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목 차1. 서론2. 마가렛 대처의 생애3. 마가렛 대처의 리더십인사행정론 노성민 교수님 행정학과 60110836 박대용4. 결론서 론사회는 가만히 멈추어 있는 물건과는 달리 급변하게 변화한다. 우리는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는 항상 혼란과 방황이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감에 있어 이런 혼란과 방황을 어떻게 다스리고 이겨내는 지가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혼란과 방황을 다 이겨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미래를 예측하고 과거를 분석하고 현재를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이 어려운 문제들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 바로 우리의 리더이자 지도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어떤 조직이든 사회이든 국가이든 리더나 지도자는 있는 법이다. 이런 리더, 지도자의 역할은 상당히 중요하다. 우리에게 위기가 찾아왔을 때 지도자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결과는 달라지기 때문이다. 좋은 리더나 지도자는 더욱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고 발전할 것이지만 나쁜 리더나 지도자는 조직을 와해시킬 수 있다. 그만큼 리더나 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한 것이다. 리더나 지도자가 없다면 분명 제대로 된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면서 위기나 혼란의 시기일 때 버티기 힘들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힘든 시기도 분명 존재하였고 그런 시기일 때 좋은 지도자덕분에 위기를 벗어난 적이 많이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삼국시대에 수나라가 고구려를 침략했을 때 수나라를 물리친 감강찬 장수, 임진왜란 때 일본의 해군을 무력화시킨 이순신 장군, 조선시대에 부흥을 일으킨 정조 등 좋은 리더나 지도자덕분에 위기나 혼란의 시기를 이겨낸 경우는 아주 많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 반대도 있다. 나치의 히틀러, 만리장성을 세운 진시황 등 자신의 욕망을 다스리지 못한 지도자들은 결국 파멸에 이르렀다. 이런 역사적 상황들만 보아도 리더나 지도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지 알 수 있다. 마가렛 대처도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 중의 한 명이다. 세계 최강국의 영국이 정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부정적인 시각을 뒤로하고 마가렛 대처는 자신의 리더십과 능력을 통해 영국을 다시 세계 강국으로 올려놓는데 이바지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마가렛 대처는 영국의 위대한 지도자 중의 한 명이고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인물이라고 생각한다.마가렛 대처의 생애세계 최강국인 영국도 힘든 시절은 존재했다. 영국은 19세기에 “사상 최고 최대의 제국”을 자랑했다. 그러나 영국의 국세는 세계대전 이후 쭉 내리막길을 걸었다. 또한, 1970년대에 이후에는 경제와 사회에서도 일종의 한계가 나타났다. 그 당시에는 대안이 없는 듯했던 케인즈 주의의 큰 정부와 과도한 복지사회가 영국 국민들에게 잘못된 인식과 행동을 심어주기 시작했다. 그로인해 영국국민들은 일하지 않고, 노력하지 않고, 세금은 많고, 일자리는 없는 “영국병”을 낳으며 그 당시의 정부는 심각한 회의의 대상이 되었다. 1970년대 말 영국 경제는 실질성장률 마이너스, 실업률 4~6퍼센트, 인플레이션 15퍼센트라는 지표를 보였으며 새로 기업을 창업하려는 사람들의 의지를 꺾는 복잡한 정부규제와 무거운 세금, 걸핏하면 벌어지는 노동조합의 투쟁으로 사회 전반에 “경제를 일으키려는 의지”가 실종된 상황이었다. 이런 암울한 상황을 극복하려면 뭔가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그리고 그런 새로운 대안은, 정책에서뿐 아니라 인물에서도 찾아져야 했다. 그 때 등장한 사람이 바로 마가렛 대처이다. 마가렛 대처는 지금 우리에게 아주 친숙한 존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처리즘, 철의 여인 등 그녀를 지칭하는 수식어가 많이 존재하고 있다.그만큼 영국에서도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이고, 세계적으로도 배울 점이 많은 인물이다. 그런데 왜 대처리즘, 철의 여인이라는 수식어가 그녀에게 붙었을까. 바로 그녀의 강력한 리더십 때문이다. 영국은 1970년대에 역사적으로 이례 없는 혼란의 시기가 찾아왔고 이 시기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대처의 리더십처럼 강력함이 필요했다렛 대처는 식료품가게의 딸로 태어났지만 그의 아버지는 그녀가 2살 일 때 시의원이 되고 시의 여러 직책을 거쳐 그녀가 대학에 진학할 즈음에는 그랜덤 시장에 취임하게 된다. 