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인: 죽음은 일시성, 축소, 중지된 활기, 혹은 잠이다.말할 수 있는 정도의 아동은 죽음을 의식의 중지라기보다는 되돌이킬 수 있거나 일시적이거나 혹은 축소되는 것으로 생각한다.-나기(Naggy)의 약간의 예화적인 인터뷰S.C(4년8개월):“시체를 움직일 수 없어. 왜냐하면 관안에 있기 때문이야”“관 안에 있지 않았다면, 움직일 수 있을까?”S.J(5년10개월):“시체의 눈이 감겼어. 저기에 누워있어. 그래서 죽은 거야”“땅속에 묻으면 10년 후에도 모습은 똑같을까?”“시체는 점점 늙어 갈 거야. 이게 100살이 되면 나무 조각과 똑같이 될 꺼야”T.P(4년10개월):“죽은 사람은 마치 잠자고 있는 것 같아요.땅속에서 잠자는 것과 같아 요.”“사람이 잠을 다는지 혹은 죽었는지 어떻게 아니?”H.G(8년5개월): “죽은 사람은 잠자는 것같이 느낄 수 없어. 내가자면 나는 꿈꾸는 것 외에 느낄 수 없어”“우리가 죽으면 꿈을 꿔요?”L.B(5년6개월): “관 속의 사람위에 모래가 없다면 그 사람이 나올 수 있을까?”“심하게 찔리지 않았다면 그렇게 할 수 있어요. 이것이 그 사람이 살기를 원하는 것을 보여줘요.”T.D(6살9개월): “누나의 대부가 죽었을 때 그는 차가워요. 왜냐하면 그는 죽었기 때문이고 몸 전부가 차가워요.”“그 사람이 차가운 것을 느낄 수 있을까?”아동은 죽음의 몇 단계를 믿는 것 같다. 죽은 사람은 ‘약간만’ 느낄 수 있다.(혹은 꿈꿀 수도 있다)그러나 완전히 죽은 사람은 더 이상 느낄 수 없다.아동이 잠자는 것과 죽음을 동일 시 하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잠자는 상태는 아동이 의식 없는 상태로 되는 가장 가까운 경험이고 이것은 아동이 죽는다는 것이 무엇과 같다는 것을 아는 유일한 단서다.또한 나기가 수집한 인터뷰내용은 아동이 가진 죽음에 대한 지식이 불안정하다 라고 죽음을 무섭고 놀라운 것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땅속에 묻혀서 누워 있다가 나무로 변해버리는 것, 차갑게 느끼는 것, 숨을 쉴 수 없는 것에 대한 생각이다.우리가 이러한 예들에서 본 것과 같이 아동이 만든 고안품들은 진실보다 더 섬뜩한 것이다.죽음에 대한 아동의 믿음은 정말로 무시무시하다는 것은 명백하고 아동은 이로부터 자신의 마음을 편안히 만들기 위해서 길을 찾도록 강요당한다는 것을 밝힌다.?부인: 죽음에 대한 두 가지 근원적 보류아동은 죽음의 위협에 대항하여 두 가지의 자기 방어 기제를 가지고 있다. 이 방어기제는 생에 초기부터 시작된다. 아동은 자신의 개인적 불가침성과 독특한 개인적 궁극적 구원자의 존재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특별성]우리 모두는 처음에 아이로 나중에는 성인으로 우리의 특별함에 대한 비이성적인 신념에 매달리고 있다. 우리 모두의 생에 초기는 격렬한 자기중심적 시기다. 개인의 모든 변덕스러운 마음은 개인적 노력 없이 만족한다. 자기가 특별하다는 것으로 형판이 떠지고, 개인은 이 준비된 신념을 죽음불안에 대항하는 방패로 소환한다.[궁극적 구원자]이 인간중심의 망상과 손을 잡는 것은 궁극적 구원자에 대한 믿음이다.이 신념은 생에 초기에 아동에게 놀라운 부속물이고 아이에게 힘찬 운행자뿐만 아니라 영원한 종이 되는 부모를 통해 기초가 된다.
이 과제를 받고나서 나는 지침을 멍하니 쳐다보아야 했다. 현대 문화속의 성스러움 이라.. 게다가 예시 속에 있는 작품들은 나의 성장 속에 있지 않았던 것이다. 처음에는 고시촌 사람들의 궁극적 신앙에 대하여 써보려고 했으나 역시 나의 경험이 아니기에 쓰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러기에 감수성이 풍부한 여자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자문을 구했다. 그녀가 내 놓은 답안은 바로 ‘사운드 오브 뮤직’ 이었다. 나는 영화를 즐겨 보는 편이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그렇겠지만 나 또한 터미네이터나 아이어맨 같은 스릴러를 좋아한다. 덧붙이자면 최신작들 중에 보는 것을 더더욱 좋아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나의 여자 친구를 그렇지 않다. 