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장면 구성과 이해단편희곡분석제목: 박수칠 때 떠나라작가: 장진등장인물: 최연기/정하연/정유정/형사반장/무숙/창화/일본인 남녀/무속인/부검의/벨보이/형사1,2/모델/경매 도우미/경매 사회자/성우 남,녀/연출/피해자/피의자/내레이터/호텔지배인/해설/진행/증인1,2,3,4/주유원/기자/리포터/통역장소: 취조실,과학수사실,수사실,호텔,스튜디오,부검실시간: 사건이 일어나고 정하연을 취조하는 순간부터 사건이 종결되는 시간까지.(2일)구성: 연극 대본이라기보다는 영화 시나리오 적 색채가 강하고 암전이나 장막의 개념이 아니라 영화의 컷 개념을 연극에 도입하였다. 연극은 보지 못했으나 관람한 사람들에 말을 빌리자면 2시간 30분의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지루함을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시간적 순서로 배열되어 있으며 각 타이틀마다 장면의 변화와 인물간의 갈등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에서도 연극과 마찬가지로 타이틀을 도입하고 추가로 사건이 흘러가는 것을 보여주는 시계장치도 쓰여 졌다. 타이틀은 사건의 변화를 보여주고 시계는 주인공들의 심리변화를 보여 준다고 생각된다.사건의 배열발단인트로미모의 카피라이터가 호텔방에서 아홉방을 칼에 찔려 숨지고 형사들은 그 사건의 범인에 대한 취조 장면이 생방송으로 나간다는 것에 대해 흥미를 느낀다.전개2.정하연vs최연기반장 최연기는 취조실에서 범인으로 유력한 정하연에게 취조를 하기 시작하지만 생각만큼 순탄치 않다. 방송국 스튜디오에서는 취조과정을 생방송으로 중계해주며 시청자들에게 상황설명을 해준다.2-1최연기는 정하연에게서 죽은 정유정의 방에 휘발유통을 들고 들어간 것에 대하여 불을 지르려고 했다는 것은 자백 받는다. 하지만 이미 정유정은 죽어있었기 때문에 자신은 불을 지르지 못하고 나왔다는 발언에 최연기는 발끈하여 끝까지 추궁하지만 살해에 대한 자백은 받아내지 못한다.2-2명동거리에 나온 중계차는 생중계 되고 있는 사건에 대하여 시민들에게 의견을 묻는다.위기3.중구난방제2취조실에서 반장과 형사들이 몇몇 증인들(벨보이, 주유소 직원, 일본인 부부, 옆방커플, 지배인)을 데리고 심문을 한다. 벨보이는 그날 정유정에게 물을 갖다 주었고 평소 같으면 팁으로 5천원이라도 주었을 텐데 그날은 팁을 주지 않은 것이 이상했다고 말하고 주유원은 정하연이 주유소에 와서 기름을 20리터나 받아간 점과 깔대기가 필요 없다고 한 것이 이상하다고 말한다. 잠시 후 취조실에 최연기가 들어오고 옆방커플을 취조하다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다며 거슬려 한다. 잠시 후 방송 연출자가 들어와 최연기에게 시청률이 50%나 된다며 시간을 끌어달라고 부탁 한다. 최연기는 금방 범인이 잡힐 거라며 자신 있어 한다.정유정이 죽은 호텔 물품이 취조실에 도착하고 회사증인들을 취조하던 중 정유정이 불륜을 저질렀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최연기는 죽은 정유정의 사진을 보고 애뜻함을 느끼게 된다. 잠시 후 전화가 걸려오고 1시간동안 cctv에 아무 상황도 찍히지 않았다는 말을 듣게 된다.4.과학vs심리학정하연은 거짓말 탐지기를 몸에 부착하고 질문에 대하여 탐지기가 반응이 없자 최연기가 직접마이크를 잡고 질문을 하기 시작한다. 최연기는 정하연에게 정유정을 죽인 것이 맞냐고 닦달해보지만 정유정은 끝까지 아니라고 답하고 그래프는 변화가 없다. 정하연은 최연기에게 그래프가 변하는 것을 보여준다며 자신이 범인이라고 자신이 여자라고 말한다. 그러자 거짓말 탐지기는 거짓말이라고 반응하고 정연기는 망연자실한다.5.청담동 중계차중계차가 정유정의 이웃들에게 정유정의 평소모습에 대해 질문한다.(중요치 않음,관객에 호흡유도장면인 듯함)6.재연드라마방송에서 지금까지의 상황을 토대로 재연 드라마를 보여준다.7.제3취조실취조실에 정하연과 증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최연기가 취조실로 들어온다. 최연기는 정하연이 죽은 정유정의 친동생임을 알게 되고 망연자실하며 약간의 연민도 느낀다.8.시체부검실부검하던 도중 정유정의 사체에서 피라솔이라는 독극물을 발견하게 된다.9.경매장프로그램에서 정유정과 관련된 물품을 경매한다.(중요치 않음. 시청률에 대한 홍보효과증대의 역할)10.몽환 드라마환상장면으로서 죽은 정유정과 정하연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최연기 또한 죽은 정유정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 장진 특유의 환상장면 삽입된 것임 )부검의에게 정유정이 칼에 난도질 당하여 죽기이미 이전에 독극물로 인해 죽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최연기는 정유정의 소지품을 뒤진다. 그리고 구겨진 빈종이를 발견한다.11.작은 회의실cctv를 관찰하던 중 반장과 형사들은 기술실 앞 로비에서 이상한 인물을 발견하게 된다.12.