渴筆 (갈필) 물기가 거의 없는 상태의 붓에 먹을 절제 있게 찍어 사용하는 수묵화의 기법. 갈필의 필획은 한 획 안에서도 끊어진 곳과 이어진 곳이 섞여 있으며 거칠고 힘차게 보이기도 한다. 건필(乾筆) 또는 고필(枯筆)이라고도 하며 습필 또는 윤필과 대비되는 말이다. 원대 이후의 남종화가들이나 우리나라의 18세기 이후의 남종문인화가들의 그림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추사 김정희의 에서 나무와 집을 묘사한 필획들은 갈필을 사용한 좋은 예이다.芥子園畵傳 (개자원화전) 청초(淸初)에 간행된 종합적 화보. 개자원화보(芥子園畵譜)라고도 하며, 왕개,왕시,왕얼 삼형제가 합작으로 편찬한 것이다. 개자원이라는 이름은 명말의 화가 이유방의 를 소장하고 있던 이어의 별장 이름에서 유래한다. 원래는 3집으로 구성된 책이었으나 이후 제4집이 간행되었다. 1집은 1679년 왕개가 이유방이 옛 명화들을 모아 만든 43엽을 증보,편집한 5권으로 이루어졌다.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많은 호응을 얻어 1701년 왕개 형제가 2,3집을 편집하였다. 2집은 난죽매국보 8권이고, 3집은 초충영모화훼보 4권이다. 원래의 은 여기까지를 이른다. 그러나 그후 많은 사람들의 요구에 응해 인물화가 저학주 편 과 염주의 등을 토대로 만든 인물 화보인 제4집이 1818년 출간되어 오늘날의 1,2,3,4집이 형성된 것이다. 각 책은 첫머리에 화론의 요지를 싣고, 그 다음에 화가의 기법, 마지막에는 역대 명인들의 작품을 모사하여 게재하는 구성을 따르고 있다. 화론 부분은 대부분 옛 글을 인용한 것이지만 편찬자 자신들의 의견도 곁들였다. 1888년에는 화가 소훈이 앞의 3집을 충실히 임모하고 4집에 역대 명인들의 등을 보완하여 전 4집으로 된 을 발간하였다. 이 화보는 역대 중국의 어느 화보보다 체계적이고 모든 분야를 망라한 화보로 평가받는다. 조선시대 18세기 이후의 회화, 특히 문인화의 보급에 큰 역할을 하였다. 국역본은 이원섭, 홍석창 공역, 이 있다.*經畵 (경화) 경전의 내용을 압축•묘사한 그림, 변상짝 대어 약간 끌어나 찍은 듯 그어 집합적으로 나타낸다. 산이나 언덕의 능선 주변, 또는 바위의 표면에 촘촘히 가해져 질감과 괴량감의 효과를 내며, 우리나라 15세기 후반의 산수화에서 필획이 개별화되면서 발생하기 시작해서 16세기 전반경에 특히 유행하였다.達磨圖 (달마도) 중국 선종 초조인 보리달마를 소재로 한 선종화. 달마는 남인도의 향지라는 대바라문국의 세번째 왕자로 태어나 어려서 불교에 귀의하여 출가하였는데, 중국에 불교를 전파하라는 스승 반야다라의 명에 따라 3년의 세월을 걸려 배를 타고 캄보디아를 거쳐 527년 9월 1일 중국 광주에 도착하였다. 당시 제왕이었던 양무제를 접견하고 문답을 나누었으나 양나라가 인연처가 아님을 알고 낙양 동남쪽에 위치한 숭산 소림사로 가서, 숭산의 오유봉 정상의 동굴에서 9년 동안 좌선을 했다고 한다. 이로 인하여 후에 사람들이 그를 가리켜 벽관 바라문이라고 불렀으며 그가 9년동안 참선 삼매에 빠졌던 동굴을 일러 달마동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후 선종화승들은 오도 목적의 자기수행의 일환으로 달마의 전기 중 특기할 만한 사건을 주재로 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는데, 한 줄기 갈대잎 우에 몸을 싣고 물 위에 서 있는 달마를 그린 , 달마가 바위 또는 소나무 아래 바위 위에 앉아서 참선하는 모습을 그린 , 달마가 한쪽의 가죽신만 신고 서쪽으로 돌아갔다는 척리서귀의 고사를 도해한 등이 있다. 