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의미와 존재의 이유.-사진의 특성과 흐름을 중심으로-1. 서론2. 사진의 특성3. 사진의 흐름4. 결론5. 참고문헌1. 서론사진을 철학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큰 관점아래에서 다양한 이론들이 경합을 하지만 그럼에도 논쟁의 중심에는 사진을 바라보는 매우 일관된 관점이 자리하고 있다. 어떤 지적 환경 내에서는 이러한 관점이 사진을 바라보는 지배적인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영국의 비평가 존 탁(John Tagg)의 입장은 사진의 역사는 사진 자체의 일관되고 통일된 역사라기보다 사진의 다양한 사용과 효과에 대한 선별적인 기록이다. 사진은 고정된 정체성이나 독자적인 문화적 지위를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진은 고정된 정체성이나 독자적 문화적 지위를 갖지 않고, 사진을 둘러싼 제도와 담론과 구분될 수 없을 정도로 편재성을 지닌 장(場)에서 바라봐야한다는 것이다.각각의 사진들이 지닌 의미는 정해져있지 않으며 주어진 시점에서 사진이 놓여있는 맥락에 의해 전적으로 좌우된다. 사진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런 의미를 가지며 다른 맥락에서 본다면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그러므로 사진의 정체성은 사진 본래의 특성이 아니라 사진이 실제로 사용되는 바에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진은 결코 주변의 담론이나 기능과 떨어져 존재할 수 없다. 사진의 본질, 근원적이고 진정한 의미를 말해주는 ‘사진 자체의, 사진 자체를 위한’ 중립적인 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미국의 사진가이자 비평가인 앨런 세쿨라(Allen Sekula)의 견해에서도 탁의 사진에 대한 기본적인 입장이 반복된다. 사진은 유동적이고 모호하며 본래 사회적인 실재로 미학주의(주관주의)와 과학주의(객관주의)라는 두 가지 이데올로기적 요구가 맞닥뜨려있다. 사진은 사진 찍힌 주체 개인의 주체성을 확인함과 동시에 주체와 그들의 사회적인 관계를 시각적인 것으로 환원함으로서 상품화될 수 있는 동일한 대상이미지로 만든다. 기계적이고 중립적인 재현장치로서 사진은 실증주의의 경험적 진리 가치로 받아들여지며 사미 있는 것으로 생산하는 의미작용의 실천이다.버긴의 입장은 기호학과 정신분석을 결합한 것으로, 사회적인 분석에 중점을 두고 사진을 사고한다. 특히 서구문화의 권력, 욕망, 그리고 재현의 연결을 사진이 기여했다고 평가하는데, 그에 따르면 사진 자체는 무엇보다 바라보는 주체에 의해 실행되는 “끊임없는 생성의 과정”이다. “그러므로 사진 이론은 사진을 통해 복합적인 결정과정의 총체성이 드러나고 강제되는 주체 생산을 고려해야 한다.” 라고 그의 논문 「Thinking Photography」에서 말하고 있다.이들의 논의를 대략 살펴보았지만, 각각의 논문이나 책에서 나타난 미묘한 입장의 차이, 다방면에 걸친 시각적 비교 ? 분석을 다루지 못했기에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미국 포스트모던 사상의 중심에 자리한 사진을 바라보는 특정한 입장을 정리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탁이 논의한 것을 살펴보자면 ‘사진 자체라고 할 만한 정체성은 없으며 사진의 역사는 단일하지 않다.’ 이 말은 위에서 언급한 포스트모던 비평가들의 주장을 대변할 만하다.결국 분석의 초점이 이미지에서 이론적인 틀로 옮겨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사진의 의미가 전적으로 가변적이고 애매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사진 매체는 자율적인 역사나 고정된 정체성을 갖지 않는다고 논리적으로 결론짓는다. 단일한 사진이라고 할 만한 것들은 없으며 단지 불연속적이고 다양한 사진들만이 있을 뿐이다.현대 사회에서 사진은 이미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사진을 이미지 그 자체만으로 볼 수 있겠지만, 이처럼 사진을 본래의 의미나 예술사 내에서 갖는 의의를 생각해 본다면 아직 정확한 결론은 내려지지 않았다. 사진은 과연 예술사에서 어떤 위치에 있으며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예술사에서 사진이 지니는 의미와 위치를 알아내기 위해 사진의 특성에 대해 살핀 후, 사가들이 판단한 사진의 흐름에 대해 알아보겠다.2. 사진의 특성사진의 특성에는 크게 내적 특성과 외적 특성의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내적 특성이란 사진의 내용에면 사진의 현장성에서 기인한 것이다.현실성의 다른 의미는 사진이 사진작가의 손으로 만든 작품이 아니란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사진은 현실을 찍는 행동만이 있을 뿐이다. 사진 찍는 기술을 향상시키는 것은 일반 사진작가들보다 더 화려하고 멋지게 나오는 것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디에 중점을 두고 살펴봐야하는 걸까. 바로 작가가 지닌 현실을 바로 보는 눈이다. 이를 일컬어 ‘발견의 예술’이라 하는데, 현실을 정확히 파악하는 눈만이 아닌 사진작가가 지닌 지성 또는 감성에서 기인한 관점을 말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일반적인 피사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높은 지성과 풍부한 감성을 바탕으로 느끼고 깨달은 것을 포함할 수 있게 된다. 이를 통해 한 가지 더 생각해야 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대상 및 상황을 대하는 ‘사진작가의 태도’이다. 이 모든 상황을 통제하고 감수하는 것은 사진작가이다. 그러므로 사진작가는 자신의 작품만을 위한 비인륜적인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우연성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자연의 섭리를 제외한 대부분을 우연이라는 특성에 기반한다. 어떤 사실 또는 사건과 맞닥뜨렸을 때, 사진작가가 카메라를 가지고 그 자리에 있어서 그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우연이다. 이런 우연성을 대비하기 위해 사진작가들은 항상 카메라를 들고 다니고, 또 이를 극복하기 위해 카메라 작동법을 익혀야 함은 당연한 것이다. 이전에는 우연성을 사진의 단점으로 여겨졌으나 이를 사진작가의 노력으로 극복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를 보여준 작가로는 앙리 까르띠에-브레쏭(Henri Cartier-Bresson)이 있다.고립성사진은 하나의 고립된 이미지다. 현실은 시간적으로 연속되어있으며, 공간적으로 이어져 있다. 