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역동이론1. Freud의 정신역동이론정신분석 혹은 정신역동 이론은 Sigmund Freud(1856-1939)가 그 대표라고 할 수 있다. 정신분석이라는 말은 심리적 과정 특히 무의식적 측면을 탐색하고 문제를 치료하는 방법과 절차를 의미하기도 하며 성격이론의 한 분파를 지칭하기도 한다. 정신역동은 마음이 안정된 상태에 머물러 있지 않고 여러 힘들이 함께 작용하는 긴장을 띤, 변화하기 쉬운 상태에 있음을 의미한다.Freud는 신경증 환자들과 자신을 예리하게 관찰해서 이를 토대로 정신분석 이론을 주장했다. 그는 인간의 행동이 주로 무의식에 의해 결정되고 그 무의식을 움직이는 중요한 성분은 성적이거나 공격적인 추동이라고 주장한다. 인간은 폐쇄된 에너지 체계며 한 사람의 타고난 심리적 에너지는 전체 양은 변화하지 않지만 어떤 곳에 머무르는가는 달라질 수 있다고 보며 그에 따라 개인 행동의 특성이 크게 달라진다고 본다.Freud는 초기에는 추동을 자기보존 경향에 해당하는 ‘자아 추동’과 종족보존과 관련되는 ‘성 추동’으로 나누기도 했으나, 후기에는 이 둘을 ‘삶 추동(eros)’으로 묶고 ‘죽음 추동(thanatos)’을 삶 추동에 대비시켰다. 죽음 추동은 죽음과 파괴(무질서: entropy)를 향하게 하는 힘의 근원이다. 동일한 행동(예, 먹기)에 삶 추동(에너지를 얻고 생명을 유지하려는)과 죽음 추동(음식물을 자르고 부수는 등으로 반영되는)이 동시에 공존한다고 보았다. 추동은 신체적 근원(예, 호르몬이나 성감대 등)에서 유래하며 불유쾌한 긴장을 초래케 하고, 심리적인 감정(예, 불안)이나 생각(얄미운 동생) 등으로 욕구의 형태로 나타나며 욕구가 행동을 일으킨다. 흔히 성적이거나 공격적인, 이기적인 추동은 사회와의 갈등 때문에 직접적인 긴장감소를 이루기가 쉽지 않다. 즉, 성과 공격 추동은 사회적 목표를 해치지 않는 승인된 방식으로 방향을 틀어 표현되어야 한다. 그렇지 못했을 때는 부모로 대표되는 사회와 갈등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이런 갈등은 ‘원초아’, ‘자아’, 그리고 ‘초자아’라는 마음속 세 성분들 사이의 역동으로 나타난다.2. 정신역동이론의 발달단계1) 구순기=구강기(oral stage)본능적 생활의 가장 초기단계이자 심리성적 발단단계상의 첫 단계는 구순기이며, 이 단계는 생후 약 1년 반 정도까지이다. 이 시기에 유아는 자신의 생존을 위하여 전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의존은 본능적 만족을 충족하기 위한 유일한 방식이다. 구순기에는 수동적으로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으며 생활하기 때문에 유아는 의존적이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분화되지 않은 상태이다. 특히나 구순기 전반기에는 유일한 접촉대상이 어머니이므로 어머니에게 합일하고 접근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구순기 후반에는 이유(離乳)로 인한 욕구불만 때문에 어머니에게 애정과 우호적 태도를 갖는 동시에 적대적이며 파괴적인 태도를 갖게 된다. 이때 유아는 최초의 양가 감정(ambivalence)을 경험하게 된다.2) 항문기(anal stage)1.5 세에서 3세 사이에는 성감대가 구순영역에서 항문영역으로 옮겨간다고 해서 항문기라고 부른다. 이 시기의 아동은 신경계의 발달로 괄약근을 수의적으로 조절할 수 있게 되는데 변의 보유 및 배설과 관련된 행동을 중심으로 하여 성격이 발달된다. 부모는 배설물이 더러운 것으로 간주하여 아동에게 청결습관을 가르치게 되는데 이것이 배변훈련이다.3) 남근기(phallic stage)Freud 의 심리성적 발달단계 중에서 가장 복잡하고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 졌지만 논쟁의 여지도 많은 단계이다. 에디프스기(oedipal period)라고도 하며 부모와 형제, 자매간에 갈등을 많이 느끼는 시기이기 때문에 가족 삼각 관계의 시기라고 한다. 남근기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나므로 이 시기를 가장 중요한 시기로 지적하였다.4) 잠재기(latency)6세부터 사춘기까지 지속되는 시기로 유아적인 성적 에너지가 무의식 속으로 잠복하는 성적 성숙기라고도 하며, 아동의 성적 욕구가 철저히 억압되어 외형상으로는 평온한 시기 라고 불렀다. 유아적인 성적에너지가 무의식 속으로 갇히게 되는 이유를 생리학적 현상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고 있지만 남근기의 커다란 정신적 외상에서 벗어나서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기를 원하는 아동의 심리적 요인에 기인한다는 해석도 있다. 이 시기에는 리비도가 잠복하면서 성적으로 자극됨이 없이 다른 동물에게서는 볼 수 없는 문화적 활동으로의 승화현상이 나타난다. 남녀관계에 있어서는 성적반발이 나타난다. 아동은 이제 사회화될 수 있으며 교육과정을 통해 보다 형식화된 경험을 하게 되는 더 큰 세상으로의 관심을 돌릴 수 있다. 이 상태는 사춘기와 청소년기가 시작될 때까지 계속된다.5) 생식기구순기부터 남근기까지는 자기애적 성본능이 강한 전 생식기(pre-genital stage)에 해당하며 자기의 신체를 통한 성애의 시기로 자기색정이라고 하며, 리비도가 자기를 행하는 때로 제1차적 자기애라고도 한다. 사춘기 기간 동안 지속되는 생식기(genital stage)에는 정신적 사랑을 하게 된다. 리비도가 자기이외의 것을 향한다 하여 대상리비도라고도 한다. 사춘기에는 생식기관이 발달하고 남성 또는 여성 호르몬의 분비가 많아짐에 따라 2차적 성적 특징이 발달하게 됨으로써 억압되었던 성적 관심이 다시 되살아난다. 생식기는 사춘기 전기와 사춘기로 나뉜다. 사춘기 전기는 12,3세부터 시작되며 성적성숙을 준비하는 시기이다. 이시기의 리비도는 다시 유아기의 애정대상을 지향한다.3. 역동이란?정신역동적 정신의학 혹은 역동정신의학은 어느덧 그 역사에 있어 두 번째 세기를 시작하고 있다. 1970년 Ellenberger는 1880년에서 1900년 사이에 이 용어가 처음 사용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Leibniz는 원래 정적(static)이라는 개념과 반대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역동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고, Fechner는 정신에너지에 대해서 이 용어를 사용하였으며 이런 면에서 아마도 Freud에게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정신역동의학에는 Freud가 가장 큰 기여를 하였다고 볼 수 있다. 