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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인식론에 대한 탐구
    인식론에 대한 탐구
    1. 들어가는 말사전적 의미로 지식이란 어떤 대상에 대하여 배우거나 실천을 통하여 알게 된 명확한 인식이나 이해 또는 알고 있는 내용이나 사물을 의미한다. 인식론에서의 지식은 인식에 의하여 얻어진 성과. 사물에 대한 단편적인 사실적ㆍ경험적 인식을 말하며, 객관적 타당성을 요구할 수 있는 판단의 체계를 이른다.인식론의 지식은 인식에 의하여 얻어진 성과라 말하였는데 여기서 이 인식이란 무엇인가. 지식이 어디에서 근원했는지 모를 인식의 작용으로 얻어진 것이라면‘우리의 지식은 어디에서 근원하는가.’라는 의문에 앞서 먼저‘우리의 인식은 어디에서 근원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할 것이다.“사람이‘생각하는 동물’임을 모르는 이는 없다. 그런데‘지금 내가 생각하는바’들이 어떻게 내 것이 되었는지 묻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내가 지금 갖고 있는 의식세계’는 내가 태어났을 땐 분명 비어있었고‘내가 지금 생각하는바’들도 내가 태어났을 땐 없던 것들이다. 각자 살아가면서 생각을 형성했고 의식세계를 채웠다.”‘내 생각은 어떻게 내 것이 되었을까?’라는 물음을 가지자. 칸트Kant는 인간을‘생각하는 바에 관해서는 자유롭지 못한 존재’라 지적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가 인식하는 바에 따라 지식을 얻고 그 지식으로 생각을 하며 살아간다. 따라서 위와 같은 물음은 자기성찰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겠다. 이에 지식의 본성과 범위를 연구하는 철학의 주요한 분과 중 하나인 인식론에 대해 탐구해보고 이 인식으로 얻은 지식이 만들어내는 생각으로부터 우리는 자유로운가에 대해 고찰해보고자 한다.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우리는 이 명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2. 본딧말1) 인식론(1) 정의인식의 기원과 본질, 인식 과정의 형식과 방법 따위에 관하여 연구하는 철학적인 연구 또는 이론을 말한다. 예로부터 인식의 기원에 관하여는 경험론과 이성론(理性論), 그 대상에 관하여는 실재론과 관념론의 대립이 있었다. 인식론(Epistemology)은 고대 그리스어의 episteme(지식 또는 인식)와 l론은 소피스트Sophist와 플라톤Plato,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등을 필두로 하는 고대와 형이상학적, 신학적인 세계관과 사고방식이 득세를 하던 중세를 지나 과학의 현저한 발전이 전통적 사상의 타성적인 안정을 파괴하고, 세계상의 변혁을 촉진하는 근대에 이르게 된다. 철학의 대상을 인간이 아닌 신神으로 삼았던 중세와 이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던 근대, 현대를 두 개의 큰 축으로 삼을 수 있다. 이에 우리의 인식과 지식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중세의 인식론에 대한 탐구와 근대에 이르러 그것으로부터 벗어남에 초점을 맞추어 전개하겠다.(2) 고대, 중세전기 그리스에 소피스트들이 주장한 상대주의의 진리관에는 이미 상당히 발전한 인식론적 고찰이 포함되어 있었고, 소크라테스Socrates또한 그 대화활동 중에서 크게 지식의 본질이나 지식획득의 방법에 대해서 논했다.철학의 암흑기라 불리는 중세는 그리스도교의 윤리가 지배하는 시대였다. 유일신을 섬기는 유대교가 모태가 되었는데,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던 이스라엘의 한 지방에서 예수가 출현했고, 신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라는 예수의 가르침이 그의 제자들에 의해 그리스도교의 이름으로 널리 퍼져 나갔다. 이후에 세계 종교가 되기 위해 그리스 철학을 바탕으로 교리를 확립하였다.대표적 인물로는 교부철학의 성 아우구스티노Saint Augustine가 있다. 유한한 인간이 참된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신앙을 통해 영원하고 참된 존재인 신, 절대자에게 귀의함으로써 가능하다고 보았다.“알기 위해서는 믿어야 하고, 믿기 위해서는 알아야 한다. 그런데 단순한 철학적 고찰, 즉 자연적 이성으로는 결코 신에 대한 확실한 앎을 얻을 수 없다. 인간의 정신은 감각적인‘외부 세계’에서‘내부 세계’로, 그리고 거기서‘마음의 가장 내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는‘진리의 근원으로서의 신’에게 다가간다.”즉 이성에 의한 철학적 고찰로는 신에 대한 앎의 한계가 있음을 주장하였다. 이는 인간이 독자적 인식을 통한 지식의 습득으로 참된 행복에 이르는 행위를철학, 신앙과 이성, 인간과 자연을 조화시킴으로써 그리스도교의 교리를 철학적으로 논증하고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이었다. 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활용하여 교리를 논증하고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했다. 인간은 이성적 덕을 통한 일시적 행복에 만족할 수 없고 이를 넘어서 종교적 덕을 통한 영원한 행복을 추구하도록 운명 지어져 있음을 강조했는데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세계관을 수용하여 논리를 전개시킨 것이다.“philosophia ancilla theologiae”철학은 신학의 시녀이다토마스 아퀴나스의 명언이라 알려져 있는데, 실제 최초로 이 말을 한 사람은 페트루스 다미아니Petrus Damiani이다.고등학교 윤리와 사상 교과서 서양철학사상 파트에 당당하게 중세에는 모든 것이 신학 중심으로 되었기 때문에 철학은 신학보다 하등하다는 의미라고 해설하고 있고, '그래서 중세는 암흑기'라는 뉘앙스를 풍겨준다. 그러나 이 말은 당시 철학과 종교 모두를 무시한 발언이며, 너무나도 편향된 관점에서 바라본 해석이다.“페트루스 다미아니는 당시 봇물 터지듯 밀려오던 철학의 물결이 신학의 영역을 침범할 것을 우려하여 이 말을 썼다. 