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
Bronze개인
팔로워0 팔로우
소개
등록된 소개글이 없습니다.
전문분야 등록된 전문분야가 없습니다.
판매자 정보
학교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직장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자격증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판매지수
전체자료 23
검색어 입력폼
  • 제레미 벤담(Bentham) 레포트
    서론영국은 산업혁명을 통해 비교적 일찍 산업사회를 이룰 수 있었다. 산업혁명기의 영국은 아담 스미스의 자유 시장 경제 이론을 통해 근대 이전의 과두제적 정치체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또한 국왕, 귀족, 시민 세 계급의 타협을 통해 영국은 민주정치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발달은 필연적으로 자본가와 노동자의 빈부격차를 불러왔다. 이러한 자본의 억압에 대해 새로운 정치이론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에 따라 벤담을 중심으로 하는 철학적 급진파에 의해 영국정치체제의 개혁론으로서 공리주의가 전개되었다. 이제 공리주의의 이론을 정립한 제레미 벤담의 정치사상을 본론에서 살펴보도록 하자.본론: 공리주의를 중심으로벤담은 『도덕 및 입법의 원리 서설』을 통해 그의 정치 사상을 피력하였다. 전체 18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공리의 원리와 그 근거가 되는 쾌락과 고통에 대한 사실들, 인간 행위와 관련된 일반 사실들, 그리고 그에 근거한 범죄의 유형 및 처벌에 관한 그의 견해 등으로 채워져 있다. 그는 입법의 문제를 정치체제의 근본으로 보아 법률상의 문제에 주요하기도 했지만, 그의 정치사상의 기초는 ‘최대 다수의 최대행복’으로 압축되는 공리주의 원리였다.벤담에 있어서 공리벤담에게 있어서 공리주의의 주체는 개인이었다. 공동체란 단지 개인들의 산술적인 총화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았다. 또한 인간의 행동 원리는 행복을 성취하고 고통을 회피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행동은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기준이 아닌 행위의 ‘결과’가 인간의 쾌락을 증진시켰는지, 고통을 안겨주었는지에 따라 판단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또한 공리성의 원리는 단순히 개인의 행복만이 아닌 고려되는 당사자 전체의 행복의 증진에도 관련되어 있었다. 어떤 행위가 사회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경향이 크다면 그 행위가 공리성의 원리에 합당하다고 보았다. 벤담은 쾌락 계산을 제창하여 무엇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에 기여하는지 알 수 있다고 하였다.벤담의 개혁이론 – 공리주의벤담은 정치체제의 개혁의 기준으로서 공리주의를 제시하였다. 사적인 도덕뿐만 아니라 정치체제의 가치도 그것을 측정하는 유일의 지침이 합리적인 공리의 원리인 것이며 정치제도에 적용되는 공리원리가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인 것이다. 그런데 개인은 언제나 쾌락의 추구와 고통의 회피라는 이기성을 갖는 데에 반해 공리의 원리는 모든 이에게 쾌락을 부여하는 이타적인 성격을 지닌다. 이러한 상황에서 개인의 공리 추구가 반드시 사회적 공리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사회적 공리의 실현을 위해 인위적인 실정법을 통해서 조화를 이루도록 해야 한다고 보았다. 또한 사회적 공리의 실현을 위해서는 위정자의 부정한 이익을 배제해야 한다고 보았다.그의 개혁 이론은 자연법의 이론과 대결하는 것이었으며 당시 영국정치체제의 개혁 이론으로서의 성격을 갖는 것이었다. 국가는 계약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필요성의 충족이 정치권력의 존립근거인 것이었다. 법률 또는 정치권력은 인간의 생명이나 재산에 영향을 미치는 결과에 따라 판단되어야 하는 것이었다.