오래된 영화를 좋아하고 봤던 영화를 반복해서 보는 것을 좋아하며 취향이 다른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덕분에 2007년 어느 날 나는 어릴 적 티브이에서 보다가 채널을 돌려버려 줄거리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 ‘사운드 오브 뮤직’ 이라는 영화를 다시 보아야 했다. 생각만큼 그렇게 지루하지도 재미없지도 않았지만 감동을 느끼기에는 역부족이었다고 기억한다. 그 영화를 떠올리기엔 기억력이 부족하여 다시 보았다. 내가 학문으로 배우는 종교적인 눈을 나의 안경으로 가지고서 말이다.워낙 유명한 영화라 내용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겠지만 영화 이야기를 조금 해보려고 한다. 영화는 애초부터 시작이 수녀원이었다. 주인공인 마리아는 자연과 음악을 사랑하는 견습 수녀로써 들판에서노래를 부르다가 기도에 지각하기 일쑤였다. 그러한 마리아를 누구는 수녀에 적합하다고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적합하지 않다고 하였다. 그러한 그녀는 음악이 사라진 규칙만이 존재하는 집의 가정교사로 들어가게 되고 그 집에 음악을 찾아주어 화목함을 선물하고 그 집의 아버지와 사랑에 빠진다. 스스로와의 갈등을 느끼고 다시 사랑을 찾고 사랑을 찾고 나서 모두의 행복을 위해 산을 넘는 그러한 내용이다. 그렇게 뮤지컬 형식으로 많은 노래와 아름다운 풍경으로 영화는 시작되고 마무리 된다. 그러한 보통의 시선을 넘어 다시 한 번 종교학적인 눈을 보자면 그들 곁엔 항상 교회가 있었고 하나님이 계셨다.수녀라는 직책과 사랑사이에서 갈등을 하는 마리아에게 큰 수녀님께선 “주님은 한 쪽 문을 닫으실 때 다른 한 쪽 창문을 열어놓으신다.” 라고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전엔 그렇게 큰 장면인지 몰랐지만 다시 보니 뜻 깊은 장면이었고 명대사라고 할 수 있었다. 이 영화에선 사랑과 자신의 역할 사이에서의 갈등이었지만 우리의 생활로 옮겨 보자면 삶은 갈등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학기에 수강하는 심리학 관련 과목에서도 인지불평등 이론이 나오는데, 인간은 항상 불평등을 평등으로 만들려 고하고 그 평등은 다시 불평등을 만들어 그 수레바퀴가 삶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복잡한 삶은 그들은 ‘문’ 이라는 단어로 표현한 것이다. 그렇다 지금 이 순간이 힘들고 어떠한 선택을 내려야 할지 몰라도 모든 빛이 다 꺼져 버린 듯해도 내 주위에 촛불하나 정도는 있는 것이고 모든 문이 닫혀있다고 느낄 때 바로 내 등 뒤에 있는 문이 열려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열어두신 또 다른 문으로 발걸음을 내민 그들은 사랑이라는 열매를 맺었고 행복한 신혼 생활을 즐기었다. 하지만 곧 시련이 닥쳤는데 바로 시대의 비극이라는 태풍이 그들의 가정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힘들 때 마리아는 또 다른 멋진 말을 뱉어낸다. 기도하면서 말이다. 태양이 다시 떠오르길 기다린다며 태양은 항상 떠오른다고 하였다. 그들에게 기도하는 것 노래하는 것은 마음을 바꾸어 놓는 일인 것이다. 아예 대놓고 노래에서 ‘기분 좋아지는 노래’, ‘무서움을 없애는 노래’ 가 있는 것이다. 그녀는 수도원에서 뛰쳐나가 노래를 즐겼지만 그녀가 그 안에 있었기에 그러한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되었고 더 많은 것을 귀 기울여 듣게 될 줄 알았으며 그로인해 사랑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조금 더 영화를 분석해 보자면 그들이 어쩔 수없이 참석 하게 된 노래 대회에서 도망쳐 나온 후 숨게 된 곳은 다름 아닌 수녀원이었다. 그 전에 도망쳐온 마리아에게 큰 수녀님은 주님의 품은 도망처가 아니라고 말했지만 이번에는 달랐던 것이다. 그들은 가족들을 기꺼이 받아주었고 마음으로 숨겨 주었던 것이다. 큰딸의 옛 남자친구만 아니라면 더욱더 안전히 도망갈 수 있었겠지만 어쨌든 그곳은 훌륭한 피난처였다. 