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1. 서론-이인성화가는 어떤 인물인가?2. 본론- 시대와 작가의 의도, 감상의 의도- 이인성의 위치- 대표작- 향토색3. 결론4. 참고문헌1. 서론-이인성 화가는 어떤 인물인가?대구의 가난한 집안에서 출생하여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진학을 하지 못한 가운데 서동진(徐東辰)으로부터 수채화 지도를 받았다.1929년 제8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처음 입선한 뒤로 1936년까지 천부적 재능과 신선한 표현 감각을 발휘한 수채화와 유화로 입선·특선을 거듭하여, 천재적인 화가로서 각광을 받았다. 1937∼1944년의 마지막 조선미술전까지는 가장 성공적인 위치의 추천 작가로 참가하였다.그의 특출한 재능을 본 대구의 몇몇 유력자의 도움으로 동경으로 유학길에 올랐고 1932년 전일본수채화회전을 비롯하여 1933∼1935년의 제국미술원전(帝國美術院展, 약칭 帝展), 1938년의 문부성미술전(文部省美術展, 약칭 文展), 1933·1934년의 광풍회전(光風會展)에 잇달아 입선하였다. 그 시기의 작품들이 이인성 예술의 절정기를 이루었다.20대 중반의 청년기에 타고난 재능을 최대로 연소한 그는, 유럽의 근대 회화 사조인 인상파·후기 인상파·야수파·표현파 등의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자신의 기법으로 재치 있게 소화하고 자유롭게 활용하였다. 그의 불투명 수채화의 극히 다감한 표현 처리와 특출한 기량 발휘는 근대 한국 미술사에서 특히 높이 평가되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카이유’, ‘풍경’, ‘계산동 성당’, ‘소녀’ 등이 있다.2. 본론-시대와 작가의 의도, 감상의 의도작가 : 이인성제목 : 가을 어느 날 ( 1934 )크기 : 96 × 161.4㎝재료 및 기법 : 캔버스에 유채소장 : 호암 미술관1929년 제8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처음 입선한 뒤로 1936년까지 천부적 재능과 신선한 표현감각을 발휘한 수채화와 유화로 입선 특선을 거듭하여, 천재적인 화가로서 각광을 받았다.이인성의 은 1934년의 작품이다. 이 작품이 제작된 1930년대는 조선 총독부의 통치가 완전한 식민 체계를 갖추게 되는 시대였 작가는 한국인의 끈기와 생명력을 표현하고자 했다. 천을 휘감은 여인의 모습과 장식적인 화면의 처리, 강렬한 원색의 사용을 통해 작가는 현실 속에서 자신의 이상향을 구현하고자 했다.일제치하의 암흑기에 이렇게 밝은 색으로 표현했다는 것을 잘못 인식하면 작가를 친일파라고 생각할 수 있다. 특히 반라의 인물의 시선이 애매한 채 입을 다물고 있고, 그보다 어린 나이로 보이는 소녀가 관람자의 시선을 외면한 채 화면의 중앙 깊은 곳으로 머리를 돌리고 있다는 점은 시대 상황을 외면하고 수동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작가는 쾌청하고 푸른 하늘과 짙은 원색의 땅을 통해 향토성을 띤 우리 민족의 강한 면을 보여주고 있고, 시대적 상황에 굴하지 않는 우리 민족의 인내와 끈기를 보여주려 했다고 볼 수 있다.-이인성의 위치‘한국의 고갱’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이인성화가는 강렬한 원색과 강한 대조, 그리고 불투명의 짧고 단속적인 붓터치로 유화의 수준에 비견될만한 독특한 기법을 발전시켜 나갔는데 서구의 인상주의와 후기인상주의 화풍을 여러 화집을 참조하며 독학을 통해 나름대로 발전시켜 향토적인 서정주의의 한 전형을 이룬 우리나라 한국근대미술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당대의 최고 화가였다.-대표작작품명: 카이유 (kaiyu) / 1932년 / 종이에 수채 / 78 x 57.5cm /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제11회 조선미술전람회》(1932)의 입선작으로 이인성이 일본에서 수학하던 중에 출품하였던 작품이다. 일제 치하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냈던 이인성의 초기작에 해당하는 이 작품은 이인성의 독특한 표현주의적인 화풍이 막 나타나기 시작할 무렵의 것으로, 수채화 특유의 맑고 투명한 느낌보다는 유화에 가까운 불투명한 수채화의 일면을 가지고 있다. 