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
Bronze개인
팔로워0 팔로우
소개
등록된 소개글이 없습니다.
전문분야 등록된 전문분야가 없습니다.
판매자 정보
학교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직장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자격증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판매지수
전체자료 2
검색어 입력폼
  • 서양건축사(비잔틴건축에서 바로크건축까지) 평가A+최고예요
    BYZANTINE? 비잔틴?5세기 말 서로마 멸망 / 동로마(비잔티움 제국)? 콘스탄티노플 중심으로 동로마?대다수 그리스계통 사람들 그러다 점차 로마의 색깔이 없어짐? 아폴리나레 성당(S. Apollinare)?검소한 초기 기독교 형태?교회 옆에 예배를 알리기 위한 종탑이 있음(올라가면서 창이 많아짐)?이중주두(=도세레 / 산타콘스탄자에서 영향을 받음) → 아치를 지탱하기 위해?벽화에 모자이크가 발달됨 ↔ 외부는 단순?외부는 수수한데 내부는 화려, 비잔티움의 특징? 갈라플라시디아 무덤(Mausoleum of Galla Placidia)?로마 말기 건축?십자가 형태의 가운데가 높음?정사각형 위에 돔을 올림 (펜던티브의 초기 →성소피아 성당에 영향)?평면은 사각형?중앙 공간이 돔 겉으로는 모름? Baptistery of the Orthodox?세례당은 기독교 건축에서 중요함(천국을 가기위한 곳)?세례당은 팔각형 내지 원형? 로마의 무덤, 세례는 다시 태어난다는 의미?내부에 욕탕이 있음(세례하는 곳)?팔각형 아치 위에 돔(완전한 팬던티브 전 단계)?욕탕 위에 돔에 세례받는 벽화? 세르기우스 바커스(S. Sergius Bacchus)?팔각형 위에 돔?8개의 피어(굵은 기둥)위에 아치를 중심으로 반돔 위에 큰돔?가운데 공간은 성직자 공간(종교적인 무대 / 신도들은 가운데에 들어가지 못함)?aisle 입체적으로 1층, 2층?황제 전용 예배당? 산 비탈레 성당(S. Vitale)p?입구에 에이트리움?세르기우스 바커스랑 평면은 비슷함?하중이 아치+반돔으로 분산시킴?이 시기 콘크리트 공법이 사라짐 그대신 벽돌을 튜브로 가볍게 만들어 쌓아 올림?반돔의 하중은 컬럼(얇은 기둥)으로?밖은 검소 내부는 화려(비잔티움의 특징)? 모자이크? 성소피아 성당(Hagia Sophia)?콘스탄티 바실리카 평면에 돔을올린것과 유사?하중이 내려오면서 점차 퍼져나감?비잔틴 제국에서 가장 걸작, 로마건축물 중 가장 위대(하지만 회교건축의 모델이 됨)?현재는 회교 사원_ minaret 4개가 세워짐?하 문양으로 나타냄.?사람이나 동물의 모습을 전혀 나타내지 않았다.?타일 문화.? Dome of Rock?모하메드가 알라를 만난 곳?회교에서 엄청 신성한 곳?돌 주변 원형 → 팔각형 → 팔각형?아라베스크 문양이 발달함(이곳이 옛 바빌론 지역)?수학과 기하학이 가장 발전된 곳?콤포지트 양식(비잔틴 지역이였기 때문에 비잔틴 사람들이 함)?돔은 목조?산 콘스탄자와 비슷?메카에서 멀리 있기 때문에 여성전용사원? Great Mosque, Damascus?돔을 중심으로 기독교와 회교가 반반 나중엔 회교사원으로?미흐랍-메카를 향한 곳?기둥에 비잔틴 양식이 그대로 있다(이중주두, 황금모자이크)?철저히 우상배제(벽화, 조각상)?세례 요한(이슬람에선 교회도 인정하기 때문에 파괴하지 않음)? Cordoba Cathedral?기둥이 잔뜩 있는 큰 공간?세계에서 가장 오랜 문명을 바탕으로 생긴 종교(단순아치X)?아치들을 겹치고 단순하지 않고 복잡함?우상배제(조각, 벽화X 문양이 발달)?기독교가 재탈환을 할 때 가운데에 교회를 지음(르네상스 장식이 혼재, 미나렛은 종탑으로)?