이런 가정환경에서 자란 마가렛 대처는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난 인물이라고 할 수는 없다. 마가렛 대처는 정치적으로는 보수적 성향이 짙었는데 이런 성향이 아무래도 가정환경 때문에 나탄 결과라고 생각한다. 여성이라는 핸디캡도 극복하고 장관에 수상까지 되었으므로 “결국 개인이 노력하기 나름이다. 사회가 개인의 처지를 일일이 돌봐줄 필요는 없다”는 사고방식이 그녀의 정치철학에 자리잡았을 것으로 보인다. 그녀의 집안은 감리교를 믿어왔는데 감리교도 “남에게 기대지 말고, 뭐든 자기 힘으로”와 “늘 반듯하게, 모범적으로”라는 엄격한 가르침을 주기 때문에 마가렛 대처에게 보수적인 성향을 심어주었을 것이다. 또한 그녀의 아버지는 어린 마가렛 대처를 정치인으로 키우려 했다기보다, 자신의 정치활동을 도울 ‘운동원’으로 키웠다. 그가 1935년의 총선에서 보수당의 승리를 위해 발벗고 나섰을 때, 겨우 열 살이던 마가렛 대처는 벽보를 붙이고 선전물을 돌리며 선거사무소에서 심부름을 하는 등 정신없이 일했다. 알프레드는 이후 스스로 선거에 나섰을 때도 딸의 ‘적극적인 도움’을 받았고, 정치문제에 대해 딸과 토론하거나 다른 후보의 장단점을 분석해서 브리핑해보도록 시키기도 했다. 어린 시절을 이렇게 보낸 마가렛 대처는 자연스레 정치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여성으로서의 강인함, 강력함, 리더십을 스스로 터득해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아버지 밑에서 자연스레 “정치적 인간”이 된 마가렛 대처는 1943년에 옥스퍼드 대학교에 입학, 화학을 전공하면서도 바로 정치에 참여하려 했다. 하지만 그 당시 대학가는 진보파가 절대로 우세했기에 보수적 성향이 강한 마가렛 대처는 학생회에서 활동할 수는 없었고, 비교적 소수의 동아리인 옥스퍼드 보수협회에 가입해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남다른 열성과 노력으로 곧 그 협회의 회장이 최연소이자 보수당 후보로는 유일한 여성으로 총선에 출마했다. 결국 총선에 낙선했지만 이 때 자신의 남편인 데니스 대처를 만나 결혼에 이르게 된다. 1955년에는 마가렛 대처가 본격적으로 정치활동에 나서게 된다. 결국 핀츨리 지역에서 마가렛 대처는 당선이 되었고 공식적으로 정치활동에 입문하게 된다.마가렛 대처는 상류층 집안에서 태어난 것은 아니지만 가정환경덕분에 독립심과 리더십이 강했고 말도 거창하거나 화려한 표현을 쓰지 않고 필요한 말만 하는 성격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남들과는 달랐고 신뢰감도 높일 수 있었다. 이런 마가렛 대처의 특성 때문에 1965년에 다시 에드워드 히스의 보수당 정권이 들어서자 1965년에 주택장관과 연금장관, 1966년에 재무장관, 1967년에 에너지장관, 1968년에 교육장관, 교통장관, 1970년에 다시 교육장관을 지내는 등 화려한 공직 이력을 쌓게 되었다. 결국 마가렛 대처는 1975년에 보수당 당수가 되었다. 이 당시에는 영국은 심각한 경제적 불황에 빠져있었고 국민들은 시위는 날이 갈수록 증가했다. 이 시기가 바로 “불만의 겨울”이다. 이 혼란의 시기에 노동당은 결국 무너지고 마가렛 대처가 이끄는 보수당이 영국 정부를 이끌면서 마가렛 대처는 영국 최초의 여성 수상이 되었다. 마가렛 대처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무시하거나 비난하는 정치인들이 있었지만 마가렛 대처는 “철의 여인”이라는 수식어답게 위축되지 않고 강인한 리더십을 통해 자신의 입지를 다져나갔다. 정치적 입지를 다진 마가렛 대처는 “불만의 겨울”을 탈피하는 일만 남게 되었다. 마가렛 대처는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리더십을 활용해 영국을 점차 회생시켜 나가기 시작했다. 그 결과, 마가렛 대처는 영국을 다시 강대국으로 변모시켰으며 진정한 영국의 수상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마가렛 대처의 리더십영국 수상으로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진 마가렛 대처는 영국을 다시 세계 강국으로 만들기 위해 강력한 리더십을 통해 영국의 경제난을 해소해나가기 시작한다.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적은 비 부분들은 아주 강력하게 대처해 나갔다. 영국에 존재하는 산업 중에 가장 비효율적인 산업을 없애기로 하였고 그것이 바로 광산업이었다. 광산업 노동자들의 반발이 심했지만 마가렛 대처는 단호했다. 영국의 불황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마가렛 대처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마가렛 대처의 강력한 리더십과 단호함이 없었다면 이루어 낼 수 없는 결과라고 생각한다. 비록 마가렛 대처가 친기업 반노조의 성향을 가지고 있었고 노동자의 실업률이 급격하게 상승하는 결과가 나타났지만 적자가 심한 광산업을 두고 볼 수는 없었다. 결과적으로 1980년대에 성장률과 물가는 점차 나아지기 시작했다. 복지를 축소하고 작은 정부를 지향했던 마가렛 대처의 강력한 리더십이 점점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마가렛 대처의 성향이나 강력한 리더십은 그녀의 여러 말들을 통해 파악할 수 있다. “정부는 통화안정에 힘쓰고, 세금과 정부지출을 줄여야 한다. 