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의 역사는 미노스문명, 키클라데스(Cycladic) 문명 그리고 미케네문명을 통해 전개된 청동기, 해양문명인 에게문명이 끝난 이후인 기원전 1100년경부터 고대 로마가 그리스를 점령한 기원전 146년까지의 시간 동안 전개되었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는 현재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국가의 역사와는 조금 다른 성질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고대 그리스가 하나의 통합된 국가 체제를 형성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폴리스’라는 독립된 도시체제의 연합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의 역사는 곧 폴리스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재미있는 사실은 이러한 폴리스들이 ‘고대 그리스 문명’이라는, 서로를 묶어주는 하나의 큰 틀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개성을 과시하듯 다양한 방향으로 발전했고, 이것이 고대 그리스사 전체에 적절한 다채로움을 가미해주었다는 것이다.때문에 수 많은 폴리스들 중 어떠한 한 두 개의 도시만을 통해서는 고대 그리스의 역사 전체를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나,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감으로써 고대 그리스만이 가지는 다채로운 모습의 일부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이러한 생각을 기초로, 나는 그리스 고전 문명의 유산의 원천이자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 중 하나인 아테네를 통하여 고대 그리스 문명 의 일부를 되돌아보고, 나만의 주관으로 그것을 재해석해 보고자 하였다.도시, 지배를 위한 수단폴리스의 역사를 살펴보기 이전에, 먼저 이러한 폴리스라는 도시국가가 어디로부터 기원했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도시의 기원에 관한 가설은 매우 다양한데, 현재 가장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설은 도시가 농업혁명으로 인해 발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인류는 ‘농업’이라는 활동을 학습하면서부터 채집생활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이는 더 이상 생존을 위한 유목생활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을 뜻하였다. 그들은 한 지역에 정착하여 ‘생산활동’을 시작하게 되었고, 이러한 정착생활은 채집생활에 비하여 식자원(食資原)의 취득에 있어 비교적 큰 안정성을 보장했으며 결과적으로는 전체적인 수요량보다 많은 양의 식자원을 생산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것은 다시 말해, 잉여 자원의 축척이 가능해졌다는 것을 의미했다.삶이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짐에 따라 인구는 전과 비할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증가하기 시작했고, 더 많은 노동력은 더 많은 자원의 생산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때문에 당시의 이러한 잉여자원은 곧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으며, 이것의 축척은 곧 남들보다 더욱 우월한 지위를 점할 수 있게 해주는 수단이 되었다. 인간 사회에 있어 계급이라는 하나의 질서가 부여된 것이다.계급이라는 질서를 통해 남들보다 우위를 점하게 된 ‘지배자’들은 그들이 가진 힘을 이용하여 사람들을 제어하고 싶어했고, 이러한 지배를 위한 새로운 질서체제로서 도시라는 것이 인류 사회에 처음 등장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 도시라는 것은 본래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보호를 약속하는 대신에 사람들을 자신의 권력 하에 복종시키고자 했던 지배자들에 의해서 생겨난 체제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그리스의 여러 폴리스들도 이러한 과정에 의하여 성립되었다. 고대인들은 안전을 위하여 폴리스라는 거대한 도시 체제에 스스로를 예속시켰고, 정치 권력은 도시의 중심으로 집중되었다. 