달마를 주제로 한 그림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13세기에 제작된 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부터 달마도가 그려지기 시작하였는지 알 수 없으나 고려 후기에 선종의 유행으로 인해 다수의 달마도가 그려졌음을 문한상의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현존하는 작품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조선 중기의 화원 김명국이 그린 이다.*圖像學 (도상학) Iconography 회화나 조각 작품의 전체 주제, 또는 그 구성요소들 하나하나가 가지고 있는 문화적, 종교적 의미를 해석하는 미술사 방법론의 한 분야. 이에 더 나아가서 그 주제, 또는 작품 자체가 한 문화권 는 이간의 , 오태소의 같은 백과사전적 규모의 화보들이 편찬되기도 하였으며, 가구사나 오진 같은 문인화가에 의해 화첩 형식의 묵죽보가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고려시대에 사대부화의 전통이 생겼으며 특히 충선왕 때는 연경에 세운 만권당을 통해 이제현이 원의 조맹부, 주던윤 등과 교유한 바 있으므로 그들의 회화 양식이 전해졌을 것이나 그 양상을 알 수 있는 현존 작품은 없다. 다만 문헌을 통해 정지상, 차원부 같은 이들이 묵매를 잘 그렸으며, 말기의 윤삼산, 옥서침이 묵란에 능했고, 석축분이라는 선승이 매, 죽, 난을 모두 잘 그렸다는 기록을 볼 수 있으며 김부식과 이인로, 정서 등이 묵죽으로 이름이 났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조선시대에는 대나무 그림이 도화서 화원 취재의 필수 화목으로 중시되었으며, 15, 16세기에는 청화백자의 표면장식에도 많이 그려질 정도로 매우 애호되는 소재였다. 조선시대 묵매, 묵죽화의 양식적 전통을 수립한 화가로는 이정, 오달제, 어몽룡 등을 들 수 있다. 남종화가 본격적으로 수용되었던 시기인 조선 후기에는 사군자화가 더욱 성행하게 되어 강세황, 신위의 사군자, 김정희의 묵죽, 묵란, 조희룡의 묵매가 유명하며, 문인화가 이인상의 가 대표적인 묵국화로 꼽힌다. 조선 말기에는 사군자가 모두 보편화되어 더욱 많은 화가들이 즐겨 그렸으며 그에 따라 그림 양식도 더욱 다양해졌다. 대표적인 사대부화가로는 묵매, 묵란을 많이 그린 허련, 난초로 유명한 이하응, 그의 양식을 답습한 김응원, 이들과 좀 색다른 묵란을 그린 민영익, 묵죽으로 뛰어났던 김규진 등을 들 수 있다. 한국 사군자화는 다른 화목들과 마찬가지로 한편으로는 중국의 영향을 수용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이를 극복하여 독자적인 양식으로 전개되었다. 각 화가의 개성이 드러난 좋은 작품들이 많이 남아 있으며, 현대에도 동양화의 기법과 정신을 가장 단적으로 표현하는 화목으로 간주되어 계속 그려지고 있다.四詩八景圖 (사시팔경도) 춘,하,추,동 네 계절의 경치를 다시 이른 봄, 성중이 묘사되는 약사불회도, 약사여래의 정토인 동방유리광세계를 묘사한 약사정토변상도 등의 형식이 있다. 삼세불화의 한 폭으로서 중앙 성가여래불회도의 향우측에 봉안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개인소장 약사삼존도(고려), 일본 치샤쿠인 소장 약사불회도(고려), 문정왕후발원 약사여래삼존도(1565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직지사 약사불화(1744년), 통도사 약사불화 (1775년), 쌍계사 약사불화, 흥국사 약사불화, 화엄사 각황전 약사불화, 전등사 약사불화 등이 있다.御製秘藏詮版畵(어제비장전판화) 중국 북송대 태종의 저서인 어제비장전의 내용을 판각한 판화. 