벤담의 정치체제 – 대의제벤담에 있어서 인간의 자유는 크게 제한을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었다. 반면 공리의 원리상 정부의 권력은 제한한다는 것이 내포되어 있다. 공리의 원리인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은 정부의 임무여야하며, 여기에 정부의 정당성의 근거가 있다고 보았다. 정부는 개인의 자유로운 행복추구에 관여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정부가 인민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정권이 조기에 평화롭게 교체되는 것이 단 하나의 방도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벤담은 인간이 항상 스스로의 이익을 정당하게 이해하고 있지는 않다고 보았다. 따라서 정부는 때로는 인민의 여론을 무시하는 것이 필요하며, 공통의 법을 추구하는 정부는 지적이며 훈련 받은 인간의 집단이어야 한다고 보았다.그러나 그의 이러한 개혁이론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권력자들은 스스로의 행복만을 추구하였다. 이에 벤담은 정치기관의 개혁은 기대할 수 없는 것이며, 정치 개혁에 의해서만 공리주의의 실현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여기에 벤담은 공화주의적인 정치이론을 전개하게 되었다. 벤담에 있어서 주권은 최고의 구성적 권력이며 이 주권은 인민에게 속한다고 보았다. 이에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이해가 상호충돌 하지 않는 민주제가 가장 적당한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루소가 주장한 직접 민주주의는 실현 가능성이 없다고 보아 대의제가 가장 적합한 정치체제라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정치 이론이 해야 할 일은 대의제를 어떻게 잘 운용되게 할 수 있으며, 대의제가 지배자와 피지배자 또는 자유와 권력의 충돌이 가장 적게 되도록 하는데 있다고 보았다.결론벤담의 공리주의 사상은 한계점들이 존재한다. 과연 행동의 결과를 정확히 예측하고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가, 윤리적 목적은 정말 고려의 대상이 아닌가 등의 의문점들이 있다. 또한 쾌락추구에 있어서의 평등함만을 강조함으로써 최초의 조건이나 기회에서 비롯되는 불평등을 간과해 매우 큰 빈부격차를 허용하게 되는 허점이 있다. 전체의 행복을 위해서는 개인이 희생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 개인의 존엄성을 말살해버리기도 한다.하지만 벤담은 새로운 정치이론으로서의 시민 정치 이론을 제기하였다. 그의 개혁적 사상은 영국의 1832년 선거법 개정에서의 자유주의적 입법을 통해 결실을 맺었다. 또한 형법의 완화, 주 법원의 설치, 증거주의 절차의 합리화 등이 실현되어 19세기 법률 개혁에 큰 영향을 미쳤음이 인정된다. 경제적으로도 20세기 후생경제학의 기원이 되기도 하였다.Bentham
    인문/어학| 2017.05.30| 2페이지| 1,500원| 조회(195)
    미리보기
  • 플라톤(plato) 레포트
    서론시대배경플라톤은 아테나의 정치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21세에 소크라테스의 제자가 되어 그에게 배우고 결정적인 영향을 받았는데,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목격하고 큰 충격을 받은 그는 정치가로서의 꿈을 버리고 정의를 가르치기로 결심하였다.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키레네 학파로부터 이데아와 변증법의 기초를 얻고 피타고라스 학파에 접하며 실천적 정신과 실생활에의 흥미를 얻어 그의 독자적인 사상을 반성하게 되었다. 그는 그의 친구의 제안에 따라 시라큐스의 디오니시오스에게 철인왕의 모델을 접목시켜보고자 하였으나 실패하였고 학교 ‘아카데메이아’를 건립하여 제자 양성에 전력하였다.본론철학적 기초 – 이데아론플라톤 사상은 이데아론을 핵심으로 한다. 플라톤에 따르면 절대적인 지식의 대상, 즉 객관적 실제가 있으며, 영원 불변하는 보편 개념을 이데아라고 하며, 이데아는 모든 대상의 원형이 된다. 