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소개서수험번호성명주민번호■ 학력기간학교명 (소재지)학과(부), 전공학위 / 수료평점평균 (백점 환산점수)취득 학점■ 경력 (학사과정 중 또는 학사 졸업 후)※ 모든 경력에 대해 증비자료를 첨부해야 함기간기관명, 부서명 (주소)담당업무 (근무기간)비고 (프로그램 등)■ 학업 관련 활동내역 (고등학교 입학 이후의 교육, 연구, 창작, 연수, 수상, 장학 등)기간활동명설명 (간략히)주관 기관■ 학업 외 활동내역 (고등학교 입학 이후의 리더십, 사회봉사 등)기간활동명설명 (간략히)주관 기관■ 자격 및 면허 (교통 관련 면허 제외)취득일자종류 또는 명칭발급 기관■ 어학 능력어학능력시험응시 일자취득 성적발급 기관바탕체, 10point, 줄간격 150%로 아래 정해진 분량에 맞도록 작성하시오.(글상자 크기변경 불가)1. 성격, 장·단점 및 특기# 꼼꼼함과 세밀함으로 무장한 라면요리사저는 훌륭한 라면요리사입니다. 맛있는 라면을 끓이기 위해서는 물의 양, 스프의 양, 불의 세기, 달걀 넣는 시기 등 여러 섬세한 부분을 잘 조절해야 합니다. 어린 시절 라면을 좋아했던 저는 맛있는 라면을 끓여보고자 고민하였고, 섬세하며 민감한 차이도 잘 느끼는 저는 다양한 요소들을 조절함으로써 맛있는 라면을 끓일 수 있었습니다. 작은 부분이었지만 사람들이 맛있게 먹어주는 모습을 보고 성취감을 느꼈고 이를 바탕으로 매사에 자신감으로 임할 수 있었습니다.또한,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던 저는 초등학교 때 교내 건강 포스터 그리기 대회에 참가하여 최우수상을 받은 적이 있고 중학교 때는 교내 사생대회에서 상을 받았습니다. 특히 소묘(데셍) 쪽으로 관심이 있었는데 한 가지 사물을 정하면 관심을 두고 사물의 특징을 파악하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습니다. 소묘에서 중요한 ‘관찰력’은 생명과학실험2 과목에서 쥐 해부 실험을 할 때 충분히 발휘되었고 생동감 있는 쥐 해부 스케치를 하며 장기의 구조와 해부학적 위치를 학습하는 데 큰 도움을 얻었습니다.입학하여 약학 공부의 연장선에서 실험 및 연구를 수행할 때 교수님들과의 대인관계를 돈독히 하는데 도움이 되고, 차세대 연구 분야의 리더가 되는 데 큰 밑거름이 될 것으로 믿습니다.2. 중·고교에서의 학업성취와 장래희망# 목표를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노력파어려서부터 부모님께서는 자식이 공부를 잘하기보다는 즐기기를 바라는 마음에 주말이면 다양한 체험활동(보이 스카우트 활동, 가족 여행 등)을 할 수 있도록 해주셨고 많은 독서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덕분에 독서를 바탕으로 공부에 부담 없이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었고 학업을 학생의 당연한 본분으로 여겼습니다. 저도 공부를 잘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기 때문에 부모님의 바람대로 다른데 큰 관심을 두지 않고 공부에만 집중하였습니다. 덕분에 중등시절 항상 반 3등 안에는 들 수 있을 정도로 괜찮은 성적을 유지했습니다.고등학교에 진학해서 중등시절의 실력이 남아있었는지 고등학교 1학년 땐 모의고사에서 좋은 성적을 받았습니다. 그 때문에 소위 명문대에 진학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그때부터 방심하여 치열하게 열심히 공부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모의고사 성적은 점점 떨어졌지만 몹시 나쁘지는 않아서 컨디션이 안 좋았다고 여기며 별문제 없다고 생각하고 넘어갔습니다. 그렇게 고등학교 2, 3학년을 지내고 수능시험이 다가왔습니다. 결과는 이전까지 받아본 적 없는 최악의 점수를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생각지도 못한 점수에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며칠간은 황당하고 낙담하여 아무 생각 없이 지냈습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도대체 내가 왜 그 점수를 받을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해 곰곰이 분석했습니다.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점수는 이미 예고된 점수였고 그게 본래 제 실력이었습니다. 남들보다 일찍 책상을 뜨고 먼저 잠들었던 저는 왜 그 점수를 받을 수밖에 없었는지를 깨달았지만 이미 버스는 지나간 후였습니다.저는 오기가 생겼습니다. 내가 이 점수보다 더 받을 수 있다는 걸 증명해 보이고 싶었고 나 자신의 그릇을 시험해 보고 싶었습니다. 무엇보 마음을 추슬렀습니다. 슬럼프를 겪을 때면 오히려 공부에 매진하고자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마음가짐으로 매일매일 충실하게 생활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노력에 보답하듯이 성적은 상승하였습니다. 9월 이후에도 좋은 부분은 유지하고 부족한 부분을 메우며 소위 명문대라 불리는 학교들을 욕심내볼 수 있는 성적을 유지하였습니다. 자신감을 갖고 고사장에 입장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과목에서 너무 긴장했는지 평소 성적보다 낮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재수생활을 절대 후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목표한 것을 위해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자신을 발견했고 앞으로 무엇이든 도전해 볼 수 있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또한 최선을 다해도 결과는 안 좋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때문에 자신감을 잃지 않는 법도 배웠습니다. 2009년 1년은 제 짧은 22년 인생 중 가장 빛나고 값진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습니다.학창시절에 저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빡빡한 학교입시공부스케줄과 학원스케줄을 성실하게 소화해 내는 평균적인 학생이었습니다. 