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도자기란 무엇인가?2. 도자기 제조과정?3. 도자사에서 임진왜란에 대해서4. 옹기5. 전통도예에서 장인정신이란?① 뚜렷한 정신을 갖고 최고가 되겠다는 정신② 자기 분야에서 일 하는데 이익 득실이 없어도 꾸준히 해야 한다는 사명감.③ 힘들고 어렵고 돈이 되지 않아도 남들이 하지 않아도 꾸준히 해내가는 정신
1. 도자기란 무엇인가?도자기란 흙으로 어떤 것을 만들고, 그 위에 유약을 입혀 고온에서 구워 녹여서 새로운 광물질로 만든 것이다.흙의 주성분으로는 장석, 규석, 점토가 있다. 장석은 접착제의 역할을 하고 규석은 뼈의 역할을 하며 점토는 살의 역할을 한다. 이것을 단독 또는 혼합하여 성형한 다음 열을 가하여 경화시킨 제품을 말한다.이런 태토는 점력, 가소성, 내화도, 불순물을 가지는 성질이 있다. 흙으로 원하는 어떤 모양을 낸 다음에 말려서 유약을 바르는데1.광택을 주어 아름답게 하고 강도를 증진시키기 위해2. 표면을 매끈하게 하여 더러워짐을 방지3. 흡수성을 없애서 물, 화학약품에 대한 저항성 증진이런 이유 때문이다.흙은 식물이 뿌리박고 자라며 열매 맺는 바탕이고 인간의 향수가 담겨 있는 것으로, 수분이 있어 젖었을 때는 자기가 만들고 싶은 어떤 형태라도 만들 수 있고 자기의 감정까지도 표현할 수 있는 재료로 마르면 굳어지는 성질이 있는데 도자기는 이와같은 재료의 성질을 잘 이용한다. 도자기는 흙으로 빚는 불의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2. 도자기 제조과정?제토 - 성형 - 건조 - 장식 - 초벌구이 - 시유 - 재벌구이① 제토뼈대, 즉 점토를 어떻게 만드냐에 따라 여러 방향으로 다르게 나타난다. 산업도자의 경우도 단 한가지라도 원료가 잘못되면 그 결과는 마지막에 손실을 가져온다. 좋은 점토의 선택이 가장 절대적인 것이다.곱게 간 흙을 물에 담가 두었다가 더러운 물질이 생기면 걸러서 버린 후,아래에 가라 앉은 깨끗한 흙을 그늘에 잘 말려 질 좋은 찰흙을 만든 후물을 섞어서 흙이 부드럽게 될 때까지 손이나 발로 반죽을 한다.② 성형가장 기본적이며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성형방법은 코일성형과 물레성형이다.물레는 발물레에서 전기물레, 자동물레 등으로 개발되어 사용됐다. 손성형 방법도 많이 개발되어핀칭기법, 코일링, 판성형, 속파기 기법 등을 사용한다.산업도자에서는 자동물레, 주입성형, 압축성형, 입착성형 등이 널리 이용된다.③ 건조성형물은 수분을 제거하여 필요한 강도를 주고 소성을 위험 없이 빠르게 하기 위하여 건조하여야한다. 점토 입자간의 틈은 서로 불규칙적이지만 모세관으로 되어 있으므로 내부의 물은 이 모세관을 통하여 표면으로 이동되고 계속 증발한다.④ 장식1차장식 : 성형 직후 또는 건조과정 중에 있는 장식으로 양각, 음각, 투각, 부각, 상감 등을 할 수 있다2차장식 : 초벌구이 이후에 주로 안료를 사용하여 붓으로 그릴 수 있다.3차장식 : 재벌구이가 끝난 후 유약의 표면 위에 저온용 전사지를 부착하여 3차 소성을 할 수 있다.⑤ 초벌구이애벌구이라고도 한다. 800도 전후로 초벌구이를 한다. 이는 그림을 그 위에 그리기에 편리하게 하고 유약이 잘 입혀지도록 하는 것이다. 초벌구이를 하지 않을 경우 파손율이 높고 유약의 색상도 좋지 않다.⑥ 시유사람에게는 옷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으로 초벌구이가 된 기물에 유약을 입히는 것을 말한다. 작품의 형태와 용도에 따라 색깔과 시유기법이 다르다.⑦ 재벌구이본구이, 참구이라고도 한다. 마지막 과정인 재벌구이 과정에서전기가마, 가스가마, 기름가마, 전통장작가마, 라쿠가마, 노천소성에 따라 그 결과가 판이하게 다르게 나타난다. 소성온도는 1200-1300도 사이로 한다.라쿠가마, 노천소성은 900-1000도 사이이다.소성과정에서 어떤 가마인지/ 어떤 연료인지/ 산화소성인지/ 환원소성인지/에 따라 색상이 많이 다르게 나타난다.3. 도자사에서 임진왜란에 대해서?임진왜란은 도자기 전쟁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이유는 일본의 도자기에 대한 일방적이고도 광적이 욕구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그 당시 토요토미가 일본전국을 통일하고 그 통일과정에서 발생되는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한 한 방법으로 조선침략을 결정하게 된만큼 조선침략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장수들이 많았다고 한다. 더군다나 추위와 기근, 의병과 승병의 활동, 이순신장군의 활약, 명의 원군 등의 예상치 못했던 상황들이 발생하면서 불안한 상황들이 이어짐에 따라 챙길 수 있을 때 챙기자라는 식의 약탈과 자기뱃속채우기에 열을 올리게 되었고 그 중에서 가장 눈에 띄고 돈이 되는 것이 바로 일본에서 귀한 대접을 받던 도자기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났던 당시 일본은 생활용품 등으로 쓰이는 간단한 도기를 만드는 기술을 있었으나 질높고 고급스러우며 고가에 취급되는 자기를 만드는 기술이 없어 도자기만 가지고 가면 돈이 된다는 사실에 눈이 멀었던 것이다. 또한 일본의 다도문화도 도자기를 귀하게 만드는 지대한 역할을 했다.이렇게해서 많은 도자기들이 약탈당해 왜로 반출되고 도자기뿐만 아니라 수많은 도공들까지지 왜로 끌려가게 된다. 왜로 잡혀간 도공들은 영주의 통제아래 재정을 위하여 가마를 만들고 도자기를 굽고 그렇게 만들어진 도자기는 일본국내는 물론이고 유럽까지 수출되어 많은 돈을 벌어들이게 되고, 일본이 세계속에 도자기로서 알려지게 된 계기가 되기도 하며 현대 일본요업의 발전에 까지 크게 기여하게 되는 큰 역사적, 경제적 의미까지 얻게되는 결과를 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