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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분쟁
    제목: 종 교 분 쟁1. 종교분쟁의 정의먼저 종교 분쟁에 대한 정의부터 밝히자면 종교 분쟁에 대한 잠정적인 정의는(1)분쟁의 당사자들이 둘 혹은 그 이상의 뚜렷하게 구분되는 종교적 성향 혹은 정체성을 지닌 집단들로 구성되고 (2) 대립하는 각 진영에 가담한 인구의 종교적 구성이 상대적으로 동질적이거나, 갈등의 과정에서 점점 동질화되어 가며 (3) 당면한 대립과 갈등이 종교적으로 해석·정당화되고 (4)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 신자들, 조직 , 리더십, 신학 등 종교적 자원들이 적극적으로 동원되는 (5)폭력적이고 지속적이며 조직적인 갈등이다.이것은 매우 광범위 하면서도 동시에 상대적으로 제한적인 정의 방식이다.2. 종교분쟁의 의의종교분쟁이라는 말 자체가 종교와 정치의 긴밀한 연계를 전제로 하지 않고서는 성립 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핵심적인 문제는 종교라는 요인과 다른 요인들(정치, 경제, 군사, 종족 지리 등)사이의 ‘관계 방식’ 혹은 ‘접합방식’을 탐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3. 종교 분쟁의 결합 유형들그렇다면 우리의 정의에 부합하는 종교 분쟁의 구체적인 사례들 지역적으로는 어떻게 분포 되는지를 살펴보면 1999년 말 현재 진행 중인 84개 사례의 분쟁들이 미주, 유럽, 독립국가 연합, 중동, 북아프리카, 흑아프리카. 아시아의 7개 지역으로 구분되어 소개되고 있다. 또 이들 분쟁은 조직적인 무력의 충돌이 벌어지고 있는 ‘무력 충돌 분쟁’, 대립 단체가 결성되는 등 본격적인 대립 정책이나 태도가 공식화되어 있는 ‘대립분쟁’, 분쟁의 원인이 이미 발생해 있거나 잠복해있는 상태인 ‘잠재 분쟁’ 의 세 유형으로 구분되어 있다.1)종교 분쟁에서 ‘종교’에 초점을 두고 보면보스니아 내전의 경우 이슬람-가톨릭-동방정교가 뒤섞인 분쟁으로 분석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전쟁의 양상이 크로아티아인과 보스니아인이 연합하여 세르비아인에 맞서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음을 감안하여 이슬람-동방정교 간 대립, 가톨릭-동방정교의 대립으로 쪼개서 분석하도록 하겠다. 따라서 분석 대상)종족-종교 분쟁‘종족 분쟁과의 결합 유형’의 경우, 대립하는 주요 종족 집단들의 종교에서 분명한 차이가 존재하면, 다시 말해 종교와 종족의 경계선이 일치하면, 종족 분쟁은 거의 예외 없이 종교 분쟁의 성격을 띠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종족적 정체성은 그 정의 속에 종교가 이미 포함되어 스리랑카 , 북아일랜드, 키프로스, 중국 내 티베트, 러시아의 체첸, 필리핀의 민다나오, 인도네시아의 동티모르, 태국의 파타니 말레이족, 방글라데시의 차크마 불교도 , 미얀마의 개신교 및 이슬람게 소수 민족 지역, 피지, 수단, 차드 나이지리아, 라이베리아. 세네갈, 에티오피아- 에리트리아 간의 분쟁, 아제르바이잔 내 나고르노 카라바흐 지역의 영유권을 둘러싼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의 갈등, 보스니아, 세르비아의 코소보 등이 종족 분쟁과 결합된 종교 분쟁에 해당된다.3) 종족-근본주의 분쟁우리가 또 하나 주목해야 할 현상은 이질적 종교 문화를 지닌 다종족 사회에서 나타나는 종족 분쟁의 ‘근본주의화 효과’이다.종교와 결합된 종족 분쟁의 ‘과정’ 자체가 기성 종교인들의 근본주의화를 촉진하는 경우, 그리고 그 결과 분쟁이 더욱 격화되는 경우를 염두해둔 것이다. 분쟁의 (종교적)근본주의화 효과는 기존의 ‘종족-종교 분쟁’의 강도 및 지 속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근본주의 운동’ 은 “전통 사회의 침식을 중단시키고 세속적 근대성의 잠식성에 맞서 싸우기 위해, 한 전통종교의 ‘본직’ 혹은 ‘근본’을 복원, 윤색, 구성하는 과정으로 이해 될 수 있다.