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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군 위안부에 관한 견해 (*만점10/10) 평가A+최고예요
    목차1. 서론2. 본론(1) 일본군 위안부(2) 진상규명과 배상(2) 일본의 위안부에 대한 태도3. 결론1. 서론제 2차 세계대전은 히틀러의 나치당이 이끄는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며 발발한 전쟁입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알자스-로렌 지역의 반환, 군비축소, 라일란트지역의 비무장화, 자르지역의 국제연맹관리, 배상금 등 전쟁의 책임을 모두 떠안게 된 독일이 배상금을 갚을 능력이 없어 힘들어 하던 당시 나타난 히틀러는 범죄자 등 사회 불만세력을 중심으로 당을 만들고 유럽을 제패하겠다는 야망으로 전쟁을 시작합니다. 당시 아시아의 패권을 장악하고 있던 일본 역시 독일과 연합하여 2차 세계대전에 참여하여 이탈리아, 독일과 연합하여 미 영 중 소 등을 중심으로 한 연합국과 전쟁을 벌였습니다. 독일은 프랑스까지 항복시키고 영국만 남겨둔 상황에서 소련과의 불가침계약을 깨며 스스로 무덤을 파기 시작했고, 일본이 미국의 진주만을 공습하며 미국도 연합군으로 참전하게 되며 전세는 완전히 기울었습니다. 이후 일본은 미국에게 원자폭탄을 맞음으로써 무조건 항복을 하게 되었고 2차 세계 대전은 연합군의 승리로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일본은 이 전쟁에 참여하는 군인들의 사기를 높이고, 오랜 기간 전쟁터에서 있을 혈기왕성한 남자들의 성욕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 대만, 중국 등 식민지 국가 나라에서 여성들을 위안부로 모집하여 이들로 하여금 수많은 군인들의 성욕을 해소시키게끔 하였습니다. 또 이들은 위안부로 징집되어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으며 생활했는데 일본은 이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는 물론 제대로 된 배상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일본의 전 후 태도에 대해 독일과 비교 하고 그들이 잘못을 인정 하지 않는 행동에 대해 말해보겠습니다.2. 본론(1) 일본군 위안부일본군 위안부란 일본 제국주의 점령기에 일본에 의해 군위안소로 끌려가 성노예 생활을 강요당한 여성을 일컫는 말입니다.세계 2차 대전 당시 일본은 우리나라에서 각종 전쟁물자, 식량은 물론이고 젊은이들, 학생들까지 강제로 징집해서드라마 각시탈에서 본 것처럼 가난한 집안의 여성들이 식당종업원, 간호사, 여공 모집 등 취업사기에 속아 끌려 간 경우가 대부분이며 유괴나 강제연행, 폭력적 연행이나 몸팔이를 강요당하여 위안부로 징집되었습니다. 조선총독부, 조선군사령부의 개입에 의해 이들이 직접 모집하거나 이들의 협조 아래 민간인에 의해 모집되기도 하였습니다. 당시 일본은 미성년자의 매춘을 금지하는 국제법 규약에 서명을 한 상태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안부에서는 미성년자를 쉽게 찾아 볼 수 있었습니다. 끌려간 여성들의 나이는 10대 초반부터 40대까지 광범위했습니다. 이렇게 위안부로 끌려간 여성들은 군위안소에서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았습니다. 위안소는 군부대 주둔지 근처에 별도의 건물로 들어서거나 군용 막사나 트럭이 이용되기도 했으며, 3~4명에서 많게는 수십명 까지 한 곳에서 머무는 등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하며, 인간이 아닌 소모품 취급을 당했습니다. 여성들은 군에 의한 엄격한 관리 속에서 성교를 강요당했고 한 달에 많으면 1~2회 정도의 휴일을 제외한 모든 날에 다수의 군인을 상대해야했습니다. 