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대외정책의 방향과 흐름근대화와 함께 중국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경험하였고, 1949년 10월에 사회주의 국가를 수립하였다. 신 중국이 건립된 이후에 한국전, 월남전, 중소분쟁, 타이완문제 등을 둘러싸고 초강대국인 소련, 미국과 직간접적으로 각종 분쟁과 전쟁에 개입해 왔으며, 이는 중국의 대외정책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마오쩌둥 시대의 대외정책 방향을 살펴보면 안으로 정치·경제적 안정의 회복에 주력하면서 밖으로는 국제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 참가하였다. 외교적인 측면에서는 항미친소(抗美親蘇)의 정책을 기본으로 삼았다. 이후 냉전구조가 정착되고 제3세계가 새로운 국제적 변수로 등장하게 되자, 평화공존외교를 전개하며 아시아·아프리카 신생국가들과 강화를 맺었다. 그리고 이러한 평화공존외교의 전개로 소련과의 관계가 긴장되기 시작하였는데, 1950년대 말부터 노골화된 중·소 이념적 분쟁으로 인해 서로간의 격렬한 상호비방과 공격이 격화되어 국경지대에서의 군사적 충돌로까지 이르게 되었다. 1956년에 발발한 문화대혁명의 대혼란을 끝내려는 중국의 대외 정책은 국제관계의 기본적 규범에서 크게 벗어나는 과격행위로 표출되었다. 그리하여 미·소와의 적대행위는 물론이고, 심지어 제3세계와의 관계도 악화되어 국제고립으로까지 이르게 되었다.그러나 1970년대 전반기에 문화대혁명이 막을 내림에 따라 소련에 대한 대립감정을 견지해오면서 1972년에 미국과의 국교회복을 시도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중·미 관계개선은 다분히 소련을 견제하고자 하는 전략적 의도를 내포하고 있었는데 이때의 중국으로서는 미·소와의 미묘한 3각 관계를 조정하는 한편 제3세계와의 관계개선 역시 필요하였다. 그 결과로서 나타난 것이 ‘3개 세계론’이라고 볼 수 있다. 이 ‘3개 세계론’에 입각해서 중국은 제3세계의 모든 나라들과 함께 동·서구 그리고 일본 등의 제2세계와의 연합 하에 미·소의 제1세계에 대항하는 반패권 국제통일전선을 구축해 나가는 것을 외교노선상의 기본목표로 삼게 되었다. 그리하여 일련의 중요한 회의에 참가하여 제3세계의 국가들을 반소, 반패권주의를 위한 통일전선의 형성에 적극 유도하는데 노력을 기울였다.마오쩌둥의 대외인식이 ‘전쟁과 혁명’의 문제를 핵심으로 했다면, 덩샤오핑은 이것을 ‘평화와 발전’의 문제로 전환시켰다. 마오쩌둥이 계승한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론이 계급과 혁명론에서 출발하여 공세 외교의 특징을 보였다면, 덩샤오핑의 대외인식은 전쟁을 피할 수 있는 가능성의 모색에 역점을 두면서 평화를 강조 하였다. 특히 대외개방과 4개 현대화의 추진을 목표로 중국의 외교정책의 전면적인 방향전환을 이끌었다. 독립자주노선은 덩샤오핑 시기에 대외정책의 핵심을 이루게 되는데 경제적 낙후의 극복, 정치적 안정, 잠재적 강국으로서의 군사력 강화 등은 중국의 현실적 이해를 반영했다. 덩샤오핑이 사회주의적 이데올로기라는 이념적 토대를 대내외에 구현하는 과정에서 필요에 따라 사회주의적 요소를 적절히 구사하며 정치적 안정을 유지하였으나 탈냉전시대에 걸맞게 현실적 논리를 바탕으로 국가이익을 도모해 나갔던 것이다.또한 덩샤오핑은 전쟁발생을 방지하고 평화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치경제적인 국제신질서가 수립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는 1988년 9월 이후부터 정치경제적인 국제신질서 수립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시작하였는데, 이 같은 정치경제적인 국제신질서는 평화공존 5원칙에 근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평화공존 5원칙에 근거한 새로운 국제정치질서를 수립하여 평화적인 방식으로 모든 국제적 분쟁을 해결하고, 국제관계법칙과 국제역량을 사용해 패권주의와 강권정치를 억제하고 전쟁의 늦추고 제지함으로써, 평화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또한 새로운 국제경제 질서를 확립하여 국가 간 경제적 교류와 협력을 증진시키는 과정 속에서 평등한 상호이익관계를 확립하여 발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보았다. 