따라서 ‘근본주의 운동 유형’의 종교 분쟁인 경우, 대부분 세속화를 촉진하는 정체 사회, 문화에 대한 종교 세력의 도전이라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세속화에 대한 종교인들의 저항은 폭력적인 형태를 띠울 수도 있고, 비폭력적이고 합법적인 정치 참여의 형태를 띨 수도 있다. 터키나 인도 등에서 보는 것처럼, 상당수의 근본주의적인 종교 세력은(간헐적으로 폭력 사태를 동반하기는 하나) 제도정치권에 진출하여 합법적인 정치 세력화를 추구하고 있기구하는 현대의 근본주의 운동은 1970년대 이후 아랍 국가들의 재 이슬람 화 정책, 소련 블록을 방어하려는 서방 국가들의 후원에 힘입은 보수적 이슬람 세력의 성장에 기초하고 있으며 이슬람 혁명을 계기로 중동 및 북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으로 세력을 확장했다.오늘날 종교적 근본주의 운동은 거의 모든 지역에서, 거의 모든 종교에서 발생하고 있다. 근본주의 운동의 지역적 분포 면에서는 미국, 유럽, 중남미, 중동 및 이스라엘, 북아프리카, 남아시아 등의 지역들이 고루 들어있다.좀 더 자세히 보면, 근본주의 유형의 종교 분쟁은 대체로 한 국가 내에서 전개되는‘종교인들의 체제 전복 운동’과 한 국가의 범위를 넘어서 전개되는 ‘국제적 근본주의 운동’으로 구분될 수 있다. 좀 더 자세히 보면, 근본주의 유형의 종교 분쟁은 대체로 한 국가 내에서 전개되는‘종교인들의 체제 전복 운동’과 한 국가의 범위를 넘어서 전개되는 ‘국제적 근본주의 운동’으로 구분될 수 있다.‘종교인들의 체제 전복 운동’은 이집트 알제리, 이란,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그리고 부분적으로 파키스탄, 이스라엘, 인도, 터키 등에서처럼 ‘동인한 종교, 동인한 교파’ 가의 대립으로 나타날 수 있다.이란-이라크 전쟁과 이라크 내분이 발생했던 일, 이스라엘과 중동 지역 여러 국가들 간의 ‘동시적’ 대립관계, 구소련을 대상으로 한 아프카니스탄 이슬람 세력의 저항에 다양한 국적의 이슬람 전사들이 참여했던 일, 그리고 ‘테러와의 전쟁’에 나선 미국과 맞서고 있는 알카에다의 세계적 네트워크 등의 사례들에서 우리는 ‘근본주의 운동의 국제성’을 확인할 수 있다.4) 복합 종교 분쟁‘복합 종교 분쟁’ 혹은 ‘중층적 종교 분쟁’역시 비교적 넓은 영토를 지닌 다다종족 사회들에서 주로 발생한다. 여기서는 주어진 영토 내에서 세 개 이상의 종교 혹은 교파들이 복잡한 잠재적·현재적 갈등 구도를 빚어내기 때문에, 종교 분쟁의 양상과 전개 과정도 매우 유동적이며 예측하기 어렵게 된다. 대표적인 사례로 해체 이전 혹은 해체 레바논, 중국, 인도네시아, 인도 , 미얀마 등을 들 수 있다.4.분쟁의 구체적 예들종교전쟁 또는 민족분쟁이라고 해도 신앙의 대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를 공격하거나 종교 그 자체가 주역이 된 전쟁은 거의 없다.카톨릭 신도와 이슬람교 신도 사이에 일어난 십자군 전쟁만 하더라도 한 꺼풀 벗기면 실크로드 지배권을 둘러싼 분쟁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즉 종교 전쟁이라기보다는 경제적 이익이나, 영토의 확대 또는 획득을 노린 쟁탈전 이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하겠다.1980년부터 8년 동안 계속된 이라크, 이란 전쟁은 이슬람교 시아파인 이란 대 이슬람교 수니파인 이라크 사이의 얽힌 종교적 갈등 그리고 아랍과 아리안이라는 민족적 대립감정이 마침내 전쟁으로 비화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분명히 종교 분쟁이자 민족 분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라크가 침공한 최초의 땅은 이란의 석유지대 즉 석유라는 이익을 빼앗으려는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동시에 이라크의 후세인 대통령은 석유지대를 지배하에 두에 페르시아만의 패자로써 중동 세계에 군림하고 싶다는 야망을 품고 있었다 한다.1994년 시작된 체첸분쟁에서도 이와 비슷한 경향을 볼 수 있다. 