고통을 잊게 하기 위해 마약을 투약하기도 하였으며, 잇따른 성행위로 성병에 걸릴 확률도 높았고, 만약 임신을 하게 되면 마취 없이 자궁을 통째로 들어내는 등의 잔인한 행위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이에 반해 독일의 위안부는 주 2회 검진을 하는 등 위생에 상당한 신경을 썼다고 합니다. 일본이 패망하자 위안부들은 철저하게 버려졌습니다. 일본군이 퇴각하며 전쟁 패배 사실을 여성들에게 알리지 않아 폭격 등으로 많은 위안부들이 사망하거나 퇴각하면서 자신들이 위안부를 모집했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위안부들을 한데 모아 죽이고 산채로 땅에 묻기도 하였습니다. 생존 여성들은 연합군 측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었다가 돌아오거나 자신의 힘으로 돌아왔으며, 수치심으로 인해 돌아오지 않고 자살한 경우도 있습니다. 살아 돌아온 여성들도 떳떳하게 살지 못하고 숨어 살았으며 생계를 유지하기도 힘들었습니다. 1992년 2월부터 정부에서책협의회’가 만들어졌고, 이듬해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대책으로 공동생활공간 ‘나눔의 집’이 건립되고, 이외에도 ‘경남 정신대문제대책을 위한 시민연대모임’, ‘훈할머니돕기 불교후원회’ 들 다양한 민간활동 기구들이 여성들과 함께 여러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한국 정부는 1990년 노태우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한 이 후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1991년 9월 정부는 ‘정신대 실태조사대책위원회’를 구성하였고, 일본에 철저한 진상 규명을 요구하였습니다. 또 일본의 잘못을 입증할 자료인 일본군이 위안부 모집, 수송, 관리 등에 개입한 사실을 입증하는 문서를 미국국립문서보관소에서 찾아냈습니다.이후 정부는 ‘정신대문제실무대책반’을 설치하고 피해자 신고센터를 설치해 신고를 받는 동시에 피해자들에 대한 지속적인 생활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김영삼 정부는 1993년 3월 피해자 생활안정 지원금과 영구임대주택 우선 입주권을 지급하였고, 김대중 정부는 1998년 일시불로 3,150만원의 생활지원금을 지급하였으며 매월 지급되는 지원금도 50만원으로 인상하였습니다. 또 위안소와 관련된 일본인에 대한 입국 금지 조치를 내리기도 했으며 2008년 일시불로 4,300만원의 생활안정지원금과 매월 80만원의 지원금이 지급되고 있으며 각 시·도에서도 자체적으로 지방비를 지원하고 있습니다.위안부 문제는 국내뿐 아니라 국제적인 문제로 관심을 끌고 있는데 일본, 한국, 대만을 비롯한 아시아 6개국 시민 단체들이 연대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이들의 지속적인 문제제기로 1992년부터 유엔 인권위원회에서도 토의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로인해 1996년 유엔 인권위원회에서 ‘전쟁 중 군대 성노예 문제에 관한 조선민주주의공화국, 대한민국, 일본에서의 조사보고서’를 내놓았습니다. 이 보고서는 위안소 설치가 국제법 위반임을 밝히고, 일본 정부가 법적 책임을 지고, 진상규명, 공식사죄, 책임자 처벌 등에 나설 것을 권고했으며, 특히 위안부 피해자중 생존해 있는 사람들이 고령이므로 빠른 시일 내에 문제를 해결해야 본 정부에 압력을 가하고 있으며, 현재에도 여러 단체와 위안부 할머니들이 일본에게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시민운동을 지속적으로 벌이고 있습니다.(3) 일본의 위안부에 대한 태도일본의 위안부 징집은 ‘부인 및 아동의 매춘을 금지하는 국제조약’, ‘노예조약’, ‘헤이그 육전조약’, ‘전쟁범죄에 대한 죄’ 또는 ‘인도에 반한 죄’(뉘른베르크 국제 군사재판소 헌장과 극동 국제군사재판소 헌장에 의거), ‘강제노동에 관한 조약’을 위반하는 행위로 상당한 법적 책임을 져야하는 문제입니다. 