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 경제자유구역사업의 분석과 검토1. 서론 ------------------------------------------------------12. 본론(1) 경제자유구역이란 무엇인가 ------------------------------------3(2) 인천경제자유구역① 송도지구 ------------------------------------------------3② 영종지구 ------------------------------------------------5③ 청라지구 ------------------------------------------------6(3) 인천경제자유구역의 문제점과 개선방향 ----------------------------73. 결론 ------------------------------------------------------9 ----------------------------------------------------------------101.서론도시의 경제력이 세계경제 질서의 새로운 형태로 자리 잡게 되면서 전 세계 각국이 지역경제 활성화와 국가경제 발전을 위해 해외자본 유치에 큰 힘을 쏟고 있다.우리나라도 도시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2003년 인천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8개의 경제자유구역(부산·진해, 광양만권, 황해, 대구·경북, 새만금·군산)을 지정하여 운영하고 있다.인천경제자유구역은 2002년 1월 14일 대통령 연두기자회견의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가 육성’에 관한 기본구상 발표에 의하여 본격화 되었다.같은 해 3월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가 실현 발전기획단’이 구성되었으며, 4월 4일에 국민경제자문회의 겸 경제정책조정회의에서 기본계획이 확정되었다. 이어서 7월 29일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가 실현방안’이 발표되었으며, 다음 달 8월 21일에는 경제특별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 공고되었다. 11월 6일 국회재정경제위원회에서 ‘경제특별구역’의 명칭이 ‘경제자유구역’으로 변경되었으며, 같은 달 14수구의 송도지구, 중구의 영종지구, 서구의 청라지구의 일원으로 인천경제구역을 개발하는 개발사업 시행자 및 총괄사업 시행자는 인천광역시이며, 각 단위사업시행자는 해당 단위에 따라 인천광역시·정부투자기관·인천도시개발공사·외국인투자자 등으로 나뉜다. 거대한 개발 면적으로 인하여 현재 단계별 추진계획을 수립하여 추진 중이다.1단계 사업은 2003년부터 2009년 까지였으며, 2단계 사업은 2010년부터 2014년까지, 3단계 사업은 2015년부터 2020년 까지 개발을 완료할 예정이다.1단계 사업에서는 기반시설의 마련과 시범지역 구축을 통해 외국 자본과 기업체의 유치를 준비하는 단계였다. 이 단계에서 총26조 6915억 원이 소요되었으며, 이 중 79%는 민간자본과 사업 시행자가 부담하고, 나머지 12%는 인천시가, 9%는 정부가 부담한 것으로 되어 있다.인천경제자유구역청의 홈페이지에 따르면, 대형시설들의 추진상황으로 인천대교가 2009년 10월에 완공되었고, 바이오 단지에 인천대학교 캠퍼스가 완전히 이전을 하였다. 국제 업무단지에서는 전시장인 송도컨벤시아와 65층 규모의 동북아무역센터(NEATT), 중앙공원 등의 사업이 추진되었으며, 송도랜드마크시티 사업으로 151층의 인천타워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또한 인천경제자유구역의 선전을 위해 인천세계도시축전을 개최하였다.지구별로 보면, 송도지구는 국제 업무와 지식기반사업을 중심으로 한 국제개방형 도시로, 영종지구는 공항지원 및 항공물류를 중심으로 한 허브도시로, 청라지구는 관광 및 레저를 위축으로 한 광광레저허브도시 및 한중교류의 도시로 개발 중이다.많은 자본과 시간을 투입하여 진행하는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순조로운 진행이 되지 않고 있으며 불균형적인 개발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또한 해외투자기업의 유치도 미흡하여 경제자유구역의 목적이 훼손되고 있다.따라서 이 글에서는 인천경제자유구역의 각 지구별 사업을 살펴보고, 이러한 문제점이 나타나는 원인을 파악할 것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안을 도출할 것이다.2. 본론( 건설을 목표로 하고 있다.경제자유주역은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다양한 특례가 적용되는 지역이다.우선 외국인 투자기업에 대해 소득세?법인세 등이 3년간 100%, 2년간 50% 감면된다. 또한 개발사업시행자에 대한 각종 부담금 면제, 지방자치단체의 기반시설 설치에 대한 국고지원, 외국인투자기업에 대한 임대료 감면 등 각종 자금지원이 이루어진다. 마지막으로 외국인투자기업의 경영환경으르 개선하기 위하여 공장총량제 등 수도권 규제의 배제, 국가유공자?