더 많은 사람이 모여들수록 더 체계적인 사회 질서가 필요했고, 그것은 그러한 질서체계를 만들어내는 지배자들이 자연스레 더 강력한 권력을 거머쥐게 되도록 하였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사람들은 ‘개인’의 가치를 점차 잊어가기 시작하였으며 스스로를 ‘집단’의 일부로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지배당하는 상황 자체에 적응해버린 것이다.그런 시점에서 본다면 여느 고대 그리스 역사 기술에 빠짐없이 언급될 만큼 중요하게 다뤄지는 폴리스인 아테네는 굉장히 특이한 방향으로 발전해 나갔다고 할 수 있다. 아테네의 역사는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한 사람만을 위한 체제였던 도시가 만민을 위한 커뮤니티로 발전해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본래 아테네는 다른 폴리스들과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고, 그러한 사고는 신분에 의한 위계질서를 통해 잘 드러난다. 아테네의 권력 구조는 ‘바실리우스’라는 지배 계층에 의해 성립되어, 소수의 지배자가 다수를 통제하는 시스템인 귀족 정치 체제로 발전해 나갔다. 이는 집정관(Archon)이라는, 군사와 종교, 민사의 세가지 분야를 통제하는 세 명의 인물들이 임기가 끝난 후에는 귀족정의 핵심 기관인 원로원(Areophagos)으로 편입되어 실권을 계속해서 장악하게 되는 시스템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종교는 이러한 권력구조를 정당화 하면서도 질서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사용될 수 있는 아주 좋은 선전(propaganda)이었다. 그들은 신적인 존재를 통해 도시에 신성함을 부여하였으며, 신들을 때로는 부모로, 때로는 형제로 하는 이야기들을 만들어냄으로써 자기 자신을 신적인 존재들과 가까운 위치에 두어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을 우러러보게 만들었다.이러한 지배계층의 막강한 권력은 도시의 건축물을 통해서도 잘 보여진다. 도시의 중심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는 아크로폴리스는 아테네의 어느 곳에 있던 가장 눈에 띄는 도시의 상징과도 같은 공간이다. 아크로폴리스는 신들을 위한 공간으로, 종교라는 것을 통치의 수단 혹은 질서를 부여하는 체계의 일부로서 해석한다면 그것이 도시 한가운데에서 시민들에게 어떠한 모습으로 보여졌으며, 어떠한 심리적 압도감을 느끼게 하였을지는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도시, 공동체를 위한 공간그럼에도 여타 도시들과는 다른 특징이 있었는데, 그것은 도시라는 집단적인 체제로 편입된 개인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완전히 잊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비록 신분이라는 사회적 계급을 부여 받고 그것에 순응하기는 하였으나 도시국가 형성 이전에 자신들이 누리던 자유와 권리를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았다.아고라는 그러한 시민들의 공간으로써, 이러한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시민들은 이곳에서 물건을 교환 하는 등의 경제활동은 물론, 각종 문화 활동을 즐겼으며 나아가 정치적인 활동을 벌이기도 하였다.이러한 움직임은 이후 솔론의 각종 개혁에 의하여 더욱 활성화 되는데, 이는 민회의 설치와 더불어 시민법정(heliaia), 채무노예의 해방, 토지 소유 상한제의 실시 등의 제도를 통해 보여지게 된다. 이를 통해 이전의 귀족지배 체제를 뒤엎고 새로운 정치체제를 성립하지는 못했지만, 일반 시민들은 이러한 제도를 통해 이전에는 소수에 의해서만 나누어졌던 권력을 형식적으로나마 조금 나누어 갖게 되었으며 아고라는 정치 토론의 장으로써 자리잡게 된다. 그들은 아고라에서 민회를 운영하며 자신들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하였고, 시민법정을 통해 이전에는 권력자들만의 영역이었던 법에도 관여할 수 있게 되었다.민회가 설치된 초반에는 그 권한이 적었으나, 솔론의 개혁 이후로 국가 중대사를 논할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갖게 되었다. 이는 집단적인 문제에 있어 시민들이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민회는 이후 페리클레스의 시대를 거치며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고, 이는 계급적인 차이가 최종결정권에 있어 영향을 주지 않도록 만들었다. 시민은 누구나 동등하게 발언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지게 되었으며, 표결에 있어서도 귀족들과 차이를 두지 않았다.