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선의 구조논란과 임진왜란 당시 거북선의 실제 역할에 관하여.목차1.거북선의 구조 논란거북선은?거북선의 상부 구조 논란(1)2층 구조설(2)3층 구조설(3)반 3층 구조설거북선의 머리(구두) 역할 논란‘철갑선’ 논란2.거북선의 실제 역할과 그 위력‘난세가 영웅을 만드는가?’, ‘영웅이 난세를 만드는가?’ 이 딜레마는 마치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라는 물음처럼 철학계의 딜레마이다. 하지만 임진왜란만을 놓고 본다면,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는 말이 더 맞는 것 같다. 임진왜란이라는 민족적인 국난의 시기에 불세출의 영웅 이순신이 나왔기 때문이다. 광화문에 있는 이순신 동상만을 보더라도 우리나라에서 이순신 이라는 사람의 위치와 영향력을 알 수 있다. 지난 수백년간 그는 나라를 위해 목숨 받친 수많은 무인들 가운데에서도 그 으뜸을 차지하며 그야말로 충성의 아이콘이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는 그동안 저서에서부터 게임에 이르기 까지 그에 관한 수많은 컨텐츠가 있었으며, 그에 대한 연구는 아직까지도 활발하다. 이러한 이순신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거북선’이다. ‘이순신’하면 ‘거북선’을 떠올리고 ‘거북선’하면 ‘이순신’을 떠올리는 것은 하나의 공식처럼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이순신에 대한 자료와 연구는 풍부한 대 반해 그와 관련된 가장 대표적인 유물인 ‘거북선’에 대한 연구는 아직까지도 상당히 미비하며, 그마저도 우리나라 사람도 아닌 미국인 언더우드가 지난 1934년 자신의 연구 논문 ‘Korean Boat and Ships’에서 기초하여 그 기반을 마련했고, 이러한 연구마저도 약 10여명의 학자들만이 그 시도를 했을 뿐이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5세만 되어도 충분히 떠올릴 인물이 이순신이다. 이런 그에게 항상 따라다니는 키워드인 ‘거북선’에 대한 연구가 미비한 이유는 바로 거북선이 유물로서 전해지지 않으며, 연구에 중심이 되는 ‘임진왜란 당시의 거북선’의 외부, 내부구조와 형태를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사료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대학에서 이 그림의 방사선 탄소연대 측정한 결과, 최고 1640년대에 그려진 그림일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거북선이 실전에 사용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 1592년부터 1598년까지 전개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이 그림은 임진왜란 때 사용된 실제 거북선을 보고 그림 그림일 수도 있고, 그런 그림이 3층 구조를 명확히 하고 있어서 큰 논란이 되었다.↑윤원영씨가 공개한 고서화우리는 거북선이 2층구조이냐 3층구조이냐를 검토하기에 앞서 거북선의 기본 특징과 제원을 알아 볼 필요가 있다.거북선은?거북선은 한자로 구[龜:거북 구]선이라 하는데, 거북선이 처음 기록에 등장하는 때는 태종때의 일이다. 태종 13년, 태종은 임진도에서 거북선과 왜선의 교전 연습을 참관했다. 비록 이 때의 거북선이 이순신 장군이 임란때 사용한 거북선과 같은 형태인지는 알 수 없으나, 거북선을 전투에서 실질적으로 활용한 것은 임진왜란 때이나 거북선의 기원은 태종때로 거슬러 올라감을 알 수 있다. 거북선의 기본 골격은 조선의 주력 전함인 판옥선과 같다고 볼 수 있다. 거북선에 대한 현존하는 기록중 가장 권위 있는 기록인 ‘이충무공 전서’에는 통제영 거북선이 소개되어 있는데 통제영 거북선의 크기와 제원은 판옥선과 동일하다. 승선인원 또한 판옥선과 비슷하거나 약간 적은 정도인데, 조선 숙종대의 수군 승선규정에 의하면 거북선 탑승자는 총 148명이므로 임란시의 거북선 탑승자도 이와 비슷할 것으로 본다. 이처럼 판옥선을 기초로 한 거북선은 판옥선의 상부 갑판위에 거북이 등 모양으로 판자를 대어 아군을 보호하고 그 위에 송곳과 창날을 촘촘히 박아서 적이 아군의 배 위로 기어오르지 못하도록 한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전함이다.거북선의 상부 구조 논란(1)2층 구조설2층 구조설은 거북선의 구조가 판옥선은 갑판을 거북이 등껍질 모양의 판자로 대체하고 노수와 포수가 같은 공간에서 역할을 수행하는 구조였다는 것이다. 2004년 윤원영씨가 거북선 고서화를 공개 하기 이 전에는 다수가 이 2층 구조설에 의지한 것이 사실이 나서 왜군들이 올라올 염려를 할 필요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2층 구조가 임란시 거북선의 구조 일까? 2층 구조가 논란이 되는 이유는 바로 전투에서의 비효율성에 있다 하겠다. 거북선의 길이는 갑판 아래 외판을 기분으로 약 34~35m정도 이고 폭은 가장 넓은 곳이 4.3~4.5m 정도이다. 즉, 최대 가로 4.5m, 세로 35m의 한 공간에 승선인원 148명 중 대부분을 차지 하는 90여명의 노군과 화포장 및 포수 32명이 이 공간에서 한 대 뒤엉켜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주로 노군들만이 임무수행을 하는 전투 이전에는 별 문제가 없을 수 있겠다. 하지만 포군들도 그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전투 중에는 노군과 포수가 뒤엉켜 전투를 수행하기에 많은 애로사항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당시 노의 길이가 약 3.5m 이고 내부에 1.5m, 외부에 2.0m가 배분되는 것으로 볼 때 노를 움직이려면 한 변의 길이가 약 1.5m인 정삼각형의 공간이 필요하다. 혹시라도 전투 수행중에 이 공간에 포수 혹은 화포장이 뒤엉킨 다면 정상적인 거북선이 진로 변경에 큰 차질이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러한 애로사랑은 화포에도 적용된다. 전투 수행중에 화약장전 및 조준, 발사를 빠르게 수행해야 하는 포수 및 화포장들의 긴박함 움직임 속에서 노군들이 방해가 된다면 거북선의 정상적인 임무 수행 특히, 화포에 관해서는 기대하기 힘들다. 이러한 활동면적 상의 제약에도 불구하고 초기 이순신 연구를 수행했던 언더우드가 제창한 2층 구조가 정설이었기 때문에 거북선을 복원함에 있어 (내부를 복원하지는 않았지만) 이를 참고 한 것 같다.(2)3층 구조설거북선의 3층 구조설이 설득력을 갖는 가장 큰 이유는 활동 면적을 극대화 하기 때문이다. 