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
Bronze개인
팔로워0 팔로우
소개
등록된 소개글이 없습니다.
전문분야 등록된 전문분야가 없습니다.
판매자 정보
학교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직장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자격증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판매지수
전체자료 1
검색어 입력폼
  • 안셀무스에 있어서 신존재 증명과 이에 대한 철학자들의 비판과 영향
    안셀무스에 있어서 신 존재 증명1. 안셀무스의 생애 및 시대적 배경안셀무스는 1033년 말에서 1034년 초, 이탈리아 북서부 지방의 작은 도시인 아오스타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이미 배넥딕트회 수도원에서 엄격한 종교적 훈련과 더불어 정규 교과과정인 문벅학, 수사학, 논리학(변증론) 등을 배웠다. 그 이후 안셀무스는 프랑스 등 다양한 지역을 전전하면서 여러 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안셀무스가 여러 학교에서 공부하던 1050년대는 베렌가리우스와 란프랑쿠스) 사이에 격렬한 논쟁이 벌어진 시기였다. 이 두 사람의 논쟁은 안셀무스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 직접적인 도움을 주기 때문에 주목할 만하다.)베렌가리우스와 란프랑쿠스는 샤르트르 대성당 학교에서 함께 공부한 동문이였고 한 때는 두 사람 모두 문법학과 변증론에 심취하였었다. 그러나 란프랑쿠스는 종교적인 회개를 체험하면서 변증론을 포기하였고 그에 반하여 베렌가리우스는 계속해서 의 도움을 받아 성찬교리를 이성적으로 설명하려 했다. 베렌가리우스의 이런 시도는 교회에 대해 깊이 이해하려는 것이었지만, 신학의 핵심 교리에 지나치게 기계적으로 변증론을 적용한다 하여 반 변증론자들로부터 강한 반발을 일으켰다. 특히 란프랑쿠스는 성서 및 교부의 권위를 가지고 베렌가리우스를 비판하였다. 하지만 베렌가리우스는 이에 굴하지 않고 당시 성직자들이 하나님의 전지전능함을 근거로 하여 강요하던 주장들이 신앙의 합리성에 어긋난다고 역설했다. 결과적으로 볼 때 종교의 권위 때문에 란프랑쿠스의 승리로 끝났다.신앙에 대한 이성적 접근의 시도에서 발생한 논쟁은 철학이 종교의 영역에서 생기는 문제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논쟁들은 당대에 학문적 토론을 통하여 결정되는 것이 아닌 외부적 권위가 논쟁에 개입된 것이기에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교회는 변증론자들을 처벌할 수는 있었으나 그런 지식 자체를 없앨 수는 없었다. 이 때문에 점점 교회도 변증론과 같은 학문을 소멸시키기보다는 활용하는 방향으로 신학 전체의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로서를 배제한 이유는 결코 성서를 무시해서 아니다. 그의 목표는 성서의 내용들이 이성에 부합하다는 것을 증명하여 성서에서 다루는 내용들이 믿을 만한 것으로 드러내는 것이었다. 즉 그는 순수 이성을 통하여 신앙에 도달하고자 한 것이다.『프로슬로기온』에 등장하는 존재론적 증명에 들어가기에 앞서, 존재론적 증명이 가능케 하는 『모놀로기온』의 내용을 짚고 넘어가도록 하자. 앞서 말했듯이 안셀무스는 그의 저작에서 계시의 힘을 빌려 입증하는 내용은 전혀 없고 오로지 이성의 힘에 의하여 입증되는 내용만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모놀로기온』에서는 하느님의 존재에 대한 논증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부분들이 있긴 하다. 이 논증은 두 원칙을 받아들일 것을 전제한다. 첫째로 경험에서 관찰할 수 있는 사실로서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원칙, 즉 사물들은 완전에서 동등하지 않다는 원칙이다. 그 다음으로 일종의 즉각적인 지성적 증거 곧 좀 더 높은 정도나 좀 더 낮은 정도의 완전을 가진 사물들은 그 완전을 가장 높은 완전에 포함되어 있는 동일한 완전으로부터 그 완전을 얻는다. 즉, 상대적인 것들은 언제나 절대적인 것의 분유)이며 그러므로 절대적 존재는 그 분유들의 존재에 의하여 요구된다는 사실이 될 것이다.))안셀무스의 신 존재 증명이라 하면 프로슬로기온 제2장부터 제4장 사이에 나오는 을 말하는 것이다. 