독립조명최연기는 정유정이 죽던 당일 옆방에 묵었던 커플 중 한무숙이 죽은 정유정의 불륜상대의 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의심을 한다. 그리고 그날 유일하게 정유정의 방에 물을 갖다준 벨보이도 의심을 하는 척 한다.절정13.굿판유명한 무속인이 굿판을 벌리고 정유정의 영혼이 벨보이의 몸속으로 들어간다. 벨보이는 자신을 찌른 칼이 기름통속에 있다고 말하고 최연기는 곧장 눈치 채고 남녀커플을 지목한다. 남녀커플은 사체훼손으로 체포 되고 또한 장유정이 물을 시키지 않았는데 벨보이 에게 물심부름을 시켜 독극물을 타서 살해한 것을 알게 된 최연기에 의해 지배인 또한 체포된다.14.수정된 재연 드라마방송에서 지금까지 상황을 토대로 재연드라마를 보여준다.결말15.무대 넓은 취조실범인을 잡고 수사가 종결되고 방송 또한 끝마치게 된다. 최연기는 정유정의 가방에서 발견된 메모지가 약봉투였음을 알게 되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연극이 끝나기 직전 관객석 어느 지점에서 죽은 정유정이 침대에 앉아 가방에서 약봉투를 꺼내 물을 따라 약을 마시고 바닥에 눕는 것을 최연기는 바라본다.
시창작 심화숲의 어둠을 볼 줄 아는 시인- 나무 이야기, 나희덕 시인-1. 들어가며나희덕 시인을 알기 위하여 내가 처음 해야 했던 일은 시집을 읽어 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평론가들이 써 놓은 나희덕에 대한 비평이나 서문등을 읽어보는 것이었다. 한 여자이자 어머니, 아내, 자연을 사랑하고 숲을 사랑하는 그녀에 대한 마음을 이해하기에는 충분하지 못하지만 시를 쓰도록 만드는 그녀의 주체가 무엇인지는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되었다.1966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연세대 국문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뿌리에게'가 당선되면선 문단에 나왔다. 작품으로 시집 과 시론집 를 출간했다. 산문집 이 있고, 옮긴 그림책으로 이 있다. 김수영문학상, 김달진문학상, 현대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현대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시집으로는 뿌리에게 (1991, 창작과 비평사),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1994, 창작과 비평사). 그곳이 멀지 않다 (1997, 민음사), 어두워진다는 것 (2001, 창작과 비평사) 산문집: 반통의 물(1999, 창작과 비평사), 보라빛은 어디에서 오는가(창작과 비평사) ; 나희덕이 읽은 우리 시 등이 있다.나희덕 시인의 시세계는 숲과 자연이 큰 틀을 이루고 그 세계에서 시인 자신만의 통찰력으로 시를 완성해간다.나희덕 시인은 첫 시집 '뿌리에게'에선 전교조 탈퇴 서약서를 둘러싸고 벌이던 갈등과 양심적 고뇌를 시로 육화(肉化)시키는 데 주력한다. 그래서 이 시집을 전반적으로 지배하는 분위기는 사회적 모순과 한심한 교육 현실에 대한 죄의식과 분노였다. 그 내면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러 시인은 "깎아도 깎아도 가벼워지지 않는 형벌"(「손톱」)이라 부르짖는다.그런데 두 번째 시집 에서부터 시인은 무표정하고 덤덤한 일상 속에서 삶의 쓸슬함과 고통을 부드러운 시선으로 길어 올리기 시작한다. 커다란 시적 변화를 감행한 것이다.특히 두 번째 시집에서 하루 일과가 아침과 저녁이란 시간대에 따라 이중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점은 주목에 값한다. 신예 평론가 허정의 예리한 지적처럼 혼돈과 분열을 겪는 아침의 시간대와 안정감과 자아 인식을 가능케 하는 저녁의 시간대, 이것은 근본적으로 직장 여성과 어머니라는 그녀가 처한 환경의 이중성에서 비롯되는 것들이다. 여기서 시인은 저녁의 시간대를 지향하는데, 그 선택은 해뜬 후에 비웠던 모성의 자리를 채우는 부단한 움직임을 상징한다. "이제 나 종일 밭을 갈다가/집에 돌아오면 문득 몰매기인 나를 보네./젖무덤 아래 울고 있는 아기를 보네"('몰매기를 기억함'). 해가 뜬 시간이 아기와 가정을 떠나는 불안의 시간이라면, 어둠이 깔려 외부와 차단되는 황혼녘은 안정과 평안의 시간일 터이다.세 번째 시집 의 해설을 쓴 평론가 황연산은 나희덕의 시에 잘 어울리는 꼬리표 하나를 달아 주었다. '단정한 기억'! 대상에 대한 따뜻한 응시와 교감이 기억이라는 집 속에 정갈하게 담겨져 있는 그의 시세계를 잘 요약한 말이다. 그녀는 벗어 놓은 스타킹을 하루 동안 "지치도록 달려온 갈색 암말이 여기 쓰러져 있다"고 표현한 뒤, "몸이 끌고 다니다가 벗어 놓은 욕망의/껍데기는 아직 몸의 굴곡을 기억하고 있다"며 삶의 실천과 욕망의 건겅한 외화(外化)만이 사물에 그 기억의 날을 세운다는 점을 보여준다. 여기서도 저녁이란 시간대는 삶을 반추하는 긍정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은 물론이다.2. 