노꾼과 포수가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서로의 움직임으로 인해 노꾼과 포수가 서로 방해를 주지 않고, 독자적인 임무수행이 가능하다. 조선 수군이 왜군처럼 백병전을 주로 수행하는 것이 아니고, 포격전 위주의 전략을 취한 것으로 볼 때 노꾼들이 포수들의 고서화에 있는 거북선에는 묘사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이러한 3층 구조설은 윤원영씨가 공개한 고서화의 거북선 이외에는 다수의 거북선 묘사 그림이 2층으로 묘사된 점(통제영 거북선,좌수영 거북선)으로 볼 때 설득력이 다소 떨어진다. 또한, 3층 구조의 거북선의 경우 층과 층 사이가 완전히 분리되어 있어 포수 혹은 노꾼과 지휘관의 상호 의사소통 및 시야 확보가 취약할 수 있다.(지휘관이 포수에게 의사소통하기 쉬운 위치라면 노꾼과, 노꾼에게 의사소통하기 쉬운 위치라면 포수가 의사소통에 제약을 받을 것임.)(3)반 3층 구조설거북선 반 3층 구조설은 3층구조의 거북선이긴 하되, 활동이 2층에 비해 제한되는 구조의 3층이라는 주장이다. 즉 반 3층 구조설은 반 3층 갑판에 비교적 작은 화포류와 궁수를 배치하고, 대형 화포는 노꾼과 함께 2층에 배치한다는 내용이다. 이 경우, 기존의 2층 구조로 분류하여 해석한 그림들의 경우에도 반 3층 구조설로는 적용 가능하고, 기존 2층 구조의 단점으로 지적되었던 노꾼과 포수들 간의 혼란도 상당 부분 방지할 수 있는 구조상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반3층 구조를 주장하는 연구자들은 그 근거로 ‘이충무공전서’의 통제영 거북선 그림과 함께 조선 후기 거북선의 제원을 기록한 ‘귀선중기’라는 고문서에 거북선 높이가 14(4.2m)척으로 기록된 점을 근거로 든다. 거북선의 하부 선체 높이가 대략 7척 내외이므로 2,3층이 위치한 나머지 상부가 7척(2.1m)내외라고 보면 이 높이에 2층과 3층이 동시에 들어가기는 불가능하므로 완벽한 3층구조가 아닌 반 3층 구조라는 주장이다.결론- 그 동안의 논문과 책, 인터넷 자료만을 보고 학생인 내가 거북선이 2층이다,3층이다,반3층구조이다 확실한 결론을 내는 것은 어불성설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자료를 취합하고 검토하면서 느낀 바는 확실히 2층 구조일 경우 전투력에 방해가 된다는 결론이었다. 또 한, 최근의 연구 동향과 관련해서도, 2층보다는 3층 구조설이 더 설득력있는 주장으로 인정받고 있다.다만, 포의 기능을 하는 용머리라면 ‘통제영 거북선’처럼 몸통에 바로 머리가 바로 이어져 있어야 화포와 함께 포수가 위치하여 화포사격이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단지, 연기를 피우기 위해서라면 ‘좌수영 거북선’처럼 몸통 위로 머리가 솟아 오른 용머리가 더 알맞을 것이다.(2)‘조선전역해전도’의 거북선→하지만 용머리에 대한 것은 그림 (1),(2)를 보다시피 어느 것은 몸통에 붙어 있고 어느 것은 솟아 있기 때문에 그 논란을 잡기가 쉽지 않다. 다만, 이순신이 직접 남긴 기록에 대포를 쏘았다고 하였지만, 정조 때 그린 ‘(3)삼도 수군 조련도’에 유황을 토해내는 거북선이 그려진 점과 이충무공전서에 연기를 피운다고 기록한 점으로 미루어 보아, 임진왜란 당시의 거북선이 대포를 장착한 대 반해, 그 이후의 거북선에는 대포를 제거하고 연기를 피웠을 것이라는 추측은 할 수 있다.←(3)삼도수군조련도‘철갑선’ 논란고 정주영씨가 우리 나라 5백원짜리 지폐를 꺼내 거기 그려진 거북선을 보여주며 “우리는 영16세기에 이미 철갑선을 만들어 외국을 물리쳤소. 비록 쇄국정책으로 시기가 좀 늦어졌지만, 그 잠재력만큼은 충분하다고 생각하오.”라며 설득해 결국 영국 바클래이 은행으로부터 차관 도입에 성공한 스토리는 유명하다. 그렇다면 과연 거북선은 정말 세계최초의 ‘철갑선’이었는가?사실 우리나라의 기록에서는 거북선이 철갑선이라는 기록을 찾아 보기 힘들다. 관련된 기록이라면 ‘이충무공 전서’에 기록된 ‘거북선 등에 쇠못을 꽂았다', ‘거북선 판자 덮개에 거북선 무늬를 그렸다'고 기록된 것이 전부이다. 거북선을 철갑선이라고 최초로 주장한 사람은 미국의 선교사인 호머 헐버트이다 헐버트는 당시 미국의 잡지인 'Harper’s New Monthly Magazine'1899년 6월호에 거북선을 거북배라고 표현하면서 철판으로 감싼 구조라고 명시합니다. 덧붙여 거북선을 '철갑선'의 일종이라고 간주하면서 "한국은 철갑선과 금속 활판 기술을 세계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발명한 국가."라고 소개한다. 또한 1929년없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독후감(Book Review)이 책을 보면서 가끔씩 내가 인터넷을 하다가 드는 생각이 문뜩 떠올랐다. 컴퓨터를 켜면, 나는 자동 반사처럼 인터넷 아이콘을 더블 클릭하고, 나의 홈 화면인 네이버는 다양한 뉴스와 볼거리, 블로그들로 나의 시선을 사로 잡는다. 하지만 막상 그것들을 누르고 기사를 읽고, 블로그를 읽다보면 어느 새 머릿속에서는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왜 인터넷을 켰지?” 혹은 “내가 왜 컴퓨터 켰더라?”. 이처럼 나는 인터넷을 켜고, 그 속에서 무언가 흥미진진한 것을 찾고 그것을 보면서 내가 해야 할 일을 잊곤 한다. 나는 이러한 경험이 나에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저 습관의 일부 정도로만 생각한 정도였다. 하지만, 니콜라스 카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서 인터넷이 아예 우리의 뇌구조를 바꾸고 있다는 무서운 주장을 한다. 사실 나는 어른이 된 이후에는 뇌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한번 어린 시절 형성된 습관이나 인격을 고치기는 너무나 힘들고, 이는 뇌가 성장하면서 점점 변화에 무뎌진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하지만 니콜라스 카는 인간의 뇌는 우리가 사고하는 대로 바뀐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나쁜 습관은 좋은 습관만큼이나 빨리 우리의 뉴런을 파고 들며, 뇌의 뉴런과 시냅스는 우리 사고의 질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 뇌는 생각을 많이 하면 할수록 강력한 CPU로 변해가지만, 생각을 하지 않을수록 다운 그레이드되는 특징이 있다. 이러한 현상은 뇌의 가소성에서 비롯한다. 쉽게 풀어쓰자면 뇌의 가소성이란 뇌의 유연성 정도로 바꾸어 쓸 수 있을 듯하다. 뇌 가소성은 두뇌훈련과 관련하여 신경학적인 근거가 된다. 