토마스 아퀴나스도 신학은 철학적 하위의 것, 시녀로서 이용한다고 하는데, 신학을 뒷받침하는 학문으로서 철학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이 말을 응용했다. 철학이 그 고유영역에 관해서 자율적이라는 것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토마스 아퀴나스는, 이를 염두하고 신학은 철학을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나아갈 수 없다는 의도에서 말한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철학이 신학보다 우위를 차지했다는 것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철학은 신학을 뒷받침하기 존재였을 뿐이다. 그러나 앞에 언급했다시피 이 명언의 의미 중 철학의 중요성 부분은 잘라내고 단순히 철학이 신학보다 급이 낮다는 식의 뜻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의미 왜곡이다.나중에 칸트가 『영구 평화론』에서 살짝 바꾸어서 사용하기도 하였다. 칸트는 여기에서 사람들은 철학이 신학과 의학, 법학의 하인인 것은 알지만 그 하끝에는 신이 존재한다. 이 당시에 개인의 사유와 인식, 경험은 신앙이라는 것에 매어져 있었다. 비록 그리스도교의 윤리가 자유의지를 이야기하고 믿음, 소망, 사랑 등의 덕을 이야기 하였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종교적 덕의 테두리 안에서였다. 그 밖을 벗어나는 진리는 있을 수 없었다.(3) 근대, 현대인식적인 연구는 그리스·중세에도 있었으나, 철학의 중심적인 과제가 된 것은 근대에 이르러서이다. 지리상의 발견, 종교개혁, 르네상스, 과학의 발달로 우리의 인식은 신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이행하였다. 근대 철학의 문제의식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 번째, 신으로부터 독립한 인간이 스스로 진리를 발견할 수 있는가? 그리고 두 번째로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면 그 방법은 무엇인가?진리를 발견하는, 즉 인식의 기원에 관한 주장으로는 이성론과 경험론이 있다. 근세에 와서 이성론은 주로 유럽대륙에서 그리고 경험론은 영국에서 발달했다. 영국에서는 중세기 이후 경험론의 전통이 있었으며 로크Locke 이후에는 더욱더 치밀해졌다. 칸트는 이 양자를 종합하려고 선험적 관념론을 주장했다.다음으로 인식의 본질에 관해서는 '인식의 대상'이 관념적이라는 관념론과 실재적이라는 실재론이 대립한다. 칸트의 비판주의는 인식이 경험적 실재론인 동시에 선험적 관념론이라 하여, 이 양자를 종합하려 했으나 충분히 종합되었다고는 할 수 없다.현대에 이르러 니체Nietzsche는 “신은 죽었다.”라는 유명한 경구를 남겼는데 이는 기독교적 진리관을 거부한 것이었다. 사르트르Sartre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라는 말을 하였다. 인간은 자기의 실존이 먼저 있어(본질이 정해지기 전에 존재하므로) 자기 삶의 본질을 스스로 결정한다. 따라서 스스로를 만들어갈 수 있는 자유로운 존재임을 강조했다.2)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중세이후 근현대 철학의 주체는 인간, 즉 자기 자신이었다. 나의 인식이 이성과 사유 혹은 감각과 경험에서 근원하던 어디까지나 주체는 자기 자신이었다. 하지만 현대의 구조주의에서 강조하는 개인의 행위나 인ault는 자신의 저서 『감시와 처벌』에서 권력이 사회에 작용하는 방식에 대하여 질문을 하고 그에 대해 답을 하면서 '근대화가 인간을 자유롭게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억압하는데 기여했다'고 주장한다. 이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여러 구조들에 의해서 나의 생각은 만들어져왔으며, 그것을 마치 자신의 의지로 만들어진 생각이라 착각한다.지두 크리슈나무르티Jiddu Krishnamurti는“그는 인간이 홀로 독립된 완전한 자유(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에 눈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모든 사람들이 그 어떠한 권위도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였다.”스피노자Spinoza에 따르면‘사람은 이미 형성한 의식을 고집하는 경향이 있다.’지금 가지고 있는 생각을 고집하고 쉽게 버리지 않는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이성을 가진 동물이다, 라 평가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합리화 하는 동물이라 평가함이 좀 더 설득력 있는 주장이라 생각한다. 인간이 합리적 동물이라면 기존에 고집하던 생각과 모순이 되는 사물이나 현상을 만나면 자기 생각을 수정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실제로 그러한가? 기존 생각을 수정하려면 자신을 끊임없이 부정하는 용기가 필요한데, 대부분은 기존의 생각을 고집하는 용기만 갖고 있다. “지금 생각하는 바를 지속적으로 합리화하면서 고집하기 때문에 사람 살아가는 모습이 변하지 않는 것이다.”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물어야 한다. 내가 지금 갖고 있는 생각이 어떻게 내 것이 되었나, 라고.“내 생각은 어떻게 내 것이 되었나? 라고 물을 때 자기 생각을 바꿀 가능성이 그나마 열리지만, 그렇지 않을 때에는 자기 생각을 바꿀 가능성이 없는, 지금 갖고 있는 생각을 믿는 사람으로 남게 된다.”3. 맺는말소크라테스가 델포이 신탁에 새겨진“너 자신을 알라(gnothi seauton)”라는 문구를 즐겨 사용하였다는 것은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이다. 칸트는 『순수 이성 비판』에서 철학의 문제를“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는 무엇을 바랄 수 있는가?”라는 세 가말한다.