중요한 것은 시민 스스로도 정치 활동에 더욱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전과는 달리 직접적인 정치 과정에 참여할 수 있게 됨으로써 그들은 집단적인 공동체 속에서 나 자신이라는 개인의 결정적 역할에 대해 자각하게 되었다.부족제의 개편은 이러한 민주적인 정치체제의 발달에 더욱 힘을 실어주었다. 클레이스테네스는 혈연에 의하여 묶여있던 부족을 10개의 부족으로 개편하여 그들을 데모스(Demos)라는 행정 구역으로 구성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아테네 사회에서 부족간의 지연은 약해지는 대신, 행정 단위로서의 데모스의 중요성이 커지게 된다. 이는 지연 또는 혈연적 관계에 따라 참주가 등장하는 것을 막고, 시민들로 하여금 정치라는 과정에 언제든지 뛰어들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성숙시키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정치의 양상 또한 이를 기초로 하여 변화하게 되었다. 시민들이 데모스라는 새로운 공동체를 통해 주체적으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이러한 시민들의 의식적 성장에 힘입어 페리클레스 시대에 와서 아테네는 민주주의의 전성기를 맞게 된다. 이때부터 시민들의 정치 참여는 권력자들에게도 더 이상 성가시기만 한 것이나 형식적으로나마 특권을 나누는 척하는 도구가 아니게 되었다. 수당제의 실시 등의 제도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오히려 그들은 시민들이 정치 과정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장려하게 된다. 집단에서의 개개인의 역량에 대해 인지하게 된 것이다.민회는 이제 일년에 40회 이상 개최 될 정도로 국가적 안건의 결정 기구로서 중대한 역할을 하게 되었고, 아테네에서는 비로소 ‘민주정’에 상당히 가까운 모습의 정치 형태가 등장하게 된다.역사, 현재의 거울도시로서의 아테네는 이처럼, 단순히 특이한 고대 도시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비록 노예나 여성은 도시를 구성하는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구성원으로써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못했다는 한계가 존재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단이라는 공동체 속에서 잃어버렸던 개인의 가치를 다시 발견하고 그것을 지키고자 했던 시도는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것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도시와 국가의 성립이 지배자들의 권력적 이해관계에 의해서 탄생하게 되었다는 관점으로 그것을 들여다 보았을 때 그러한 노력은 더욱 빛난다.또한, 이러한 변화가 어떠한 무력의 투쟁으로 인해 급격하게 맞이하게 된 것이 아니라, 충분히 긴 시간 동안 지배자와 피지배자 모두가 사회 구성원으로써 충분한 논의와 합의를 거쳐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발전해 나감으로써 얻은 결과라는 점에서도 그러하다.그리스의 역사 전체에서 수 많은 폴리스들 중 하나에 불과한 아테네가 그리스 전체의 특성을 대변할 수 없음에도 역사적으로 중요하게 다뤄지며, 특별하게 생각되는 이유는, 이처럼 현재까지 중요하게 이어져 내려오는 하나의 정신적 가치의 기원을 보여주기 때문이 아닐까?
좋은 도시란 무엇인가? 사전적 의미의 도시는 인간의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활동의 중심이 되는 장소를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전적 정의만으로는 도시가 갖고 있는 공간적 가치를 풀어내기 어렵다. 도시는 인간의 문명 역사의 시작과 더불어 발생하여, 고대 원시 사회에서부터 현대 첨단 문명에 이르기까지 유구한 시간 동안 이어져 온 인간의 역사를 담아내고 있는 그야말로 역사적인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좋은 도시를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가? 그에 대한 답을 이 보고서를 통해 풀어나가고자 한다.◁ 조선 후기 지방 지도. 도시는 인류와 그 역사를 함께해왔다.― 도시의 기원과 인류의 역사좋은 도시의 의미를 정의하기에 앞서, 도시라는 공간이 어디로부터 기원했는가에 대해 살펴보자. 도시의 기원에 대한 가설은 매우 다양한데, 현재 가장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도시가 4대 문명의 발달과 함께 시작되었다는 설이다. 