즉, 역동적 접근방법은 Freud의 정신분석이론과 그 지식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역동정신의학이 정신분석적 정신의학에 비하여 더 넓은 영역을 포함한다고도 하지만, 현대에 와서는 ‘정신역동적’이라는 말은 ‘정신분석적’이라는 말과 같은 의미로 쓰이고 있다.4. 정신역동이론 가운데 프로이트 이론 평가정신분석은 프로이드가 히스테리신경증 환자를 최면술로 치료하다가 그 한계를 알고 새로이 자유연상 (free association) 이라는 기법을 사용하면서 시작되었고, 이어 꿈의 해석, 전이와 저항의 해석 기법이 개발되었으며, 정신분석의 모든 이론이 태동되었다. 환자의 문제가 현재보다 주로 환자의 과거 어린 시절에 경험한 정신적 상처가 억압되어 무의식적 갈등이 만들어짐으로써 생겼을 때, 정신분석은 이를 역동적으로 추구하여 무의식적 체험을 의식화하여 억압된 성욕이나 공격성의 본질과 자기문제의 핵심을 통찰하고 전체 인격구조 속으로 다시 통합되도록 하는 것이다. 치료자의 해석과 환자의 깨달음(통찰)을 얻는 능력 사이에 균형을 이루어가면서 이 과정이 진행된다. 정신분석은 소정의 교육과 훈련을 받은 정신분석가와 정신적 문제를 가진 환자인 피분석자간의 치료계약에 의해 시작된다. 환자는 대개 장의자에 비스듬히 눕고 분석의는 그 뒤편에 앉는다. 분석 시간은 1회당 45분 정도로 매주 4~5회 2년 이상 실시한다. 치료자는 미리 계획된 질문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환자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생각을 자유로이 그리고 숨김없이 표현하는 자유연상을 시킨다. 이 때 치료과정을 통하여 전이가 일어나는데 이는 환자가 유아시절에 부모나 부모 대행자로부터 경험했던 사랑과 미움의 감정이 치료자를 향해 재현되는 현상이다. 즉 자유연상이 되지 않고 중단되거나, 치료시간에 결석하거나 지각하거나 하는 것이다. 치료자는 혼자가 말한 사실에 대해 치료자와 환자가 더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살펴봄으로써 환자가 그 의미를 더 정확하게 알게끔 명료화하기도 한다. 또한 환자의 말이 모순되거나 일관성이 없을 때 이를 지적하고 설명해 보라고 하는 직면의 기법도 사용된다. 치료자는 자신이 파악한 전이와 저항, 그리고 방어기제, 무의식의 내용 등을 적절한 시기에 환자가 이해하게끔 그 의미를 해석해 준다. 그러나 감정적으로는 중립을 취한다. 중립이란 치료자의 태도가 허용적일 뿐만 아니라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을 치료에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말한다. 충고나 암시 및 지시를 최소한 줄이며, 치료자는 자신의 환자에 대한 무의식적인 감정적 반응(치료자가 과거 중요인물에 대해 가졌던 감정을 환자에게 향함), 즉 역전이를 극복하거나 예방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 참여적 관찰자의 입장을 취한다. 치료자와 환자는 현실에 기초하여 같이 문제해결을 위해 서로 믿고 협조 노력하는 치료동맹 관계에 있다. 무의식을 이해하는 자료로 실수나 실언 및 선택적 망각을 들 수 있지만, 특히 꿈은 무의식을 이해하는 중요한 현상이다. 전통적 정신분석에는 꿈의 해석을 시도한다. 꿈을 꾸게 하는 잠복된 원래의 충동이나 억압된 감정이 있는데 이를 잠재몽이라 한다. 잠재된 내용이 여러 방어기제의 꿈 작업에 의하여 억압된 원래 내용으로 바뀌어진 후 꿈으로 허용되도록 타협이 되어 이차적 가공을 거쳐 현재몽으로 발현된다. 꿈의 해석은 그 잠재몽을 밝히는 것이다. 이러한 분석이 진행되면서 통찰을 얻은 후 현실적 차원에서 무의식적 갈등의 재현을 극복하는 훈련과 연습이 뒤따라야 분석치료가 실효를 거두게 된다.
‘탁족도’를 통해 엿볼 수 있는 선비정신서론조선 중기, 즉 1550년과 1700년의 선비들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그리고 정묘과 병자년에 일어난 호란 등을 겪으며 사회적으로 위태로운 시기를 보냈다. 그로인하여 그들의 정신은 곧 자연으로 귀의하여 더 높은 정신적인 성장을 이루고자 하는 의지로 이어졌다. 선비들의 이상향을 엿볼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선비들이 그린 옛 그림을 보는 것이다. 선비들은 예술작품을 통해 간접적으로라도 이상향에 도달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우주적인 진리와 공간의 조화를 이루고 있는 산수의 진경을 그려내었고, 진득이 바라봐야 삶의 터전 이상으로서 존재하고 있는 강수를 제대로 볼 수 있다는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자연과 하나되어 교감하는 일을 내적인 자원으로 받아들이고 확충하며 자신이 정말 산수 속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을 그림을 통하여 느끼고자 했다.선비는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는 존재가 아니라 조화하고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이와 같이 자연과 하나 되어 내면의 성장을 이루고자 함의 근본중 하나가 되는 것은 도가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상을 가진 선비들이 그린 그림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은, 바로 산수 배경 안의 인물을 통해 작가의 사상이 은유적으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따라서 조선 중기의 회화를 보면 산수 안에서 인물이 중심이 되는 ‘소경산수인물화‘를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이는 조선 선비들의 안빈낙도(安貧樂道)를 추구하는 마음과, 자연의 질서를 인간이 정신적으로 본받아야 옳다고 생각한 그들의 사상이 옛 그림 속에도 녹아들어있기 때문이다.이러한 옛 선비들의 사상은 우리나라의 근원적인 자연환경과 우리 민족의 정신이 깃들어 있고, 이것이 그대로 옛 회화에 담겨있기 때문에 비단 작품 하나를 살펴보는 일이라도 그것에 정성과 탐구정신이 있다면 그 사상을 계승하여 본받는 일이 가능할 것이다.