나희덕의 숲1)생명을 불어넣는 시인나희덕 시인은 어둠과 홀로되어 잊혀져 가는 것들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아무도 불러주지 않고 지나쳐버리는 것들을 자신만의 언어로 살아나게 한다.얼어붙은 호수는 아무것도 비추지 않는다불빛도 산 그림자도 잃어버렸다제 단단함의 서슬만이 빛나고 있을 뿐아무것도 아무것도 품지않는다헛되이 던진 돌멩이들,새떼 대신 메아리만 쩡 쩡 날아오른다네 이름을 부르는 일이 그러했다-「천장호에서」전문겨울 호수에는 기대했던 것이 없다. 그러나 불빛과 산 그림자를 품지 않고, 새떼가 깃들일 수 없이 얼음장으로 남은 것은 호수만이 아니어서, 그것을 말하는 시도 제 사연을 풀어내지 않는다. 시가 말해야 할 모든 사연은 시인이 부르는 이름으로, 또는 그 이름을 부르는 일로 요약되어 얼어붙어 있다. 부르는 이름에 대답이 없을 것이라는 예감은 자기 모멸의 감정에 닿을 것이지만, 여전히 이름을 반복하여 부르는 일은 포기되지 않는 열정이 지시하는 바이다. 얼어붙어 호수로서의 가치를 상실했지만 새가 날아오르는 것이 아닌 메아리가 날아오른 것으로 표현하며 호수에 생명을 불어넣는다.상수리나무가 이따금 무슨 생각이라도 난 듯제 열매를 던지고 있다열매가 저절로 터지기 위해나무는 얼마나 입술을 둥글게 오므렸을까검은 숲에서 이따금 들려오는 말소리,나는 그제야 알게도 된다열매는 번식을 위해서만이 아니라나무가 말을 하고 싶은 때를 위해 지어졌다는 것을……타다닥…… 따악…… 톡…… 타르르……무언가 짧게 타는 소리 같기도 하고웃음소리 같기도 하고 박수소리 같기도 한그 소리들은 무슨 냄새처럼 나를 숲으로 불러들인다그러나 어둠으로 꽉 찬 가을숲에서밤새 제 열매를 던지고 있는 그의 얼굴을끝내보지 않아도 좋으리그가 던진 둥근 말 몇 개가걸어가던 내 복숭아뼈쯤에…… 탁…… 굴러와 박혔으니-「저 숲에 누가 있다」부분시인은, 가을 숲에서 느낀 풍경을 어둠과 함께 시 위에 올려놓고, 상수리나무가 말하는 소리와 조화를 이루게 한다. '이따금 무슨 생각이라도 난 듯' '무언가 짧게 타는 소리 같기도 하고 / 웃음소리 같기도 하고 박수소리 같기도 한' 소리를, '어둠으로 꽉 찬 가을숲'에서 발견한 것이다. 하지만, 시인은 '복숭아뼈쯤에…… 탁…… 굴러와 박혔으니' 좋다고 말하며 그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다. 소리는, 도시. 즉 메마르고 황폐한 곳에서는 들을 수 없는, 자연의 밝고 희망이 넘치는 생명의 소리이다. 이렇듯 시인은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가을의 소리를 놓치지 않고 가을 숲에 누군가 있다고 표현하며 독자에게 호기심을 유발한다.2)나무와 나의 이야기나는 어제보다 얇아졌다바람이 와서 자꾸만 살을 저며 간다누구를 벨 수도 없는 칼날이하루하루 자라고 있다칼날을 베고 잠들던 날탱자꽃 피어 있던 고향 집이 꿈에 보였다내가 칼날을 키우는 동안탱자나무는 가시들을 무성하게 키웠다그러나 꽃도 함께 피워탱자나무 울타리 아래가 환했다.꽃들을 지키려고 탱자는 가시를 가졌을까지킬 것도 없이 얇아져 가는 나는내 속의 칼날에 마음을 자꾸 베이는데탱자 꽃잎에도 제 가시에 찔린 흔적이 있다침을 바라 탱자 가시를 손에도 붙이고코에도 붙이고 놀던 어린 시절바람이 와서 탱자 가시를 가져 가고 살을 가져 가고나는 어제보다 얇아졌다나는 탱자 꽃잎보다도 얇아졌다누구를 벨지도 모르는 칼날이하루하루 자라고 있다-「탱자꽃잎보다도 얇은」전문위 시는 가시를 가진 탱자나무와 마음에 칼날을 만들고 있는 나의 이야기이다. 가시는 명백하게 꽃을 보호하지만 마음속의 칼날은 무엇을 보호하는지 알 수 없다. 누구를 벨 때까지 보호되어야 할 것은 차라리 그 칼날이다. 말을 바꾼다며, 꽃을 피우려는 시인의 의지는 그 의지에 제 마음을 베임으로써만 간직된다. 시인은 그것을 탱자나무도 꽃을 보호하기 위해 가시를 만들지만 가끔 그 꽃을 찌르기도 한다고 말하며 꽃이 유지되기 까지 자신과 똑같은 상처를 입는 다는 것을 말해준다. 시인은 나무 한 그루도 그냥 지나치지 않으며 위 시의 전문처럼 자연의 순리에 대하여 인간과 결부하여 보는 사고를 가지고 있다.시인 나희덕은 ‘왜 시를 쓰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 하나의 답을 내놓아야 한다면, 나 역시 세상의 소리들을 잘 듣기 위해서 라고 대답하고 싶다. 특히 살아 있는 존재들이 내는 울음소리를 나는 좀더 가까지 다가가 듣고 싶다고 말했다. 이렇듯 그녀의 시는 사물의 대화를 통하여 얻어 지는 것이다.3)나무와의 소통앞서 말했던 시들이 나무와 시인 자신과의 소통이라면 지금 말하고자 하는 시는 더 나아가 인간과 인간의 소통을 절묘하게 나무와 병치해놓은 시라고 말할 수 있다.園丁은 겨울을 나는 벌들을 위해