게다가 우리가 현실이라 부르는 것은 감각적인 측면의 종합적인 현상을 통틀어 일컫는 말로, 시각 · 청각 · 후각 · 촉각 · 미각의 모든 감각이 종합되어 현실이라는 단어로 나타낼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사진은 이러한 종합적 상황으로서의 현실을 그대로 찍을 수 없고이며, 제대로 전달되었을 때 그 사진의 영상화작업은 성공한 것이며, 볼만한 가치를 갖는 것이다.사진을 고립된 한 장의 이미지라고 하는 것은 사진이 현실에서 독립되어 독자적 의미를 지닌 이미지라는 것이지 현실과 전혀 관계없는 영상이란 말은 아니다. 다시 말해, 사진은 연속된 시간과 공간의 한 도막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사진 밖의 시간과 공간에 연장선으로 이해할 수 있다. 사진은 다만 그 이미지 자체로만 머무는 게 아니고, 사진 밖 현실까지 상상하게 해준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사진작가는 ‘사진과 시 · 공간’을 분리할 것인지, 아니면 연결할 것인지 관객으로 하여금 그의 의도대로 이끌리도록 사진을 구성해야 한다.복사성사진은 현실, 현상을 그대로 복사, 재현시켜준다. 사진이 현실적 사물과 그대로 대응된다는 점에서 복사성은 사진의 중요한 특성이라 할 수 있다. 사진은 오늘날 신문, 잡지, 방송, 인터넷 등 어느 분야에서나 쉽게 접할 수 있다. 이런 사용이 가능했던 것은 사진이 지닌 복사, 재현의 능력에서 나오는 것이라 하겠다. 사진에 있어서 기록성이 중요한 기능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이 역시 복사성에서 근간을 찾을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복사성은 실제 사진의 외형적 특성 중 가장 근본적인 특성이라 할 수 있다.그러나 이 복사성은 사진이 가진 예술성에 대해 늘 논란의 중심이었다. 단순한 현실의 복사가 어떻게 예술이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취약점을 가진 사진일지라도 그 특성으로 인해 인류문화에 커다란 기여를 함에는 변하지 않는다. 그 예로 피카소나 고흐 또는 다 빈치 등 인류문화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이들의 원작을 보지 못했으면서도 그들의 그림을 알고 그 그림의 화풍이나 개성 등을 운운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사진의 복사성덕분이다. 또한 복사성은 수없이 많은 사진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도 있다. 다시 말해 현실을 복사하는 복사성과 여러 장을 복사하는 복사성이다.무한히 복사해내는 복사성은 사진이 가진 또 다른 장점이라 할 수 있겠다. 이는 작품으직임의 동장과 제스쳐의 탐구를 위해 렌즈의 순간을 포착을 참조했던 구스타브 카이유보트(Gustave Caillebotte) 등이 이런 사진적 접근에 있어서 당시 가장 대표적인 화가들이였다.사진 또한 그 실행과 재현 대상에 있어 전통적 그림과 지속적으로 동화되어 왔다. 대부분의 19세기 사진 특히 초기 인물 사진에서 사진은 그 재현 모델로서 그림의 주제와 인물 구성, 리터칭, 흐린 효과, 돋보임 효과 등의 전통적 효과들을 참조하였다. 또한 샤를르 네그르(Charles Negre), 줄리아 마가렛 캐머런(Julia Margarette Cameron), 픽토리얼리스트(pictorialiste) 등은 사진을 그림과 동일시하면서 사진의 기림화를 시도한 대표적인 작가들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스스로 자신들을 사진가라고 하지 않았고 특히 종이 사진이 보편화되는 1840년대 후반부터 사진을 일종의 담채화나 데생이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사진은 우선 세피아 색의 흑백과 거친 입자 그리고 흐린 화면이 말해주는 기술적 한계로 현실을 정확히 복제하는데 있어서 부적합한 매체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게다가 1880년 이후 젤라틴 음화와 순간 포착, 그리고 야외 촬영을 가능하게 한 기술적 발전은 궁극적으로 사진을 인간의 시각적 관점과 예지력, 그리고 그 감성 표현이 아닌 점진적으로 실용을 위한 과학적 도구로 전락하게 만들었고, 또한 당시 소형 사진기의 보급은 사진을 전혀 예술과 거리가 먼 판박이로 만들었다. 이러한 총체적 위기에 출현한 픽토리얼리즘(Pictorialism) 작가들은 의도적으로 사진을 그림과 동일시하였다. 거의 대부분 아마추어 작가들인 그들의 사진적 명분과 이슈는 공통적으로 상실된 인본주의와 획일화된 예술성의 탈피였다. 당시 그들의 사진 주제는 몇몇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의 경우 인상주의나 자연주의 혹은 상징주의 경향을 가지는 그림의 주제였다. 그러나 이러한 주제는 단순한 유행이나 일부 사진가들의 예술적 경향이 아니라, 사실상 사진이 대중매체의 중심이
- 목 차 -Ⅰ. 서 론1. 주제선정 동기2. Herb Kellerher 회장Ⅱ. 사우스웨스트의 조직문화1) Fun & 가족경영2) 직원 만족을 위한 시스템(1) 직원 최우선 (2) 채 용 (3) 교 육 (4) 운 영 (5) 복 지3) 유연한 구조(1) 의사결정 권한 위임(2) 협동심을 불러일으키는 구조Ⅲ. 결 론1) 사우스웨스트의 조직문화2) 우리나라 기업의 조직문화3) 적용 방안 및 앞으로의 과제Ⅰ. 서 론1) 주제선정 동기사우스웨스트 항공은 9.11사태 이후 미국 항공 산업의 불안정이 가속화되어 수많은 회사가 파산하거나 정리해고를 단행하는 상황에서, 정리해고를 하지 않고도 흑자를 이루어내어 31년 간 연속 흑자를 달성한 기업이다. 이 기업은 25년 동안 단 한 번의 파업을 제외하고는 노사 분규가 없었으며, 미국에서 가장 일하고 싶은 기업으로 이직률은 약 4.5%밖에 되지 않는다. 또한 미국 내 노선만 취하고 있을 뿐 이지만 미국 내 항공사의 승객 운송 거리에서 4위와 승객 점유율 26%을 차지하였다.사우스웨스트 항공이 다른 시장 선두기업들에 비하여 항공 산업에서 비교적 늦은 시작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 성장 기업이 된 원동력은 조직문화에서 살펴볼 수 있다. 고객, 직원, 주주들 가운데 직원을 최우선으로 삼으며, FUN경영을 통한 조직문화가 사우스웨스트항공의 성장 원동력으로 분석되고 있는 것이다.하여 본서에서는 사우스웨스트 조직문화와 우리나라 기업의 조직문화를 비교, 분석하여 사우스웨스트의 조직문화를 우리나라 기업의 실정에 맞춰 적용할 수 있는 방안 제시를 통해 결론을 대신하고자 한다.이를 위해 우선적으로 사우스웨스트 항공을 FUN경영으로 이끈 Herb Kellerher 회장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고 그가 이끈 조직문화에 대해 서술하도록 하겠다. 후에 우리나라 기업의 조직문화와의 비교를 통해서, 사우스웨스트 항공의 조직문화에서 배워야할 점과 변화방향에 대하여 서술하도록 하겠다.2) Herb Kellerher 회장사우스웨스트항공의 Herb Kellerher위기를 만들어나가고 경영상 어려움 속에서 해고라는 극단적인 방법보다는 임직원의 동기유발을 통하여 해결책을 모색함으로써, 사우스웨스트항공의 큰 자산인 종업원들의 ‘헌신 문화’를 이끌어내었다.