필자는 조선 중기 소경산수인물화 중에서도, 이경윤(1545~1611)의 탁족도(濯足圖)에 관하여 논하고자 한다. 산수인물화는 조선 중기는 물론 초기에서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조선 초기 산수인물화에서의 인물들은 소극적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반해 조선 중기의 작품에서는 인물이 조선 초기에 비해 더욱 적극적으로 묘사되는데, 이는 앞서 말한 도가사상이 조선 중기에 더욱 널리 퍼져 자연을 통해 내적인 성숙을 이루고자 하는 태도가 그림에도 반영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본론탁족도는 말 그대로 ‘발을 씻는다’라는 의미로서, 그림 속 인물은 산수 안에서 발을 씻고 있고, 동자는 옆에서 술을 권하고 있다. 작품 안에서 크게 눈에 띄는 것은 ‘물’과 ‘매화’, 그리고 발을 씻는 선비의 모습, 즉 ‘탁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작품 속에 두드러진 요소들을 하나씩 살펴보며, 소경산수인물화인 탁족도에 담긴 옛 선비들의 정신을 살펴보도록 하자.ㅋㅋㅋ1.물물은 대개 약하고 부드러운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물은 어떤 일에도 끊어지는 일이 없고, 밑에서부터 위로 치오르는 역행을 하지 않는다. 조선의 선비들은 물을 자연의 최고로 생각했다. 물은 자연의 모든 것을 이롭게 하고 조화를 이루어 다투지 않고, 모두가 꺼려하는 가장 낮은 곳에 머물러 도에 가장 가까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강과 바다가 모든 계곡의 왕이 되는 이유는 남을 낮추는게 아니라 자신을 항상 낮추어 주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이 높아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노자는 물을 세상에서 가장 부드럽지만 가장 강한 것을 마음대로 부리고, 형체가 없지만 모든 틈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논하며 물의 자연적인 가치를 높게 평했다. 즉 옛날의 선비들은 물로 하여금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기고, 자신을 낮추는 자가 결국은 도를 갖추는 길이라는 것을 산수화 안에서 드러냈던 것이다.2. 탁족앞서 말했 듯 ‘탁족’은 발을 씻는다는 의미이다. 그림을 보면 물 속에 발을 담그고 유유자적하는 선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림 속 인물은 국적이 불분명한 편한 옷을 입고 그마저도 풀어헤쳐 볼록한 가슴과 배를 모두 드러내고 있다. 바지는 허벅지까지 모두 걷어올려 다리를 꼬았다. 머리에는 어떤 거추장스러운 것도 쓰고있지 않다. 옆에서는 동자가 술병을 들며 권하고 있다. 옛 선비들에게 술, 시, 그리고 거문고는 교양이었다. 자연 속에서 술을 한잔 들며 탁족을 하는 모습은 곧 그들에게는 인격의 수양이었고 내면의 수련이었다. 이러한 모습은 자연과 하나되어 풍류를 즐기고 노니는 것을 인격의 수양으로 여기던 선비들의 사상이 드러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조선시대에는 탁족이 선비들만의 전유물이었던 것은 아니다. 서민들도 모두 더위를 피하기 위해 탁족을 즐기곤 하였다. 그런데 선비들에게는 서민들과는 다른 목적이 하나 있었다. 더위를 피하기 위해서는 폭포를 맞을 수도 있고, 물 안에 온 몸을 담글 수 있지만, 선비들의 그림에는 그러한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고 오직 탁족도만이 보일 뿐이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중국의 '초사(楚辭)'에 나온 이야기를 알아야 한다. 초사의 한 구절에서, 어지러운 세상에 혼란스러워하는 한 인물에게 어부는 말한다."어부가 빙그레 웃으며, 노를 두드리며 노래하기를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을 것이요(탁영濯纓),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을 것이다(탁족濯足)'라고 하면서 사라지니 다시 더불어 말을 하지 못하였다"이 이야기에서 어부가 하는 말의 의미를 풀어보자면, ‘세상이 바르고 기회가 되면 갓을 씻고 벼슬에 나아가야하고, 세상이 혼란스럽고 악재가 판을 칠 때에는 발을 씻으며 기회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조선 중기는 매우 혼란스러운 사회였다. 국가는 여러 가지 난을 겪으며 진정이 될 일이 없었다. 이에 조선의 선비들은 출세를 하고자 해도 어지러운 세상에 혼란스러워했고, 이에 초사에 나온 이야기처럼 발을 씻고 풍류를 즐겨 인격을 수양하면서도, 때를 기다리고자 한 것이다.그림 속에서 한가지 더 눈에 띄는 것은 바로 발가락이다. 그림을 통해 우리는 탁족 중인 인물이 속세를 떠나 은둔하고 있는 선비라는 것을 알 수 있으나, 선비는 발을 담근 물이 너무 차가워서인지 발가락을 꼬고 있는데, 이를 통해 해학적인 요소까지 드러나고 있다. 선비들이 보통 가지는 권위적인 모습이나 근엄한 모습을 벗어나 웃음을 자아내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 해학적인 요소는 단순히 웃음때문만이 아니라, 솔직한 감정의 표현이라고도 볼 수 있다. 경쾌한 모습과 정신적인 자유를 드러냄으로써 세속에서 벗어나 유유자적하고 있는 선비의 모습을 진솔하게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3. 매화매화는 사군자, 난초는 홀로 산의 기슭에서 피어나며, 국화는 늦은 가을 첫 추위를 이겨내며, 추대나무는 추위에 굴하지 않고 항상 푸르고 꼿꼿하다. 이러한 사군자의 모습은 선비들이 따르고자 하는 모습이었다. 따라서 옛 그림에서 사군자를 자주 볼 수 있는 것도 당연한 이야기일 것이다. 탁족도에는 사군자 중 하나인 매화가 자리잡고 있다. 매화를 통하여 선비의 지조와 절개를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여기에는 한 가지 다른 해석을 해볼 수 있다. 매화가 피어나는 계절은 이른 봄, 즉 겨울이 지나가고 봄이 찾아올 때이다. 따라서 그림 속의 계절은 이른 봄이다. 이는 즉 어지러운 세상이 지나가고 이제 봄이 찾아와 그림 속 선비가 세상으로 나갈 기회가 왔음을 뜻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결론선비들이 그려낸 옛 그림에는 선비들의 정신이 녹아있다. 