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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사회의 맹자
    현대사회의 맹자차 례1. ‘맹자’란 어떤 책인가?2. ‘맹자’에 나오는 명구3. 맹자의 리더십4. 맹자의 교육 사상‘맹자’는 어떤 책인가?‘맹자孟子’는 기본 경전인 사서四書 중의 하나로 전국시대 노魯의 사상가 맹가孟軻의 언행을 기록한 책이다. ‘맹자’는 맹자 스스로 쓴 책인가 아니면 문인門人들에 의해 편집된 것인가 하는 것은 이설이 많다. ‘사기 ’에 의하면 “맹자는 추인鄒人이다. 자사子思의 문인에게서 배웠다. 학문이 완성된 뒤 제선왕齊宣王에게 유세遊說하였으나 선왕은 그의 주장을 채택하지 않았다. 양나라로 갔으나 마찬가지였다..... 온 천하가 합종合縱이나 연횡漣橫의 계책에만 힘써 공벌功伐만을 훌륭한 것으로 여겼다. 그런데 이런 전국시대에 맹가는 요, 순, 그리고 하, 은, 주 삼대의 성왕인 우, 탕, 문, 무, 곧 이제삼왕二帝三王의 덕을 말하고 다녔다. 따라서 그의 주장은 시세에 맞지 않았다. 그리하여 정치에서 물러나 제자 만장萬章 등과 함께 시서를 서하고 중니仲尼의 뜻을 저술하여 ‘맹자’ 7편을 저술하였다”라고 되어 있다. 주희는 ‘맹자’ 전편의 필세가 맹자 자신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는 것과, ‘논어’의 각 장구章句가 짧은데 비해 맹자의 장구는 비교적 긴 것이 많기 때문에 이것 역시 자필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러나 예로부터 맹자 자신이 직접 쓴 게 아니라 그 문인들이 편집한 것이라는 설도 꽤 있었는데 당대唐代의 한유, 임신사, 송대의 장열지 등이 이런 견해를 취했다. 이들은 자신을 스스로 ‘맹자’라고 호칭한 점이라든가 노의 평공에게 시호를 쓴 점등을 근거로 제시하여 그의 제자 만장, 공손추 등이 편집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현재에도 학자에 따라 견해가 다르나 이 책이 맹자의 언설, 행실을 충실하게 전한 문헌이라는 데에는 이론이 없다. 조기는 맹자 7편, 즉 양혜왕, 공손추, 등문공, 이루, 만장, 고자, 진심을 각각 상.하로 나누었는데 이로부터 맹자는 14권으로 정착되었다. ‘맹자’가 사서의 하나로 표장된 것은 정주에 의해서 인데 맹자가 연구된 것은 여말 선초에 ‘맹자집주’가 전해지면서이다.‘맹자’에 나오는 명구(名句)1.대장부(大丈夫)富貴不能淫부귀부능음富貴(부귀)도 그의 마음을 어지럽히지 못하며貧賤不能移빈천부능이貧賤(빈천)도 그의 志(지)을 변하게 하지 못하며威武不能屈위무부능굴壓力(압력)과 武力(무력)도 그의 뜻을 꺾지 못하는 사람이런 사람을 大丈夫(대장부)라 말한다.맹자가 말하는 대장부를 잘 표현하고 있는 부분이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재물과 권력에 타협하며 살기가 쉽다. 조금 더 편하게 살기 위해서 우리는 의롭지 못한 일을 쉽게 행한다. 그러나 맹자에서 나오는 이 문구 생각해 볼 때 우리가 지향하는 삶이 대장부의 삶이라면 재물과 권세에 휘둘리지 않는 뜻을 세우고 그 뜻에 따라 어떤 시련이 와도 그 시련을 이겨내면서 뜻을 꺾지 않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2.불의(不意)한 것은 당장 그만둬야...如知其非義 斯速已矣 何待來年여지기비의 사속이의 하대내년만약 그 일이 의롭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면 속히 그만둬야지 왜 내년까지 기다리겠다는 거요? (등공문 하)송나라 대부인 대영지가 맹자에게 물었다.“세금을 10분의 1만 받고 관소와 시장에서 거두는 세금을 폐지하려고 하는데 지금 당장 시행할 수는 없는 형편입니다. 세금을 우선 경감했다가 내년이 된 뒤부터 깨끗이 없애려고 하는데 어떻습니까?”맹자가 대답했다.“지금 여기 한 사람이 그의 이웃집 닭을 훔쳐왔는데, 어떤 사람이 그에게, ‘그것은 군자의 도가 아니라’ 라고 일러주자 ‘그러면 우선 줄이어 한 달에 닭 한 마리씩을 훔치다가 내년이 된 뒤부터 훔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했다 합시다”그런 다음 맹자가 한 말이 표제어의 말이다. 인정을 펴는 데는 가렴주구를 하지 않는 것이 첫째이기에 맹자는 송나라 대부 대영지에게 세금 중 당장 폐지할 것은 폐지하라고 일러주었던 것인데 대영지는 난색을 표하며 1년간 유보하겠다는 것이다. 맹자는 닭도둑의 교묘한 비유 이야기로 그것을 나무라고 있다.옳지 않은 것을 고치고 선을 행하는 것은 즉시로 해야 한다.들이 나서서 일을 해주어 며칠 못가서 완성되었네. 짓기 시작할 적에 서두르지 말라고 하였으나, 백성들은 자식들처럼 몰려와서 일을 하였네.”주나라 문왕이 고대를 만들 때 백성들은 자진하여 나왔고 열심히 즐겁게 일을 해서 쉽사리 공사를 끝냈다는 것이다. 그것은 문왕이 인의의 정사를 폈기 때문이며 그랬기에 이 고대를 영대라 불렀다는 것이다.백성과 호흡을 같이 하고 영대에서 뛰어노는 온갖 짐승들을 구경하되 백성들과 함께 구경하며 즐기는 것, 이것이 임금으로서 백성을 사랑하는 진정한 의미의 인의라는 것이다. 이처럼 인의의 정치를 할 때 백성들은 스스로 따라오는데 그 결과 나라는 평안해지고 임금은 그 기반이 튼튼해진다고 맹자는 설명했던 것이다. 이런 임금이라야 누대(樓臺)며 정원이며 만들 지격이 있고 즐길 자격도 있다는 것이다.대학에 막 들어가서 음주문화에 정신없이 빠져 생활의 리듬을 잃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맹자의 말에 비추어 볼 때 옳지 못함을 알 수 있다. 적어도 학생으로서의 기본적으로 할 일은 한 후에 술에 빠지는 사람보다 술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맹자의 리더십우리사회에서 리더십에 관한 몇 권의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리더십에 관한 다양한 자료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사회 전반에 걸쳐 리더십이라는 말이 이렇게 부각 되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어떤 계층의 아래에 속해있거나 또는 사람들을 이끌어 나가야 하는 자리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맹자의 시각 이라는 전제하에서 우리에게 리더십 함양을 위해 필요한 자세에 대해 생각해보자.1. 