    인문/어학| 2017.06.10| 6페이지| 1,000원| 조회(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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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피쿠로스 쾌락과 현대인의 자세
    쾌락에 대한 끝없는 물음-에피쿠로스의 쾌락 개념을 중심으로-2015년 12월 09일< 목 차 >Ⅰ. 들어가는 말 1Ⅱ. 본딧말 11. 에피쿠로스(Epicurus) 12. 욕망 23. 쾌락 24. 죽음 3Ⅲ. 맺는말 3 5Ⅰ. 들어가는 말쾌락주의(Hedonism, 快樂主義)는 쾌락이 인생의 목적이며 최고의 선이라 하여,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피하는 것을 도덕원리로 삼는 윤리설이다. 일반적으로 쾌락주의라고 할 경우, 감각적·육체적인 쾌락만을 목표로 하는 견해를 말한다. 대표적인 쾌락주의 학파를 꼽아보라고 하면 당연시되어 나오는 학파가 바로 에피쿠로스학파이다.하지만 에피쿠로스가 제시했던 쾌락주의는 굉장히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철학사의 흔한 대비적인 서술에 의해 스토아학파의 금욕주의에 대립되는 의미에서의 쾌락주의로 오해되기도 하고 그가 '쾌락주의'의 대표자였다는 것 때문에 방탕하고 문란한 사상가였다고 오해하는 경우도 있다. 스토아학파에서도 이를 빌미로 에피쿠로스를 공격했지만 이는 전혀 잘못된 이해이다. 에피쿠로스는 우리의 개념대로의 쾌락을 즐기거나 주장했던 사람이 결코 아니었을 뿐더러 오히려 그와는 반대로 조용한 삶과 절제를 강조했던 사람이다. 그래서 그의 모토는 “숨어서 살아라(lathe biosas.)”였다. 오히려 그를 공격하는 데 예시로 들었던 방탕한 삶 등은 에피쿠로스와 대척점에 놓여있던 키레네학파의 그것에 가깝다.이에 에피쿠로스가 주창하였던 쾌락과 욕망 개념, 그리고 그가 제시했던 철학과 삶의 방식에 대해 알아본다. 그리고 이를 통하여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쾌락에 대한 물음을 통하여 올바른 삶의 태도에 대해 고찰해보고자 한다.Ⅱ. 본딧말1. 에피쿠로스(Epicurus)에피쿠로스(BCE 341~270)는 플라톤(BCE 429~347)의 사후에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BCE 384~322)보다는 적어도 한 세대 후에 살았던 헬레니즘 시대의 그리스 철학자이다. 그가 살았던 시기는 외형적으로는 그리스제국의 국제적 위상이 고양된 시기이지만 내적으로는 극도의 정치적 혼란 가운데 있었던 시기였다. 이러한 에피쿠로스의 시대적 배경은 다양한 철학적 전통, 세계주의적 색채, 합리주의적 사회제도, 개별과학의 발달, 개인생활과 사회생활 간의 모순에서 오는 소외감, 종교의 역할 축소 등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렇게 복잡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에피쿠로스는 마음의 안정을 추구하였고 그 결과로 “쾌락”에 초점을 맞춘 사상을 발전시켰다.2. 욕망에피쿠로스에 있어 즐거움과 행복을 결정하는 요인은 내적인 것이다. 이는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자신의 욕망에 휘둘리지 않으며 욕망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이러한 능력은 자기 지배능력이다. 따라서 욕망에 대하여 잘 아는 것을 전제한다.에피쿠로스가 주장하는 지혜란 욕망에 종속을 넘어 우리에게 해가 되는 욕망을 가려내고 해가되지 않는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에피쿠로스는 욕망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1) 자연적인 동시에 필연적인 욕망2) 자연적이기는 하지만 필연적이지는 않은 욕망3) 자연적이지도 않고 필연적이지도 않으며 헛된 생각에 의해 생겨나는 욕망에피쿠로스,『중요한 가르침』, 29p여기서 자연적이고 필연적인 욕망은 목이 마를 경우 물을 마시려고 하는 것과 같이 고통을 제거하려는 욕망이다. 자연적이기는 하지만 필연적이지 않은 욕망은 비싸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은 욕망같이 쾌락의 형태만을 바꿀 뿐 고통 자체를 없애주지는 못하는 욕망이다. 자연적이지도 않고 필연적이지도 않으며 다만 헛된 생각에 의해 생겨나는 욕망은 자신의 명예를 빛내기 위해 이름뿐인 직책을 탐내는 것과 같은 욕망이다. 따라서 첫 번째 욕망은 충족되어야 하며, 두 번째 욕망은 필연적 욕망으로 바꿔야하고 세 번째는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3. 