또한 “따뜻하고 친절한 서비스, 개인적인 자부심과 기업정신이 녹아 있는 최고의 고객 서비스를 제공한다”라는 미션을 통해 조직과 그 구성원에게 정체성을 부여하여 지향점을 제시하였다. 이는 구성원들에게 공동의 목표의식을 부여하고, 이의 달성을 위해 고객에 대한 헌신과 직무에 대한 동기를 유발할 수 있었다.Ⅱ. 사우스웨스트의 조직문화1) Fun & 가족경영사우스웨스트 항공의 조직문화를 대표하는 두 가지 주제가 있다. 하나는 즐거움이라는 주제이고 다른 하나는 가족이라는 주제이다.즐거움은 CEO인 Herb Kellerher의 경영철학을 통해서 가장 대표적으로 나타난다. 그는 일은 즐거워야한다. 일은 놀이이다. 즐겨야 한다. 라고 주장했다. 이는 평소 그가 CEO임에도 불구하고 각종 행사에서 기상천외한 행동을 보여주었으며, 자유분방한 사고를 가졌음에서 잘 나타난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직원을 채용 하는데 에도 반영되니 CEO부터 직원까지 즐거움과 유머는 조직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가족이라는 주제는 직원들의 생각과 행동에서 잘 나타난다. 직원들이 사우스웨스트에 대해 가지는 감정은 단순한 직장의 의미를 넘어서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직원들은 자신의 직무를 넘어 타인의 직무도 내 일처럼 도우며, 어떻게 하면 좀 더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을까를 같이 고민한다. 이것은 마치 동양의 가족 공동체문화에 더욱 가까우며 사람들 간에는 ‘情’이라는 감정과 조직에 있어서는 공동체를 위한 충성, 희생의 감정이 강하게 작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Fun & 가족경영’의 문화는 서비스의 증진과 원가절감을 이룬 가장 근원적이고 구체적인 성공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2) 직원 만족을 위한 시스템(1) 직원 최우선직원들에게 우리는 우리의 직원들에게 교육과 개인적 성장을 위하여 안정한 작업환경을 동등하게 제공합니다. 채 용앞서 본 내용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사우스웨스트 항공의 가장 중요한 자산은 직원이다. 하여 기존 대다수의 직원들의 잠재력을 개발하고 그들의 잠재력을 활용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하였다. 따라서 직원을 채용하고 교육하는 과정에서 사우스웨스트 항공은 독특한 기준을 만들었다.먼저 사우스웨스트 항공은 직원 채용 시 유머감각이 있는 사람을 고용하라 는 기준을 가지고 있다. 면접시험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실용적인 농담을 할 수 있어야 했다. 이러한 조직문화 전반에 걸쳐있는 ‘익살스러움’은 고객에게까지 전달되었다.모든 비행기에는 다양한 그림이 장식되어 있고, Herb Kellerher회장은 기자회견에서 닌자거북이 복장을 하고 직원과 랩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익살스런 분위기는 사우스웨스트 항공을 이용하는 고객을 즐겁게 해줄 뿐 아니라 일하는 직원들 스스로가 일을 즐겁게 받아들이게 하는 역할을 하였다.“사우스웨스트에서 일하는 것은 즐겁습니다. 일을 인생의 낙으로 즐기는 사람들로 채워지기 때문입니다. 출근하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합니다. 일하는 분위기가 가볍고 즐거우니 일하러 오는 게 좋을 수밖에 없습니다.”이렇듯 유머가 고객을 즐겁게 하고, 사내 분위기도 흥겹게 한다고 보고 유머를 활용한 다양한 아이디어 덕분에 사우스웨스트 항공을 이용하는 승객들은 이에 만족하고 다시 찾게 되었으며, 이곳 직원들 역시 즐겁게 일을 할 수 있었다.또한 능력은 교육에 의해 바꿀 수 있지만 태도는 바꿀 수 없다고 보고, 팀워크를 중시하는 인원을 선호했다. 이를 위해 사우스웨스트 항공은 동료 채용 제도를 선호했다. 예를 들면 조종사는 동료 조종사를 채용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채용 예정 조종사에 대해 많은 정보를 수집하여 자신이 속한 조직문화에 어울릴만한 동료를 선택할 수 있다. 그래서 팀워크를 중시하는 사우스웨스트에서 자신과 가장 손발을 잘 맞출 수 있는 동료와 함께 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3) 교 육탁월한 인재는 언제 어디든 갈 수 있고, 경쟁업체가 트의 핵심가치를 다양한 방식으로 전달하고 강화하고 있다.(4) 운 영사우스웨스트의 운영 방식은 고객 서비스를 우선 과제로 삼았으나, 직원들 최우선과제로 삼았다. 이에 ‘직원최우선주의’를 내세워 고객에게 최선을 다하되 직원들의 자존심과 명예를 더럽히는 고객들은 서비스할 가치가 없다고 하여 ‘가치 있는 고객’ 개념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이는 사우스웨스트의 핵심가치이기도 하다.그리고 사우스웨스트는 9개의 노조가 설립되어 있으며, 직원의 89%가 노조에 가입하고 있다. 그러나 창립 이후 한건의 파업 이외에는 노사 간의 큰 대립이 없었다. 이는 사우스웨스트 항공의 경영자들이 노조 대표를 직원들의 대표로 인정하고 존중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노조와의 파트너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 노조에 회사 정보를 제공하는 등의 노력을 하였다. 이러한 장기적인 노력의 결과로 사우스웨스트 항공의 노조 및 그 구성원은 회사에 대한 애사심과 주인의식을 갖게 되어 회사와의 충분한 대화가 가능했다. 이에 직원들은 회사와 자신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일한 결과 화물 취급, 정시 운행, 고객만족 건수의 3개 분야에서 3관왕에 오를 수 있었다.(5) 복 지사우스웨스트의 가장 큰 복지정책은 FUN&가족 경영에서 나오는 만족감이다. 자신이 하는 일이 재미있고 즐겁다면 그보다 더 나은 복지정책은 있을 수 없다. 그리고 ‘가족경영’을 실제 복지정책으로 보여주어 구성원들에게 확실한 인상을 심어주기도 한다. 예로써 직원들의 생일, 결혼기념일, 가족의 경사는 물론 크고 작은 성과를 ‘직원 LUV제도’를 통해 특별한 방법으로 축하해주도록 하였다. 뿐만 아니라 퇴직한 직원에게 어려운 일이 생기면 회사가 나서서 도와주기도 하였다. 또한 직원들이 서로 격려하고, 감사하며, 칭찬하는 습관이 몸에 배도록 하여 공적인 인간관계를 우정이나 가족 간 유대 관계로까지 확대하는 대가족적인 방식의 업무 환경 조성을 위해 노력하기도 하였다.또한, 사우스웨스트 항공에서는 직원들을 위한 재난 펀드를 운영하고, 직원들이 가정생활에 헌신, 가장 일하고 싶은 기업으로 인재들이 선호하는 기업을 이룰 수 있었다.3) 유연한 구조(1) 의사결정 권한 위임Herb Kellerher는 일선에 있는 직원들에게 자유롭게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가능한 많은 권한을 주고자 하였다. 