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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가 서거정의 생애와 그의 문학작품연구
    四佳徐居正朴修賢詩成自笑一詩吟了又吟詩. 盡日吟詩外不知閱得舊詩吟萬首, ?知死日不吟詩.)시를 짓고 스스로 비웃으며시 하나를 읊어 다 마치고는또 하나를 읊게 되니,하루가 다 가도록 하는 일이라곤시 읊는 것 밖에 모른다네.옛날에 지어 둔 시를오늘에 와 열어 보니 만여 수라.죽는 날에 가서야시 짓는 일을 멈추게 될테지.이 한시를 제일 앞에 배치한 이유는 四佳 徐居正에 대해서 본고를 쓰면서 가장 서거정다운 漢詩라고 느껴지는 시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훈구라는 세력 속에서 그들을 지켜야만 했던 서거정. 그 틀 속에서 얼마나 답답하였을까? 겉으로 들어 내지 않고 묵묵히 자신을 일을 해나간다. 타들어간 마음을 문학으로 승화시켰다는 생각이 든다. 참으로 멋있는 시인이자, 관료이자, 사람이다.Ⅰ.序論1.서거정의 文學에 관한 연구서거정의 문학에 관한 연구가 일찍부터 이루어졌는데 그것은 크게 4가지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먼저 그의 문학사상과 문학론이 朝鮮前期(조선전기)의 문학론과 관련해 주목되었고, 그의 문학론을 보다 본격적으로 규명하기 위해 『東人詩話』(동인시화)만을 집중 거론한 연구 성과가 상당히 축적되었다. 이를 기반으로 연구범위를 좀더 확장해 그의 한시작품의 경향과 성취정도를 논의하기도 했으며, 아예 그의 문학 전반을 논의대상으로 삼은 연구가 나오기도 했다. 이와 같이 그의 문학에 대한 연구는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비교적 다양하게 이루어졌다고 하겠다. 그러나 기존연구가 대체로 『東人詩話』(동인시화)를 중심으로 한 문학론의 규명에 치우쳐 있어, 여전히 그의 문학적 면모가 완전히 드러났다고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뿐만 아니라 『東人詩話』(동인시화)나 그의 문학론 전반에 관한 논의도 보다 정확한 관점을 확립하기 위해 재검토 작업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2.서거정의 生涯와 年譜서거정(1420-1488)의 본관은 達城(달성), 자는 剛中(강중), 호는 四佳(사가)라 했다. 증조부는 호조전서 義(의)이고, 아버지는 목사 彌性(미성)이며, 어머니는 權近(권근)의 딸이다. 崔恒(최항)이 그의찬성에 오르고 『삼국사절요』를 공편하였으며, 1477년 달성군에 다시 봉해지고 도총관을 겸하였다. 다음 해 대제학을 겸하였고 곧이어 한성부 판윤에 제수되었다. 이 해 『동문선』130권을 신찬하였다. 1479년 이조판서가 되어 송나라 제도에 의거하여 문과의 관시, 한성시, 향시에서 일곱 번 합격한 자를 서용하는 법을 세웠다. 1480년 『역대연표』를 찬진하였다. 1481년 『신증동국여지승람』 50권을 찬진하고 병조판서가 되었으며 1483년 좌찬성에 제수되었다. 1485년 世子貳師(세자이사)를 겸하였으며 이 해 『필원잡기』를 저술하여 사관의 결락을 보충하였다.이와 같은 서거정의 생애를 요약하여 보자. 그는 여섯 왕을 섬겨 45년간 조정에 봉사하면서 23년간 문형을 관장하고, 23차에 걸쳐 과거시험을 관장하여 많은 인재를 뽑았다. 앞서 소개한 저술 이외에도 개인문집으로 『四佳集』(사가집)이 전하며,『東人詩話』(동인시화),『太平閑話滑稽傳』(태평한화골계전)등을 남기기도 하였다. 한영우 교수는 서거정의 생애를 이렇게 말한다.“그의 학풍과 사상은 이른바 15세기 관학의 분위기를 대변하는 동시에 정치적으로 훈신의 입장을 반영하였다. 