돔을 뼈대로 만듬(골조돔)? 알함브라 궁전(Alhambra)?천일야화에서 나오는 천당은 재현한 곳?기본적으로 중정을 둘러쌈?정원에 항상 등장하는 것은 흐르는 물(물소리로 살아있는 연못)?스탈라타이트-종류석 같은 장식? 이스파한(Isfahan)?가운데에 광장이 있음(마이다=광장-쇼핑 겸 공원)?모스크들은 메카를 바라보기 위해 축이 틀어져 있음(축의 개념이 없어서가 아님)?루트팔라모스크 - 메카가 입구쪽을 향하기 때문에 일부로 동선을 돌아가게 함?샤모스크 - 종교,경제,정치 다목적 용도를 겸함(교회와의 차이)? 쾨주다리(Khwaju bridge)?건너는 곳만 아니라 물도 접하고 쉴 수 있는 공간? 타지마할(Taj Mahal)?왕비의 무덤?순 대리석으로 시공?산타콘스탄자?볼보스돔? 콘스탄티노플?비잔티움 오늘날 터기와 그리스 영토?쿠르크족이 쳐들어와 콘스탄티노플만 남음?콘스탄티노플에 로마의 잔재들이 남음?대포를 통해 성벽을르코 성당과 평면이 비슷함?비잔틴식 로마네스크(베니스와 교류가 많음)?명쾌한 구조시스템?프랑스의 유일한 돔*프랑스에서 고딕양식이 나옴, 로마네스크 양식이 바약적으로 발전? 성 피에르 교회(S. Pierre)?입면 전체를 조각으로(동시대 이슬람과 차이)?에일은 생략 네이브는 돔으로 구성 됨?공간을 규격화 시킴(로마네스크 양식 특징- 게르만족)?클러스트 피어가 미학적으로 장식? 성 에띠엔(S. Etienne / 아바에 옴)?영국을 정복한 윌리암 공을 위한?채플이 조금씩 튀어 나오네 아니라 둘러쌈?립(뼈대)가 연결됨 공간이 하나로 연결된 느낌이 듬(크로스볼트 / 로마네스크와 고딕 중간)?사방에서 하중들이 클러스트 피어에 내려옴?석조건축의 절정순수한 게르만 족의 석조건축의 특징로마네스크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음? 아바에 담(Abbaye Dame)?윌리암공의 마누라 ?쌍탑끝이 끊김(노르만 양식)?입구에 로마시대의 개선문이 보임 ?블라인드 아케이드?로마네스크 완성??해자를 놓고 성벽을 이중으로 ?후에 성이 감옥으로 사용?세인트 채플(왕이 쓰던 조금한 채플)? 더햄 성당?정면이 절벽이기 때문에 사이드가 입구?피어와 피어사이에 컬럼(로마네스크 양식의 특징)*신성로마황제가 있는 곳 독일? 슈페어 대성당(Speyer Cathedral)?성 미카엘 성당과 비슷?양극화가 됨(4개의 종탑)?립이 없는 크로스볼트?단차이를 둠? 보룸?종탑이 양극화(신성로마제국의 잔재 / 신권과 황권)?그리드 패턴? 성 암브로지오 성당(S. Ambrogio in ltaly)?그리드패턴 ?이슬람 건축에서 발전시킨 스퀸치돔이 있음?속세에서 영적공간으로 들어가는 과정이 다시 생김? 베로나?종탑이 떨어져 있음(캠페닐레)?공간을 단차를 두어 내려가면 무덤 올라가면 앱스? 피사(Pisa)?바실리카 - 2열에일 / 위에 크로스볼트X 로마적인 트러스 민자 구조 / 블라인드 아케이드(더블스킨) / 포인티드 아치(십자군 전을 통해 이슬람 세계와 접촉을하면서 들어옴)?피사의 사탑 - 블라인드 아케이드(입체감과 그림자)? 성 뒤에 탑이 두 개? 성 안넨 성당(S. Annen)?기둥 주두가 식물같이 뻗어나감? 산타마리아?구조가 이슬람 느낌이 듬 *고딕은 크로스 볼트만 있는게 아님 다양한 구조를 가짐? 부르고스?구조가 이슬람처럼 복잡함? 몽샹 미셸(Mont S. Michel)?시각적으로 중세를 잘 표현한 ?수도원이 수백년에 걸체 지어지다가 꼭대기에 고딕?성미카엘을 위한 ?자연과 인공물의 완벽한 만남 ?종교의 힘?로마네스크 양식과 고딕양식이 혼재 됨 ?신의 보호와 자연과의 대비?클로이스터 - 기둥과 아치가 이중으로 겹침 ?절대적인 기독교 가치하에 있는 신궁MEDIEVAL CITY? 알카자 성(Alcazar)?중세 때 많은 전쟁으로 성곽이 발달 ?이슬람식? 카카소니 성(Carcasonne)?