이는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결제를 위한 시간적 낭비요소를 줄이고 직원들의 책임의식과 주인의식을 배양하는데 있었다. 또한 실무에 있는 직원에게 의사 결정권한을 주어 실제 상황에 가장 적합한 결정을 내리도록 하여 회사 측에 있어서 가장 신속하고 정확한 의사결정을 내리는데 도움을 줄 수 있었다.(2) 협동심을 불러일으키는 구조그리고 직원들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든지 실수를 했을 경우에도 해당 직원이 고객을 위해 자신이 최선이라 판단하여 행동하였다면 그 결과가 좋지 않다 할지라도 그로 인해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 방침을 세웠다. 이를 위해 직원의 의사결정권한을 넓혔으며 책임의식을 강하게 만들었다. 또한 직원의 고유 임무 이외에도 다른 업무를 볼 수 있게 하고, 이미 퇴직한 직원이라 하더라도 정당한 대우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생각을 직원들에게 전달하여 조직원들의 협동심과 애사심을 불러 일으켰다. 결국 이러한 조직구조를 통해서 구성원들은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의견을 제시하고, 서로를 배려하고 협동하는 동시에 주인의식을 갖게 하여 직원들로 하여금 자긍심을 느끼게 하였다.Ⅲ. 결 론1) 사우스웨스트의 조직문화사우스웨스트 항공의 조직문화는 사람 즉, 직원을 소중히 여기는 경영철학에서 시작되었다. 직원을 소중히 여겨 그들에게 각종 복지와 혜택 그리고 FUN경영과 가족분위기를 통해 만들어지는 즐거움을 준다. 이러한 즐거움은 고객들에게 전달되어진다. 뿐만 아니라 직원들의 동기유발을 통하여 그들이 고객들의 니즈를 스스로 파악하고 경영에 직접적인 의사를 표출하여 기업의 성장 동력이 된 것이다. 이러한 공유가치와 구성원들의 영향으로 인하여 사우스웨스트 항공 특유의 조직문화를 형성해 나간 것이다.또한 직무만족을 위한 시스템을 통하여 직원들에게 자유로운 직장분위기를 .
< 현대사회와 민주주의 Report>한국 민주화 운동에 대한 고찰- 70, 80년대 민주화 운동을 중심으로 -- 목 차 -Ⅰ. 들어가며Ⅱ. 개념의 정립Ⅲ. 한국 민주화운동의 시기별 구분과 특징, 주체1) 1970년대 유신체제하 민주화운동2) 1980년대 5ㆍ18광주민주화 운동과 6월 항쟁Ⅳ. 맺음말- 참고문헌과 목 명 : 현대사회와 민주주의지도교수 : 이 종 오 교수님학 과 : 사 학 과학 번 : 60080285이 름 : 이 주 봉제 출 일 : 2012.12.05(수)Ⅰ. 들어가며대선을 앞두고 ‘정치 민주화’, ‘경제 민주화’와 같이 민주화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또한 박근혜 후보자로 인해서 과거사 진상규명과 광주시민의 명예회복과 같은 과거 민주화 운동에 대한 여러 가지 사안이 다시 대두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한국 사회의 정치적 불안과 갈등을 초래하여 사회적 문제시 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민주화’라는 용어에 관한 진정한 의미를 알지 못하고 있으며, 심지어 정치적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이를 두고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말이 있는데, 이러한 말이 나온 것은 그리 최근의 일이 아니라 한국 민주화 이후 끊임없이 등장해 온 말이다.이러한 현대 사회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한국의 민주화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지식이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하여 본서에서는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하는 근본적인 방안으로 한국의 민주화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촉구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한국의 민주화에 대한 전반적인 흐름을 시기별로 구분하여 핵심사항을 서술하도록 하겠다.Ⅱ 개념의 정립우선적으로 민주화 관련 개념에 대해 명확히 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민주화란 권위주의나 파시즘과 같은 비민주적 상태로부터 또 다른 상태인 민주주의로 변화하는 동태적인 과정을 지칭하는 것이다. 민주화의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민주화 운동의 개념 또한 중요한데, 민주화운동은 민주화를 야기해 비민주주의, 반민주주의를 민주주의로 민주헌정질서의 확립에 기여하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회복 신장시킨 활동으로 규정하고 있다.즉, 한국 민주화운동은 한국의 민주주의를 세우고 확대하기 위한 운동이며, 이를 위해 수행한 운동 모두가 한국 민주화운동인 것이다.하지만 민주화와 민주주의의 관계는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왜냐하면 모든 민주화운동이 민주화에 긍정적으로 작용해해 민주주의를 반드시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며, 또 민주화에 긍정적으로 작용해 민주주의를 가져다주는 변수들 중 유일한 것이 민주화운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의 민주화운동 역시 그 주관적 의도와는 달리 민주화에 기여했다기보다는 오히려 권위주의를 강화하는 효과를 가져다주는 경우도 적지 않게 발생하였었다. 예를 들어, 80년 신군부의 광주학살의 경우 단기적으로는 민주화 운동을 좌절시켜 한국 민주주의를 뒤로 후퇴시켰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오히려 그 잔인한 학살을 통해 80년대의 치열한 민주화운동을 불러옴으로써 민주화에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Ⅲ . 한국 민주화운동의 시기별 구분과 특징, 주체한국 민주화운동의 특징을 살펴보기에 앞서 한국 민주화 운동의 과정을 간략하게 서술해보도록 하겠다.민주화운동을 시기적으로 구분해 봤을 때 1기는 64년 한일회담 반대 운동부터 유신체제 이전까지의 기간으로 기본적으로 자유주의적 헤게모니 하에 정치적 민주주의를 중심적인 투쟁의 목표로 했던 시기이다. 물론 60년 4ㆍ19혁명 이후 다양한 진보적 운동이 복원되어 사회경제적 민주화운동이 활성화되기도 했고, 70년대 초에는 전태일의 분신, 철거민들의 광주학살 이후 국민대중의 생활 등 사회권에 대한 투쟁이 벌어졌다. 그러나 이것은 부차적인 것이었고 당시의 민주화운동의 특징은 박정희 정권의 군사독재로부터 정치적 민주주의를 회복하려는 자유주의적 운동이었다. 이는 이 시기 민주화운동을 주도했던 주체들의 성격과 무관하지 않다. 