수녀원의 깊숙한 곳 그림자 속에서 그들은 안전했고 숨죽여 있었으며 그들을 향한 총 날 들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들을 만나게 해준 곳, 이어준 곳, 보호해준 곳 그곳은 모두 수녀원 이었고 그들을 모두 손 모아 하나님에게 기도한 것이고 하나님의 안식처인 그곳은 그들을 언제나 따뜻하게 맞이해 준 것이다. 또한 그 품안에서 계시던 수녀님들의 자동차 활약 사건은 나에게 웃음을 준 장면 이기도하다. 나치군의 자동차 부품을 손에 들고 “저희는 죄를 지었습니다.” 라고 말하는 두 수녀의 모습이란..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절로 나올 뿐이다. 그렇게 그 영화의 아름다운 풍경과 감미로운 노래들을 만들어주고 지켜준 것. 그것은 그들의 사랑의 마음이기도 하지만 더욱 더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을 생각하는 마음 또는 그들의 안식처(수녀원) 이라고 생각한다.우리 주변에는 항상 갈등이 있고 사랑이 있다. 많은 사람들을 시나 노래로 그것을 표현한다. 혹자는 발라드를 ‘사람들을 슬프게 하면서 돈을 버는 것’ 이라고 말할 정도이니 말이다.하지만 이러한 시나 노래는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인간의 본성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종교적인 관습에서 출발했다고 생각한다. 애니미즘이나 토테미즘 아니면 토속신앙 조금 더 현대에서 살펴보자면 교회의 성가대라고 할 수 있겠다. 그곳에선 삶을 이야기하고 노래하였으며 슬픔을 나누게 하였고 최초의 고민 상담이 이루어 졌다고 할 수 있다. 나는 기독교 신자가 아니기에 내가 보는 고해성사는 일종의 고민상담 인 것 이다. 이렇게 많은 우리의 삶이 종교와 이어진 것이다. 최근의 드라마나 영화 등 많은 영상매채에서 흔한 장면중 하나가 정서의 급격한 변화가 있을 때, 그것이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간에 자신이 믿는 종교적 장소로 가서 기도의 행위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객관적으로 무슨 도움이나 위로나 축하를 해주진 못할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객관적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마음으로 인해 세상의 많은 것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그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게 그들은 자신을 종교 안에 가둬두면서 울타리를 치면서 자신만의 유토피아를 꿈꾸게 되는 것이다. 그곳에서 그들은 세금을 내거나 투표를 해야 한다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는 일 또한 없게 되는 것이다. 단지 그곳을 지키기 위해 자기 전에 조금의 시간만을 투자한다면 그 유토피아는 언제나 나를 위한 공간으로 자리매김 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만은 공간을 가지기 위해 종교를 갖게 되고 또한 원하는 것이다.최근의 티비의 한 프로에서 단기수련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고등학교 자퇴를 하고나서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에 자신을 잡겠다고 온 스무 살의 청년, 사업에 실패하여 온 한 가정의 가장 취업대란에 달려들 기전에 마음을 잡으려고 왔다는 이십대 중반의 여인까지……. 사연은 매우 다양했다. 여러 행사가 진행되었고 고된 일과가 이루어졌다. 팔백 배를 하는가 하면 아침일 찍 일어나 밤늦게 까지 수련을 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 자신의 입맛을 고려하지 않은 밥도 그릇까지 닦아 먹어야 했다. 그렇게 땀을 흘리는 그들은 마음이 좋다고 하였다. 이것 또한 객관적으로 보자면 참으로 바보 같은 짓이다. 그렇게 몸을 고되게 하고 싶다고 공사판에서 벽돌을 나를 수도 있고 추운겨울날 주차요원이 되는 길도 있을 것이다. 