사실 이는 원래 물리학에서 나온 개념인데, 어떤 물체를 외부에서 일정한 힘을 가하면 그 물체의 형태가 변하고 주어진 힘을 제거한다 할지라도 그 형태가 그대로 유지된다는 것을 말한다. 어른들이 흔히 머리를 안 썼더니 머리가 굳었다라고 표현하는 말이 어쩌면 과학적 근거가 있는 말일지도 모른다.우리 뇌에 심각한 변화를 초래하고 있는 뉴미디어 그리고 인터넷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는 사이트나 기업을 찾으라면 아마 구글을 생각할 것이다. 이 책을 보면서 구글의 역사를 어느정도 파악하게 되었다. 구글의 공동창업자인 래리 페이지는 1994년 가을에 스탠포드 대학에 컴퓨터 공학 박사 과정에 진학했다고 한다. 이 스탠포드 대학을 실리콘 밸리의 전두엽이라고 한다는데, 그만큼 스탠포드 대학이 IT업계의 거물을 많이 배출했고, 영향력이 강하다는 말이다. 그는 박사과정 논문의 소재를 정하다가 학술논문과 웹페이지 링크 사이의 유사성을 발견하고, 검색 엔진 개발에 착수하게 된다. 그 유사성이란, 마치 학술적으로 많이 인용된 논문이 높은 권위와 명성을 가지게 되는 것처럼, 특정 웹페이지가 링크로 많이 걸릴수록 마치 많이 인용된 논문의 그것과 같은 권위를 갖게 된다는 것이었다. 결국 자신의 논문은 포기하게 되는데, 우리로 치면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딴 짓을 하다가 인터넷 역사에 길이 남을 구글이라는 사이트를 만들게 된 것이다. 그는 1996년 백럽이라는 초기 버전의 구글을 만들었다가 1998년 마침내 지금의 구글을 만들기에 이른다. 사실 이 구글이라는 이름이 우리가 익숙해져서 그렇지 처음 들으면 참 요상한 이름이 아닐 수 없다. 특히 한국인에게는 뭔가 좋은 어감이 아니고,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었다. 알고 보니 10의 100제곱을 뜻하는 googol의 변형이라고 한다. 그 의도는 10의 100제곱보다 더 많은 웹상의 무한한 정보를 체계화 하려는 자신의 목표를 강조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저자는 이 구글에 문제를 제기한다. 사실 구글이라는 회사 그리고 사이트에 특정지어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구글이 가지는 인터넷 세계에서의 명성, 대표성이 그로 하여금 구글을 필두로 하는 인터넷 세상을 비판하고 이것이 우리의 뇌에 미치는 변화와 위험성에 대한 경고를 의도한 것 같다. 사실 언뜻 생각해보면, 구글이 무슨 잘못을 했을까 싶다. 실제로 구글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죄를 저지르거나 잘못했다는 주장은 이 책 어디를 찾아봐도 발견할 수 없다. 다만, 의도치 않게 우리 신체의 일부를 바꾸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무서운 점은 그 부분이 바로 ‘뇌’라는 것이다. 구글은 자신의 사이트를 만든 이 후, 계속해서 이를 리뉴얼하면서 발전시키고 있는데, 그 가치의 방향이 되는 사상을 찾으라면 바로 ‘테일러리즘’을 뽑을 수 있다. 테일러는 공장 노동자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연구하여 가장 빠르게 많은 양의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알고리즘을 만들고 이를 논문으로 제출한 사람이다. 책에 의하면, 처음에는 공장 노동자들이 자신들이 로봇처럼 된 것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기도 했지만, 결국 노동의 알고리즘을 이를 적용한 이 후, 공장의 생산력은 크게 증가했다고 한다. 이러한 테일러주의의 핵심은 바로 ‘효율성’이다. 과거 테일러가 공장의 생산력 제고를 위해 사용했던 이 효율성의 개념을 구글 또한 탐닉하고, 이를 위해 테일러가 공장 노동자들을 관찰하듯, 구글 또한 인터넷 이용자들을 분석하고 비교하며 연구했다. 그 연구란 어떻게 보면 별 것 아니면서도 매우 상세하다. 그들은 인터넷 사용자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특정 페이지에 머무는지, 스크린에서 커서를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 무엇을 클릭하고 무엇을 클릭하지 않는지, 이용 후 다른 어떤 사이트로 이동하는지를 연구했고, 심지어 안구의 움직임을 조사하여 연구하기까지 하면서 인터넷 이용자들의 무의식적인 사용 패턴을 연구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방대한 데이터 베이스와 연구자료는 구글 검색 엔진으로 하여금 과학적인 알고리즘과 강력한 인공지능을 장착하도록 도왔다. 이를 통해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리가 찾는 정보를 빠르고 정확하게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읽기의 패러다임 변화를 의미한다. 과거 인쇄 매체를 볼 때의 우리는 아래에서 위로,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읽고, 시선을 집중하여 다른 일 말고 읽기 그 자체에 집중했지만, 구글과 같은 현재 미디어의 읽기 방식은 다 읽을 필요 없이 대충 훑어보면서 원하는 정보만 쏙쏙 뽑도록 우리를 바꾸었다. 이 책에서는 F자 형태의 읽기를 예로 들었는데, 나 또한 인터넷 뉴스를 읽을 때 헤드라인을 잠깐보고 눈을 내리다가 중간을 한 번 본 후, 자극적인 재미가 없으면 다른 기사로 넘어간 적이 많이 있어 공감할 수 있었다. 또한 우리가 음악을 들으면서 검색을 하고 워드 작업을 같이 할 수 있는 이른바 멀티태스킹이 용이해졌다. 더 이상 우리가 책을 읽을 때처럼 온 몸의 정신을 한권의 종이 뭉테기에 집중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종이 뭉테기 즉, 책에서 멀어진 후 우리가 겪는 변화는 꽤나 큰 것 같다. 우리는 편리한 인터페이스나 인터넷 웹페이지의 링크 혹은 하이퍼 텍스트를 통해 빠르고 정확하게 정보를 찾지만, 동시에 높은 정도의 집중력을 발휘해 하는 독서에서 오는 사색의 시간을 잃어 버렸다. 이는 마치 헬스를 하다가 멈추고 매일 누워서 TV보는 효과랄까? 운동을 하다가 안하는 시간이 오래되면 몸의 근육이 다 빠지고, 몸이 허약해지는 것처럼, 우리의 뇌도 점차 사용시간을 줄이고 사색을 하지 않을 때 뇌가 약해진다. 여기서 뇌가 약해진다는 말은 사색을 멈추면서 우리가 조금씩 우리의 뇌의 능력이 읽기에 취약한 현태로 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세상에 구글과 같은 강력한 검색 엔진이 있는데, 우리의 뇌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일할 필요가 없다. 