이중성, 성밖에 해자, 성안에 해자, 성?중세도시 대개 길들이 삐뚤 자연스럽게 형성, 방어에 유리? 크락 드 슈발리에(Krak of the Knights)?원래 기존의 성을 뺐음(아랍식+유럽식) ?내성이 알레포와 비슷(아랍식이라 추측)*템플기사단(십자군 기사단 중 가장 유명) : 금융시스템 원조병원기사단 : 순례객들을 치료해주는? 로도스 성?콘스탄티노플이 대포로 함락 됐기 때문에 성을 낮추고 성벽을 두껍게? 아비뇽(Avignon)?아비뇽의 교황청 ?알코브? 베니스?섬들이 모인 섬?게르만족을 피해 정착한 곳?땅이 별로 없어 나무를 물에다 박아놓고 물책으로 만들어진 도시?가운데에 거대한 카넬이 있음?좁은 곳을 통해 큰 광장으로 모임?이태리식의 고딕 양식? 루가?집집마다 약력을 과시하기 위해 탑들이 많음? 시에나(Siena)?중세 도시가 가장 잘 보존?언덕위에 두오모?중세도시의 특징 길이 지형에 따라(이점:건물을 바라보면서 갈 수 있음, 뭐가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호기심 유발)? 삐에자 델 깜뽀 광장(Piazza del Campo)?시청사 앞에 부채꼴 모양 ?세속의 중심이라면 건너편엔 두오모 성당?그림자가 돌아다님? 두모오 성당(Siena Cathedral)?앞에서 보면 높게 올라갔지만 껍데기 ? 내부는 로, 르네상스인은 많은 분야에 특출난 사람건축가 될려면 천재가 되야한다 최고의 교육을 받고 많이 공부해야함새로운 건축10서를 씀? 산타마리아 노벨라(S. Maria Novella)?외관을 리모델링(원래 로마네스크 양식) ?입면이 정사각형으로 이루어짐?음악적 비례에 맞게됨 ?볼르트가 첨가? 빨라쪼 루첼라이(Palazzo Rucellai)?필라스터(장식화된 기둥) ?콜로세움을 응용한 입면? 산 프란체스코 성당(S. Francesco)?기존 고딕양식(외관은 르네상스 리모델링) ?정사각형을 기반으로 시작?로마의 개선문이 입면? 산 세바스티아노(S. Sebastiano)?로마의 신전 ?원형교회 시도? 산 안드레아(S. Andrea)?교회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침 ?전체입면은 로마신전(정사각형이 딱맞음),개선문?에일이 없어짐(예배당으로 사용됨) ?자이언트 필라스터- 웅장한 느낌을 줌?교회천장이 볼트조-하드리아누스 비너스신전 ?성베드로 성당의 조상? 피엔자(Piazza)?마름모꼴 광장 ?시각적인 효과?바로크에 자주 사용? 대학타운?궁을 르네상스식으로 개조 ?올라가면서 층고가 낮아짐*성기르네상스(1495-다빈치가 최후의 심판을 그림, 1520-라파엘로가 죽음25년 성기르네상스시대) 서구문명이 이 시대를 능가한 적이 없음전체적인 안정감을 강조? 상 사티노(S. Satiro)?길이 있어서 앱스를 증축하지 못함(그림과 조각으로 허상의 곳을 만듬) 투시도에 대한 완벽한 이해?알베르티 입면과 유사? 산타 마리아 그라지에(S. Maria delle Grazie)?고딕양식+르네상스? 산 삐에뜨로?성베드로가 처형된 곳?뗌삐에또?규모가 작은데 육중함(성기르네상스의 특징)?주두가 도리아식(기독교에서 사용했는데 비트루비우스가 도리아 양식은 남성적이라고 해서 사나이 베드로를 상징하기 위해 사용)?새로운 아치가 나옴? 벨베데르(Belvedere)?르네상스식 큰 정원을 설계함 ?더블스파이럴 계단-이중나선형 램프가 있어 올라가는 계단과 내려가는 계단이 다름 ?교황청이 앞장서서 고전 미술을 보존-카톨릭이용
    인문/어학| 2014.09.28| 39페이지| 1,000원| 조회(291)
    미리보기
  • 100년의 역사를 지닌 서울광장 분석