조선 중기에 널리 퍼진 도가사상과 어지러운 사회와 그로 인한 선비들의 고뇌, 그에 대처하는 자세 등이 ‘탁족도’에 담겨있는 것처럼 말이다. 탁족도는 우리가 물에 발을 담근 선비의 모습을 보고 ‘물’이 선비들에게 어떤 의미였는 지를 탐구하게 만들었다. 또한 선비들이 탁족하며 풍류를 즐기는 안빈낙도의 정신은 물론 어지러운 세상을 등지고 몸을 숨겨 때를 기다리는 선비사상을 보여주었고, 그와 동시에 우리 민족 특유의 해학까지 엿볼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림 속에 나타난, 사군자 중 하나인 매화를 통하여 선비가 걸어야 할 정도가 어떤 것인지 말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를 느낄 수 있었고 더욱이 이제는 혼란스러운 시대가 지나가 세상의 벼슬로 나아갈 때가 당도하길 기다리는 해석도 해볼 수 있었다. 결국 조선 중기의 소경산수인물화 탁족도에 나타난 발을 닦는 선비의 모습은 자연이 가진 섭리를 선비가 가진 생활 태도로 비유해 자연과 산수에 대한 사랑과 그 가운데 여유롭게 풍류를 즐기는 무위자연의 모습을 깨닫게 하는 표현이 잘 드러난 것이고, 조선 선비들의 시대정신과 한국의 미 의식의 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된 것이다.참고문헌정민영, 2014, 「그림으로 본 옛 사람들의 피서」이승은, 1997, 「조선중기 소경산수인물화에 대한 고찰」심영옥, 2003, 「조선중기 “수(水)” 소재의 소경산수인물화(小景山水人物畵)에 나타난 도가적 예술관-관폭도(觀瀑圖), 탁족도(濯足圖), 조어도(釣魚圖)를 중심으로-」고연희, 「조선시대 산수화」, 돌베개, 2007허균, 「한국의 정원, 선비가 거닐던 세계」, 다른 세상, 2002안휘준,「한국 회화의 이해」, 시공사, 2000* 전통미술 수업시간에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과 그 이유개인적으로 제가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정선필의 의 「옹천도」입니다. 바위를 표현한 붓놀림과 넘실거리는 파도를 표현한 붓놀림의 대비가 인상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바위는 거칠고 두껍게 붓을 쓸어내려 표현하였고, 파도는 가늘고 섬세한 선으로 그려졌기 때문에 한 그림 안에서 강하고 세찬 손놀림과 그와는 완전히 대비되는 섬세한 손놀림이 동시에 상상이 되어 그림을 보며 즐거웠습니다.
한국, 중국, 일본의 주거문화목차Ⅰ. 서론Ⅱ.한중일의 주거문화1. 주거의 의미. 발전 성향2. 한중일의 주거문화1)한국의 주거문화2)중국의 주거문화3)일본의 주거문화3. 한중일의 주거문화 비교Ⅲ. 결 론Ⅰ. 서론인간이 자연에 적응하고, 생존하는 데에 있어서 다른 동물과는 다른 점이 있다. 바로 ‘문화’이다. 자신이 처한 환경에 따라 다르게 나름대로의 ‘문화’를 창조해, 그 환경에 적응하고 발전해온 것이 인류이다. 즉, 자신이 처한 환경, 자연을 이해하며 그 속에서 도구를 발달시켜 생존확률을 높이고, 점차 문화라는 것이 발달해 온 것이다. 문화는 현재보다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독특한 표현인 것이다. 특히 인간이 창조해낸 문화 중, 의식주 문화는 인류의 가장 기초적인 생활과 밀접한 영향이 있다. 따라서 의식주 문화 중에서, 주거 문화를 살펴봄으로써 인간이 자연 환경에 어떤 방식으로 적응하고 발전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 그리고 가장 깊은 관계를 가진 중국과 일본 세 나라의 주거문화를 탐구함으로써 세 나라의 독특하지만 때로는 유사한 주거문화를 이해해 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다른 나라의 주거문화를 이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문화를 한걸음 떨어져 객관적으로 바라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Ⅱ.한중일의 주거문화1. 주거의 의미, 발전성향주거의 정의는, 인간을 비, 바람, 추위, 더위 등의 자연적인 피해와 도난, 파괴 등의 사회적인 피해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건물 뿐 아니라,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생활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인간은 자연에 적응하기위해, 자신들의 몸을 보호하고자 집을 짓기 시작했다. 점차 문화가 발달해 오면서 생존은 물론이고, 생리적인 욕구인 수면, 식사, 배설 등의 문제를 해결하고, 휴식과 문화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재창조 공간으로서의 기능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인류는 태초부터 주거지를 짓기 시작했으며, 인지(人智)가 발달하면서 더욱 쾌적하고 건실한 주거지를 짓기 위해 노력해왔다.있다. 그리고 남북 간의 기온 차이가 현저하게 드러난 다는 점도 하나의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우리나라 전통 주거문화의 대표적인 예는 한옥일 것이다. 조선시대 주거문화인 한옥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끼친 중심적 사상은, 집의 모든 공간에는 그것을 지키는 신이 존재하며, 특히 집안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주관하는 ‘가택신’이 존재한다는 사상이다. 이는 조선시대 한옥 뿐 아니라, 동양 전반적으로 많은 영향을 주고, 음양오행설, 도성·주거·분묘·사찰의 건설, 재앙과 화를 피해 행복을 가져오는 지리적 판단을 내리려는 풍수지리설과도 관련이 있다. 이러한 사상은 조선시대에 많은 영향을 주었으며, 현재에도 당산·성황당·장승 등으로 그 명맥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조선시대 대표적 사상의 또 다른 예가 될 수 있는 유교 문화는 균형과 질서, 위계를 중시한다. 유교문화는 개인보다는 조화를 중시하고 조상을 숭배하는 것을 중시했다. 이는 조선시대 주거 문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가령, 가묘(家廟)라 하는 조상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별도의 공간이 주거지에 지어졌다는 점이 그렇다. 