예를 들면 ‘개개인의 아름다움에 관한 기준을 초월한 아름다움이 있는가’와 같은 물음을 통해 대부분이 주관적 가치의 영역으로 판단되었던 ‘용기’, ‘아름다움’, ‘선’ 등의 문제를 ‘객관적’ 가치의 영역으로 전환하고자 하였다. 또한 노예 소년조차도 ‘논리적 절차’에 따라 수학 문제를 풀 수 있었는데 이것이 수학의 보편성을 보여준다. 이처럼 수학의 개념과 본질(원형)에 도달할 때 형상 이데아를 만날 수 있다고 설명하였다.이에 따라 인간이 감각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현상 세계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계이므로 참다운 세계가 아니며, 보다 고차원적인 순수사유, 즉 이성에 의해서 포착될 수 있는 이데아의 세계만이 참된 세계라고 보았다. 결국 플라톤은 현상세계와 이데아의 세계를 철저하게 분리해서 생각한 것이다. 우리의 현실은 이데아를 모사(mimesis)한 것에 불과하며 현상세계를 넘어 이데아를 인지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경험은 단지 개별적 사례에 머물고 만다고 보았다. 플라톤은 모든 사물의 이데아 중 최고의 이데아를 ‘선의 이데아’라고 보았고, 이를 추구하는 것이 삶의 목적이라고 하였다.인간은 교육을 통해서, 에로스(eros)적 기질을 통해서, 변증법적 활동을 통해서 이데아를 다시 알 수 있다고 플라톤은 주장하였다.이상국가 – 정의 실현 방법 – 각자의 arête 발휘, 조화로운 국가플라톤의 이상국가에서 폴리스의 구성원인 각 개인은 각자가 가진 본성의 자기동일성을 유지하는 존재다. 그러면서도 각 개인들은 서로간의 조화로운 관계를 맺음에 의해서만 자신동일성을 유지할 수 있는 상호의존적인 존재이다. 이 같은 인간 본성에 따라 국가는 자연 발생하며 유기적인 것으로 이해되었다. 또한 구성원 개개인의 다수성이 국가와 조화롭게 결합될 때 비로소 올바른 국가가 완성된다고 하였다.또한 이상 국가의 운영을 위해 플라톤은 인간이 가져야 할 세 가지 덕(arête)을 제시한다. 그것은 지혜, 용기, 절제의 덕(arête)으로 국가를 이루는 세 가지 기능, 즉 지배, 수호, 생산의 담당자들에게 요구되는 것이다. 지배자는 진리와 지식을 추구하고 인간을 강조해야 하며, 수호자는 기개를 발휘하고 용감해야 하며, 생산자는 감각적이고 본능적인 욕망을 억제하도록 해야 한다.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덕을 다하여 조화를 이루면 정의의 덕이 실현되는데, 정의의 실현이 바로 국가의 목적이다.국가 정체 – 철인정치론플라톤은 철인왕에 의한 국가를 통치가 가장 바람직한 정치체제라고 보아 귀족정치를 옹호했다. 철인왕이란 통치자 계급에 해당하는 사람들로 가장 지혜롭고 가장 이성적인 사람이다. 인간이란 신체적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이상적 상태는 지속적이지 못하다. 그래서 이러한 불균형과 부조화를 조절하기 위해서 통치자의 지혜와 이성이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의 귀족과 다른 점은 혈통에 의한 세습이 아닌 교육에 의해서 계급이 결정되며, 가족과 재산을 공유해 사적 소유에 대한 욕망을 저절로 제한할 수 있게 한 것이다.반면 참주정은 가장 나쁜 형태의 통치체제이다. 이는 사적 이기심으로 가득한 개인에 의한 지배이기 때문이다. 또한 민주정에 대해서도 중우정치라고 하여 비판하였는데, 플라톤에게 민주정이란 생산자 집단이 자신들의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고 지배의 영역에 침범하여 통치하는 국가였기 때문에 매우 혼란스러운 것이었다. 또한 전문성과 공공성이 결여된 시민까지 참여하게 됨으로써 민주정은 최종적으로 참주정을 초래하게 된다는 것이다.결론플라톤 사상의 의의는 다음과 같다. 우선 인간적인 것들에 집중했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사상가들은 우주의 기원과 구조를 중점적으로 연구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인간적인 것들에 집중하였고, 플라톤 역시 그의 영향을 받았다. 플라톤 사상은 인간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한층 더 발전시켜 놓았다. 또한 소크라테스의 사상뿐 아니라 소피스트, 피타고라스 학파 등 다양한 철학들을 조화시켰다.정치적인 측면에서는 최초의 체계적인 정치철학이다. 이데아론에 입각하여 정치현상을 개념화하고 정치에 윤리의 목적을 부여한 이상주의의 철학이다. 또한 정치체제의 유형론을 최초로 정식화하였다.plato, bc 428~347