예를 들어 인터넷 웹페이지 링크는 단순히 관련 보조 자료의 위치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자료가 있는 곳으로 우리를 빠르게 데리고 간다. 그야말로 밥을 떠먹여 주는 효과라고 할까? 하지만 이는 하나의 문서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며, 검색도구는 온라인 저작물의 분절화를 초래했고, 이에 따른 집중력의 분산은 학습 성과를 낮추고 이해력도 약화시켰다. 나만 하여도 학년이 지나면 지날수록 오히려 책을 읽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을 느낀다. 물론 학년이 올라가면서 더 어려운 책을 읽는 경우도 있지만, 내가 읽었던 책 중에서 그런 경우는 드물다. 일단 책의 내용에 집중하게 되고 내 머릿속의 시동이 걸리면 책이 읽혀지는 것은 똑같다. 하지만 가면 갈수록 시동이 걸리기 전까지의 예열시간이 길어지는 느낌이다. 주차장에 있던 차에 시동 거는 것과 한 겨울 새벽에 밖에서 대기하던 차의 시동을 거는 것과 같은 차이 정도 되는 것 같다. 나는 문득 이러한 현상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해보았다. 에세이를 쓰는 경우를 생각해보아도, 뭔가 아이디어가 생각나지 않거나 어떤 소스를 찾고 싶을 때, 나는 우선 네이버에 관련 단어를 검색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어떤 단어를 검색해도 관련 단어가 수두룩하게 바로 내 앞에 펼쳐진다. 이렇게 쉽게 찾을 수 있으니 공들여 내가 어떤 자료를 책을 뒤져 찾고, 원하지 않는 부분을 읽을 필요가 없다. 래리 페이지가 의도한 효율성의 측면에서는 분명 혁명적인 발전이지만, 자료를 찾고 다른 부분을 보면서 얻을 수 있는 부수적인 학습 효과는 포기하는 셈이다. 물론 지금의 나는 이 효율성을 더 원하고, 이제는 포기할 수 없는 편리함이지만,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나와 같은 공부를 했거나 비슷한 주제의 레포트를 썼던 사람들보다 내가 과연 지식적으로 더 많은 성취를 했는가에 대한 물음에는 자신이 없다.
태국의 초기 민족국가 형성과 불교일찍이 현재의 태국 영토와 짜오프라야강 유역에는 푸난 왕국과 크메르제국이 있었고, 몬족이 불교로 융성하여 드와라와띠 문명을 이룩하기도 했지만, 이 나라들은 현재의 태국인들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타이족의 나라는 아니었다. 타이족의 경우, 여러 기원설이 있지만 중국 기원설이 가장 유력하다. 중국 기원설에 따르면, 타이족은 원래 중국 남서부 운남 지역에서 난차오국의 지배를 받았는데, 13세 몽골이 전 세계를 제패하는 동안, 난차오국이 멸망하게 되자 타이족들이 현재의 태국 지역으로 대거 이동했다고 한다. 사실 태국이라고 하면, 동남아시아 국가이기에 인종적으로도 다른 동남아 국가와 서로 비슷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여러 자료를 살펴보니 중국에서 건너간 것으로 추측되는 타이족과 다른 동남아시아인들 간의 외모적인 구분이 꽤나 뚜렷하다고 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호기심에 이들 타이족과 다른 동남 아시아인들의 외적 특성을 비교해보았는데, 타이족의 이목구비가 진하고 뚜렷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타이족들은 13세기 전반에 걸쳐 여러 나라를 세웠는데, 이 중 태국 중부 지역에 수코타이 왕국이 대표적이다. 또한 이 수코타이 왕국이 지금 태국인들이 만든 국가의 시발점이 된다고 볼 수 있다. 왕국이라고는 하나 개국 초기 수코타이 왕국은 영토나 인구수로 보아 겨우 도시국가 정도의 면모를 갖춘 정도에 불과했고, 통치의 기반을 이루는 사상이나 종교는 없었다. 그러나 인구가 증가하고 영토도 조금씩 확대되면서 가정을 단위로 하는 온정주의적 통치로는 넓은 영토와 많은 인구를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이에 따라 수코타이 왕국은 불교를 통해 통치 기반과 사상을 확립하려 했다. 처음 불교를 도입한 3대 람캄행 대왕은 스리랑카로부터 테라와다(Theravada) 불교의 고승들을 초빙하여 불교 교리를 지배층과 국민들에게 널리 전파했다. 람캄행 대왕은 초빙한 고승들을 위해 수코타이 외곽에 아란니까 사원을 세우기도 했다. 또한 불교에 능통하고 포교에 힘쓴 승려들에게는 하사금을 주기도 하면서 다양한 방법으로 불교를 융성하고 지원하는데 애를 썼다. 대신 테라와다 불교 승려들은 람캉행 대왕을 불교 법륜에 입각한 법왕인 ‘담마라자(Dhammaraja)’ 혹은 정의로운 왕의 지위에 올려주었다. 이는 수코타이 왕국의 왕이 불교적 정통성을 기반으로 강력한 왕권을 실현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타이족의 민족국가 성립은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에 비해 조금 느린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갖기도 했지만, 불교를 빠르게 받아들여 통치기반을 확립하고 왕권을 강화시킨 것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불교를 받아들이고 이를 통해 왕권을 강화하는 수코타이 왕국의 모습이 조금 낯설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역사를 조금 떠올려보니 이는 결코 낯선 장면이 아니었다. 우선 삼국 중 가장 먼저 불교를 받아들인 고구려는 소수림왕 때 불교를 받아 들여 왕권을 강화했고, 백제는 침류왕 시절, 신라는 법흥왕 시절 불교를 받아들였다. 신라의 경우 하얀 피를 흘리며 순교했다는 이차돈의 순교가 떠오름은 물론이다. 이처럼 불교가 비교적 빠르게 동남아시아와 동북아시아까지 전파되어 국가의 중심 통치 이념이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불교의 ‘업(karma)’이라는 개념에 있었다. 불교에서는 현생의 자신의 모습은 전생의 공덕의 양에 따라 결정된다고 본다. 즉, 자신이 전생에 나쁜 업이 많으면 하찮은 노비나 심지어는 소, 돼지로 태어나고, 공덕이 많아 좋은 업을 많이 쌓으면 현세에 왕으로도 태어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이는 현생의 자신의 모습을 정당화시키는 결과를 낳았고, “왕후 장상의 씨가 따로 있느냐?”라며 반란을 일으킬 자들이 걱정될 통치자로써는 이보다 신통한 사상이 있을까 싶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태어나보니 노예인데, 이것이 내가 알지 못하는 전생의 ‘업’때문이라고 한다면, 억울하지 않을까? 