바로 새로운 정치경제적인 국제질서의 확립을 통해 평화와 발전의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과거 국제적 상황이 어떻게 변하든 중국이 변함없이 지속시킨 원칙은 독립 자주적 평화외교를 시행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장쩌민 이후 중국 독립자주 외교는 그 내용과 표현 형식에 있어서 새로운 변화가 발생하였다. 첫 번째는 중국은 종합국력의 발전에 따라 대국과의 교류에서도 점점 더 자신을 갖게 되었고, 이에 따라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냉전이 끝난 이후 중국과 러시아의 관계는 과거의 강약관계에서 일종의 상대적으로 평등한 관계로 바뀌었고, 러시아가 중국의 일에 간섭하리라는 중국의 우려도 크게 감소하였다. 중미관계에 있어서는 미국은 여전히 중국의 일에 간섭할 수 있는 큰 힘을 가지고 있지만, 과거의 약자와 강자로서, 강자 앞에서 약자가 갖게 되는 그런 자존심과 방어적 심리상태가 바뀌어, 일종의 초강대국과 성장 중인 대국의 관계로 되었다. 이것으로 볼 때 방어를 위한 투쟁도 있지만 협력관계도 있고, 중미 양국이 많은 방면에서 상호필요로 하는 관계로 바뀐 것이다.두 번째로 중국의 독립자주 평화외교정책은 동맹 혹은 비동맹이라는 보다 융통성 있는 정책으로 변화하였다. 근래 중국의 외교적 실천은 이미 동맹 혹은 비동맹이라는 구도의 내용을 크게 뛰어넘었다. 즉, 중국이 독립자주 외교정책을 결정하는데 유일한 기준은 그것이 중국의 국가이익과 세계 각국의 이익에 유리한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이고 세계평화와 안정에 유리한지 아닌지를 보는 것이며 세계의 발전을 촉진하는 데 필요한지 아닌지를 보는 것이다. 세 번째는 세계적인 업무와 국제체제와의 관계에서 현 단계 중국의 독립자주 외교정책은 마오쩌둥과 덩샤오핑 시기에는 없었던 보다 적극적이고 주동적으로 세계체제 안에 편입되어 세계 각국과 공동 발전한다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가고 있다. 중국이 오직 자기 나라의 이익만을 돌보고 있지는 않다는 것을 볼 때 중국이 정치경제적 결정을 내리기 위해 자기 나라의 상황만이 아니라 국제사회의 기타 여러 나라들의 상황도 고려하고 있다는 뜻이다.이렇게 중국은 주변강국과의 우호적 관계유지와 4개 현대화의 성공을 대외정책의 기본목표로 설정하면서 ‘독립자주’, ‘평화공존’, ‘주변국과의 선린관계 증대’, ‘전방위 외교’ 라는 대외정책기조를 추진해 왔다. 그리고 제16기 당 대회에서 중국의 자주독립 외교정책은 ‘공동발전’이라는 전혀 새로운 개념을 사용함으로써 국제 사회에 세 차례나 공동발전을 제기하였고, ‘공동’이라는 개념을 써서 수많은 용어를 만들어 내었다. 중국은 평화와 발전이 각국 국민의 공동의 바람이라고 생각하였고, 각국의 국민과 공동으로 노력하여야 하며, 평화와 발전에 관한 사업을 공동으로 보호하고 추진하면서 세계적 업무를 각국과 공동으로 협상하거나 공동이익을 보호하고, 세계 각국의 공동번영을 실현한다는 것이다. 공동발전은 새로운 시기에 중국 독립자주의 새로운 표현 형식이 되어가고 있다.
중국의 당 및 국가기관 10가지 조사1.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中國共?黨 全國代表大會) - 5년마다 열리는 중국 공산당의 당 대회, 전국대표대회는 이론적으로 중국 공산당 내의 최고 권력기관임. 중요한 결정들은 대회가 열리기 전에 이미 만들어짐.2.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中國共?黨 中央委員會) - 중국 공산당의 최고 권력기관으로 중 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함3. 중국공산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中國共?