일본의 법적 책임을 묻기 위해 1994년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의 대효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6명이 위안부 책임자 처벌 요구 고소 고발장을 내기 위해 도쿄지방검찰청에 찾아갔지만, 이미 범죄의 시효가 지났고 범죄사실의 불특정 피고소인과 피고발인에 대한 불특정, 범죄사실에 관하여 적용시킬 만한 국내법이 없다는 것을 이유로 접수를 거부 했습니다. 하지만 이 후 시모노세키 지방법원의 판결에서 일본 정부가 피해자에 대한 사과와 법적책임을 지고 배상을 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지만, 대법원에서 이를 기각함으로써 무효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일본은 판결을 통해 위안부에 책임에서 벗어나려는 행동을 취하고 있습니다.위안부 문제는 1989년 한국의 여성운동단체에 의해 조직적으로 제기되어왔다. 그리고 1990년 11월에 한국정신대문제협의회가 결성되어 일본 정부에 범죄사실의 인정, 범죄사실 자진공개, 일본정부의 사죄, 희생자를 위한 추모비건립, 희생자와 유족을 위한 배상, 역사교육을 요구지만, 이에 일본은 1992년과 1993년 2차례 진상조사결과 '일본군이 관여했다'라는 사실만 인정할 뿐 배상과 관련하여 법적인 책임은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위문금, 위로금, 자선금 형태로써의 배상을 하겠다고 하며 국가에 의한 개인배상을 거부하고 있는데 이는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입니다.피해 여성들과 각국 정부, 국제 사회가 한 목소리로 범죄 사실 인정과 진상규명, 정당한 배상과 사죄를있는 위안부 할머니들과 우리나라의 여러 단체를 비롯해 일본 내에서도 위안부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고 있지만 일본 정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어 양국 간의 이해가 대립하고 있습니다.일본은 현재 생존하고 있는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사과도 거부한 체 단지 유감을 표한다고만 표현하고 있으며, 종군 위안부 라는 용어를 써서 위안부가 본인이 지원한 것이지 위안부 자체에 강제성이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또, 교과서에 위안부에 대해 정확하게 표기하지 않아 자국 학생들에게 왜곡된 역사를 가르쳐주고 있는 현실입니다.3. 결론◀빌리브란트 독일 수상일본이 현재 지진과 원전사고로 재앙과 싸우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을 비판하는 것이 시기가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역사 왜곡은 분명 일본이 잘못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쟁 시 군인들의 사기를 높이고 동성애, 수간, 강간 등을 막기 위해서 여자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 매춘부들을 돈을 지불하고 모으거나, 독일처럼 충분한 휴식과 정기적인 검진을 하는 방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식민지국의 여성을 강제로 그리고 거짓말로 그들을 속이고 데리고 가서 인간 이하의 대우를 하며 살인도 서슴지 않은 그런 끔찍한 행위는 용서받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잘못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공식적인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과거 독일연방공화국(당시 서독)의 총리 빌리브란트는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1970년 12월 7일, 폴란드에 찾아가 바르샤바 전쟁에서 희생되었던 전쟁 희생자 비석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했습니다. 이는 애초에 계획되어 있던 일이 아니었기에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모두가 충격에 빠졌었습니다. 당시 빌리브란트 총리는 ‘인간이 말로써 표현할 수 없을 때 할 수 있는 행동을 했을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행위는 당시 독일인들에게 불만을 야기 시켰고 그는 보수진영의 공격을 받아야 했고, 이듬해인 1972년 불신임 투표까지 행해질 정도였습니다. 투표에서 근소한 차이습니다.