또한 남녀의 공간이 분리되어 지어진 점 역시 유교사상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한국의 전통주택(한 옥)의 유형과 그 특징한옥은 당시 조선시대의 신분에 따라 세 가지의 유형으로 나뉜다. 평민주택, 중류주택, 그리고 상류주택이 그 종류이다. 이 형태에 따라 우리나라 주거문화의 특징을 찾아 볼 수 있다. 중류형의 주거지는 평민주택과 상류주택의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어 비교적 잘 대비되지 않아, 여기서는 평민주택과 상류주택을 알아보기로 한다.먼저, 평민계층이 거주하던 한옥인 ‘민가’을 알아보자. 민가는 당시 지역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성과 그 문화를 알아볼 수 있는 대표적 주거지라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의 평민계층은 농업기술의 발달로 생활이 조금씩 윤택해져감에 따라 주거문화에서도 생활적 편의를 추구하게 되었다. 민가는 기후에 따라 형태가 다르게 지어졌는데, 이는 크게 ‘분산형’과 ‘집중형’, 그리고 ‘특수형’으로 나에는 각기 환경에 맞춰 독특한 형태를 취해, 특수형이라고 불린다. 가령, 눈이 많이 내리는 울릉도의 경우에는 눈이 쌓여 집이 무너지는 피해를 막기 위해 지붕을 비스듬하게 짓는 ‘투막집’이 발달했다.상류층이 거주하던 상류주택은, 종 2품 이상의 벼슬을 지내던 소위 ‘양반’들이 거주하던 주거지로, 다른 민가들에 비해 담이 높고, 대문의 크기가 큰 주택을 의미한다. 상류주택은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사람들이 거주하던 주거지이기 때문에 기능적으로 우수할 뿐 아니라 미적인 부분과 공간적 표현 의식이 다양하게 드러난다. 상류주택은 대문, 주로 밖에 지어져 하인들이 거주하던 행랑채, 주로 여성들이 기거하던 안채, 손님을 접대하던 사랑채, 그리고 몸채에서 떨어져 지어져 다목적으로 쓰이던 별당과 조상의 신주를 모시던 사당으로 구성된다.민가와 상류주택은 공통적으로 자연과 함께 조화를 이루려는 목적이 드러난다. 자연을 구획해 주거공간을 지었지만, 여전히 자연과 교감하려 노력하는 우리 주거문화의 정서가 드러나는 것이다. 차이점으로는, 민가는 대칭적인 모습을 많이 보이지만 상류주택은 건물 곳곳에 비대칭적, 비정형적인 모습을 보이며 주거적인 대칭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환경을 추구해 미적인 요소를 생각한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을 들 수 있다.2) 중국의 주거문화- 중국의 주거문화에 영향을 끼친 환경과 지형적 특성, 사상중국은 장대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또한 방대한 크기의 인구를 가지고 있어, 그만큼 다양한 종족이 어우러져 사는 다민족 국가이다. 세계 4대 문명 중 하나인 황하문명의 발생지라는 것만 보아도 그 역사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다. 중국 황하지대 인근에는 황토고원지대가 넓게 분포하여 있으며 이에 따라 땅을 절반쯤 파내려간 반지혈식 주거지가 3~4천년 간 지속적으로 발달했다. 또한 중국은 구릉. 평원, 고원 등 다양한 형태의 환경이 조성되어 있는데 이에 맞게 독특한 주거문화들이 발달하였다.중국 역시우리나라와 유사하게 유교사상과 도교에도 적잖은 영향을 받았다. 즉, 남녀의 생활공간 분리,리는 4각의 건물이 중정을 둘러싸고있다는 의미로, 중정은 생활공간의 중심지였다. 사합원은 중국의 전통적 주거지로, 명나라 이후로 명맥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사합원은 중국의 사회적인 질서를 반영해 당시의 정확한 건축 규칙에 따라 지어졌으며, 중국 주택 간의 유사성을 보여주는 주거지이다. 사합원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외부적으로는 벽이나 지붕, 바닥에 구멍이 거의 보이지 않는 폐쇄적인 형태이며, 내부적으로는 개방적인 공간임을 알 수 있다. 대문은 풍수지리사상의 영향을 받아 건물의 북동쪽 혹은 남동쪽으로 향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정방의 좌우와 전면에 배치된 상방에 주로 아들들이 거주하고, 뒤쪽 ‘후조문’에는 딸들이 거주해 남녀의 구분이 뚜렷했다는 점을 보여준다.환경에 영향을 크게 받은 중국의 대표적 주거지는 황토고원의 ‘요동’이다. 이 주거지는 황토고원지대에서 유일하게 얻을 수 있던 재료인 황토를 이용해 지어졌다. 이 지역에는 황토층이 파여 깊은 골을 이루게 되어 골짜기가 생성되었는데 이에 적응하기 위해 요동이라는 주거문화가 만들어진 것이다. 또한 남동쪽 해안가에서는 북쪽에서 내려온 한족들이 정착함에 따라, 토착민들과의 마찰을 빚으며 생겨난 주거형태인 ‘토루’가 대표적이다. 이는 토착민들로부터 안전하기 위해 방어적인 형태를 띄고 있으며, 결속력을 높이기 위해 단독주택들이 밀집된 양상을 보인다.3)일본의 주거문화-일본의 주거문화에 영향을 끼친 환경과 사상일본은 비교적으로 높은 산이나, 사막 등의 특징적인 요소보다는 평야와 같은 온화한 환경이 주를 이룬다. 이에 따라 일본 사람들은 자연에 대한 사고 역시 웅장함이나 웅대함보다는 세련된 것, 온화한 것을 추구했다. 또한 대륙 문화나 다른 나라로부터의 문화를 수용하는 데에 적극적인 태도를 취했고 외래문화를 자신들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수용해 전통문화와 융합시켰다. 일본은 예부터 자연재해로부터 입는 피해가 잦아 튼튼한 집을 짓기 위해 목재를 자주 사용하였는데, 그 건축법으로는 기초와 기둥을 다지고 후벽을 만들어 지붕을했고, 가장의 권위를 중시했다. 특히 눈에 띄는 다른 나라와의 차이점은 차를 마시기 위한 공간인 ‘다실’에 있다. 예부터 일본은 가족 간의 이야기를 나누거나, 손님을 접대할 때 다실에서 차와 함께하는 것을 중요시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는 일본의 주거지는 정치적인 영향으로 인해 주거의 평면적이 다양화 되었다는 점을 큰 특징 중 하나로 들 수 있다.-일본주택의 특징, 발달형태일본의 주거지는 크게 상류주택, 그리고 민가로 나눌 수 있어 한국과 유사한 면모를 보인다. 상류주택은 일본 귀족들이 주로 거주하던 주택으로, 헤이안 시대 귀족들의 주택인 ‘침전조’가 대표적이다. 침전조는 실내에 벽이 없으며 휘장으로 공간을 구별하며, 빛이 상대적으로 들어오지 않아 어둡고 개방적인 형태를 보인다. 