작품 제목인 ‘카이유’는 카라(Calla Lily)라는 꽃의 일본식 이름이다. 흰색의 카라꽃은 회복을 기원하는 의미를 지니므로 조국 광복의 염원을 담은 작품이라는 해석도 가능하겠다.-작품명: 계산동 성당 / 1930년경 / 유화 / 종다. 실제 대상의 형태나 색감에 연연하지 않고 감각적으로 느낀 대상에 대한 인상을 표현하고 있으며, 파스텔톤 색감들의 미묘한 변화에서 따뜻한 광선의 느낌이 전해진다. 이 작품은 일본적 아카데미즘이 맹목적으로 이식되고 있었던 시기에, 작가만의 독자적인 감성으로 서양화의 토착화 방법을 보여준 의미 있는 작품으로 중요한 미술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향토색미술을 전공하는 사람들에게 이인성이라는 존재에 붙는 수식어구중 대표적인 것이 ‘천재’ 라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향토색(향토성)을 빼놓을 수 없는데, 이인성의 작품 경향 중 가장 큰 특징 역시 향토성이다. 그의 향토주의는 우리의 당시 시대적 상황안에서 많은 논쟁거리가 되어왔다. 그는 근대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향토주의 화가로 평가되어지기도 하고 일제하에서의 친일적인 성향으로 해석되기도 한다.향토적 서정주의가 가장 큰 특징이라 여겨지는 그의 작품에서 목가적인 소재와 청, 녹 적, 황색의 혼합된 조와 강렬한 색채 구사, 한국적인 서정성 등은 향토적 서정주의의 커다란 맥을 형성하게 된다. 유학 후반기 그의 작품에서 향토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하였는데, 그 이유는 시대적 배경을 들 수 있다. 1930년대를 전후하여 문학예술계에서 활발하게 논의되기 시작한 '향토성'은 식민주의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상황에서부터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식민지하의 민족주의 의식과 결부되어 조선적인 것의 탐구가 일어나기 시작했으며 미술계에서도 조선적인 것을 추구하기 시작하였다. 향토색은 당시 미술가들에게 식민지 상황에서 정치적이지 않으면서 민족적 정서를 표현할 수 있는 하나의 대안이었다고 보인다. 향토색론은 이와 같이 평론가나 화가에 따라 각각 그 개념이 조금씩 달랐으며 김용준에 의하면 구체적인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말았다.이후 향토주의는 1930년대 들어서(일본의 향토가 농민의 삶에서 뿌리는 찾으려는 의미였던 것처럼) ‘농촌 계몽’ 운동 과 그 궤를 같이 하였다. 1920년대 중반에서 30년대 중반에 이르는 농촌 계몽 운동은 단순한 농촌 농촌 소설과 직접적으로 관계된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 화가들에 의해 이념적으로 향토 주의적인 소재의 추구가 나타난 것도 이 같은 시대적 배경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또 하나의 시대적 배경은 1935년경 일본 화단에서 일어난 신 일본주의를 들 수 있다. 신 일본주의는 1910초 일본 화단에서는 맹목적인 서양의 모방에서 벗어나 일본의 특색을 살린 그림을 그리자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한다. )이러한 분위기가 계속되어 오다가 1930년대 절정에 이르게 되는데 일본 유학생들 사이에서 신일본주의에 자극받아 민족의 정체성과 향토적 정조를 찾으려고 향토색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기 시작한다. 일본에서는 향토 연구를 주도한 민속학의 주요 그룹의 이름이‘향토회’인데 이처럼 ‘향토’라는 단어는 일본에서도 폭넓게 사용된 단어였다. 향토는 문학과 예술에서도 도시화되고 산업화되어 가던 당대에 자연과 토지, 그리고 농민의 삶에서 그 뿌리를 찾으려는 의미를 가진 용어였던 것으로 보인다.)1922년부터 조선총독부의 주최로 열린 조선미술전람회(이하 조선미전)의 일본인 심사위원들이 기대하는 것은 조선의 풍습이나 시골풍경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1930년대 미술전람회에 출품된 작품들은 조선 여성의 모습이나 시골아이들 등을 그린 그림이 대거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와 맞물려 그가 1930년대 후반 조선미전에 출품한 작품들은 거의 향토색 주제였다. 