일단 정전까지 갔다가 재개된 이 분쟁은 1999년 11월 러시아 군이 체첸에 대한 무력 생사를 확대함으로써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 이것도 실은 다음 달인 12월로 예정된 선거를 유리하게 이끌어 가기위한 옐친 대통령의 정치작전이었다고 한다.이처럼 종교분쟁이나 민족분쟁에는 정치인 또는 독재자의 권력욕이 작용하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1) 유럽의 경우1)정치, 경제, 역사, 종교의 뿌리 깊은 대립유럽에서는 가톨릭, 프로테스탄트, 동방정교회(그리스 정교, 러시아 정교 등) 등 그리스도교의 3대 세력이 국가 또는 민족 단위로 복잡하게 얽혀있다.북 아일랜드 분쟁에서 영국은 프로테스탄계(영국 국교회) 그리고 아일랜드는 당초 가톨릭계 주민이 많은 지역이었다는 사실이다.16-17세기에 영국에서 이주한 프로테스탄트계 주민 다수는 민족주의자들이 주도한 이른바 이스터 봉기로 독립운동이 활발해진 가운데 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하여 아일랜드의 남북이 분할되었다 그 결과 남부는 아일랜드 자유국가로 독립하고 프로테스탄트 세력이 우세한 북 아일랜드는 영국에 잔류하였다.2)갑자기 발동한 종교의식과 끝없는 복수심유고연방의 공화국이었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주민은 당초 44%의 무슬림인 = 이슬람교도, 32%의 세르비아인 = 세르비아 정교도(동방정교회) 18%의 크로아티아인 = 가톨릭교도 등으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특히 표면화 된 대립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타교도와 결혼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는 것. 그런 평화적인 관계에 금이 간 것은 유고 연방에서 독립하는 문제가 거론되고서부터였다.세르비아 세력과 무슬림 세력 사이의 사소한 분쟁의 발발과 전쟁에 따른 원한까지 겹쳐 피투성이가 되고만 사망 20만, 난민 200만 명을 헤아리기 어려운 피투성이 내전의 예3)이데올로기의 장막이 걷힌 뒤의 종교와 경제적 이익그 많은 민족을 하나로 묶어 놓은 것이 곧 사회주의라는 강력한 이데올로기였다.연방이 무너져 사회주의라는 견고한 사슬이 풀리자 공화국이나 자치주 민족이 종교를 방패삼아 너나없이 독립을 서둘렀다.체첸은 카스피 해와 흑해 사이에 있는, 카프카스 산악지대 북부에 위치한 러시아 연방의 자치 공화국 중 하나이다. 이 일대에는 이슬람교 나라들이 밀집해 있어서 이것이 체첸분쟁을 장기화시키는 요인의 하나로 작용하고 있다.러시아가 체첸을 상실할 경우 중앙아시아 일대에 산재한 이슬람교 권에 러시아가 흡수되고 만다는 공포감이 팽배했기 때문이다. 신앙을 배경으로 한 이슬람교도들의 단결, 그리고 중동을 필두로 하는 이슬람 급진파와 이슬람 원리주의와의 밀접한 유대가 러시아로서는 커다란 위협이었던 것이다.러시아가 체첸에 집착하는 이유가 또 한 가지 있다. 그것은 체첸이 카스피 해 및 중앙아시아 그리고 카프카스 지방과 러시아 및 흑해를 잇는 지정학상의 요충지라는 점이다. 러시아의 영토 보전과 체첸에서의 러시아 이권의 획득이 이유에 있었 패권
    인문/어학| 2014.02.25| 6페이지| 1,000원| 조회(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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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f 브루스의 바울 평가A+최고예요
    제목: F.F. 브루스의 바울서론복음주의의 최고의 신학자 중에 하나로 손꼽히는 F.F. 브루스의 바울 연구서인 본서는 역사적 배경을 통하여 본 바울의 행적을 나열하고 있다.본서의 저자인 브루스 박사는 그 누구보다 사도 바울의 연구에 시간과 정력을 쏟았다.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 볼 것은 저자의 바울의 가르침을 체계적으로 설명 한 것을 보는 것이 아닌 바울의 가르침 가운데 주요한 주제들을 그 역사적 배경을 통하여 검토해 보고자한다.1. 로마의 발흥지중해 세계를 통치한 모든 도시들 가운데 로마만큼 지중해 세계와 지중해 세계로부터 멀리 떨어진 지역에 강력한 권력을 휘두른 도시는 없었다. 