미국 하버드대학 포그미술관에 북송판 권제13이, 한국판으로는 일본 난젠지에 권 제13과 성암고서박물관에 권 제6이 남아 있다. 어제비장전은 983년에 제작된 20권본과 996년에 만들어진 30권본이 있는데, 20권본은 전해지지 않으며 중국과 한국에서 편찬된 것은 모두 30권본이다. 30권본의 경우 1~20권까지는 오언사구로 된 1000수의 시로서 대승불교에서 설한 교리의 뜻을 해석하고 있으며, 21~30권까지는 교리의 여러 뜻을 보충적으로 해석하며 성자가 되는 길이 대승불교에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전하고 있는 성암고서박물관 소장의 어제비장전판화는 모두 4폭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승려가 불타무상의 진리를 깨치기 위해 고승의 설법을 열심히 듣고 있는 장면과 법문을 듣고 득도하기 위해 찾아오는 장면, 불도를 증대하고 육정에 사로잡혀 번뇌망상하고 있는 중생을 교화 제도하기 위하여 떠나는 장면, 2.승려가 고승으로부터 설법을 듣는 장면, 보리를 구한 승려가 길 가에서 중생을 교화하고 발길을 돌리게 하는 장면, 5온18계에서 번뇌망상하고 있는 각계 각층의 중생들이 설법을 듣고자 찾아오는 장면, 그 교법을 듣고 돌아가는 장면, 3.초암 밖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단장의 광경, 단장의 앞길에서 찾아오는 중생을 안내해 주는 광경, 4.현자로 여겨지는 이가 생사만을 되풀이하는 이 언덕에서 생사없는 열반의 저점을 가진다. 대표작에는 호암미술관 소장의 이형록, 개인 소장의 강달수 등이 있다. 민화 양식의 책가도는 투시의 규칙이 완전히 무너지고, 책과는 관계가 없는 수복과 다산의 의미가 있는 과일, 채소 등은 물론 족두리, 어항, 빗자루, 담뱃대, 안경 등 각종 물건이 함께 그려졌다. 즉 유교사회의 책을 숭상하는 마음과 토속적인 신앙이 어울려 독특한 회화 세계를 보이며, 구성이나 색채 표현기법에서 현대적인 감각을 보여주는 작품이 많다.靑綠山水 (청록산수) 청색과 녹색을 주로 사용하여 그린 채색 산수화. 산악을 명확한 윤곽선으로 모양을 잡아 멀리 있는 산은 군청색 계통으로, 앞산은 녹청색으로 채색한다. 산정과 산골의 능선에는 녹청색에다 다시 군청을 겹쳐 칠하는 수가 많고 금니를 병용하는 일이 있기 때문에 금벽산수라고도 하며 화려하고 장식성이 강하다. 당대의 이사훈, 이소도 부자에 의해 양식적으로 완성되었으며 요령성 법고에 위치한 10세기 후반으로 편년된 요대 분묘 출토의 산수화에도 그 영향이 보인다. 채색과 공필을 요하는 청록산수는 수묵산수화가 보금된 송대 이후부터는 의고적, 복고적인 화풍으로 생각되엇고, 명말에 전개된 남,북종화의 가름에서 북종화로 구분되어 품격이 낮은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청록산수화를 잘 그린 대표적인 작가로서는 남송의 조백구, 조백숙, 원대의 전선, 명대의 석예, 구영 등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일찍부터 청록산수도가 그려졌을 것으로 추정되나 남아 잇는 예는 거의 조선시대 그림들이다. 조선 중기 이후의 계병에서 행사 장면 이외의 산수도라든지 오봉병, 십장생 등이 이 기법으로 그려진 예들이 있고, 조선시대 선비화가로는 드물게 조속이 를 이 화법으로 그렸다.焦墨 (초묵) 매우 치밀한 짙은 먹색. 중묵이라고도 한다. 적묵과 비슷한 기법이지만 초묵은 비교적 마른 붓으로 여러 번 먹을 칠해 점차로 지은 먹색을 낸다. 그림이 거의 완성된 단계에서 경물에 액센트를 가하기 위하여 사용된다.草本 (초본) 불화를 그릴 때 본이 되는 밑바탕 그림. 초상이라고도 한다T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