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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근대사회와 복음주의 독서보고 평가A+최고예요
    한국 성결교회의 정체성-근대사회와 복음주의를 읽고-들어가는 말교단의 근원과 그 흐름을 밝혀 아는 작업은 매우 중요하다. 근원으로부터 그 사상과 강조점 교훈들을 배우고 그것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어떻게 변해왔는지 또 그 흐름 가운데 우리가 더 강조해야 할 점은 무엇이고 반면교사로 삼아 버릴 것은 무엇인지를 살펴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작업이 있은 후에 비로소 역사에 비추어 보아 우리의 서있는 자리를 알게 되고 우리의 자리를 바로 볼 수 있는 바로 그때 우리의 가장 적합한 자리를 찾아 이동할 수 있게 된다.본서의 내용 안에서 웨슬리로부터 출발하여 영국을 복음화 시켰던 성결운동이 미국의 1차 대각성운동의 조나단 에드워즈, 조지 휫필드, 찰스 피니의 부흥운동을 거쳐서 팔머 부인에게로 또 무디에게로 그 흐름이 이어져 근대 현대 복음주의의 기반이 되었음을 볼 수 있다. 또한 복음이 전해지는 시기마다 각기 시대에 맞게 특색 있는 모습으로 적응하고 변화한 사실도 알게 된다. 본서는 단지 근대적인 복음주의 운동을 다룰 뿐만 아니라 20세기의 시작부터 가장 최근까지 복음주의의 여러 단면과 현상을 알 수 있게 한다.이번 과제에서는 본서 근대사회와 복음주의 핵심 줄거리의 흐름을 시대상황과 함께 살펴보겠다. 그 내용과 수업 내용을 결부시켜 그것을 바탕으로 하여 한국 성결교회의 정체성을 간략히 진단해보고 현재 한국의 정세와 앞으로 다가올 한국사회의 미래를 예측해보고 한국성결교회가 나가야 할 방향을 나름대로 제시해 보고자한다. 또한 그러기 위해서 기독교 대한 성결교회의 목회자를 양성하는 신학교인 서울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이 어떠한 이념을 가지고 방향을 가늠해야 하는가 하는 나의 의견을 몇 가지로 간략히 제시해 보고자한다.내용조나단 에드워즈복음주의란 성서와 경험을 강조하는 개신교 신앙의 한 형태라고 간단히 정의한다. 복음주의의 기원은 1730년대에 영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일어난 부흥운동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미국의 1차대각성 운동은 사회 변혁기에 일어난 운동이다. 당시 주요 사상이었던이것은 교회중심의 구조에서 신자 중심의 구조로 전환된 중요한 사건이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신자들이 편히 잘 모일 수 있는 곳을 집회장소로 택한 것이다. 휫필드의 야회집회는 해리스의 영향을 받았다. 휫필드의 방법은 새로운 것이었다. 왜냐하면 당시에 무식한 대중을 찾아가는 것은 교회의 체통을 구기는 것에 해당하며, 야외에서 설교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예배를 모독하는 것으로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신분의 구별 없이 앉아 설교를 듣는 야외집회는 이런 새로운 사회구조에 맞는 선교방법이었던 것이다.18세기 영국은 산업도시가 형성되었다. 그리고 산업도시의 주요한 구성 요소는 일반 대중들, 곧 근로자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그때까지 영국사회와 영국교회에서 결코 주역이 못되었다. 그런데 바로 이들을 선교의 주 대상으로 삼은 것이 복음주의운동 이었다. 웨슬리와 휫필드의 부흥운동의 센터는 바로 산업 근로자들이 모여 있던 공장 도시였다.휫필드는 그의 즉설 설교방식으로 크게 성공하였다. 그것은 청중들과 직접 호흡한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고, 도한 시간과 장소에 따라 설교의 내용을 자연스럽게 변형시킬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휫필드 설교의 또 다른 특징은 연극 같은 설교이다.휫필드는 또한 인쇄매체를 이용했다. 휫필드는 다른 사람과 달리 인쇄매체를 이용할 줄 알았기 때문에 산발적인 부흥운동을 전국적인 각성운동으로 이끌어 낼 수 있었다. 그는 언론이라는 공적인 제도를 이용하여 자기 사역을 선전했으며, 객관적인 기사를 위해 제3자로 하여금 기사를 쓰게 했으며,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통계적인 수치를 제시하였다.휫필드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든 사람들을 하나로 묶으려고 했다. 이것은 중생 혹은 회심을 중심에 두었음을 의미한다. 