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적 상상력과 현대사회『주름과 기억』교재 7P~191P 요약학과:기계공학과학번:07042017이름: 변 상 익이 평론집은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2000년대 초반의 현재에 이르는 시적 흐름을 주요 텍스트를 중심으로 분석하고 평가함으로써 최근 한국시의 특징을 고찰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구상되었다. 중진 시인과 젊은 시인과 여성 시인을 망라하는 우리 시대 시인들의 시적 형식을 탐색하고 그 속에 내재되어 있는 구조화 원리를 해명함으로써, 우리 시대의 다양한 시적 지형과 맥락을 진단하려는 시도이다. 이 작업은 우리 시의 전통이 어떻게 계승되며 전개되는가에 시선을 두는 동시에, 새로운 시적 감수성의 모험의 비평적 조명을 던지는 것이기도 하다. 여기서 이 비평적 시선의 초점은 주로 ‘주름’ 이라는 문제에 맞추어진다.주름이란 다름 아닌 시간의 누적이며 힘의 축적이다. 나무의 나이테와 손가락 끝의 지문과 얼굴에 피는 주름살은 시간이 지나간 흔적이며 인간 뇌의 주름은 어떤가. 모든 존재는 탄성을 가지므로 자기 안에 무한히 다른 부분들을 담고 있으며, 따라서 세계는 무한한 누층 구조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각 존재와 사물의 차이는 그들이 잠재적으로 얼마나 많은 주름을 내포하고 있느냐, 그리고 그 주름의 접힘과 펼쳐짐의 정도에 의해 좌우된다. 결국 주름은 복수성과 힘을 내포하며, 존재의 차원에 시간성을 개입시킨다.주름이 지닌 이 시간의 흔적과 무늬에는 가시적인 힘 못지 않게 비가시적인 힘이 작용하며, 따라서 이성과 광기, 의식과 무의식, 상징계와 상상계가 교차하고 배접하는 틈새를 낳는다. 이 틈새로 자기동일성과 타자성의 이질적인 힘이 섞이고 때로 엇갈린다. 주름은 의식의 틈새로 새어나오는 무의식의 흐름을 낳기도 하고, 동일성의 억압을 뚫고 나오는 욕망의 길을 낳기도 한다. 그러므로 시간의 흔적으로서의 주름은 ‘기억’의 깊이를 내장한다. 기억이란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 육체와 정신, 의식과 무의식이 만나고 엇갈리는 지점에서 생성되며, 과거와 현재의 경계에서 지속된다. 그 의식을 소멸과 폐허의 형식으로 형상화 한다. 세계에 대한 환멸과 자기 모멸이 뒤섞인 시선은 시간의 벌어진 틈을 열고 회상과 회한, 기억과 망각을 교직하며 복잡한 주름을 형성한다. 따라서 이 ‘폐허의 형식’은 ‘망각의 회로’를 내장하고 있다. 기억에 저항하는 망각이야말로 죽음에 대한 인식을 연기할 수 있는 능동적인 능력이며 추상화된 사유의 원동력이다. 망각은 자기동일성을 확립하는 기억을 무효화시키고 그 구성에 변화를 야기시킨다. 그리하여 망각은 기억을 무화하며 기억으로부터의 해방을 통해 주체의 소멸과 죽음까지도 살아내는 탈주의 흐름을 얻어낸다. 그런데 이 망각은 고통스러운 기억의 반복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기억의 회로와 동거할 수밖에 없다. 망각의 회로는 기억의 회로와 충돌하고 휘감기면서 복잡한 시의 주름을 형성하는 것이다. ‘변신의 형식’은 1990년대 중반이후 지금까지 실험적 전위성을 전개하고 있는 ‘무의식적 타자성의 시’가 지닌 시의 주름이다. ‘무의식적 타자성의 시’는 자동기술법이나 초현실주의적 기법, 혹은 무의식의 언어를 통해 기존의 시적 문법이나 통사구조를 해체함으로써, 주체의 동일성에 의해 억압된 타자성을 회복하려는 시도를 보여준다. 