그의 한문학에 대한 입장은 『동문선』에 잘 나타나 있는데 그는 우리 나라 한문의 독자성을 내세우면서 우리 나라 역대 한문학의 정 수를 모은 『동문선』을 편찬하였으며 그의 한문학 자체가 그러한 입장에서 형성 되어 자기 개성을 뚜렷이 가졌던 것이다. (중략) 『삼국사절요』의 서문에서는 고 구려, 백제, 신라 삼국의 세력이 서로 대등하다는 이른바 삼국균적을 내세우고 있 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서문에서는 우리나라가 단군이 肇國(조국)하고 箕子 가 受封한 이래로 삼국, 고려시대에 넓은 강역을 차지하였음을 자랑하고 있다. (중 략) 그가 주동하여 편찬한 사서, 지리지, 문학서 등은 전반적으로 왕명에 의해서 士林人士(사림인사)의 참여하에 개찬되었다. 그런데 그가 많은 문화적 업적은 남겼 으면서도 성종이나 사림들과 전적으로 투합된 인물은 아니었던 것으로 생(태평관)에 들어가 손가락으로 창문을 뚫고 안을 엿보니, 중국 사신이 이를 싫어하여 서거정을 잡아 들였다. 사신은 서거정의 용모가 준수한 것을 보고 글씨를 아느냐 물으니 서거정은 그렇다고 대답하고 글을 지을 줄 아느냐 물으니 그것이 무슨 어려운 일인가 하였다. 이에 “손으로 종이창을 뚫으니 구멍[孔子](공자)이 된다(指觸紙窓成孔子지족지창성공자).”라 하니, 어린 서거정은 “손에 밝은 거울을 쥐고 얼굴 돌려[顔回](경회)대한다 (手持明持對顔回수지명경대경회).”라 답한다. 이에 사신이 크게 기이하게 여겨 여러 가지를 물으니 곧바로 대답하였다 한다.)서거정은 10살에 부친을 여의게 되는데, 이보다 앞선 8~9세부터 이곳저곳 사찰에서 승려에게 글을 배웠다. 그가 공부하였던 곳은 장단, 임진, 임강의 여러 산사였다한다. 이로 보아 8~9세까지 한양과 임진을 오가며 학업을 익혔다고 하겠다. 11세에는 安州(안주)의 天王寺(천왕사)에서도 독서를 하였다. 도함 10여년을 산사에서 공부를 하였고, 출사 이후에도 賜暇(사가)독서를 산방에서 한 것이 여러 해였다 한다. 15살 무렵에는 學宮(학궁)에서 공부를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때 세 살 아래인 韓繼禧(한계희)와 함께 공부 하였다. 서거정은 세종 20년(1438)에 생원시와 진사시에 연이어 합격하고 성균관에 입학하였다. 그 이듬해 1439년 겨울에 유방선에게 원주 別墅(별서)와 法泉寺(법천사)에서 權擥(권람), 韓明澮(한명회), 康孝文(강효문) 등과 함께 수학하였다. 유방선에게 나아간 것은 서거정이 제일 먼저였고 나중에 평생의 지기 한명회, 권람이 이어 와서 함께 거처하며 토론하고 4~5년을 보냈다고 한다.)서거정은 익힌 학업을 바탕으로 자신 있게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낙제하고 만다. 함께 낙제한 유성원과 대취하도록 술을 마셨다는 것으로 보아 작심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그 날 항아가 계수 한 가지를 아껴서복숭아꽃 피는 이 시절에 나누어주지 않네.만금의 좋은 골격 누가 알아주랴,천불의 명함을 나는 알지 못하겠네.칼을 뽑아 크게 . 불도를 좋아한다는 말을 듣게 되지만 좋아하는 것이 자취이며 자취가 아니라 형세이다. 한유나 유종원도 그러하였으니 일반이야 그렇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였다.)신동이었던 사람 서거정. 어려움이 없을 것 같던 그에게 찾아온 낙제. 그 후 만난 사람들을 통해서 갖추어졌을 문학세계. 참으로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싶다면 지금 누구를 만나고 있는가를 보라고 했다. 서거정이 만난 사람, 그들이 서거정을 만들어냈다.4.