그는 회심을 단순한 지적인 것으로 보지 않았고 회심을 구체적으로 경험되어 지는 것으로 보았다. 이것을 최초로 강조한 사람이 휫필드 이었다.찰스 피니찰스 피니는19세기의 새로운 상황에서 전통적인 메시지를 새롭게 해석한 위대한 부흥사였다. 에드워즈의 강조점은 청교도의 후예로서세기 미국의 가장 대표적인 성경운동가이다. 팔머는 화요성결집회를 통해서 성결운동을 확산시켰다. 팔머 부인의 성결운동은 19세기 성결운동의 근원이었다. 그녀에게 성결이란 지금여기에서, 인간의 한계를 가지고,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성결은 인간의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지 인간의 한계를 뛰어 넘는 신적인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니다.팔머부인의 신학을 제단신학이라 부르는데 제단은 일차적으로 예배당의 제단이지만 본질적으로 그리스도를 가지킨다. 제물은 신자 자신이다. 우리가 제단에 우리 자신을 드리게 되면 성령께서 임하셔서 우릴 거룩하게 만드신다. 이것이 팔머 부인의 성결 개념의 핵심 요소이다. 성결은 단지 영적인 것만이 아니라 전인적인 체험으로 보고 있다.그녀는 성결을 삼위일체 적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성부 하나님은 그의 말씀을 통하여 인간을 성결케 하신다. 성령세례를 주시겠다고 말씀을 통하여 약속하셨다. 또한 성결의 기독론적 근거를 강조한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대신한 희생제물이요, 희생제단이다.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제단이신 그리스도 자신이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성결을 전해주시는 분은 성령이시다.팔머부인은 성결은 근본적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라고 생각하면서도 여기에 인간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했다. 첫째, 전적인 헌신이다. 성결의 체험을 실패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온전히 드리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두 번째로 믿음이 중요하다. 일차적으로 믿음이란 말씀에 대한 믿음이다. 세 번째 요소는 간증이다. 선물을 받은 사람은 당연히 선물을 주신 분을 영광스럽게 해야 한다. 간증은 은해를 유지하는 방법이기도 한 것이다.무디남북전쟁 이후 미국은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변화되었고 급격한 도시화가 일어났다. 이 때문에 전통적인 교구목회는 위기를 맞이했다. 도시는 도시로 밀려드는 사람들에 합당한 형태의 새로운 목회가 요구되었다. 이 시대에 왕성하게 활동했던 그룹은 라우센부쉬를 중심으로 하는 사회복음이요, 또 하리교도들이 지켜야할 구체적인 지침을 가르쳤다. 이후 19세기 모든 성결운동은 이 전통을 이어 받았다.그렇다면 복음주의가 20세기에 들어와서 그 사회적 관심을 상실한 이유는 무엇인가? 혹자들은 미국의 복음주의가 후천년설에서 전천년설로 전환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로 보았을 때 그것은 정확하지 않다. 20세기 복음주의 내에서 사회적인 관심이 퇴조한 것은 사회복음의 등장에 대한 반동이라는 주장에 일반적으로 동의한다. 사회복음은 기독교의 목적이 사회를 기독교화 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복음주의자들 , 특히 성결운동가들은 여기에 대한 반발로 기독교의 본질은 사회의 개혁이 아니라 복음의 전파를 통한 영혼의 구원이라고 주장하였다. 이것이 복음주의 진영으로 하여금 사회적인 관심을 축소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성결운동은 개인의 변화를 통해 사회의 변화를 추구한 반면, 사회복음은 개인의 변화에는 관심이 없고 사회구조의 변화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대역전의 원인에 대해서 칼빈주의자들과 웨슬리안 성결운동가들이 서로 다른 해석을 하고 있다. 웨슬리안 성결운동의 역사가인 도널드 데이톤은 대역전의 원인이 복음주의 내에서 프리스톤 구파의 등장에 기인한다고 본다. 여기에 반에 칼빈주의 역사가인 조지 말스덴은 복음주의 운동에서 사회적인 관심이 쇠퇴한 것은 19세기 미국 기독교가 칼빈주의 전통에서 경건주의적인 성결운동으로 방향을 바꾸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미국의 칼뱅주의적인 전통은 강한 사회개혁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었는데 19세기 중엽부터 알마니안적인 성결운동이 등장하여 신앙을 개인화 시켰다는 것이다.18세기 웨슬리는 개인의 성경만이 아니라 사회의 성결도 외쳤다. 