그는 이 때문에 성공을 위해 일본인 심사위원들의 취향에 맞추어 작품을 제작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향토색을 자신 나름대로 민족적인 정서를 표현하고 한국적 체형을 정립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1930년대 조선미전에서의 작품경향은 그가 선전을 통해 작가적 명성을 확고히 했다는 점(그는 여러 차례 수상하였으며 1930년대 조선미전에서 가장 성공한 화가였다. 그리고 선전이 크게 보아 일제의 문화통치정책의 일환으로 시행되었다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다.)에서 그의 향토성적 성향이 친일적인 것으로 비추어질 여지가 있다.그의 화단 진출은 1929년 제9년 제8회 선전에서 첫 입선을 차지한 후 선전시대의 종막을 고하는 1944년까지 6회 연속 특선에 최고상인 창덕궁상까지 받았다. 그가 추천작가가 된 것은 1937년으로 그의 나이 25세 때 일이다. 같은 해에 추천작가가 된 동양화부의 이당 김은호의 나이는 45세, 서양화부의 추천작가로는1941년에서야 김인승과 심형구 정도가 관문을 통과하고 그 뒤를 손일봉이 따른다. 이러한 이력에서 평자들은 일단 그의 조숙함과 화려한 경력을 주목하게 되었다). 국내에서의 선전에서 그랬고 또한 스무 살 무렵 도일하여서도 그가 도전한 곳은 조선미전이었다. 어디 기댈 곳도 없는 역경 속에서 성장한 그의 경우 일정한 권위를 확보하고 있는 관전에서 입지를 다지는 것이 일종의 엘리트 코스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사실 여러 면에서 조선미전은 당시 신인들이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펼치기에는 가장 효율적인 무대였다. 다수 서양화가들의 거의 유일한 활동무대였다는 것은 가장 민족적인 화가로 꼽히는 박수근이나 오지호도 선전을 주된 발표의 장으로 삼았다는 데서 분명하게 확인이 된다. 작가의 친일활동이 제기되었을 때 이중희 교수는 이인성이 1930년대에 향토회라는 대구지역 서양화 그룹에 참여한 사실을 주목하며 경주지방 등의 풍경을 붉은 황토색 위주로 그리는 토속적 화풍을 보이면서 향토색 발현에 정열을 쏟았던 민족화가 라고 옹호한바있다.그의 향토색에 대한 견해는 대구지역 화가들의 모임인 향토회와도 연결시켜 볼 수 있다. 향토회는 조선 향토색론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향토색론의 중요 이론가인 김용준이 향토회의 창립 회원으로 활동했기 때문이다. 1930년 창립된 향토회는 순수 미술 지향의 단체로서 1회전부터 6회전까지 회원전을 열었다. 영과회는 1927년 대구의 교남 기독 청년회관에서 창립전을 개최하며 출발했는데, 회의 명칭은 과거의 진부한 미술을 지양하고, 원점(영)에서 다시 시작한다는 의미를 담은 것이었다. 영과회의 후신인 향토 회에 좌파 계열 미술가들인 이상춘, 이갑기, 이원식 등은 참여하지 않았다. 있다.
정신분열에 대한 환경적 유전인자들정신분열이란 ? 사고의 장애나 감정 , 의지 , 충동 따위의 이상으로 인한 인격 분열의 증상으로 , 현실과의 접촉을 상실하고 분열병성 황폐를 가져오는 질환이며 , 청년기에 많으며 내향적인 성격이나 비사교적 , 공격적 성향을 가진 사람에게 일어나기 쉬운데 , 유전적인 요인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기도 하며 , 긴장병 , 파과병 ( 破瓜病 ), 망상 치매 따위의 아형 ( 亞型 ) 으로 나뉘는 병증 .정신분열증의 원인 정신분열의 원인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 그러나 다음과 같은 연구가 계속되고 있다 . 생화학 : 정신분열증을 가진 사람들은 신경화학적으로 불균형을 보인다 . 대뇌의 혈액 순환 : 정신분열증을 가진 사람들의 뇌는 뇌의 다른 영역과의 협응에 어려움이 있음이 나타났다 . 유전적 : 유전적 연구는 계속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정신분열병 세습의 유전자는 발견되지 않았다스트레스 : 스트레스는 직접적으로 발병을 시키진 않는다 . 