    100년의 역사를 지닌 서울광장 분석An Analysis of Seoul Plaza with a history of 100 years성 태 승*Seong, Tae-Seung……………………………………………………………………………………………………………………………키워드 : 서울광장,Keywords : Seoul plaza,……………………………………………………………………………………………………………………………1. 서 론1.1 연구의 목적 * 한양대 건축학과 학생, 2학년** 한양대 대학교 2학년 과정서울에는 여러 광장들이 생겨났고, 오늘날 이 광장들은 우리에게 다양한 이야기를 제공하고 있다. 그중에서 서울광장 주위엔 지난 100년간의 대한민국 역사가 공존하고 있다. 광장 주변에는 최초의 근대국가인 대한제국의 설립부터 일제강점기의 역사와 해방후의 대한민국, 그리고 지금도 수많은 세월들의 이야기가 있다. 서울, 그리고 사대문안의 많은 광장들 중에서도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광장인 서울광장을 다시 돌아보고자 한다.1.2 연구의 범위 와 방법본 연구의 범위는 시각적으로 나누어 설정하였다. 우리나라 근대화의 기점인 1876부터 일제강점기를 거쳐 해방이후부터 오늘날까지로 하였다.연구방법으로는 먼저 문헌조사를 통해 서울광장의 역사와 변천과정을 시기별로 분석한 후 연구범위에 해당하는 역사변천을 고증한다.2. 대한제국2.1 대한제국 시대의 서울광장1897년 10월 조선왕조의 26대 왕 高宗은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황제로 즉위했다. 조선이 대한제국이 되고 고종이 황제로 즉위하면서 서울은 새로운 시대의 열림을 세상에 보여줄 수 있을 만큼 새로워져야했고 그 새로움을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방법은 도시의 면모를 일신하는 것이었다. 서울은 대한제국의 황도로 재편되기 시작했다. 그 핵심은 중심의 이동, 즉 본궁을 경복궁에서 지금의 덕수궁인 경운궁으로 옮김으로 도심중심을 이동시키는 것이었고, 옮겨진 중심이 중심으로 기능하게끔 도시구조를 재편하는 것이었다. 이로서 조선 초 이래 큰 변화가 없던 도성내의 도로체계는 경운궁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구조로 재편되었다. 특히 그는 근대적인 문명 뿐 아니라 근대적 의식을 보여주는 기획으로 ‘공민들이 모일 수 있는’ 광장을 건설하는데 각별한 주의를 기울였다 .경운궁을 중심점으로 북쪽으로 현재의 태평로에서 세종로로 이어져 경복궁에 이르는 길, 동쪽으로는 구리개길(현재의 을지로), 동남쪽으로는 현재의 소공로, 남쪽으로는 남대문으로 이어지는 길들로 방사선형 도로가 수렴되는 대한문 앞의 넓은 공간은 이러한 계획의 일환으로 사람들이 모이기 적합한 집회 장소인 광장으로 탄생하게 된 것이다.그림1. 1861년 대한문 앞 광장 거리그림2. 1908년 대한문 앞 광장 거리그림3. 1910년 대한문 앞 광장 거리이 광장의 위치는 성리학적 세계관을 반영한 직선형 도로를 벗어나 중앙집권적 권력을 상징하는 방사선 형태의 중심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광장을 건설하려 했던 고종의 의도다. 황국으로서 주권을 만방에 과시하고자 하는 ‘독립 의지’와 더불어, 고종이 추구했던 또 하나의 가치는 바로 황권과 민권의 직접적 소통이었다. 왕권약화와 그로 인한 국가의 쇠퇴를 경험한 고종에게 있어, 대한제국의 승리와 번영은 곧 황권의 강화를 기반으로 하는 민권과의 소통에 달려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것이다. 환구단에서 황제 즉위식을 공개적으로 거행한 것 역시 황권을 민심의 기반 위에 세우고 싶었던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 백성들은 대한문 앞 에서 황제에게 단체 상소를 올리고 집회를 열었다. 