그 속에서 진정으로 되고 싶은 미래의 직업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거나 생각해볼 겨를은 없었고 직업에 대해 미리 탐구할 기회도 적었습니다. 중학교 시절까지는 그저 막연하게 의사, 약사, 변호사와 같은 전문직을 장래희망으로 정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시절에는 사람을 치유하는 ‘약’을 연구하고 다루는 약사를 꿈꾸며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제가 수능을 볼 땐 약대가 없어 바로 입학할 수는 없었기에 약대 입학을 마음에 두고 약학의 기초학문이 되는 ‘생명공학과’에 지원하여 입학하였습니다.3. 대학(대학원)에서의 학업 관련 활동과 학업 외 활동# 약대 진학을 위한 노력대학 입학 전부터 약대에 진학하려는 생각이 있었고 약대 관련 과목을 선행 학습하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유기화학’을 가장 약학의 기초학문이라 생각하고 보통 2학년 이상 때 듣는 과목이지만 1학년 1학기 때 타 학과에서 수강하였습니다. 화합물에 치환기를 뗐다 붙였다 할 수 있고 어떤 반응을 시대학업의 기본인 생물 과목에 더 집중하기로 하고 제가 주도적으로 ‘생리학’,‘생명과학2’ 두 과목에 뜻이 있는 학생들을 모아 스터디그룹을 조직하였습니다. 매주 3번 모여 2시간씩 배운 내용을 정리해보고 중요한 내용은 강조하며 모르는 내용은 서로 질문하였습니다. 중요하다 생각되는 부분은 전공서적까지 찾아보며 과목의 이해를 높였고 그 결과 저와 스터디 그룹 원 모두A^{ +}(4.5)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2학기 때에는 본격적으로 약대 준비를 위해 학업에 집중했습니다. 재수생활 때의 생활방식으로 돌아가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학교도서관에 가장 먼저 도착하고 가장 늦게까지 상주하며 학습의 열의를 다졌습니다. 그 노력에 보답하듯 교내에서 ‘직전 학기 성적에 비해 대폭 성적을 향상한 학생 100명에 선발’되어 ‘성적향상장학금’을 받았습니다.연구원을 꿈꾸는 학생으로서 이론 지식을 넘어서 실제로 연구가 기획되고 이루어지는 과정을 직접 목격하고 연구원이 연구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습니다. 2학년 때 학과에서 그런 기회를 제공하여 하이트맥주공장(전주), KRIBB(한국생명공학연구원) 오창캠퍼스 견학을 신청하여 현장을 경험하였습니다. 맥주공장에선 미생물을 이용한 발효과정을 통해 맥주가 생산되는 과정을 보면서 당시 수강하던‘미생물학’ 과목에서 배운 교과서적인 내용을 현실에서 적용되는 과정을 눈으로 확인했고 실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미시적인 세계에 더욱 관심을 두게 되었습니다. KRIBB에선 생명공학이 현실에서 어떤 방향으로 적용되는지 흐름을 느꼈으며 연구원들의 생활모습을 직접 볼 수 있었습니다. 여러 실험 장비들을 보면서 직접 다루고 싶은 욕구도 느꼈고 연구원들이 실험이나 연구에 몰두하고 있던 장면과 그들의 빛나는 눈빛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모습들은 제가‘그런 기관에서 하고 싶은 연구를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가지게 하였고 연구원으로서의 꿈을 더욱 다지게 하였습니다.저는 책상에만 앉아 공부만 하는 학생은 아니었습니다. 사람을 좋아하는 대해 순수하고 따뜻한 마음이라고 말하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의도치 않게 봉사활동을 시작했듯이 오히려 제가 더 의도치 않은 기쁨과 보람을 얻었습니다. 광진구의 중곡사회복지관에서 저소득 가정의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학교수업을 잘 따라갈 수 있도록 지도하는 일을 했습니다. 제가 가진 지식을 전달하고 학생들이 척척 흡수하는 모습을 보며 성취감을 느꼈습니다. 특히 제가 가르쳐준 내용을 배워 학교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와서 감사하다고 말 할 때는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습니다. 지식공유의 보람을 느꼈고 앞으로 약사가 되어서도 제가 가진 지식을 사회와 이웃에 기부하여 사회 환원을 이루어 상생의 사회가 되도록 하고자 합니다.또한, 약사의 꿈을 가진 약대 준비생으로서 약사가 되기 전부터 사람들의 건강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싶어 헌혈을 시작했습니다. 혈액이 의약품제조용으로도 사용되고 제약회사에 공급된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예비약사로서도 헌혈을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총 16회 헌혈했으며 미래에도 계속할 생각입니다.4. 약학대학 지원동기# 약사에서 약과학자로!학창시절엔 의사, 약사, 변호사 등을 장래희망이라고 말하며 공부 잘하는 학생들을 부러워했고 저도 그런 학생들처럼 보이고 싶었습니다. 부모님은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가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증상을 바탕으로 진찰을 통해 병의 원인을 규명하는 것은 의사의 몫이지만 환자는 약을 복용하고 약의 효과로 낫게 된다고 생각했던 저는 약물을 연구하고 관리하는 ‘약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 약사가 되겠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학창시절과 약대 입학시험을 준비할 때까지도 그냥 ‘약사’ 라는 막연한 목표만을 가지고 공부했습니다. 구체적인 약사 상이 없었기에 간절한 마음과 열정도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재학 중 처음 본 시험결과는 불합격이었고 이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을지도 모릅니다. 재도전하기 위해서는 확실하고 구체적인 약사 상을 세우는 게 필요하다는 걸 느끼고 무엇을 하는 약사가 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