약물 : 약물 또한 그 자체가 병을 발병 시키지는 않는다 . 하지만 정상적인 사람도 정신분열적인 현상을 띄게 할 수 있다 . 영양학적 이론 : 병든 사람에게 균형 잡힌 영양 섭취는 환자의 건강에 중요하나 특정 비타민의 결핍이 병을 유발하는 것으로는 보여지지 않는다 . 정리 : 정신분열증은 어린 시절 트라우마나 가난 , 학대 , 실패 등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다 . 정신분열증은 뇌 질환의 일종으로 뇌의 변화에 따라 물리적 생화학적 증상을 띤다 .정신분열증의 증상 정신분열증에만 나타나는 특이 증상은 없다 . 따라서 정신상태 검사만으로 정신분열증으로 확진 하면 안되며 다양한 내과적 질환과 타 정신과 질환에 대한 감별이 이루어져야 한다 .정신분열 사례 루이스 웨인 영국출신의 화가 의인화된 고양이 그림으로 인기를 끌다 아내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정신분열증에 시달렸다 .환경적 유전인자들 환경적 유전인자란 ? → 기후 , 화학물질 , 미생물 , 음식물 등 건강에 영향을 주는 외부환경 의 요인 . 유전인자 ( 소함하여 소화장애 편식으로 인해 제대로 된 영양섭취를 못할 경우 발생빈도가 증가한다 .보르나 바이러스 감염 말의 유행성 수막뇌염의 병원체로 알려진 보르나병 ( 病 ) 바이러스와 신경 · 정신질환의 관련을 검토한 결과 정신분열증과 파킨슨병의 원인으로 밝혀진 바이러스태아산소결핍 탯줄이 눌리거나 태반이 손상되면 발생 . 산소 결핍은 기계적 손상보다 정신적 , 신경적 장애를 유발하는 더 흔한 원인이다 .정신에 작용하는 약의 사용 P hencyclidine : 일명 천사의 가루 마약의 일종으로 화학적으로 합성이 간단하여 대마초 등에 섞어서 흡연 . 저용량을 복용하면 해방감을 주며 공중에 떠 있는 듯한 느낌과 마비증세가 나타난다 . 그러나 과량을 복용하면 흥분과 혼돈 · 도취감 에 빠지며 , 근육경색이나 언어장애 · 판단장애 · 죽음에 대한 공포 및 신체감각의 변화를 가져온다 .외상성 뇌 손상 머리에 충격을 가하거나 외상으로 인해 뇌의 기능이 손상됨을 의미 . 뇌는 젤리처럼 부드러워서 손상되기 쉬운 반면 , 중추신경이므로 한번 손상되면 영원히 회복이 불가능하다 .출생시의 허피스 감염 2 형 단순포진은 일종의 성병이며 외부성기 부위에 물집이 생기고 , 발열 , 근육통 , 피로감 , 무력감 , 경부 임파선 종대 ( 비대 ) 등의 증상이 동반되기도 한다 . 단순포진 바이러스는 건강한 사람에게서도 뇌염이나 뇌수막염을 일으킬 수 있으며 , 드물지 않게 환자가 발생하고 있다 . 단순포진 뇌염에 걸리면 열과 두통이 발생하고 정신착란 증세를 보이거나 발작을 일으키기도 한다 .정신분열의 진단 정신분열증 초기에는 막연히 몸이 좀 불편하거나 수면에 장애가 있거나 집중력이 좀 떨어지는 것으로 시작되기도 한다 . 그리고 점차 대인관계 , 업무수행 , 말과 행동 등에 있어서 문제가 생기게 된다 . 병이 진행함에 따라 괴상한 행동 , 사고의 장애 , 엉뚱한 말 , 이상한 감각 , 혼자 중얼거림 등을 보이게 되고 , 이런 증상들이 6 개월 이상 지속될 때 ' 정신분열증 ' 이라고 진단한다 .정신분열의을 보일 가능성이 존재할 때 , 실제적인 생활이 어려울 때 등에 고려한다 . 가족을 포함한 환자를 돌보는 사람들에 대한 교육이 매우 중요하다 .유전적 접근 세계 행동 의학회 회장인 레드퍼드 윌리엄스 미국 듀크대 의대 정신과 교수는 세로토닌의 유전자 MAOA(monoamine oxidase A ) 가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다고 말한다 . 세로토닌이 잘 분비되지 않거나 수용체의 이상이 있을 경우 정신분열을 초래 할 수 있다 .아데노바이러스를 벡터로 이용 , TRAIL 을 발현하는 유전자치료제인 DA-3607 을 종양 부위에 투여 시 안전성 평가를 위해 동아제약이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에 의뢰 , 실시하는 임상시험계획이 승인됐다 .결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정신이 분열됐다’는 표현으로 인해 정신분열을 ‘제 정신이 아닌 미친 상태’ 또는 ‘귀신들린 병’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 그에 따른 시선들은 힘겨운 환자들에게 더욱 고통을 가중시켜주는 결과밖에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 현대인들은 가벼운 정신질환을 거의 가지고 있다고 한다 . 