장애인 의무고용제 배제, 주휴무급제, 근로자 파견대상 업종?기간의 확대 등 규제가 완화된다. 넷째, 외국인의 생활환경을 개선하기 위하여 내국인도 허용되는 외국교육기관과 외국병권의 설립 등이 허용된다.경제자유구역의 개발?운영 및 투자자 지원은 관련 법률에 근거하며, 경제자유구역위원회 및 경제자유구역기획단이 정책을 수립하고, 해당 지방자치단체와 이로 부터 사무를 위임받고 예산?인력을 지원받는 경제자유구역청 등 실제로 사업을 추진하는 체계로 구성되어 있다. 경제자유구역의 지정은 시?도가 수립한 개발계획을 경제자유구역위원회에서 확정하고, 이에 따라 개발이 이루어지는데 각 경제자유구역별 개발의 콘셉트에 따라 경제자유구역청이 기업 및 연구소 등의 유치를 적극적으로 추진한다.(2) 인천경제자유구역①송도지구인천 연수구 송도동에 위치한 송도지구는 1,612만평의 면적에 21조 5,442억원의 사업비를 투자하여 2003년부터 사업을 시작하였으며, 2020년까지 개발될 예정이다.개발사업의 시행자는 인천광역시, (재)이넌테크노파크, NSIC, 송도글로벌대학캠퍼스(주), 송도국제화복합단지개발(주), 해양수산부, 인천항만공사이다.계획 현황은 지식정보산업단지, 바이오단지, 첨단산업 클러스터, 송도랜드마크시티, 인천 신항 등이 있다.송도지구의 단계별 개발 계획은 다음과 같다.이러한 단계별 개발계획을 지닌 송도지구의 현재 추진성과는 다음과 같다.그러나 송도지구에서 가장 높은 사업 추진율을 보이는 송도국제도시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동북아무역센터(NE가지 개발에 적하한 지형과 지세를 보유하고 있으며, 전반적으로 양호한 수림이 분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송산 일대는 수립은 물론 기존의 수려한 해안선이 연출하는 우수한 환경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영종지구 계획현황을 살펴보면 영종하늘도시, 미단시티, 용유무의 관광단지, 영종물류복합단지 등이 개발된다.인천국제공항과 연계한 국제공항, 물류도시 건설을 목표로 복합공항도시로서의 자족성을 확보하고, 용유동과 무의도를 중심으로 하는 국제적인 레저?관광단지 육성을 목표로 한다.영종하늘도시는 인천국제공항과 연계한 고부가가치 항공 및 물류산업, BIO R&D, 전시복합 시설 조성 등 국제도시와 자족적인 복합 공항도시 건설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인천 중구 운서·운남·운북·중산동의 일원으로 19.3㎢의 규모에 총사업비 8조 9,328억 원을 예상하며, 사업시행자는 한국토지공사와 인천도시개발공사이다. 영종 복합리조트 조성사업은 3.7㎢규모에 일본의 Universal Entertainment사가 사업시행을 맡고 호텔, 외국인전용카지노, 쇼핑시설 등을 개발할 예정이다. 영종도시 부지 내에는 중장기적으로 복합리조트 사업계획을 통해 영종하늘도시 내 자족기능 및 주변시설과의 연계 개발을 통해 MICE 산업을 육성할 계획이다.미단시티는 영종지구 북동쪽 예단포 일원에 위치한 미단시에 한국경제자유구역 최초로 국제공모를 통하여 추진되고 있는 사업이다. 외국투자사 홍콩 Lippo Limited와 미국 Koam사 및 국내기관, 건설, 금융사들이 사업에 참여하여 개발하고 있는 신도시이다. 미단시는 주거, 상업, 비즈니스, 교육, 문화, 관광, 레저가 어우러진 자족적인 국제자유도시로 Beyond Hongkong을 목표로 건설하고 있다.약 82만평의 규모에 총 4조 5천억 원의 사업비가 예상되며, 개별사업별 내?외국인 투자 유치 및 고객, 테넌트 유치를 통한 사업을 시행할 예정으로 미단시티 개발주식회사, 인천도시개발공사 공동으로 사업을 진행한다.용유무의 문화·관광·레저 복합도시는 지정학적 위치와 천혜항관련시설을 제외하면 다른 계획들은 아직 가시적인 진척을 보이지 않고 있으며, 가장 높은 추진율을 보여주는 영종하늘도시는 그저 아파트 단지로밖에 볼 수 없다.③청라지구청라지구는 금융관련 국제 업무기능을 수용하고, 배후 지원을 위한 주거지 개발을 목표로 위락 및 스포츠 시설, 화훼단지 조성을 통한 국내외관광객의 휴식공간을 조성하고 업무·주거·문화·레저가 복합된 비즈니스 중심지를 건설한다.인천 서구 경서동·연희동·원창동 일원에 위치하였으며, 17,783㎢의 면적에 기반시설비 6조 2,302억 원이 투입되는 사업으로 9만 명의 인구(33,210세대)를 계획하고 있다.국제도시로서 충분한 기반시설이 구축된 공간을 창출하고 기업 활동을 위한 치상의 업무환경조성으로 국제적인 금융·업무도시 개발을 목표로 수준 높은 주거환경조성 및 첨단의 정보통신 기술을 이용한 U-City 및 주민의 여가·휴식을 위한 도시 실현을 목표로 하고 있다.청라지구는 작은 규모지만 송도·영종지구와 함께 인천경제자유구역의 트라이앵글을 형성하면서 국제관광레저도시로 만들어지며, 서울 등 수도권과 빠르게 연결된 지리적인 특성을 활용한 수도권 220만 시민들의 휴식 공간 역할도 하게 될 계획이다. 22만평에 이르는 매립지 중심부인 국제 업무용지에는 종합금융회사, 은행, 오피스 빌등 등이 입주하는 60층 이상의 초고층 빌딩이 건립되며, 근처 외국인 주거단지에는 외국 기업에서 일하는 이들을 위해 3층 이하의 단독주택 3천여 가구가 지어진다. 여가를 즐길 수 있는 레저 스포츠 단지도 들어설 예정이다.청라지구는 서울·인천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의 서부지역이다. 북측으로 쓰레기 매립지, 지구주변에 서구 신인천 복합 화력 발전소, 청라광역 폐기물소각장, 인천서부공단 등 환경위해시설이 다수 입지하고 있어 환경적으로 불리한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인천경제자유구역으로 선정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인천국제공항전용고속도로와 철도 및 경인운하 등이 통과하는 길목에 있으며, 경인고속도로, 서인천IC 등 편리한 교통수단과 연계가 가능하다.다