다만, 좋게 해석하면 자신의 처지에서 최선을 다하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한다. 덧붙여 설명하자면, 타이족의 초기 국가 성립시기에 볼 수 있는 종교(불교)와 국가 사이의 일종의 밀월 관계는 기독교나 이슬람교와 같은 다른 종교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이것을 굳이 부정적으로만 볼 것만은 아닌 이유는 이러한 밀월 관계를 통해 국가가 안정됨은 물론이고, 많은 문화재가 탄생하고 우리에게 전해져 내려오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또한 불교 도입 이후 조선시대까지 계속 불교를 통치에 활용했고, 고려는 불교를 국교로도 지정한 바 있다. 이 때 꽃 핀 불교 건축이나 문화는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들이 되었다. 조선이 건국하면서 성리학을 내세우고 불교를 배척하는 일이 없었다면, 우리나라도 태국처럼 어디를 가더라도 불교유적과 문화를 볼 수 있는 그런 나라가 되지 않았을까 라고 상상해본다.람캉행 대왕에 뒤이어 수코타이왕국에서 불교를 진흥시킨 왕은 리타이왕인데, 그는 우주구조를 설명하고 태국 사회의 사회적, 정치적 기구의 정당성을 설명하는 ‘불교우주론’을 썼다고 한다. 정치적 의도가 있었다는 점을 고려해도, 리타이왕의 불교에 대한 이해도가 얼마나 높았는지, 또 얼마나 지대한 관심을 기울였는지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이런 리타이왕을 불교 승려들이 지지하고 이를 통해, 왕권의 정당성이 더욱 강력해졌음은 당연한 일 같다.수코타이 왕국 이 후에 등장한 국가는 아유타야 왕국이다. 아유타야 왕국은 원래 수코타이 왕국의 속국이었으나, 독립을 선언하고 수코타이 왕국에 내분이 일어난 틈을 타 수코타이 왕국을 반대로 속국으로 만들어버리고 이 후, 아유타야왕국의 7대왕인 버롬라차티랏 2세 때 수코타이를 완전히 병합하는데 성공했다. 불교를 주된 통치 이념으로 내세운 수코타이 왕국에 비해, 아유타야 왕국은 힌두교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인도화된 국가의 특성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물론, 불교적 교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아유타야 왕국이 수코타이 왕국을 지배하게 되면서, 통치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불교는 더욱 중요해졌다. 따라서 뜨라이록까낫왕은 수코타이왕국을 통합하는 과정에서 승려와 국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수코타이 왕국의 정신적 구심점이 되는 사원인 '찌나랏 사원'을 복원시키고 그곳에 부처상을 안치시켰다. 또한 일시적으로 불가에 귀의하여 수코타이 왕들의 전례를 따랐고, 부처의 전생 일대기를 다룬 '차독'을 편찬하여 불교 숭상하는 정의로운 왕으로써의 모습을 국민들에게 부각시켰다. 이는 아유타야 왕국이 기존 수코타이 왕국 국민들의 민심을 수습하고, 통치의 정당성을 담보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또한 그 이후의 아유타야 왕들도 불교의 수호자를 자처하며, 승려들에게 보시를 하고 사원을 건축했다. 또한 승려들의 복지를 돕기 위해 승가 행정국을 세우기도 했다. 힌두교 문화의 ‘신왕’ 개념과 불교의 ‘정의로운 왕’의 개념이 어느 정도 혼재하긴 했지만, 불교는 통치의 정당성을 획득하는데 힌두교 문화보다 더 강력하고 효과적으로 작용했고, 이러한 전통은 그 뒤의 태국 국가들에게도 그대로 이어져서 오늘날 까지 이어지고 있다. 내 생각에 태국 국민들에게 타이족의 최초 민족 국가인 수코타이 왕국이나 아유타야 왕국은 자신들의 현재 태국 불교 전통의 초석을 만든 굉장히 중요한 국가일 것이다. 어떻게 보면, 타이족들은 민족 국가의 성립과 동시에 불교를 같이 받아들였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리고 이 시대에 걸쳐 꽃 피운 불교문화가 다음 시대에 이어지고, 그것들이 세계인의 주목을 끌고 있으니 그 자부심 또한 대단하리라 생각한다. 또한 불교가 정신적인 구심점으로 작용하여, 제국주의 시대에 태국(시암)을 동남아시아의 유일한 독립 국가로 유지하는데 일조했고, 현 태국의 정신적인 이념이 되었다는 점에서 초기 타이족 민족국가의 왕권 강화를 위한 불교의 도입은 역사적으로 매우 큰 의의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우리사회는 일베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비난이 아닌 비판적 관점에서 본 ‘일베’ 현상)서론- 너 일베충이니?(일베는 이제 반짝 이슈가 아닌 사회적 현상의 중심에 있다)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혜성처럼 등장한 SNS는 개인이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게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고, 셀레브리티들이 자신의 의견에 동조하는 사람들을 모으고 이를 공론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장을 열었다. SNS가 자신의 이름을 공개한 상태에서 공론의 장을 형성한다면 커뮤니티는 익명성 아래에서 자신을 숨긴채로 자신의 의견을 공유하고 상대방의 의견을 들을 수 있는 장이다. 이들을 통해 이제 대중들은 스스로 Agend building 즉, 담론 형성을 한다. SNS와 커뮤니티는 담론 형성이 활발하고 전파속도도 빠르다. 물론 여기서 형성되는 담론이 모두 건전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동안 게이트키퍼로써의 매스미디어가 ‘agenda를 만들어 놓으면 거기에 대한 의견이나 동조를 내는 수준에 불과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매스미디어가 보도하지 않은 내용도 스스로 찾아서 올리고 여기에 대한 담론을 형성한다. 물론, 각 개인들이 찾아내는 정보를 모두 신뢰할 수는 없지만, 민주주의 사회에서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 있는 또 하나의 통로를 마련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하지만 SNS나 커뮤니티에서는 개인이나 모임의 성향이나 논리와 대응되는 의견이나 댓글이 게제되면 일명 ‘반대’ 폭격을 맞게 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커뮤니티내에서 많이 일어나게 되는다. 