공기를 내보내는 성질만 부가하면 각각 ‘ㄴ, ㅁ, ㅇ[ŋ]’소리가 된다고 할 수 있다.한편 한국어의 비음화는 동화음과 피동화음이 직접 연속되어 있을 때 일어나므로 직접동화며, 동화음이 피동화음보다 뒤에 있을 때 일어나므로 역행동화다. 다만 이러한 비음화에서는 장애음이 그와 조음 위치를 같이하는 비음으로 바뀐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연구개음 ‘ㄱ’는 같은 조음 위치의 연구개비음 ‘ㅇ’, 치조음 ‘ㄷ’은 치조비음 ‘ㄴ’, 양순음 ‘ㅂ’은 양순비음 ‘ㅁ’로 비음화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