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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대비 요약 정리
    2021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대비 요약 정리- 14 페이지 --구석기시대 최대 발명품은 주먹도끼이다.-구석기와 신석기 시대는 평등사회였다.-신석기 시대 대표적인 토기는 빗살무늬토기다.-신석기 시대는 농경을 시작하여 정착생활을 하였다.-신석기 시대는 애니미즘, 토테미즘, 샤머니즘이 나타난다.-청동기시대 벼농사가 시작되었다.-청동기시대 대표적 동검은 비파형동검이다.-철기시대 대표적 동검은 세형동검이다.-단군 조선은 청동기를 배경으로 한다.-위만 조선은 철기를 배경으로 한다.-낙랑군을 축출한 왕은 미천왕이다.-고구려에서 율령을 반포한 왕은 소수림왕이다.(소수림왕-불교수용.태학설립)-고구려의 수도는 졸본-국내성-평양성이다.(점점 남하함)-금관가야에서 대가야의 영향력 이동은 고구려의 공격 때문이다.(광개토대왕이 신라를 도와주며 금관가야 공격)-장수왕의 남진정책을 볼 수 있는 유물은 중원고구려비이다.(광개토대왕릉비 세움)-백제에서 율령을 반포한 왕은 고이왕이다.-마한을 완전 병합한 왕은 근초고왕이다.-무령왕은 지방에 22담로를 파견하였다.-성왕은 도읍을 사비로 옮기고, 국호를 남부여로 바꾸었다.-신라의 왕호는 거서간-차차웅-이사금-마립간-왕으로 변하였다.-신라의 법흥왕은 국방부에 해당하는 병부를 설치하였다.(법흥왕-이차돈 불교수용)-고구려의 귀족회의는 제가회의다.-백제의 귀족회의는 정사암이다.-신라의 귀족회의는 화백회의다.-고구려의 수상에 해당하는 것은 대대로이다.-22담로를 지방에 파견한 왕은 무령왕이다.-연개소문은 천리장성 축조과정에서 영향력을 쌓았다.-흑치상지, 복신, 도침은 백제부흥운동을 주도하였다.-안승, 고연무, 검모잠은 고구려부흥운동을 주도하였다.(신라가 당을 견제하려고 지원했음)-매소성과 기벌포전투로 신라는 당을 측출하였다.-진골 최초의 왕은 무열왕이다.(무열왕 김춘추)-신문왕은 관료전을 지급하고, 녹읍을 폐지하였다.(통일신라중대 왕권강화책)-김흠돌의 난은 신라 중대에 일어났다(신문왕때).-김헌창의 난은 신라 하대에 일어났다.(통일신라하대 왕권약함)-호족은 고려 지배층은 호족-문벌귀족-무신-권문세족 순이다.-태조는 연대책임을 지우는 사심관제도를 시행하였다.-고려는 신라의 상수리제도와 유사한 기인제도를 시행하였다.-광종은 왕권강화를 위해 노비안검법과 과거제를 시행하였다.(왕권강화책)-성종은 지방12목에 지방관을 파견하였다.-중서문하성의 관리는 재신과 낭사로 구성된다.-중추원의 관리는 추밀과 승선으로 구성된다.-고려의 지방행정조직은 5도와 양계로 구성된다.-고려의 중앙군은 2군6위다.-고려의 지방군은 5도에 주현군, 양계에 주진군으로 구성된다.-문벌귀족은 정치적 특권으로 음서제를 활용하였다,-문벌귀족은 경제적 특권으로 공음전을 지급받았다,-묘청의 서경천도 운동은 개경파와 서경파의 대립에서 비롯되었다.-경대승은 도방을 설치하였다.-최충헌의 최고 권력기관으로 교정도감을 활용하였다.-최우의 정방은 인사권을 장악하였다.-강동6주획득에 앞장 선 인물은 서희이다.-윤관은 여진족을 몰아내고 동북9성을 확보하였다.-원 간섭기에 2성은 첨의부로 격하되었다.-원 간섭기에 6부는 4사, 중추원은 밀직사로 격하되었다.-원 간섭기에 평양에 동녕부가 설치되었다.-공민왕은 정동행성 이문소를 폐지하였다 (원나라가 일본원정실패하고 내정간섭 기구됨)-경종은 시정전시과를 시행하였다.-목종은 개정전시과를 시행하였다.-문종은 경정전시과를 시행하였다.