黨 中央紀律檢?委員會) - 중화인민공화국의 중국공산당 내 관리들의 부정부패와 위법 행위를 조사 감찰하는 준정부 기관임.4.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中國共?黨 中央軍事委員會) - 중화인민공화국의 중국인민해 방군(중국공산당의 군사부문)과 중국의 경찰(인민무장경찰) 등 중화인민공화국 정부의 무 장 세력을 지도하는 중국의 군사와 관련된 최고의 기관임..5. 중국공산당 중앙정치법률위원회(中國共?黨 中央政治法律委員會) -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와 함께 정부의 감찰 부문을 지휘하고, 중앙군사위원회와 함께 인민무장경찰을 지 휘함. 말 그대로 사법부 장관(법무부 장관)이나 최고인민법원 원장(최고재판소 장 관) 등을 통솔하는 최고의 위치에 있고, 그 권력은 절대적임.6.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中國共?黨 中央政治局) - 중국 공산당을 지도하며 정책을 토의, 결정하는 기관임.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전체 회의의 선거로 선출됨. 중국 권력의 핵심 중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중앙정치국 위원은 25명이며 7명이 상무위원으로 구성되어 있음.7.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서기처(中國共?黨 中央委員會書記處) -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과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의 사무를 처리하는 기관임. 정식명칭은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서기처8. 전국인민대표대회(全國人民代表大會) - 중화인민공화국의 입법기관이며 국가 최고 권력 기관임. 전국인민대표대회는 국가의사 결정기관으로, 행정기관인 국무원과 사법기관인 법원은 전국인민대표대회에 대하여 책임을 지도록 되어 있어 삼권분립제의 국회와는 차 이가 있으며 단원제 국회에 상당한다. 1급 행정구의 지방인대표대회에서 간접 선거로 선 출된 대표와, 중국 인민해방군 및 재외 중국인이 선출한 대표로 구성됨.
UN : 글로벌 거버넌스의 중심국제기구를 대신할 새로운 보편적 기구의 창설이 필요했는데 루스벨트 대통령, 처칠 영국수상에 의해서 이루어진 합동선언과 1942년 1월에 선포된 대서양선언으로 유엔 창설의 기초가 되었다고 한다. UN의 설립 목적은 전쟁에 지친 국가들이 미래의 전쟁을 피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국제적 경제 사회 협력을 할 수 도모하는데 도울 수 있는 기구에 대한 국가들의 열망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UN은 세계 거의 모든 국가가 회원국으로 참여하며 많은 산하기구들을 가진 복잡한 체제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정부로서의 중심 역할을 해오고 있다는 것이다. UN의 주요 역할은 국제법과 규범들 그리고 원칙들을 수립해 국제회의와 정상회담을 지원하거나 다른 국제기구들과 협력해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정부간 기구인 것이다. 회원 국가들의 주권평등 원칙을 기초로 하여 법적으로 동등해 모든 국가들이 총회에서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이 UN헌장의 주된 내용이다. 또한 국가들은 UN에 매년 분담금을 지불하는 약속을 했는데 이것은 신의성실 원칙으로 UN헌장에 포함되어 있다.유엔의 구조를 살펴보면 안전보장이사회, 총회, 경제사회이사회, 신탁통치이사회, 국제사법재판소와 사무국 등 여섯 개의 주요 산하기관이 있으며 6개 기관들 이외에 19개의 독립적으로 설립된 전문기관들이 있다. UN총회는 모든 국가들이 일국일표의 원칙에 따라서 동등하게 대표되는 일반논의의 장으로 구성되었는데 선거와 예산 같은 UN 내부문제를 제외하고는 회원국들에게 권고를 할 수 있는 제한적 권력만 가지고 있다고 한다. 