해외의 첨단산업지구 분석과 검토1. 서론현대사회에서는 경제의 세계화로 기술혁신 및 고도의 정보화를 동시에 수반하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기업 간, 지역 간, 국가 간 경쟁이 가속화되었다.특히 신자유주의에 입각하여 세계화에 대한 정부의 역할과 기능은 축소되었다.반면에 지역(region)의 역할과 중요성이 새롭게 부각되었으며, 동시에 경제활동의 주요 단위로도 등장하고 있다. 지역의 역할이 중시되는 것은 지역이 세계 경쟁의 단위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산업 환경이 유연생산체제, 지식기반경제로 변화하면서 지역의 의미와 기능이 과거와는 달라졌기 때문이다.최근에는 세계 경제가 지식 경제 기반의 시대로 변화하고 있으며, 첨단산업의 발전이 국가 경쟁력의 주요 요소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경제와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이에 따라 세계 각국은 지속적인 경제발전을 위한 경쟁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신기술, 창조적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하는 첨단 산업의 활성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한 첨단 산업 클러스터의 개발은 1980년대 이후 선진국 중심의 세계경제 운영체계의 재구조화 과정에서 출현하고 있는 지역성장 정책 수단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다.1990년대 이후 첨단산업 클러스터가 미국, 일본, 유럽과 같은 주요 선진국의 경제 발전 모델로서 높은 가시적 효과를 보이자, 개발도상국가에서도 첨단산업 클러스터에 대한 관심과 전략적 벤치마킹이 몇 년 사이에 크게 증대되었다.즉, 세계 여러 나라에서 물적 인프라를 확보하고 이 위에 제도적 틀을 도입함으로써 전문 인력, 자본, 기업과 같은 이동성이 강한 자원을 확보하고 과학기술활동과 산업구조, 네트워킹과 협력 및 신뢰분위기 등을 정착시킨다.이를 통해 기업의 혁신을 촉진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며, 지역의 성장을 촉진하고자 첨단산업 클러스터를 조성하기 시작했다.이제는 경제주체들이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전략적 관심이 기술혁신 측면으로 빠르게 이동 중인데, 이는 한국과 중국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이러한 경향을 잘 반영하고 있는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본 연구에서는 중국의 대표적인 첨단산업 클러스터인 베이징 중관촌 클러스터를 대상으로 클러스터의 형성 배경 및 특성, 중관촌 클러스터의 주요 주체 간의 네트워크, 특히 연구개발 네트워크의 특성을 분석하고자 한다.2. 본론①첨단산업지구란?전자·신소재·바이오 테크놀러지·컴퓨터·정보 통신 산업 등 첨단 기술을 핵심으로 한 고도의 지식 집약적 산업이다. 첨단 산업의 입지 조건은 고급 기술 인력의 확보가 용이하고 연구 개발과 관련한 산업이 근거지에 집중되어 있어야만 한다. 우리나라 첨단 산업 단지의 효시는 1973년부터 조성되기 시작한 대전의 대덕 연구 단지이다. 외국의 유명한 첨단 산업 단지로는 미국의 실리콘 밸리, 영국의 케임브리지 과학 공원, 일본의 스쿠바 연구 학원 도시, 그리고 대만의 신주 과학 산업 단지 등이 있다. 정부는 현재 부가 가치가 높고 국가 경쟁력 강화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첨단 산업을 효율적으로 육성하기 위하여 인천의 송도·수원·기흥 등의 수도권과 부산·대구·경산·대전·광주 등 지방에 첨단 산업 단지를 개발할 예정이다.②중관촌의 사업개요중관촌은 1988년 5월 중국 최초로 지정된 첨단 기술 개발구로 공식 명칭은 ‘베이징 시 신기술 산업개발 시험구’이다.베이징 대학, 칭화 대학, 중국과학아카데미 등 중국을 대표하는 대학들과 다양한 연구 기관들이 위치해 인재 양성은 물론, 이를 통해 개발된 신기술들이 상업화 되고 있는 중국 첨단 산업 단지이다. 베이징 시 하이덴 구 내에 위치하고 있으며, 단지 면적은 232㎢이다. 우다오커우와 인접한 이곳에는 한국 용산 전자상가와 같은 하이룽 따샤가 있고 그 외에도 수많은 전자상가와 백화점들이 늘어서 있다.