고대인들은 로마가 신속하게 강성해져 가는 모습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로마는 원래 티베르(Tiber)강 서안 라틴평원에 있는 구릉지대에서 목축과 농업을 영위하면서 정착해 살았던 소수의 무리였다. 주전264년 시칠리 분쟁에 개입으로써 로마는 시칠리에 교역상의 이권을 갖고 있었던 카르타고와 충돌하게 되었다. 그 결과 두 차례의 포에니 전쟁(주전264-241)이 일어났고 제 2차 포에니 전쟁에서 로마는 자칫 멸망할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런데 북아프리카 자마(Zama)에서 한니발이 이끄는 군대를 대패시킴으로써 로마는 지중해 서부지역의 지배자로 떠오르게 되었다. 7세기에 아랍이 세력을 떨칠 때까지 근동의 민족들은 로마의 지배 아래서 그러니까 처음에는 원래의 로마, 4세기 이후에는 콘스탄티노플을 수도로 한 신 로마에서 살아야 했다.2. 이방인의 지배 아래 놓인 유대인바사 제국(주전559-529)의 창건자인 고레스와 그의 후계자들은 고대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가장 개화된 제국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은 속국의 백성들이 반란을 일으킬 마음을 품지 못하도록 먼 지역으로 이주시키는 앗수르와 바벨론의 정책을 답습한 것이 아니라 속국의 백성들이 자기네 땅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였다. 바사 제국 아래서 유대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일정 범위의 지역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유대는 성전국가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유대의 경건한 집단들은 로마의 손에 하스모니아 왕조가 몰락하는 것을 보고, 이것은 그들의 팽배해진 불의 특히 법적으로 자기 소유가 아닌 대제사장직을 찬탈한 데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생각했다. 하스모니아 왕조가 다윗의 위를 멸절시킨데 대한 벌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헤롯의 치세가 말기에 예수, 최초의 제자들이 이스라엘이 기다린 구속자라고 주장했던 예수께서 태어나셨다. 누가복음의 예수탄생 이야기 나오는 찬가들에서 예수를 약속된 다윗집의 왕으로 선포하고 예수는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다윗의 자손이라고 불렀을 때 이를 거부하지는 않았다. 바울이 예수의 본질을 이해하고 밝히는 데에는 다윗의 자손이라는 것은 실질적으로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다. 실제로 예수께서 마음속으로 인자를 이사야에 나오는 주의 종과 같은 인물로 생각하셨다고 해야 인자에게 예정된 고난에 관한 예수의 많은 말씀들을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7. 그 도(The Way)의 시작예수께서 선고받은 로마의 십자가 형벌이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라는 신명기21:23의 말씀과 어떤 연관을 갖고 있다는 우연의 일치도 선(善)을 위해서는 무시할 수 있었다. 십자가형은 다른 무엇보다도 더 효과적으로 진정으로 경건한 유대인들의 눈에 나사렛 사람의 위신을 크게 떨어뜨리고 그의 주장들을 불신하게 만들 것이다. 하지만 예수는 죽어 장사된 지 삼일 째 되는 날과 그 이후 수일 동안 많은 제자들에게 나타났고, 제자들은 그가 해(害)받으신 후에 친히 사심을 나타내(행1:3)보이셨다는 것을 의심할 수 없게 되었다.예수를 “주”라는 호칭으로 부른 것이 아주 초기부터였다는 사실은 이 호칭이 헬라어 ‘퀴리오스’와 아울러 그 아람어 형태인 ‘마란’ 또는 ‘마라나’로 유포되었다는 데서 알 수 있다.