    인문/어학| 2017.05.30| 2페이지| 1,500원| 조회(144)
    미리보기
  • 존 로크(John Locke) 레포트
    서론: 시대 배경로크는 근대 국가 역사에 있어서 가장 정치적 굴곡이 심한 격변기에 일생을 보냈다. 일생 동안 청교도 혁명(1640)과 명예혁명(1688)이라는 두 차례 혁명을 경험했으며, 교육혁명의 시대를 살았다. 영국의 상황을 좀 더 들여다보면, 전제 군주정이 붕괴하고 입헌군주제가 확립되었으며, 농업중심에서 상업 중심으로의 경제 정책을 취하게 되었다. 또한 청교도 혁명으로 인해 신앙에 관한 박해는 점차 사라져 신앙의 자유를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로크는 이러한 역사적 대 전환기에서 정치 사상을 총괄하고 새로운 교육이념을 선명하게 제기하는 역할을 하였다. 특히 로크가 주장하였던 통치 형태는 명예혁명의 승리를 통해 영국에 정착하게 되었다. 아래에서는 그의 저서 [통치론]을 중심으로 그의 정치사상에 대해 논해보고자 한다.본론 사회계약론을 중심으로[통치론]로크의 정치 철학은 [통치론]에 수록되어 있다. [통치론]은 [정부에 관한 두 논문] 혹은 [시민정부론]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통치론]은 두 편의 논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 1논문에서는 절대 군주제를 지지했던 로벌트 필머 경 및 그 추종자들의 잘못된 원칙과 근거에 대한 지적과 반박을 담았고, 제2논문에서는 시민정부의 참된 기원, 범위 및 목적에 대한 소론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서양 근대 정치사상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한 그 정치이론이 바로 제 2논문에 담겨있다. 기본 구조로는 자연 상태와 이를 극복하기 위한 사회계약, 그 이후의 국가의 목적과 정부 형태의 설명으로 이루어진다.자연 상태로크의 자연상태는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상태”로 설명되는 홉스의 자연상태 논의와는 다르다. 로크의 자연상태는 평화로운 상태이며, 자연상태에서 인간은 자연법의 테두리 안에서 스스로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바에 따라 스스로를 규율하며, 자신의 소유물과 인신을 처분할 수 있는 완전한 자유의 상태이며, 모든 권력과 권한은 호혜적으로 어느 누구도 다른 누구보다 더 많이 가질 수 없는 평등의 상태에 놓여있다. 또한 자연은 자연법에 의해 지배되고 있기에 방종의 상태는 아니며, 그 모든 사람이 자연법의 집행자가 되어 위반자를 처벌할 수 있는 권리를 가졌다고 보았다.따라서 자연상태 초기는 자유스럽고 평화로웠다. 그러나 인간이 금, 은 등 상하지 않는 귀중품에 가치를 부여하여 이를 교환수단인 화폐로 사용하게 되면서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재산을 확장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한 반면 불평등한 사유재산제를 초래하였다. 이후 사유재산이 축적되면서 한정된 자원에 대한 경쟁이 치열해져 갈등이 증폭되었기에 화폐경제가 지배하는 사회는 사유재산을 보호할 수 있는 국가의 설립 없이는 지탱할 수 없게 되었다고 로크는 인식했다.사회 계약을 통한 시민 사회로의 진화로크는 ‘소유물’이라는 용어를 통해 사람들이 국가 설립으로 보존하려는 대상을 총칭하였는데, 그 구성 요소를 생명, 자유, 재산으로 이해했다. 국가설립의 목적은 소유물의 보존이며, 자연상태에서는 확립된 법률의 부재, 무사공평한 재판관의 부재, 판결 이행의 권력 결여로 사람들의 소유물을 보장할 수 없었다는 것이 로크의 관찰결과였다.따라서 로크는 소유물을 안전하게 향유하기 위해서 “일정한 수의 사람들이 서로 결합하여 하나의 사회를 형성하고 각자 모두 자연법의 집행권을 포기하며 그것을 공동체에 양도하는 곳에서 비로소 정치사회가 존재”한다고 보았다. 즉 권리를 양도하는 행위에 대한 “동의”가 있음으로써 시민사회, 더 나아가 시민정부를 구성하게 되는 것이다.국가 권력로크는 공동체 구성에 있어 구체적으로는 “입법부에는 법률제정권을 위임하고, 집행부에는 조력을 제공하며, 침해를 보상해줄 권위를 가진 재판관을 설정하여 비로소 인간은 자연상태에서 벗어나 국가의 상태로 들어가게 된다”고 보았다. 그런데 그는 재판관은 입법부이거나 그것이 임명한 위정자라고 표현함으로써 입법부와 집행부가 정부를 구성하는 국가권력의 이권분립을 구성했다. 