인류가 채집생활을 벗어나 농경 사회로 진입하게 되면서 인간은 더 이상 생존을 위한 유목 생활로부터 벗어나 한 지역에 정착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러한 농경을 기반으로 한 정착 생활은 채집생활에 비해 식자원(食資原)의 취득에 있어 비교적 큰 안정성을 보장했고, 수요량보다 많은 양의 식자원을 생산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는 다시 말해 잉여 자원의 축적이 가능해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잉여 자원이 발생하면서 인간 사회에서는 이로인한 자원 소유량의 차이가 발생했고, 이는 또다시 계급이라는 인간 사회에 있어 하나의 규칙을 부여하게 하였다. 인구의 증가 또한 잉여자원의 축적에 의해 발생한 당연한 결과 중 하나였다.이와 같이 인류 사회에 있어 유래 없던 급격한 변화는 결국 인간으로 하여금 새로운 사회체계를 구성하게 만들었는데, 도시 또한 인간의 안전해지고자 하는 욕망과 집단 사회의 성립이라는 상황의 결합에 의해 생겨난 체제 중 하나였다. 이처럼 인류 역사상 최초의 도시는 원시 수렵 생활로부터 농경사회로 진입하는 과도기에 생겨나게 된 인류 최초의 체계화 된 집단 공간이라 할 수 있다.그렇다면 도시는 계속 도시로서만 존재했는가? 물론 아니었다. 도시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진화와 쇠퇴를 거듭하며 인류와 그 역사를 함께했다. 집단 생활에 의해 생겨난 도시는 처음에는 성곽으로 둘러싸인, 안전을 위한 폐쇄된 공간에 불과했다. 역설적이게도, 집단 생활에 의해 발생한 도시라는 공간이 집단에 소속감을 부여 함으로서 역으로 집단 생활체제를 더욱 강화시켰고, 이는 또다시 도시가 팽창하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이러한 흐름에 따라 도시의 규모는 점차 커져 결국 아테네, 스파르타와 같은 도시 고대 도시국가에서 여러 개의 도시가 연합하여 만들어진 국가 시스템으로 까지 발전하게 된다.국가라는 시스템이 만들어지면서, 인간은 더 많은, 더 다양한 자원을 얻기 위한 경제 활동을 시작하였고, 그에 따라 도시는 이제 경제 중심지로서의 역할도 수행하게 되었다. 집단 발생한 도시들은 서로 교류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자원의 교류는 도시 시스템의 체계화와 복잡화에 힘을 실어 주었다. 국가의 규모가 커지면 커질 수록도시 또한 팽창하게 되었고, 더 이상 도시라는 체제를 단순히 성곽으로 둘러싸인 공간이라고 정의할 수 없게 되었다. 도시는 이제 국가 시스템의 일부로서, 국가 시스템 운영에 없어서는 안될 하나의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국가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 통치자의 권력이 닿지 않는 영토가 생겨나게 되었고, 그에 따라 행정 수단으로서 도시라는 체제가 이용되게 되었기 때문이다.도시는 또한 인간의 문화 그 자체였다. 집단생활로 인해 발생하는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공동체 내의 규칙의 수립이 불가피했고, 그에 따라 법규 체제와 여러 가지 사회적 규범이 발생하게 되었다. 이러한 규범들은 다른 무리와 ‘우리’를 구분 짓고, 공동체의 화합과 결속을 다지는데 공헌하였다. 도시라는 체계가 집단의 존속을 위한 사회화에까지 관여하게 된 것이다..그렇다면 현대의 도시의 모습은 어떠한가? 현대의 도시는 다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산재해 있다. 또한, 홍콩이나 싱가폴과 같은 국가 그 자체인 도시에서부터 중국과 같이 가늠하기도 어려울 만큼의 규모를 가진 나라에 속한 도시에 이르기 까지 오늘날의 도시는 과거의 도시보다도 더욱 다양한 모습들을 지니게 되었다. 그러나 한가지 공통적인 사실은 도시가 가진 영향력이 과거와는 비할 수 없을 만큼 커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수 많은 도시들이 국가 속에 존재한다는 것은 역으로 말해, 각각의 도시의 존재가 국가를 지탱하는 근원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Hassan Fathy가 그의 저서인 에서 주장했듯, 현대의 도시를 국가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매개로서 간주하는 이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이제 국가를 말할 때, 반드시 도시를 이야기 한다. 현대의 도시는 무수히 많은 국민들을 국가라는 무형의 시스템 속에서 익명의 사람들과 함께 공동체라는 의식을 갖고 살아가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체제다. 도시는 국가의 혼과도 같다.이것은 현대의 도시가 가진 매우 중요한 가치이다. 왜일까? 인터넷의 발달은 많은 불가능해 보였던 것들을 가능케 만들었는데, 특히 거리상의 문제로 일어나는 것들을 손쉽게 해결할 수 있게 해주었다는 점이 그렇다. 사람들은 이제 거리에 구애 받지 않고도 물건을 구매할 수 있게 되었으며 학교를 가지 않고도 교육을 받는다. 과거와 달리 이제 사람들은 집단을 이루지 않고도 삶을 이루는 것이 가능해 진 것이다. 