쾌락에피쿠로스는 쾌락은 그 자체로 좋고 따라서 추구해야 하며 고통은 나쁜 것이고 따라서 피해야한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지혜롭지 못하면 무엇이 진정한 쾌락이고 무엇이 고통인지 분간할 수 없다. 따라서 겉모습과는 달리 어떤 것이 진정 쾌락이고 어떤 것이 고통인지 정확하게 헤아릴 필요가 있다. “쾌락자체는 그 자체로 좋고 선한 것이지만 자칫 잘못하면 쾌락을 부르기 위해 사용한 수단이 더 큰 고통을 안겨다줄 수 있다.” 따라서 실천적 지혜(phronesis)를 통해 욕망을 잘 조절해서 쾌락을 극대화해야 한다고 말한다.그렇다면 지혜로움을 이용해야 한다는 에피쿠로스의 쾌락 개념의 핵심은 무엇일까? 그것은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이다. 그가 말하는 쾌락은 '고통의 부재'로, 오히려 쾌락을 일부러 추구하다보면 그 과정에서 수반되는 고통 때문에 행복한 삶을 살 수 없다고 보았다. 에피쿠로스에 있어서 행복(hedone)은 의존적이지 않은 습성을 지닌 인간이 욕망이 가지는 한계를 깨닫고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운 경지를 말한다. 이러한 그의 쾌락 개념은 흔히 아타락시아(ataraxia)라고 불린다. 힘든 일이 없는 상태(aponia)가 육체적 쾌락의 상태라면 불안이 없는 상태(ataraxia)는 정신적 쾌락에 속한다. 둘 중에서도 불안이 없는 상태인 정신적 쾌락 즉 아타락시아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 아타락시아 개념은 되레 스토아학파의 아파테이아(apatheia) 개념과 상당히 비슷한 면모를 보인다.4. 죽음이렇듯 에피쿠로스 철학의 핵심 목표는 고통과 공포에서 해방되는 것인데, 여기서 다시 오해될 수 있는 것이 있다. 바로 모든 인간이 도달할 수밖에 없는 고통의 최고점인 죽음을 쾌락주의에서 벗어나는 수단으로 설정하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다. 죽음은 그 자체로써 매우 고통스럽지만 인간이라면 결코 피할 수 없다는 점에서 고통의 부재를 추구해야하는 에피쿠로스에게는 극복해야할 마지막 관문처럼 보인다.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에피쿠로스는 죽음은 두려워할 대상이 아니라고 믿었다. 사람이 죽을 때, 그 사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것도 느낄 수 없고 죽음의 고통도 느끼지 못한다. 따라서 에피쿠로스의 유명한 말대로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가 존재할 때는 죽음이 존재하지 않으며, 죽음이 존재할 때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죽음과 함께 모든 감각과 의식이 끝나기 때문에 죽음에는 쾌락도 고통도 없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죽음에 대한 인식이 있을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 때문에 생겨난다.정리하자면 "인간이 살아있다면 죽음을 경험할 수 없고, 죽었다면 죽음을 느낄 수 없다. 고로 인간이 죽음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죽음 그 자체가 아니라 죽음을 두려워하는 마음이다. 그러니 그 마음을 던져버려라. 그렇다면 그대는 죽음의 고통에서 벗어난 것이다."Ⅲ. 맺는말이상 에피쿠로스의 쾌락과 욕망에 대한 개념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첫째, 외부의 간섭이나 고통이 따르지 않는 순수한 쾌락의 상태. 둘째, 허황된 욕심을 갖지 않음으로써 마음에 불안이 없고 몸에 고통이 없는 평온한 상태. 셋째, 진정한 쾌락은 순간적인 쾌락이 아니라 지속적인 쾌락이고, 육체적 쾌락이 아니라 정신적 쾌락이다. 넷째, 실제 생활 속에서는 역설적이게도 검소, 절제의 금욕주의적 생활태도를 강조하였다.신자유주의 시대의 현대인들에게 쾌락의 문제는 그저 가볍게 다가오는 주제가 아니다. 푸코(Foucault)는 자신의 저서 『감시와 처벌』에서 권력이 사회에 작용하는 방식에 대하여 질문을 하고 그에 대해 답을 하면서 '근대화가 인간을 자유롭게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억압하는데 기여했다'고 주장한다. 고도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육체와 지성 뿐 아니라 욕망과 감정마저도 저당 잡히고 사는 현대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쾌락과 욕망에 대한 에피쿠로스의 철학은 새로운 시선으로 다가온다.