시인탐구아스팔트 속 흙길을 걷는 시인-시인 장석주의 시 세계-1. 들어가며1)장석주 시인의 약력충남 논산에서 태어났다. 1975년「월간문학」신인상 공모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으며, 문학평론 '존재와 초월'로「동아일보」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 고려원과 청하출판사, 한문화 등의 출판사에서 편집자와 대표 등으로 일했고,「현대시세계」와「현대예술비평」등의 문학 계간지를 통해 당대의 첨예한 논쟁을 주도하기도 했다.출판사를 그만둔 뒤, 동덕여대와 경희사이버대학 등에서 강의했다. 2002년「조선일보」'이달의 책' 선정위원, 2003년 MBC '행복한 책 읽기'자문위원,「출판저널」과「북새통?의 '이달의 책' 선정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현재「뉴스메이커」,「현대시학」,「숲」,「톱클래스」 등에 연재 글을 쓰고, KBS 1TV 'TV 책을 말하다'의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또한 국악방송에서 날마다 나가는 '장석주의 문화 사랑방'을 진행하고 있다.지은 책으로는 , , , , , , 등의 시집과 , , , 등의 평론집, , , 등의 소설과 산문집 , 등이 있다.2)장석주 시인의 시 세계장석주 시인은 사물의 본질을 서정적으로 꿰뚫어보는 힘이 있다. 그것은 도시문명의 이기주의와 개인주의가 팽배한 이 시대의 도시인들에게 일탈을 꿈꾸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시인의 시에 자기 반성적이며 도덕적인 고찰의 흔적이 역려하게 드러나는 것 또한 독자들에게 설득력을 갖게 한다. 그리고 우주만물의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힘을 가지고 있다.20여 년간 출판사를 경영하며 그 누구보다 바쁜 도시인으로 살았던 장석주 시인이 서울살이를 정리하고 안성으로 내려가 작은 집을 짓고 나무를 심고 밭을 일구며 고요의 삶으로 들어간 이유 또한 위와 같은 연유에서 일 것이다.2. 시인의 작품분석 및 감상참 한심했었지, 그땐 아무것도이룬 것이 없고하는 일마다 실패투성이였지몸은 비쩍 말랐고누구 한 사람 나를 거들떠보지 않았지내 생은 불만으로 부풀어오르고조급함으로 헐떡이며 견뎌야만 했던 하루하루는힘겨웠지, 그때구멍가게 점원자리 하나 맡지 못했으니불안은 나를 수시로 찌르고미래는 어둡기만 했지그랬으니 내가 어떻게 알 수있었을까, 내가바닷속을 달리는 등푸른 고등어처럼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기를 통과하고 있다는 사실을그랬으니, 산책의 기쁨도 알지 못했고밤하늘의 별을 헤아릴 줄도 몰랐고사랑하는 이에게 “사랑한다”는 따뜻한 말을 건넬줄도 몰랐지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기는 무지로 흘려보내고그 뒤의 인생에 대해서는 퉁퉁 부어 화만 냈지-?내 스무 살 때? 전문시인이 나이를 먹고 인고의 세월을 견뎌낸 후 젊은 시절을 돌이켜보는 시이다. 흔히들 연령층을 나누면 십대, 이십대 그리고 삼십대와 사십대를 붙여 삼, 사십대라고 일컫는다. 이십대를 삼십대와 분리하는 것은 이십대는 인생이 만들어지는 시기이자 목표를 수정할 수 있는 어린 나이이기 때문이다. 화자는 꽃이 피어나야하는 시기에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으로 아름다운 것들을 놓친 것에 대한 자기반성과 후회를 하며 자신을 성찰하고 있다. 우리 또한 가장 아름다운 시기를 살고 있으나 정작 지금 시기에만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것들, 지금 시기에만 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을 놓치며 살고 있다. ?내 스무 살 때?라는 시를 통하여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청춘들이 아름다운 것들을 놓치지 않기를 바라는 시인의 간절한 마음이 전해진다. 그의 시에는 참회 적이고 반성적인 이러한 시들이 많이 있다. 예를 들자면 ?다시 첫사랑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이나 ?완전주의자의 꿈?에서도 회상과 성찰이 반복되며 삶에 대한 죄스러움이 묻어난다.어떤 일이 있어도 첫사랑을 잃지 않으리라지금보다 더 많은 별자리의 이름을 외우리라성경책을 끝까지 읽어보리라가보지 않은 길을 골라 그 길의 끝까지 가보리라시골의 작은 성당으로 이어지는 길과폐가의 잡초가 한데 엉겨 있는 아무도 가지 않은 길로 걸어가리라깨끗한 여름 아침 햇빛 속에 벌거벗고 서 있어 보리라지금보다 더 자주 미소짓고사랑하는 이에겐 더 자주 "정말 행복해" 라고 말하리라-?다시 첫사랑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본문본문에서처럼 그의 시는 나이가 들수록 머리가 숙여지는 벼와 같다. 자기반성의 성찰은 마치 수행의 길을 걷고 있는 수도승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러한 성찰적 사고는 그의 시가 갖는 힘이며 그의 시에서 보이는 후회스러움은 독자들이 얻게 되는 깨달음과 같다.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저 안에 태풍이 몇 개저 안에 천둥 몇 개저 안에 벼락이 몇 개저게 저 혼자 둥굴어질 리는 없다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저 안에 땡볕 두어 달저 안에 초승달 몇 날-?대추 한 알?전문위 시는 그의 대표 시 들 중 하나이다. 여기서 대추 한 알은 지구이면서 자연이라는 큰 의미를 담고 있다. 