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 ]))))))))1) 정보화 시대가 만들어 가는 세계화21세기는 급속한 정보화와 더불어 모든 것이 세계화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세계화가 가장 빨리 이루어진 영역은 학문이며, 그 뒤를 이어 경제, 기업 부분도 상당히 세계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정치, 문화, 종교까지도 급속도로 세계화가 될 것입니다.이런 세계화는 3가지 요인이 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첫째는 정보화 기술의 발달입니다. 인터넷과 컴퓨터 기술의 발달로 엄청난 분량의 정보를 개인이 소유할 수 있게 되었으며, 사회는 유용한 정보와 지식을 많이 가진 자가 더 큰 힘을 가질 수 있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둘째는 인터넷 발달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매스컴의 발달입니다. 통신위성, 해저 광케이블 등의 발달과 디지털 통신의 발달로 인터넷 전화, 라디오, 방송 등이 우후죽순 생기고 있습니다.셋째는 인터넷과 디지털 통신의 발달과 더불어 운송수단의 발달입니다. 증기기관에서 시작한 근대 운송수단은 KTX, 초음속 여객기 등으로 발전되어 정보화와 세계화를 가속시키고 있습니다.2) 구조적으로 도전 받는 기독교급속한 정보화는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기존의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의 구조에 더하여 수많은 크고 작은 새로운 구조들을 만들어 내고 있는데 그 중에서는 인간의 타락한 본성과 결탁한 악한 구조들이 많습니다. 정보화 사회가 도래하기 전에도 악한 구조는 있었지만 앞서 본 정보화와 세계화로 인해 새로운 구조들이 순식간에 전 세계적인 크기로 확대 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문제는 오늘날 기독교 신앙에 대한 세상의 도전이 구조적이라는 것입니다.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전반에 걸친 세상의 구조가 기독교 신앙에 구조적인 도전을 하고 있습니다. 학문이라는 이름으로 무신론적 신앙이 공공 교육기관에서 가르쳐지고 있으며, 학문적 자유라는 명분으로 고등교육의 현장에서 기독교 신앙이 쫓겨나고 있습니다. 현대는 과학의 시대임을 표방하면서 초자연적인 것들이 설 자리를 없애버리거나 극히 른 삶이라 생각하여 기독교적 학문을 받아들이는데 어색해 하지 않았습니다.그러나 초월적 세계를 거부하며, 인간의 관찰과 반성으로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는 확신이 강해지면서 근대가 시작되었습니다. 근대는 이성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과학을 문화의 토대로 삼았다는 점에서 ‘과학’과 ‘이성’의 시대라 말 할 수 있습니다. 근대는 인간의 자율적 사고와 행동을 믿었고, 철학적 인식론을 통해 삶의 기초를 찾을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하지만 초월적 존재를 배척하면서부터 이미 근대인의 정신적 공황의 씨앗은 심겨졌고, 근대주의에 위기가 찾아오자 이에 대한 회의로부터 모든 것을 상대화시키는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이어지게 됩니다.포스트모더니즘은 탈중심, 탈이성적 사고를 특징으로 합니다. 1960년대 미국,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이 운동은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철학, 예술, 문학, 건축, 디자인, 음악, 문화, 역사, 마케팅 등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포스트모더니즘은 기독교에 큰 위협을 주고 있습니다.포스트모더니즘의 가장 큰 문제는 우주의 진리성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진리의 중요한 특징은 시대와 장소, 환경에 무관하게 진리여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은 기독교의 진리가 그리스도인이 모였을 때는 진리인데 불신자들이 있는 곳에서는 더 이상 진리가 아니라면 그것은 더 이상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진리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교회에서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분인데, 학교에서는 더 이상 창조주가 아니라고 한다면 그 하나님은 더 이상 기독교에서도 창조주가 될 수 없다는 논리입니다.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이면 그리스도인들은 자연스럽게 이원론적 삶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기독교의 진리가 우주적 진리가 아니라 어떤 종교적 영역 내에서만 진리라고 하면 그리스도인들은 ‘종교적 활동 영역과 이와 무관한 학문적 활동 영역’으로 삶을 구분하게 될 것입니다. 즉 기독교 신앙과 무관한 삶의 영역들이 얼마든지 가능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이원론을 받아들인 그리스도인들주관적 선호를 뒷받침하는 그 무엇이라고 주장하는 사상입니다. 이 사상은 참과 거짓, 옳은것과 그른 것, 좋음과 나쁨과 같은 개념은 개인의 기호나 합의된 공동체의 가치관을 표현하기에는 유용하나 이런 개념을 보편타당한 기준을 토대로 한다고 주장해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이러한 상대주의의 씨앗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대신, 하나님의 권위를 가졌다고 생각되는 다른 기준의 다스림을 받으려는 인간의 죄악된 욕망입니다. 이는 자연스럽게 도덕적 타락으로 귀결됩니다. 도덕적 타락은 윤리적 기준을 상실한 채 개인주의적, 상대주의적 확신을 가진 세대가 직면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결과입니다.5) 주관주의와 실용주의실용주의와 주관주의는 우리 문화와 교회에서 많은 사람들을 사로잡았습니다. 주관주의는 생각이 주관적 욕구를 정당화하는데 유용한 수단이라고 말합니다. 실용주의는 생각이 일을 진척하는 데 유용한 수단이라고 말합니다. 이 두 시각은 과학과 비즈니스와 산업에서 놀라운 성취를 이루어 냈습니다.그러나 실용주의와 주관주의는 진리의 실재를 모호하게 만들었습니다. 둘 다 지성을 활용하지만 지성을 우리의 욕구와 일을 섬기는 종으로 삼을 뿐입니다. 둘 다 내가 어느 욕구를 쫓아야 하는지, 어느 일이 가치 있는지 대답해 주지 못합니다.이 시대는 진리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위와 같은 질문들에 대해 고민하지 않습니다. 이는 좋은 폭탄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좋은 폭탄을 만드는 일이 선한지 자신에게 묻지 않고, 이런 폭탄을 만들어 내는데만 지나칠 만큼 몰두한 ‘원자 폭탄의 아버지’ 오펜하이머(Robert Oppenheimer)가 인류에 미친 영향에서 이 시대의 비극을 알 수 있습니다.6) 반지성주의, 감각주의 그리고 미디어앞의 주관주의와 실용주의가 ‘사고’를 사용했더라면, 포스트모더니즘의 ‘감각주의’는 도무지 생각하지 않으려는 현대인의 모습을 만들어 냈습니다.포스트모더니즘은 ‘네 생각, 네 마음이 이끌리는 것이 진리다, 네 마음대로 사는 것이 진리다!’ 