법인세와 준조세를 줄이고 각종 규제를 철폐하여 기업이 활동하기에 최대한 유리하게 만들어줘야 한다. 민영화를 확대해야 하고, 노조의 세력을 약화시키며 노동 유연성을 늘려야 한다.”, “어제 제가 하원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인플레이션을 잡으려면 고통스러운 결과를 감수해야 합니다. (…) 차악의 선택이라고 하겠지요. 지금 그냥 더 많은 돈을 찍어내는 식으로 대응한다면, 결국 물가는 엄청나게 뛰고 실업률도 치솟을 것입니다. 완전한 혼란이 일어날 것입니다 (…) 결국 현실적인 경제원리가 작동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것에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대안은 없습니다.”, “사회라는 것은 없습니다. 남자와 여자, 개인이 있을 뿐입니다 (…) 개인은 반드시 스스로를 도와야 하며, 누가 당연히 뭘 해 주리라고 기대하면 안 됩니다”라고도 했다.” 마가렛 대처의 인터뷰 내용들이다. 마가렛 대처의 말들을 보면 마가렛 대처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누구든지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 과도한 복지제도 감소, 스스로의 힘으로 등 자유경제의 논리를 상당히 중요하게
한국정부론 안중현 교수님 행정학과 60110836 박대용1대통령실 - 대통령 비서실목 차1. 대통령실이란2. 대통령실의 역할3. 대통령실의 구조변화4. 대통령실의 내부 권력관계5. 대통령실의 영향력 및 원인(문제점)6. 대통령실의 개편(개선방안)1. 대통령실이란- 대통령의 국정수행 보좌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는 대통령 직속의 참모기관.- 대통령실은 대통령의 원활한 국정운영과 효율적인 대통령 경호를 수행하기 위해 종래 보좌기관이었던 대통령비서실과 대통령경호실을 통합, 2008년 2월 29일 '대통령실'로 새로이 출범한 대통령직속 보좌기관. 현재 박근혜 정부는 대통령비서실, 대통령경호실, 국가안보실로 이루어져있음.- 대통령 비서실은 다른 어떤 기구보다 국정 전반에 걸쳐 미치는 영향력이 큼. 그러나 그에 관한 연구가 많지 않음.- 대통령실은 정부조직법 제14조, 제15조, 제16조에 근거하여 설치, 운영되고 있음.(cf. 정부조직법 제14조(대통령비서실) ① 대통령의 직무를 보좌하기 위하여 대통령비서실을 둔다.② 대통령비서실에 실장 1명을 두되, 실장은 정무직으로 한다.)예전 정권의 비서실은 대체로 인원이 50명이 넘는 인원으로 구성되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의 비서실은 전체 구성원이 30명 정도로 과거 당선인 비서실과 비교하면 규모가 1/3정도에 불과할 정도로 슬림화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비서실 관계자는 “비서실이 그동안 박 당선인과 호흡을 맞춰온 이들로 채워진 만큼 인원은 적지만 업무를 콤팩트하게 처리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밝혔다. 비서실의 슬림화는 박 당선인과 가장 근접해 있는 비서실이 비대화 되면서 생길 수 있는 권력누수나 보안 사고를 사전에 막기 위한 것으로 관측된다.2. 대통령실의 역할- 비서실은 대통령에게 정책 건의나 조언을 함으로써 대통령의 정책 결정을 보좌- 행정 각 부처의 업무 과정 및 실태를 분석, 평가하고 정책조정을 원활히 하여 거시적 차원에서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 대통령의 국정운영의 기조를 명확히 하여 정부 부처들이 이를 구체화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 사회여론 및 동향을 파악하여 정책결정에 필요한 정보를 전달- 대통령의 통제 아래 행정부처의 정책입안을 조정, 관리하는 업무 등을 담당- 의회, 사법부, 정당 등 정치적 협력을 요하는 기구들과의 원활한 협조관계를 구축하여 국정운영의 효율을 높임위의 기능들은 직위에 따라 다른 역할을 수행하는 비서실 구성원들에 의해 구체화되는데, 대통령에게 보다 직접적으로 접촉할 수 있는 수석비서관들은 대통령에 대한 정책적 건의나 조언을 하는 데 초점을 두고, 보다 간접적인 방법으로 대통령을 보좌하는 비서관들은 행정부처의 정책입안의 조정, 관리 등에 초점을 둔다. 그리고 비서실장은 비서실과 부처 간의 원활한 업무조정을 하고, 정치권으로부터 영향력을 막아주는 방패역할을 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3. 대통령실의 구조 변화- 김영삼 대통령의 비서실은 비서실장을 중심으로 11개의 수석 및 비서관실로 구성함- 김대중 대통령은 이 가운데 5개의 수석 및 비서관을 통폐합하였고, 이를 통해 1명의 장관급 비서실장과 6명의 차관급 수석비서관을 지닌 비서실을 구성함- 노무현 대통령은 비서실장, 정책실장, 국가안보보좌관 등 장관급 3개, 수석비서관 5개, 보좌관 5개 등 차관급 10개를 지닌 비서실을 갖고 출범하였으나, 잦은 비서실 개편으로 최종적으로 3실장, 8수석, 2보좌관의 비서실을 구성함- 이명박 대통령은 대통령비서실을 대통령실로 명칭을 바꿈. 대통령실장, 정책실장이 있고 그 밑에 8수석, 국가위기관리실이 존재. 대통령경호실을 대통령비서실 안으로 끌어들인 후 경호처로 명칭을 바꾼 후 대통령실 소속기관으로 구성함- 박근혜 대통령은 2실 9수석 체제인데, 1실은 국가안보실이고, 나머지 1실은 비서실장 그 밑으로 9수석 체제로 구성함4. 