뿐만 아니라 현대의 사회에서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가치는 매우 다원화 되었으며 과거와 달리 그 모든 가치들을 하나의 도시에서 제공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졌다. 이러한 시점에서 국가 시스템이라는 체제가 존립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람들을 한곳에 묶어두기 위한 장치가 필요했다. 그러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현대의 도시라는 것이다. 무형이나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국가’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인식시키기 위해서는 유형의 형태인 도시라는 체계가 반드시 필요했다.그렇다면 다시, 좋은 도시란 무엇인가? 나는 ‘좋은 도시’란 바로 이러한 국가의 정체성을 잘 담아내고 있는 도시일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국가의 상징 그 자체로서 국가적 정체성을 품고 있는, 그 자리에 존재함으로써 도시 내의 사람들을 하나로 통합시키는 체제로서의 도시야말로 좋은 도시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과거와 현재의 가치가 공존하는, 시대를 넘어선 ‘공간’을 이어주는 도시야 말로 최고의 도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Δ 광화문 광장. 우리나라 도시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듯한 느낌을 준다.― 인간과 도시앞서 말한 현대 사회의 특성으로 인해 도시와 인류사회는 이제 불가분의 관계라고 표현할 만큼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 그것은 과연 긍정적인 것일까? 조엘 코트킨은 도시를 인류가 만든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라고 표현하였다. 혹자는 도시로 인해 계급이 발생하였으며 도시 체제가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를 정당화하는 수단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현대 도시에 관한 다양한 견해들 중, 어떤 것이 옳고 그르다고 말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모든 것이 정답일지도 모르고, 어쩌면 모두가 오답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도시가 있었기에 인류 또한 존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한 도시를 좋은 도시로서 만들어 가는 것은 고대부터 이어져 온 인류의 과제이다. 앞으로도 인류가 존재하는 한 도시는 존재할 것이며, 그 역사를 함께 할 것이다.
─ 자족도시란 무엇인가?자족도시란 무엇일까? 기본적으로 ‘자족’이라는 말이 품고 있는 의미가 그렇듯, 자족 도시란 ‘필요한 것을 스스로 충족시킬 수 있는 도시’를 뜻할 것이다. 그러나 ‘필요한 것’은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일까? 그것에 대한 의미를 찾아가는 것이 진정한 자족도시의 정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또, 그렇기 때문에 사회가 변화함에 따라 그 사회가 추구하는 ‘자족도시’의 정의도 마찬가지로 변화하게 될 것이다.19세기 초, 영국은 급속한 도시화로 인해 빚어진, 도시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문제들로 인해 혼란한 사회상황을 겪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러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도시가 가진 다양한 이점들로 인하여 도시에 계속 머무르는 것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으나, 도시를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욕구는 ‘더 나은 도시’라는 이상향을 꿈꾸게 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그는 결국 ‘자족도시’라는 모습으로 구현되었다. 최초의 자족도시는 이렇듯, 도시의 사람들에게 하나의 ‘탈출구’의 의미를 가지는 것이었다.이러한 생각은 이후의 자족도시의 행보에서 명확히 보여진다. 영국에서 자족도시를 최초로 설계한 에베네저 하워드(Ebenezer Howard)는 자족도시의 개념을 도시와 농촌의 이점만을 갖춘 도시로서 정의하였다. 그는 자족도시가 도시와 마찬가지로 주민들에게 많은 일자리와 유희시설을 제공하며, 농촌과 마찬가지로 생활환경이 쾌적하고 식량의 자급자족이 가능한 도시라고 생각하였다. 