    인문/어학| 2015.03.22| 8페이지| 2,000원| 조회(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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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에니 전쟁 (서양역사와문화)
    3차까지 있었던 포에니 전쟁이지만 3차 포에니 전쟁은 당시 유럽의 실권을 장악했던 로마의 압도적인 승리였으므로 제 2차 포에니 전쟁이 유럽의 실권장악에 가장 중요했던 전쟁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제2차 포에니 전쟁. 즉, 한니발 전쟁에서 한니발의 카르타고군이 왜 로마에게 패배할 수 밖에 없었는가와 연관지어 그를 비판하고 더불어 그와 맡섰던 파비우스의 전술적인 선택을 지지하는 것에 대한 주제를 정했습니다.먼저 한니발의 패배이유와 제가 그를 비판하는 이유에 대해 먼저 말하자면, 제 2차 포에니 전쟁 즉, 한니발 전쟁의 원인은 여러 가지로 볼 수 있는데 로마의 입장에서는 단순한 복수전쟁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폴리비우스는 카르타고가 복수의지도 가지고 있었지만 로마가 기원전238년 사르데냐를 점령한 정당하지 못한 행동이 그 원인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는 로마가 세르데냐를 점령하고 엄청난 전쟁배상금을 요구함으로 카르타고인들의 증오가 거세졌고, 바르카스 가문의 원한은 특별했는데, 하밀카르 바르카스는 본국이 점령되지도 않고 군대가 패배하지도 않았는데 평화협정으로 군대를 항복시켜야 했기에 자존심이 많이 상해있었을 것입니다. 카르타고인들은 자존심이 강한 민족이여서 이에 복수를 다짐 했었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로인해 에스파냐로 확장을 했고, 함대를 구축하지 않음으로 로마의 경계를 완화시켰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현대학자들은 고대와는 다른 평가를 내리고 있는데, 그들은 로마가 *에브로 조약을 위반했다고 합니다. 로마 변명론자들은 조약에 사군툼의 독립 보장 조항을 만들어 한니발의 공격이 조항위반 이였다고 하는데 이는 로마인들이 자신들의 행동에 죄의식을 느꼇다는 것입니다. 또 바르카스 가문의 분노와 한니발의 맹세에 대해서도 의문이 많은데 로마 변명론자들이 꾸며낸 이야기이거나 한니발이 안티오쿠스 왕에게 자신의 신빙성을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 냈을 수 도 있다는 것입니다. 분노와 맹세를 제외하면 카르타고의 책임은 상당히 줄어드는데, 그들은 카르타고의 에스파냐 확장도 단순히 안전과전 경험을 쌓았습니다. 한니발은 26살 때 하밀카르가 죽음으로써 지휘관이 되어 신카르타고를 이끌며 많은 전투경험을 쌓았습니다. 이후 한니발이 로마의 동맹시인 사군툼을 공격했고 로마는 철군을 요청했지만 한니발이 거절하며 2차포에니전쟁이 발생했습니다. 한니발은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에서 티키누스 전투, 트레비아 전투에서 모두 승리했고, 이루 트라시메노 호수 전투에서 안개로 잘 보이지 않던 호수길을 통과하던 로마군의 중군을 공격하여 로마 지휘관 플라미니우스를 전사시키며 괴멸상태로 이끌었습니다. 트라시메노 호수 전투 패배 이후 로마의 지휘관이 된 파비우스는 지구전 펼쳤는데 이것을 로마인들은 로마정신에 위배된다고 하며 반기지 않았습니다.