쉽게 지나쳐 버릴 수 있는 대추 한 알도 결국은 인내와 끈기의 시간, 그리고 자연의 모든 조화를 거쳐야만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시인은 우주적 시각을 가지고 자연의 대상물을 포착하고 생명을 불어넣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단감 마른 꼭지는단감의 배꼽이다단감꼭지 떨어진 자리는수 만 봄이 머물고왈칵, 우주가 쏟아져 들어온 흔적배꼽은 돌아갈 길을 잠근다퇴로가 없다이 길은 금계랍 덧칠한 어매의젖보다 쓰고 멀고 험하다상처가 본디 꽃이 진자리인 것을-?단감?전문일상에서 그냥 지나칠 수 있는 단감에 생명을 불어넣어 우주와 자연을 단감 안에 집어넣었다. 단감은 곧 하나의 지구이면서 사계절을 함께 한 고난의 시간인 것이다. 이 험난한 시간을 견디고 나서야 단감의 마른 꼭지는 상처가 아닌 꽃이 되는 것이다. 그의 시에는 이처럼 자연적이고 생명적인 관점의 시각에서 탄생되어진 시들도 있지만 현대문명의 행태를 비판하고 성찰하는 시들 또한 엿볼 수 있다.가는 빗발 날리는 종로를 걷다가느닷없는 서울의 비명을 듣는다.우리 중 아무도 미처 눈치채기 전에 서울의 신음소리는도처에서 몰려나와 거리에 넘치고너무 많은 구둣발이 신음소리를 밟고 있구나.오호라 서울 시민들은 귀가 먹었다.밤마다 철근이 박힌 상처를 끌어 안으며상한 짐승처럼 엎어져 잠들지 못하고 울부짖는서울의 비명을 못듣는구나.아무나 위독한 서울을 살려다오.서울의 하늘에 신선한 산소를 다오.깨끗한 햇빛을 아니 조용히 놓아만 다오.잠들지 못하는 이유를 알기 위하여서울 변두리의 몇 포기 풀을 뽑아보라.죽은 풀뿌리가 움켜잡는 죽은 흙덩이새 잎을 돋게 하던 서울의 뿌리가 썩고 있구나.
한국 문화의 원형과 상징나쁜 감독의 숨은그림찾기-영화의 원형과 상징Ⅰ.들어가며Ⅱ.물이 가지고 있는 원형성Ⅲ. 영화속 숨은그림찾기Ⅳ. 나가며Ⅰ.들어가며박찬욱 감독의 대표작 중에서 ?복수는 나의 것?이라는 영화가 있다. 나는 이 영화를 그의 작품들 중에서 가장 좋아하지만 비정함과 비참함이 공존하고 거북함까지 들게 하는 이유에서인지 매번 볼 때마다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이번 원형과 상징이라는 타이틀 아래 다루게 될 영화 김기덕의 ?나쁜 남자?또한 위에서 언급했던 영화와는 또 다른 이유로 관객을 불편하게 만든다. 그러한 이유는 그의 영화가 극단적이며 현실의 어두운 면을 정제(淨濟)하지 않은 채 관객들로 하여금 ‘선화’의 상처를 공유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에서도 그러했듯이 감독 김기덕은 포스트 모더니즘적인 관점에서 여성들의 몸을 자연의 모태로 표현하였는데 그 표현 방식이 너무도 강렬하여 감독의 의중을 파악하는데 어려움이 뒤따른다. 그럼 이쯤에서 원형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개념을 먼저 정리해 보겠다. 그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그리스 신화를 알아야 한다. 그 이유는 그리스 신화가 원초적이면서 기원이 되는 모든 학문의 시발점이자 인간이 행하는 모든 행동의 견본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일무이하게 모든 학문에 차용할 수 있는 유일한 모티브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관가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원형은 원초적이면서 변하지 않는 본질에 의미를 두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영화에서 보이는 원형을 그리스 신화에 적용하지 않고 원초적이면서 변하지 않는 고유의 특성을 가진 원형이라는 개념 하에서 알아보기로 하겠다. 그리고 위 영화가 가진 여러 이미지들의 상징성에 대해서도 알아보도록 하자.Ⅱ.물이 가지고 있는 원형성이 영화는 보는 내내 비가 내린다. 특히나 그녀들이 살고 있는 사창가에서는 으스름한 밤이 찾아오면 어김없이 비도 함께 찾아온다. 비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듯이 순환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땅에서부터 수증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가 다시 비가 되는 반복 구조를 띄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순환은 자연이 지니고 있는 본질적인 것으로써 원형으로 해석 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비가 가지고 있는 원형을 영화에서는 어떤 의미로 쓰이고 있느냐는 것이다. 영화의 중간쯤에 보면 비가 내리는 밤에 사창가의 여성들은 바깥으로 화분을 내 놓는행위를 한다. ‘선화’또한 화분을 내 놓는다. 비는 화분에 꽃을 피우기 위한 중요한 영양제가 된다. 즉 ‘선화’와 그녀들이 화분을 내 놓는 이유는 모성애와도 직결한다. 화분 안에 갇혀 있는 식물들은 그녀들이 물을 주지 않거나 방안에 방치해두면 살아갈 수가 없는 존재들인 것처럼 사창가의 골방에 갇혀 사는 ‘선화’ 또한 화분안의 식물과 다르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보살핌을 받아야만 살아갈 수 있는 화분의 식물에게서 모성애를 느끼는 것이다. 