호연지기俄知言 俄善養吾浩然之氣아지언 아선양오호연지기나는 남의 말을 잘 이해하고 또 나의 호연지기를 잘 기르는 것일세.(공손추 상)맹자와 그의 제자 공손추와의 대화 속에 나오는 말이다.“감히 여쭙겠습니다만 선생님께서는 무엇에 뛰어나십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호연지기란 지극히 크고 올곧은 기개, 즉 사람이 도덕성을 확신하고 이를 실천하려는 의욕에 불탈 때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기운을 말한다.지도자가 올바른 마음가짐을 가지고 않으면 치욕을 당하게 된다.(공손추 상)왕도 정치란 백성을 힘과 권위로써 다스리려 하는 것이 아니라 인과 의를 조화 시킨 덕으로 다스리는 것을 말한다. 마찬가지로 이것을 리더십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도 사람을 지휘 하는 입장에 서있는 사람은 강압적인 명령과 무조건 복종을 바라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것은 옳지 않다. 우리도 흔히 부모님 또는 학교 선생님들의 강압적인 명령에 의해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할 때가 많다. 그렇게 하는 일이 완벽하고 잘될 리가 없을 것이며 반항하는 마음까지 생기기도 한다.어떠한 모임을 이끌어 나가야 할 자리에 있는 사람은 그 모임을 이끌어 나갈 때 힘과 권위가 아닌 인과 의를 조화시킨 덕으로 이끌어 나갈 때 모임의 구성원으로부터 깊은 신임을 받게 되고 모임을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3.민본주의적 혁명사상得其民, 斯得天下矣득기민, 사득천하의백성을 얻는 것이 바로 천하를 얻는 것이다.(이루 상)民爲貴, 社稷次之, 君爲輕.민위귀, 사직차지, 군위경.백성이 가장 귀중하고, 사직이 그 다음이고 임금은 가벼운 것이다.(진심 하)맹자는 백성이 가장 귀하고, 국가가 그 다음이며, 군주는 가볍다고 보았는데, 만일 군주가 훌륭한 군주가 될 수 있는 덕성을 갖추고 있지 못하면, 백성들은 혁명을 일으킬 수 있는 도덕적 권리를 갖고 있다고 하였다. 맹자는 지배층이 아닌 피지배층인 백성이 가장 귀하다고 말했다. 여기서 우리는 참된 지도자가 꼭 갖춰야 할 점을 찾을 수 있다. 바로 자신의 지도 아래 있는 사람을 가장 귀하고 높이 생각한다는 것이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생각하고 배려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나 반대로 윗사람이 자신보다 아래에 있는 사람을 생각하고 배려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이 시대를 앞서 나가는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맹자의 사상처럼 지도를 받게 되는 사람을 높이 생각하는 정신이 꼭 필요할 것이다.맹자의 교육사상1.교육목표맹자는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데 바탕을 두고, 본성을 계발하여 도덕적으로 훌륭한 실천인을 양성함을 구장은 맹자에게 있어서도 예외가 아니였다. J.J.Rousseau가 “식물은 재배에 의하여 생육되고, 인간은 교육에 의하여 사람이 된다”고 말한 바와 같이 비록 그 교육의 내용이 같지는 않았지만 인간의 본성을 선한 것이기 때문에 악에 물들지 않고 본성에 따라서 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교육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주장한 점에서 맹자와 루소는 인성론에서뿐만 아니라 교육중시론에 있어서도 일치된 견해를 갖고 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맹자는 태교胎敎에서부터, 삼천지교三遷之敎와, 그밖에 여러 가지 교육을 그의 어머니로부터 받고 자랐다. 그리하여 그는 어머니의 지극한 교육적 노고에 의해서 자신의 인격과 학문이 이루어졌다고 여겨, 항시 공경과 감사를 다 했던 것이다. 그는 요순堯舜조차도 범인凡人과 다를 바 없으며, 자기의 수양에 따라서 인간은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지만. 반면 수양이 부족하면 악인이 된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맹자는 성인 또는 군자가 되기 위해서는 요순堯?舜의 「천天에 대한 시련」처럼 감내하기 어려운 고난을 극복해야 되며, 그러한 시련을 통해 단련 수양된 인간이 되는 것이라고 하여, 도덕적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어렵고 고된 단련교육이 절대로 필요하다고 하였다.3.교육자의 자세맹자는 교육자의 자세로서 교육적 자신이 수양된 군자가 되어야 할 것을 강조하였다. 밝은 덕으로 천하를 밝히고자 하면 자신부터 해야 하는 바와 같이 “천하의 근본은 나라에 있고, 나라의 근본은 가정에 있고, 가정의 근본은 자기 자신에 있다.”라고 하여 교육자는 만인의 존경을 받을 수 있도록 자심의 도덕적 완성을 이룩해야 된다고 하였으며, 또한 도덕적으로 감화를 줄 수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대인은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하여 만물까지도 올바르게 하는 자” 라고 하였다. 이는 루소가 “아이의 교사가 되려면 먼저 자기의 교사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 하고 한 바와 같이 교육자는 스스로 자기완성을 해야 함을 역설한 것이다.4.지도 방법맹자는 교육의 지도방법으로 교육자의 자세론에서 거론겠다.