중관촌은 시험구 지정 이전부터 전자시장이 있었던 관계로 총 기업의 50%가 컴퓨터 전자 시장이 있었던 관계로 총 기업의 50%가 컴퓨터 등 전자 관련 산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나머지도 생명 과학 신소재 등 첨단 과학 기술 분야와 관련된 기업이 대부분이다.2011년 중관촌에는 레노보(lenovo주변기기 교역, 정비 등에 종사하였다.정책체계가 구축될 단계(1988년~1991년)에서는 정부의 유도정책이 큰 영향을 미쳐 초보적으로 첨단기술산업 개발시험구 정책체계를 구축하게 되었다.이 때 중관촌의 개혁목표, 발전전략, 기획 등의 종합 정책이 확립되었다.‘북경시 신기술 산업개발 시험구 잠정시행조례’의 제정은 시험구 정책체계의 출발을 의미하며, 이를 근거로 북경시는 지원정책을 수립하여 인프라, 세금, 신용차관 및 보험, 수출입, 노동인사 등의 방면에서 민영기업에 우대정책을 실시함으로써 과학기술인력들이 과학연구원과 대학을 벗어나 창업하는데 있어서 폭을 넓혔다.정책체계가 점차 형성될 무렵 시험구 관리위원회 자체 내에서도 비교적 큰 개혁을 단행하였다.R&D기업에 서비스의 개념을 도입하였고 인력채용에 있어서도 공개채용방식을 채택하였다. 이를 통해서 경쟁의식을 고취하고 사회적으로 기업가들이 존중받는 환경을 조성하였다.또한 참신한 계열성 서비스모형을 도입하였고, 선도제품을 선정하고 또한 기업의 자체적 기술제품 개발 및 생산을 촉진하는 등의 종합개혁조치를 실시하였다.1998년을 기점으로 중관촌은 지식기반경제 발전단계를 천명하였는데, 중앙정부에서부터 북경시 자치행정관료에 이르기까지 지식기반경제의 발전에 지대한 관심을 표명하였다.특히 ‘군무원의 중관촌과학기술단지를 건설하는 데 있어서 관련 문제에 대한 허가’는 중관촌에 아주 좋은 발전기회를 제공하였고, 중관촌은 북경이 지식기반경제로 진입하는데 있어서 초석이 되었다.지식기반경제를 발전시키는데 있어서 중관촌의 장점은 우수한 두뇌집단의 활용가능과 정보산업 위주의 첨단기술산업 및 국제와 궤를 같이하는 시장체계를 들 수 있다.지식기반경제를 가속하기 위하여 북경시는 첨단기술산업발전에 대한 지원을 강화의 일환으로 여러 정책들을 제정하여 종합개혁의 강도를 높였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첫째, 중앙정부에서부터 지방정부에 이르기까지 중관촌발저을 기획하고 지도한다. 국무원은 중관촌과학기술단지 발전기획을 허락하고 북경시는 영도 협조소소를 구성하을 상업화하기 위해 중관촌에 처음으로 민간 기업을 세운 것이 그 시작이었다.이후 1983년부터 1987년까지 좁다란 중관촌 전자상 거리에는 여러 가지 유형의 기술형 기업들이 입지하면서, 11개로 시작해 148개로 늘어났다. 이 중 97개(65.5%)는 컴퓨터 기술개발을 위 주로 한 기업으로, 이들 기업의 영업수입은 전체 기업 영업수입의 85% 이상을 차지하게 되었다.1985년 4월 국가발전위원회가 제출한 베이징시를 시점으로 하는 첨단산업 클러스터 건설 관련 제안이 상급 부문의 중시를 받으면서, 1988년 5월 국무원에서는 ≪베이징 시 신기술산업개발시험구 잠정 조례≫를 비준함과 동시에 원래의 ‘중관촌 전자상 거리’를 근간으로 한 베이징 시 신기술산업개발 시험클러스터의 설립을 공식인가 하였다. 1988년 베이징 시 신기술산업개발 시험클러스터 내 기업 수는 500개 정도였으나, 5년 후인 1993년에는 약 3,700개, 1998년 약 4,500개 로 급신장하였다.기업 설립의 증가로 용지가 부족해지자 용지 및 인프라 부족을 해소할 목적으로 1999년에 정부자금으로 베이징 시 신기술산업개발 시험클러스터를 광역화하고 중관촌 클러스터를 조성하였다. 중관촌 클러스터는 조성 된 당시 약 4,800개사에 이르렀다. 중관촌 클러스터는 첨단산업 연구개발 중심의 지역으로 발전해왔으며, 2009년에 국무원이 중관촌 클러스터를 중관촌 자주적 혁신 시범 지역으로 지정한 바 있다.이러한 발전단계를 거치면서 현재 중관촌 클러스터는 중국 첨단산업 발전의 선도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러한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던 핵심적인 요소는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적 지원이다.중관촌 클러스터는 중국 최대 규모의 클러스터로, 그 지위는 2009년을 기준으로 중국 첨단산업의 매출액 21.8%, 세수 14.2%를 차지하고 있다. 즉 중관촌클러스터는 2009년 기준 중국 첨단산업 전체 매출액의 1/5, 세수의 1/7을 차지하고 있다.또한 중관촌 클러스터는 산업적인 측면 외 에 첨단산업의 연구개발의 핵심지역으로 중 각각 41.8%, 25%의 성장세를 보였다.성장 폭은 중관촌 클러스터 평균 대비 각각 19.2%, 2.4%높았다. 중관촌 클러스터는 첨단산업이 발전하기 위해 그 성격에 맞는 입지요인이 갖추어져야 한다. 따라서 첨단기업이 중관촌 클러스터에 공간적으로 집중하게 된 입지요인을 살펴보아야 한다. 중관촌 클러스터의 입지요인으로는 정책적 지원 요인, 동종 및 관련 업종들의 집적 요인, 연구개발의 접근성 요인 등이 중요하다고 지적되고 있다. 즉, 중관촌클러스터의 주요한 성공요인은 잘 갖추어진 사회 간접시설 및 부대시설, 연구개발 네트워크 구축 및 연구개발 인력 확보 용이성, 그리고 클러스터라는 집적으로 들 수 있다.