    인문/어학| 2017.06.10| 8페이지| 1,000원| 조회(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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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신자유주의 메커니즘을 비판없이 받아들이는 현실을 중심으로)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신자유주의 메커니즘을 비판 없이 받아들이는 현실을 중심으로)1. 들어가는 말푸코Foucault Michel Paul Foucault, 1926~1984, 프랑스의 구조주의 철학자.는 자신의 저서 『감시와 처벌』에서 권력이 사회에 작용하는 방식에 대하여 질문을 하고 그에 대해 답을 하면서 '근대화가 인간을 자유롭게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억압하는데 기여했다'고 주장한다. 강순전 외, 『서양의 고전을 읽는다』, 2006, 휴머니스트, pp157~170 참고이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여러 구조들에 의해서 자신도 모르게 생각은 만들어져왔으며, 그것을 마치 자신의 의지로 만들어진 생각이라 착각하는 것이다.그렇다면 신자유주의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은 자신의 호모에코노미쿠스적 삶에 대해서 물음을 던지고 있는가? 그것은 생존을 위해 스스로를 기획 하며, 이해관계를 따지는 경제적 인간의 삶으로 별다른 비판 없이 수용해왔다. 우리는 이러한 삶을 선택한 주체는 나이며 이 삶의 방식에 대해 내가 확실하게 ‘아는 것’이라 규정했다.하지만 이러한 사고에는 커다란 잘못이 있음을 지나칠 수 없다. 이에 신자유주의 체제가 우리들로 하여금 내 안에 생각을 집어넣는 실제 주체이며 이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안목을 갖추지 못하게 하여 본인의 주체성을 확장시키지 못하게 하는데 이바지 해왔음이 타당한 견해라는 것과 이러한 현실 속에서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라는 물음에 대해 우리가 가져야할 태도에 대해 고찰해보고자 한다.2. 본딧말신자유주의 시대에는 경제적 인간, 즉 호모에코노미쿠스의 육성이 가장 중요한 목표이다. 이렇게 육성된 호모에코노미쿠스는 무한경쟁사회에 던져지게 된다. 이 사회의 배경에는 과거부터 우리들의 사고를 지배해온 유교문화와 나누고 줄 세우고 남과 비교하기 좋아하는 국민성인 서열, 순서, 기수따지기, 우열따지기, 다수자와 소수자 따지기 등의 복합적인 요소들이 모여 있다. 수직적인 사회구조가 뿌리내리기 딱 좋은 구조인 것이다. 이런 구조에 일제강점기와 군사정권을 겪은 군대문화가 침투해왔다. 우리 사회의 이러한 배경들이 우리들에게 순응적, 가부장적 가치관을 주입한 것이다.위에서 언급했다시피 신자유주의 메커니즘을 우리는 아무런 비판 없이 수용하고 있으며 권위에 복종하는 것을 당연시한다. 이러한 가치가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인 우리 사회에 만연하는 군대문화를 예로 들어보자.대한민국은 징병제의 영향으로 대부분의 남성이 가장 처음 군대에서 권위주의와 계급사회를 경험하게 되는데, 이 중 현역생활을 마친 일부 남성들 중에 군대생활을 빌어 사회와 군대를 동일시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악습이 대물림되는 경우가 있으며, 이것이 하나의 관습이란 이름으로 굳어져 있다.그러나 이것은 민주주의이자 공화국 사회인 대한민국에서 통할 수 없는 논리이며, 헌법에 정면으로 위반되는 것이다. 헌법에도 명시되어 있듯이 군대라는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계급으로 사람의 지위를 나누는 것은 불법이며, 모든 국민은 헌법 아래에서 자유와 권리의 평등을 보장받고 있다.『대한민국헌법, [시행 1988.2.25.] [헌법 제10호, 1987.10.29., 전부개정]』, 제2장 국민의 권리와 의무, 제11조 ①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②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모든 대한민국 국민은 범죄를 저질러서 공권력에 구속되지 않는 한 계급에 의해 자유의 억압과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 또한 이러한 헌법을 기준으로 하는 민법이 통하는 사회에 군대라는 특수집단의 기준을 적용하여 군대와 사회를 동일시하려는 것은 사회에 민법이 아닌 군법을 적용하는 원리와 같다. 대한민국 사회에는 군법이 적용될 수 없으며, 군법을 적용할 수 있는 경우는 국가비상사태나 계엄령이 발령되었을 때만 가능하다.이렇듯 조금만 따져 들어가면 비상식적이며 인도적이지 못한 행위가 어째서 관습이라는 이름으로 물려내려 오는 것일까. 군대에서 행해지는 행위는 복종에 그 목적이 있다. 육체에 대한 통제를 통해 의식을 통제하는 것이다. “과거 군국주의 일본이 왜 이 땅에 학교를 세웠었을까? 조선 사람을 위해서? 그렇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 목적에는 조선 사람의 의식과 몸의 통제에 있다. 몸의 통제가 의식을 통제하는 데 얼마나 효과적인지 푸코는 강조한 바 있다.” 홍세화, 『생각의 좌표』, 한겨례출판, 2009, p.55최종적으로 의식에 대한 통제를 통해 이 사회의 메커니즘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임에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다.육체와 의식의 통제를 받아 언제나 생존을 위해 경쟁하고 유연함이라는 수식어로 포장된 불안한 노동시장환경에서 성장한 호모에코노미쿠스에게 합리적 행동은 단지 생존을 위한 합리적 행동일 뿐이며 그러한 합리적인 행동은 자신이 주체가 되어 아는 것이라 생각한다.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에 생존만을 위한 신자유주의 무한경쟁의 메커니즘은 서로에게 모순이 되어 우리는 비판적인 사고를 잃게 되었다. ‘왜?’라는 질문은 죽었으며 교육은 미친 교육이 되었고 학문은 더 이상 학문이 아닌 반(反)학문이라는 보이지 않는 이름을 내걸게 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공부하면서도 인간과 사회에 대해서는 자기 생각과 논리가 없어 지배세력에게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사회구성원을 양산하는 그런 메커니즘 말이다.” Ibid, p.433. 맺는말소크라테스가 델포이 신탁에 새겨진“너 자신을 알라(gnothi seauton)”라는 문구를 즐겨 사용하였다는 것은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이다. 칸트Kant Immanuel Kant, 1724~1804, 18세기 독일의 철학자.