*에브로 조약 : 기원전 226년 맺어진 “카르타고인들은 무장한 채 이베르(Iber)강을 건너선 안된다”는 로마와 카르타고의 평화협정 조약[출처] : http://blog.hankyung.com/raj99/384940그러던 중 파비우스가 한니발을 쫓아가 포위했지만 한니발이 소2000마리의 뿔에 불을 붙여 돌진 시키자 입구를 지키던 군단이 적으로 판단하고 본진에 합류하여 소를 쫓아가고 그사이 한니발이 도주하는 일이 발생했는데 이를 계기로 지휘관이 바로로 바뀌게 됩니다. 바로는 한니발과 칸나이에서 전투를 펼쳤는데 8만명의 로마군과 5만의 카르타고군의 싸움이였습니다. 이곳에서 한니발은 가장 중요한 부분인 군대의 중앙에 약한 외국인 용병을 배치하여 로마군이 중앙을 파고드는 사이 양쪽 기병들이 로마기병을 이기고 그들의 후미를 포위하는 방법으로 승리합니다. 하지만 장기간 원정을 떠나있으면서 한니발은 고립되었고 각지에서 로마군이 선전하자 로마와 카르타고 양국은 강화협정을 시도하였지만 로마가 터무니없는 조건을 내걸어 강화협정이 무산되면서 양군은 카르타고 근처에서 대규모 전투를 벌였고 결국 이 전투에서 로마의 스키피오가 승리하면서 카르타고는 항복합니다. 한니발은 패배로 추방당하게 되었고 로마군의 추적을 받다가 자살하며, 한니발은 최후를 맞게 됩니다.이렇지는 것입니다.또 한니발은 로마의 수도를 공격하지 않고 주변국을 공격하곤 했는데 이는 로마동맹을 너무 약하게 본 것으로 그는 로마의 속주나 동맹국 포로들은 죽이지 않고 모두 풀어주었다. "나는 로마의 멸망만을 원한다."라고 말하며 다녔지만 그 정책은 실패하고 로마동맹은 깨지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전술적 측면에서는 자마 전투에서 한니발은 자신의 전술을 사용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자마에서 전투를 할 때에 전력은 크게 차이가 났습니다. 한니발군의 수가 더 많았지만 기병의 수는 압도적으로 질도 양도 떨어졌습니다. 또한 2만이었던 한니발의 정예군은 오랜 전쟁 동안 8천으로 줄어있었습니다.한니발에게서 3번이나 살아남은 스키피오의 전술 또한 한니발과 같은 전술로 기병을 중시하는 전술 이였는데, 스키피오는 뛰어난 기병을 다수 보유하고 있었지만 한니발은 그렇지 않았다.? 한니발은 코끼리를 정면에 배치하여 적의 중장보병의 대형을 흐트러트리는 최선의 작전을 펼쳤지만 스키피오에게는 통하지 않아 한니발은 패배하고 말았습니다.이를 종합해보면 저는 한니발을 그렇게 뛰어난 영웅으로 볼 수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가 아무도 시도 하지 않을 일을 했고, 알프스를 넘어 본국의 지원 없이 로마군을 수차례 격파한 활약은 인정하지만, 그가 너무 자만에 빠져 전쟁을 그르친 장수로 보여 집니다.한니발은 함대를 구축하지 않아 육군으로 전쟁을 했는데, 육로이동으로 로마까지의 거리는 그렇게 가까운 거리가 아니였습니다. (아래 그림 참조) 장기간 장거리원정을 떠나려면 본국*하밀카르 바르카스 : 카르타고의 장군. 제1차 포에니 전쟁 말기 이후 로마를 괴롭혔으나 카르타고가 패하자 전권사절로 로마와의 화평교섭을 했고 카르타고 용병의 반란을 진압했다. 에스파냐에 건너가 개발에 전념했고 그의 아들 한니발은 이 기반을 거점으로 로마에 도전했다. [출처] 하밀카르 바르카스 | 두산백과에서의 군사, 군수품지원이 필수적입니다. 물론, 전쟁을 하면서 점령도시의 곡물을 뺏으면되지만 그것만으로는 대규모 병력을 먹일 군사를 보급 받아 나머지 로마연합과 수도 이외의 지역을 공격하는데 훨씬 더 나은 조건이 마련될 수 있었을 것이고, 그렇게 되었다면 이후 유럽의 지배자는 로마가 아닌 카르타고가 될 수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또 스키피오와 맞붙은 자마전투에서 그의 전술은 그가 전술의 천재라고 불렸다는 사실에 의구심을 들게 합니다. 자마전투가 벌어질 당시 그의 군대가 자랑하던 강력한 기병대의 수가 상당히 줄어들어있었고, 그 질도 로마군에 비해 밀렸습니다. 더구나 당시 로마에서 자마로까지 육로이동으로 이해 상당한 피로가 누적되어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평소에 사용하던 기병을 이용한 포위작전이 성공할 가능성은 굉장히 낮았던 것으로 볼 수 있음에도 그는 그 전술을 사용하였습니다. 