또한 절대군주제의 경우 군주 혼자서 입법권과 집행권을 모두 가지고 있기에 시민사회와 양립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나아가 로크는 소유물의 공동체 구성의 목적인 ‘소유물의 안전한 향유’를 위해서는 확립된 법률이 필요하며, 입법권을 확립하는 일은 모든 국가의 기본이라고 보았다. 그리하여 입법부에게 국가의 최고 권력 지위를 부여하였다. 그런데 법률 제정은 단기간에 가능하기 때문에 입법부를 상설화할 필요는 없으나, 법의 집행을 담당하는 집행부는 상시적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 로크의 판단이었다. 그는 또한 연합권(외국과 전쟁, 강화, 동맹 등을 수행하는, 말하자면 외교에 관한 권한)과 대권(법률과 무관하게 공공선을 위해서 재량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권한)은 집행권에 위임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인문/어학| 2017.05.30| 3페이지| 1,500원| 조회(190)
    미리보기
  • 스토아학파, 헬레니즘 레포트
    서론스토아학파는 헬레니즘 시대를 그 배경으로 한다. 알렉산더대왕의 동방원정으로 지금의 아시아에서 아프리카에 이르는 알렉산더 제국이 건설되었고 이 과정에서 그리스와 동방의 문화가 융합된 헬레니즘이 탄생했다. 이 시기는 이방인의 잦은 침입과 사회적 혼란으로 사람들이 불안한 생활을 하게 되었으며, 폴리스의 붕괴에 따라 공동체 생활에 대한 의욕을 잃고 개인의 안심입명에만 관심을 가졌다. 따라서 사람들은 불안한 상태의 사회에서 벗어나 마음의 평정과 자유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추구하게 되었다.이 시기에 키프로스의 제논이 창설한 스토아학파(stoidsm)는 당시 대가였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조화시켰다. 이들에게 최고 선과 행복은 우리가 정욕적인 것에서 완전히 자유로워 지고, 그렇게 하여 마음의 평정을 유지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성의 힘으로 욕심을 끊어 ‘아파테이아’의 경지, 즉 정념이 없는 상태에 이르는 것이 이들의 목적이었다.본론논리학스토아학파의 논리학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력이 두드러진다. 인식의 출발을 보편보다는 개별 객체의 경험으로 파악했다. 감각으로 경험되지 않는 것은 보편적인 것에 도달할 수 없다고 보았다. 한편 스토아학파에 따르면 ‘판단’이란 한 가지 생각에 대해 주체가 동의하는지의 여부였다. 그리고 판단의 참, 거짓은 생각의 내용이 사태와 일치하는지의 여부에 달려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보다 정교하다.자연학스토아학파는 세상을 구성하는 모든 것들을 물질로 보는 유물론적 세계관을 취하였다. 인간의 신체는 물론이고 영혼, 신, 사물의 성질, 덕 까지도 모든 것이 물체라는 것이다. 또한 모든 물체는 물질과 힘으로 나누어지는데, 물체 그 자체에는 아무런 성질이 없지만, 신적인 힘이 가해지면 비로소 운동성이 생겨 여러 가지 성질이 나타난다고 보았다. 이 ‘힘’의 근원은 바로 ‘로고스(logos)’이다. 로고스는 우주를 지배하는 보편적인 이성으로, 로고스가 우주에 깃들어 있음으로써 질서 있게 유지된다고 보았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본성에도 이러한 로고스가 깃들어 있기에, 이성에 따르고 충실하게 생활함으로써 가장 인간답고 자연의 본성에 따르는 생활이라고 보았다. 요컨대 물질 세계와 신적인 힘을 하나로 보는 범신론적인 인식으로, 우주의 법칙과 인간의 도리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윤리학스토아학파는 ‘자연에 따르는 삶’을 강조하였는데, 이는 우주적 인간 관계와 자연 법칙을 제대로 깨치고 그것을 따라 합치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인간 개개인의 본성이 자연의 보편적 이성과 하나되는 것을 뜻하는데, 이 것이 바로 아파테이아(apatheia)의 경지이다. 아파테이아란 어떤 상황에서도 동요하지 않는 정신상태를 의미한다. 결국 인간의 사사로운 욕망과 감정을 극복하고 오로지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할 때 진정으로 자유롭게 된다는 것이다.