대통령실의 내부 권력관계- 비서실장과 비서관은 모두 대통령을 보좌하는 개인참모들이다- 비서관들 간의 업무 조정 및 감독 관계의 책임을 위하여 비서실장이 필요하다- 이들 간의 권력관계는 대통령의 리더십이나 비서실장의 특성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김영상 정권수석비서관회의를 비서실장이 주재 → 비서실장의 영향력 강화 → 정보의 왜곡을 초래, 수석비서관들의 자율적, 창의적 보좌역할 또한 약화* 박정희 정권이후락 실장 : 정치문제에 개입, 비서관이 직접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것을 통제김정렴 실장 : 경제문제에 관여, 경제수석비서관이 대통령과 직접 접촉하도록 허용* 김대중 정권역대 어느 비서실장보다 힘이 막강.김중권 비서실장 : 수석비서실의 통폐합에 따른 기구 축소로 인하여 역대 비서실장이 담당하던 업무에 총무수석, 민정수석, 의전수석의 일까지 담당하게 되어 영향력이 막강박지원 비서실장 : 정책특보 시절부터 영향력이 강했는데 비서실장이 되고난 후에는 더욱 영향력이 강해져 실세로 자리매김* 노무현 정권상하관계의 피라미드형이 아닌 비서실장, 정책실장, 안보실장 등 3명의 장관급 실장이 병립하는 수평적 지휘체계5. 대통령실의 영향력(문제점)- 역대 비서관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대통령의 정책결정을 비롯한 국정 운영에 가장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집단으로 비서실이 뽑힘- 대통령 비서실이 대통령의 업무를 보좌하는 과정에서 국정 전반에 미치는 영향력이 적지 않음을 시사- 공식적으로는 명령권이 없어도 실질적으로 대통령을 보좌한다는 명분 아래 행정 각부의 업무를 통제하고 업무지시를 하고 있음- 노태우 정권 이후부터 비서실의 권한이 약화되기 시작(정치체제의 민주화, 행정의 민주화, 개방화, 분권화 등으로 대통령의 대내외적 권한이 기존 정권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약해졌기 때문. 그렇지만 노태우 정권 이전보다 상대적으로 약해진 것이지 비서실의 영향력이 없어진 것은 아님)* 비서실 영향력 행사의 세 가지 공통된 특성첫째, 영향력 행사의 양태가 간접적대통령에게 정보나 아이디어를 제공하거나, 정보의 루트를 장악하거나, 혹은 각료들의 대통령 접촉을 통제하는 등 간접적인 방법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둘째, 구체적세밀하게 행정부를 통제하고 있다. 부처로부터 정기적인 보고를 요구하거나 정부 업무에 간섭하고 지시하는 등의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셋째, 포괄적거의 모든 정책 분야에 걸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그러나 오늘날과 같이 다원화된 사회에서는 위와 같은 영향력 행사는 많이 사라졌다고 할 수 있다.* 비서실의 영향력이 막강한 원인 (문제점)-공식적 요인추상적인 법적 규정 : 법규가 모호해 자의적으로 해석이 가능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의 직급 : 직위가 장관급으로 일반 행정 부처에 영향력 행사가 가능-비공식적 요인대통령에게 정보 및 정책적 아이디어를 제공함으로써 대통령의 정책결정에 영향력을 행사대통령의 의지를 반영하여 부처 간의 정책을 조정하는 역할을 함으로써 영향력을 행사대통령의 접견 일정 및 시간을 통제할 수 있는 위치에 있어 영향력을 확대결론적으로, 대통령 비서실의 대외적으로 미치는 영향력이 직, 간접적으로 강하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역할을 넘어 행정 부처에 업무 지시, 통제를 하는 등 여러 방향으로 영향력 행사가 가능하다. 또한, 현재 행정 부처에 맞게 수석부서가 이루어지다보니 업무 중복도 무시할 수 없다. 또한, 대통령 비서실의 역할에 대해 재정립할 필요가 있고, 모호한 법규 규정도 개선이 필요하다. 행정적 발전을 위해서 현 대통령 비서실의 문제점을 개선하여 대통령 비서실이 더욱 발전할 필요가 있다.6. 대통령실의 개편(개선방안)* 대통령 비서실의 역할 변화① 대통령의 통치이념 및 공약사항을 확인하고 이를 구체화하기 위한 중장기 정책과제를 개발해야 한다.(대통령의 눈치를 살피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의 선거 공약을 구체화하기 위한 방안을 개발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공개하여 대통령의 의지를 피력해야 한다. 또한, 정부 및 관련 기관들에게도 대통령의 입장을 분명히 알리고 이에 상응하는 정책수립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② 대통령의 원활한 정부 통치를 위하여 행정 부처를 대상으로 한 정책조정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행정 부처에게 업무 지시, 통제가 아니라 이들의 업무를 조정하고 지원하는 방향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부처할거주의를 억제하고 거시적 차원에서 정부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