효도를 하고 싶다면 그 시간에 공부를 하여 검정고시를 볼 수도 있고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처와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한시라도 빨리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들을 처량하다거나 바보 같다고 하지 않았다. 자신들 또한 그 것을 모르는 듯하였다. 하지만 내가 방금 쓴말은 감히 ‘사실’ 이라고 할 수 없다. 사람들을 사람들 각자의 가치관이 있는 것이고 선호도가 있는 것이고 그들만의 삶의 잣대가 있는 것이다. 나에게 나의 삶이 있듯이 그들에겐 그들의 삶이 있어 나의 잣대를 마음대로 들이댈 수는 없는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삶을 종교의 울타리 안에서 조금 더 성숙하게 하려고 하고 있다는 것이다.
생리심리학2009년 4월 6일 제출사랑의 기적 - Awakenings심리학과 20070576 (3학년)박 선영‘생리 심리학’ 시간에 처음으로 보게 되는 영화가 시작되었다. 과목이 과목인지라 난 무척이나 딱딱한 그런 의학적인 영화 또는 다큐멘터리 종류의 것일 줄 알았다. 그러나 레너드라는 이름을 의자에 세기며, 손이 떨리는 -처음에 내가 파킨슨병인 줄 알았던- 아이가 등장하고 내가 좋아하는 배우 로빈윌리엄스가 나타나면서 나는 굳어있던 자세를 풀고 편안한 마음으로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로빈 윌리엄스는 세이어 박사로 나오는데, 그는 처음에 그 ‘환자’들을 인간적인 접촉을 통해 치료를 하려고 한다. 음악을 들려준다던지, 이름을 불러준다던지, 시선을 맞추는 그러한 일들 말이다. 그 환자들은 ‘숨 쉬는 시체’였다. 움직이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고 팔 하나 피는 것까지 말이다. 하지만 세이어 박사는 그들을 ‘시체’로 간주 하지 않고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화면 조정이 되지 않는 텔레비전을 맞게 해주었더니 환자의 시선이 떨어지고, 다시 조정이 되지 않는 그런 화면이 되었더니 그는 다시 시선을 텔레비전이 고정시켰다. 그렇게 그는 그 환자들이 희미하게나마/이나마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나중에 입원한 할머니의 안경 잡는 장면은 나의 입에서 탄성이 절로 나왔다. 그렇게 그는 ‘던지는’ 행위로 같은 종류의 장애를 가진 환자들을 분류해 나가기 시작하고, 더 깊게 연구했다. 그는 그들이 공통적으로 뇌막염을 앓았던 적이 있다는 것을 알고 더 연구해 가는데. 그 과정에서 내가 처음에 의심했던 파킨슨병의 치료제가 나오게 된다. 물론 그것은 연구 상에, 이론상으로만 치료가 가능한 그런 약이었는데, 그는 그것을 자신의 환자들에게 투여하려고 한다. 그 첫 번째 대상은 레너드 이었다. 그가 약의 양의 갑자기 늘렸을 때는 레너드가 죽진 않을까 하고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모른다. 하지만 영화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고 그를 깨웠다. 그의 말에 세이어 박사가 대답했을 때 그는 그것이 꿈이 아닌 것을 깨달았다고 하였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잃어버린 세월을 잊고서는 자신의 삶을 살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일종의 실험이 성공하고 나서는 그의 병원은 하나의 꿈같은 곳이 되었다. 같은 증상을 가졌던 환자들이 다들 레너드처럼 증상을 회복하며 얼핏 정상인과 비슷한 행동들을 하기 시작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은 레너드처럼 모두 자신의 잃어버린 세월을 그대로 받아드릴 순 없었다. 그는 그렇다 내가 만약 오늘 밤에 잠이 들어 눈을 떴는데 내가 머리가 하얗고 주름이 자글자글한 할머니가 되어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드릴 수 있겠느냐 말이다. 그들은 삶을 만끽했다. 비록 그것이 이루어지는 공간이 창살 없는 감옥이었지만 말이다. 잠시 그 약물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다. 