‘마라나나’라는 기원이 시초부터 유포되었다는 것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시작된 그 나라를 완성하기 위하여 영광중에 오실 예수의 파루시아를 제자들이 얼마나 열렬하게 대망했는지를 보여준다.또한 스데반에박게 해준다.바울은 예수와 마찬가지로 율법을 목적 자체가 아니라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취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경건한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의 경건을 보장책으로 삼으려는 것을 거부하며, 복음의 메시지를 전파함으로써 바울은 당대의 기독교인들보다 더 분명하게 예수의 가르침의 참 뜻을 꿰뚫어 보았다.12. 바울과 높이 들리우신 그리스도바울은 연속성과 동일성을 주장했다. 바울은 역사적 예수를 소문과 전승을 통해서 알았지만, 높이 들리우신 그리스도와는 개인적으로 깊고 직접적인 교제를 가졌다고 주장했다.바울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있다고 하는 대신에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수여받고 지극히 높이 들리우심을 받았다고 말한다.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은 “주(Lord)”라는 칭호를 가르킨다.하나님 자신이 신자들을 의롭다 하시는 분이시며 죽었다가 살아나신 그리스도께서 신자들을 위하여 간구하는 자로서 계시기 때문이다.그는 새로운 존재 양식 속에서 자기 백성들의 다양한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영적으로 붙들어 주는 일을 계속하면서 여전히 그들의 친구요 조력자로 계시는 것이다.“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를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사실과 결부시킨다. 바울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둘째 사람, 마지막 아담으로 묘사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형상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분으로 보는 것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첫째 사람이 불완전하게 옛 창조에 존재했었지만, 그리스도는 새 창조-부활질서-에서 완전하게 존재한다.13. 헬레니즘 세계에 대한 바울의 선교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으로 돌아온 후 바울은 헬레니즘 세계에 헌신했다. 바울의 부모들은 바울이 헬레니즘 세계의 영향을 받지 못하도록 어린 시절에 예루살렘에 보내 거기서 교육을 받게 했다. 지금 바울은 자기의 새 주인을 그 지역과 주민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이 불길한 지역에 돌아왔다. 유대 그리고 예루살렘조차도 헬레니즘 세계의 일부였다.바울은 당시에 수리아와 길리기야에서 선교하수 있을 것인가? 종교적 이유로 이방인 선교는 예루살렘 교회와 그 지도자들에게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수 없었다. 사도의 공교(公敎)에는 이방인 신자들에게 할례를 부과하는 조항은 없었지만 이방인 신자들이 지켜야 할 몇 가지 사항들을 규정해 놓았다. 요구사항들 가운데 세 가지는 음식 규제법의 성격을 갖고 있다. 네 번째 사항은 윤리적인 문제이다.18. 율법이 할 수 없는 그것율법은 하나님의 율법이었다. 법은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었다. 율법 아래서 태어난다는 것은 말할 수 없이 귀중한 특권이었다. 이 특권을 가지지 못한 이방인들과는 달리 율법의 교훈을 받은 유대인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좋게 여길 수 있었다. 그런데도 바울은 더 이상 율법을 의지하거나 자기가 유대인으로 태어남으로써 하나님과 맺게 된 관계를 자랑하지 않았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라는 새로운 길을 찾았던 것이다. 