모성애 또한 위에서 개념정리를 했듯이 원형과 직결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선화’자신은 핍박해진 몸과 마음을 어디에서 보상받아야 하는가. 영화를 들여다보면 ‘선화’는 극중에서 탈출을 시도하지만 ‘한기’에 의해 또다시 붙잡히게 된다. 붙잡힌 ‘선화’는 바닷가에 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자살하는 한 여인의 환상을 보게 된다. 바다는 비와 마찬가지로 끝없이 흐르는 순환의 의미를 가지는 동시에 어머니의 양수와 포용을 상징하기도 한다. 여기에서는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회귀로서의 의미를 상징하는데 바다에 빠져 자살하는 여인을 자신과 동일시 함으로써 ‘선화’자신의 억울한 삶에 대한 정화 작용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운명이라는 흐름을 서서히 받아들이게 되는 ‘선화’자신의 터닝 포인트이기도 한 셈이다. 김기덕 감독의 작품 중 유일하게 극장에서 보았던 영화 에서도 극중의 한 여인이 중절수술을 받고 수족관에 들어가는 장면이 나온다. 이 또한 위와 같은 맥락의 양수로의 회귀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Ⅲ. 영화속 숨은그림찾기위 영화에서는 많은 상징들이 나온다. 김기덕 감독의 기타 작품들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곳곳에 설치된 상징으로 하여금 보는 사람들을 더욱 헷갈리게 만든다. 그러한 상징들을 찾아내고 하나로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비추어지는 것들에 집중해야 한다. 일단 영화의 순차적인 흐름에 따라 상징적 이미지들이 담고 있는 것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하도록 하겠다.첫 번째로, 극의 초반에 등장하는 씬 중에 ‘선화’와 ‘한기’가 벤치에 앉아 있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에서의 벤치는 두 사람이 공존할 수 없는 가로막힌 벽을 상징한다. 서로 멀리 떨어져 앉아 딴 곳을 응시하는 ‘선화’와 그런 ‘선화’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한기’의 모습을 통해 감독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절대 어울 릴 수 없는 괴리감이다. 젊고 아름다운 미대생과 한 눈에 보기에도 껄렁껄렁한 깡패가 어울릴 수 없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하지만 단지 괴리감에서 생기는 벽만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로 벤치를 사용했다면 김기덕 감독은 덩기덕 감독이 되었을 것이다. 영화의 후반부에 벤치 씬은 다시 한 번 등장하게 되는데 이번에는 처음과는 사뭇 다른 상황이 연출되게 된다. ‘선화’를 놓아주기로 한 ‘한기’는 헤어지기 전 마지막으로 처음 그녀와 앉았던 벤치에 함께 앉게 되는데 처음과는 달리 둘의 상황은 역전이 된다. 차마 그녀를 바라보지 못하는 ‘한기’와 그런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조용히 손을 잡는 ‘선화’의 모습. 영화의 발단부분과 결말 부분에 벤치를 절묘하게 결합시킨 것은 그 두 사람의 운명적인 만남이 순환하여 결국 그 둘 사이의 벽을 허물었다는 것을 뜻한다. 결국 벤치는 두 사람 사이의 소통을 상징한다.두 번째로, 거울이 가지는 상징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다. 나는 처음에 거울이 상징하는 것에 대해서 관음증을 뜻한다고 생각했었다. 끊임없는 거울 너머의 훔쳐보기와 영화의 중반부에 등장하는 몰래카메라사건을 연관 지으려고 해보았다. 하지만 영화를 몇 번씩 보며느낀 것은 ‘한기’에게 있어서 거울은 단순한 훔쳐보기가 아니라 ‘선화’에 대한 보호자의 역할이라는 것이었다. 그것이 그가 그녀에게 해 줄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임과 동시에 유일한 소통수단이었다. 극 중반부에 ‘선화’가 거울에 볼을 대는 장면이 있었는데 ‘한기’는 거울너머자신을 볼 수 없는 그녀의 볼에 입맞춤을 한다. 그리고 극의 절정부분에는 자신의 존재를 라이터의 불꽃을 통하여 알리며 그 둘은 거울을 깨고나와 서로를 부둥켜안고 말없이 소통을 한다. 그는 끊임없이 거울 너머의 그녀에게 소통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영화의 엔딩장면에 그들이 타고 다니는 트럭이 빨간 점으로 변하며 영화는 끝이 난다. 이것은 그들이 거울을 부수고 나와 소통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불꽃이었으며 두 사람이 드디어 하나의 불꽃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세 번째로, 사진이 지니고 있는 의미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다. 