⑤중관촌의 개발주체중관촌의 개발주체는 중앙정부로 중관촌 영도소조, 중관촌 관리위원회, 국무원 과학기술 관련부서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중관촌 영도소조는 중관촌을 직접 책임지는 정부기구로서, 북경시 시장이 조장으로 국무원 유관부문 책임자가 부조장으로 구성된 고위 정책결정과 조정기구로서 북경시인민정보의 지휘를 받는다.중관촌 관리위원회는 영도소조의 구체적인 집행기구로서 중관촌 발전과 관련된 세부적인 사업을 책임진다. 관리위원회 주임은 북경시 부시장 겸 영도소조 임원이 맡게 된다.과학기술 관련 정부의 각 부서는 거시적인 차원에서 중관촌에 직접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2003년 3월을 기준으로 군무원 산하기관은 총 28개이다. 특히 과학기술 혁신과 직결된 기관으로서의 과학기술부는 과학기술정책을 포함한 과학기술 관련 업무를 총괄하고 현급 지방정부에 까지 조직과 인력을 확보한 거대 행정부서이다.⑥중관촌의 유치업종IT산업은 중관촌의 주도산업으로서 2000년 말 기준으로 중관촌의 인력 29.3만 명중 IT산업 인력이 15.8만 명으로서 53.9%을 차지한다. 중관촌 1679억 위안 총수입중 IT사업이 1192억 위안으로서 71%, 상납세금 61.6억 위안 중 39.8억 위안으로서 64.6%, 수출 20억 달러 중 15.2억 달러로서 76%, R&D활동ㅇ 한다.
우리나라 도시의 재난위기 사례연구 이름 : 학번 :INDEX 서론 본론 - 안양 2 동 연립주택 침수 사고 - 은평구 나이트클럽 화재사건 - 인천시 싱크홀 결론우리나라의 경우 기상이상으로 인한 자연재해 현상의 증가뿐만 아니라 다양한 인적 및 사회적 재난의 증가로 매년 다양한 종류의 재난으로 피해를 입고 있다 . 본 연구에서는 국내재난 발생 현황 및 대응방식과 그에 대한 문제점을 알아보고자 한다 . 또한 문제점의 해결을 위한 방안을 알아볼 것이다 . 서론재난의 유형 자연재해 : 태풍 , 홍수 , 폭설 , 지진 , 한파 , 우박 , 번개 등 인적 재난 : 화재 , 산불 , 붕괴 , 촉발 , 도로교통 , 해난 등 사회적 재난 : 폭탄 / 생화학 테러 , 자살시도 , 사이버테러 , 전염병 등 재난의 유형본론 안양 2 동 연립주택 침수 사고 서울시 은평구 나이트클럽 화재사건 인천시 싱크홀안양 2 동 연립주택 침수 사고 발생개요 발생시간 2001 년 7 월 15 일 오전 6 시 10 분경 발생장소 경기도 안양시 안양 2 동 33 의 16 연립주택지하 사고개요 시간당 최고 80㎜ 의 폭우가 쏟아지면서 인근 삼성천이 범람하여 집이 물에 잠기면서 미처 대피하지 못한 집주인의 아내와 세들어 살던 모녀가 사망 발생원인 사고원인 시간당 최대우량이 80mm 로 시설용량을 초과하는 집중호우였음 피해확대원인 기상청의 예보 부실 ( 호우경보 예비특보 발효 X) 시간당 80㎜ 의 집중호우가 내린지 30 분이 지나서야 대피방송을 함 배수펌프의 가동이 늦음 삼성천 상류지역의 재개발사업 진행으로 공사장 건축자재와 쓰레기가 교각에 걸려 물 흐름을 막아 인근 저지대연립주택이 물에 잠김안양 2 동 연립주택 침수 사고 피해상황 인명피해 사망 : 3 명 / 부상 : 0 명 / 실종 : 0 명 / 이재민 및 기타 : 안양시 안양 2 동주민들 재산피해 재산피해 11,610 백 만원 현장 주변 272 가구 침수 대처방법 배수펌프를 가동시키고 주민들에게 대피방송을 함 문제점 배수펌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으며 행정당국의 대응이 늦었고 , 수해집중 지역인 저지대주택가의 방재 대책이 없었음 해결방안 하천 횡단시설물의 정비를 통한 유수소통능력을 증대시켜야 함 홍수시 하천 내 부유물 제거 시설의 설치 방안 수립 평상시에도 배수펌프의 관리를 철저하게 해야 함 공무원 방재교육을 통해 재난상황에 빠르게 대처할 수 있도록 해야 함 재난의 복구 뿐만 아니라 재난예방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예방에 힘을 써야 함서울시 은평구 나이트클럽 화재사건서울시 은평구 나이트클럽 화재사건서울시 은평구 나이트클럽 화재사건 발생개요 발생시간 2008 년 8 월 20 일 오전 5: 시 25 분 경 발생장소 서울시 은평구 대조동 197-3 번지 성인 나이트클럽 건물규모 지상 3 층 , 지하 1 층 ( 연 면적 301.1 ㎡ ) 구조형식 철골조 인슈판넬 지붕 사고개요 나이트클럽 2 층 무대 근처에서 원인 미상의 화제가 발생하여 천정으로 연소하면서 건물 일부가 붕괴된 화재로 화재진압 중이던 소방관 3 명이 사망함서울시 은평구 나이트클럽 화재사건 발생원인 사고원인 전기단락에 의한 발화 추정 피해확대 원인 무너진 천장의 재질은 판넬 사이에 스티로폼을 끼워 넣은 취약한 구조의 재질 로 소방당국으로부터 수차례 법규위반 지적을 받아옴 . 주요 마감재료로 사용된 샌드위치패널 * 이 화재시 급격한 연소확대를 일으키고 , 고열 및 농연을 방생시켜 화재진압이 어려웠음 . 화재 당시 나이트클럽 천정에 설치된 대형조명과 음향시설 ( 약 3 톤 ) 이 천장과 같이 붕괴되어 화재 진압중이던 소방관이 낙하물에 압사 . 