라고 외치고 있으며, 반기독교적인 이원론은 ‘실제와 현상’, ‘이데아와 감각적인 대상’, ‘이성과 지각’, ‘영혼과 육신’에서 전자가 후자 보다 더 우월하다는 플라톤의 사상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의 사상은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철학자요 신학자였던 필로를 통하여 클레멘트, 오리겐, 어거스틴등에게 큰 영향을 주었고, 초대교회와 교부 등 초기 기독교 신학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이 사상은 교회 안에서 뿌리 뽑히지 못하고 시대에 따라 모습을 바꾸며 지금까지도 남아있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교회에서는 은연중에 거룩한 영역과 세속적인 영역 사이에 뚜렷한 구분이 있다고 가르치며, 세속적인 영역은 교회를 제외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이 세상의 모든 것이며, 거룩한 영역은 교회와 관련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렇기에 정치인이나 금융업에 종사하는 것보다 선교사나 목회자가 되는 것이,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보다 교회에서 봉사하는 것이 더 가치있는 일이라고 가르칩니다. 즉, ‘거룩’은 예배와 개인도덕의 영역에 한정된 종교생활을 말하고, ‘세속’은 그 외에 행하는 다른 모든 것이라고 보는 이원론이 현대 교회 속에 만연해 있습니다.이러한 ‘성/속 이원론’은 교회의 일이 더 가치있기에, ‘일상적인 일은 하찮다‘는 생각과 함께 자신의 일에 대해서 그리스도인답게 행동하는(윤리,도덕적 측면)것엔 신경을 쓰지만, 그 일 자체에 대한 성격적 틀을 정립하는데 소홀히 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기독교는 하나의 통합된 진리 체계로서 사회적 쟁점, 정치학, 인류학 등 모든 분야에 적용되는 종합적이고 완전한 총체적인 진리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직업을 포함한 삶의 모든 영역에 적용되며 통합되어야 합니다. 이원론은 기독교 교리를 엄격하게 개인의 신념의 영역으로 제한하게 만듭니다. 그리고는 나머지 모든 영역에 있어 비그리스도인처럼 살아가게 만듭니다. ‘종교가 삶의 10분의 9를 차지하는 것과 아무 상관이 없다면, 누가 그런 종교에 관심을 갖겠는가?’라고 말한 도로시 세이어즈(Dorothy Sayers)의 말은 이원론에 물든 기독교의 놓인 기독교를 해방하기 위해서는 현대의 세속적 이원론을 알아야만 합니다.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에 서양에서는 모든 분야를 전문화하려는 경향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기독교적 가치를 벗어던지고 ‘과학적’이고 ‘가치 중립적’이라 선전되는 세속적인 접근을 개발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기독교 세계관과 도덕’을 증진하던 대학들이 종합대학으로 변신하면서 종교와 무관한 비종교적이고 ‘객관적인’ 지식 추구와 전달을 외치며 종교적 관심사를 주변으로 몰아내었습니다. 이런 ‘세속 혁명’은 문화 전반에 영향을 주어 고등교육 뿐 아니라 공립학교·정치·심리학·미디어 등 모든 분야로 퍼져 나갔습니다. 각각의 영역에서 기독교는 ‘분파적’ 성격을 지닌 ‘사적인 것’으로 치부된 반면, 유물론과 자연주의 같은 세속 철학은 ‘객관적’, ‘중립적’이어서 유일하게 공적 영역에 적합한 관점으로 제시되었습니다.진리에 도달하는 유일한 길이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이라는 주장은 결코 중립적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긍정하는 것이 종교적인 주장인 것처럼 그 반대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세속 혁명으로 말미암아 신자들마저도 구별된 기독교적 관점으로 말하는 것이 편향된 입장이라고 믿기게 이르렀습니다. 즉, 참으로 객관적이려면 자기 분야에서 믿음은 괄호 안에 묶어 두고 불신자들처럼 사고해야 한다고 여기게 된 것입니다. 모든 분야를 통틀어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신앙은 한쪽 주머니에, 자신의 일은 다른 한쪽 주머니에 간직하도록 교육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이런 사조를 수용하였고, 자기 분야에서 세속화된 개념들이 정말로 중립적 지식을 구성하기 때문에 성경적 비판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믿음의 영역은 개인적이고 사적인 삶을 위한 것이기에 공적 영역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만연해졌습니다.즉 세속적인 이원론에서는 공적으로 검증 가능한 ‘사실’의 영역과, 개인적이며 사회적으로 구성된 ‘가치’의 영역으로 나눈 뒤 ‘사실’의 영역에는 자연주의와 객관적 지식을 놓고, ‘가치다.
국내외 복음주의권 기독 전문 단체 정리[ 기관 및 전문 단체 ]? 기독교 윤리 실천 운동‘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은 민주화에 대한 열기가 절정을 이루던 1987년 12월, 손봉호, 김인수, 이만열, 장기려, 원호택, 이장규, 강영안 등이 함께 성경공부를 하던 기독교인들이 뜻을 모아 시작한 기독시민운동이다. 기윤실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정통적 기독교신앙을 기본이념으로 복음에 합당한 윤리적 삶을 살아가는 정직한 그리스도인과 신뢰받는 교회가 되도록 섬기며, 정의롭고 평화로운 사회를 만드는 것을 사명으로 하고있다. 기윤실은 지난 20여년 간 좋은교사운동, 기독법률가회, 공명선거운동, 국정감사모니터시민연대, 공의정치실천연대, 교회개혁실천연대, 놀이미디어교육센터, 크리스천라이프센터, 대한민국교육봉사단 등 우리 시대에 필요한 다양한 운동을 만들어냈다.사업명사업 취지정직윤리운동본부1. 목회자윤리운동작년 ‘목회자와 돈’ 심포지엄에 이어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그 연구를 바탕으로 목회자윤리강령 제정 및 교과목 개설을 도모합니다.2. 자발적불편운동낭비와 무절제한 삶으로 인해 발생되는 많은 사회병폐들에 대해 그리스도인으로 책무를 상기시키고, 다양한 삶의 영역에서 자발적인 불편생활을 실천합니다.교회신뢰운동본부3. 깨끗한총회운동교계의 금권선거 풍토를 고치기 위해서 무엇보다 교단총회가 깨끗해야 합니다. 교단 선거법 제도개선 운동 및 성도들을 대상으로 총회의 중요성과 개선점을 알리는 운동을 전개합니다.4. 교회의 사회적책임 컨퍼런스공적 조직으로서 교회는 사회적 역할에 대한 책무성과 내적운영에 대한 투명성이 요구됩니다. 컨퍼런스 논의를 통해 을 개발합니다.사회정치윤리운동본부5. 2012년 기독유권자운동그리스도인들의 건전한 정치참여를 독려하고, 이번 선거에서 주목해야 할 중요한 정책들에 대한 가이드라인 제시를 위해 단행본 출간 및 공명선거, 투표참여운동을 전개합니다.6. 기윤실 청년 TNAtalk &action기윤실 운동이 정형화된 운동을 넘어 담론을 만들어 내고, 청년-회원들과 소통사, 문화와 예술, 과학과 기술, 생태와 생명을 다루는 다양한 학문과 겸손히, 적극적으로 소통해야 한다는 것과, 신학교육과 연구는 교회와 사회를 변화시키는 실천으로 완성된다는 설립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독교학 입문과정, 기독교학 심화과정, 느헤미야 신학특강이 있습니다. 모든 과정에서 ‘구약, 신약, 조직신학, 역사신학, 윤리’를 다룹니다.?→ 학사 학위 이상이 훈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졸업생들이 등록하여 연구하기를 권장합니다.?