을사보호조약이 일본 측 협박에 못 이겨 맺어졌다는 사실을 안 백성들이 대한문 앞 광장에 모여 항의 행사를 가졌으며, 복각상소(궁전을 향하여 절하고, 황제에게 직소하는 것)와 상소를 올리기도 했다. 문화원형백과, 2012, 서울 근대공간, from http://terms.naver.com/entry.nhn?cid=4521&docId=1766112&mobile&categoryId=4521이렇게 현재의 서울광장, 당시의 대한문 앞 광장은 처음부터 대단히 ‘정치적’이었고, 최소한 조선의 권력층과 백성들 간의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장소를 의도적으로 조성했었던 것 이었다. 이런 광장의 기능은 대한제국으로 나아가기 위한 근대국가의 서막이었다. 이후 대한민국 역사 속에서 계속해서 그 본질을 이어왔다. 심지어 국권을 피탈당한 일제 강점기에도 고종의 의도는 지속적으로 이어졌다.3. 일제강점기3.1 일제 강점기 시대의 서울광장일본의 한성 집권초기에는 경성부의 청사는 조선은행(현 한국은행) 광장을 사이에 두고 지금의 신세계백화점과 제일은행 제일지점 자리에 1896년 12월 소규모의 벽돌 2층 건물이 세워졌다. 르네상스식의 이 건물은 일본공사관용으로 지어졌는데, 일본이 한국의 외교권을 강탈한 1906년 초부턴 경성이사청으로 사용되다가 1910년부터 경성부청사가 되었다. 정재정 염인호 장규식, “서울 근현대 역사기행“, 해안, 2005, p179-183그러다 점차적으로 경성부의 도시적 기능이 팽창되어감에 따라 인구 및 경성부청의 행정업무 역시 증가되어 구청사의 좀은 장소에서는 사무처리에 지장을 초래하게 되었고 총독부에서는 부정의 현황에 따라 경성부 청사의 신축을 인정하였다. 서울육백년사, fromhttp://seoul600.visitseoul.net/seoul-history/sidaesa/txt/6-3-1-1.html그림4. 1920년 대한문 앞 경성일보 매일신보사옥신청사 건설의 후보지로는 여러 곳이 물색되었는데, 지금의 신세계백화점, 조선호텔, 시청, 대한상공회의소, 프레스센터 등이었다. 그 중에서 지금의 시청 장소(당시 경성일보 매일신보사옥)가 일본인의 상업지구와 가깝고 지형이 구릉으로 되어 있어 주위를 내려다보기 좋다는 등의 이유에서 선정되었는데, 아관파천(1896년)으로 러시아 공사관에 피신해 있던 고종은 이듬해 2월 20일 경운궁(덕수궁)으로 환궁하여 순종에게 왕위를 물려줄 때까지 고종황제는 이 곳에서 정사를 보던 곳으로 조선인에게 있어서 경운궁은 조선왕조, 대한제국을 상징하는 자리였다. 때문에 대한문 앞에서는 유생과 젊은이들이 밤을 새워 읍소하고 일제의 만행을 규탄했었다.그림5. 1919년 대한문 앞에서 고종황제의 승하를 슬퍼하며 조문하고 있는 모습그림6. 1919년 고종황제 국상 전날인 대한문 앞 모습그림7. 1919년 대한문 앞 광장에서 만세 시위를 하는백성들의 모습특히 1919년 1월 고종이 일제에 의해 독살을 당하자 전국에서 올라온 인파가 대한문 앞에 집결하여 백의의 인산인해를 이루었으며 이는 곧 삼일만세운동으로 연결되었으니 이로부터 이곳은 민족정기의 성지로 자리매김 되었던 것이다. 정재정 염인호 장규식, “서울 근현대 역사기행“, 해안, 2005, p179-183그림8. 1926년 경성부청 완공직후의 모습그림9. 1930년 경성일대의 모습그림10. 1935년 경운궁과 경성부청 일대의 모습일제는 상징축의 중요 지점들에 총독부, 경성부청, 조선호텔, 조선신궁, 경성역과 같은 대형의 식민통치용 건둘들을 입지시킴으로써 전 시대의 상징경관요소인, 경복궁, 경운궁 원구단, 남산, 대한문 등을 각각 의도적으로 소외시켰고 경운궁-대한문 앞에 경성부청사를 세워 조선민족의 숭왕 의식과 독립의지를 꺾으려 했다는 것이다. 