앞서 얘기 했듯이 그것은 파킨슨병의 치료제로 나온 엘도파라는 약이었는데, 레너드 박사는 움직임의 면에서 장애가 있는 것을 그들의 병과 공통점으로 인식하고 그것을 깨워주는 용도로 생각한 것 같다. 그들의 움직임 통제나 파킨슨병의 움직임 장애를 같은 것으로 보고 같은 치료제를 사용해도 되겠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들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고 그가 한여름 밤의 꿈이라고 했을 때는 나도 모르게 눈물을 훔쳐 냈었다. 나는 내심 해피엔딩을 바랬던 것이다. 그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왠지 차라리 그냥 영화라면 했다. 물론 픽션이 있었겠지만 실화라고 생각하니 다신 그녀를 보며 웃음 짓지도 못할, 사랑했던 감정마저 잊고 있을 '살아있는 시체‘가 되어있을 레너드를 생각하면 마음이 시려온다.
The Little Monster을 읽고ADHD라 하면 생각나는 아이가있다. 재작년에 중고등학생 보습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의 일이다. 중학교 2학년 반에 H라는 한 아이가 있었는데 ‘말썽꾸러기’ 그 자체였다.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내가 방금 했던 말을 되묻는 건 기본이 이었으며 지시한 일을 하지 않고 다른 일을 하는 일도 일상다반사 이었다. 고의인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주변의 아이들을 괴롭히고 내가 벌을 주려고 앞으로 나오게 하면 분위기 파악도 하지 못하고 실실 웃으며 말장난까지 하는 그런 ‘말썽꾸러기’ 이었다. 오래계신 선생님들께선 그 아이를 복도에 내보낸 체 수업을 하기도 하셨다. 내가 그곳을 그만둔 작년 12월 즈음엔 그 아인 교실에 있지 않게 되었다. 다른 학부모들의 원성으로 인해 쫓겨나게 된 것이다. 내 머릿속의 ADHD는 그러한 ‘말썽꾸러기’ 인 것이다. 그러기에 이 책을 펴기 전부터 나는 고개를 갸우뚱 했어야 했다. ADHD 대학 교수라고? 대학 교수가 되려면 책상 앞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신기한 노릇이군……. 하며 기울인 고개를 바로하고 책장을 넘기게 되었다.로버트의 인생은 깊은 터널과 같았다. 점점 빛이 희미해지다가 결국은 암흑……. 그 한가운데서 학령기를 보낸 것이다.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더라면 그는 영영 빛을 보지 못했겠지만 그는 저 멀리의 빛을 보았고 힘겹게 앞으로 걸어 나가 동굴을 빠져나와 빛으로 빠져든 것이다.그는 어린 시절에 ‘리틀 몬스터’였다. 부모님을 포함한 가족들을 괴롭혔으니 말이다. 나의 얇은 지식으로 말해보자면 ‘까다로운 기질’의 아이였던 것이다. 별일이 없음에도 끊임없이 보채고 공갈 젓꼭지 하나에도 집안이 떠나가라 우는 그런 아이 말이다. 그에게는 많은 형제들이 있었는데 나는 그것이 나쁜 점으로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는 분명 다른 형제와는 달랐기 때문에 차이 있는 양육을 받아야 했었다. 하지만 그는 다른 형제들과 동등한 양육을 받으며 자란 것이다. 오히려 그가 외동아들이었다면 그의 부모님은 그의 행등을 수용적 태도로 받아드리고 이해하려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기에 그는 자신이 틀린 사람인 줄 알게 된 것이다. 그 당시에는 ADHD 라는 말이 보편화 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가 아동기와 학령기를 암흑 속에서 보내야했던 이유는 그 자신이 아니라 사회적 가족적인 이유에서이다. 그는 잘못한 것이 없다. 설사 그가 또래아이에게 물 로켓을 겨냥해 그 아이가 실명이 될 수도 있었을지 더 라도 그것은 그가 고의적으로 악의를 가지고 양심을 느끼지 않으며 한 행동이 아니기 때문이다.난 그의 어린 시절을 읽으며 그에게 동정심을 느껴질 정도였다. 어쩔 수 없는 성향 때문에 그는 또래 안에 묻혀있어야 할 시기에 외톨이였던 것이다. 그의 자살시도는 이해 못할 행동도 아니었다. 