    사회과학| 2014.11.11| 3페이지| 1,000원| 조회(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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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교육의 중요성과 현실, 그리고 극복방법
    [서양문화사]역사교육의 중요성과 현실, 그리고 극복방법역사란 무엇일까. 정의를 내려 본다면 선택되고 재구성된 인간의 변화 과정이라 말할 수 있겠다. 여기서 선택과 재구성은 '기록으로서의 역사', 뒤의 인간과 변화는 '사실로서의 역사'를 의미하는 문구이다. “역사는 역사를 위하여 역사를 짓는 것이요, 역사 이외에 무슨 다른 목적을 위하여 짓는 것이 아니다.”라는 단재(丹齋) 신채호선생의 말이 있다. 하지만 과거의 사실이 전달자에 의해 선택되고 재구성된다는 것 때문에 승자의 역사에서는 승리한 쪽의 입장에서 역사를 정리하고 사료 자체가 승자의 것이 많으며, 정치상의 목적을 위해 왜곡되거나 단편적인 진실을 기록한 역사 기록을 남기는 경우가 허다했다.물론 과거의 사실은 누가 어떤 방식으로 전하더라도 선택과 재구성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자신의 입장, 가치관에 따라 관심사가 정해지고, 그 이후의 자료 수집도 자신만의 기준에 따라 정리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칭기즈 칸에 대한 기록 대다수는 그에게 패했던 아랍인들에 의한 기록인 것처럼 세상에 수많은 역사 중에 패자의 역사도 많다. 또한 사건, 인물에 대한 평가가 시대에 따라 무조건 똑같은 것도 아니다. 따라서 후대에 이르러 저평가 받았던 게 긍정적인 면모를 드러내 재평가되는 경우도 있다.영국의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Edward Hallett Carr는 역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역사는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상호작용의 계속적인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즉 기록으로서의 역사를 해석함에 있어 무조건 한 기록만 맹신하고 성급한 결론을 내릴 것이 아니라 여러 기록을 교차 검증해서 결론을 내리고 이 결론 또한 끊임없는 분석을 통해 재검증 하는 과정을 수행해야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이러한 과정 때문에 역사학은 인문학의 꽃이자 정수라고 불린다. 단순히 시대를 줄줄 나열하고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에 따른 사건간의 인과관계를 파악하는 학문으로서, 정확한 인과관계와 실증을 요구하는 점에서 과학적, 철학적 방법을 많이 필요로 한다. 여러 인문학적 성과를 종합해야 하는 학문이므로 인문학 중에서도 가장 통합적, 논리적 사고가 중시되고 길러지는 학문이다.또한 역사는 과거 인류가 거친 노하우나 과오가 기록되어있다. 따라서 후대의 인류는 여러 가지 사건사고 등을 방지하기 위해서도 역사교육은 중요하다. 이를 위해 국가교육기관에서는 필수적으로 역사교육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과거 동아시아의 한자문화권에서는 역사는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라 하여 역사서에 鑑(거울 감)으로 끝내는 제목의 역사서가 많을 정도이다. 키케로는 역사교육의 당위성을 다음과 같은 말로 했다. "Nescire autem quid antequam natus sis acciderit, id est semper esse puerum(당신이 태어나기 이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모른다면, 당신은 영원히 어린아이로 남을 것이다)." 또한 윈스턴 처칠도 역사에 대한 의식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A nation that forgets its past has no future(역사를 잊은 국가에게 미래는 없다).”그 외에도 많은 역사학자와 성인들은 역사교육이 필요함을 주창했다.하지만 우리들이 제대로 된 역사교육을 받고 있을까. 단순히 누군가가 정립, 해석해놓은 역사적 사실만을 수동적으로 받아먹고 있지는 않을까. 오랫동안 고식적인 틀에 갇혀 수험적 지식으로만 역사를 가르치고 배워오지 않았는가. 즉 역사학에서 가장 중요한 생각하는 것을 잊어버렸다. 그래놓고 떠먹여 주는 대로 받아먹었던 역사적 사실들을 마치 내가‘아는 것’으로 규정해버렸다. “18세기 프랑스의 교육철학자 콩도르세Condorcet는 사람을 ‘생각하는 사람’과 ‘믿는 사람’으로 나누었다.” 이는 현대적 인간과 중세적 인간으로 나눈 것인데 역사교육에 있어 우리는 그저 믿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비판적인 사고를 잃게 되었다. ‘왜?’라는 질문은 죽었으며 교육은 미친 교육이 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공부하면서도 인간과 사회, 역사에 대해서는 자기 생각과 논리가 없어 지배세력에게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사회구성원을 양산하는 사회.”