또한 몇몇 중요한 선거 기능도 가지고 있는데 국가들을 UN회원국으로 승인하고 안전보장이사회, 경제사회이사회와 신탁통치이사회의 비상임이사국을 선출, 국제사법재판소의 재판관들을 임명하고 사무총장을 임명하는 일을 한다. 매년 총회는 그 해 회의를 주재하기 위해 1명의 의장과 17명의 부의장을 선출하며 결정은 다수결로 이루어진다. 안전보장이사회는 모든 회원국들이 따라야하는 국제적 통제와 입법기관으로서 기능해왔으며 세계 안보 체제의 핵심이고 평화와 안보에 대한 위협을 다루는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주된 기관이라고 한다. 세계 정치 상황에 UN의 영향이 커지면서 안전보장이사회와 총회의 상대적 중요성이 커졌다고 본다. 안전보장이사회는 5개의 상임이사국과 10개의 비상임이사국 모두를 가진 유일한 UN기구로서 5개의 상임이사국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와 중국은 거부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의사결정의 핵심국가들로 본다. 거부권은 강대국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보며 약소국가들과 중위권 국가들 사이에서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고 한다. UN회원국들은 안전보장이사회를 국제전쟁을 허용하거나 억제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국제기구라고 생각하며 군사력을 보다 일반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국제기구라고 여기고 있다. 경제사회이사회는 국제 경제와 사회적 이슈들을 다루는 UN의 중심회의체이다. 재정적 지원을 할 수 있는 국가들이 지속적으로 대표로 선발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해 중국을 제외한 4개의 상임이사국과 주요 선진국들은 정기적으로 재선출 된다고 한다. UN사무국에는 대략 8900여명의 직원들이 뉴욕, 제네바, 비엔나, 나이로비와 그 외 세계 곳곳에서 근무하고 있다고 하는데 비록 회원국의 국적을 가지고 있지만 국제사회를 대표하는 국제공무원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무총장은 UN의 관리자로서 사무국을 이끌고 UN예산을 준비하고 총회에 매년 보고서를 제출하고, 다른 기관들의 요청에 의해 수행된 연구들을 감독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총 8명의 사무총장들이 모두 UN헌장의 정신에 기초하여 정치적 행동을 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고 본다. 사무총장의 임기는 5년이며 안전보장이사회의 추천과 총회에서의 2/3의 득표를 통하여 재선될 수 있다고 한다. 사무국의 활동은 UN헌장이념의 실현을 위하여 UN이 구체적으로 공헌하는 대표적인 경제사회 프로그램들을 실행한다. 국제사법재판소는 유엔의 사법기관으로서 국제법에 따라서 법적 분쟁을 해결하는 기관인데 오직 강제적 관할권에 동의한 국가들과의 분쟁이 일어난 경우에만 재판이 진행될 수 있다고 한다. 신탁통치이사회는 이전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국가들을 통치하는 강대국들에 대해 국제연맹의 감독 및 통제 하에 있었던 것이 위임되어 이전된 신탁통치 지역들에 대한 행정을 감독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더 이상 연례회의를 개최하지 않는다고 하며 새로운 기능을 부여하자는 논의가 전개되고 있다고 한다.1960대 후반부터 UN은 국제회의와 정상회의를 후원했다. 