아래에 소개될 존재론적 증명을 통하여 안셀무스는 하느님에 대한 관념으로부터 하나의 실재자로서의 하느님으로 나아간다.논증의 첫 번째 단계1) 하느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어리석은 자도, 이라는 표현을 들으면 그가 듣는 것을 이해한다.2) 이해한다는 것은 지성 속에 존재한다와 동일한 것이기 때문에 그가 이해하는 것은 자신의 지성 속에 존재한다.어떤 것이 지성 속에 존재할 때, 물론 그것이 실제로도 존재한다는 사실은 아직도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어리석은 자라도 이 지성에는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해야한다.논증의 두 번째 단계1) 만일 어떤 것이 지성 속에서만 존재한다면 그것보다 더 참으로 존재하고, 따라서 존재하지 않는다고는 생각조차 될 수 없다.이로써 안셀무스가 목표한 하느님(그것보다 더 큰 것이 생각될 수 없는 것)의 개념으로부터 그것의 필연적인 실존이 증명되었다.3. 비판프로슬로기온 제2~4장에 나오는 신 존재 증명과 이에 대한 가우닐로의 반박, 그리고 가우닐로의 반박에 대한 안셀무스의 답변은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논쟁은 중세 초기에도 독자적인 철학적 탐구가 있었다는 것을 증명한다.))가우닐로는 언어 사용의 엄밀성과 유명한 “잃어버린 섬”이라는 비유를 들어 안셀무스의 신 존재 증명, 프로슬로기온 제2~4장에 등장하는 존재론적 논증에 반기를 든다.가우닐로는 안셀무스의 이 지성 속에 존재한다는 명제를 비판한다. 가우닐로에 따르면 안셀무스는 자기 논증의 출발점을 서술하는 데서부터 “생각한다”와 “정신적으로 인식한다” 사이의 차이를 상세하게 구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설령 그것이 허구나 거짓일지라도 다양한 것들을 생각할 수 있다. 신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의심하는 사람도 신을 생각하는 것은 할 수 있지만 실제적으로 인식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우리가 생각한 그 무엇을 인식한 것이라고 할 수 있기 위해서는 더 추가되는 확증이 필요하다.안셀무스의 신 존재 증명에 대한 가우닐로의 또 다른 하나의 반론은 앞서 말했던 “잃어버린 섬”의 비유이다. 예컨데 어떤 사람이 우리에게 모든 재물과 행복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풍부하며, 아무런 소유자도 주민도 살지 않고, 가질 수 있는 재물의 풍부함에서 사람들이 살고 있는 다른 모든 땅보다 월등하게 뛰어나다고 말한다면 아무 어려움 없이 그 진술된 내용을 우리는 이해한다. 어떤 것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 어떤 것이 지성 속에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지성 속에서 가장 좋은 섬은 실재로도 존재해야한다(앞서 안셀무스의 논증에서 소개되었듯이 지성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보다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더 완전하기 때문이다. 만약 가장 완전한 것이 지성 속에만 존재한다고 주장한다면 실제로 존재하는 것보다 , 의심을 하던 상관이 없다. 그는 생각의 내용을 출발점으로 삼으려고 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이 출발점에서는 “신”이라는 내용을 믿든, 의심하든, 또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주장하든 간에 아무 상관이 없다. 안셀무스에 따르면 가우닐로가 비판한 “생각한다”와 “인식한다”의 구분은 생각을 출발점으로 삼는 논증과정에서는 불필요한 것일 뿐이다.‘잃어버린 섬’의 비유에 안셀무스는 최고로 가지적인 이데아는 경험적인 이데아, 즉 시작과 끝이 있고 한정된 것과는 다른 것이며, 자신의 논증 과정은 이 절대적인 이데아에만 예외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고 답변하였다. 만일 하느님의 관념이 온전히 완전한 존재의 관념이고 또 절대적인 완전은 존재를 지닌다고 한다면 이 관념은 존재하는 것, 즉 실재해야만 하는 존재의 관념인 반면에, 가장 완전한 섬(잃어버린 섬의 비유)의 관념은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의 관념은 아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가우닐로의 ‘잃어버린 섬’의 비유는 유비추론의 오류라는 것이다.