    인문/어학| 2014.11.10| 2페이지| 1,000원| 조회(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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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구온난화논란 리포트
    지구온난화(地球溫暖化) 논란< 목 차 >1. 들어가는 말2. 본딧말1) 지구온난화란?2) 온실효과 이론(1) 온실기체(2) 온실효과 이론3) 온실효과 이론의 취약성4) 기후변동 주기론5) 태양활동3. 맺는말※ 참고문헌1. 들어가는 말많은 과학자들은 인류가 화석연료를 연소하는 과정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가 원인이 되어 극단적인 기상 변화가 계속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이로 인하여 “지구온난화에 대한 공포는 환경 운동에 활기를 불어넣어 전 세계적으로 천문학적인 국가 예산이 기후 시스템을 관찰하고 파악하는 일에 투입되고 있고, 지구온난화를 주제로 한 대중적인 영화들이 탄생했을 뿐만 아니라또한 독일의 녹색당으로 대변되는 정치 운동이 강화되는 데 일조하고 있다.” Roy W. Spencer, 『Climate Confusion』, Encounter Books , 2008 ; 《기후 커넥션》, 이순희 옮김, 비아북, 2008, pp.10~11그러나 현재의 온난화는 인간 활동의 결과물이 아닌 자연적인 현상이라는 과학적 견해가 있다. 온난화로 인한 지구의 위기는 과학적으로 밝혀진 것이 없으며, 여론에 편승한 정치인과 과학자가 만들어낸 그릇된 이론에 불과하다는 것이다.이에 지구온난화가 자연적인 현상이라는 지적이 타당한 견해라는 것을 탐구해보고자 한다.“온난화 문제는 인간이 발생시킨 CO2(및 온실효과기체)가 지구 온도를 높이면서 악영향을 낳는다는 과학적인 설과, CO2의 배출을 감소시키면 온난화를 억제시킬 수 있다는 대책으로 나뉜다. 하지만 어느 쪽도 자기 편리한 대로 부분적인 현상만을 취급하고 있으며, 이를 기정사실화 해버렸다. 아직 가설에 지나지 않은데도 말이다.” 伊藤 公紀 & 渡 正, 『地球暖化問題へのと』, K.K Bestsellers, 2009 ; 《지구 온난화 주장의 거짓과 덫》, 나성은 · 공영태 옮김, 북스힐, 2009, p.92. 본딧말1) 지구온난화란?지구온난화(Global Warming)란 지구표면의 평균온도가 상승하는 것으로() 온도가 상승하면 생태계가 1980년까지의 기온 평균과 비교하여 1880년부터 2011년까지의 육지-해양의 온도 변화 그래프. 초록색 바는 오차 범위를 나타낸다.< 그림 - 1 >미국 국방부 장관 고문 앤드류 마셜이 총괄한 이 보고서에는 과다한 화석연료의 사용으로 인해 발생한 이산화탄소가 빙하와 만년설을 사라지게 한다고 쓰여 있었다. "Our future enemy is not terrorist, but a nature disaster." 즉, 테러, 핵전쟁 보다 더욱더 문제가 되는 인류미래의 적은 자연재해라는 것이다.이 사실이 알려지고 얼마 후 영화의 토대가 되었던 보고서 내용은 세계 각지를 돌며 지구온난화에 대한 경고를 했던 앨 고어를 통해 전파되었다. 그것은 바로 2006년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어 전 세계에 상영되었던 앨 고어의 《불편한 진실(An Inconvenient Truth)》이다. 불편한 진실은 산업발달로 인해 증가된 이산화탄소가 대기 중 수증기 아르곤등의 기체와 뭉쳐 기체와 섞여 대기에 온실기체를 형성하고 지구의 온도를 뜨겁게 하며 그로 인해 생태계가 무너져 인류에게 재앙이 될 것이라는 무서운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러한 앨 고어의 불편한 진실은 심각한 지구온난화 문제를 전 세계에 알리는 기폭제로 작용한 것이다.2) 온실효과 이론(1) 온실기체“온실기체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반사되어 나가는 적외선 복사 에너지 중 일부를 사로잡아 공기를 데워 온실효과를 일으키는 것이다. 수증기가 대기에 의한 혼실효과 중 36~70%를 기여하고, 이산화탄소가 9~26%, 그 다음으로 오존이 3~7%를 기여한다. 그 외 메탄, 염화불화탄소 등이 있다.” Albert Arnold Gore Jr., 『An Inconvenient Truth』, St Martins Pr, 2006, 《불편한 진실》, 김명남 옮김, 좋은 생각, 2006,가정, 자동차, 공장, 발전소에서 화석연료를 태울 때, 나무를 베거나 삼림을 불태울 때, 시멘트를 제조할 때 대기 중으로 이산화탄소를 뿜어낸다. 수증기도 자연에서 발생하도의 햇빛만이 지표에 도달하게 되 < 그림 - 3 > 는데, 이때 지표에 의해 흡수된 빛 에너지는 열에너지나 파장이 긴 적외선으로 바뀌어 다시 바깥으로 방출하게 된다. 이 방출되는 적외선은 반 정도는 대기를 뚫고 외계로 빠져나가지만, 나머지는 구름이나 수증기, 이산화탄소 같은 온실 효과 기체에 의해 흡수되며, 온실 효과 기체들은 다시 지표로 되돌려 보낸다. 이와 같은 작용을 반복하면서 지구를 덥게 하는 것이다. 위키백과, http://ko.wikipedia.org/wiki/%EC%98%A8%EC%8B%A4%ED%9A%A8%EA%B3%BC (searched 23 June 2013)()실제 대기에 의해 일어나는 온실 효과는 지구를 항상 일정한 온도를 유지시켜 주는 매우 중요한 현상이다. 만약 대기가 없어 온실 효과가 없다면 지구는 화성처럼 낮에는 햇빛을 받아 수십도 이상 올라가지만, 반대로 태양이 없는 밤에는 모든 열이 방출되어 영하 100℃ 이하로 떨어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산화탄소와 같은 온실기체의 증가로 < 그림 - 4 >온실기체가 지구를 둘러싸게 되었다. 이 때문에 지구 대기는 두텁게 막이 생겼으며 태양의 열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된 것이다.