바람직하게 진보와 보수의 토론이 이루어지기 보다는 한 쪽의 의견만이 게제되어 고착화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으로 인해, 설사 진보성향을 가진 사람이 보수 커뮤니티를 찾거나, 보수 성향을 가진 사람이 진보커뮤니티를 찾았을 때 사이트 내에서 ‘침묵의 나선 이론’의 효과가 발생할 여지가 크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이는 아직 정치적 스탠스가 명확하지 않고 자신의 의견이 없는 중, 고등학생일 경우 더 크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많은 는 점을 생각하면, 정치성향을 띄는 사이트 중에서는 아고라에 이어 2위의 성적이다. 월 평균 190만명이 일베를 하는데 주위에 일베한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고, ‘너 일베충이니?’라는 말이 과거의 ‘너 빨갱이지?’라는 말보다 더 무서운 질문이 되고, 소위 ‘일베충’은 일종의 사회적 낙인이 되고 있다. 일베는 이제 무시할 수 없는 커뮤니티고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다. 정확하게 비판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일베에 대해 알아야 한다. 또한 그 일베와 반대되는 정치적 성향을 가진 다른 사이트와의 비교를 통해 일베를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는 일베를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본론- 일베가 뭐야? 오유는 또 뭐야?(일베를 중심으로 일베와 오유의 정체성 그리고 논란에 대하여)1.일베의 역사&간략 소개일베의 뿌리는 디시인사이드라고 할 수 있다. 일베가 디시인사이드의 메뉴인 ‘일간 베스트’의 줄임말이기 때문이다. 디시인사이드의 가장 큰 갤러리 중 하나인 코미디 갤러리 일명 코갤의 ‘모에 명수’는 사비로 일베를 세움으로써 코갤의 소위 ‘네임드’ 유저가 되었으나 결국 운영을 포기했다. 이 후, 국내야구 갤러리 출신의 ‘SAD’가 새로운 운영자가 되었다가 그가 입대 한 후 ‘새침부끄’가 운영권을 넘겨받게 된다. 그는 일베의 기능을 확장하였고 이 때부터, SAD가 운영자인 시절부터 내려오던 보수적 코드가 심화되면서 완전한 우익의 이미지로 변화하였다. 하지만 새부도 작년 초 페이퍼컴퍼니에 무려 12억에 일베를 매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확히 일베의 운영자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는 상태이다.2.일베의 아이덴티티/특성주간경향의 전경우 기자는 "일베의 소통방식은 사회가 금기시하는 삼류 문화다. 삼류 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면 '특이하다'는 정도로 생각하고 넘어가면 된다"고 표했다. 이것은 사회인들이 일베를 바라보는 모습을 대변한다. 일베는 그 점유율 부분에서는 메이저이지만, 그 사회적 인식면에서는 마이너 문화를 형성한다고 볼 수 있다. 대 일베 회원들은 대체로 동성애를 혐오하고, 일부 무책임한 한국 여성들을 전체로 확장시켜 '김치녀', '낙태충'이라고 부르며 비하하였는데 이는 여성혐오에 가깝다는 비난을 받는다.3. 일베가 지탄받는 이유현재, 일베는 사회적으로 많은 파급효과를 내고 있으나, 대체로 부정적인 것들이 많다. 이에 따른 비판도 많은데 가장 많이 지탄받는 것을 꼽자면, 바로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부정하는 것이다. 실제로 일베의 대다수 사용자는 이미 역사적 논의가 끝난 광주 민주화 운동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5.18 민주화 운동을 광주폭동이라 부르거나 사태로 낮춰 부르며, 그 당시 희생자들의 사진을 보고 전라도인을 비하하는 ‘홍어’라 불렀고, 일부 회원은 이로 인해 실제로 고소를 당했다. 또한 전두환을 추앙하여, 광주를 땅크로 진압했다라는 뜻으로 ‘전땅크’라 부르기도 한다. 물론 일베 내에서도 5.18의 존엄성을 옹호하는 이가 있지만, 이는 소수 의견이다. 현재는 근거없는 낭설 취급을 받고 있는 북한 간첩 남파설을 따르며, 지만원박사가 주장하는데로 북한 특수군이 먼저 광주시민을 선동했다라는 주장을 받아들이고 있다. 북한에서 실제로 행해지는 5.18 기념 행사를 근거로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끊임없이 격하시키고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일베가 유머 사이트중 최상위권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되고 있다. 이에 대한 연장선상에서 일베는 지역감정을 조장한다는 비판을 꾸준히 받고 있다. 특히, 전라도에 대한 지역 감정 조장은 그 도를 넘어섰다. 이는 일베의 정치적 보수적 성향과 관계가 깊다. 일베회원들은 진보적 성격을 가장 많이 뛰는 지역인 전라도를 향해서 전라민국, 홍어 등으로 비하한다. 다음은 노무현,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비하이다. 이 또한 일베의 성향과 관련이 깊은데, 진보성향으로써, 우리나라 최초의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룬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비하하여 핵볕정책으로 부르고, 노무현 대통령의 자살과 관련하여 ‘운지’라는 표현으로 희화미로 변색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 번은 내가 알던 고등학생이 분명 역사를 배웠을텐데, ‘너를 민주화 시키겠어’라며 친구를 괴롭히는 것을 눈 앞에서 보고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2)학력 인증 대란지난 2012년, 일베에 대한 사회의 비판에 맞선다는 명분 아래, 일베를 이용하는 다양한 사람들 중 고학력자, 전문직 종사자들이 자신의 학력, 직업을 인증한 적이 있다. 실제로 소위 SKY대학부터 시작해서 미국의 아이비리그 대학 학생증 그리고 의사나 변호사 같은 전문직 종사자들의 소위 ‘인증’이 올라왔다. 이들은 이래도 일베가 쓰레기냐며 반박했지만, 일베를 비판하는 이들은 ‘머리만 좋으면 뭐하냐 사상이 쓰레기인데’라며 이들을 공격했고, 일베 회원들은 다시 이들을 ‘정신 승리’라면서 조롱했다.(3)대자보 논란올해 초, 철도 민영화를 둘러싸고 고려대 경영학과 4학년 주현우씨가 ‘안녕하십니까’라는 대자보로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을 때, 일베회원들은 전혀 다른 입장에 섰다. 