→ 신학캠프 DVD, 팟캐스트 등으로 지난 강의를 수강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좋은교사 운동좋은교사 운동은 교육을 진리 위에 세워 다음 세대를 책임지고 국민에게 신뢰를 얻는 교직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3,000의 기독교사들과 15개 기독교사모임이 함께 전개하는 대표적 교육실천운동입니다.이 연합운동은 다음과 같은 방향성을 지니고 있습니다.1. 복음으로 다음 세대를 책임지고자 합니다.좋은교사운동은 전국 11,000개 학교에서 학급제자양육과 기독학생반, 기독학생반 등을 통해 학원 복음화 사역을 확산시키는 일을 지원합니다. 이를 통하여 입시 경쟁과 세속적 문화 속에서 고통받고 있는 우리 아이들의 삶을 변화시켜 복음이 교육의 능력임을 드러내며,나아가 한국 사회와 교회의 미래를 대비하고자 합니다.2. 교직 사회를 새롭게 하고자 합니다.좋은교사운동은 교직사회가 교육적인 열정을 회복하고 국민에게 신뢰를 얻도록 하기 위해 가정방문과 자발적 수업평가등을 전개하며, 교직사회 쇄신을 위해 전교조, 교총 등 교원단체들과 협력하고 있습니다- 가정 방문과 일대일 결연 캠페인가정방문은 담임교사가 학급 아이들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하여 학기초에 아이들의 가정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이 캠페인으로 교육과 선교를 위한 접촉점을 찾고, 학급의 어려운 아이를 찾아 교사와 학생 간 일대일 결연을 맺습니다. 이 캠페인은 왕따, 결손 가정,가출 청소년의 문제를 줄여보고자 2001년부터 시작한 운동입니다.- 자발적 수업 평가 캠페인자발적 수업평가는 아이들로부터 일년에 1~4차례 을 위한 모색을 하던 중 기독교사를 위한 “좋은교사 원격연수원” 설립에 합의하고 준비해 왔습니다. 그 결과 지난 2010년 2월 2일 연수원 개원식을 했고, 2월 9일부터 강의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좋은교사 원격연수원” 설립과 관련하여 특이한 점은 기독교 세계관에 입각한 여수 강좌들이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의 엄격한 심사 기준을 통과하여 직무연수 학점을 인정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거쳐 “좋은교사 원격연수원”의 첫 직무연수 강좌로 개설되는 ‘교사와 교육’ 강좌는 세계적인 기독교 교육학자인 리차드 애들린 박사와 홍세기 선생님이 함께 강의한 강의로 기독교 세계관의 입장에서 교육을 바라보는 안목을 열어주는 탁월한 강의입니다. 이 ‘교사와 교육’ 강좌의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로 향후 “좋은교사 원격연수원”이 기획하고 있는 기독교 세계관에 입각한 강좌들의 심사 통과의 기준점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또한 “좋은교사 원격연수원”은 온라인 원격 연수를 실시함에 따라 시공을 초월해 전국 어디서나 강의를 수강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해외에 근무하는 MK 학교 교사나 홈스쿨을 하는 부모들도 혜택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비교사 아카데미하나님은 준비된 교사를 쓰십니다.경기 불황과 함께 교사는 최고의 인기 직종이 되었습니다. 교대와 사대에는 매우 우수한 인재들이 몰리고 있고, 교사 임용 고시는 엄청난 경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이렇게 교사가 많은 사람이 교사가 되고자 머리를 싸매고 공부하고 있는 이 현실 가운데서, 당신은 왜 굳이 교사가 되려고 하십니까? “교사가 되고자 하는 이 많은 사람 가운데, 내가 굳이 너를 학교의 교사로 세워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라고 물으시는 하나님의 질문 앞에 당신은 어떤 대답을 준비하고 있습니까?여기, 이러한 하나님의 질문에 기쁨과 소망으로 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훈련학교가 있습니다. 그 질문 앞에 먼저 섰던 선배 기독교사들이 예비교사 여러분들의 질문에 응답해 주고자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곳에서 여러분들은 대학 강의실양한 기독교 세계관 교육을 실시.- 기독교 세계관 커리큘럼과 교재 개발.-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문화, 역사, 과학 등 제 학문 분야에 대한 기독교 세계관 교재 개발.- 신문, 방송, TV, 인터넷 등 미디어 매체를 통해서 기독교적 대안을 제시.- 교양지 의 발행을 통해서 교계의 지식인 계층에 대안을 제시.- 회원 교회들과 협력하여 기독교적 대안 확산 추진.- 본 운동을 효과적으로 전개하기 위해서 전국적 조직을 운영.- 본 회의 회원들을 위한 소식지를 발행.도서출판 CUP"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하리라"(합 2:14)바른 성경적 가치관 위에 실천적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세우기 위해 지성과 감성과 영성이 전인적으로 조화된 균형 잡힌 도서를 출판하여 그리스도인다운 삶과 생각과 학문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문화를 재창조하고 있습니다.- 성경적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 영성, 소명의식, 리더십 등 삶의 제자도를 담은 책을 출간.- 기독교 세계관 제자 양성을 위한 교재로 사용할 만한 책들을 출간함으로 기독교 세계관적 문화 및 사고를 계발.- 전인적인 삶의 틀을 제공하며, 성경적 비전을 확장시키는 나눔터의 출판을 지향.- 치우치기 쉬운 신앙과 생각과 삶에 성경적 기준을 제시하는 책들을 출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과 문화를 꿈꾸는 저자들을 발굴.- 대안학교를 위한 지침서가 될 만한 책들을 발굴하고 기획, 출간.VIEW(대학원과정)1999 년 7월,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VIEW)은 캐나다 최고의 기독교대학인 Trinity Western 대학의 신학대학원인 ACTS와 공동으로 기독교세계관 문학석사과정(MACS-Worldview Studies)을 개설했다. 양승훈 박사(Dr. Paul Yang)가 책임자로 있는 본 과정은 특별히 한국인 그리스도인들 지도자들을 양성하기 위한 프로그램이다.현재 캐나다 벤쿠버에 기독교세계관 문학석사(MACS) 과정 / 디플로마(Diploma) 과정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VIEW내용1. 교회의 구조와 직분 이해하기2. 예배와 성례, 각종모임 살펴보기3. 헌금과 재정운영 투명하게 하기4. 교회정치와 행정 민주적으로 하기5. 교회분쟁 해결의 현실적 대안 찾기6. 약자를 존중하는 공동체 세우기7. 이웃이 필요로 하는 지역교회 되기: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지역교회8. 교육과 훈련으로 일군 사회로 보내기교회개혁 제자훈련2 : 건강한 교회 세우기- 4월 14일(목) 개강, 매주 목요일 8주 과정- 장소 : 언덕교회- 강사 : 박득훈 목사(언덕교회, 교회개혁실천연대 공동대표)- 교육 내용1. 개혁자의 영성과 자질2. 교회개혁방법론 : 비판적 운동과 대안적 운동3. 성경에 나타난 건강한 교회상4. 기복신앙의 극복과 순수한 신앙의 회복5. 정통실천의 회복과 사회참여6. 개교회주의의 극복과 공동체성의 회복7. 권위주의의 극복과 교회의 민주적 운영8. 건강한 교회재정운영의 원칙→ 교회 개혁 아카데미(인터넷 강의 영상 있음), 교회 개혁 제자훈련에 참여하기를 권장합니다.? 새벽이슬새벽이슬은 1997년 연세대 기독총학이 동기가 되어 시작된 모임입니다. 당시만 해도 학생회는 한총련으로 대표되는 운동권의 전유물이었으며 기독학생들은 학내와 사회문제에는 특별한 관심이 없이 복음전도와 제자화 사역에만 매달리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이런 상황에서 1996년에 있었던 한총련의 연세대 사태는 학생 운동권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의 확산과 함께 대안 세력에 강한 필요성을 갖게 하였습니다. 이후 1997년 연세대에서 기독학생들이 총학생회 사역을 시작하면서 많은 대학의 기독학생들이 학생정치운동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자연스럽게 모이게 되었습니다.이렇게 모인 약 10여개 대학의 학생들이 동시에 새벽이슬이라는 이름으로 총학생회를 준비하고 출마하면서 새벽이슬 운동이 처음 태동하게 되었습니다. 새벽이슬이 갖는 역사적 의미는 90년대 초반 무너진 복음주의권 기독대학생들의 사회참여운동을 복원하는 것이었으며, 영미식 복음주의 학생운동을 기반으로 탄생한 기존의 대학선교단체들과는 달리 학생들의임 2