하지만 규모가 큰 국제회의는 너무나 거대하고 자주 다른 기구들의 업무와 중복되어 비효율적인 관계로 국제회의에서 정상회의들로 성격이 바뀌었다고 한다. UN도 다른 기구들처럼 재정, 조정, 경영 그리고 구조적인 약점 등의 지속적인 문제들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UN에서 다루는 사안들이 많아졌고 효과적으로 대응하는데 UN체제가 한계가 있으며 회원국들이 필요한 자료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을 개혁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미국정부 같은 강력한 정부와 지도부가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안전보장이사회의 구조적인 개혁도 필요하다고 보는데 이사회를 구성하는데 많은 참여국이 필요하다는 것과 상임이사국과 비상임이사국 사이에 차별을 지속해야하는가에 대한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UN의 여러 기관들이 비슷한 일을 조율 없이 진행하고 있다는 것은 세계화로 인해 UN의 활동이 분야와 지역적 구분이 모호해진다는 점을 들고 있다. 행정기관들, 주요 기관들, 부속기관들과 각종 프로그램을 위해 UN의 예산이 사용되는데 회원국들의 분담금에 의해 조달되며 국가들은 예산과 관련해 분담금을 납부하지 않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비정부 기구들과 사기업들이 UN프로그램과 활동에 더 많이 참여하고 있으며 현재 UN체제의 제한된 재정적 자원을 보충하는데 있어서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UN과 지역기구들을 관계도 상당히 중요하다고 보는데 냉전 이후 지역적, 국가 내, 인종 갈등뿐만 아니라 국가들의 붕괴와 평화활동과 같은 이러한 국제적인 환경으로 인해 지역기구들의 활동범위가 더 넓어졌다고 보며 안보 영역을 제외한 부분들에서는 지역주의와 세계화가 잘 조화를 이루고 있고 지역기구들이 세계 기구들보다 훨씬 더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사림의 지치주의 정치사상과 성리학적 정통성의 확립조선 전기 사림파는 성리학 내 의리의 실천을 중시하는 학문적 경향인 도학을 계승했다고 한다. 특히, 조광조를 중심으로 한 신진사림들은 도학 전통의 이념적 기반이었던 소학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군주가 먼저 소학 교육에 모범을 보여 정의로운 정치를 해야 한다는 점을 나타내었다. 정치와 도덕의 대립을 해소하기 위해 조광조는 군주의 위세를 버리고 신하들의 도덕적 원칙을 받아들이라는 것과 자신을 위한 학문을 해서 남을 완성시키는데 이르도록 하는 위기지학을 강조했다. 그는 중종과의 마찰을 무릅쓰면서까지 유학의 이상을 현실정치에 구현하려고 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개혁의 실천으로 현량방정과 실시를 주장했으며 소격서를 혁파하는 것이 정신적 순수성을 지키는 왕도정치의 관건이라고 보았다. 또한, 정국공신 개정작업에도 힘을 기울였지만 끝내 처형되었다. 조광조가 추진한 개정작업 개혁은 권력에 대한 잘못된 점들을 도덕적으로 바로 세우는데 용납하지 못하는 왕권의 구조적 장벽 때문이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조광조의 도덕적 근본주의는 왕권의 도덕적 일탈을 견제하고 바로잡는데 상당한 역할을 함으로써 정치사상으로 확립될 수 있었다. 중종반정 이후 정치적 이해관계와 관료들의 대립 때문에 학자들의 현실참여가 제한되었지만 재야학자들은 향약과 서원 등을 통해 교화와 학문 연구 및 후진양성에 전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그 중 퇴계는 정치의 최종목적으로 현명한 통치자에 의한 교화가 위주로 되어야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성현의 학문을 배워 내성의 과정을 거친 치자의 역할이 절대적이라고 보았다. 성현정치의 기본원칙을 제시한 퇴계는 수양을 통한 개인의 철저한 자각이 근본적인 사회문제의 치유책이 된다고 주장하면서 천명을 뜻하는 ‘이’를 중요하게 보았으며 ‘경’에 근거한 수양 및 존양성찰로 인간의 본성을 회복해 진정한 성현정치를 이룰 수 있다고 했다. 또한, 백성들의 의사가 위정자들에게 최대한 반영되어야 하며 여론정치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그는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라고 보았는데 왕의 영향력을 통해 백성들이 부유하게 되고 모든 정치가 백성들을 근본으로 하여 행해질 수 있다는 점을 나타내었다. 