선생님들의 가정통신문을 보면서도 난 가슴을 쳤는데, 그에 대해 쓸 말들을 시험성적이나 수업태도에 관한 것들이 아니라 그의 생활에 관한 것들이어야 했다. 물론 선생님들은 많은 아이들을 통제하느라 바쁘셨을 테지만 그래도 아이의 세상으로 들어가 도우려 하지 않고 방관하며 평가만 하는 것은 옳다고 하지 못할 행동이다. 그래도 그는 참 대단했다.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힘든 학령기를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대학진학을 하였고 그 안에서도 재수강을 일곱 번이나 할지언정 학업을 놓지 않았던 것이다.그의 대학시절 -위스키와 칵테일의 시대-는 꽤나 흥미롭게 읽어 내려갔다. 보통 술을 마시면 흥분되어 정신이 흐트러지기 마련인데 그는 오히려 집중이 잘 됐다고 하지 신기해하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술을 마시며 내재되어있던 암흑을 꺼내게 되었다. 물론 그것이 사과와 위험 등을 불러왔지만 결과적으로 좋은 일이다. 곪은 상처는 내버려두면 썩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런 술을 끊게 된 것 또한 대단한 일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는 주춤 할지언정 주저앉지 않았다. 이건 박수 받아 마땅한 그러한 일인 것이다.그는 특수아동을 상대하며 자기 자신을 통찰하게 되었고 자기 자신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는 그의 발걸음에 가속도가 붙은 일인 셈이다. 뇌파진단과 뇌 영상 촬영- 여기서 그는 자신이 조금 다르다는걸 아는 순간부터 동굴을 거의 끝자락에 다다른 것이다. 그는 미친것도, 멍청한 것도, 게으른 것도, 얼빠진 것도, 그때까지 사람들이 그를 지칭했던 그 어떤 것도 아니라는 사실(p,177)을 알게 된 것이다. 그는 단지 ADHD였던 것이다. 그가 소리치면서 안도감과 기쁨으로 가득찬 눈물을 흘릴 때 내 머릿속엔 꽤나 극적인 배경음악이 펼쳐졌었다.나는 그 순간 그가 어릴 적 획득하지 못한 자아정체감을 획득했다고 생각된다. 진단명이 내려졌다 고해서 그의 인생은 바뀐 게 아니다. 하지만 그는 나 자신을 찾게 된 것이다. 그렇게 어두운 동굴 속에서 빠져나온 그는 이제 자신만의 이정표를 가지고 원하는 길로 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가는 길이 평평하지 못하고 자갈밭이 나오거나 발이 움푹움푹 빠지는 진흙길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는 이제 그것이 자신이 못나서 겪는 문제가 아니라 는걸 알게 되었기에 극복할 수 있다 는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는 자신을 알고, 방법을 찾으며 한걸음 발걸음을 떼었고 지금 있는 곳은 위스콘신 대학의 교수인 것이다. 그는 ADHD를 말할 때 장애라고 하지 않고 차이가 있는 것 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머리가 띵-하는걸. 몇 번 느꼈는데 그중 하나가 아이의 방을 너무 어지른다는 학부모의 말에
(현재 나는 20살이다. 하지만 이 과제를 위해 나를 현재 평균수명인 ‘80세’로 가상하여 글을 쓸 것이다. )2068년.자는 작년 이맘 때 쯤 백억 원을 줘도 바꾸지 못할 청춘. 그 이름만으로 설레는 스무 살 이었다. 이렇게 주름살이 지고. 삶에 대해 모든 것이 이해할만한 아니 어쩌면 세상일 따위에 신경이 안 써지는 80살이 되니, 그 시절이 떠오른다. 또한 나의 배우자가 먼저 간 길을 나도 곧 따라 가야 할 것 같아서 이렇게 타이핑을 한다. 지난 80년 세월동안 나에게는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다. 기억이 딸려서 많은 것을 기억하진 못하지만 그래도 젊은 날의 추억들은 사진첩을 뒤적이며 나를 웃음 짓게 한다. 오늘 그 사진첩을 펼쳐 보려고 한다.중학교 시절 나는 세상의 중심이 나였고, 시간의 주인공은 나였다. 세상의 모든 시련이 나에게만 닥치는 것 같았고,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겠고 이젠 이름마저 희미한 첫사랑이 지나갔다. 그때의 기억은 마치 멀미와도 같아서 울렁거리는 것 같은 기분이다. 