[ 교육 ]))))))))))))))1) 총체적 문제, 경쟁 이데올로기좁은 땅덩이에 많은 인구가 복닥거리며 살아가는 우리나라에서 경쟁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인 양 여겨져 왔습니다. ‘교육=입시교육=경쟁교육’의 사회적 인식은 그 어떤 개혁으로도 벗겨내지 못할 ‘형틀’처럼 인식돼 오고 있습니다.사실 우리교육의 경쟁이데올로기는 여러 가닥의 올가미에 얽혀 있습니다. ‘좁은 문 입시’는 석차 없는 시험을 떠올릴 수도 없게 하고, 점수위주 학력관은 주입식교육을 벗어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더욱이, 1980년대부터 영·미에서 몰아닥친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우리교육에도 시장화 바람을 몰고 와, 경제논리들이 교육 현장에까지 차고 넘치는 실정입니다.학교교육에서부터 뒤처지는 아이를 대량으로 양산해내며, 상급학교에 진학하는 단계에서부터 인생의 서열화가 시작되는 우리 교육의 시스템은 그대로 사회 갈등의 원인이 됩니다. 믿음이 아니라 불신, 칭찬과 박수가 아니라 원망과 적개심, 평화가 아니라 싸움, 상생과 공존이 아니라 대립과 미움의 마음을 지니며 살아가게 만듭니다. 경쟁교육은 이런 체제를 제도화하는 토대가 됩니다.2) 대학서열의 문제, 입시 출세주의이런 경쟁교육을 있게 한 결정적인 장벽은 바로 대학서열입니다. 대학만 유럽 나라들처럼 평준화된다면, 전국의 학생들을 한 잣대로 석차를 매기는 일은, 인생살이 중엔 더 이상 있지도 않고 있을 필요도 없기 때문입니다.‘지금 살고 있는 이곳에서 물질적 행복을 인생의 최고 가치로 놓는 가치관‘을 현세적 물질주의라 합니다. 한국인의 의식 밑바탕에는 현세적 물질주의가 깔려 있습니다. 이는 오늘날 한국의 입시 경쟁의 근저를 이루고 있으며, 대학서열과 맞물려 입시 출세주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이러한 형태의 사상에서 입시는 출세의 가장 중요한 통로로써 사용됩니다. 이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입시가 출세의 중요한 통로가 되는 사회적 구조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3) 교육의 왜곡, 입시 지상주의수단방법 중심주의란 어떤 목적을 달성하는 데 있어서 수단과 방법상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을 제때 처리하지 못해 '무능 또는 나태한 교사' 라는 딱지가 붙을까 봐 두려워합니다.교사가 말하는 교사의 현실을 알아보기 위해 실시한 최근 조사에서, 교사들이 학교 수업준비를 '잘하고 있다'는 응답은 35.2%에 불과했습니다. 또한 하루 평균 학교에 머무르는 시간은 8~10시간이상으로 근무 시간은 결코 짧지 않았지만 수업 준비에 하루 1시간도 채 쓰지 못하는 교사가 10명 중 8명('30분 이내'가 28.6%, '30분~1시간' 55.9%)이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절반이 넘는(55%) 교사들은 수업시간 외 주된 업무로 공문처리를 했습니다. 그만큼 처리하는 공문은 많았습니다. 올 1학기에 수령한 공문 수는 30건 미만인 경우가 23%로 가장 많았지만 101~200건을 수령한 교사도 19.5%였고, 심지어 200건이 넘는 공문을 받은 교사도 16.5%나 되었습니다.교사들은 교원업무 정상화를 위해 행정업무를 전담하는 부서의 신설(35.4%), 학급당 학생수의 감축(17.8%)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습니다. 또한 교사들은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이유로 공문 처리 등 교원 잡무, 창의적인 교육을 할 수 없는 학교 시스템 등을 지적하였습니다.즉, 정확히 말해 학교가 교사에게 기대하는 것은 ‘교육과 관련된 전문성보다는 학교의 산적한 행정업무를 잘 처리해줄 동사무소 공무원의 역할‘ 이라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지금 이 시대 교육환경의 왜곡은 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5) 결코 가치중립적이지 않은 교육그리스도인이건 비그리스도인이건 교사는 자신의 세계관과 도덕 그리고 교실에서 수업하는 일을 뒷받침 해주는 어떤 기본적인 신념들을 갖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종교를 넓은 의미에서 우리의 실제 삶을 인도하는 강한 신념체계라고 정의한다면, 가르치는 일은 종교적인 것에 바탕을 둔 행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차피 인간은 가치나 신념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므로 가치중립을 내세우는 공교육체제 내에서도 특정한 종교성이 나타나기 마련입니천으로부터 전달되는 잘 포장된 정보를 단순히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과 상호 작용하면서 우리의 경험을 ‘의미’있게 만든다고 주장하는 사상입니다. 달리 말하면, 세계에 대해서 우리가 믿고 아는 것은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구성된다는 말입니다. 구성주의는 유용한 학습 이론을 제안했지만, 객관적 진리, 구조화된 실재에 대해 인정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실제로 지식을 구성하며,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의 지식을 구축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구성력이 반응하는 규범적 창조 세계 바깥에서 지식을 구성하는 것은 아닙니다. 구성주의의 문제는 진리와 허위, 옳고 그름의 정도를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구성주의는 관용할 수 없을 정도의 관용을 증진 시킬 수 있다는 위험을 가지고 있습니다.접미어 ‘주의’는 흔히 어근의 과장이나 왜곡을 암시합니다. 합리주의, 주지주의, 인본주의를 생각해 봅시다. 각 사상들은 어느정도 교육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 것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이들 입장은 합리성, 지성, 그리고 인간의 위치에 지나친 중요성을 부여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우상’의 모습을 가지게 되었습니다.6) 대안교육과 홈스쿨링우리는 ‘교육’이라는 말을 들을 때 교육은 ‘학교’에서 이루어 진다는 생각을 강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현행 공교육을 위한 학교는 교육의 대중화와 대량교육을 위해 국가 기관이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교육사회적 시스템입니다. 