    인문/어학| 2014.12.26| 8페이지| 1,000원| 조회(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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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의 정한론
    日本의 征韓論하나 - 서론요즘 독도 영유권 문제와 역사 교과서 문제로 일본과의 관계가 매우 나빠졌다. 그 이유는 일본이 과거 한반도에 대한 침략 당시 주장한 독도에 대한 영유권에 대하여 억지 주장을 펼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국의 역사 교과서에도 자신들의 침략 전쟁과 주변국에 피해에 대해 왜곡된 기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억지 주장을 펼치는 일본의 우익들의 뿌리는 19세기 정한론 주창세력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 우리는 19세기 일본의 한국 침략론인 정한론에 대하여 다시 한번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때문에 우리는 정한론의 배경과 발생 그리고 전개 과정과 결과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다.둘 - 본론1. 정한론의 배경쇄국을 고수했던 에도 막부도 조선과 우호관계는 계속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메이지 유신이 시작되면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정한론이 표출되어 조선 침략을 정당화하기 시작했다. 정권 다툼에서 패한 정한론은 지방으로 확산되어 자유 민권 운동과 함께 민중들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한편 정부도 권력 투쟁에서는 정한론을 배제시켰지만, 실제로는 강화도 사건(운요호 사건)을 일으켜 조선 침략의 발판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메이지 유신 정부의 중심인물인 기도 다카요시(木戶孝允)은 메이지 정부가 탄생했을 때, ‘무사와 농민 모두 정부에 강한 불만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서라도 조선을 침략해야 한다.“라고 이와쿠라 도모미와 산죠 사네토미를 설득한 정한론자였다.1868년 10월, 정부는 에도 막부가 멸망하고 메이지 정부가 성립하였다고 조선 정부에 소식을 전했다. 이때 기도는 메이지 천황의 지위를 국왕보다 상위에 두고자 했다. 예를 들면, 이때 국서에 메이지 천황을 ’황제‘라고 칭하고, 조선국왕을 그 아래인 ’왕‘이라고 했다. 그래서 이 문서를 황제가 국왕에게 명령한다는 의미로 봉칙(奉勅)이라는 형식을 취했다. 이것은 본래의 대등했던 양국관계에서 보면 이상한 것이었다. 조선의 입장에서 ’황제‘는 중국의 책봉 체제 속에 왕은 일본이 보낸 이 국서를 받지 않았다. 기도는 이것을 ”무례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기도는 다음과 같이 생각하고 있었다.” 천황은 일본의 군주(황제)이다 그래서 막부의 쇼군과 조선의 국왕은 에도 시대에 조선통신사를 통해서 같은 국왕으로 교류하고 있었다. 따라서 조선국왕은 일본의 군주(황제)보다 하위이다. 라고 주장하며 조선을 침략할 것을 주장 했다. 이러한 내부의 불만을 밖으로 돌리기 위한 것과 조선이 일본에 대해 상국으로 대접하지 않는 것을 정한론에 배경에 두고 있다.2. 정한론의 전개① 정부 당국자의 정한론(1) 기도 다카요시 (木戶孝允 ; 1833~1877)1869년 12월 조선에 건너갔던 사다(佐田素一郞)의 보고에 조선이 일본을 멸시한다는 것으 이유로 해서 30개 대대를 출병시켜 정벌하자는 내용이 있었다. (일본 외교문서 제3권). 일본정부는 시기상조라고 하여 이 주장을 부결시켰지만 일본정부내의 정한론은 점차 더 활발해 졌다. 기도의 ‘정한론’은 이것을 접수한 형태로 1870년 6월 외무대신 데라지마 무네노리(寺島宗則)에게 제시되었던 것인데 의견서라고 할만한 것이었다.- 도쿠가와씨의 관정(關政) 이래 혹은 때에 따라 빙례를 받아들인 일이 있었지만 그것도 오지 않은 바가 벌써 20여 년이 되었다. (......) 그들은 마땅히 한번 와서 정성과 감사를 올려야 할 것인데, 인습에 위탁하고 구습을 요행으로 생각한다. 번번이 쓰시마번을 통해 함부로 문필을 농하니 과장되어 믿을 수 없고 치우치며 꾸민다. 도를 교류하는 정리를 말하지 않고 감히 상국에 대항하려고 한다.(조선 교제 시말 제1권) -즉 도쿠가와 정부 이래의 빙례를 단절시킨 것과 이번의 교섭에서 일본 서계에 대해 힐난한 것을 비판하였고, 이어 일본을 ‘상국’이라고 호칭함으로써 대 조선우월관의 논리를 내보였다. 이 의견서의 결론은 ‘조선과의 교류를 단연히 끊을 것’이었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병원(兵員), 함선, 군수물자 등의 준비를 해야 한다는 제언으로 끝맺었다.여기서 기도의 정한론에 대한 생각을 은 기도가 일본 육군의 아버지라 불리는 오무라에게 보낸 편지이다.-조정의 힘, 특히 병력으로 부산항을 개항시켜야 한다. 물산금은(物産金銀)의 이익은 물론이고, 황국의 큰 방향을 정하는데 있어서 억조창생의 눈을 외부로 돌리자는 것이다. 황국을 흥하게 하고 만세에 유지하는데 그 이사의 방법은 없다. 다른 지역(=국내)을 먼저 정리하자는 주장도 있으나, 황국의 국체를 위해서는 동해에 빛을 비추는 것이 가장 시급한과제다.이어 산조와 이와쿠라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비슷한 주장을 담고 있다.- 며칠 전 말씀드린 대로 용단을 부탁한다. 정한이라고는 하지만 처음부터 무력을 행사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조선이 일본의 뜻을 깨닫지 못할 경우 즉각 병력을 투입해야 한다. 