레차워스, 웰윈과 같은 도시들을 보면 그가 자족도시에서 의도하고자 한 바가 확실히 드러나는데, 그는 런던으로 출퇴근이 가능하나 녹지로 이루어진 도시인 ‘전원도시’를 통해 이러한 자족 도시적 개념을 실제적인 도시설계 과정에 적용하고자 하였다. 이후 그가 정의한 전원도시의 조건들을 살펴보면, 그가 생각한 자족도시란 ‘농촌처럼 질적으로 쾌적한 환경을 지녔으나 대도시와 마찬가지로 사회의 인프라가 주민들이 불편을 겪지 않을 정도로 확충된 도시’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시의 ‘필요’는 일자리와 쾌적한 생활환경이었으며, 하워드는 그것을 런던과 출퇴근 가능한 근교의 시골지역을 개발함으로써 해결했던 것이다.그러나 단순히 ‘도시로부터 가까운’ 시골 지역이 자족도시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물론 아닐 것이다. 대도시 인근의 대부분의 도시들은 오히려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도시’와는 거리가 멀다. 사람들은 그 속에서 불편함을 느끼며, 살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지 않는다. 그것은 그저 불편한 주거지역일 뿐이다. 자족도시의 설립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어떤 ‘필요’를 느끼며,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채워줄 것인가’ 이다. 그것을 채워주지 못한다면 실패한 도시가 될 것이다.우리나라에서 계획되었던 자족도시들은 그러한 도시들의 실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산, 분당을 비롯한 신도시 개발 당시 가장 우선순위에 놓였던 것은 서울 도심에 부족한 주거단지의 확충과 부동산 가격의 저하였다. ‘자족도시’를 인구 분산의 목적으로 계획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계획들은 서울까지의 비교적 긴 통근거리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서울지역에서 경제활동을 하게 됨으로써 결과적으로 실패하게 되었다. 그 속에는 여러 가지 개발 정책의 부조화, 다양한 사회 문제에 대한 고려의 부족 등 다양한 요인이 있었으나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러한 과정 속에서 시민들의 참여가 부족했다는 것이다.주민들의 참여가 없으면 그들이 원하는 ‘필요’가 무엇인지 파악하기 어렵다. 그러한 몰이해는 결국 도시 계획상에서 주민들을 만족시킬 수 없는 방향으로의 발전이 이루어지게 만들었을 것이며, 사람들은 결국 자신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도시 밖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던 것이다.이러한 문제는 자족도시의 성공적인 수립을 방해하는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게 되었는데, 바로 공동체 의식의 부재이다. 사람들은 도심의 일자리와 다양한 인프라를 포기하지 못하게 되었고, 신도시들은 단순한 베드타운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또한 신도시들은 도시에서 살고자 하는 욕구가 들게 만드는 장치를 확충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내부에서 인구의 유동이 클 수 밖에 없었고, 이것은 또다시 공동체 의식을 와해시키는 등 악순환을 반복하게 되는 요인이 되었다.이러한 실패가 증명하듯, 다시 정의하자면 자족도시란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확충 된 도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필요가 무엇인지 파악하기 위해서는 개발 계획의 수립 단계에서 반드시 주민들의 참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주민들의 참여 속에 도시가 개발됨으로써 상주하고 있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도시의 개발 과정에 함께 했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며, 그것은 도시에 대한 애착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그러한 애착은 결국 더 좋은 도시로의 발전을 추구하게 만들 것이며, 도시 전체의 공동체 의식 함양에 도움을 줄 것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도시는 자연스레 주민들의 필요를 만족시키는 ‘자족도시’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 소셜 믹스(Social mix)는 유효한가?소셜 믹스(Social mix)란, 사회의 다양한 면을 서로 뒤섞는 것을 뜻한다. 