아니 조금 더 낭만적으로 말하자면 구름 위를 둥둥 떠다니는 기분 같다고 해야 하나? 아니 조금 더 솔직해 지자면 초경을 할 때의 기분과도 같다는 기분이 든다. 그때의 기분이란……. 속이 메스꺼워 지면서 꿈인 듯싶고 현실인가 같기는 하고, 약간 미숙 거리는? 하지만 나도 이제 여자라는 기분이 들던 그때. 생각해 보니 내 사춘기속의 그것 또한 큰 사건이 되는 것 같다. 그렇게 중학교 시절은 정신적 방황 속에 그리고 나름의 성숙을 동반한 시간이 지난 듯싶다.그렇게 고등학교입학을 했고 입학식 다음날 바로 야자(야간 자율학습)를 하면서 나는 큰 꿈을 꾸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집보단 학교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어떻게 영어단어 하나 더 보다는 몰래 노는 방법을 그렇게 잘 알게 되었던지 그 순간우리는 내적으로 공부를 해야 한다는 갈등을 다 가지고는 있었던가. 같다. 하지만 그렇게 그런 내적 갈등을 가지고 다 같이 저녁시간에 달려가서 칼국수를 먹고 야자 한 시간은 기본으로 자주고, 자율학습이 끈 난후 기숙사에서 밧줄을 내려 야식을 시켜먹고 그렇게 우정은 돈독해져 갔고 뱃살도 늘어났다보다. 그때 생겨난 뱃살을 없애는 대는 내 청춘을 꽤나 소비한 듯하다. 그렇게 고등학교가 지나가고 수능을 보고 대학 원서를 쓸 때는 ‘그때 공부좀할껄 .’ 하는 후회가 만 급하였지만 지금 이라도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고 하면 100% 공부에만 매진할 것 같지는 않다. 나는 일명 명문대는 가지 못하였지만 그것과도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을 소중한 추억을 만들었으니 말이다.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이가 먹어서도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구 다섯 명만 있다면 그것은 성공한 인생이다. 라는 말말이다. 이 말로만 본다면 나는 대단히 투자적인 인생을 살았고 나의 투자는 성공한 셈이다. 하루하루 다들 세상을 등지고 있지만 그렇게 우리는 나중에 다시 만나기로 했다. 슬프긴 하지만 그래도 남은 서로를 위로한다. 그래서 나는 오랜만에 오는 친구의 소식이 이젠 무조건 반갑지 만은 않다. 두려워 진다. 그러기에 점점 더 나가지도 않고 그들의 소식도 궁금해 하지도 않고. 그렇게 잘 살고 있다고 믿고 있다 보다.고등학교 시절 나는 나의 배우자를 만났다. 그는 나의과외 선생이었고 나는 학생이었다. 그 시절 그때의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았더라면 나의 인생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많은 사람을 만났을까? 내가 젊은 시절 많은 사람을, 아니 솔직히 말하면 많은 남자를 만나지 않는다고 돌아가신 어머니가 얼마나 걱정을 하셨는지 모른다. 하지만 나의 남편은 어머니를 실망시켜드리지 않았고, 나를 상처받으며 여러 사람 만나볼 필요 없이 두 번민에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된 것이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을 선택할 것이다. 그 사람은 나와 다르게 운동을 즐겨하였기에 우리는 많은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꽤나 오랜 시간을 함께하였다. 요즘 나의 상태를 보면 그 시절 그 사람의 말대로 운동을 좀 해둘껄 그랬다. 대학을 가고 타지에서 자취 생활을 하면서 나는 내 몸을 너무 학대 하였던 것 같다. 운동은 하지 않고 가끔 먹는 밥은 폭식에 고열량 그리고 밥 먹듯이 거르는 아침식사. 잦은 음주. 그때는 왜 그렇게 내 몸에 신경을 쓰지 못하였는지 모르겠다. 내 젊음에 너무 과도한 확신을 했나보다. 다행히 흡연은 하지를 않았지만 나는 그 당시에 운동을 전혀 하지 않았기에 골다공증이 빨리 왔다. 젊은 시절의 나에게 후회하는 일이 거의 없는데 그중 하나가 운동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방에서 뒹굴 거리기만 좋아했으니 말이다. 방금 언급했지만 나는 그 시절에 대한 후회가 거의 없다. 하지만 이것은 나의 진심이자 거짓말이다. 