100년전 산업의 발달과 더불어 국가 주도의 공교육이 등장하였고, 지금과 같은 체계화된 공교육의 역사는 50여 년의 역사에 불과합니다. 즉, 공교육은 소위 국민의 의식과 지적인 소양을 위해 국가가 주관하는 의무교육 시스템을 말합니다.그러나 최근에 이르러 이러한 환상이 서서히 깨어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교육과학과 교육공학의 획기적인 발전과 막대한 재정의 투입으로 더욱 이상적인 민주주의 학교교육이 실현될 것이라는 기대가 오히려 곳곳에서 실망스런 결과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이제 사람들은 학교교육이 교육것처럼 교육의 모든 과정에서도 세속적인 것과 종교적인 것을 분리할 수 없습니다.두 번째로 지적될 수 있는 측면은 교육의 가치 중립성입니다. 그러나 교육이 가치 중립적이라는 것은 하나의 가정이며 신화일 뿐입니다. 애들린(Richard Edlin)은 미국 공교육의 주창자였던 호레이스 만(Horace Mann)과 반기독교적 신념을 가지고 미국 교육을 주도했던 존 듀이(John Dewey), 그리고 인지 심리학자 마르자노(Robert Marzano)등 세속교육의 지도자들조차도 교육은 종교적으로 중립적이지 않으며, 교육은 교육과정을 결정하는 사람이 견지하고 있는 삶에 대한 신념의 표현임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아이즈너(Elliot Eisner)는 ‘학교에 다니는 것 자체가 세계관을 획득하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모든 활동이 생각 즉, 신념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는 측면에서 보면 교육의 활동도 모두 종교적인 신념에 바탕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명확히 볼 수 있는 것입니다.결론적으로 우리의 교육환경은 교육의 비종교성이라는 이름과 교육의 가치 중립성이란 이름으로 신앙의 자녀들이 이중적인 가치구조와 세속적인 비 신앙의 세계관이 자연스럽게 잘 형성되도록 돕는 형국에 처해있습니다.우리나라의 상황을 잠깐 살펴봅시다. 1960년대 후반에 시작된 산업화 과정에서 우리나라 교육은 길을 잃고 헤매기 시작했습니다. 산업화는 필연적으로 치열한 경쟁을 불러오게 되었고, 이 땅의 크리스천들도 경쟁의 대열에서 낙오되지 않기 위하여 ‘성경적 교육의 가치’를 조금씩 포기하였습니다. 그리고 많은 부모들이 ‘입신양명’의 세속적 가치를 붙잡고 말았습니다. 냉철하게 반성해 보면, 오늘날 수 많은 교육의 문제는 한국의 크리스천 부모들이 성경적 교육의 가치를 포기하고 입신양명의 세속적 가치를 붙잡은 잘못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지금까지 누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며, 어느 기관이 세속교육의 방향성에 대해 대항하였습니까? 이에 대한 책임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돌려야 합니다. 현 시대에 닥친다. 소양강댐에서는 날마다 일정 분량의 물을 발전 방류를 위해 흘려보내는데, 그 물이 처음 지나가는 곳이 콧구멍 다리입니다. 수심 170m 물이 얼마나 차가운지 모르는 사람들이 거기서 시합을 합니다. 당연히 10초도 못 버티고 점심을 삽니다.거기 사는 사람은 댐을 겪습니다시합하는 사람과 달리, 거기에 농토를 갖고 농사를 지으며 오래도록 산 사람은 이 사람들을 보며 쓸쓸한 표정을 짓습니다. 댐이 생기면서 전기와 용수 공급 등 좋은 일이 많아졌지만 나쁜 점도 많기 때문입니다.그걸 짓다가 죽은 군인들은 운이 없었다고 쳐도, 너무 차가운 물이 흘러내려 기온차에 의해 안개가 많이 끼고 낮은 수온에 적응하는 고기만 있습니다. 아침 저녁 끼는 안개는 질병을 일으키고 농작물 생육에도 지장을 줍니다.처음 간 사람은 경치를 즐기고 몇 번 간 사람은 콧구멍 다리에서 시합을 즐기지만 댐을 겪은 사람은 여러 가지 걱정을 합니다.경치 보듯 가르친다면교육과정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요? 교육과정은 댐과 같습니다. 교육과정에 대한 정의가 다양하지만 제가 말하는 교육과정은 우리가 가르쳐야 하는 내용의 목적과 범위를 정해 주는 국가 수준 교육과정을 뜻합니다.그 댐에서 물이 흘러나옵니다. 아무 것도 모르고, 알 필요도 없는 사람들은 경치만 바라봅니다. 댐 깊은 곳에 있는 차가운 물이 어떤 일을 일으키는지 생각하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죠! 안개가 차가운 물의 존재를 알리지만 이 사람들 눈에는 안개마저 멋진 경치로 보입니다. 국가에서 결정하여 가르치도록 한 내용이 아이들에게 어떤 안개를 만들어 내는지 모릅니다. 겉모습만을 가르칩니다. 교과서에 있는 지식을 전달하고 평가를 하라니 하고 ‘방과 후 학교’를 하라니 합니다. ‘나는 그저 평범한 교사니까 아이들만 잘 가르치면 돼! 아이들만 바라보는 교사가 최고지!’맞습니다. 교회는 다니지만 좋은 대학 많이 진학시켰기 때문에 스스로 좋은 교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초등학교에서 다른 반보다 평균 성적이 좋다는 것으로 기쁨을 삼지는다.
국내 선교단체 문제점 분석# 신학적 기반이 없어서 생기는 문제들1) ‘하나님’이라는 포장지면 만사OK. - 텍스트에 기반하지 않은 말씀 해석과 적용많은 사람들이 공동체 가운데서 모여서 말씀을 나눕니다. 아침모임, 저녁모임, 양육, 팀모임, 리더모임, 부사역팀 등 지체들이 모여서 최근 묵상한 것들을 나누거나, 짧은 메시지를 나누게 될 때가 많습니다. 많은 지체들이 참으로 말씀을 깊이있게 묵상하여 잘 전할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전혀 텍스트에 기반하지 않은 말씀의 해석과 적용을 말하며, 그것을 듣는 이들도 거기에 대한 문제를 느끼지 못할때가 종종 있습니다.성경 해석 시에 가장 오류를 범하기 쉬운 것은 성경의 문맥을 무시하고 선입견을 가지고 혹은 임의로 해석하는 방법입니다. 이는 ‘나눔’이라고 하는 영역에서 특히 많이 나타나는데, 본문 말씀 본래의 의미는 아주 없어지고 전혀 다른 엉뚱한 말씀으로 둔갑하게 될 때가 많음을 봅니다.종교개혁 이후로부터 지금까지 성경해석 방법은 ‘역사적, 문법적 신학적으로 해석해야한다’는 데에 모든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동의하고 있습니다. 성경구절을 해석할 때, 항상 이 세 가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그러나 초대 교회 시절 영지주의 신학자 오리겐의 알레고리적 해석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영해’라는 해석 방식에 물들어 있는 지체들이 있는걸 종종 보게 됩니다. 그 뿐만 아니라 자신의 상황과 감정이 텍스트 보다 우선하여 말씀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에 관심이 있기보다, 말씀의 문맥과 전혀 상관없이 내 상황과 감정에 말씀을 끼워넣어 해석하는 경우도 많이 보게 됩니다.텍스트에 기반하지 않은 해석은 잘못된 방향과 잘못된 적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또한 이런 훈련이 되어 있지 않으면, 이단의 사상을 접하게 되었을 때 금방 넘어 갈 수 밖에 없습니다. 말씀을 제대로 해석할 수 있는 기본적인 신학적 토대와, 해석의 방법에 대해 분명하게 가르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라는 이름과 적절한 종교적인 내용과 적용이 들어가면 모든 내을 보게 되었습니다.