이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2) 사이고 다카모리 (西鄕隆盛 ; 1827~1877)사이고의 ‘정한론’은 처음부터 무력침공을 의미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조선에 파견되어 있었던 외무성 관리가 귀국하여 조선조정의 강경정책, 부산에 거주하는 일본인에 대한 식량공급중지, 일본상품의 수입금지, 반일운동의 확대 등을 보고 하였다. 이 보고는 메이지정부 내외의 ‘조선출병론’을 크게 선동하는 결과가 되었다. 이에 일본 정부는 우선 전권사절을 파견해서 교섭해 보고 그것이 결렬되었을 경우 출병한다고 하는 이른바 단계설을 결정 하였다. 이 전권대사에 임명에 사이고는 스스로 강력히 희망하여 전권대사가 되었다. 그는 먼저 조선왕조의 계속된 수호거부를 불손하다고 하여 공법상 정토의 도리가 구성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공법상 불합리 한데, 최소한 이 때 이미 사이고의 뇌리에 조선침략이 결정 되어 있었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음으로 출병의 이유를 정당화 하는 수단으로써, 교섭석상에서 조선의 불손을 추궁하는 것에 의해 견한대사(遣韓大使;사이고 자신)의 폭살로까지 발전시킬 가능성을 주장하아고, 그 시점에 있어서 세론과 국민의 이해를 얻을 가능성을 고려하였다. 게다가 이러한 모든 단계의 전부는 “내란을 바라는 마음을 내정론에 귀납하고 있다. 외교노선에서 총괄해보면, 사이고의 정한론은 정부노선의 출발점에 자리 잡고 있지만 처음부터 무력에 호소하지 않고 단계적으로 실행하고자 했던 점이 강인한 정부노선과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② 정한론의 전개 과정일본에서 정부정책 차원에서 정한론이 제기되기 시작한 것은 도쿠가와 막부 말기 및 메이지 초기 때이다. 이 무렵의 정한론은 조선뿐만 아니라 아시아 침략의 일환으로 대두되었다.가장 먼저 정한론을 제기한 자는 하야시이다. 하야시는 1785년 《삼국통현도설》이란 저서에서 조선이 유구ㆍ하이와 더불어 일본의 국방에 깊은 관계가 있다면서 조선연구의 긴급성을 주장하고 나섰다. 이때부터 일본에서는 일본의 방위를 위해서는 조선과 아시아제국을 지배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도쿠가와 막부 말기 일본의 식자들은 서구열강의 반식민지적 위치로 떨어진 상태에서 서구열강에 빼앗긴 손실을 보상하기 위한 방책으로서 아시아 제국을 침략해야 한다는 주장을 공공연히 전개한다. 그 중에서 사토는 《우내혼동비책(宇內混同秘策)》에서 “세계만방 중에 일본이 공취(攻取)하기 쉬운 토지는 지나국의 만주만큼 취하기 쉬운 것은 없다… 이미 달단을 취득한 이상 조선도 지나도 다음으로 도모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주장하고, 구체적인 조선침략의 방책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런 것은 아직 식자층의 단순한 ‘주장’ 수준에 머무는 것이었다.정한론이 구체적인 정책으로 발전하게 된 것은 1863년 대마도 참정인 오시마가 정한론을 공식적으로 제기하면서 시작된다. 그는 지금까지 조선과의 무역이 조공 형식이었으니 그 치욕이 이를 데 없고, 또 재정이 궁핍하여 방비가 허술하니 막부(정부)가 재정적인 원조를 해주면 병비(兵備)를 튼튼히 해서 그 치욕을 씻기 위하여 조선을 침략하겠다는 정한론을 폈다. 중앙정부의 지원을 받아 조선을 정벌하겠다는 생각이다.이보다 앞서 1861년 야마다가 청나라에 대한 침공을 막부에 건의한 일이 있다. 이 자는 당시 중국이 아편전쟁과 태평천국의 난으로 극심한 혼란에 빠져 있는자는 주장을 펴면서, 중국을 침략하려면 먼저 조선을 침략해야 한다고 설치고 나섰다.메이지시대의 정한론자에는 우선 기도와 사와를 들 수 있다. 기도는 1868년 “사절을 조선에 보내어 그 무례를 묻고, 그들이 만약 복종하지 않을 때는 죄를 물어 그 영토를 공격하고 크게 일본의 위업을 신장할 것을 바란다.”라고 주장했고, 위무성의 사와는 “한국에는 상고의 소존친정(素尊親征)의 영적이 있다. 열성조(列聖朝)가 완무(緩撫)한 나라로서 그 국맥의 소장 여하는 우리 국가안위에 관계되는 바이다. 항차 근래 러시아가 엿보는 상황에서 우리 제국이 이것을 강구하지 않으면 그 존망을 알지 못하게 된다. 이때를 당하여 조정의 사절을 파견하는 것은 목하의 최대 급무이다.”라면서 정한론을 전개했다.메이지시대의 정한론자 가운데 사이고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자는 천황제의 철저한 신봉자로서 도쿠가와 막부를 무너뜨리고 명치유신을 이룩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왕정복고의 4대 원훈으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그는 이토 등이 우선 내치에 치중해야 한다고 주장한 데 비해 조선을 정벌해야 일본이 산다고 주장하여 ‘정한파’ 칭호를 들을 만큼 철저한 침략주의자이다.사이고는 내각회의에 참석해서 조선침략의 방법을 설명하면서, “나를 조선에 사절로 파견해 달라. 조선의 조정에 도착하면 나는 그곳 대신들의 비위를 몹시 상하게 만들어 놓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저들은 당장 나를 살해할 터인즉 그때는 나의 죽음을 구실삼아 조선을 침략하라”고 주장할 만큼 극렬파였다.이처럼 여러 갈래로 나타나기 시작한 정한론의 정체는 하나같이 조선은 본래부터 일본의 속방이라는 것과 일본 열도를 방위하기 위해서는 조선을 정벌해야 마땅하다는 방위 개념이 깔려 있음을 알게 된다.메이지유신에 성공한 일본이 조선침략의 명분으로 삼은 것은 대원군의 일본 서계(書契) 거척사건이다. 일본은 1868년 명치유신으로 인한 왕정복고를 조선에 알리는 뜻에서 외교문서를 제시하였다. 그러나 대원군이 그 문구가 오만불손하다 해서 서계를 거부하자 일본적된다.