한국정부론 안중현 교수님 행정학과 60110836 박대용1대통령실 - 대통령 비서실목차1. 대통령실이란2. 대통령실의 역할3. 대통령실의 구조변화4. 대통령실의 내부 권력관계5. 대통령실의 영향력 및 원인(문제점)6. 대통령실의 개편(개선방안)1. 대통령실이란- 대통령의 국정수행 보좌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는 대통령 직속의 참모기관.- 대통령실은 대통령의 원활한 국정운영과 효율적인 대통령 경호를 수행하기 위해 종래 보좌기관이었던 대통령비서실과 대통령경호실을 통합, 2008년 2월 29일 '대통령실'로 새로이 출범한 대통령직속 보좌기관. 현재 박근혜 정부는 대통령비서실, 대통령경호실, 국가안보실로 이루어져있음.- 대통령 비서실은 다른 어떤 기구보다 국정 전반에 걸쳐 미치는 영향력이 큼. 그러나 그에 관한 연구가 많지 않음.- 대통령실은 정부조직법 제14조, 제15조, 제16조에 근거하여 설치, 운영되고 있음.(cf. 정부조직법 제14조(대통령비서실) ① 대통령의 직무를 보좌하기 위하여 대통령비서실을 둔다.② 대통령비서실에 실장 1명을 두되, 실장은 정무직으로 한다.)예전 정권의 비서실은 대체로 인원이 50명이 넘는 인원으로 구성되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의 비서실은 전체 구성원이 30명 정도로 과거 당선인 비서실과 비교하면 규모가 1/3정도에 불과할 정도로 슬림화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비서실 관계자는 “비서실이 그동안 박 당선인과 호흡을 맞춰온 이들로 채워진 만큼 인원은 적지만 업무를 콤팩트하게 처리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밝혔다. 비서실의 슬림화는 박 당선인과 가장 근접해 있는 비서실이 비대화 되면서 생길 수 있는 권력누수나 보안 사고를 사전에 막기 위한 것으로 관측된다.2. 대통령실의 역할- 비서실은 대통령에게 정책 건의나 조언을 함으로써 대통령의 정책 결정을 보좌- 행정 각 부처의 업무 과정 및 실태를 분석, 평가하고 정책조정을 원활히 하여 거시적 차원에서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 대통령의 국정운영의 기조를 명확히 하여 정부 부처들이 이를 구체화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 사회여론 및 동향을 파악하여 정책결정에 필요한 정보를 전달- 대통령의 통제 아래 행정부처의 정책입안을 조정, 관리하는 업무 등을 담당- 의회, 사법부, 정당 등 정치적 협력을 요하는 기구들과의 원활한 협조관계를 구축하여 국정운영의 효율을 높임위의 기능들은 직위에 따라 다른 역할을 수행하는 비서실 구성원들에 의해 구체화되는데, 대통령에게 보다 직접적으로 접촉할 수 있는 수석비서관들은 대통령에 대한 정책적 건의나 조언을 하는 데 초점을 두고, 보다 간접적인 방법으로 대통령을 보좌하는 비서관들은 행정부처의 정책입안의 조정, 관리 등에 초점을 둔다. 그리고 비서실장은 비서실과 부처 간의 원활한 업무조정을 하고, 정치권으로부터 영향력을 막아주는 방패역할을 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3. 대통령실의 구조 변화- 김영삼 대통령의 비서실은 비서실장을 중심으로 11개의 수석 및 비서관실로 구성함- 김대중 대통령은 이 가운데 5개의 수석 및 비서관을 통폐합하였고, 이를 통해 1명의 장관급 비서실장과 6명의 차관급 수석비서관을 지닌 비서실을 구성함- 노무현 대통령은 비서실장, 정책실장, 국가안보보좌관 등 장관급 3개, 수석비서관 5개, 보좌관 5개 등 차관급 10개를 지닌 비서실을 갖고 출범하였으나, 잦은 비서실 개편으로 최종적으로 3실장, 8수석, 2보좌관의 비서실을 구성함- 박근혜 대통령은 2실 9수석 체제인데, 1실은 국가안보실이고, 나머지 1실은 비서실장 그 밑으로 9수석 체제로 구성함4. 대통령실의 내부 권력관계- 비서실장과 비서관은 모두 대통령을 보좌하는 개인참모들이다- 비서관들 간의 업무 조정 및 감독 관계의 책임을 위하여 비서실장이 필요하다- 이들 간의 권력관계는 대통령의 리더십이나 비서실장의 특성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김영상 정권수석비서관회의를 비서실장이 주재 → 비서실장의 영향력 강화 → 정보의 왜곡을 초래, 수석비서관들의 자율적, 창의적 보좌역할 또한 약화* 박정희 정권이후락 실장 : 정치문제에 개입, 비서관이 직접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것을 통제김정렴 실장 : 경제문제에 관여, 경제수석비서관이 대통령과 직접 접촉하도록 허용* 김대중 정권역대 어느 비서실장보다 힘이 막강.김중권 비서실장 : 수석비서실의 통폐합에 따른 기구 축소로 인하여 역대 비서실장이 담당하던 업무에 총무수석, 민정수석, 의전수석의 일까지 담당하게 되어 영향력이 막강박지원 비서실장 : 정책특보 시절부터 영향력이 강했는데 비서실장이 되고난 후에는 더욱 영향력이 강해져 실세로 자리매김* 노무현 정권상하관계의 피라미드형이 아닌 비서실장, 정책실장, 안보실장 등 3명의 장관급 실장이 병립하는 수평적 지휘체계5. 대통령실의 영향력(문제점)- 역대 비서관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대통령의 정책결정을 비롯한 국정 운영에 가장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집단으로 비서실이 뽑힘- 대통령 비서실이 대통령의 업무를 보좌하는 과정에서 국정 전반에 미치는 영향력이 적지 않음을 시사- 공식적으로는 명령권이 없어도 실질적으로 대통령을 보좌한다는 명분 아래 행정 각부의 업무를 통제하고 업무지시를 하고 있음- 노태우 정권 이후부터 비서실의 권한이 약화되기 시작(정치체제의 민주화, 행정의 민주화, 개방화, 분권화 등으로 대통령의 대내외적 권한이 기존 정권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약해졌기 때문. 