도시 계획상에서의 좀더 협소한 정의를 내리자면, 서로 다른 사회적 계층의 사람들을 도시에서 혼합적으로 배치하고 분산시킴으로써 계층간의 갈등을 해소하고 서로간의 이해를 도모하여 사회 통합을 추구하고자 하는 일종의 주택 정책적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우리나라에서는 1900년대 이후 공공 임대주택의 대단위 집단 건설로 인한 주거지의 분리로 인해 나타난 다양한 사회적 문제들이 나타나게 되었는데, 공공 임대주택의 거주민들이 일반적인 주거와는 달리 주거의 환경적, 질적 개선을 위한 비용을 투자할만한 경제적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주거 단지의 슬럼화를 초래하고 범죄 발생이 빈번한 우범지역으로 전락하게 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되었다.그에 대한 대안으로써 최근 정부 차원에서 주거 단지에서의 소셜 믹스가 제시되었는데, 사회적 계층 및 경제 지위의 혼합, 인구학적 분류의 혼합, 연령의 혼합, 가구 및 가족 유형의 혼합의 네 가지 분류 중 특히 소득 계층간의 혼합을 주된 목표로 두게 되었다.그러나 이러한 소셜 믹스의 적용을 두고 다양한 논의가 발생하게 되었는데, 과연 소셜 믹스의 적용이 우리 사회에서 적절하다고 판단 될 수 있는가가 논란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소셜믹스를 반대하는 입장의 사람들은, 소셜 믹스가 계층간의 통합과 이해가 아닌 오히려 갈등을 더욱 심화시키는 원인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경제적인 배경에 따른 삶의 방식의 차이로 인해 서로 다른 계층간의 공감대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사람들이 서로 소통하는데 한계가 있으며, 그것이 결국 서로에게 불신과 몰이해를 자각시킬 뿐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이는 나아가 저소득층에게 소외감과 무력감을 제공하는 원인이 될 수 도 있다고 지적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셜 믹스는 필요하다고 보여진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역에 따라 부동산 가격이 상당히 차이 나는데, 이는 다시 말해 거주지가 어디인가가 그 사람의 경제적 지위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를 반대의 입장에서 보면, 사회적 약자에 해당하는 저소득 계층은 자연히 더 위험하고, 더 불편한 지역에서 거주할 수 밖에 없으며, 이는 어떤 지역에 거주한다는 사실이 그 사람이 낮은 사회적 지위를 지니고 있다는 일종의 사회적 낙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올바른 것인가에 대한 질문의 답은 물론 ‘아니다’ 일 것이다. 현재의 이런 사회적 분리 현상을 그대로 두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로 인한 평화는 일시적 평화일 뿐, 영원한 해결책은 될 수 없다. 오히려 분단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서로에 대한 불신과 갈등만 깊어지게 될 것이다.물론 처음에는 제도를 도입함에 있어서 갈등이 발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여태껏 서로 다른 계층간의 교류가 적었으며, 그로 인해 서로에 대한 이해가 어렵게 되었다는 것을 반증한다. 소통의 기회가 있는데 이루어지지 않는 것과, 소통의 기회가 없어서 하지 못하는 것은 크게 다르다. 사람은 녹지를 필요로 하듯,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필요로 한다. 대화를 배제한 이해는 이루어지기 힘들다.때문에 우리는 소통의 장으로써 소셜 믹스를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함께 오픈 스페이스를 교류하고, 주거단지의 질적 향상을 위해 노력하면서 서로 다른 계층은 서로의 삶을 좀 더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며 그것은 서로에 대한 이해와 용인으로 이어지는 첫 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우리나라의 신도시는 왜 영국의 신도시와 달리 자족도시가 되지 못했나?신도시란 영국에서 처음 도입 된 도시 개발 계획 개념으로, 영국 전원도시 및 도시계획 협회의 정의에 따르면 ‘전원도시의 개념으로 건강한 생활과 산업을 위하여 설계된 도시로, 그 규모는 사회 생활의 편익을 완전히 갖출 수 있는 정도로서 그 이상 커서는 안되며 도시의 범위는 농경지로 둘러 쌓이고 토지 전체가 공유되거나 커뮤니티를 위하여 위탁된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해, 일종의 전원도시와 자족도시의 복합 개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이러한 신도시는 여러 가지 목적에 의해서 설계되는데, 우리나라의 일산, 중동, 분당, 평촌, 판교의 다섯 개 신도시는 대도시의 기능을 수행하고 인구의 분산을 유도하여 도시간의 균형 있는 성장을 촉진하기 위하여 계획되었다. 