피해상황 인명피해 사망 : 3 명 / 부상 : 0 명 / 실종 : 0 명 / 이재민 및 기타 : 0 명 재산피해 재산피해 2 억 7 천 만원 ( 부동산 :1 억 9 천 만원 , 동산 : 8 천 만원 ) 건물소실 734.96 ㎡ * 샌드위치패널 : 철판과 철판 사이에 우레탄폼을 끼워 넣어 열기에 취약한 재질서울시 은평구 나이트클럽 화재사건 대처방법 소방관들이 고가 사다리차를 이용하여 나이트 건물의 화재를 진압 문제점 화재의 대처에 문제가 있던 것이 아니라 재난에 대한 예방이 부족했음 불이 난 건물의 천장은 화재에 취약한 구조의 재질로 소방당국으로부터 수 차례 법규위반 지적을 받아왔었음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어있지 않았으며 , 소방시설로 옥내 소화전 과 자동화재탐지설비가 있었으나 무용지물 증축의 인허가를 정식으로 받았음에도 건물에 많은 문제가 있음 해결방안 재난발생시 안전한 소방 · 방재활동을 위해서 건축물의 구조적 안전성이 담보 되어야 하기 때문에 건축물 구조에 따른 중간 최대 적재하중의 제한이 필요함 화재안전성 확보를 위해 난연성 · 불연성 샌드위치패널의 사용을 의무화해야 함 구청관계자는 증축의 인허가 서류검토 뿐만 아니라 직접 현장에 나가 서 건물을 봐야 함인천시 싱크홀싱크홀 이란 ? 지층이 어긋나 균열이 생긴 지역을 채우고 있던 지하수가 빠져나가면서 빈 공간이 생기고 , 지반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땅이 주저앉으면서 생기는 현상 싱크홀의 원인 ? - 석회암지대에서 물에 잘 녹는 성질을 지닌 석회암이 장시간 빗물이나 지하수에 녹아 내리면서 지하에 빈 공간이 생기고 이로 인해 지표면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짐 - 무분별한 지하개발 ( 지하철 , 탄광 등 ) - 지하수 사용을 위해 지상으로 물을 끌어올리면 지하에 빈 공간이 생기면서 발생 인천시 싱크홀인천시 싱크홀 발생개요 발생시간 1 차 : 2012 년 2 월 10 일 2 차 : 2012 년 2 월 12 일 오전 1 시 경 3 차 : 2012 년 2 월 18 일 오후 3 시 19 분 경 발생장소 1 차 : 인천시 계양구 계산역 6 번 출구 앞 도로 2 차 : 인천시 계양구 계산역 4 번 출구 앞 도로 3 차 : 인천시 서구의 지하철 2 호선 공사장 201 공구 건설 현장 6 차선 도로 싱크홀 크기 1 차 : 가로 3m, 세로 5m 2 차 : 가로 0.7m, 세로 4m 3 차 : 가로 · 세로 12m 길이 에 깊이 27m 사고개요 1 차 : 계산역 6 번 출구 앞 도로의 지반이 내려앉음 2 차 : 계산역 4 번 출구 앞 도로가 내려앉아 길을 지나던 차량 3 대가 부서지고 1 명이 부상 . 3 차 : 왕복 6 차선 도로 한 가운데 가 둥글게 주저앉으면서 달려오던 오토바이 운전자가 피하지 못하고 매몰되어 사망 .인천시 싱크홀 발생원인 1 차 : 지하수 네트워크에 이상이 생기면서 만들어진 것 2 차 : 지하수 네트워크에 이상이 생기면서 만들어진 것 3 차 : 상수도관 파열에 따른 지반균열 , 지하철 공사에 따른 지반침하 피해상황 1 차 : 인명피해 없음 2 차 : 사망 : 0 명 / 부상 : 1 명 / 실종 : 0 명 / 이재민 및 기타 : 0 명 3 차 : 사망 : 1 명 / 부상 : 0 명 / 실종 : 0 명 / 이재민 및 기타 : 0 명 대처방법 발생되는데 걸리는 시간이 굉장히 순식간이어서 대처할 수 없으므로 사전에 예방해야 함 문제점 사전예방이 되지 않음 - 무분별한 도시개발 - 지반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무리하게 지하철 공사 진행 해결방안 인천지하철 1 호선 주변과 2 호선 공사 현장 주변 도로의 지반을 총체적으로 점검해야 함 도시 주요 지역에서 흐르는 지하수의 흐름을 늘 모니터링 해야 함 도시개발 시 지질조사를 통해 지반상태가 안전한지 파악해야 함지금까지 자연재해와 인적 재난의 사례에 대해 살펴보았다 . 우리나라의 재난관리는 생각보다 미흡한 수준에 있으며 , 앞으로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재난피해에 대한 복구중심이 아닌 재난의 예방중심 방재정책으로 변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 결론네이버 뉴스 네이버 백과사전 노컷뉴스 Newsis 국립재난안전연구원 2008 년 12 월 제 4 월호 재난정보 - 주요재난사례 2010 년 12 월 방재연구 제 12 권 제 4 호 2001 경기도 홍수피해원인 분석조사 - 안태진 참고문헌♥ THANK YOU ♥{nameOfApplication=Show}
인물로 보는 유럽통합사. 책과함께. 통합유럽연구회. 2010.1부: 19세기의 유럽통합 사상1. 프랑스의 죽음과 변용: 빅토르 위고빅토르 위고는 로 유명한 대문호이다.레미제라블이라는 제목이 생소하다면 장발장을 떠올리면 바로 아 하고 생각이 날 것이다.그렇다면 빅토르 위고가 유럽통합을 위해서 어떤한 업적을 남겼기에 이 책의 첫 번째의 인물로 선정되었는지 간단히 알아보자.빅토르 위고는 1849년 8월 파리에서 열린 국제평화회의 개막 연설에서 유럽합중국이란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하게 되었다.이는 미합중국을 염두에 둔 것으로 1776년에 13개 국가들이 하나가 되어 왕을 내쫓고 공화국을 건설한 미합중국의 예는 왕과 경계를 거부하며 그 대안을 보편적 공화국에서 찾고 있던 위고에게 강한 매력으로 다가왔다고 생각된다.그 뒤 빅토르 위고는 망명을 하게 되면서 진정한 유럽인으로 태어나 위고에게 유럽은 공동의 조국이 되어 버렸다.