그들은 정부의 입장에서 ‘철도 민영화를 이미 안한다는데 왠 대자보냐’라는 입장이었다. 또한 주현우씨가 노동당 당원이었다는 점을 인용하면서, 철도민영화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 아니냐라는 비판을 했다.(4)일베 비판 기자 스토킹 사건2012년, 인터넷 뉴스 ‘신문고’의 이계덕 기자가 일베저장소를 비판하는 내용의 기사를 썼다는 이유로 일베저장소 회원들은 그의 신상을 털고 인터넷 곳곳에 그를 사칭하여 전화번호를 남기며 심지어 성인 사이트에 그의 주소를 남기는 등의 행위를 하였다. 이로 인해 이계덕 기자는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한동안 스토킹에 시달렸고, 2014년 현재 일베저장소 회원들을 상대로 200건 이상의 법정 고소를 진행하고 있으며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고 한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2014년 5월 3일 일베저장소에 관한 내용을 다루면서 이 사례를 소개하였고, 이는 대한민국의 누리꾼들 사이에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5)최근 ‘사망자 사진’ 논란2014년 6월 15일 일베 내 게시판에 ‘긴급속보 위법성이 확인되면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일베 운영진은 입장을 밝혔다.5.대비되는 사이트- 오늘의 유머정치성향으로 보았을 때, 보수성향의 일베와 다음의 아고라가 가장 대비되는 사이트라 할 수 있겠으나, 아고라는 그 태생 자체가 정치, 사회문제와 관련된 논의를 위해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유머 커뮤니티의 성격을 지닌 일베와는 다르다. 따라서 유머 커뮤니티이지만, 정치적으로 보았을 때는 일베와 반대되는 오늘의 유머가 일베와 가장 비교하기 좋은 사이트라 할 수 있겠다. 오늘의유머는 1999년 9월 7일 '인포메일'의 부속 사이트로 '메일 매거진'으로서 출발하였다. 2005년 수익상의 문제로 드림위즈와 통합하게 되었으며 이후, 파란으로 서버를 이전하였다가, 포털사이트로부터 독립하여 개인 서버로 운영되고 있다.6.오유 관련 논란(1)통진당 여론 조작 시도 의혹대한민국 제18대 대선이 한창이던 2012년 말, 오유에서 이정희 대통령 후보를 위해 조직적으로 여론 조작을 시도되었다는 의혹이 제기 됐다. 당시 통합진보당 전북도당은 ‘이정희 후보 일일 통신’이라는 제목으로 당원들에게 구체적인 방법과 함께 다음과 같이 지시했다."‘이정희 방송 시원합니다’, ‘심상정의 패권적 엘리트주의’, ‘유시민은 양심도 없나’ 등의 글을 2초만 시간을 내 클릭했다가 바로 창을 닫아 조회수를 높여주길 바랍니다“. 또한 가입 24시간 후 글 추천, 1주일 후 댓글 쓰기가 가능하다는 설명까지 덧 붙였다(2)국정원 여론 조작 사건2013년 6월 검찰은 국정원 직원들이 1977개 정치개입 글을 작성하고 특정 정당 및 후보 게시 글에 대해 1744회에 걸쳐 찬반 클릭하면서 대선·정치 개입 혐의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선거법 위반 및 국정원법 위반으로 기소했다. 검찰은 '종북 세력'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잘못된 판단으로 국정원 직원들에게 직무 범위를 넘어선 정치개입 행위를 지시했고, 이런 행위가 대선과 총선을 앞두고는 선거개입 행위로 변질된 만큼 원세훈이 그 책임을 대신해 져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검밝혔다.
-목차-1한국 지엠(GM)의 사이트 구성-2.사이트 메뉴 분석-[1]한국 지엠 소개1)CEO인사말2)기업현황[①회사개요 ②연혁 ③브랜드소개 ④딜러소개 ⑤찾아오시는 길]3)CI 소개4)GM Family[2]사업장 소개[3]디자인 센터1)introduction2)cover story(the people of center)3)global network[4]인재채용 메뉴1)채용정보[①채용안내 ②채용소식 ③온라인 입사지원 ④지원서 관리 ⑤지원결과 확인]2)상시 채용 등록3)채용 문의[①FAQ ②QnA]4)인사제도5)인사개발6)GM Global Career[5]뉴스3.전체적인 평가1.한국 지엠(GM)의 사이트 구성①한국 지엠 소개, 사업장 소개, design 센터, 인재채용, 뉴스 탭으로 나누어 이용자가 원하는 정보를 얻도록 하였다.②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자동차 디자인 그리고 제작 공정 과정이 등장하는 짧은 동영상이 제시된다.③한국 지엠과 관련 news 게시판④쉐보레, 알페온, 디자인 센터 홈페이지로 연결된다⑤①번에 있는 인재채용 탭의 메뉴와 동일하다. 바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⑥이용약관, 패밀리 사이트 연결, 본사 주소, 고객 상담 전화(평가-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디자인의 홈페이지를 구성하였으며, 취업과 관련하여 기업의 정보 및 뉴스 채용정보를 찾는 이용자들이 쉽게 자신들이 원하는 정보를 찾을 수 있도록 홈페이지를 구성하였다)2.사이트 메뉴 분석[1]한국 지엠 소개1)CEO인사말한국 지엠의 CEO인 세르지오 호샤의 간단한 인사말이 제시되어 있다.2)기업현황①회사개요:글로벌 기업으로서 그리고 한국 기업으로서의 한국 지엠의 정체성을 강조는 설명이 되어 있고, 지엠이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케어 프로그램에 관한 개괄적인 설명을 하고 있다. 회사의 아이덴티티와 브랜드에 대한 설명이 다소 부족한 감이 있다.②연혁:한국 지엠의 브랜드 연혁에 대해 소개한다. 하지만 GM이 대우를 인수한 2002년 지엠대우오토앤테크놀로지 이 후의 연혁에 대해서만 소개하며, 그 전신인 대우자동차,새한자동차,신진공업사에 대한 설명은 없다. 그리고 지엠대우오토앤테크놀로지 이 후의 연혁은 2011년 쉐보레 브랜드 도입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제시하였다.③브랜드소개: 한국 지엠의 두가지 브랜드인 쉐보레와 알페온에 관한 설명을 간단하게 제시하고 있으며, 각각 소개 아래에는 쉐보레와 알페온의 공식사이트가 바로 연결되는 탭이 있다.글로벌 브랜드로써의 지엠과 한국지엠에 대한 소개는 전혀 없는 것이 아쉽다.④딜러소개: 전국을 8개 권역으로 나누고 이를 세분화하여 5개 지역별 총판 체제를 운영하고 있는 한국 지엠과 협력하는 5개 총판 업체에 대한 정보(위치,권역정보,전화번호,홈페이지)가 제시되어 있다.