이러한 민본의식의 결정체로 향약을 중요성을 나타내었다. 퇴계는 교육권의 독립성과 사도의 확립, 학생들을 선비로 대접함으로써 서원교육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한국정치사상의 그 흐름과 맥락과정에 대해우리나라에 최초로 등장하는 나라이며 성읍국가였던 고조선으로부터 시작해 연맹왕국, 중앙집권적 귀족국가(고대국가)에 이르기까지 국가형성과 발달과정에 있어서 각각 가지고 있는 가치와 요소들은 결코 작은 부분들이 아니며 정치적인 흐름을 파악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원시신앙 중에 하늘을 가장 위대한 것으로 간주하며 제정일치시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제정분리시대에도 하늘이 갖는 의미는 상징적이며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연맹국가들의 제천의식을 국가의 대규모 행사로 설명함으로써 개인이 아닌 국가 차원에서 이루어진 제사이며 축제로 보고 있고 제천의식과 민회를 긴밀한 관계로 보고 있는데 연맹왕국의 민회는 구성원 모두가 참여하는 민회가 아니라 그 구성원들을 대변하는 대표자들에 의해 행해지는 간접적인 형태의 민회로 나타났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제천의식과 민회는 고대국가와 근현대사에 걸쳐 직간접적으로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단군신화에 대해서는 그 역사성을 인정하는 몇 가지 근거를 밝힘으로써 신화가 아니라 개국사화로 본다는 것이며 중국의 황제가 동이인 이라는 점과 백제의 잔여 집단이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점으로 볼 때 중국, 일본도 결국에는 하나의 뿌리인 한민족에서 탄생했다는 것으로 나타내고 있다. 단군의 이념인 홍익인간은 인간의 존엄성에 바탕을 둔 사상이며 단군왕검은 제사장과 정치적 군장의 결합체로 제정일치 시대의 지도자라는 점을 보여준다. 특히 천, 지, 인이라는 전통사상이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것을 나타내며 중국에서 유, 불, 선 3교가 전래되기 이전부터 풍류라고 하는 고유한 사상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 유입되면서 형성되고 발전되었다고 한다. 역사가 가장 오래되었으며 사회정치적으로 지배력을 행사했던 무속은 일반적인 잡귀를 숭배하는 것과는 다르게 천, 지, 인 융화에 기초했다는 점이 크다고 설명하고 있다.예부터 우리 민족은 자연 만물을 신성한 것으로 보고 믿음으로 숭배를 하였는데 이것은 특정한 종교적인 것과도 융합되어 현대사회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무당을 찾아가 사주를 하고 굿을 하도록 하거나 마을에 있는 오래된 자연물에 정성을 다하며 기도를 한다는 것을 종종 매체들을 통해 볼 수 있다. 그만큼 인간이 절대적인 존재에 대해 경외심을 갖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인간이 나약한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떤 절대적인 존재에 무조건적으로 복종할 경우 좋은 방향으로 가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고 나쁜 방향으로 가게 된다면 걷잡을 수 없이 위험한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독일의 히틀러를 추종했던 세력들이나 일본 천황의 명을 받들었던 가미가제, 북한의 김정은을 찬양하며 추종하는 세력들처럼 그들에게 절대적인 존재는 모든 세상 사람들이 느끼기에 극악무도한 독재자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절대적인 존재에 대해 너무 맹신해서도 안 되며 무비판적으로 추종해서도 안 된다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