-관청 운영을 위해 지급된 전시과는 공해전이다.-궁궐운영을 위해 지급된 전시과는 내장전이다.-민정문서는 고려에서 호적과 양안으로 대체되었다.-고구려의 진대법과 같은 기능을 고려에서는 의창이 했다,-고려시전을 감독하기 위해 경시서가 설치되었다. (서울경, 시장감시)-고려 상평창은 물가조절기관이다.-성종시기 철전인 건원중보가 발행되었다. (고려초기-태조, 광종, 성종)-고려의 최대 무역항은 벽란도이다.-고려의 문벌귀족-무신-권문세족-신진사대부 순으로 지배층이 교체되었다.-중앙관청에서 근무하는 중류층은 서리다.-고려의 일반 농민을 지칭하는 용어는 백정이다.-고려 노비 관련법은 일천즉천법과 천자수모제가 있다.-고려의묘사화, 을사사화이다.-연산군은 무오사화, 갑자사화 시 왕이었다. (무오-김종직 조의제문, 갑자-연산군 어머니)-기묘사화 당시 왕은 중종이었다. (기묘-조광조)-을사사화 당시 왕은 명종이었다. (외척간의 세력다툼)-북평관은 여진의 사신을 맞이하기 위한 곳이다.-4군과 6진을 개척하기 위해 남방의 주민을 이주하는 사민정책이 추진되었다.-세종은 일본에게 부산포, 제포, 염포를 개방하였으며, 계해약조를 체결하였다.-길주의 북관대첩비는 정문부 의병장과 관련이 있다.-임진왜란 휴전기에 중앙군인 훈련도감과 지방군인 속오군이 정비되었다.-병자호란시, 임경업은 백마산성 항쟁을 주도하였다.-과전법은 원칙적으로 세습되지 않지만, 수신전, 휼양전 명목으로 일부 세습되도록 하였다.-세조가 시행한 직전법은 현직관리에게만 토지를 지급하도록 하였다.-수조권이 폐지되고, 녹봉이 전면적으로 실시된 시기는 명종시기이다.-공법 이전의 수취기준은 답험손실법에 의해 정해졌다. (그래서 불평등했음)-직전법 시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단을 줄이기 위해 관수관급제가 시행되었다.-조선전기 지대 수취기준법은 1/2세인 타조법이 주로 적용되었다. (정률제)-조선전기 지폐로는 저화가 있다.-조세 수취 기준법은 과전법에서 공법으로 바뀌었다.-조선 전기 공납의 폐단으로 방납이 있었다.-역에서 빠지기 위해 다른사람을 대신 세우는 대립제와 포를 내고 빠지는 방군수포제가시행되었다.-대표적인 농서로는 세종 때 농사직설과 성종때 금양잡록이 있다.-경국대전에는 조선의 신분제를 양천제로 규정하였다.-양반은 역 면제의 특권이 있었다.-서얼은 원칙적으로 문과응시가 금지되있다.-조선시대 수군,역졸,봉수군의 신분은 신량역천이었다.-조선시대 유망민을 관리하던 곳은 동서 활인서이다.-조선시대 다섯호를 하나로 묶어 감시하던 시스템은 오가작통제이다.-지방관의 사법권한은 2차 갑오개혁때 재판소 설치를 통해 분리되었다.-서원에서도 절도있는 음주문화를 위해 향음주례를 시행하였다.-유향소를 견제하기 위해 중앙에 경재소를 설치하였다.-정도전은 조선건화성을 건립하였다.-신해통공을 통해 시전상인의 금난전권이 폐지되었다.-효종시기 송시열과 숙종시기 윤휴 등은 북벌론을 주장하였다.-독도는 러일전쟁시기 일본 영토로 강제 편입되었다.-숙종시기 안용복은 일본에 가 독도가 우리 땅임을 알렸다.-숙종시기 백두산 정계비가 설치되었다.-조선후기 영정법은 토지1결당 4~6두를 내는 것이다.-대동법 시행으로 공인이 등장하였다.-균역법 시행으로 재정이 부족해지면서 지주에게 결작이 부과되었다. (영조)-조선후기에는 조세의 금납화와 조세의 전세화 경향이 확대되었다.-밭농사에서 조선 전기에는 농종법, 후기에는 견종법이 유행하였다.-논농사에서 조선 전기에는 직파법, 후기에는 모내기법이 유행하였다.-조선 후기 농서로는 신속의 농가집성, 서유구의 임원경제지가 있다.-지대에서 조선전기는 타조법, 후기에는 도조법이 확산되었다.