이 영화 속에서 사진은 환상성을 가지는 동시에 잃어버린 자아 찾기라고 말할 수 있겠다. ‘선화’는 바닷가에서 한 여인이 자살하는 환상을 보며 조각 조각난 사진을 주워온다. 하지만 사진 속에는 함께 찍힌 두 남녀의 얼굴부분만 조각이 없다. 그것은 아직 소통하지 못한 ‘한기’와 ‘선화’를 의미한다. 하지만 두 사람이 소통을 하게 되고 서로를 의지하게 되었을 때 그녀는 다시 바닷가에 간다. 그곳에서 모래사장에 묻혀있는 자신과 그의 조각난 얼굴부분의 사진을 찾게 된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게 되며 사진 속 자신과 똑같은 옷을 차려입고 그 장소에서 사진을 찍게 된다. 그것은 ‘선화’가 운명을 받아들이고 ‘한기’를 자신과 같은 동등한 입장으로 보게 되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특이한 점은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지 않고 과거 그녀가 가지고 있던 얼굴 없는 사진의 환상성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것은 과거에 그녀가 그 사진을 찍었다는 것이 아닌 상징적인 의미로서 잃어버렸던 그녀의 자아를 뜻하는 것이다.네 번째로, 새장 여인숙이 상징하는 것에 대하여 말해보도록 하겠다. 여기서는 1998년도에 개봉했던 김기덕 감독의 영화과 연관 지어 설명 하도록 하겠다. 의 극중 여주인공은 새장 여인숙에 기거하며 남자들에게 몸을 판다. 그리고 의 여주인공인 ‘선화’또한 비슷한 신세이다. 영화 와 은 연장선상에 있다. 그것을 이어주는 매개체가 새장 여인숙이다. 에서 새장 여인숙은 ‘선화’가 사진을 주웠던 바닷가에 있는 여인숙이다. 의 여인숙과 똑같은 여인숙인 것이다. 왜 감독은 굳이 과 똑같은 장소에서 촬영을 한 것이며 사진 속, 배경에는 새장 여인숙이 등장해야만 했을까. 그것은 두 여자를 동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명의 여인은 새장 속에 갇혀 있지만 언제든지 그 곳에서 나갈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놓아주어도 날아갈 수가 없다. 부메랑처럼 그곳으로 다시 돌아온다. 바닷가의 새장 여인숙은 그녀들이 결국 돌아 갈 수밖에 없는 상징적인 곳이다. 바로 얄궂은 운명의 순환고리인 것이다. ‘선화’가 보았던 자살을 하던 여인이 어쩌면 새장 여인숙에 살고 있던 의 그녀였을지도 모른다.
시인탐구필사의 그물을 짜는 시인-시인 이면우의 시세계, 작품-1.들어가며1).이면우 시인의 생애이면우(1951년 ~ )는 대한민국의 시인이다. 대전에서 태어났으며 생계를 꾸리는 직업은 보일러공이다. 최종 학력은 중졸이며 마흔 살이 넘어서야 시를 쓰기 시작했다. 신춘문예나 문학 전문 잡지에 글을 싣는 등 일반적인 방법으로 문단에 나오지 않고, 주변의 경제적 도움을 받아 첫 시집 《저 석양》을 펴내면서 문단에 나왔다. 거기 나오는 시인의 이력은 '학력 별무, 건축배관공'이다. 시〈거미〉로 2003년 제2회 노작문학상을 수상했다.시집으로는《저 석양》(호서문화사, 1991)《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창작과비평사, 2001)《그 저녁은 두 번 오지 않는다》(북갤럽, 2002)가 있다.2).이면우 시인의 시 세계이면우 시인을 처음 알게 된 것은 2002년도에 우연히 구입했던 그의 두 번째 시집《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였다. 그 당시 그 시집을 들고 다니며 화장실이나 버스 안에서 즐겨 읽고는 했었는데 가장이 되는 것이 섬뜩하기만 한 일은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했었다.지방 도시의 어느 공장에서 홀로 시 쓰기를 즐기는 보일러공이 있었다. 그에게는 소박한 꿈이 있었다. 늦게 둔 어린 아들에게 ‘시인’이라는 아버지를 선물하고 싶었다. 그를 눈여겨본 사장은 시를 쓰라고 그에게 휴가를 선물한다. 휴가 동안 그는 한 권 분량의 시를 쓴다. 사장이 사비 들여 오탈자 많은 붉은 시집을 묶어 준다. 이런 시집의 운명이 어떻겠는가? 창고의 비료포대 자루로 들어간 폐품이 가까스로 눈 밝은 이의 눈에 띄고 알음알음 입소문을 타서 종내에는 문단에 알려진다. 이면우 시인과 그의 시집은 이렇게 태어났다. 말 그대로 ‘발굴’이었다. 견고한 등단제도를 가진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사례일 것이다. 이런 사연을 두고 신데렐라라 할 것인가? 그가 발굴되기까지의 과정만큼 혹독한 등단절차가 세상에 또 어디 있겠는가.이면우 시인의 시를 읽어보면 한 가장이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진 이상 그 가족을 위해 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모든 상황이 다 나온다. 