성결운동은 모든 사회의 배후에는 인간의 죄성이 자리 잡고 잇다는 것을 분명히 믿는다. 그리고 이러한 본성이 변화되지 않는 한 모든 개혁은 근본적적인 개혁이 될 수 없다고 믿는 다. 이러한 점에서 성결운동의 사회개혁의 출발점은 인가의 본성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 변화는 수양이나 법률적인 것이 아니라보다는 보이는 분명한 방언은 선호하게 되었다. 오순절운동은 성결에 방언을 덧붙인 것이다. 오순절 운동은 흑인들과 여성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20세기 전반에 일어난 오순절운동은 새로운 교파를 만들어 냈다. 하지만 1960년대에 들어서 많은 교파들이 오순절 운동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교파를 탈퇴할 필요가 없었다. 유명한 오순절운동 역사가인 빈슨 사이난은 그 이유를 몇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 오순절 교파들이 주류 교파로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둘째, 오순절 신자들이 중산층으로 발전하였다. 셋째, 대중적인 부흥사들의 성공이다. 넷째, 국제 순복음실업인회의 등장이다. 다섯째, 진보적인 교회가 오순절 운동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였다.오순절 운동은 기존 개신교파에 들어가는데서 끝나지 않았다. 오순절 운동은 천주교에까지 들어갔는데, 1960년대 개신교의 오순절운동이 천주교에 들어가서 천주교의 중요한 세력으로 발전하였다.1970년대를 넘어서부터 성령운동의 새로운 흐름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이 운동은 특별히 독립교회나 독립단체를 통해서 나타나게 되었다. 지저스 피플은 새로운 형태의 예배와 체험중심의 신앙을 강조했다. 이 운동은 당시 마약에 빠져 방황하던 많은 젊은이들을 기독교 신앙으로 물들이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이들은 초대교회적인 공동체 운동을 만들기도 하였고 카페를 운영하기도 하였다. 또한 기독교음악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데 CCM을 개발하였다. 또한 이 운동은 독립교회와 선교단체에 큰 영향을 미쳤다.현대 부흥운동의 내적인 특징은 현대 부흥운동은 도덕의 갱신을 매우 중요한 요소로 생각하고 있다. 또한 신유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가 있다. 뿐만 아니라 내적시유에 대해 강조한다. 외적 특징은 독자적인 새로운 그룹을 만들어서 부흥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네트워크 형태를 가지고 있다. 또한 새로운 예배 스타일을 창조했고 국제적으로 연대한다.한국의 미래 전망과 미래 한국교회 전망본서의 내용에도 많은 부분을 할애하여 설명하듯이 시대 상황의 변화는 기독교에게도 절대간과할 .
    인문/어학| 2015.05.18| 11페이지| 2,000원| 조회(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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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약주석 방법론 출애굽기 24장
    출애굽기 24:1-11절주석하나님의 언약의 확장Ⅰ.서론본문인 출애굽기 24장 1-11절의 내용은 19장에서 제시되고 20-23장에 걸쳐 율법이 수여된 시내 산 언약이 공식적으로, 민족적으로 체결되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다.1-11의 내용을 간략히 요약하자면 먼저 언약 체결 기념 제사의 거행과 언약서의 낭독 후 피뿌림 의식 그리고 모세와 칠십 인의 장로들이 여호와 앞에서 음식을 먹음 등으로 시내 산 언약이 마침내 공식 체결되는 장면을 기록한다.본 기말고사 주석과제는 먼저 본문의 위치와 본문의 구조를 살펴보겠다. 그리고 본문에 대한 역사적 배경과 본문의 구조를 분석하여 그 내용을 드러내보이고자 한다. 특별히 시내 산 계약 체결에 대한 부분을 비교하여 다루어보고자 한다. 또한 비평적 방법을 통해 본문이 가지고 있는 내용에 대해 한층 더 깊게 이해하려 해보겠다. 또한 시내 산 계약 체결장면을 통하여 구약에 하나님과 인간의 언약이라는 시야를 가지고 신학적 메시지를 도출해 내보겠다.Ⅱ.본문의 위치출애굽기 전체의 부분을 간략히 살펴보고 그 안에서 본문의 위치를 살펴봄으로써 출애굽기 안에서 본문이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 간략히 살펴보고자 한다.