이러한 신도시들은 또한 대규모 주택단지의 개발 계획을 포함함으로써 서울에 부족한 주택을 공급하고자 하였으며, 도시의 인구를 수용하기 위한 상업 및 공업단지를 조성할 것으로 계획되었다.각각의 신도시들은 서로 다른 분야에 초점을 두고서 설계되었는데 분당의 경우에는 정보산업 기능의 발전 및 생활 시설의 첨단화를 목적으로 하고 있었으며, 일산의 경우에는 평화 통일의 배후도시로서 국제 업무와 문화 및 예술기능을 수용하기 위하여 계획되는 등 다양한 기능을 갖춘 복합 도시로서 계획되었다.그러나 영국의 경우와는 달리, 우리나라의 이러한 신도시들은 초기의 계획안과는 다른 방향으로 성장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는 실패와 마찬가지라는 평을 받게 되었다. 그렇다면 왜 우리나라의 신도시 개발 계획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을까? 이는 도시 개발 계획 수립에 있어 다각적인 방면에서의 접근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첫째로, 다른 도시 개발 계획과의 부조화가 그 요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당시에는 신도시 개발과 맞물려 수도권 정비계획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이는 수도권에 과밀한 인구와 산업의 적절한 배치와 분산을 유도하여 수도권을 균형 있게 발전시키고자 하였던 법률이었다. 그 결과, 수도권에서 발생하는 학교, 공장, 업무 및 판매용 건축물을 비롯한 인구 집중 시설과 대규모의 개발 사업의 추진이 규제를 받게 되었는데, 이는 분당을 비롯한 신도시들의 산업시설 입주를 제한하게 되었고, 결국 잉여 자원의 생산력 저하와 일자리의 감소 등으로 인한 신도시들의 자족 기능의 상실이라는 결과로 이어지게 되었다. 또, 도로 정비와 같은 도시 내의 사회 기반 시설의 개발이 신도시 개발 계획과 서로 맞물리며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에 이는 난개발을 초래하기도 하였으며 이후 신도시에 집중된 인구로 인한 교통 체증의 발생 등에 대처하지 못하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두 번째로는, 거대 자본의 투입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사회적 문제에 대해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막대한 개발 비용과 다양한 시설들이 수도권과 서울의 인근에 집중적으로 투자됨에 따라, 수도권은 비 수도권에 비하여 더욱 편리하고 많은 부가 가치 시설을 지닌 매력적인 도시로 성장하게 되었다. 그것은 자연히 타 지역의 사람들이 수도권으로 유입되게 하는 결과를 낳았고, 서울의 인구 분산은 어느 정도 이루어졌으나 결과적으로는 수도권의 인구 밀도가 더욱 높아지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또한, 신도시 개발에 따라 수도권의 부동산 가격이 급격하게 상승하게 되었는데, 그로 인한 토지 투기 등의 문제들의 발생을 억제할 규범이나 제도적 장치의 마련이 이루어지지 못했다.세 번째로는, 계획 개발의 과정에서 시민들의 참여가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점이다. 정부 차원에서 개발을 주도하다 보니, 단순히 주택 보급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실제 시민들이 필요로 했던 상업 시설이나 일자리의 확충 등이 충분히 이루어 질 수 없었다. 이는 결국 주거지와 일터의 분리로 이어지게 되었고, 신도시가 단순한 베드타운으로 전락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또한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받기 위하여 시민들이 서울로 이동함에 따라 심각한 교통체증이 발생하게 되었다.마지막으로, 지속 가능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현재 5개의 신도시는 그 자족 능력을 잃음에 따라 결국에는 베드타운으로 전락하고 말았고, 도시의 유지를 위한 잉여자원의 생산이나 개발 사업 등의 유치가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또한, 인구 밀집에 따른 교통 체증은 대기 오염으로 이어져 각종 환경 문제를 발생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편을 찾지 못한다면 결국 신도시들이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유지되기 어렵다. 따라서 도시가 쇠퇴함에 따라 그곳에 거주하던 인구는 다른 곳으로 이동하게 될 것이고, 도시는 지속되지 못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