그러니 편협적인 시선이 아닌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 주어야 할 때다 .정신분열에 대한 환경적 유전인자들정신분열이란 ? 사고의 장애나 감정 , 의지 , 충동 따위의 이상으로 인한 인격 분열의 증상으로 , 현실과의 접촉을 상실하고 분열병성 황폐를 가져오는 질환이며 , 청년기에 많으며 내향적인 성격이나 비사교적 , 공격적 성향을 가진 사람에게 일어나기 쉬운데 , 유전적인 요인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기도 하며 , 긴장병 , 파과병 ( 破瓜病 ), 망상 치매 따위의 아형 ( 亞型 ) 으로 나뉘는 병증 .정신분열증의 원인 정신분열의 원인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 그러나 다음과 같은 연구가 계속되고 있다 . 생화학 : 정신분열증을 가진 사람들은 신경화학적으로 불균형을 보인다 . 대뇌의 혈액 순환 : 정신분열증을 가진 사람들의 뇌는 뇌의 다른 영역과의 협응에 어려움이 있음이 나타났다 . 유전적 : 유전적 연구는 계속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정신분열균형 잡힌 영양 섭취는 환자의 건강에 중요하나 특정 비타민의 결핍이 병을 유발하는 것으로는 보여지지 않는다 . 정리 : 정신분열증은 어린 시절 트라우마나 가난 , 학대 , 실패 등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다 . 정신분열증은 뇌 질환의 일종으로 뇌의 변화에 따라 물리적 생화학적 증상을 띤다 .정신분열증의 증상 정신분열증에만 나타나는 특이 증상은 없다 . 따라서 정신상태 검사만으로 정신분열증으로 확진 하면 안되며 다양한 내과적 질환과 타 정신과 질환에 대한 감별이 이루어져야 한다 .정신분열 사례 루이스 웨인 영국출신의 화가 의인화된 고양이 그림으로 인기를 끌다 아내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정신분열증에 시달렸다 .환경적 유전인자들 환경적 유전인자란 ? → 기후 , 화학물질 , 미생물 , 음식물 등 건강에 영향을 주는 외부환경 의 요인 . 유전인자 ( 소질 ) 에 대한 것 .정신분열증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인자들 산모 영양실조 보르나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 태아의 산소 결핍 정신에 작용하는 약의 사용 ( phencyclidine ) 외상성 뇌 손상 출생시의 허피스 감염산모영양실조 양적 , 질적 부족을 포함하여 소화장애 편식으로 인해 제대로 된 영양섭취를 못할 경우 발생빈도가 증가한다 .보르나 바이러스 감염 말의 유행성 수막뇌염의 병원체로 알려진 보르나병 ( 病 ) 바이러스와 신경 · 정신질환의 관련을 검토한 결과 정신분열증과 파킨슨병의 원인으로 밝혀진 바이러스태아산소결핍 탯줄이 눌리거나 태반이 손상되면 발생 . 산소 결핍은 기계적 손상보다 정신적 , 신경적 장애를 유발하는 더 흔한 원인이다 .정신에 작용하는 약의 사용 P hencyclidine : 일명 천사의 가루 마약의 일종으로 화학적으로 합성이 간단하여 대마초 등에 섞어서 흡연 . 저용량을 복용하면 해방감을 주며 공중에 떠 있는 듯한 느낌과 마비증세가 나타난다 . 그러나 과량을 복용하면 흥분과 혼돈 · 도취감 에 빠지며 , 근육경색이나 언어장애 · 판단장애 · 죽음에 대한 공포 및 신체감각의 변화를 가져온다 .외상성 뇌 집이 생기고 , 발열 , 근육통 , 피로감 , 무력감 , 경부 임파선 종대 ( 비대 ) 등의 증상이 동반되기도 한다 . 단순포진 바이러스는 건강한 사람에게서도 뇌염이나 뇌수막염을 일으킬 수 있으며 , 드물지 않게 환자가 발생하고 있다 . 단순포진 뇌염에 걸리면 열과 두통이 발생하고 정신착란 증세를 보이거나 발작을 일으키기도 한다 .정신분열의 진단 정신분열증 초기에는 막연히 몸이 좀 불편하거나 수면에 장애가 있거나 집중력이 좀 떨어지는 것으로 시작되기도 한다 . 그리고 점차 대인관계 , 업무수행 , 말과 행동 등에 있어서 문제가 생기게 된다 . 병이 진행함에 따라 괴상한 행동 , 사고의 장애 , 엉뚱한 말 , 이상한 감각 , 혼자 중얼거림 등을 보이게 되고 , 이런 증상들이 6 개월 이상 지속될 때 ' 정신분열증 ' 이라고 진단한다 .