⑤찾아오시는 길:부평의 본사 및 생산 공장 이외에 군산,창원,보령,베트남의 생산공장에 대한 약도와 주소 및 전화번호가 제시되어 있다.3)CI 소개한국 GM의 CI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한국 GM의 CI는 GM의 마크 아래에 O자의 테두리에 태극무늬를 넣은 KOREA가 합쳐진 것이다. GM의 원래 마크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4)GM Family‘한국 GM의 다양한 브랜드를 소개합니다.‘ 라는 부제목을 달고 있지만, 이와 관련없는 한국 지엠의 글로벌 제품 개발,디자인,판매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제목과 매치가 되지 않는 설명이다.[2]사업장 소개주요사업장, 디자인 센터, 생산공장에 대해 상세한 설명고 사진을 제시했다. 특히 생산공장에 관해서는 위치, 규모, 준공년도,생산능력 과 차량에 대해서도 기재하여 이해를 도왔다.[3]디자인 센터1)introduction-디자인 센터 소개:GM 이 보유한 세계 10개의 디자인 스튜디오 중 3번째 규모를 자랑하는 한국지엠의 디자인 센터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design studio tour:디자인 스튜디오의 외부 및 외부 사진을 보여준다-크루즈 디자인 갤러리:크루즈의 차량 내외부 사진 게재-아베오 디자인 갤러리:아베오의 차량 내외부 사진 게재-스파크 디자인 갤러리:스파크의 차량 내외부 사진 게재2)cover story(the people of center)①style팀-exterior design, interior design, color&trim, sculpting으로 나누어진 각 style팀의 소개와 하는 일, 부서 특징에 대해 설명함.②technical design팀-studio engineering, design quality으로 나누어진 각 technical design팀의 소개와 하는 일, 특징에 대해 설명함③digital팀- digital design, visualization 팀이 digital design과 관련하여 각각 어떻게 업무 분담을 하는지 사진과 설명, 동영상을 통해 설명함④business팀-program management, business operation으로 나누어진 business팀이 각 디자의 팀에 협의하고 계획한 디자인을 어떻게 실제 디자인으로 연결시키고 적용하는지를 보여준다.3)global network세계지도에서 한국 이외의 9개의 스튜디오에 대한 위치를 표시하고 각 사이트와 연결시켜준다.[4]인재채용 메뉴⇒인재채용란이 메뉴에 있음에도 불구하고,다시 홈페이지 하단부에 인재채용(채용소식,채용안내,입사지원,지원 결과 확인)의 각 탭으로 바로 들어 갈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 두었다.또한 인재 채용과 관련하여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기업 트위터, 페이스북, 블로그를 연동시켜 놓아 정보를 얻고자 하는 이들의 욕구를 충족시켰다. 실제로 이들 기업의 SNS에는 인턴이나 채용 공고와 함께 인턴 수료식 영상, 직원의 생일파티 영상등 기업의 내부적 상황에 대해 좀 더 깊이 알 수 있는 많은 컨텐츠들을 제공한다.1)채용정보①채용안내채용 방법을 정기 채용과 수시 채용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으며, 수시채용에 지원 할 수 있는 상시채용시스템이 연결되어 있다.또한 온라인 입사지원-서류전형-직무적성검사-1차 면접전형-2차 면접전형-신체검사로 이어지는 정기 채용에 관한 정보를 간단하게 제시하고 있다.정기 채용 지원자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합격여부 확인 및 지원서관리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제시되어 있으며, 문의사항 발생시 연락할 수 있는 담당자들의 이메일이 써있다.②채용소식신입사원,인턴직원,경력직,연구원 모집에 관련한 정보를 보기 쉽게 모아두었고, 지원 현황에 대해 마감/진행중을 색깔이 다르게 표시해놓아 보기 쉬웠다.③온라인 입사지원채용안내 탭의 상시채용시스템과 연결되어 있는 메뉴로 정기채용과 수시채용의 두 지원 모두에서 사용 가능하다.④지원서 관리지원자들이 지원하고 나서 지원서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도록 따로이 탭을 만들어 놓았다.⑤지원결과 확인전형분야와 이름,이메일,비밀번호를 안다면 바로 지원 결과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하였다.2)상시 채용 등록수시 채용과 관련한 정보를 자세하게 제시하고 있는 탭이다.상시채용시스템에서 뽑고 있는 모집 분야와 이에 대한 지원자격 및 합격시 근무하게 될 근무지가 제시 되어 있으며 1)-③과 연결되어 있어, 이 정보를 보고 바로 수시채용 시스템에 지원할 수 있다.3)채용 문의①FAQ지원자들이 많이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모아두었다. 어학점수,복리후생,인턴,채용방법등과 관련된 정보가 제시되어 있으며 꽤 상세하게 적혀져 있으며, 이미 홈페이지에 있는 내용일 경우 질문자가 그 메뉴를 찾아갈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②QnA홈페이지를 찾아보고 FAQ를 보아도 알 수 없는 정보나 궁금한 점을 물어 볼 수 있는 탭이다. 과거 다른 지원자들의 QnA는 확인 할 수 없으며 자신의 질문을 하면, 질문에 대한 답변이 질문할 때 적은 자신의 이메일로 오는 시스템이다. 다른 이들의 QnA도 볼 수 있게끔하고 회사의 내규와 접촉되어 모든 개인들에게 공개하기 힘들 땐 그 질문만 비밀 설정해놓는 것이 지원자들의 중복되는 궁금증 해소에 도움이 되고, 정보의 질적인 측면에서 더 유리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4)인사제도한국지엠의 HR전략, 조직, 직위 및 승진체계, 평가 및 보상 시스템, 임금 ,근무, 복리후생에 관한 정보를 제시해두었다. 특히, 지원자들이 관심이 많은 평가 및 승진시스템과 복리후생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두었다. 다만, 임금에 관해서는 정확한 언급이 없고 직급별 Salary Range가 있다는 원론적인 설명만을 해두어 연봉이나 임금에 관한 궁금증을 풀기에는 부족하다.5)인사개발‘서비스 준비중‘으로 아직 활성화 되지 않은 메뉴이다.6)GM Global Career(http://careers.gm.com)사이트와 연결되며 전세계에 위치한 각 나라의 GM지사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으며, 각 나라의 GM SNS계정과 연동되어 해당 지역의 근무자나 인력과 연락할 수 있도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