당시 민주화운동의 주체는 재야, 학생등 주로 비판적 성향의 자유주의 세력들이 중심을 형성하고 있었다.제2기는 유신체제 이후부터 87년 6월 항쟁까지의 시기과 학생 재야세력이 함께 연합하게 되었다. 80년대부터는 노동자 운동이 정치세력화 되었고 노동 운동의 발전이 기대 되었다. 이 전과는 달리 운동이 이념화 되었고 운동의 사회적 폭이 넓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중심을 구성한 것은 과거의 자유주의적 세력이 아니라 비타협적인 반 독재투쟁을 주도한 급진적 민주화운동세력이었다.제3기는 1987년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이다. 이 시기는 87년 6월 항쟁의 결과로 합법적 공간이 차단되어지다가 넓어지면서 그동안 억눌려 왔던 다양한 운동들이 분출되면서 노동자, 농민들로부터 학생과 급진적 지식인들에 이르는 다양한 세력들의 사회경제적 민주화운동, 생산자 민주화운동, 대외적 민주화운동 등을 통해서 급진적 민주화운동이 정점을 이루던 시기이다. 어떻게 보면 제2기와 비슷한 이 시기를 별도로 다루는 이유는 제2기에 시작된 다양한 급진적 민주화운동이 피크를 이루었다는 점도 있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로, 주체의 변화가 있기 때문이다.하나는 그동안 반독재투쟁을 위해 연대해 왔던 자유주의적 세력인 정치적 민주화에 주된 관심이 있는 정치적 민주화운동세력과 급진적 민중세력인 사회경제적 민주화운동, 생산자 민주화운동, 대외적 민주화운동 세력 간의 분화와 대립이 생겨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또한 급진적 운동과 관련해 기존의 학생과 지식인이외에도 노동자, 농민 등 기층민중계급이 중요한 주체로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시민운동은 아직 핵심적인 운동으로 자리 잡지는 못했던 시기이다.그렇다면 이러한 시대적 구분을 배경으로 보다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다.1) 1970년대 유신체제와 민주화운동이승만 정권 동안 노정된 지배체제의 문제점은 반공체제가 독재의 기반으로 기능한다는 사실과 원조경제로 인하여 정경유착의 부정축재, 종속의 심화, 농촌의 피폐 등의 다양한 문제들이 초래되었다는 사실이다. 4ㆍ19혁명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해결을 요구한 것이다. 즉 민주주의의 실시와 더불어 평화통일을 추구하고 원조경제의 폐해에 대하여 자립적 경제발전을 모색해야 했던 것남 민중의 요구가 연관되어 되었다.유신체제는 외면적으로 볼 때 당시의 발전과정에서 적합하며 강력하게 보였지만, 사실상 변화하는 국제정세와 분출하는 사회내부의 제반요구에 대한 합리적인 대안이 되지 못했다. 국제적으로 특히 한미관계에서 유신체제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들이 발생하였고, 국내적으로는 유신독재와 민주화운동 사이의 양극적 대립이 첨예화되었기 때문이다.박정희 정권에 대한 반대인 6, 70년대 민주화 운동은 다음의 2기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제1기는 1960년대의 제반모순들이 빈번하게 표출되는 가운데, 한일회담 반대 및 삼선개헌 반대 등 박정희 정권의 권위주의로 인해서 현실이 민주적이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더 나아가 2기는 현실뿐만 아니라 법 까지도 민주적이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하게 되었다. 제2기는 유신체제가 수립된 이후 학생운동을 비롯한 민주화 운동의 사회적 범위가 넓어져 요구가 빈번하게 분출되자, 이에 대하여 박정희 정권은 계속되는 무력진압으로 대응했던 시기이다. 이러한 조치를 통해 내부적으로 표출되었던 민주화운동이 외부로 표출 되어 폭발적으로 전개되었던 시기이다.유신독재와 민주화운동 사이의 극단적 대립은 1979년 10월 4일 신민당 김영삼 총재의 국회의원 제명처리에 자극받아 15일부터 부산, 마산, 창원 등에서 발생한 민중들의 항쟁으로 나타났다. 지금까지는 박정희 정권 대 민주화운동 사이에 대립의 주기적 격화에 그쳤지만, 그것이 극에 이르자 일반 민중들이 민주화운동에 직접 참여하게 된 것이다. 즉 사회적 계층의 참여 범위가 학대된 것이다. 이에 대하여 박정희 정권은 비상계엄과 위수령으로 대처하였고 공수부대를 투입시켰다. 그러나 아래로부터의 대규모 민중 운동으로 인해서, 인에 대한 대응방안을 둘러싸고 권력 내부의 분열이 발생하게 되었고 결국, 10ㆍ26사건이 발상하였다. 그리하여 박정희 정권의 유신독재는 붕괴하게 되었다.2) 1980년대 5ㆍ18광주민주화 운동과 6월 항쟁광주민주화운동은 한국 민주화 운동에 있어서 가장 중요민주화운동으로 발전하였고, 이로 인해 6월 항쟁이 조직적 이념화를 통해 일어났던 것이다.신군부는 박정희 피살로 유신독재가 붕괴되면서 불안감으로 인해서 군사독재체제가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민들에게 성공적으로 접목될 수 있는 특정한 편견을 주입함으로써 계획된 권력 장악 계획을 성공시키기 위한 고려에서 기획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계획에 동원된 것은 분단으로 인한 사상적 결함과 지역대결구도에서 비롯된 지역감정이라는 한국사회의 두 가지의 구조였다. 말하자면 ‘빨갱이’와 ‘전라도’라는 상호 무관한 두 극단적인 편견을 연결지어, 상호간에 상승 작용을 일으켜 폭발적으로 증폭시킴으로써 민주세력과 독재세력의 대결구도를 이념적이고 지역주의적인 것으로 왜곡하였던 것이다. 이로 인해 유신체제의 억압구조에서 벗어나 민주화를 요구하는 민중ㆍ시민세력을 특정 편견을 통해 정복하여, 위기에 직면한 군사독재체제를 재생산하고자 했던 시도인 것이다.광주 민주화 운동의 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이의 발단이 되는 것은 5월 18일이다. 광주로 진격한 계엄군의 무차별적인 진압과 폭력 그리고 김대중의 체포가 발생하였고, 이로 인해 학생과 시민들이 반기를 들었다. 이는 대규모 시위로 발전하여, 신군부는 이를 진압하기 위해 공수부대를 증파했다.하여 5월 19일부터 22일 오전까지 학생ㆍ시민들의 시위가 광주 전역과 인근 시ㆍ군까지 확대되면서 민중봉기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를 진압하고자 공수부대는 무차별적인 폭력과 발포를 하였고, 시민과 학생들 가운데 대규모의 사상자가 발생하면서 광주민중은 시민군을 조직하고 무장투쟁을 전개한다.5월 22일 오후부터 5월 26일까지 시 외곽과 교도소, 군부대를 제외한 광주시 전역으로 시민군이 확대되어 나아갔다. 시민들의 저항이 거세지자 신군부는 계엄군을 일단 시 외곽으로 철수하고 사태를 관망하면서 재진입 작전을 준비한다. 반면, 광주시는 경찰서, 파출소, 언론기관이 파괴되고 모든 치안질서를 항쟁지도부가 장악하게 된다. 22일부터는 항쟁지도부도 체계.