이 시적 경향은 은유와 환유의 연쇄 구조를 근간으로 하는 꿈의 문법을 차용함으로써 반복-변주-변신-생성으로 이전 단계를 함입하며 전개되는 탈주의 과정을 밟는다. 기존의 주체로부터 탈주하여 벌레-되기, 동물-되기, 회화-되기, 음악-되기, 불-되기 등으로 전개되는 변신, 즉 리좀적 분자운동을 감행함으로써 지각 불가능한 탈기관체에 도달하고, 이 잠재적 가능태로부터 새로운 주체화의 점을 모색한다. 이러한 변신의 탈주선은 이성적 자아를 중심으로 성립된 현대적 주체를 넘어서는 길이고, 기억의 회로가 지닌 내면성을 넘어서는 길이다. 따라서 이 ‘변신의 형식’은 ‘반기억의 회로’를 내장하고 있다. 반기억은 현재를 과거에 사로잡는 기억에 대항하여 기억을 지우며 다른 것을 생성시키거나 변신함으로써 새로운 삶을 구성하는 능력을 말어 있다고 말한다.그렇다면 성행하는 언어의 구조가 주체로서의 시인의 몸과 정신, 감각과 의식을 동일하게 지배하고 결정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언어의 구조는 고정 불변의 명제처럼 입법화되어 있지 않고 시간과 장소의 차이에 따라 변화하며, 더 나아가 상이한 주체의 육화된 의식의 차원과 만날 때 다양한 구조로 변이되고 파생된다. 결국 우리는 선행하는 언어의 장 속에서 어떤 특정한 언어의 회로와 특정한 몸의 회로가 만나 상호 공명할 때 비로소 시인이 고유한 자신의 시적 언어를 획득한다고 말할수 있을 것이다.이처럼 시적 언어의 존재 방식을 상기하는 것을 채호기와 이재무의 시를 함께 고찰하는 데 어떤 전제가 되기 때문이다. 채호기는 관능적 에너지의 역동적인 흐름을 통해 자신의 몸과 타인의 몸을 합일하려는 사랑을 집요하게 모색해온 시인이며, 이재무는 소외된 농촌적 삶에 대한 분노와 불우한 도시적 삶의 애환을 진솔하게 노래해온 시인이다. 두시인의 시적 출발점과 위상이 상이한 만큼 그 지향점도 상이하다. 이처럼 상이한 특징을 지닌 두시인이 각각의 시적 전개과정에서 상재한 최근 시집『수련』과『위대한 식사』를 함께 읽으며 나는 하나의 공통 분모를 찾아본다. 그것은 ‘몸’의 모티프 인데, 나는 시적 대상으로서의 사물과 만나는 두 시인의 몸의 자세를 고찰함으로써 어떻게 다른 시적 개성을 확보하는지 살펴볼 작정이다. 이작업은 두 시인이 각기 상이한 언어 게임의 장 속에서 어떻게 자신의 독특한 감각과 의식을 그것과 상호 공명시켰는지 고찰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채호기- 몸과 시선채호기의 네 번째 시집『수련』은 수련에 공명하는 몸의 언어로 가득하 있다. 시적 자아는 시적 대상인 수련을 응시하며 그 몸과 상호 침투하고자 한다. 이 상호 침투를 통한 합일은 그러나 타인과의 합일을 추구하는 사랑이 현실에서 불가능한 만큼 지난한 일이 된다. 채호기의 시에서 수련은 물,빛,공기 의 신비한 교호 작용의 산물로 피어나는데, 이수련과의 상호 침투를 통한 합일의 불가능성은 우선 물과 빛의 미끄러짐으로 표현기시의 중요한 특징은 이 ‘시선’이 단순히 감각과 의식의 주체에게만 속하는 작용이 아니라 상호 주관성의 계기를 함축하는 데 있다. 인용 시에서 ‘시선’은 “수면에 반사되는 빛처럼/반짝이는 보석으로 피어있다.” 애상을 응시하는 주체의 시선은 어느새 “빛처럼” 외보 현상으로 전이되고 결국 “반짝이는 보석으로” 피어난다. “반짝이는 보석”은 다름아닌 ‘수련’의 상징이다. 그러므로 시선의 주체의 감각 및 의식작용에 국한되지 않고 시적 대상으로서의 수련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수면 위에 빛들이 미끄러진다」의 마지막 행 “푸른 물위에 수련은 섬광처럼 희다”에서 “섬광처럼”에 숨어있는 것은, 이처럼 시적 대상으로서의 수련과 교호 작용하는 주체의 시선이다.