서거정의 관료생활서거정은 세종 26년 (1444) 甲子年 文科 시험에서 3등으로 급제하고 司宰直長(사재직장)의 벼슬을 받는다. 이때 성임이 수석, 강희맹이 2등이었다. 고려 이래 이 시기에도 좌주의 영향력이 상당하였는데, 서거정 등 급제자의 좌주는 南原君(남원군) 進士試(진사시)와 丁丑年(정축년)의 覆試(복시)를 모두 그의 문하에서 하였고 集賢殿(집현전)에서도 그를 받들어 수년을 함께 일하게 된다.)서거정의 관료생활에 대해서 말한다는 자체가 사실은 語不成說(어불성설)이다. 그는 천재였고 천재를 나라에서 가만히 놔둘 리가 없었다. 그는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으면 자연스럽게 관직의 길이 열려있었다. 관직에 목을 매지 않아도 할 수 있었고, 오를 수 있는 자리까지 모두 올라갔다. 관직에 超然(초연)했다기보다는 정해진 운명처럼 살아온 사람이다. 그에게 과연 관직 생활은 재미가 있었을까?다음 작품을 통해 서거정의 관료 생활을 엿보도록 해보자.과거 시험장에 새벽에 앉아서시험장은 어두컴컴해 날이 아직 밝지 않았는데옥당의 학사들은 모두 영웅 호걸일세.뜰 가운데 타는 촛불은 바다와 같고문 밖에는 흰 도포 선비들이 구름 같아라.북을 향하는 천리마, 그 누가 뛰어나려나남을 꾀하는 붕새는 이미 깃을 쳤네.임금께서 나에게 仙桂(선계))를 나눠주라 하시니여러 선비들이여 힘을 다해 쓰시게.試院?坐시원효좌試院深?夜未朝, 玉堂學士盡英豪.시원심효야이조, 옥당학사진영호.庭中似海?紅燭, 門外如雲立白袍.정중사해효홍촉, 문의여운립백포.拱北??誰俊逸, 圖南鵬鳥巳扶搖.공불초를 지었기에 희필이 많다. 그는 “시 짓는 데 굳이 안배를 공교로이 할 필요 없으니, 시구 얻는 곳이 좋은 경치 있는 곳임을 깊이 알겠네. 뜻대로 시 이루어진 것 이제 만수라, 반은 비라혹 반은 우스꽝스러워 부끄럽구나(詩成不必巧安排, 得處深知蔗境佳 隨意詩成今萬首, 只慙俚語半?諧.시성불필교안배, 득처심지자경가 수의시성금만수, 지창리어반회해)”라 하고, 또 “오직 입에서 남을 놀라게 하는 말만 내지만, 반은 풍류요 반은 골계로다(唯餘出口驚人語, 半是風流半滑稽.유여출구경인어, 반시풍류반골계)”라고도 하였다. 그는 실제 희작을 많이 지었다. 출구와 대구의 운자를 나란히 앞뒤로 두는 進退格(진퇴격)을 자주 구사하고, 매구 동물의 이름을 집어넣는 演雅體(연아체), 金石絲竹匏土革木(금석사죽포토혁목)의 入音(입음)을 하나씩 매구에 넣은 入音體(입음체), 建除滿平定執破危成收開閉(건제만평정집파위성수개폐)등의 12글자를 매구에 하나씩 넣는 建除體(건제체) 등 잡체도 즐겨 지었다.쉴 만하여 쉬는 날 쉬는 것이 좋구나.쉬지 않을 때 쉬는 것은 쉬는 것도 부끄럽다네.세 번 네 번 쉬어 일곱 번 쉬는 객이여.쉬고 쉬어 다시 이제 또 쉬고 쉬게나.可休休日休方好, 休不休詩休亦羞가휴휴일휴방호, 휴불휴시휴역수三四休竝七休客, 休休今復更休休삼사휴병칠휴객, 휴휴금복경휴휴)서거정이 시주에 탐닉하면서 병이 자주 들었기에 스스로를 杜甫(두보)와 司馬相如(사마상여)에 비하였다.이 신세 표연히 떠도는 부평초 같아한가함은 애오라지 작은 창에 부친다.사마상여는 병이 많아 오래 소갈병을 앓았고두보는 시를 읊조리며 일생 곤궁하였지.매실은 어둑어둑 강 북쪽에 비 내리고석류꽃 깔끔한데 저물녘에 바람이 분다.향 피워 우두커니 도연명의 시 읽고 나니술 석잔에 얼굴이 슬쩍 붉어졌구나.身世飄然似轉蓬, 餘閑聊寄小窓中신세표연사전봉, 여한료기소창중相如多病長年渴, 杜甫吟詩一世窮상여다병장년갈, 두보음시일세궁梅子昏昏江北雨, 榴花淡談日西風매자혼혼강북우, 유(류)화담담일서풍焚香坐讀陶詩了, ?作三盃面小紅분향좌독도(요)시료, 은작삼배면소홍서거네
    인문/어학| 2013.06.18| 17페이지| 1,000원| 조회(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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