정신분열의 치료 항 정신병 약물을 중심으로 한 약물 치료가 치료의 중심이지만 , 정신 치료를 포함한 정신사회적 치료 접근이 통합될 때 더 나은 치료 성과를 가져온다고 보고되고 있다 . 입원치료는 진단적 목적 , 약물 관련 이슈 , 타인이나 본인에게 위험한 행동을 보일 가능성이 존재할 때 , 실제적인 생활이 어려울 때 등에 고려한다 . 가족을 포함한 환자를 돌보는 사람들에 대한 교육이 매우 중요하다 .유전적 접근 세계 행동 의학회 회장인 레드퍼드 윌리엄스 미국 듀크대 의대 정신과 교수는 세로토닌의 유전자 MAOA(monoamine oxidase A ) 가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다고 말한다 . 세로토닌이 잘 분비되지 않거나 수용체의 이상이 있을 경우 정신분열을 초래 할 수 있다 .아데노바이러스를 벡터로 이용 , TRAIL 을 발현하는 유전자치료제인 DA-3607 을 종양 부위에 투여 시 안전성 평가를 위해 동아제약이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에 의뢰 , 실시하는 임상시험계획이 승인됐다 .결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정신이 분열됐다’는 표현으로 인해 정신분열을 ‘제 정신이 아닌 미친 상태’ 또는 ‘귀신들린 병’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 그에 따how}
면역학 Report백신의 원리 및 작용방식과 최근 연구 동향과목명:학과:학번:성명:담당 교수님:제출일:목차-서론-본론1. 백신-백신이란 무엇인가?-DNA Vaccine-multivalent subunit vaccine2. 백신의 매커니즘3.면역기작의 탐구 및 발달-천연두의 역사-예방 접종 사례-종두법 개발4.면역성 증진을 위한 백신의 평가와 개선방향-백신의 평가-백신의 개선 방향-미래의 백신-결론-참고문헌서론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질병에 걸리고 치유 된다. 치유되는 것은 체내 시스템의 면역계가 반응하여 그에 맞게 대처하는데서 비롯된다. 하지만 얼마 전 유행한 조류독감이나 신종플루같은 질병에 대한 백신의 발견은 많은 사람들을 살린 위대한 발견이었다. 도대체 소량의 액체가 어떤 일을 하길래 사람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는지 작용방식과 매커니즘, 앞으로의 진행방향을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본론1. 백신(vaccine)-백신(vaccine)이란 무엇인가?백신이란 사람(또는 동물)에서 병원체(항원에 해당)에 의해 발생하는 질병을 예방 또는 치료하기 위하여 만든 제품을 말한다.백신의 기본 성분은, 1) 병원체 자체 2) 병원체의 일부 3) 병원체가 가지고 있거나 대사 과정에 배출되는 독소를 적당한 방법으로 처리하여 병원성을 없애거나 아주 미약하게 만든 것이다. 19세기 중반 파스퇴르(Louis Pasteur, 1812∼1895)는 자신이 고안한 예방법에 사용한 약독화된 균을 백신(vaccine)이라 칭하고, 백신을 사용하여 질병을 예방하는 방법을 예방 접종(vaccination)이라 하였다.백신(Vaccine)은 소(Cow)라는 라틴어 'Vacca'에서 유래된 말로써, 병원체의 감염이 있기 전 인체 내에 인위적으로 불활화(不活化, 병원성을 제거함) 혹은 약독화(弱毒化, 병원성을 약하게 만듬)시킨 병원체 등을 주입하여 인체의 면역체계를 활성화시킴으로써 인체가 병원체에 감염되더라도 병원체에 의한 피해를 예방하거나 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DNA Vac작용하는 백신을 뜻한다.2. 백신의 매커니즘간단히 말하자면, 우리 몸에 항원이 침입하면 1차적으로 킬러 T림프구가 작용하고 중간과정으로 보조 T림프구가 B림프구에 항원 정보를 보내주어 형질세포를 거쳐 항체를 생성해준다.항원이 제거 되고나면 그 항원의 정보가 입력된 기억세포에 저장된다. 그렇다면, 백신은 죽은 세균이 침입해서도 같은 일이 일어나느냐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다. 우리 몸에 들어오는 항원들은 대부분 핵산을 가지고 있으므로 세균의 경우 유전 정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유전정보를 나타내는 DNA또는 RNA서열을 B림프구에 입력하여 그 DNA를 분해시킬 수 있는 항체를 만드는 것이다. 