이로인해 여름에는 시원했으나 겨울의 추위에는 다소 약한 모습을 보였다.헤이안 시대 이후 가마쿠라 시대에는 무사계급인 사무라이들이 침전조의 건축 양식을 삼가고, ‘무가’를 건축하기 시작했다. 화려한 침전조 건축 방식을 멀리하고, 민가 양식을 도입해 절제와 검양의 형식을 추구한 것이다.무가는 이후 ‘서원조’로 발전해, 모모 야마시대에는 접객과 가주의 사생활을 구별시켜 접객 형식을 더욱 화려하게 변화시킨다. 자신들의 생활은 여전히 검양과 절제에 중점을 두었지만, 접객을 하는 데에는 화려함을 추구했던 것이다. 이 접객 공간에는 ‘쇼인’이라는 서재 외 3가지의 방이 더 건축되어, 무인계급끼리의 상하계급을 나눴다. 쇼인에는 ‘도꼬노마’라는 중국풍의 수묵화나 그림, 서예 등으로 장식되는 공간이 있었는데, 이는 불교사원의 영향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로 인해 주택의 개방성이 두드러지게 되었고, 내부와 외부의 구별이 점차 희박해졌다.일본의 민가는 주로 온난한 남부 지방에 분포하는 ‘다노지’형과, 여러 명이 쓰는 방인 ‘히로마’의 주변으로 여러 방이 배치되는 히로마형이 대표적이다. 일본 민가는 남부지역과 북부지역 두 문화의 융합으로 이루어졌는데, 북부지방 일본의 전통적 난방 장치인 ‘이로리’와 ‘고다쯔’.
조르주 바타이유의 ‘에로티즘의 역사’목차여는 글제 1부 서문제 2부 근친 상간의 금기3부 금기의 자연적 대상들4부 위반5부 에로티즘의 역사6부 에로티즘의 복합적 형태맺는 글조르주 바타이유((Georges Bataille, 1897-1962)는 ‘에로티즘의 역사’에서 성적 체험을 ‘심오함이 신비 체험과도 아주 유사한 총체적 극단의 체험’이라고 표현했다. 조르주 바타이유(이하 ‘저자’)는 이러한 극단적 체험이 가져다주는 격렬함과 깊이를, 사람들은 천하게 취급하고 더럽게 여기며 멸시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후 인간들은 에로티즘을 내재적인, 자연적인 것으로 여기며 라고 말한다. 저자는 이러한 모순된 태도들을 정연되고 일관적인 이론으로 정리하고자 한다.이 책에서 에로티즘을 대하는 저자 본인의 태도 역시 이중적이다. 저자 역시 이러한 자신의 태도를 책 내에서 인정하고 있다. 저자의 ‘성 행위가 어딘 가에 좋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에로티즘에서 중요한 것은 아무런 쓰임이 없는 절대적 형태이다...’ ‘일반적으로 수치스럽게 여겨지고, 비난의 대상이 되는 행위를 절대적 행동의 원리로 삼는다는 것은 어쩐지 불견하게 여겨진다..’ 라는 문구에서, 일반적인 사람들의 통념이 드러나고, 저자 역시 인간이기에 그 통념의 범주에서 벗어나있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저자는 일과 에로티즘, 심지어 전쟁과 에로티즘 역시 같은 에너지의 샘에서 나오고 있다고 말한다. 현재 우리들이 마주하는 경제, 군사, 인구 문제 등 모두가 성의 에너지와 관련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나의 이런 관점은 어떻게 보면 에로티즘 옹호로 보일 수 있으나, 내가 옹호하고자 하는 것은 다름아닌 “인간성”이다.’ - 조르주 바타이유제1부 서문저자는 인간성은 언제나 모순을 드러낸다고 말한다. 저자는 도둑 떼의 세계와 카르텔 수녀들의 세계는 별과 별 사이보다 멀다고 표현했는데, 이는 서로 이웃처럼 보이는 인간들도 서로를 배척하고, 양립 불가할 수 있음을 말한다. 인간 개인의 내적 세계 속에서도 인간성은 모순을 에 가지고 있으며, 아주 매력적이면서 추하다. 문란하고 타락한 남자가 가정 내에서는 천사같이 상냥하며, 아이를 무릎 위에 두고 어르는 농부가 전쟁터에서는 살인, 고문, 방화를 거리낌 없이 행한다. 이렇게 인간은 양극단에 위치한 세계를 담고 살아가는 모순된 존재이다.이러한 두 세계의 괴리감(저자는 이를 ‘칸막이’라고 표현했다)을 저자는 이 책을 지배하는 구성원칙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일관된 반성적 사유는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를 형성하며, 본인들이 만들어낸 세계임에도 인간들의 세계와는 배척된다. 인간들이 이러한 세계의 존재를 모른다는 것이 아니라, 모른척하고 방관하며 끌어안고 양립한 채 살아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사유는 사유를 구성하는 이해 가능한 인간성의 영역과 저주의 영역을 결코 혼동하지 않는다’ - 조르주 바타이유저자는 정신분석학이 사유와 에로티즘을 구분해서 바라보는 데에 반하여, 에로티즘 세계와 사유 세계를 서로 상호보완적, 양립적이라고 생각한다. 둘이 같이 공존할 때 비로소 총체성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에로티즘의 세계와 지적 세계는 서로 동등하게 존재하며, 우주에 대한 성찰이 에로티즘과 별개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2부 근친상간의 금기인간의 성행위를 ‘에로틱’한 것으로 만드는 것, 동물적이지 않은 것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주로 연상작용에 의해 만들어진다. 이는 주로 성 행위와는 너무나 대립적인 것들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으로 이행된다. 그중 하나가 바로 근친상간의 금기(prohibition de l'inceste)이다.인간은 ‘노동’에 의하여 동물과 구분지어진다고 말할 수 있는데, 노동으로 하여금 인간들은 스스로에게 여러 가지 금기들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시체와 관련된 금기가 살해의 금기를 관여한다. 성 행위에 대한 금기는 민감한 측면들에 연결되어있고, 주로 배설물과 관련되어있다. 우리 인간들은 인류 초기부터 이러한 금기들을 하나씩 지켜내왔고, 이는 곧 관습이 되어 다시 우리를 억제하는 ‘금기’가 되었다. 이에 따라 우리는 근친상간의 금기를 어세계의 속성과 통념에 따라 다른 양상을 보이는데, 이를 확인해보려면 각 세계의 임의적인 경계를 확인해야 한다. 인간의 삶의 형태들을 규정하는 칸막이들은 절대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이성과 기분을 존중한다고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규칙과 금기는 그렇게 주관적이고 임의적이어서, 도전욕구를 불러일으킨다. 우리가 인간이 되는 것은 그러한 금기에 대한 도발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고, 근친상간의 금기가 바로 그 형태중 하나인 것이다.