그렇지만 노태우 정권 이전보다 상대적으로 약해진 것이지 비서실의 영향력이 없어진 것은 아님)* 비서실 영향력 행사의 세 가지 공통된 특성첫째, 영향력 행사의 양태가 간접적대통령에게 정보나 아이디어를 제공하거나, 정보의 루트를 장악하거나, 혹은 각료들의 대통령 접촉을 통제하는 등 간접적인 방법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둘째, 구체적세밀하게 행정부를 통제하고 있다. 부처로부터 정기적인 보고를 요구하거나 정부 업무에 간섭하고 지시하는 등의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셋째, 포괄적거의 모든 정책 분야에 걸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그러나 오늘날과 같이 다원화된 사회에서는 위와 같은 영향력 행사는 많이 사라졌다고 할 수 있다.* 비서실의 영향력이 막강한 원인 (문제점)-공식적 요인추상적인 법적 규정 : 법규가 모호해 자의적으로 해석이 가능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의 직급 : 직위가 장관급으로 일반 행정 부처에 영향력 행사가 가능-비공식적 요인대통령에게 정보 및 정책적 아이디어를 제공함으로써 대통령의 정책결정에 영향력을 행사대통령의 의지를 반영하여 부처 간의 정책을 조정하는 역할을 함으로써 영향력을 행사대통령의 접견 일정 및 시간을 통제할 수 있는 위치에 있어 영향력을 확대결론적으로, 대통령 비서실의 대외적으로 미치는 영향력이 직, 간접적으로 강하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역할을 넘어 행정 부처에 업무 지시, 통제를 하는 등 여러 방향으로 영향력 행사가 가능하다. 또한, 현재 행정 부처에 맞게 수석부서가 이루어지다보니 업무 중복도 무시할 수 없다. 또한, 대통령 비서실의 역할에 대해 재정립할 필요가 있고, 모호한 법규 규정도 개선이 필요하다. 행정적 발전을 위해서 현 대통령 비서실의 문제점을 개선하여 대통령 비서실이 더욱 발전할 필요가 있다.6. 대통령실의 개편(개선방안)* 대통령 비서실의 역할 변화① 대통령의 통치이념 및 공약사항을 확인하고 이를 구체화하기 위한 중장기 정책과제를 개발해야 한다.(대통령의 눈치를 살피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의 선거 공약을 구체화하기 위한 방안을 개발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공개하여 대통령의 의지를 피력해야 한다. 또한, 정부 및 관련 기관들에게도 대통령의 입장을 분명히 알리고 이에 상응하는 정책수립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② 대통령의 원활한 정부 통치를 위하여 행정 부처를 대상으로 한 정책조정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행정 부처에게 업무 지시, 통제가 아니라 이들의 업무를 조정하고 지원하는 방향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부처할거주의를 억제하고 거시적 차원에서 정부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
자원봉사론 안재운 교수님 행정학과 60110836 박대용나라 빚 증가 원인과 해결책목 차1. 서 론2. 나라 빚 증가의 실태와 원인3. 나라 빚 증가의 해결책3. 결 론1. 서 론1우리나라의 부채는 도대체 얼마나 될까. 요즈음 경제 관련 뉴스, 기사를 보면 항상 빠지지 않는 헤드라인 중의 하나가 바로 우리나라의 빚에 관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재정 건전성에 대한 경고음이 높아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빚이 어느 정도로 심각한 지경이기에 매일 화두가 되는지 우리는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부채는 최근에 논란이 되고 있지만 과거 정부에서부터 빚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왔다고 할 수 있다. 1996년에는 나라 빚이 35조원을 넘어 97년에는 68조원 98년에는 100조원이 넘는 막대한 빚을 지게 되었다. 몇 년 사이에 나라 빚이 배수로 늘어나게 된 것이다. 이런 부정적 영향으로 인해 1997년에는 한국 경제 역사상 가장 위기라고 할 수 있는 IMF가 터지게 되었다. IMF으로 인해 엄청나게 많은 기업들이 부도가 나고 구조조정으로 인해 실업자가 폭등했으며 그로 인한 가정파탄, 내수위기, 비정규직 양산, 자살률 증가 등 심각한 사회적 문제들이 급증했다. 이처럼 나라 빚이 증가하게 되면 어떠한 문제가 발생했을 시 그 문제로 인한 파급효과가 엄청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라 빚도 문제지만 그로 인해 나타나게 되는 문제들이 더욱 심각한 것이다. 