첨단과학의 이해 독후감 Ⅰ를 읽고바이오 테크 시대에 진입으로 인해 등장한 인류 최대의 과제는 무엇일까?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바로 생명공학과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이들은 바이오테크시대라는 새로운 변화의 시대에서 우리에게 많은 이로움을 줄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물론, 그에 때란 부정적인 측면으로서 여러 가지 폐해를 예측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이로운 점이 부각되어 조금 소홀해왔던 부분이 많다. 하여 저자는 이러한 생명공학으로 인해 발생할 사회·경제·기술·윤리적 문제들을, 생명공학의 발전 과정을 통해 살펴보고 있다.생명공학 시대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유전자이다. 저자는 이에 대해 유전자를 ‘녹색황금’이라고까지 표현하고 있어 그 중요성을 알 수 있다. 하여 유전자를 통한 다양한 연구가 이루어졌고, 이종간의 유전자 조합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는 상업성과 결부되면서, 유전 형질을 차지하기 위한 생물해적 행위 등 유전자 수집을 파생시켰다. 하여 유전회사들은 그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협약을 체결하여 국제법적 준비를 한 상태이다. 이러한 논쟁은 생물특허라는 특화된 부분에서 다국적으로 발생하고 있어 많은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생명공학은 이러한 경제학적 문제뿐만 아니라, 지구 생태계 환경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이종간의 유전자 조합을 통한 새로운 종의 창조 행위는 자연 순리에 벗어나는 것으로, 지구 생태계에 유전자 오염 현상 등을 초래할 수 있다. 이러한 잠재적 위협을 막기 위하여 예측 생태학 등이 파생되고 있지만, 발생하지 않은 부분에 있어서의 연구이기에 투자금이 적어 제대로 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전자 오염현상은 유전자 변형에 대항하는 새로운 슈퍼박테리아, 슈퍼곤충들의 등장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은 심지어 인간의 생명까지도 위협한다. 인간의 질병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병원균 연구를 통해서 이는 더욱 심화될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유전자가 조작된 병원균의 방출로 인한, 치명적 유행병이 범지구적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충분한 상황인 것이다. 또한 유전적 변형 식품의 섭취로 다양한 알레르기 반응을 나타낼 수도 있다.그렇다면 이러한 잠재적 위협이 가장 큰 문제일까?또 하나의 문제점으로 제기할 수 있는 것이 생명의 존엄성에 관한 윤리적 측면의 문제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은 생명공학을 통해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 위협이었다. 하지만 생명의 존엄성에 관한 윤리적 측면에서의 문제점들은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점인 것이다. 보다 인간에게 직접적인 잠재적 위협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을 때, 생명공학을 발전시키기 위한 실험의 대상인 동물들에 관한 인식은 중요시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은 무분별한 유전자 조작으로 그 고유 본성과 존재성의 측면에서 그 의미를 상실해가고 있는 실정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실험이 확대되면서 인간도 이러한 실험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어 여러 인권단체에서의 반발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이러한 무분별한 유전자 조작 실험으로 인해 고유 형질을 가진 유전자는 줄어들게 되었고, 대신 유전적으로 보완된 제 2의 창조물이 지구상에 방출되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은 단기적으로 경제학적 이익을 가져다줄지 모른다. 하지만 결국엔 지구 생태계 파괴, 유전자 오염, 윤리적 측면에서 많은 문제점을 파생시켜, 실패로 돌아갈 것이다.소설가 ‘헉슬’이 주장한대로 우생문명은 우리에게 가까이 있다. 우생문명, 우생학은 지금의 유전자 변형 연구가 조금만 심화된다면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태아의 단계에서 병을 확인, 치료할 수 있는 상황에서, 유전적 변형까지 가능하게 된다면 유전학적으로 추구하는 가장 완벽한 아이를 낳을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바로 우생학적 개량이며, 유전적 낙인인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느 누가 완벽함을 추구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우생학적 결정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필수불가결한 것이 될 것이다.사회는 점점 유전공학의 소비자 개념이 확대되고 있다. 유전공학은 이제 일반 대중들에게 까지 밀접한 관련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는 바로 위에서 언급한 우생사회의 출현과 관련된 토대와 관련이 있다.우생사회의 출현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문제로 ‘차별’을 들 수가 있다.인간게놈 프로젝트 등의 다양한 연구를 통해 인간을 구별 짓던 여러 가지 요소들이 후천성론에서 선천성론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러한 것들은 일반 대중과 더욱 관련되어 지면서 확대되었고, 유전자 검사 기술 출현으로 사회 각 부분에서 유전자형에 의한 새로운 차별이 발생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차별은 사회적 문제의 가장 중심에 있을 것이다.현대 사회에는 바이오테크 시대와 관련되어 여러 가지 영화, 소설 등이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것들을 통해서 이 분야에 대한 어느 정도의 기본적인 지식을 습득하였으며, 주로 폐해에 대하여 인식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황우석 박사의 연구 때에 잘 나타났다. 생명공학을 통한 인간복제에 대한 반발하는 여론이 심화되어 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때에도 이익적인 부분이 훨씬 상회할 것이라는 추측으로 연구가 지속되었었다. 