남의 힘을 빌리지 않고 소박하게 자신의 몸뚱이를 바쳐 소신공양해온 가장의 절절한 삶이, 복부비만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천년대의 약하디약한 남자들을 등 서늘히 반성케 한다. 엄정한 삶에서 엄정한 작품이 나온다. 이면우의 시집은 몸으로 사는 사내의 약진으로 가득하다. 몸으로 시를 쓰는 사내의 들큰한 땀 냄새로 가득하다. 본능에 가깝게 냉철한 삶에서 우러나온 작품들이 수두룩하다. 진정으로 용기있는 사람만이 뒤돌아볼 수 있다.그의 작품을 읽어본 독자라면 그의 시적 사고와 표현이 발원되고 완성되는 가장 궁극적인 수원(水源)이 그의 ‘가족’과 ‘일터’였음을 어렵지 않게 알아챌 수 있었을 것이다. 어찌 보면 가장 소시민적인 범부(凡夫)의 모습으로 비치는 이 같은 그의 시적 권역은, 가족들에 대한 연민과 사랑 그리고 구체적인 노동을 통한 솔직한 실감이 여전히 우리 시대에도 시적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실례를 우리에게 명료하게 보여주었다. 지금처럼 가족 해체의 징후가 짙어가는 시대에, 그리고 노동의 가치가 온통 자본의 그것으로 환산되어버리는 교환가치의 과잉 시대에, 아직도 가족에 대한 사랑과 노동에 대한 신뢰를 노래하는 이 시인의 목소리는 참으로 이채롭게 빛나는 것이었다. 그만큼자신이 치러낸 생의 가장 구체적인 국면에서 언어의 세부를 길어올리는 것이 그의 시세계이다.2.시인의 작품분석 및 감상화엄경배이면우보일러 새벽 가동 중 화염 투시구로 연소실을 본다고맙다 저 불길, 참 오래 날 먹여 살렸다 밥, 돼지고기, 공납금이다 저기서 나왔다 녹차의 쓸쓸함도 따라나왔다 내 가족의웃음, 눈물이 저 불길 속에 함께 타올랐다불길 속에서 마술처럼 음식을 끄집어내는여자를 경배하듯 나는 불길에게 일찍 붉은 마음을 들어 바쳤다불길과 여자는 함께 뜨겁고 서늘하다 나는 나지막이말을 건넨다 그래, 지금처럼 나와가족을 지켜다오 때가 되면육신을 들여 네게 바치겠다.분석 및 감상이 시는 두 번째 시집《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에서 마지막을 장식하는 시이다. 위 시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보일러공이다. 보일러실에서 뜨거운 불을 지키며 가족들과 자신을 지키며 살아왔다. 그에게 불은 가족이면서 은인이다. 이면우 시인은 그 삶의 세계를 보일러를 수리하고 지켜오며 발견한 듯 하다. 자신과 가족을 지켜주는 불에게 그는 ‘때가 되면 육신을 들여 네게 바치겠다’고 말한다. 이것은 시인이 불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 인 것이다. 불교에서 화장을 통하여 소신공양을 하는 것과 같은 이치 일 수도 있을 것이다.거미이면우오솔길 가운데 낯선 거미줄아침 이슬 반짝하니 거기 있음을 알겠다허리 굽혀 갔다, 되짚어 오다 고추잠자리망에 걸려 파닥이는 걸 보았다작은 삶 하나, 거미줄로 숲 전체를 흔들고 있다함께 흔들리며 거미는 자신의 때를 엿보고 있다순간 땀 식은 등 아프도록 시리다그래, 내가 열아홉이라면 저 투명한 날개를망에서 떼어 내 바람 속으로 되돌릴 수 있겠지적어도 스물아홉, 서른아홉이라면 짐짓몸 전체로 망을 밀고 가도 좋을 게다그러나 나는 지금 마흔아홉홀로 망을 짜던 거미의 마음을 엿볼 나이지금 흔들리는 건 가을 거미의 외로움임을 안다캄캄한 뱃속, 들끓는 열망을 바로 지금, 부신 햇살 속에저토록 살아 꿈틀대는 걸로 바꿔 놓고자밤을 지새운 거미, 필사의 그물짜기를 나는 안다이제 곧 겨울이 잇대 올 것이다이윽고 파닥거림 뜸해지고그쯤에서 거미는 궁리를 마쳤던가슬슬 잠자리 가까이 다가가기 시작했다나는 허리 굽혀, 거미줄 아래 오솔길 따라채 해결 안 된 사람의 일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분석 및 감상위 시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들 중 한편이다. 위 시는 시인의 마음이 고스란히 거미를 통하여 나타난다. 젊은 시절로 돌아간다면 거미줄에 걸린 잠자리처럼 탈출을 꿈꿀 수도 있지만 시인은 곧 겨울을 나야하고 가족을 책임지어야 할 거미가 된 것이다. 그것은 곧 밤샘의 그물짜기를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시인은 작은 삶이 그물 전체를 흔드는 것에 마음이 간다. 그래서 그 자리를 미쳐 뜨지 못하고 거미의 다음 행동을 기다린다. 거미의 판단이 끝나고 서서히 잠자리에게 다가갈 때야 비로소 채 해결되지 않은 사람의 일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의 삶이 가족들의 삶과 직결되는 동시에 적자생존의 사회 속에서 옳고 그름이 분명하지 않은 선택의 기로에 놓인 모든 사람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인 것이다. 시인은 이제 곧 예순이 되어간다. 이마의 주름이 흡사 위 시의 거미줄과 겹치는 것은 그가 겪어온 고뇌의 세월이 흔들려도 순응할 수 밖에 없었던 거미의 그물짜기와 비슷하기 때문일 것이다.임금인상이 면 우여섯 자리 자동차 번호판 중 어떤 건등 서늘해지도록 몇년째 내 임금과 닮았다 그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