    인문/어학| 2014.12.26| 6페이지| 1,000원| 조회(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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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rikson의 관점에서 본 Freud의 이론 비판
    Erikson의 관점에서 본 Freud의 이론 비판1. 서론인간의 발달 단계에 관한 심리학적 이론으로 Freud의 이론과 Erikson의 이론이 있다. 이 두 가지 이론을 살펴보고 두 가지 이론 중 Erikson의 발단 단계설의 입장에서 Freud 의 발달 단계설을 비판적으로 검토해 보도록 하겠다.2. Freud 와 Erikson의 이론발달에 관한 Freud의 이론은 두 가지 조건을 전제로 하고 있다. 첫째는 유전학적인 접근 방법으로서 성인의 성격은 유아기의 여러 가지 경험에 의해 형성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성 에너지(libido)의 상당량은 출생은 출생시에 이미 나타나며 이것은 일련의 심리성욕 단계를 거쳐서 발달해 가는데 이 단계는 개체의 본능적 과정에 그 뿌리를 박고 있다는 것이다.Freud는 네 가지 보편적 심리성욕 발단단계가 있고 이것이 성격 형성에 결정적 영향을 준다고 가정하였는데, 즉 구강기, 항문기, 남근기 그리고 생식기이다. 잠재기는 정상적으로 6~7세와 사춘기 초반 사이에 나타나며 이 단계는 발달의 일반적 모형에 포함시키기는 하였지만, 기술적으로 보자면 단계는 아니라고 Freud는 말하였다. 발달의 첫 세 단계는 출생시부터 5세 사이에 일어나고 이것은 전 생식기라고 부르는데 그 이유는 성기부위가 성격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네 번째 단계는 사춘기의 초기에 나타난다. 각 단계는 자극을 주면 리비도적인 에너지를 방출하게끔 하는 그러한 신체부위에 따라 명명한 것이다.각 단계는 모두 일차적 성적 부위라는 특징이 있으며, 그 부위는 성적흥분이 가장 민감한 곳으로 외부와 내부의 피부가 접하는 신체부분이다. 예를 들어서 입술은 종아리나 손등보다 자극에 더 민감하다. Freud는 점막이 더 많이 돌출해 있으며 있을수록 감각적 희열에 더 예민하다고 말했다. 남녀의 성기, 유방, 항문은 성적 부위로 간주된다. Freud의 이론에 의하면, 어떤 특정한 발달 단계 시기에 신체의 어떤 부위는 유쾌한 긴장을 가져다 줄 어떤 대상이나 활동을 추구하게 된다. 그 발달 순서와 특징은 문화유산이 어떻든 간에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각 단계에서 개인이 어떤 사회적 경험을 하느냐 하는 것은 그가 그 단계에서 얻는 태도와 특성, 가치관의 형식으로 영원한 어떤 흔적을 남겨놓는 것이다.이와 비교하여 Freud의 제자인 Erikson은 Freud의 정신분석을 발전시켜 identity를 중심으로 한 자아발달이론을 전개하였다. 그는 성숙의 점성원칙(epigenetic principle)에 의하여 인생주기를 8개의 발달단계로 나누고, 각 단계에는 사회 환경이 각 개인에게 어떠한 정신적인 요구를 나타낸다고 가정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의 요구에 적응하기 위해서 개인 내에 생기는 심리적 긴장상태가 심리, 사회적 위기이다. 개인이 다음 단계에 발달해 가려면 이러한 위기를 잘 극복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각 발달 단계에 있어선 이와 같은 위기를 긍정적으로 달한 경우와 부정적으로 달한 경우로 대응시켜 다음과 같이 나타내고 있다. 1.영아기 (신뢰 대 불신 : 희망) 2.유아기 초기 (자율성 대 수치와 의심 : 의지) 3.유아기(주도성 대 죄악감 : 목적) 4. 학동기 (근면성 대 열등감 : 능력) 5. 청년기 (자아정체감 대 자아 정체감의 혼란 : 충성) 6. 성인기초기 (친밀 대 고독 : 사랑) 7. 성인기 (생식성 대 정체 : 배려) 8. 성숙기 (자아통합 대 절망 : 지혜)로 8단계로 구분 하고 있다.3. Erikson의 관점에서 본 Freud의 이론 비판Freud의 발단 단계 이론은 먼저 인간의 발달단계를 심리성욕의 발단 단계로 규정하고 이러한 발달 단계인 구강기, 항문기, 남근기, 생식기에 그러한 신체 기관들의 욕구가 좌절 되는가 방임되는가 아니면 만족되는가에 따라서 인간의 심리와 성격이 달라진다고 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Freud는 인간을 지나치게 성적인 존재로 바라보고 발달단계로 성적인 만족으로 해석했는데, 사람은 항상 성적인 존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떤 근거를 가지고 발달 단계를 성적으로 풀이하고, 또 그것이 만족 되었을 때와 만족되지 못하였을 때의 성격을 제시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지나친 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인간이 항상 성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인간은 항상 성적인 욕구를 느끼는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성적인 부분도 인가에게 있어 중요한 부분이기는 하지만, 인간의 발달 단계에 있어서 다른 요소도 큰 영향을 끼친다고 할 수 있다. 다른 요소로는 다른 사람과의 대인 관계에서 영향을 받는 것, 가정환경, 자연환경, 기후, 유전적 요인도 들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Erikson의 이론과 비교하여 보면, Freud는 출생부터 1세 까지의 기간을 구강기라고 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 하고 있다. “성감대인 입, 혀, 입술을 통하여 젖을 빠는 데에서 쾌감을 느껴서 성적욕구를 충족한다. 따라서 이 시기의 유아는 자기에게 만족과 쾌감을 주는 대상에게 애착을 갖게 된다. 그런데 만약 과소충족에 의한 욕구불만이나 혹은 과잉충족에 의한 몰두경향이 있을 경우 둘 다 다음단계로 발달을 방해하는 고착현상을 갖게 된다. 