빚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데 전혀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으며 경제는 더욱 악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세계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대외의존도가 강한 우리나라는 부채의 영향으로 인해 더욱 취약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상당한 부채가 있는 우리나라는 2008년 세계 금융 위기와 같은 사태가 다시 발생한다면 그로 인한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기 때문에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빚이 증가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방관할 수 없고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이 시급하다. 이 사태를 막 바로 잡을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3. 나라 빚 증가의 해결책국가부채에 대한 위기가 찾아온다면 우리나라는 IMF때 보다 더욱 힘든 위기에 봉착할 가능성이 높다. 우선적으로 앞서 설명한 여러 원인들에 대한 대책마련이 가장 시급하다.첫째, 공기업 부채에 대한 해결이다. 가장 시급한 것이 공기업 부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른 나라에 비해 GDP대비 공기업 부채가 많은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기 때문이다. 공기업 부채해결에 관한 대안은 정부와 학자들의 입장이 비슷한 부분들이 많이 존재한다.- 정부의 입장 -공기업 부채란 다양한 요인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어떠한 방법이 최선인지 획일적인 답을 제시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결국 요금인상, 사업축소, 정부지원 확대의 3개의 대안들이 조화를 이뤄야 할 것이다. 부채 증가의 원인 중 하나가 낮은 요금 때문이다. 요금의 합리적인 조정을 통해 공기업 부채 증가 억제를 위한 정책이 일차적으로 검토가 되어야 한다. 두 번째로 사업 확장 또는 신규 투자 등에 대한 소요 자원을 부채로 조달하는 경우와 사업의 수익성이 낮아 손실이 발생하는 경우에는 사업축소와 정부지원 확대가 이루어져야 한다. 사업 확장을 위해 부채가 증가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지만 향후 수익이 나지 않거나 장기적으로 비전이 없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무작정 사업 확장, 신규투자는 지양하고 사업 확장 전에 충분한 검토가 이루어져야 한다. 공기업 내 자체적 검토가 아닌 시민, 국회, 정부 등 다양한 계층의 참여 아래에서 검토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다만 수익성을 전제로 하는 사업을 제외한 나머지 사업에서 사업 축소가 어렵다면 정부지원 확대가 필요하다. LH공사나 한국수자원공사의 경우 사업 특성상 부채가 급증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정부지원의 확대가 불가피하다. 하지만 이러한 제도들이 제대로 시행되기 위해서는 투명성 제고가 전제되어야 한다. 공공기관 부채 관리를 위한 가장 중요한 출발점은 공공기관의 사업과 재무적 상황에 대해 정확한 정보가 공개, 전자들은 네 가지의 제도들을 피력하고 있다. 부실기업회생을 위해 중소기업 신속지원제도, 대주단 협약, 기업개선작업, 법정관리 제도를 활용해야 한다. 중소기업 신속지원제도는 일시적인 자금 유동성 애로를 겪고 있는 중소기업에게 유동성을 신속히 지원함으로써 경영정상화를 도모하는 제도이다. 채권만기연장, 대출전환, 이자율 인하 등 다양한 방법으로 지원이 가능한데 중소기업들에게만 한정된다는 한계가 있다. 때문에 대주단 협약이 제시된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가장 자금난이 심한 대형 건설사들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금융회사들이 협약을 맺어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는 우량 건설사들에게 유동성을 지원하거나 자금회수를 유예함으로써 부실기업을 지원하게 된다. 그러나 이 제도의 경우에는 신규자금지원에는 활용이 떨어지고 채무상환 유예 용도로 많이 사용된다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많은 부실기업들의 회생을 위해 워크아웃 즉, 기업개선작업 제도가 있다. 워크아웃은 회생가능성이 있는 부실기업을 대상으로 만기연장, 출자전환, 우대금리 적용, 신규자금 지원 등 퇴출위험에 처한 기업을 회생시킬 수 있다. 이런 워크아웃은 기업구조조정촉진법덕분에 활발하게 활용될 수 있었는데 2010년에 기촉법이 종료됨에 따라 워크아웃도 실효성이 많이 떨어지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기촉법이 다시 발효가 되거나 새로운 법률이 상정된다면 워크아웃의 효과성은 더욱 커질 것이다. 마지막 제도가 법정관리인데 이번 동양그룹에서도 법정관리를 신청을 했다. 법정관리는 부도를 냈거나 부도위기가 있는 기업에 제 3자를 지정하여 법원이 경영정상화를 위해 관리하는 제도이다. 이처럼 많은 제도들이 해결책으로 제시되고 있고 단계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앞으로 이 제도들에 대한 구체적인 개선이 필요하고 그것에 적합한 법률 또한 발효가 된다면 부실기업 정리에 상당한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한다.