‘은사’는 공동체를 세워가기 위해 하나님께서 각자에 맞게 다르게 주어지는 것인데, 은사를 마치 신비한 능력으로 생각하거나, 성경에 계시되지 않은-은사가 아닌-것을 은사로 오해하거나, 은사를 성경적으로 사용하지 못하는 모습들을 보았습니다.‘예배’에 대한 오해는 찬양의 영역에서 많이 나타납니다. 찬양의 가사에 담긴 비성경적, 신학적 문제를 볼 수 있는 필터가 없기에, 가사에 분명 문제가 있더라도 무비판적으로 노래가 ‘좋으면’ 예배 때 부르게 되는 현상들이 있습니다. 찬양 시간을 구성하고 진행해나가는 것에도 ‘인간 심리학’적 구성이 아니라, ‘성경적’ 구성을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예배’의 영역 중 ‘하나님과의 만남’이라는 주제에 대해서도 많은 오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진실된 만남이 아닌, 종교적인 분위기 속에서 개인이 느끼는 감흥을 ‘하나님과 만났다’는 표현으로 쓸 때가 많습니다. 자신의 감정적인 동요가 일어나야지만 하나님과 만난 것이라는 생각, 자신의 기분과 감정이 다운되어 있으면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다는 생각, 소위 말하는 ‘은혜받았다’는 철저하게 ‘감정적’ 경험에만 초점을 두어 말하고 있는 경우를 보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과의 만남’에서는 ‘감정’이 전부가 아닙니다. ‘말씀이 나의 마음 깊은 곳에 새겨지는 것’, ‘말씀 앞에 순복하게 되는 것’,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에 대한 순종의 모습’ 등 여러 가지 모습과 방법과 함께 전인격적으로 나타남을 알아야 합니다.‘계시’의 영역도 많은 오해들이 있습니다. 정통신학에서는 ‘계시의 종결성’을 말하고 있지만, 아직도 ‘계시’를 하나님이 말씀이 아닌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말씀하신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고, 또 ‘레마’로 받은 계시의 말씀이라고 하지만 본문이 말하고 있는 바와 전혀 다른 말을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또한 분명하게 계시된 말씀을 기반으로 해서 선택과 결정들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것을 말씀해주실 거야’ 라고 생각하는 경향도 많이 있습니다.오늘날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반지의 연장선에서 볼 수 있는 문제입니다. 최근 캠퍼스에는 많은 이단들이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IYF(구원파)’,와 함께 ‘하나님의 교회’가 가장 많이 활동하고 있으며 1학기에는 ‘신천지’가 위장단체를 통해 캠퍼스에 들어오기도 했습니다.2012년 1학기에 가장 많이 놀란 것은, 지체들이 이단 단체에 대해 모르며, 이단 사상을 잘 분별하지 못한다는 점이었습니다. IYF가 2011년부터 본격적으로 학교 가운데서 활동하였지만 많은 지체들이 ‘구원파’ 단체임을 알지 못했다는 것, 2012년 QT모임을 가장하여 학교에 들어온 신천지도 분별하지 못한 사례가 있습니다.그 뿐만 아니라, ‘이단’ 사상을 접했을 때 분별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음을 보았습니다. 실례로, 신천지가 문제가 되고 있을 때 한 모임에서 신천지의 교리에 대해 설명한 적이 있었는데, 그 누구도 그것이 신천지의 교리임을 알지 못하였고, 반박하지 못했다는 참으로 우리가 바른 신학적 기반이 없음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바른 신학적 기반이 잘 서 있으면 굳이 ‘이단 사상’이 무엇이 잘못되어 있는지 알 필요가 없습니다. 듣자 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하지만 앞으로는 사이비적 ‘이단’사상이 문제가 될 것이기 보다, 감성만을 자극하여 참된 진리에 대한 분별을 잃게 하는 ‘왜곡된 영성과 신학’이 더 문제가 될 것이라 봅니다. 몇 년 전부터 이 현상에 대한 걱정을 했었고, 마침내 공동체 가운데도 ‘신사도 운동 사상’, ‘극단적 세대주의 사상’을 전하거나, 영향을 받은 인물들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심지어 그들의 책이나 영상을 권하는 모습도 보았습니다.이단에 대한 분별력, 왜곡된 영성과 신학을 분별하기 위해서는 바른 신학적 기반이 필요합니다. 공동체안에 들어온 왜곡된 영성과 신학에 대한 점검과 빠른 대처가 필요한 시점입니다.4) 하나님 나라는 어디에?선교회는 본질적으로 각 영역에 하나님나라를 확장하기 위해 존재하는 단체입니다. 하지만 많은 지체들이 ‘하나님나라’에 대한 인식이 ‘전혀, 확장’적인 모습이 아니라, ‘끼리끼리’의 모습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뒤이어 나오는 문제들의 대부분은 ‘총체적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인식이 없어서 생기는 현상입니다.# 세계관의 왜곡으로 인한 문제들1) 이원론과 개인의 삶 ? 거룩한 자기기만에서 벗어나자.이원론은 총체적인 하나님나라 인식 결여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지체들이 이원론에 빠지면 주로 가지게 되는 생각은 ‘선교회 일은 매우 중요하고, 선교회 예배는 매우 중요하지만, 학교 공부는 내가 흥미가 없기에 대충 듣겠다.’, ‘공동체가 중요하기 때문에 선교회는 열심히 섬기겠지만, 학교 행사와 학과 일은 가지 않겠다.’, ‘선교회에만 우선순위를 두어 집중하는 것이 좋은 신앙의 모습이다.’, ‘양육은 가치로운 일이지만, 학교 과생활은 쓸모없는 것이야.’, ‘세상 친구들과는 거리를 두고 선교회 지체들과 많은 교제를 해야 한다.’ 등과 같습니다.이는 교회 밖의 세속적인것과 교회 안의 거룩한 것이 나누어져있다는 ‘성/속 이원론’에 빠진 생각입니다. 선교회 일만큼이나 학교공부가 중요하며, 선교회 공동체 만큼이나 과 공동체가 중요합니다.지난 2년동안, 과에서 집행부를 하면서 많은 지체가 이러한 이원론으로 인해 과 공동체를 등한시 하며, 그로인해 ‘세상 사람’들한테 욕을 먹을 때,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야 곳은 ‘선교회’가 아니라 ‘세상’입니다. 도피적, 염세적. 이원론적 신앙은 ‘세속에 속하지 않았다’라는 ‘거룩한 만족함’을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분명한 자기기만이며, 결코 성경은 이러한 태도를 지지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오히려 ‘모든 영역가운데 나아가서 그곳에 하나님이 다스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되도록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런 도피적인 신앙은 이원론과 하나님나라의 총체성을 이해하지 못한데서 나옵니다. 하루 빨리 이러한 모습들이 없어지기를 소원합니다.2) 이원론과 선교회의 방향 ? 우리끼리에서 벗어나자.지체들에게 있는 이원론과 하나님나라 인식의 부재는 선교회의 사역 방향에도 것에도 관심을 기울어야 합니다. 이를 선교회 공동체가 감당할 사명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것은 아직도 ‘하나님 나라’는 ‘개인구원’의 영역에만 머물러 있다고 보는 편협한 사고입니다. ‘개인’은 필연적으로 사람들이 이루어 놓은 ‘문화’가운데서 살게 됩니다. ‘개인구원’과 함께 ‘문화명령’을 수행하지 않는다면 반쪽자리 복음이요, 반쪽자리 하나님 나라 확장임을 기억해야 합니다.또한 성경의 핵심 메시지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이웃을 ‘공동체원’에 제한해 놓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이웃은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이웃을 향한 책임에 우리는 얼마나 관심이 있습니까? 