망명 중 위고는 국제평화회의에 동참하여 유럽의 평화를 위해서는 유럽합중국 건설이 필수적이라 주장하기도 했으며, 유럽합중국은 위고의 정치사상의 핵심이었다.빅토르 위고에게는 유럽이야 말로 자유주의, 민주주의, 그리고 사회주의가 연결되어 기능할 수 있는 공간이었던 것이다.프랑스의 제 3공화국때에는 위고를 국부로 칭송하였다.위고가 80살을 앞둔 해에는 프랑스의 축제거리로 삼을 정도였다.그 뒤 1885년 83세의 나이로 사망하자 프랑스 정부는 국장을 선포하였다.위고가 꿈꾸던 유럽은 확대된 프랑스를 의미했다.프랑스는 사라짐으로써 유럽으로 거듭날 것이며, 유럽의 수도는 당연 파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위고에게 파리라는 도시는 유럽의 등대와도 같은 도시였던 것이었다.마지막으로 위고의 유언장에서 자신의 그과 그림을 장차“ 유럽합중국 도서관이 될 파리 국립도서관”에 남긴다고 하였다.2. 유럽통합을 주창한 민족주의자: 주세페 마치니이탈리의 정치지도자인 마치니는 민족주의자로 널리 통해진 인물이지만 마치니가 유럽통합론자이었다는 사실은 대부분 잘 알려져 있지 않다.마치니의 인 연장선에 있다는 것이다.또한 첫머리에서 연방제 이론은 아주 새로운 것이며, 지금까지 누구도 그것을 제시한 적이 없다고 나는 믿는다고 말했다.프루동은 생의 마지막 순간도 “ 민족들의 배타성이 사라지는 날, 여가를 위해서든 일을 위해서든 누구나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드는 날, 누구든 여러 국가의 시민이 되는 날”이 오리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그가 머릿속에 그린 유럽합중국의 정경은 농부가 제 땅을 갈고 노동자가 제 몫의 일을 하며 권력의 압제에 시달리지 않고 마음껏 자유를 누리는 아나키즘의 이상향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4. 유럽합중국을 부르짖은 아나키스트: 미하일 알렉산드로비치 바쿠닌바쿠닌은 19세기의 대표적인 아나키즘 이론가이자 혁명가이다.그는 러시아 출신이지만 20대 중반 이후 주로 유럽 중서부 지역에서 활약했다.1848년 혁명기에 이미 그는 슬라브인들로 구성된 자유로운 연맹의 결성과 더 나아가 ‘ 범유럽공화국연맹’의 수립을 촉구 한 바 있다.이후 거의 20년 만인 1867년에 다시 한번 ‘유럽합중국’의 청사진을 새로운 차원에서 제시한 것이다.바쿠닌의 이름은 종종 거친 반항 청년, 파괴의 사도, 또는 어둠의 세력 같은 부정적인 수식어구와 함께 거론된다.그렇다면 통념상 국가 파괴를 목표하는 전형적인 아나키스트가 유럽통합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의아하게 느낄 수 있다.결론부터 말하면 그는 유럽통합주의자이다.하지만 기존 국가의 틀위에서 진행되는 유럽통합을 거부했다.대신 그의 통합론은 자유의 원리에 기초한다.국가는 억압의 원리를 상징하고, 이는 자유와 양립될 수 없다는 것이 바쿠닌의 입장이다.바쿠닌 사상을 가리켜 자유에서 시작하여 자유에서 끝난다 고도 평가할 정도로 그에게서 자유란 전부를 의미한다.자유의 원리에 기초한 그의 사회 통합론을 연맹주의 혹은 연합주의라고 한다.그의 유럽통합론은 이러한 연맹주의의 틀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바쿠닌의 연맹주의 이론은 이 세편의 글에 집약되어 있으며 그것은 기존국가를 전면 부정하는 해체적 통합이다.위기란 어떤 기능의 체제에서 다른 기능의 체제로 이행되는 것이므로 유럽 정신을 바탕으로 유럽의 통합 질서 체계가 필요하다가 보았기 때문이다.또한 발레리는 유럽인의 정체성을 이룰 수 있는 기본적 요소를 세가지인 로마문화, 그리스도교 문화, 그리스의 인문 자연과학 유산이라고 말하였다.그러나 발레리의 유럽 정신은 유럽연합이 경제공동체에서 정치공동체로 전환되면서 내놓은 커다란 정잼인 정체성 문제와 관련되는데 최근에 가입한 헝가리의 불만과 보스니아에 대한 무관심 가입을 희망하는 터키와 상관있다.3. 유럽의 바다에서 사투를 벌인 노인: 알티에로 스피넬리1941년 7월 2차 대전이 한창이던 으로 알려진 자유롭고 통합된 유럽을 위한 선언이 발표되었다.근대문명은 그 기초로서 자유의 원칙을 채택하는 바, 어떤 개인도 타인에 의해 단순한 도구로 사용될 수 없으며, 자율적인 삶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원칙이 그 것이다.로 시작되는 선언문은자유롭고 통합된 유럽은 전체주의 시대가 오직 일시적인 후퇴일 뿐이라는 점에서 근대 문명을 강화하가 위한 필수 전제이다.라는 결론으로 마무리 된다.이 문건의 집필은 반파시스트 자유주의자들인 로시와 콜로르니등이 참여했다지만 대부분은 알티에로 스피넬리가 작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스피넬리는 경제통합이 자연스럽게 유럽연방으로 이어지라는 기능주의적 낙관론을 거부하고, 경제 통합이 잘 이루어지기 위해서라도 정치적 연방 국가가 필요하다는 철저한 연방주의론을 옹호하였다.다시말해 기능주의는 근본적인 모순을 안고 있어서 유럽통합의 대안이 될 수 없으며, 연방주의가 그 모순을 적절히 활용함으로써 기능주위의 성과를 전유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 스피넬리의 입장이었다.