    인문/어학| 2017.05.30| 2페이지| 1,500원| 조회(142)
    미리보기
  •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레포트
    서론아리스토텔레스는 마케도니아 스타게이라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니코마코스가 마케도니아 왕의 주치의였기에 자연스럽게 의학과 자연과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17세부터 플라톤의 아카데메이아에서 공부하기 시작하여 사물의 이치를 꿰뚫어 보는 뛰어난 지혜가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는다. 스승 사후 마케도니아의 왕자 알렉산드로스의 가정교사로 있기도 했던 그는 다시 아테네로 돌아와 리케이온에 학교를 세우고 제자들을 가르치며 12년간 강의와 연구에 종사했다. 그는 논리학의 기초를 세웠다고 평가 받으며 스승 플라톤과는 다른 독자적인 철학 이론을 정립하였다. 이데아론 비판, 의지 강조, 일원론 주장 등이 있다.본론철학적 기초 일원론적 세계관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인 플라톤이 시간을 초월하여 정지된 세계인 이데아 세계에 관심을 둔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생성과 변화의 세계인 현실 세계에 관심을 두었다. 현실과 동떨어진 이데아로는 현실세계를 설명 할 수 없다고 보며, 본질의 세계는 현실 속에 잠재되어 있다는 말로 일원론적 세계관을 제기하였다. 모든 사물은 ‘형상’ 과 ‘질료’로 이루어져있는데, 형상은 변하지 않는 사물의 본질이며, 질료는 끊임없이 변하고자 하는 사물의 소재이다. 그런데 질료와 형상은 각각 분리되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세계는 일원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이상이 아닌 현실 속에서 참다운 존재를 찾고자 해야 한다고 보았다.니코마코스 윤리학 행복 추구, 목적론적 세계관, 덕, 중용아리스토텔레스는 존재하는 모든 것은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은 행복과 이성에 기반한 자아의 실현이라고 보았다. 이때의 행복은 각자의 주관적인 느낌이 아니라 인간의 존재방식, 즉 이성에 알맞은 덕스러운 행동을 의미하는 것이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덕(arete)를 쌓아야 하고, 덕의 내면화를 위해서는 덕을 반복해서 실천하여 습관화 시키는 것과 중용(mesotes)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중용이란 과도와 부족의 중간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는 산술적인 수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균형 잡힌 상태라고 보았다. 지혜는 무지와 전지, 용기는 비겁과 만용, 절제는 궁핍과 사치의 중용이라는 현실적인 덕으로 보았다. 이러한 중용은 구체적 실천 과정 속에서 형성된다.요컨대 아리스토텔레스는 덕을 실천화하고 습관화하여 잘 발휘하는(탁월성을 띠는) 유덕한 인간이 행복(eudaimonia)을 추구할 수 있다고 보았다.정치관 최고의 선 추구하는 정치공동체 폴리스, 인간의 본성상 정치적 동물, 정치체제 시민(중산층- 중용을 갖춘 이들), 정치체제 사적이익 포함되면 왜곡, 집단의 판단이 현명한 듯 하나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인간은 필요에 의해 가정을 이루고, 더 큰 필요를 충족시키고자 촌락을 구성하여 마침내 자급자족을 실현할 수 있는 최고의 공동체로서 국가를 구성하게 된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폴리스적 동물(zoon politikon)이다”라고 정의하면서, 인간은 본성에 따라 국가에 살도록 되어있는 동물이라고 하였다. 또한 정치가 생긴 목적은 최고의 선을 추구하며 인간을 인격적인 존재로 완성시키는 것이라고 하였다. 정체의 형태는 왕정(1인), 귀족정체(소수), 민주정체(다수) 중에서 선택되어야 하는데, 지배자의 수가 몇 명이 되든 간에 사적인 이익을 지향하는 정체는 모두 잘못되었다고 하였다. 또한 지배의 형태가 어떻든 정체의 최선의 형태는 권력의 중심이 중간계급의 손, 즉 재산이 너무 많지도 적지도 않은 시민 계급의 손에 달려있어야 한다고 보았고 이를 통해 정치적으로 중용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인문/어학| 2017.05.30| 2페이지| 1,500원| 조회(173)
    미리보기
전체보기
받은후기 2
2개 리뷰 평점
  • A+최고예요
    1
  • A좋아요
    0
  • B괜찮아요
    1
  • C아쉬워요
    0
  • D별로예요
    0
전체보기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5월 03일 일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6:07 오전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