처음 설명할 때의 항원은 독성을 가진 병원성 또는 독성이 없는 비병원성 세균인데 백신은 독성이 없는 비병원성 세균이다. 죽은 세균은 DNA는 남아있고 몸체만 죽었기 때문에 번식을 하지 못해 우리몸에 약간의 영향이 있거나 또는 아예 영향을 주지 못한다. 수업시간에 배운 toxoid가 좋은 예가 되겠다. cross-reactivity를 이용한 방법으로써 여러개의 epitopes가 있으므로 독소부분을 손상시켜 그에 알맞은 항체를 생상하여 독소를 중화하는 것으로 백신과는 거리가 있지만 어느정도 겹쳐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3.면역기작의 탐구 및 발달-천연두의 역사천연두는 수천 년 전부터 인류에게 알려진 질병으로 언제부터 기록으로 나타나는 지 정확하게 판단하기는 어려우나, 기원전 500년 이전부터 고대 그리이스의 아테네를 공포에 떨게 했던 전염병의 원인으로 여겨지는 인류의 고대문명 발생기부터 우리와 함께 해온 질병 중의 하나이다. ?천연두는 높은 열과 신체의 각부분에 부스럼과 종기가 생겨날 뿐 아니라 전염성이 강해 한 명의 환자라도 발견되는 날이면 마을 전체가 공포에 떨어야 하는 무서운 전염병이었다. ?의사들조차도 천연두에 걸리면 무조건 죽는 것으로 알았고 다행히 살아나더라도 보기 흉한 곰보가 되는 치명적인 역병이었다.-예방 접종 사례고대 중국의 천연두 예 증진시키는 방법으로서, 자연 감염보다는 쉽게 질병을 일으키는 결정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어 널리 이용 하는데는 한계가 있었고 보다 안전한 예방접종법 개발이 절실하게 요구되었다. ?-종두법 개발1773년 영국의 글로체스터주의 버클리에서 살던 해부학자이며 외과의사인 제너(Edward Jenner, 1749-1823)는 몹쓸 질병 천연두의 예방법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제너는 우유를 짜는 여자들로부터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 얘기는 나름아닌 소의 천연두에 걸린 일이 있는 사람들은 천연두에는 걸리지 않는다는 얘기이다.소도 천연두를 앓는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이것이 사람에 전염되면 약간의 붉은 상처가 생길 뿐 곧 낫게 되고, 그 후 그 사람은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 이었다.우두에 먼저 감염되면 정말 천연두에 면역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을 가지고 그는 우선 우두에 걸린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들 가운데에서 다시 천연두에 걸린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를 여러 사람을 상대로 하여 조사해 보았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쉽게 만날 수가 없었다. 제너는 우두균을 접종을 하면 천연두에 면역이 된다는 사실을 실험으로 입증하려 하였다. 하지만 누가 이 실험에 기꺼이 응할 것인가, 만약 실험이 실패한다면 고통스러운 천연두에 걸릴 것을 각오해야 했다.제너는 오랜 연구를 통해 절대로 안전하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충분한 설명을 하며 실험에 응해 줄 것을 열심히 권유하였다. 그렇지만 쉽사리 실험에 응하기를 자청하고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드디어 "내가 실험대에 서겠습니다."하고 나서는 사람이 나타났다. 그는 62세의 노동자 존 필립이었다. 필립 노인은 9세 때 꼭 한번 우두에 걸린 경험이 있었다.?제너는 천연두 환자한테서 고름을 빼내어 우두에 걸린 적이 있는 필립 노인의 몸에 주사하였다. 얼마 후, 주사한 부분에 발진이 일어났다. 나흘째까지는 약간씩 범위가 넓어지고 어깨가 아프다고 했으나그는 제임스 핍스(James phipps)라는 8세의 소년에게 사라넴이라는 처녀 팔에서 얻은 우두로 접종하고 매일같이 핍스 소년에게 나타나는 증세를 세심히 관찰하였다. ?소년은 접종 부위에 작은 발진이 발견되었고 약간의 열이 나는 등 예상증세를 보였을 뿐 더 이상의 이상증세를 보이지 않았고 정상으로 회복되었다. ?