제1부: 애굽에서의 이스라엘(1:1-13:16)제2부: 광야에서의 이스라엘(13:17-18:27)제3부: 시내 반도에서의 이스라엘(19:1-40:38)본문은 출애굽기의 내용전개에 따른 구분에서 3부안에 들어가 있다. 3부는 네 개의 작은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1단락은 출애굽기19:1-24:18절로 여호와의 강림과 언약 체결에 관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2단락은 출애굽기 25:1-31:18로 예배 수단에 관한 가르침에 관한 내용이다. 3단락은 출애굽기32:1-34:35인데, 이스라엘의 불순종과 그 영향에 관한 내용이다. 4단락은 출애굽기 35:1-40:38인데, 여호와의 가르침에 대한 이스라엘의 순종에 관한 내용으로 마무리되고 있다.3부안에서 본문 출애굽기24:1-11절은 앞의 언약의 구체적인 내용과 뒤의 모세가 단독으로 하나님을 하나님 여호와께서 호렙산에서 우리와 언약을 세우셨나니"라고 하여 이러한 사실을 재확인하고 있다. 하나님은 이전과 달리 하나의 국가를 이루는 백성의 참여 하에 언약을 체결하신다. 백성의 참여하에 체결되는 국가적인 언약은 성문화된 구체적인 법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시내산 언약의 비준 예식의 배경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국가로 형성됨을 강조한다. 백성 중에 70명의 대표적인 장로가 뽑히게 되고(출24:1) 이스라엘 열 두 지파 대신으로 열 두 기둥이 세워진다.(출24:4) 이런 식의 예식 효과는 이미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엄숙히 표현되었다.나. 언약의피시내산 언약을 특징짓는 또 하나의 요소는 언약의 피 라고 할 수 있다. 출애굽기 24장 8절에서 "모세가 그 피를 취하여 백성에게 뿌려 가로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고 하여 언약의 시내산 언약에 있어서의 특징적인 요소임 을 명시해 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시내산 언약의 공식적인 수립 절차 속에 있는 피 뿌리는 예식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 죽음으로의 서약을 하게 하였다.다, 백성에게 부과된 의무시내산 언약을 내면적, 실질적으로 특징짓는 세 번째 요소로서 백성에게 언약을 준수해야 하는 의무가 부과되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출애굽기 24:3절에는 "모세가 와서 여호와의 모든 말씀과 그 모든 율례를 백성에게 고하매, 그들이 한 소리로 응답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명하신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다." 라고 하며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들에게 부과된 언약상의 의무를 준수할 것을 서약하고 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의무가 부과되었음을 명시하는 것이며, 동시에 백성들의 복종을 약속하였음을 설명해 주고 있다. 이전의 언약에는 이런 것이 없었다.Ⅳ.사역1절그리고 모세에게 그가 말씀하셨다. 너는 아론과 나납과 아비후 그리고 이스라엘 장로 70명은 (함께) 여호와께 올라오라 그리고 너희는 멀리서 경배하라2절그리고 모세는 그만 홀로 가까이 역은 맛소라 사본의 [마체바](기둥) 대신 [아바님](돌들)으로 읽는다. 그러나 계약의 징표를 상징하는 부분이기에 돌들보다는 기둥이라는 표현이 정확하다고 생각한다.4.b [라샤네임 아샤르](열둘에게)란 의미인데, 쿰란 사본에는 이 앞에 [레미스파르](숫자로는)가 들어있다. 쿰란사본의 추가적인 표현은 불필요하다고 본다. 이미 지파의 관계된 숫자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5.a 사마리아 오경은 [브네이 바키르](짐승 새끼들)를 첨가하고 있다. 구체적인 상황에 대한 더 자세한 묘사를 위한 삽입구인 듯하다.6.a [아긴](양푼)은 일종의 대야를 뜻한다.8.a [알](~관하여 ~에 따라서)은 이 문맥 속에서 ~에 의해서 상세하게 설명되다. 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10.a 칠십인 역에서는 [톤 토폰 후 헤이스테게이 에히 호 테오스 투 이스라엘](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서 계시는 곳)이라고 되어 있다. 