이라는 명칭을 듣는 사람은 을 이 의미되는 것으로 이해하지 않을 수 있다. 그것은 어떤 사람들이 하느님을 물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누구든지 하느님이란 명칭으로 여기서 말하는 것, 즉 그 명칭으로 그보다 더 큰 것이 인식될 수 없는 것이 의미된다고 할지라도, 명칭으로 의미되는 것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으로 이해되는 귀결이 따르지 않는다. 그것은 지성의 파악에 불과하다. 하느님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은 그것보다 더 큰 것이 인식될 수 없는 어떤 것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한 논증될 수 없다. 그런데 하느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다.칸트에 따르면 실존은 한 개념의 속성이 아니다. (앞서 안셀무스의 논증에서 완전함은 긍정적인 속성을 포함하기에 긍정적인 속성인 존재도 포함되어야 한다는 전재가 있었다.) 그는 계몽주의 철학자들에 따라 주장되었던 변형된 형태의 존재론적 증명만일 신이 가장 완전하고, 가장 실재적인 것이라면, 신에게 존재가 결여되어 있을 리 증명의 중요성은 계속 유지되었고 칸트 이후 철학자들에 의하여 논증이 다시 복원되기도 한다.플라쉬(K. Flasch)에 따르면, 안셀무스의 논증은 두 측면에서 취약점을 안고 있다고 한다.)첫째 취약점은 이라는 단어를 이라는 표현으로 바꾸는 데 있다. 안셀무스는 어떻게 이 표현에 도달했으며 이것이 의미를 지니고 있고 모순이 없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이라는 단어가 세계 밖의 최대의 것에까지 상승한다면 도대체 어떤 정확한 의미를 지녀야 하는가? 이 때문에 안셀무스의 논증은 공격받을 여지를 지닌다.두 번째 취약점이야 말로 예민한 것인데, 그것은 단순히 생각된 과 실제로 존재하는 그것 사이의 비교에 있다. 어떻게 단순히 생각된 것의 완전성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의 완전성과 동일한 척도에 따라 측정될 수 있단 말인가? 안셀무스는 그의 가치론적 질문 체계)가 경험의 한계를 넘어 사용 가능하며, 그것이 단순히 생각된 것과 실제적인 것의 비교를 허용한다는 사실에서 출발했다.안셀무스는 자신의 논증이 개념 하나만 가지고 증명이 가능한 논증이라고 생각했다. 즉 다른 전제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논증 과정에서 몇 가지를 전제하고 논리를 전재해 나갔음을 알 수 있다. 앞서 안셀무스의 신 존재 증명에서 등장했던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지성 속에만 존재하는 것보다 더 좋다 라든지 우연적인 것보다 필연적인 것이 더 좋다는 명제에 대한 증명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했다. 동시대 사람인 가우닐로도 이에 대하여 비판하지 않은 것을 보아 당시에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진 것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안셀무스의 신 존재 증명이 타당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과연 기독교의 하느님이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 생긴다. 안셀무스의 신 존재 증명을 통해 증명된 신의 존재는 여타 유일신 종교의 신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하여 의문을 품지 않았다는 것 역시 그리스도교의 신을 떠올리는 것이 너무나 당연했던 중세의 시대적 한계로 보인다.논리학을 조금이라도 공부한 사 있다.
    인문/어학| 2012.06.09| 8페이지| 1,500원| 조회(496)
    미리보기
전체보기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4월 23일 목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1:22 오전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