또, 기병의 열세를 극복하기 위한 전투 코끼리 80마리도 한니발 군으로 되돌아와 그에게 피해를 입힌 것들도 있고, 일부는 로마군으로 돌진 했지만 스키피오의 전술에 휩쓸려 로마군 사이의 경보병이 위치한 곳으로 돌진해 그다지 큰 피해를 주지 못했습니다. 그가 정말 전술의 천재였다면, 약한 기병으로 무리한 전술을 사용하기 보다는 뭔가 새로운 전술을 사용하여 로마군을 상대했어야 하고, 자마전투에서 사용한 스키피오의 전술은 한니발 본인이 주로 사용하던 전술 이였음에도 그 격파법을 알지 못했다는 점 등을 보면 저는 그가 전술의 천재로 까지 칭송받는 것은 뭔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중심을 파고드는 로마군에게 잘 먹혀들어가는 전술을 하나 계발했을 뿐이지 자신의 전술 격파법, 열세 속에서도 새로운 전술을 사용하지 않은 점 등을 보면 그가 전술에 천재였다기 보다는 그의 기병대가 로마기병대보다 숫적, 질적으로 우세했기 때문에 단지 그 이유로 승리를 거둔 것으로 생각됩니다.패배 이유와 연관 짓지 않더라도 그가 비판받아야 할 점은 더 많이 있다고 보여 집니다.개인적으로 그가 알프스를 넘은 것도 그다지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 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가 알프스를 넘음으로 인해 로마군의 예상을 뒤엎어 승기를 잡을 수 도 있었지도 상당했을 것입니다. 평화롭게 지내던 원주민의 생활을 방해하고, 그들을 죽였으며 또 자신의 군대까지 잃은 것은 그다지 옳은 선택이 아니었습니다.그리고 그가 너무 독단적인 결정, 행동을 하지 않고 휘하의 장수들과 의견을 교환하고, 그들의 의견을 존중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의 독단적인 선택을 카리스마, 리더십으로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저는 단지 고집이 너무 강했다고 봅니다. 당시 많은 참모들이 로마 수도를 빠르게 점령하기를 요구했지만 그는 단호히 무시하고 로마연합을 깨뜨리는데 주력하였고, 부하들과 어울리지도 않았기에 소통이 전혀 불가능했습니다. 참모들도 그가 결정을 내리는 것을 지켜만 보는 지경이었으므로 그는 독단적으로 행동했는데, 만일 그가 소통을 통해 그들의 의견을 받아 들였다면 더 좋은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함대를 구축하지 않은 것 역시 잘못된 일이었습니다. 로마와 카르타고는 해로를 이용해 가면 굉장히 가깝지만 육로를 통하여 갈 경우 한참 돌아가야 했기에 군수품 조달 등이 원활하지 못하고, 장거리 이동으로 피로가 쌓입니다. 자마전투에서도 로마에 있던 한니발이 다시 카르타고로 오는 과정에서 육로를 이용해 한참을 돌아오며 피로가 쌓였을 것입니다. 한쪽으로만 공격해서는 완전한 승리를 거두기 힘든데 한니발은 오직 육로만을 고집했다는 것입니다. 1차 포에니 전쟁 당시 카르타고의 해군이 강했다는 것을 보더라도, 만일 함대를 구축해 육,해로 동시 침략이 가능했다면, 또 함대가 있어 스키피오가 카르타고 본국을 공격하는 것을 막아낼 수 있었다면 한니발 전쟁의 승리국은 바뀌었을 것입니다.마지막으로 그의 동물에 대한 태도 또한 비난의 대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전투코끼리를 사용했는데, 말 못하는 동물인 코끼리를 억지로 훈련시켜 전쟁에 사용에 수백 마리의 코끼리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동물학대로 봐집니다. 사람은 자신의 복수, 세속적 욕망에 의해 전쟁을 일으킨 것이지만 그 코끼리들은 아무 것도 모르고, 얻을 것도 없는데 단지 그의 전술다.
    인문/어학| 2015.03.22| 7페이지| 1,500원| 조회(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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