나는 매우 어릴 적부터 일기써오는것을 즐겼는데 그 시절의 일기를 보면 과거. 아니 바로 어제에 관한 후회투성이들이다. 시험기간에 조금 더 일찍 공부해둘껄 얼굴에난 트러블을 보면서 그때 술 먹지말껄 아침에 지각해고선 어제 컴퓨터 하지 말고 조금만 더 일찍 잘걸. 이런 후회들 말이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은 후회할 거리도 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좀 더 미래를 보았어야만 한다. 그렇기 그 시절에는 그랬다. 낙엽 굴러가는 소리에도 즐거워하고 눈송이 내리는 것에 깔깔거리며 마지막 잎사귀가 떨어지는 캠퍼스에서 홀로 라디오를 즐겨 들었던 나는 그런 아이였다. 그렇게 나는 음악을 즐겼고 깊이는 아니지만 문화를 즐겼다. 지금 나는 영동에 살고 있고 내 자식들은 서울에서 자리 잡고 있지만 나는 내 자식들에게 말한다. “서울은 놀기엔 좋은 곳이야 하지만 살기에 좋은 곳은 아니지”라고 내 그 시절 나의 부모님께서 말씀 하셨는지 말이다. 나는 지금 내 고향에서 그렇게 텃밭을 가꾸고 있다. 이것들을 가꾸는 것은 나에게 꽤나 좋은 취미이다. 이것들은 나에게 구박을 하지도 않고 나에게 이것저것 묻지도 않으며 나쁜 소식을 전해 주지도 않는다. 단지 이것들은 내가 물을 주면 열매를 맺어 나에게 보답하는 좋은. 아주 훌륭한 것들이다. 알고 보면 내가 언제나 이렇게 혼자만의 관계를 즐겼던 것은 아니다. 나는 젊을 적에 꽤나 외향적인 사람이었다. 어느 모임에서는 나의 존재를 알리려 했고 발표는 도맡아 했으며 어느 단체에서든 리더가 되고자 했다. 중. 고. 대학교 시절 반장. 대표 이런 것들은 나를 잘 말해주는 것이다 (자랑이 아니다. 단지 나를 말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나의 마지막 일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후손들이 이것을 보고 욕하지 않았으면 한다. 고인에게 나쁜 말하면 안 된단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나이가 들면서 왠지 모임에 나가는 것을 꺼렸으며 혼자 있길 좋아하고 그 좋아하던 뉴스도 보기 싫어졌다. 하지만 혼자 지내던 것이 그렇게 나쁜 일만은 아니었다. 나는 그렇게 많은 것들을 조용히 즐겼다. 다른 이의 의사를 물어볼 필요도 없이 내가 즐기고 싶은 것을 즐기면 되는 것이었다. 나는 몇 주 전까지 젊었을 때도 몰랐던 고스톱을 배웠다. 그것이 치매에 좋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에 나도 마지막에 자식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떠나고 싶어서였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건방증이 심해졌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특별한 효과를 주었다고 생각한다. 과학적인 효과가 있었는지는 내가 알 수 없지만 그것은 나의 시선을 잡아 둘 수 있었고 그것을 익히면서 그동안 굳어있었던 머리를 쓰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의 취미는 하나 더 생겼다. 그것은 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일기를 쓰게 된 계기가 되기도 한다. 나의 젊은 시절 다이어리를 꺼내어 매일을 추억한 것이다. 그날 무엇을 했는지 무엇을 먹었는지 누구와 함께하였는지, 다행히도 나는 다이어리를 꽤나 세심히 쓰는 편이어서 그이와 함께 추억하기에는 매우 좋은 거리였다. 그 사람이 떠나고 나서도 마치 함께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기 때문에 나의 보물 일 호 라고 할 수 있다. 내가 만약 떠나게 된다면 재산같은것은 싸우지들 말고 알아서 나눠가지거라 나는 가진 게 없기에 싸울 일도 없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내가 나의 물건들을 잘 챙겨놓을테니 나와함께 저세상으로 보내주거라. 그것들은 나의 분신이며 누군가 나의 속내를 볼까봐 약간은 부끄럽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