셋째, 가계부채의 문제이다. 우리나라 현실상 가계부채의 해결은 부동산 시장이 활발해지도록 유도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다.- 정부의 입장 -정 것이다. 왜냐하면 위기가 터지고 나면 힘의 논리에 의해 모든 것이 순식간에 빨려가기 때문이다. 손쓸 틈 없이 멍하게 있다가 당했던 97년과 2008년의 기억을 되돌리지 않기 위해서 지금부터 국가부채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어야 한다.우선적으로 최근에 가장 논란이 많이 되고 있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공기업 부채이다. 공기업 부채는 예전부터 말이 많았지만, 이번 국정감사를 통해서 사태가 더욱 심각하다는 것이 또다시 밝혀졌다. 우리나라 국가부채 증가의 여러 원인들이 있겠지만, 공기업 부채 해결을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고, 공기업의 방만한 경영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과도한 사업확장, 사업규모, 방만한 경영 등 다양한 방면에서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 성과를 내기 위해 처음부터 과도하게 사업을 확장하거나 사업을 계획하는 경우가 있는데 내부감사와 관리를 통해 통제되어야 한다. 흔히 대통령이 자신의 공약을 위해 공기업을 이용해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 국회같은 행정부 견제 기구에 적절한 견제 수단을 제공함으로써 무리한 사업은 사전에 점검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또한, 공기업이 재정운영에 있어 막대한 비용의 지원과 보증을 국가가 서고 있다. 공기업의 존재목적 때문에 국가가 공기업을 뒷받침해줘야 하는 건 맞지만 책임 소재는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과도하게 사업을 추진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빚을 국가가 지원, 보증을 했을 때, 만약 사업이 적자가 난다면 그 책임을 명확히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전처럼 공기업의 장이 사퇴를 하거나 관련 직원들의 처벌로는 안 된다. 그 사업의 주된 주체는 공기업 스스로에게 있기 때문에 책임은 관련 사업 공기업 전체가 져야 한다. 다시 말해서, 사업을 함에 있어 사전에 명확한 관리와 감사가 들어가야 한다. 절차통과 후 사업을 진행하고 만약 사업이 적자가 난다면 공기업 조직 전체가 감봉이나, 재정적 지원의 불이익 등 다양한 방법을 통인들은 더욱 소외계층으로 내몰릴 것이며 새로운 사회적 문제들이 나타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이처럼 저출산과 고령화는 서로 연관성이 깊기 때문에 하나의 카테고리로 인식하고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도 종합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단기적인 관점이 아닌 장기적인 관점을 통해 이 문제에 대해 접근해야 하고 새로운 연구와 분석들이 필요한 때라고 할 수 있다.2. 저출산 문제와 고령화 문제의 원인저출산 문제와 고령화 문제는 따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문제처럼 생각해야 한다. 출산율이 낮아지면 65세 이하의 인구 비율이 점차 줄어들기 때문에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유지되기만 하여도 고령화 비율이 증가하기 때문에 고령화 문제까지 수반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출산율이 저하되고 고령화가 증가된 원인은 여러 가지가 존재한다. 우선 저출산의 원인을 사회, 문화적 접근과 경제적 접근으로 분류할 수 있다.먼저 사회, 문화적 접근에서 보면 첫 번째로, 여성의 사회 진출 증가로 인한 여성의 지위향상이다. 과거와는 달리 여성의 사회 참여율과 교육수준은 남성과 동등한 수준을 넘어 뛰어넘을 정도이다. 이로써 여성은 주체성을 가진 존재가 되어 사회적으로 진출해서도 명성을 날리고 있다. 결과적으로 여성의 사회 진출 증가는 사회적으로 형성된 가치관의 변화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초혼 증가 연령에도 영향을 주어 노산과 같은 출산을 함에 있어 부정적 결과를 초래했다.둘째, 가치관의 변화이다. 여성의 사회 진출 증가와 교육수준 향상은 결혼과 육아, 출산 등에 대한 가치관에 영향을 미쳤고 과거와는 달리 가치관이 많이 변화했다. “굳이 결혼을 일찍 하지 않아도 된다. 아이를 많이 낳지 않아도 된다. 육아는 여자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와 같은 생각들이 당연시 되었다. 그로 인해, 독신주의자, 딩크족 등 새로운 가족구조가 생겼다. 경제적으로 빈곤하지 않기 때문에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면서까지 힘든 길을 택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맞벌이를 하면서 부부생활을 즐기되 굳이 아이는 낳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