또한 스피넬리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로는 이탈리아의 정치사상가인 마키아벨리와 미국의 정치가 해밀턴이었다.스피넬리는 마키아벨리로부터 정치의 덕이 곧 힘이자 권력투쟁이라는 점을 배웠고, 이로부터 일체의 추상적인 이데올로기들을 혐오했다.해밀턴으로부터는 정치가 곧 힘이 되는 비합리적인 현실에서 정치 질서를하겠다며 유럽과 함께 하겠지만 유럽의 일부는 아니다 라는 점을 명백하게 밝혔다.그의 이러한 유럽관은 아직까지도 영국 지도층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처칠의 경력은 3단계로 구분된다.1단계는 1900년 하원 진출부터 1915년 다르다넬스 해협 작전의 실패로 각료직에서 사임한 때 까지가 1단계이다.2단계는 1917년 각료직 복귀부터 1930년대 각료직도 없이 하원으로 지내던 시기.3단계는 그의 인생에서 가장 화려했던 1940년 총리 취임식 부터이다.처칠은 1930년 2월 중순 라는 신문을 통해 유럽합중국이 필요함을 제기하였다.하지만 영국을 유럽 대륙의 일부로 생각하지 않고 우월한 위치에 있는 국가로 생각한 그의 시각과 정책은 비판받고 있다.6. 이탈리아의 타고난 유럽주의자: 알치데 데 가스페리1952년 9월 어느날 이탈리아의 수장이자 외무장관이었던 알치데 데 가스페리는 중세 유럽을 통일했던 샤를마뉴의 탄생지인 아헨시에서 사늘마뉴 상을 수상하였다.그때 부인과 딸에게 수상한 메달을 보여주면서 내가 죽으면 관 속에는 오직 이 메달만 넣어다오 라는 말로 메달에 대한 깊은 애정을 표현했다.이 당시 유럽방위 공동체(EDC)에 대한 비분만 마치면 그가 지난 몇 년 동안 노력해왔던 하나로 통합된 유럽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순간 이었다.데 가스페리에게 유럽통합은 자신의 신앙과 정치적 삶과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것이었다.기독교가 바탕으로 하는 세계시민의 형제애라는 연대의식은 유럽통합이 추구해야하는 목표였다.거기에 이탈리아의 평화와 번영이라는 정치적 목표는 곧 유럽통합을 통해서만 완성 될 수 있는 것 이었다.이 점에서 데 가스페리의 유럽주의는 이상과 현실이 조화된 완벽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하지만 바로 이로 이점 때문에 그의 유럽주의는 때때로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즉, 그가 과연 유럽의 아버지인가 하는 문제이다.그 비난의 요지는 그가 즉, 유럽주의를 이탈리아의 국가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 도구로 삼았다는 것이다.그러나 이탈리아 정부는 그가 정부에서 한 노력이 성공한 진정한 동이 구상하는 유럽은 다양한 민족과 국가가 연합하는 유럽이지, 민족과 국가를 대신하는 새로운 정치체제로서의 유럽이 아니었다.군인출신인 드골에게 국가는 성역이었고 국제사화ㅣ는 국가와 국가가 생존을 놓고 경쟁하는 냉정한 무대였던 것이다.드골은 유럽의 유럽을 강력하게 주장하였다.그것은 프랑스의 독립과 자율을 강조하듯이 유럽도 다른 외부 세력에서 독립된 자율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이는 결국 미국의 영향력을 배제한 유럽을 의미하였다.그는 프랑스는 프랑스이기 때문에 세계 속에서 세계적인 정책을 펴야 한다고 말하면서 유럽은 프랑스 자신의 국제적위상을 높이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들어냈다.유럽통합사에서 드골은 반유럽주의자나 유럽통합을 비판하는 인물로 표현된다.하지만 드골은 전형적인 현실주의자라고 생각 할 수 있으며, 그에게 현실이란 국가권력이 지배하는 국제무대라는 걸 명심했다.9. 드골에 맞섰던 연방주의 투사: 발터 할슈타인발터 할슈타인은 1901년 11월 17일 독일 마인츠의 루터파 개신교 가정에서 태어났다.그의 부친은 제국 철도청의 건축 감독관을 지냈지만, 조상들은 주로 농업과 수공업에 종사했던 집안이었다.2차 대전 당시 할슈타인은 예비역 장교로 참전했다고 1944년 6월 미군의 포로가 되었다.미국 체류 시 할슈타인은 미국의 정치제도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보였고, 이것은 유럽합중국 건설의 야심찬 구상에 밑거름이 되었다.할슈타인은 유럽통합의 선구자였던 모네와 같이 신기능주위적 연방주의자로 불린다.이는 그가 통합의 방법으로는 신기능주의를 믿었지만 최종목표로는 연방주의를 설정했기 때문이다.즉, 1960년대에 학계와 정계에서 풍미하였던 이른바 파급효과에 뿌리를 둔 기능주의적 접근을 통해 최종적으로는 연방 국가를 건설한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후에 할슈타인은 드골과 맞서게 되었다.그는 프랑스가 원하는 공동농업정책을 실시하는 대거라 EEC 기구의 초국가적 성격을 강화시키고자 했다.드골은 이러한 계획들이 프랑스의 주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보았고, 더욱이 집행위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