이렇게 구강기에 고착되면 입술이나 손가락 빨기, 과식이나 과음, 과도한 흡연과 같은 구강기적 특성이 나타난다.” 위에서 볼 수 있듯이 출생 후 1살 이전에 성적인 쾌감의 충족정도에 따라서 훗날 성격가지 바라보고 있다. 이와 비교 하여 Erikson의 이론에서 출생 후 1년까지의 기간인 영아기를 다음과 같이 설명 하고 있다. “이 단계에 획득 되는 기본적인 심리 사회적 태도는 영아가 그의 세계를 신뢰 하는 일이다. 이 신뢰감은 부모에 의해 아동의 기본적 욕구의 충족에 바탕을 두고 있다. 만약 이 때 양육이 부적절 하거나 일관성이 없거나 혹은 부적응하게 되면 영아는 그의 세계를 두려워하고 의심하게 된다.”라고 하며 기본적 신뢰감이 불신감보다 더 많이 체험되지 않으면 장차 타인과의 원만하며 지속적인 인간관계를 수립할 수 없게 된다고 하였고, 신뢰 대 불신의 갈등을 성공적으로 해결하여 얻어진 심리, 사회적 능력 또는 덕목을 Erikson 은 ‘희망’이라고 하였다. 출생 이후부터 1살까지의 아이의 발달 단계를 설명한 Freud와 Erikson의 이론은 확연한 차이를 들어내고 있다. Freud는 영아들도 성적인 쾌감을 느껴 거기서 얻는 만족감이 발달에 영향을 미친다고 하였고, Erikson은 아이가 체험하는 것 중 신뢰감을 중요시 하여, 그러한 신뢰와 불신이 발달단계에 영향을 미친다고 하였다. Freud의 이론에서 가장 핵심을 이루고 있는 성적인 만족감에 따른 발달이라는 이론은 큰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성적인 자극을 덜 받는 어린 스님들 같은 경우 Freud의 이론에 따르자면 욕구 불만에 따라 각 단계에 고착되어, 잔인하고 파괴적이며, 적개심을 나타내고 경박한 기질을 갖는다고 할 수 있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성적인 요소도 한 가지 요소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Freud의 이론처럼 전적으로 발달에 따른 요소가 되는 것은 아니며, 더욱이 어느 정도 욕구의 정도가 불충분 하다고 해도 기타의 다른 요소들이 충족되었다면 그 사람의 발달은 정상적으로 잘 이루어 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부분에서 Erikson의 이론은 한 가지 대안이 될 수 있다. Erikson은 발달 단계설의 중요한 것으로 신뢰 대 불신, 자율성대 수치와 의심, 주도성 대 죄악감, 근면성 대 열등감, 자아 정체감 대 자아 정체감의 혼란, 친밀 대 고독, 생식성 대 배려처럼 성격적 요소를 각 단계별 중요한 요소로 제시 하였고 그에 따른 덕목으로 희망, 의지, 목적, 능력, 충성, 사랑, 배려, 지혜 등의 가치를 제시하여 좀 더 설득력 있는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성격 발달을 설명하는 이론으로서 심리적 영향의 정도에 따라 그 성격 형성을 설명하는 것은 지극히 온당하다고 할 수 있다.
    사회과학| 2014.12.26| 4페이지| 1,000원| 조회(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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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묵자의 사상 평가A좋아요
    약자를 위한 반전평화사상♠ 묵자(墨子)의 생애중국 전국시대의 사상가.제자백가(諸子百家)의 한 사람이며, 성은 묵(墨) 이고 이름은 적(翟)이다. 묵자(墨子)는 존칭이다. 또, 묵가의 주장을 모은 책도 《묵자(墨子)》라 한다. 묵자는 태어난 나라도 불분명하고, 태어나고 죽은 해도 확실지 않다. 대체로 공자보다 조금 뒤, 맹자보다 조금 앞이라고 짐작할 뿐이다(BC 470?~BC 390?).묵(墨)은 성이라고 하는 것이 예로부터의 설이다. 그러나 정확하게는 묵형(墨刑;이마에 入墨을 하는 형벌)을 일컫는 말로서, 당시 주나라에서는 지배층은 형벌로 다스리지 않았고 피지배층에만 형벌을 가했다. 묵자는 형벌로 다스려지는 하층민이었다는 추측을 할 수 있다. 혹자는 묵자의 피부가 검었기 때문에 묵씨라 불렸다 주장하기도 한다. 오늘날 노동자를 블루칼라라고 부르듯이, 피부가 검다는 것은 그가 노동을 하는 계층이었음을 말해 주는데 이것 역시 묵자가 노동을 하는 계층이었음을 보여 준다. 묵자의 주장 속에 먹줄 같은 노동 도구들이 비유로 많이 등장하는 것이나, 그를 따른 그룹이 대부분 하층 무사 집단이나 기술자 집단이었던 것도 역시 그의 출신 계층을 짐작하게 해 준다.묵자는 춘추전국시대의 다른 사상가들과 마찬가지로 자기 사상을 펼치기 위해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으나, 그의 사상이 지배층의 이익을 위한 부국 강병책이 아니었기 때문에 환영받지 못했다. 민중을 옹호한 묵자의 사상은 진나라에 의한 통일의 기운이 무르익어 가면서 약해지기 시작했고, 통일 이후 중앙 집권적 전제주의가 강화되자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져 갔으므로 그의 경력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봉건적 사회체제의 해체 과정에서 당시 각 나라는 국내적으로는 중앙집권적 전제화, 국외적으로는 전쟁에 의한 대국화(大國化)를 추진하고 있었다. 그런 것에 반대했던 그는, 예로부터 군주나 귀족에게 예속되어 있었던 직능씨족(職能氏族)을 길드적 공인집단으로 완성시켜 그 최고 지도자로서 겸애(兼愛;相互愛의 보편화)와 비공(非攻;反戰平和) 실현을 위해 실현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점에 대해서 묵자는 선대 성왕(聖王)들이 이미 실천한 적이 있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근거로 제시하면서 현실적으로 실천 가능함을 주장하였다. 요 임금이나 순 임금 등의 예를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견해를 정당화 한 것이다.겸애는 혈연관계와 친소(親疎) 관계를 초월해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사랑 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과연 이런 초월적인 사랑이 가능할 것인가라는 많은 의문과 비판 속에서 묵자는 자신의 주장을 논증하는 세 가지 표준을 설정하였다. 