()1988년 6월, 제임스 한센이 미 연방의회 증언 때 사용한 그래프. 기온 변화가 이산화탄소의 농도 상승과 비례하고 있다.< 출처 - 伊藤 公紀 & 渡 正, op. cit, p.22)< 그림 - 5 >3) 온실효과 이론의 취약성이산화탄소 배출량과 지구 표면의 온도가 모두 높아졌다. 이런 사실을 놓고 높아진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지구온난화를 초래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온실효과 이론에 따르면 이 사실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사실 온실효과를 일으키는 기체들이 인간들의 산업 활동에 의해 다량으로 배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1940년 이후 지구의 온도는 아주 미미하게 상승했음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은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온실기체들의 영향은 지구와 거기에 사는 사람들에게 거의 해를 미치지 않을 만큼 작다는발하지 않았던 1940년도 이전에 발생했으며 지구온난화 이론에 따르면 2차대전이후의 경제 붐 기간에 온도는 더 상승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무려 40년 동안 온도가 내려간 것을 확인 할 수 있다.또한 킬링곡선()에서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농도는 대단히 급격하게 상승하는 듯이 보이지만, ppm이 단위로 쓰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한다. 380ppm 남짓 되는 현재의 농도는 공기 분자 100만 개당 이산화탄소 분자가 380개 있다는 소리이다. 다시 말해, 공기 분자 1만 개당 이산화탄소 분자가 3.8개 있다는 소리이다. “이렇게 함유량이 대단히 적기 때문에 이산화탄소는 대기 중의 ‘미량 기체’ 중 하나이다. 즉 이산화탄소의 양은 절대로 많은 것이 아니다.” Roy W. Spencer, op. cit, p.1004) 기후변동 주기론"지구가 더워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구 도처에서 발견되는 과학적 증거들은 인간의 활동에 의해 배출되는 이산화탄소가 온난화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대신 지금의 따뜻한 온난화는 적어도 백만 년 전부터 1,500년(±500년)주기를 가지고 나타나는 자연적 기후 변동 현상의 한 부분인 것으로 보인다.” Fred Singer and Dennis T. Avery, op. cit, p.11“중세기 기후는 현재만큼이나 아니 지금보다 더 따뜻했다는 주장이 있다. 그런 주장들이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지구온난화 운동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큰 의미가 있다. 만약 지금보다 중세기의 기후가 더 따뜻했다면, 온난화가 화석연료를 사용해서 야기된 것이 아닐 수 있다. 이것은 20세기의 온난화가 단지 자연적 기후 변동의 한 부분일 수 있다는 것을 뜻하며, 화석연료 사용을 저지하기 위한 정치적 제재를 정당화시키지 않게 되는 것이다. 예전의 기온 자료들이 새롭게 많이 만들어졌다. 그렇지만, 잘 조정된 정밀한 자료들은 몇몇 지역들에서만 얻을 수 있었다. 적도 근처와 남반구 지역들에서는 단지 소수의 자료들만이 현재 출판하였는데,() 이 자료는 중세기 온난화 기간이 지금보다 훨씬 더 따뜻했음을 보여준다. 또한 중세온난기 이전을 다시 거슬러 올라가보면 더 기온이 높았던 충적세최고점이 있었다. 이때에는 무려 3천년 동안이나 기온이 현재보다 높았다.()< 그림 - 8 >“하지만 6년 후 IPCC는 “기후변화 2001”에서 지난 1,000년간의 기후 변화를 보여주는 완전히 새로운 그림을 발표했다. “기후변화 2001”은 MIT 대학의 이학박사인 마이클 만 박사가 1998년에 발표한 그래프를 내세우기 시작했다.” Ibid, p.108만 박사팀의 연구는 1,000년부터 1980년 사이 약 1,000년에 걸친 과거 기온 변동을 조사하기 위해, 기온 변화를 나타내는 여러 자료(대부분이 나무 나이테 자료)들을 분석한 것이었다. “그러고는 그 자료에 20세기의 지표면 기온자료들―대부분이 열섬효과에 시달리는 도시들에서 측정된 기온자료들―을 생짜로 접붙였다.” Ibid, p.109그 효과는 시각적으로 대단했다. 이전 온실효과 이론으로는 설명하기 까다롭던 중세기온난화()와 소빙하기() 문제들이 갑자기 사라져버린 것이다.과거 1,000년 동안의 북반구 기온 변화, 수목의 나이테 등을 이용하여 마이클 만연구팀이 추정한 그래프.< 출처 - The IPCC Third Assessment Report, Working Group1, 2001, p.134 ; IPCC 제 3차 평가 보고서, 실무대책반1, 2001, p.134 >< 그림 - 9 >만 박사의 그래프를 보면 1910년까지 900년 동안 지구기온 변동이 안정적이다가 20세기에 들어서 기온이 갑자기 통제할 수 없을 지경으로 급상승한 것처럼 보인다. 이 곡선은 그 모양 때문에 ‘하키 스틱’곡선이라 불린다. 하키에서 공을 치기 위해 사용하는 스틱과 비슷하게 생긴 데서 유래한다. 기온 변화를 그다지 보이지 않는 기간이 손으로 잡는 부분, 갑자기 기온이 쑥 오르는 기간이 공을 치는 부분에 해당한다. 伊藤 公紀 & 渡 正, op. cit, pp.83~84하7
    자연과학| 2014.02.28| 12페이지| 2,000원| 조회(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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