그건 ‘양육 공동체’인 선교회가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우리가 본질적인 ‘교회 공동체’임을 잊고 있다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선교회가 이 시대, 이 ‘캠퍼스’ 가운데 존재하게 하신 이유를 생각해 봅시다. ‘믿지 않는 자들은 선교회를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우리는 캠퍼스 가운데 어떤 영향력을 미쳐야 할까?’와 같은 고민을 해야 할 때입니다.# 전문성의 부족1) (교육과 관련된 선교회에만 해당) 교육전문성은 선택이 아니다.우리는 ‘교육’ 선교회입니다. 앞서 선교회의 상황 분석을 통해 ‘양육’과 ‘전문성’중 어느 하나라도 ‘선택’이 아님을 살펴보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전문성 추구’는 ‘관심 있는 사람들이 하는 특이한’ 행동으로 취급됩니다.예비교사에게도 ‘전문성’은 필수입니다. 전문성은 ‘선택’이라 말한다면 우리는 ‘교사’선교회라 말할 수 없습니다. ‘교사’라는 이름을 가지고 ‘교육계’에 하나님 나라 확장을 외치는 전문 사역 단체라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공동체의 어떤 훈련을 보아도 ‘교직 전문성’을 훈련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좋은교사 운동의 ‘예비교사 아카데미’는 이러한 이들을 잘 감당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동체에서 이러한 훈련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점은 매우 안타까운 현상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공
한국교회의 여러 가지 문제점과 원인, 대안적 가르침[ 교회 ]))))))))1) 극단적 이원론이원론(dualism)은 일반적으로 근본적인 실재를 서로 대립하는 두 개의 것으로 주장하는 이론입니다. 현대 한국 교회사를 살펴볼 때 80년대는 민족적 고통과 정치적 억압의 시대에 세상과 내세라는 도식의 이원론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기도와 기도원 그리고 치료의 은사와 신비주의적인 사상이 유행했습니다. 2000년도 이후에는 경제적 풍성함과 사회적, 윤리적 자유의 시대를 맞이하여 교회와 세상이라는 도식의 이원론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지상 교회 내에서 특별은총의 충만함을 강조하였고, 일반은총의 영역으로서 세상에서는 특별은혜의 적용이 미약하게 되었습니다.☞ 현 한국교회는 극단적 이원론으로 인해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의 종말론적인 실현’으로써의 역할을 이 땅위에서 감당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천국이지만 교회 밖에서는 비 천국인 장소로 인식하고 기독교인들이 삶의 모범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를 지나치게 이원론적으로 강조한 결과 성도들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적응하지 못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성도들은 자신이 출석하는 지역교회에 지나치게 비중을 둠으로써 그들이 사회에서 균형 있는 삶을 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 실정입니다.2) 로마 카톨릭교회로 복귀하는 현상모든 교회가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교회가 오직 말씀,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을 강조했던 종교개혁자들의 정신에서 조금씩 이탈하는 모습을 많은 면에서 볼 수 있습니다.중세시대의 교회는 근본적으로 성직자들의 독점적 영역이었습니다. 그들은 교회 사역의 주인으로서 실질적인 권위를 가졌고, 말씀의 권위 보다는 전통과 기구적인 제도 그리고 외형적인 면을 강조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모습이 오늘날의 교회 가운데 다시 나타나고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독재적이며 카리스마적인 목회자들이 큰 교회를 맡고 있습니다. 지나친 카리스마의 남용은 많은 문제점을 야기 시킵니다. 권위적이며 독재적인 목회강조하는 개혁자들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할 때 입니다.3) 교회의 외형적 대형화와, 물질 만능주의한국교회의 문제점들 가운데 하나로 교회의 외형적 대형화를 지적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한국의 모든 대형교회들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 라는 것은 아닙니다. 큰 교회로서 말씀을 올바르게 전파하고, 성례전과 치리를 바르게 시행하며, 그리고 평신도에 대한 철저한 제자훈련을 통하여 성경적인 교회를 이룩하는 교회도 있습니다.그러나 일반적으로 한국교회는 세속적이며 또 인위적인 방법으로 교회를 외형적으로 대형화하려는 지속적인 시도가 있어 왔습니다. 말씀의 굳건한 기초 없이,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과 형제에 대한 관심이 없이 거대한 외형적 조직체로서 대형교회의 모습은 미래 한국 개신교의 장래에 심히 우려되는 바 입니다.대형교회의 출현은 먼저 목회자들이 외형적 성장에만 치중한 목회철학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목회자들이 지나치게 교회를 외형적인 성장에 목표를 두었고, 특히 로버트 슐러(Robert Schuller)와 맥가브랜(Donald A. McGavran)의 교회 성장이론은 한국교회의 대형화에 이론적 영향을 주었습니다.성장제일주의는 그 외면을 포장하여 지도자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목회자의 목회적 야망을 자극하여 '부흥은 성령께서 주도하신다'는 명제가 '성장한 교회는 하나님께서 부흥시킨 교회', '큰 교회 목사는 하나님이 인정하신 종'이라는 명제로 왜곡되었습니다. 그렇기에 교회가 성장하기 위해서 정당하지 못한 수단과 방법이 동원되기도 합니다. 그것이 말씀에 대한 왜곡이라 할지라도, 돈을 벌고 싶은 성도들의 욕망을 자극하여 축복을 남발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런 영향들은 결국 교회의 본질에 대한 목회자들의 인식에 많은 변화를 주었습니다. 교회의 본질적이며 영적인 면보다는 외형적이며 형식적인 면에 더 많은 강조를 두게 되어 결국 초 대형교회의 탄생을 보게 되었습니다. 한국교회의 대형화는 결국 미국의 상업주의와 실용주의 철학이 스며들인 것으로 볼 수 있으며, 결국 한국 초대 런 신앙은 현세 중심적 기복 사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성령운동에 있어서도 왜곡된 모습이 드러납니다. 성령 하나님은 생명의 하나님으로서 인격적이시며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시는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카리스마를 강조하는 교회에서는 주로 성령은 병을 고치며 신비한 은사를 제공하는 영적인 기능을 담당하는 분으로만 이해합니다. 