저자는 레비스트로스의 근친 간 상간의 금기에 대한 생각을 말한다. 인간 세계 내의 한 집단의 보호와 질서 유지를 위해서는 남성, 여성간의 동등한 분배가 필요했으며 결혼을 집단과 집단 사이의 소통의 과정으로 삼았다. 이 과정에서 여성 교환법칙을 적립하였고, 근친상간의 금기가 생겨나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렇듯 금기가 생겨난 데에는 집단, 사회적인 속성이 자리 잡고 있으며 이러한 금기에 대한 거부가 인간과 동물적 탐욕과는 전혀 다른 인간적인 태도이다.3부 금기의 자연적 대상들이 장에서 저자는 인간이 금기시하는 것들에 대하여 묘사하고 있다. 그 중 하나는 바로 ‘자연’이다. 앞에서 이미 저자는 인간과 동물의 본질적인 차이는 노동이라고 밝힌 바가 있다. 노동을 통하여 본인들 스스로에게 금기를 설정하고, 역으로 그에 지배받으며 살아간다고 말한다. 노동이라는 행위는 자연을 거부하고, 파괴하며, 자연을 인위적인 것으로 만드는 행위이다. 저자는 인간이 근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혐오감에 대한 것에도 의문을 가진다. 우리는 배설물에 대하여, 씻지 않을 때에 나는 악취에 대하여 본능적인 혐오감을 가지고 있는데, 과연 이를 ‘본능적’, ‘자연스러운’ 이라고 표현할 수가 있냐는 것이다. 우리는 어릴 때 배설물에 대한 거부감도, 씻어야 한다는 강박도 없다. 우리가 아이에게 자발적으로 이러한 혐오감을 가지지 않는다면 사회가 무너질 것이라는 듯 혐오감을 주입시킬 뿐이며, 이러한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인위적’인 것이다.저자는 ‘월경’에 관하여도 설명하고 있다. , 즉 월경으로 인한 피와 출산으로 인한 피의 노출이 있다고 말한다. 출혈은 폭력을 연상하게 만들고 사람의 심리에 혼란을 준다. 즉 피 그 자체로 성적인 폭력을 떠오르게 만든다는 것이다. 따라서 출산, 성기의 노출, 성행위의 노출, 살인의 금지는 모두 연관되어있으며, 이는 집단의 질서를 유지하고 안정화하며, 특히 노동을 보호하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이다.저자는 공포의 주요한 대상이 성적인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인간이 문란한 성 생활에 대하여 거부감을 가지기 시작한 이래로 세상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문명화된 인간세계의 형성이 자연에 대한 공포와 맺는 관계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해서 f더러움’이라는 거부감이 의미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동물들에게는 배설물은 그저 배설물에 지나지 않는다.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냄새를 가진 물질을 먹고 사는 동물도 존재한다. 이에 대하여 인간의 이성, 즉 합리주의가 끼어들 여지는 없고 이는 우리가 어찌해볼 수 없는 자연스러운 일인데, 음란하고 성적인 것 역시 이것과 무관하지 않아 성적인 행위가 더럽다는 인식을 주는 것은 기관들 간의 인접성 때문이라는 것이다.저자에게는 죽음 역시 에로티즘과 무관하지 않다. 에로티즘의 그 순간 역시 죽음의 축소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에로티즘의 과정 속에서 남성과 여성은, 저자가 처음 표현한 것처럼 심오함에 있어 신비체험과 아주 유사하다. 끝이 없는 범람과 착란 속에서, 의식을 잃고 황홀함에 몸부림친다. 그러다 마침내 심연으로 빠지기에 이른다. 에로티즘과 죽음이 무관하지 않은 이유가 바로 그 곳에 있다.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또 다른 하나가 바로 ‘죽음’에 대한 인식이다. 우리를 죽음으로 이끄는 고뇌는 항상 에로티즘과 관련되어있다. 그러한 고뇌는 또한 에로티즘의 심연을 더욱 깊게 만든다. 부패와 죽음은 끝없이 성 행위 위로 올라와 더욱 에로티즘을 에로틱하게 만든다. 성적인 고뇌에는 항상 죽음이 근처에 있으며, 우리는 그것을 결코 벗어날 수 없다.제 4부 위반저자는 축기는 결국 집단적 위반을 낳고, 이로 인해 표출되는 대표적인 것이 바로 축제인 것이다. 축제가 진행되는 동안 인간들은 평소 거부했던 행동과 충동에 자신의 몸을 맡기고, 그 충동들이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며, 인간 세계 내부에서만 의미를 가진다.축제는 단순히 인간의 동물성을 개방시켜주는 것이 아니다. 축제가 개방시켜주는 것은 바로 ‘신성(sacre)’이다. 신성한 것은 근원적으로는 금기이다. ‘방탕한 것’으로 정의되고 금기시 되는 신성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세보다 더 큰 가치를 가진다. 속세적인 삶, 즉 노동과 금기는 죽음을 부정한다. 반면에 신성은 의존성과 자발성을 추종한다. 축제는 이러한 신성의 속성을 폭발시키는 역할을 한다. 억압으로 증폭된 충동적인 그 힘은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었다.공포는 그 종류가 어떤 것이든 유혹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사람을 죽이는 것도, 죽은 사람의 시체를 만지는 것도 금기시 되어있지만, 사실 사람을 죽이고 싶은 충동이나 죽은 사람의 시체를 만져보고 탐구해보고 싶은 충동 역시 내재되어있는 것이 사실이다. 죽음의 충동과 성 행위를 따로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즉, 시체가 소멸되어가는, 그럼에도 삶과 긴밀하게 연결되는 양상이 유발하는 그 유혹과 성적인 행위를 분리시킨다면 우리는 아무 것도 이해할 수가 없다.저자는 진정한 환희를 얻기 위해서는 죽음까지 끌어안는 충동을 요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에 반해 죽음은 모든 것의 종말을 의미한다. 따라서 죽음의 바로 그 순간에 우리는 아무것도, 어떠한 진정한 환희도 모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죽음 자체가 꼭 필요한 것이 아니다. 환희를 즐기기 위해서는 죽음을 피해야한다. 그렇다면, 왜 죽음과 진정한 환희는 연결되어있는 것인가? 죽음이 우리의 환희를 주고, 또한 앗아가는 존재라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이에 대해 저자는 ‘죽음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 해답이라고 말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과감성이야말로 종교, 예술의 풍요로움과 우리의 동물적인 .