이는 비록 그 연구의 결과가 좋지는 않았지만, 사회 전반적으로 연구에 대한 묵시적동의가 이루어졌던 것이다.하여 이러한 생각을 지금까지도 가지고 있던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어느 정도의 기본적인 지식과 폐해에 대해서 알고는 있었지만, 저자가 직접적으로 제시한 내용들을 읽으면서 저서가 비록 최신의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 번 이러한 문제점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주었다.생명공학은 양날의 검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휘두르면 양쪽이 모두 날이기 때문에 적에게 피해를 줄 수 있지만, 잘못하면 자신에게 돌아올 타격이 큰 것이 양날이 검이다. 바이오테크 시대 생명공학은 다른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빠른 성장속도를 보여 사회 전반적 기능을 더욱 상승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다양한 분야에서 잠재적 위협이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부분 역시 생명공학을 통해 완화시킬 수 있다는 주장 역시 일각에서 존재하고 있으나, 오히려 이러한 것을 통해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되지 않을까 싶다.
를 통해 살펴본 새로운 역사 시각- 동아시아 속의 고대 역사상에 대한 비판과 새로운 시각 -목 차1. 들어가며2. 국민 국가와 함께 재해석 된 고대사1) 표상으로서의 광개토대왕비문2) 발해사를 둘러싼 민족과 국가3. 동아시아 세계 속의 일본사1) 동아시아 문화권2) 근대 국가의 형성과 일본사에 대한 고찰4. 나오며0. 들어가며90년대 이후 근대사회에 들어오면서, 불안정해지기 시작한 아시아의 한, 중 일 3국 사이의 질서는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중국의 동북공정 등의 역사 재 편찬 움직임으로 인해 최근 더욱 심화되고 있다. 특히 독도의 영유권에 대한 한국과 일본의 갈등이 본격적으로 국제사회에 등장하게 되면서, 역사적인 근거에 대한 서로의 입장 표명 다툼이 치열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하여 대중의 역사에 대한 인식의 중요성이 강조되었으며, 역사적 근거를 찾기 위한 다양한 연구가 이루어지게 되었다.하지만 이러한 다양한 연구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갈등을 조장한 역사적 근거의 대부분이 각국의 역사적 입장의 차이에서 발생하여, 그 갈등이 해결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각국이 제시하는 역사적 사실들의 대부분이 사실(史實)을 해석하는 역사가의 사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어떠한 사실의 해석이 가장 타당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알 수 없고, 사관에 따라서 그 시대의 조류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반 대중들은 각국에서 해석된 역사에 대한 막연한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역사적 분쟁이 일어나면 당연히 그 나라의 해석이 맞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감정에 치우쳐 민감하게 반응해 갈등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특히 아시아 각국의 고대 역사는 국민 창출의 이야기가 되어 마치 공동체의 동일성을 확인하기 위한 이데올로기로서의 문화론이 되어버린 것처럼 보인다. 이는 전통, 국민성, 경계, 정체성과 같은 용어와 개념이 자주 사용되는 고전적인 정적 모델에 기초하고 있어서 민족 상호의 편견을 조장하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고대사는 국민의 정체성 근거로서의 역할을 하며, 아시 정치적 의도로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민족이라는 말이나 각국의 역사 설정 범위, 동아시아라는 용어나 우리가 전통으로 알고 있던 고대의 많은 문화들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문제로 제기한다. 고대와 전통으로 알고 있는 많은 것들이 역사 그 자체로서 보이는 게 아니라,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세계정세에 따라서 만들어진 하나의 텍스트라는 것이다. 오랜 세월 역사적 논쟁거리인 광개토대왕릉비의 해석문제, 발해사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이며 동아시아는 어떻게 만들어졌고 일본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한 객관적이고 냉정한 평가를 내려 우리도 모르게 주입되었던 만들어진 고대의 역사상을 해체하고 새로운 고대 동아시아의 역사상의 재구축을 시도하고 있다. 저서에는 이러한 사항에 대한 문제의식 뿐만 아니라, 비판 그리고 저자의 제안까지 제시되어 있다.2. 국민 국가와 함께 재해석 된 고대사1) 표상으로서의 광개토대왕비문‘고대사에 나타난 국민국가 이야기’에서 저자는 본인의 주장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전통과 국민성을 형성하는 도구로서 고대사를 동원하였다. 그 대표적인 것들이 발해사와 견당사이다. ‘표상으로서의 광개토대왕비문’ 역시 이러한 과정에서 도출된 것이다. 즉 광개토대왕비문은 고구려의 텍스트라는 사실을 초월하여 근대 동아시아의 국가의 컨텍스트에 따라 해석되고 있는 것이다.일본의 기존의 해석은 비문에서 근대와 아주 비슷한 국제 정세를 읽어 내어 비문에 표현된 ‘왜’에 대하여 일본으로 해석하여, 고구려의 텍스트를 일본의 텍스트로 전환하였다. 이에 대하여 한국 역시 이러한 내용을 반박하고 고대 역사의 우수성을 보여주기 위하여 한국의 텍스트로서 비문을 해석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고구려 텍스로서의 비문에는 없던 새로운 의미가 창출되었고, 비문은 바로 근대의 표상이 된 것이다. 하여 저자는 기존에 나와 있는 역사적 관점에서 벗어나 새로운 해석을 제시한다. 기존에 충분히 검토되어지지 않았던 부분인 광개토대왕비가 ‘무엇 때문에 세워졌을까?’에 초점을 맞추었다. 하 고구려 수묘역 제도의 문란을 바로잡기 위한 것이었다. 고구려의 독자적 제도였던 수묘역 체제는 당시 왕도에서 횡행한 수묘인의 매매로 인해 심각한 문란을 일으켰다. 하여 비석말미에 금령과 벌칙을 붙여 법령 선포의 매체로 사용한 것이다. 