-조선 후기 공인은 대동법의 실시와 관련이 깊다.-송상은 전국에 지점으로 송방을 두었다.-상평통보는 숙종시기에 주조되어 유통되었다.-선대제는 상인이 수공업자에게 원료나 자본을 미리 대주는 제도이다. ( CEO )-조선후기 화폐유통이 활발해지면서 디플레이션 현상인 전황이 나타났다.-조선후기 광산 경영에 있어 전문경영인인 덕대가 등장하였다.-정조는 서얼 출신들을 규장각 검서관에 기용하였다.-조선후기 시행된 종모법은 일천즉천법을 약화시켰다.-향촌에서 구향과 신향의 대립을 향전이라 한다.-향약이 수령 관장으로 넘어온 시기는 정조시대이다.-삼정이란 전정, 군정, 환곡을 말한다.-세도가문은 비변사를 장악하고 정치를 좌지우지하였다.-동학에서 경전에 해당하는 것은 동경대전이다.-동학에서 찬송가에 해당하는 것은 용담유사이다.-19세기 초 순조시기에 평안도에서 홍경래의 난이 일어났다.-임술농민봉기와 관련해 대책마련을 위해 세운 것이 삼정이정청이다.-실천과 지행합일을 강조하는 유학으로 양명학이 있다.-동학의 교주 최제우는 흥선대원군 집권시기에 처형되었다.-윤휴와 박세당은 6경과 제자백가와 같은 원시유학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인물성동이논쟁은들은 영남만인소로 항의하였다.-5군영은 고종정부에 의해 2영으로 개편되었다.-개항 직후 신식군대 별기군이 창설되었다.-임오군란의 결과 일본과 제물포조약을 체결하였다. (임제 조청)-임오군란의 결과 청과 조-청 상민수륙무역장정을 체결하였다.-임오군란의 결과 독일인 묄렌도르프가 청에 의해 파견되었다.-갑신정변 세력들은 세금문제를 지조법 개혁으로 바꾸고자 하였다.-갑신정변 세력들은 보부상의 특권을 보장해주는 혜상공국 혁파를 주장하였다.-갑신정변 세력들은 호조를 통해 재정을 일원화 하고자 하였다.-갑신정변 이후 청과 일본은 텐진조약을 체결하였다.-동학농민운동의 포접제 조직은 운동 확산에 큰 기여를 하였다.-동학농민운동은 교조신원운동에서 반봉건, 반외세 운동으로 발전하였다.-전주화약이후 농민은 집강소를, 정부는 교정청을 설치하였다.-2차 농민봉기에서는 남북접이 연합하여 우금치로 향하였다.-갑오개혁 직전의 연호는 광서였다.-제1차 갑오개혁을 이끈 중심 부서는 군국기무처였다.-의정부 6조는 의정부 8아문으로 바뀌었다.-재정의 일원화를 탁지아문 중심으로 이루려하였다.-은본위제를 시행하였다.-경국대전에 규정된 신분제 양천제는 갑오개혁을 계기로 폐지되었다.-2차 갑오개혁에서 의정부 8아문은 내각과 7부로 바뀌었다.-지방조직은 8도에서 23부로 바뀌었다.-청-일 전쟁 강화조약으로 시모노세키 조약이 체결되었다. (청의 영토요구)-을미개혁에서 태양력이 채택되었다.-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한 사건을 아관파천이라 한다.-광무개혁의 정신은 구본신참이다.-고종은 군사권 강화를 위해 원수부를 설치하였다.-양전 사업을 통해 토지의 소유권을 밝히는 지계발급을 시행하였다.-독립협회는 서재필의 급진파에서 윤치호계의 온건파 세력으로 넘어간다.-관민공동회에 정부대표로 박정양이 참석한다.-관민공동회에서 헌의6조가 채택되었다.-의회설립운동의 결과 중추원 관제가 선포되었다.-보안회는 일제의 황무지개간 반대운동을 전개하였다.-헌정연구회는 일진회를 비판하였고, 을사조약을 반대하다가 해산되었다.-대한자강회는다.
    한국사능력검정| 2020.12.22| 14페이지| 1,500원| 조회(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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