본지자(本支者), 원지자(原之者), 용지자(用之者)가 바로 그것이다. 이 세 가지 표준을 삼표(三表)라고 불렀다. 본지자(本支者)는 우리가 어떤 이론을 세울 때 하늘과 귀신의 뜻과 선대 왕의 일에 근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원지자(原之者)는 우리의 이론은 반드시 선왕의 글과 백성이 직접 보고 들을 사실에 근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용지자(用之者)는 우리의 이론이 백성의 이익에 부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겸애는 이러한 세 가지 표준에 비추어 볼 때 타당하다고 그는 주장하였다.2. 비공론(非功論)동서양을 막론하고 최초로 상세하게 전쟁의 폐해를 나열하면서 전쟁을 반대하는 이론을 전개한 사람은 바로 묵자이다. 묵자가 살던 시대는 전국시대(戰國時代)로 유독 전쟁이 많던 때였는데, 그 당시에 묵자는 아마도 전쟁의 피해를 잘 경험하고 전쟁의 존재를 부정하게 되었을 것이다. 겸애설도 사실은 전쟁을 막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전쟁이 일어나 적군을 죽이는 것은 겸애를 실천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모둔 사람을 동등하게 사랑하면 전쟁이 정당화될 수 없고 또 일어날 수도 없다는 것이 그이 주장이다. 그래서 묵자는 최고의 악이라고 할 수 있는 전쟁을 없애는 최선의 방법으로 겸애를 제시하였다.전쟁이 일어나는 이유 중에서 경제적 약탈이 원인일 경우, 묵자는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사랑하기 때문에 남의 자식을 죽여 나의 자식을 배부르게 하려 하지 말라고 하였다. 전쟁 발발의 원인이 통치자들이 욕심일 때, 묵자는 이실효적 관점에서 묵자의 공리주의적 사상은 드러나기 시작한다.3. 비명론(非命論)묵자의 생각에는 시대를 초월하는 것들이 상당히 많은데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비명론’이다. 묵자는 “부자가 될 운명이면 부자가 되고, 가난하게 될 운명이면 가난하게 된다, 국가도 인구가 많아질 운명이면 많아지고 적어질 운명이면 적어지며, 다스려질 운명이면 다시려지고 어지러워질 운명이면 어지러워진다. 수명도 그러해서 장수(長壽)할 운명이면 장수하고 요절할 운명이면 요절하게 마련이다. 힘이 비록 세다 한들 무슨 도움이 되겠는다? : 「묵자」 “ 묵자의 이 설명에 따르면 운명이 있다는 말은 우리의 인생이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부자가 될 운명은 부자가 되고, 가난할 운명은 가난해진다. 결과를 기준으로 어떤 운명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사실 무의미하다.묵자는 “운명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말한다. 윗사람이 상을 주는 것은 운명이 본시 상을 타게 되어 있기 때문이지 현명하기 때문에 상을 받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들어가서는 부모와 자애롭고 효도하지 않게 되고, 나아가서는 마을 사람들에게 공경하거나 어른 노릇을 하지 않으며 들어앉아 있어도 법도에 맞지 않고, 나들이하는 것도 절도가 없으며, 남자와 여자들은 분별이 없게 된다. :「묵자」 ” 상벌제도가 있음으로해서 국가의 기강이 바로 서고 사회가 안정될 것인데, 운명이 결정되어 있다면 누가 벌을 피하기 위해 죄를 짓지 않겠는가? 이것이 바로 사회를 혼란하게 만드는 첩경이다. 그래서 묵자는 적극적으로 운명론이 옳지 않다고 가르쳤다. 만일 모든 사람이 운명만 말하면서 불합리한 사회 구조의 개선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 사회는 퇴보하고 망각하게 된다. 그렇기에 묵자는 “지금 천하의 군자들이 진실로 천하의 이익을 일으키고 천하의 피해를 없애 버리려고 한다면, 운명이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으 말은 힘써 부정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묵자」 ”고 말 했던 것이다.* 유가의 운명론 : 천명(天命) - 인간의 한계를 아는 것. “노력을 했으나사용에 편리하지 않은 것은 제거해 버린다. 그들이 집을 지을 적에는 어찌하였는가? 그것으로써 겨울에는 바람과 추위를 막고 여름에는 더위와 비를 막으며 도적이 있기 때문에 더욱 튼튼하게 만든다. 화려하기만 하고 사용에 편리하지 않은 것은 제거해 버린다. :「묵자」 ”묵자가 주장한 것은 우리의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만들 때, 그것의 목적을 고려하여 목적에 가장 적합하도록 만들지, 쓸데없이 부수적인 것을 보태서 사치와 낭비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특히 툥치자들이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온갖 장식 옷을 입었고, 또 그것을 만들기 위해 어마어마한 돈을 썼을 것이다. 이에 묵자는 “귀족들이 구슬?옥 새 짐승 개 말 따위를 모이기 좋아하는 것을 버리고, 그것으로 옷 집 갑옷 방패 다섯 가지 병기 배 수레 같은 물건의 수를 늘이게 한다면 그러한 것의 숫자는 두배로 늘 것이다. :「묵자」 ”라며 귀족들의 사치스러운 삶을 비판하였다. 근검 절약을 통해서 더욱 잘 사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절용설(節用設) 또한 겸애(兼愛)를 실천하기 위한 한가지 방법이다. 말로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이 굶주리지 낳게 근검 절약하는 것이 바로 겸애(兼愛)이다. 내가 낭비와 사치를 하면 그만큼 다른 사람들이 가난하게 된다는 것을 알고 될 수 있으면 검소한 생활을 하라는 교훈을 담고 있다.♠『묵자』에 대하여..1. 『묵자』의 전래다른 대부분의 제자서(諸子書)나 마찬가지로 『묵자』도 한(漢)나라 이전에는 어떤 모양의 것이었는지 알 길이 없다. 