생명의 길인 한 인격과 하나 되는 길을 택하였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본질적인 면에서 율법을 폐하였다고 믿었으며 또 그렇게 가르쳤음이 분명하다.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느니 라고 그는 말했다. 바울에게 율법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성취할 아브라함의 자손이 오시기까지 하나님이 도입하신 잠정적인 섭리였다는 의미에서 그리스도는 율법의 목표였다. 다른 말로 하면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었다. 그러한 이유로 그리스도는 율법의 종착지이기도 하였다. 율법아래 있다는 것은 죄의 지배 아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율법의 도입은 죄를 깨닫게 하고 죄로 유인하는 결과를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죄를 죄로 여기고 그에 따라 죄에 대하여 선고되는 사형선고를 받을 가능성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므로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하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관심은 청중들에게 하나님의 생명의 숨을 불어넣은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모든 인간의 책임을 인식시키고 하나님께 합당한 존귀를 드리는 데 있었다. 아레오바고 연설이 서신서의 바울과 어떠한 관련성이 은혜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바울의 사상은 여기서 본성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바울 서신의 구속사가 그러한 것처럼 아레오바고 연설의 구속사의 절정은 그리스도이다. 복음을 통하여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시는 것의 배경이 있다.23.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바울은 낭패감을 느끼면서 아덴에서 고린도로 갔다. 고린도에 머문 기간과 고린도에서 떠나온 후 수년 동안 고린도 교회와 상대하여 겪은 체험들은 바울이 인간을 깊이 이해하고 자신의 목회적인 성숙도를 높이는 데 많은 공헌을 했다. 고린도는 헬라의 고대 성읍이었다. 교역의 중심지라는 이점으로 인하여 고린도는 고전 헬라시대에 엄청난 번영을 누렸다. 고린도는 사치로 유명했으며, 그 이름은 성적인 문란의 대명사가 되었다. 고린도는 로마의 식민시였다. 바울은 늘 하던 대로 고린도에서도 자기 손으로 일을 하여 생계를 유지했는데, 거기서 그는 원래 본도 출신 유대인인 아굴라와 그의 아내 브리스길라 소유의 장막 제조회사에서 일자리를 얻었다. 바울은 자기가 직접 세례를 준 고린도 교인들을 말하면서 그리스보와 가이오, 아가야의 첫 열매인 스데바나 집 사람들 외에는 아무에게도 세례를 주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것으로 보아 그들이 고린도의 최초의 신자들이었음이 틀림없다. 데살로니가와 베뢰아에서 그랬듯이 고린도에서도 바울을 둘러싸고 소동이 일어났다. 하지만 그 소동은 결국 대단치 않게 끝났다. 갈리오가 고린도에 부임해온 지 오래지 않아 유대인 공동체의 몇몇 사람들이 바울을 그에게 고소했다. 갈리오는 유대인들의 종교적인 분쟁에까지 끼어들 마음은 없었다. 이에 따라 바울이 준비했던 변론을 듣기도 전에, 갈리오는 그들에게 재판자리에서 물러가라고 명했다. 바울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와 함께 고린도에 떠나 에게해를16)
    인문/어학| 2014.02.25| 11페이지| 1,000원| 조회(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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