또한 비문의 ‘왜’ 는 고구려의 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난적이면서도, 광개토대왕의 위대함을 돋보이게 하는 트릭스터로서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즉 ‘왜’의 존재가 고구려의 질서 세계를 독자인 지배 공동체 내부 관계자들에게 명확하게 하고, 광개토대왕의 위업을 빛나게 헤 수묘역 체제의 수호를 사명으로서 나타낸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저자는 ‘왜’를 트릭스터의 역할로 표현한 것이다.이러한 정황을 통해 ‘표상으로서의 광개토대왕비문’ 이라는 용어 또한 사용한 것이다.그래서 광개토대왕비문을 둘러싸고 기존의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동일한 지평에서 끊임없는 담론의 충돌이 형태를 바꾸어가면서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저자는 근대에 형성된 고대사상을 해체하고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 것이다. 그리고 고대의 기록을 해석함에 있어서, 그 기록을 현재의 상황에 초점을 맞춘다거나 현재와의 유사성을 찾아내는 방식의 근대적 역사 해석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고 있다.2) 발해사를 둘러싼 민족과 국가발해사에 있어 현재 국제적인 중심 과제는 발해를 구성하는 민족이 오늘날 어느 민족에 귀속하는가 하는 족속 문제에 있다. 이에 대하여 각 국이 주장하는 발해사에 대한 민족과 국가에 대한 내용은 각 국의 서로 다른 입장 차이로 인해 그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한국은 발해의 지배계급이 고구려 출신이며, 고구려 문화의 문화적 요소를 계승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또한 ‘남북국 시대론’ 즉, 현재의 분단 상황을 투영하는 사론을 통해 발해가 한국의 역사임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중국은 발해를 중국의 지방정권으로 보고, 반박하고 있다. 발해의 지배계급이 고구려인이라 할지라도 다수 종족이 말갈임을 들어 말갈족의 나라이며 현대의 중국으로 이어지는 중국의 역사라는 것이다. 또한 발해다만, 일본은 발해의 문화수준이 야만상태이며, 당·고구려의 문화적 식민지로서 종속되어 있다고 본다. 이를 통해, 발해의 타율적이며 비주체적인 사항으로 인해 일본에 대한 조공, 근대의 만주 침략 정당화의 학문적 뒷받침으로 사용하고 있다. 러시아는 발해 문화의 독자성을 강조하면서, 국제적인 관점에 서서 극동 여러 민족의 정치·경제·문화적 독자성을 밝히고 있다.이러한 각 국의 주장에서 벗어나, 저자는 발해가 수령제를 통해 중앙지배 권력의 이민족·이종속을 예속시키고 있던 다민족 국가라는 측면에서의 발해사 이해의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 국가의 정체성이란 일부 지배층의 성격만을 가지고 규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발해를 단순히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 로만 파악하려는 것도 발해의 여러 성격 중 너무 협소한 이해인 것 같다. 발해가 고구려 계승을 표방한 국가라 하더라도 이후에는 분명 발해 나름의 독자적인 문화를 발전시켜 나갔을 것이다. 발해사에 있어서 고구려를 계승한 측면에 대해서도 분명 조명이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발해의 독자적 발전양상을 도외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하여 이러한 형태를 가진 국가의 민족 구성을 오늘날 어떠한 민족으로 명확하게 규정하는 것이 불가능하기에, 근대 이후에 파생된 민족이라는 개념을 통한 역사 논쟁에 대하여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오늘날 민족 개념을 세계적인 관점에서 보고, 나아가 이를 상대화해 볼 것을 촉구하며, 지금의 발해사 문제 역시 이러한 관점을 통해 볼 것을 제시하고 있다.3. 동아시아 세계 속의 일본사1) 동아시아 문화권‘동아시아’라는 단어를 앞에 붙여 동아시아 세계, 동아시아 문화권 등을 통해 역사 문화를 호칭하는 것이 최근 일본에서 일반화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저자는 동아시아의 유래와 이러한 세계론의 유효성과 그 의미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동아시아는 일국사의 틀을 상대화하여 그러한 역사의 관점에서 벗어나 세계사적 관점에서의 역사 이해를 위해 설정된 것이다. ‘니지시마 사다오’는 한, 중, 일, 베트남을 포함하는 지역을 이해하려는 것이다. 그러한 동아시아 세계를 형성하는 문화권을 한자문화권이라 일컬으며, 한자를 공유하고 그것을 매개로 하는 유교·율령·한역불교를 그 공통의 문화로 규정하였다. 이러한 문화권을 형성한 정치구조로 중국의 책봉체제를 들고 있다. 책봉체제로 인해서 책봉을 받은 나라는 중국 문화를 수용하는 한편, 이 책봉관계를 통해 중국 문화권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치권과 그로인해 문화권의 일체가 된 자기 완결적 세계를 동아시아 세계라 한 것이다.여기서 저자는 문제를 제기한다. 바로 동아시아라는 지역의 범위 혹은 지역 규정성의 애매함과 중국문화권의 확장이 오로지 책봉을 통해 설명될 수 있는가 이다.니지시마 역시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했고, 이에 대해 동아시아의 영역이 유동적이어서 고정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고 하였다. 하지만 이 외에도 근대 사용된 지역 호칭으로서의 ‘동아’와의 명확한 차이가 논의되지도 않은 채 동일어의 다른 표기인 ‘동아시아’가 무의식적으로 사용된 점도 추가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사항이다.그리고 저자는 한자의 정착과정을 설펴보면 주변민족 상호간 교류 속에서 한자가 정착되었고, 더 나아가 목간(木簡)이나, 한글, 가나, 쯔놈 등의 각자 고유한 문자의 발명으로 이어졌다는 주장하며 중국문화권의 형성에 대한 의문점을 제기한다. 또한, 중국의 책봉체제를 받아들여 주변 국가와 민족을 자신들의 책봉체제로 편입하려는 노력을 하여 중국으로부터 독자성을 유지하면서 고유한 역사와 문화를 발전시켜 왔다고 말한다.하여 저자는 니지시마의 동아시아 세계론이 일국사의 폐쇄성을 넘어 선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으로 보았지만, 중국과의 대조 속에서 일본사를 만들어 근대적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한계점을 지적한다. 또한 이는 한국 학계에서 거의 일반화 되어 있지 않으며, 일본이라는 요소가 너무 강조되어 틀 자체에 대한 불신감으로 경계심, 위구심을 일으키는 본질적 요소가 내재되어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것들로 인해서 민족적인 반발을 초래해 현실적인 과제로서 안이하게 적용될 수 없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