또한 광화문에서 남대문까지의 길은 남대문 너머 용산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을 이어주는 길이 되었고, 이 길의 중심에도 역시 서울광장은 자리 잡고 있었다. 이렇게 서울광장을 중심으로 하여 왼쪽 아래로는 일본군이, 오른쪽 아래로는 조선은행이 위치함으로써, 서울광장은 식민 지배의 군사 권력과 자본 권력의 접합점이자 총독부와 이어지는 명실상부한 식민지배의 핵심 거점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정운헌, “서울시내 일제유산답사기”, 한울, 1955, p165-1904. 해방이후 오늘날까지4.1 50년대 이후 대한민국의 서울광장일제 강점기 이후 해방을 하면서 시청 앞 광장에서 특이할만한 점은 미국과 관련한 행사이다. 존슨 대통령 환영대회, 미군 소방차 인수식, 미 우주인 환영행사 와 같이 미국과 관련된 다양한 행사가 열렸으며, 심지어 미국 독립 기념일 행사가 열리기도 했다.그림11. 1966년 서울 시청 앞 린든 존슨 대통령 방한 환영식이는 한미 간의 힘의 관계가 시청 앞 광장이라는 공간을 통해 드러남을 뜻하는 것이기도 했다. 특히 해방 이후부터 1960년 정도까지는 사열식이나 육본 환영식, 향토방위대 결성과 같은 군 관련 행사가 많이 진행되었다. 이는 물론 해방 이후 있었던 한국전쟁과 깊은 관련을 갖는다.그림12. 1987년 서울시청 앞 이한열 열사의 영결식그리고 1964년 한일회담 반대시위와 1987년 6월 항쟁 같은 반정부 시위와 대규모 집회를 통해 자신들의 의사를 표현하던 대규모 모임의 장으로써 그 역할을 수행해 왔다. 권범철, 서울광장의 장소성에 관한 연구, 2007, p51-57그림13. 2002년 한일 월드컵 서울시청 앞 모습2002년 한일 공동 월드컵은 수백만의 국민들이 한 장소에서, 하나의 옷을 입고, 하나의 구호를 외치도록 만들었다. 이 현상은 곧 전세계적인 뉴스거리가 되었고, 우리에게 광장의 새로운 의미를 선사했다. 그리고 국민은 물론 정부 역시 광장의 문화적 필요성에 대해 적어도 더 이상 외면하지는 못하게 되었다. 2002년 월드컵이 끝난 뒤 시청 앞을 광장으로 조성하자는 여론은 같은 해에 있었던 서울시장 선거와 맞물리면서 광범위하게 확산되기 시작했다.그림14. 2010년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정부는 서울 중심 지역에 광장이 필요하다는 점에 동의했고, 기존의 서울시청 앞 ‘로타리’가 서울광장으로 이용하기 위해 40여 년 간 서울특별시청 앞에 놓여 있던 분수대를 헐고 주변을 다듬어 2004년 5월 1일 개장하였다. 총면적은 3,995평, 잔디광장 면적은 1,904평, 돌로 포장된 잔디광장 둘레 면적은 2,098평이다. 잔디광장은 대청마루에 보름달을 연상시키는 타원형이다. 잔디광장에서는 각종 대규모 문화행사가 펼쳐진다.40여 년 간 시청 앞에 있던 분수대 자리에는 조명에 따라 다양한 물기둥을 만들어낼 수 있는 바닥분수가 들어섰다. 두산백과, 서울광장, from http://terms.naver.com/entr
    인문/어학| 2014.09.28| 6페이지| 1,000원| 조회(275)
    미리보기
전체보기
받은후기 1
1개 리뷰 평점
  • A+최고예요
    1
  • A좋아요
    0
  • B괜찮아요
    0
  • C아쉬워요
    0
  • D별로예요
    0
전체보기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5월 23일 토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6:53 오전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