“물은 생기다 만 새벽의 색채로 그녀를 응시한다.” (「잠자는 수련을 응시하는 물」)에서도 나타나는 이 상호 응시의 ‘시선’은 사물에 관능적 신체성을 부여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3연에 제시된 “흰 손이여, 붉은 입술이여” 는 이러한 상호 응시의 시선을 경유하여 얻어진 수련의 관능적 몸이다. 자신의 몸과 타인의 몸을 합일시키려는 채호기 시인의 추구는 시적 대상과 한 몸을 이루려는 에로티시즘의 차원으로 전개된다.그러나 수련의 몸과 합일하려는 시인의 추구는 미완의 시도에 그칠 수 밖에 없다. 이불가능을 무릅쓴 사랑의 추구가 “어떤 애절한 심정”과 “투명한 슬픔”의 원인이 되는데, 그것이 불가능한 이유는 4연의 “저 수련은 꽃 피는 식물이 아니라 물의 반죽이다.” 에서도 제시되어 있다. 앞서 언급한 물과 빛의 미끄러짐, 그리고 물의 유동성과 빛의 순간성 뿐만 아니라 수련과의 합일이 불가능한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그것은 “한 여인이 수련처럼 물밖으로 피어난다.”(「한 여인」)에서 보듯, 수련이 ‘여성’으로 현현하는 데 비해 시인은 ‘남성’ 의 속성으로 그와 만나고 있기 때문이다. “꽃과 잎, 그리고 줄기와 뿌리를 가르는 그세계는 또한/수련의 삶과 수련을 찾아온 남자의 삶을 갈라놓고 있” (「수련은 커다란 거울 위에」지의 수면위로」) 을 통해 빠져나가는 수련처럼, “손 끝에 만져지는 언어는/물방울처럼 부스러지고/햇빛처럼 녹는다” (「물에로의 끌림」). 피었다 지는 안개처럼 “백지 위에 썼다 지우고/덧씌워 쓰는 글자들 처럼” (「눈」) 시적언어로 구현된 수련은 영속하지 못하고 시들고 만다. 이무정형의 신체는 그래서 아름답고도 덧없다. “어떤 애절한 심정” 과 “저 투명한 슬픔” 은 이러한 언어의 속성에 말미암을 것이기도 할 것이다. 불가능한 사랑을 집요하게 추구하고 있는 채호기의 시적 여정을 투명하면서 애절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며 흰 눈송이처럼 백지위에 피어난다.이재무- 몸과 식욕이재무의 여섯 번째 시집『위대한 식사』는 자연의 생명력을 통해 폐허의 슬픔을 딛고 일어나는 재생의 드라마를 보여준다. 이재무의 시 근저에는 상실의 적막과 슬픔의 소용돌이가 자리 잡고 있다. 적요와 쓸쓸함에 침윤된 이 비애의 세계는 텅 빈 몸을 통과하면서 그늘을 형성한다. 이 한편의 시는 이재무 시세계의 단면을 하나의 풍경으로 보여준다. 달팽이의 몸은 그 비어있음을 통해 돌들을 삼킨다. 달팽이는 여성으로 제시되어 있으며, “바람 가르고 날쌘 몸으로” “그녀의 몸에 와 박히는” 돌들은 남성이다. 지난 계절의 돌들을 삼켜온 달팽이는 분주한 발자국들이 돌아간 지금 폐허로 남겨진다. 흩어진 지푸라기 끌어안고 울고 있는 그녀의 몸은 그러나 밤이면 더 크게 열린다. 이 열리는 몸속에 오래 머물다 가는 것들은 부엉이 울음과 늦게 끈 별과 하현달이다. 돌의 남성성에 상처받지만 그들을 모두 삼키고 지금은 폐허가 된 달팽이의 여성성은, 그 열린 몸을 부엉이와 별과 하현달에 내어줌으로써 슬픔을 끌어안는 동시에 새로운 재생을 기약한다. 이 시에서 주목할 대목은 여성으로 제시된 달팽이의 몸이 단지 시적 대상으로서의 사물이 아니라, 여성성을 매개로 시인의 내면세계를 공간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을의 가장 오래된 팽나무가 부러진 사태를 보며 시인은 “우리 마을의 제일 오래된 어른 쓰러지셨다” 라고 표현한다. “오래된 어른”은 팽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