무당의 역할이 병든 자를 고치는 주된 임무와 마찬가지로 성령 하나님의 역사를 병 고치는 일에만 제한시킨다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성령이 오셔서 이 세상에서 역사하는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제한하는 것이 됩니다. 이런 성령 하나님의 제한은 성령의 충만함이 인격적이며 형제를 사랑하고 사회를 위한 봉사로 이어지는 것을 망각하게 합니다.교회에서 봉사하는 일을 기복적 신앙으로 강조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만일 어떤 성도가 교회에서 물질적 드림이나 봉사의 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물질적 축복이 자신에게 임한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기복신앙에 가깝습니다. 아무 조건 없이 감사한 마음으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참된 헌신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내용은 예수를 믿으면 죄를 용서받고 구원을 받으며 하나님과 나 사이에 올바른 관계가 형성되어 이웃과 사회를 향한 하나님의 나라의 건설을 위하여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영적이며 종말론적인 신앙을 강조한 바울은 예수를 믿기 때문에 따라오는 영혼의 투쟁, 질병을 통한 하나님의 섭리, 가난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점을 기억해야만 합니다.5) 목회자의 윤리 실종한국의 많은 목회자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헌신과 기도, 그리고 설교와 심방을 통하여 나타난 그들의 삶에 대하여 존경을 많이 받아 왔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최근 몇 년 사이에 지면에 쓰기 민망할 정도의 목회자의 윤리적 붕괴를 맞이하고 있습니다.기독교는 성경을 기반으로 하는 최고의 윤리적인 종교입니다. 따라서 목회자는 지도자로서 윤리의 모범자가 되는 것은 당연하지만, 오늘날 목회자 가운데 하나님의 선택의 도구로 자신의 사명을복음전파에 큰 방해가 됩니다.6) 혼합 신학 사상 유행, 이단의 활개최근 한국 교회는 ‘이단’으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특히 ‘신천지’는 급속도로 성장하여 한국교회에 큰 위협을 가하고 있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이단에 빠지는 이유는 그들에게 ‘건강한 지성’이 없기 때문입니다.그들은 바른 신학적 토대 위에 신앙을 쌓은 것이 아니라, 경험과 체험을 중심으로 한 체험적 신앙이 토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앞서 본 ‘성장제일주의’와 맞물려 진리에 대한 진지하고도 깊은 통찰은 배제한 체, 성장만을 위해 감각적이며 체험적인 신비주의적 현상에 의존한 한국 교회가 반성해야 할 모습입니다.‘신사도 운동’ 및 ‘무분별하고 검증되지 않은 성령운동’ 또한 교회의 성장과 대중의 입맛에 맞기에 많은 위험성을 가지고 있지만 진지한 신학적 검토도 없이 무분별하게 도입되고 있는 실정이고 많은 문제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잘못된 성령론 역시 한국 교회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황홀경에 빠지고, 방언을 말하고, 초자연적이고, 신비로운 체험을 하는것을 성령의 역사라고 생각하는 신비주의적 성령론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성령의 역사의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에 대한 순종의 유무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의의 열매, 도덕적, 윤리적인 가치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이단, 건전하지 않은 신학들의 무분별한 도입은 지금까지 감각, 체험을 중시하여 ‘반지성주의’로 흘렀던 한국교회의 모습을 반성하고 건전하고 바른 신학적 가르침을 위해 애써야 할 때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문제점과 대안□ 문제점 정리- 이원론적 세계관이 난무- 바른 영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 샤머니즘과 무속신앙적 경향을 벗어나지 못함- 현 시대의 가치를 따라가는 세속적인 신앙의 모습- 도피적, 반지성적 영성- 종말론, 성령론의 왜곡- 목회자의 신격화- 하나님 나라 신학에 대한 이해 부족□ 문제점의 핵심 : 균형잡힌 건강한 정통 신학의 이해 부족으로 인한 왜곡된 영성□ 문제점의 원인? 한국 교회 신학의 미국 교회의 이기독교 문서 중에 기독교 세계관에 관한 책의 출판이 거의 전문했음을 들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복음의 양면성, 곧 수직적인 내용과 수평적인 적용을 함께 강조하지 못한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토착적인 동양 종교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함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동양의 각종 종교성은 은연 중에 우리의 일상 생활의 세계관이 되어 있습니다. 특히 우리 민족의 정신적 뿌리요 한국 문화의 토양인 불교와 유교는 더욱 그렇습니다. 불교와 유교의 구원관과 인식론은 영성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불교는 열반에 이르기 위해 참선에 열중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참선의 방법들은 다분히 염세적이며 금욕적입니다.유교는 ‘경귀신이원지(敬鬼神而遠之)’라 해서 ‘신은 공경을 하되 가까이 하지 않는다.’는 사상을 낳았고, 신에게 빌고 복을 구하면서도 인격적으로 밀접한 관계보다는 거리를 두고 멀리하는 비인격적이고 세속적인 종교성을 낳게 하였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유교의 인식론은 ‘자의식’으로 자신의 윤리적 자아를 깨닫는 것인데, 이것이 최종적인 지식의 가치라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그 윤리적 자아에 이르는 최선의 길은 지성의 사용을 중단하거나 멈추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인간의 지성은 욕망과 감정에 의해 깊이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하여 지극히 높은 차원의 지식과 진리를 아는 데는 지성이 적합하지 않다고 믿습니다. 그 대신 ‘정(情)’이라고 부르는 감성 또는 직관이 인식의 주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이런 점에서 우리 주위에 유행하는 많은 ‘영성’에 대한 잘못된 인식은 불교, 유교 혹은 영지주의자들의 가르침을 답습하는 것이 많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시대에 분별력을 잃어 버리는 이유는 기독교적인 지성을 무시하고 감정이나 순간적인 직관과 느낌에 의해 결단을 내리기 때문입니다. 이는 우리가 불교나 유교적인 인식 구조에 익숙하기 때문이며, 반지성적 영성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서양의 이원론 사상이원론은 플라톤의 철학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중국의 ‘워치만 니(Watch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