다음에 제너는 천연두 환자로부터 고름을 빼내어 핍스 소년의 피부에 주사하고 관찰하였으나 아무런 증세가 나타나지 않았다. ??며칠후에 다시 고름을 주사해 봤지만 역시 마찬가지로 아무 증세를 보이지 않았다. ?제너는 실험의 결과를 더욱 확실하게 하기 위해 여러 사람을 대상으로 같은 실험을 해보았다. 결과는 모두 같았다. ?제너는 드디어 핍스의 몸에 자신이 기대했던 것 같이 천연두에 대한 면역이 생겼음을 확인하였다.1798년, 제너는 이 실험결과를 토대로 종두법의 성공을 발표하였다. 종두법의 성공은 인류가 무서운 질병에 도전하여 승리를 얻은 최초의 쾌사였다. 도한 그것은 인류가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종두법의 사용은 많은 난관에 부딪혀야만 했다. 당시에는 종두의 놀랄 만한 효과와 그 의의를 이해하는 사람이 극히 드물었던 것이다.사람들은 종두의 효과를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하느님이 만드신 신성한 몸에 소의 전염병을 옮기는 것은 말도 안된다." 라든가 "종두를 하면 소가 된다."하는 터무니 없는 소문도 꼬리를 물고 퍼져갔다.제너를 비롯한 많은 의사와 과학자들은 종두를 하면 천연두를 예방할 수 있다는 사실을 꾸준하고 설득력 있는 태도로 설명하였다. 얼마 후 유럽 전역에 천연두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종두의 효과는 즉각 나타났다. 종두를 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천연두에 걸리지 않았던 것이다.이에 영국에서는 1803년 왕립 제너협회가 발족되어 종두법의 보급을 본격적으로 실시하였다. 몇 년 후에는 유럽 여러 나라에서도 종두를 적극적으로 실시하였다.어린이들에게 특히 많이 전염되었던 천연두, 만약 제너에 의해서 종두법이 발명되지 않았더명을 재난으로부터 구제하는 역할을 담당해왔다. 바이러스성 감염질병은 현재까지 치료제의 개발이 거의 없어 예방백신이 이러한 치명적인 질병의 근절을 위한 유일한 대안이다. 따라서 전염속도가 빠른 바이러스성 질환에 의한 국가적 재난을 일으킬 수도 있는 감염 질환의 확산 저지를 위해 적절한 백신의 사용은 필수적이라고 볼 수 있다.초기의 바이러스성 질환에 의한 사망·사고율이 감소하고 있으므로 현재는 백신의 효능을 증대시켜 면역횟수를 줄이는 등의 질적인 향상과 있을 수 있는 부작용(adverse effect 및 side effect) 등을 개선하기 위하여 많은 관련 연구자들의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질병을 일으키는 여러 바이러스는 개별적으로 숙주 의존적인 유전적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다 대체적으로 유전자의 변이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어 지속적인 바이러스백신의 개발과 보다 부작용이 없는 백신을 개발하기 위해 세계가 노력하고 있다.그러나 이와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재 사용중인 백신에 대한 부작용 등의 문제점들이 제기되고 있다. 사람들은 ‘왜 이러한 부작용들이 있는 바이러스백신들을 사용해왔느냐’라는 질문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백신들을 사용하면서 부작용이 나타난 바이러스백신들은 개발 초기에는 그 당시 최고의 기술력으로 개발되었으며, 무엇보다도 절박한 바이러스성 질환의 확산방지 목적이 우선된 것이다. 또한 그 당시의 의학수준으로는 부작용의 원인규명을 못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의학과 진단능력의 발달을 바탕으로 한 수년간의 역학조사를 통해 부작용의 원인이 밝혀지게 된다. 백신은 외래물질을 강제적으로 체내에 주입하는 것이기 때문에 물질간 다소의 차이는 있겠으나 부작용이 완전히 제거된 백신을 만든다는 것은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최근 세계보건기구(WHO)가 제시한 자료를 보면 부작용의 가능성은 다만 확률적인 통계자료에 불과한 것이다. 백신 사용에 의한 부작용의 위험은 백신 자체일 수도 있지만 백신 접종을 받은 개체간, 인종간, 지역간 차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