About death penalty – agreeDo you know the way kill a person ‘legitimately ’? It is death penalty. Actually many countries in the world has disputed about the existence of death penalty. And for last 10 years, about 30 countries have abolished death penalty system. The fact that abolishing death penalty system is major trend in the world is undeniable, but death penalty system is arguably necessary for following 3 principal reasons: waste of tax, weak point of life sentence, and crime prevention.Fristly, Death penalty is necessary because too much money is wasted to felons. No doubt many will regard killing people for money as harsh words, wasting of tax is right heinous expression given that being sentenced to death means they committed intended and crime. Furthermore, it is related to public’s right. Based on Korean National Statistical Office, there are about 60 condemned criminals and 1.3million dollars is taken to accommodate felons. Why do we pay the tax? We pay taxes to require nation to protect our safety. Thus costing so much taxes to felons that threatened or will threat our life is unreasonable. In practice, based on a national poll about death penalty system, approaching 70% of the public agreed with death penalty system, and 73% of them have complaints with the fact that tax is wasted.Secondly, If we abolish death penalty system, the severest penalty will be life sentence. But life sentence have 2 weak points. First is about money, related to problem mentioned above. Considering annual cost for condemned criminals is 1.3milion dollars, the money for decades would be enormous. Second is that the possibility of second crime. Actually many of felons who are convicted of life sentence are released as model prisoner, and there is few condemned criminal who lives in jail over 30 years. Most of them are released, and commit second crime. Based on Korean National Police, over 60% of released felons commit crime again. These show us that the life sentence that is maximum penalty except for death penalty is not enough, and only death penalty can solve these problems.Lastly, death penalty system can reduce crime rate. Convicting death penalty to felons can alert people about crime, and be example to potential criminals. Surely, there is data that imply there is no relationship between death penalty and decrease of crime rate. Many supporters of death penalty come up with the data suggesting lowered crime rate compared the past that enforced death penalty, especially mentioning the case of Canada. However, many countries’ welfare and safety policies have been developed greatly, and that is even more persuasive reason for decreasing crime rate. There are any amount of evidences suggesting that abolishing death penalty increased crime rate. In effect, death penalty in many states of U.S and Japan has restored for increasing crime rate after abolishing of death penalty.I believe felons that committed intended, brutal crime have to be punished by death penalty. Abolishing death penalty can cause continuous waste of tax, social discontent. And also it will make second crime and increased crime rate. Therefore, we should maintain death penalty for public’s rights and safe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