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의 성립과 성장고구려-기원전 4-3세기: 만주 혼강 유역(나 고구려 형성-주몽: 졸본 지역 -> 나집단을 밀어내고 고구려의 왕위 차지1) 태조왕: 동옥저, 중국 요동군과 현토군 공격 -> 국력 신장2) 산상왕: 부자상속제 확립 -> 왕권 강화3) 4세기 무렵 중앙집권적인 고대국가로 성장백제-기원 전후: 부여와 고구려계 주민 한강유역 정착 -> 백제 건국1) 고이왕: 목지국 등 주변 병합, 관등제 정비, 복색 제정2) 근초고왕: 국력 신장신라-기원 전후: 유민들이 경주이주 정착 -> 사로국 건국1) 내물왕: 왕호를 마립간, 중국전진에 사신 파견 -> 성장 발판 마련2) 법흥왕: 중앙집권적 고대 국가로 발전가야-낙동강 유역을 중심으로 세력 부상-가야 연맹체 주도: 금관가야->대가야-562년 신라에 병합거란, 고려 침공1차1) 거란의 고려 침략 목적:송과의 외교 단절:거란과 국교체결2) 서희, 거란 의도 간파:여진족 핑계:거란과 수교의사 확인3) 거란군 철수압록강 동쪽 땅에 성을 쌓고 그것을 강동6주라고 말한다.거란이 서희의 담판에서 뺏긴 강동6주 반환을 요구하고 고려가 거란과 대립하게 된다.거란의 2차 침입, 1010년[현종1]강조의 응전피체 거란의 회유 강조의 자결그 후 거란군, 개경 점령 현종은 전라도 나주로 피신, 고려군은 드세게 저항거란군 철수 (보급로 차단 우려)거란의 3차 침입, 1018[현종9]소배암의 10만 대군, 북방을 지키던 상원수 강감찬과 부원수 강민첩에게 곳곳에서 격파당함강감찬의 귀주대첩 - 굵은 노끈으로 쇠가죽을 이어 강물을 막아놓고 있따가 거란군이 도착하자 곧바로 물길을 터놓아 물살에 휩쓸리게 하고, 기병으로 하여금 공격하게 함거란의 10만 대군이 거의 다죽음전쟁이 고려의 승리로 끝나자 동아시아는 고려, 송, 요 3국이 세력의 균형을 이뤄 평화 유지고려의 동북 9성 축조고려와 여진족과의 관계여진족-숙신, 읍루, 물길, 말갈 등으로 불림-고구려, 발해에 복속되어 있다가 발해 멸망 후 만주지역에 산재-점차 담합하여 함경도 일대에 살던 여진 부족들이 상국으로 섬겨오던 고려를 자주 침범함-여진의 고려 변경 침입은 문종 대에서부터 고조-이후 동여진 완안부가 강성해지면서 침략은 더욱 심해짐[고려의 대책]-숙종 때 여진에 대한 대대적인 정벌 추진-그러나 출전한 윤관의 군대가 민첩한 여진 기병대에 패배-윤관의 보고에 따라 1104 ‘별무반’이라는 강력한 기병 편제 갖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