『한서』예문지에는 ‘『묵자』71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한 대에 유향(劉向, B.C. 77~B.C.6)이 비부(秘府)의 책들을 정리 교정할 때 교정해 놓은 책으로 그의 『별록(別錄)』에 저록(著錄)하였던 것을 아들 유흠(劉歆)의 『칠략(七略)』과 반고(班固)의 『한서』예문지가 그대로 옮겨 실은 것일 것이다. 본시 옛 책에는 유향이 책을 교정하여 임금에게 올렸다는 ‘주록(奏錄)’이 붙어 있었을 것이나, 송(宋) 부렵에 없어 한 불완전한 것들이다. 오랜 세월을 두고 버림받았던 책이 이 정도라도 보존되었다는 것을 오히려 다행으로 여겨야 할는지도 모르겠다.2. 『묵자』의 내용거의 모든 제자서(諸子書)들이 그러하듯이 『묵자』도 묵자가 지은 책이라 보통 말하고 있지만, 실은 묵자가 직접 쓴 것은 한 편도 없는 듯하다. 따라서 『묵자』는 묵자를 비롯한 묵가 전체의 주장과 얘기 등을 모아 놓은 묵가의 유일한 총집(總集)이란 성격을 띠고 있는 책이다. 더구나 이것들이 우리에게 전하는 책의 형식으로 정리된 것은 서한(西漢) 유향(劉向, B. C. 77~B. C. 6)에 힘입은 것이니, 거기에는 묵자 이후 사람들의 글이나 생각이 어느 정도나 가미된 것인지 쉽사리 짐작도 할 수 없을 정도이다.이 때문에 『묵자』 각 편은 그 내용이나 성격이 다양하다. 호적(胡適)이 그의 『중국고대철학사(中國古代哲學史)』 제6편 제1장에서 『묵자』 53편을 5조(組)로 크게 나누어 그 특징을 설명한 이래로, 많은 의견 차이는 보이면서도 양계초(梁啓超), 전목(錢穆), 방수초(方授楚) 등 많은 학자들이 원칙적으로 그의 분류방법을 따르며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되새겨 볼만한 묵자의 사상至殺人也 罪益厚於竊其桃李 殺一人謂之不義 今至大爲攻國則弗知非 從而譽之謂之義 此可謂知義與不義之別乎?(非攻)罪益厚(죄익후) : 죄가 더 크다.弗知非(불지비) : 잘못인 줄을 모른다.義與不義之別(의여불의지별) : 의와 불의의 차이."사람을 죽이는 것은 복숭아를 훔치는 것보다 죄가 더 무겁다. (그래서) 한 사람을 죽이면 그것을 불의라고 한다. 그러나 지금 크게 나라를 공격하면 그 그릇됨을 알지 못하고 그것을 칭송하면서 그것을 의로움이라고 말한다. 이것을 의와 불의의 분별을 안다고 할 수 있겠는가?"묵자는 비공편에서 이런 말로써 그 시대를 지배하는 생각에 대해 정면으로 공격을 한다. 한 사람을 죽이는 것은 불의라고 하면서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그 사람들 국가전체를 도탄에 빠뜨리는 전쟁을 대의라고 칭송하는 것은 그야말로 말도 안 된다 이다.
    인문/어학| 2014.12.26| 6페이지| 1,000원| 조회(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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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학과 중용사상
    대학과 중용의 사상*《大學》이란 무엇인가?사서(四書)의 하나로 원래 9경 가운데 하나인 《예기(禮記)》 제42편으로 처음에는 특별히 중시되지 않았지만 이후 주희가 《예기(禮記)》에서 과 을 떼어내어 ≪논어≫, ≪맹자≫와 함께 사서로 합성하고, 장구를 나누고 주석을 붙여 ≪대학≫을 개편한 후에야 독립적인 위상을 갖게 되었다. 주희는 이 책을 사서 중에서 <초학(初學)의 덕(德)으로 들어가는 문>이라고 하였고, 학문의 입문지침서로서 중요시하였으며, 본문에 탈락되거나 순서가 잘못된 것이 있다하여 논리적으로 재구성하여 《대학신본》의 원전(原典)을 정하고, 주석을 달아 《대학장구》라 하였으며, 임종 며칠 전까지 계속해서 개정하였다. 그에 의하면 《대학》은 공자의 말을 제자인 증자가 이어받아 기록한 경(經) 1장과 증자의 생각을 문인이 기록한 전(傳) 10장으로 되어 있다. 대학의 근본 사상은 수기치인(修己治人: 자신의 지와 덕을 닦아 그 것을 바탕으로 백성을 다스리는 일)으로 3강령 8조목으로 구성 되어있다.※참고1. 3강령① 명 명덕(明 明德) : 명덕을 천하에 밝힌다는 말로, 명덕이란 성선설을 근본으로 본래부터 타고난 순수한 본연의 모습을 말한다.② 친(신)민[親(新)民] : 왕양명은 고본대로 백성이나 가족을 친애한다. 정이나 주희는 친을 신으로 풀이하여 "이웃을 새롭게 한다" 라고 했다 다시 풀이하면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이웃을 새롭게 할 수 있으므로 자기 수양인 명덕을 한 후, 그것을 이웃과 가족에게 베풀어 사랑하고 새롭게 하는 것을 말한다.③ 지어지선(止於至善) : 지선에 머문다. 즉, 사리에 당연한 극치이며 또는 가장 합당한 도리다.2. 8조목① 격 물(格 物) : 격물과 치지는 주희가 고본에는 없는 것을 새로 넣어 보망장이라 칭했다. 천하 사물의 이치를 깊이 파고들어 모든 것에 이르지 않는 데가 없게 함.② 치 지(致 知) : 격물한 다음에야 모든 사물의 이치를 알 수 있음.③ 성 의(誠 意) : 선을 따르는 각 개인의 마음과 뜻을 성실히 하는 것.④ 정 심(正 心) : 마음을 올바르게 닦아 정한 위치에 두는 것.⑤ 수 신(修 身) : 몸을 올바르게 닦는 일로 인격의 수양을 말한다.⑥ 제 가(齊 家) : 집안을 바르게 다스리는 것.⑦ 치 국(治 國) : 나라를 바르게 다스리는 것.⑧ 평천하(平天下) : 위 항목대로 하다 보면 나라 전체가 평안해진다.☞ 주희는 사서 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을 대학이라 하였고 대학을 통달하게 되면 다른 경전의 문구는 대학을 기본으로 한 풀이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대학의 해석은 여러 가지 설이 많고, 또한 형이상학적인 문구들도 많아 이해하기가 힘이 든다. 간략하게 위 항목을 종합적으로 풀이하여 보면 3강령 8조목을 순서대로 자기의 몸과 마음을 선(善)의 방향으로 모든 일에 성실히 하면 개인과 가족, 나라 전체가 화평케 된다는 유교의 근본적인 사상이다.*《中庸》이란 무엇인가?사서(四書)의 하나로 주희가 《예기(禮記)》 총 49편 가운데 31편 <중용>과 42편
    인문/어학| 2014.12.26| 6페이지| 1,000원| 조회(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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