이 번역은 칠십인 역을 번역한 역자들이 당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눈으로 직접 본 것이 아니라 이사야나 예레미야처럼 하나님의 현현의 현장, 혹은 징표를 보았다는 견해 때문에 이렇게 번역이 된 듯하다. 사실 구약의 여타 하나님을 만난 기사를 보아도 하나님의 존재를 직접 보았다는 기사는 없다. 칠십인 역의 번역이 의미를 정확히 전달한다고 생각한다.10.b [케마아세 리페나트 하사피르]는 청색 물감으로 포장해 놓은 것과 같은 이라는 의미이다.10.c [라토하르](순수함에 대해서)는 본문에서는 '청명'이라고 번역되어 있는데 청색 물감과 같이 푸르다는 말에 의해서 암시되고 있다.11.a [아칠]은 구석, 측면, 원조를 뜻한다. [아치림]은 문자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세운 기둥들을 의미한다.11.b [하자](보다)라는 의미이지만 칠십인 역은 전혀 다른 의미로 읽는다. [카이 돈 에피렉톤 투 이스라엘 우 디에포네센 우데 하이스 카이 오프데산 엔 토 토포 투 데우](그리고 이스아엘 백성 중에서 선택된 자들 가운데 어느 한 사람도 점호 나팔 소리에 대답하지 않는 자가 없었으며에율법 준수에 대한 백성의 비준을 선행시켰다는 점이 독특하다. 즉 백성에게 피를 뿌리는 일은 언약의 책을 읽고서 백성이 말씀을 준수할 것을 충분하게 동의를 하기 이전까지는 결코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서 피로 언약을 맺은 사실을 통하여 율법에 대한 복종과 율법의 준수에 대한 강조가 곧 언약 의식의 근본 목적이었음을 알게 된다.본문을 통해 피에 대한 구약 성경의 견해를 어느 정도 파악 할 수 있다. 구약 시대에는 피가 고동치고 있는 곳에 생명이 있기 때문에 피를 먹는 것은 생명을 침해하는 행위와 동등하게 취급되었다. 그래서 고기와 피를 함께 먹는 것은 철저히 금지되었다. 이러한 믿음 때문에 피는 속량의 효과가 있는 것으로도 간주되었다. 피는 생명의 원천이기 때문에 피로써 언약을 맺으면 피의 갱신이 이루어지고 그 피의 갱신을 통하여 새로운 생명과 결속 관계가 비로소 이루어진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기반으로 저자는 본문에서 피로 제사를 드린 사실을 언급한다. 이를 통해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언약 안에서 하나의 유기적인 생명체로 연합됨을 나타내고 있다.10. 구약의 일반적인 전통에서는 인간이 여호와를 직접 대면할 수 없다. 그 근거가 33:20의 말씀에서 제시되어있다. 이 구절에 대한 많은 해석이 있지만,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이 가능하다.첫째는, 모세가 본 절에서 [라이](눈으로 보다)의 접속법 칼 미완료 3인칭 남성 복수형인 [와이르우](그리고 그들이 보았다)를 사용하고 있고 11절에서 [하자]의(눈으로 보거나 환상적 체험을 통해서 보았다)의 접속법 칼 미완료 3인칭 남성 복수형인 [와예해주](그래서 그들은 보았다)를 연이어 사용하는 것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따라서 모세와 이스라엘의 대표자들이 실제로 여호와를 본 것이라기보다는 환상을 통해 신적 현현으로 본 것이라고 볼 수 있다.둘째는, 구약의 다른 곳과의 비교를 통해 이 문제에 접근할 수 있다. 구약에서 여호와를 보았다고 하는 사람은 이사야와 에스겔이다. 그들은 각자의 소명 보약을 맺는다’는 말을 ‘언약을 자른다’라고 표현하는데, 이러한 풍습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된다.이와 같이 구약의 언약과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고대 근동의 언약에 있어서 모압언약과 같이 완벽한 의미의 쌍방선언이 이루어진 경우는 거의 없고 일방적으로 강대국이 약소국에 대한 관계의 선언과 언약의 조건을 제시하는 경우가 보편적이다.고대 근동의 언약 형태와 시내산 언약의 비교고대 - 당사자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구약 -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직접 대면하여 언약 체결(출 19:3-24:8) 후 함께 식사를 한다(출 24:10-11).고대 - 과거의 상호 관계에 대한 역사적 배경이 요약되어 있다.구약 -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체결하시기 전, 조상들을 보살펴 준 하나님이심을 상기시키고(출19:3), 이집트에서 어떻게 인도해 냈는지를 재차 확인시키신다(출 19:4).고대 - 그들의 제후들을 위하여 히타이트 국민들이 만든 언약 규정들이 있다.구약 - 하나님께서 직접 선포해 주신 십계명과 모세를 통해 주신 언약 세부법이 있다. 모두 하나님께서 만든 언약 규정들이다.고대 - 증인으로 신들의 이름이 있다.구약 - 하나님의 이름이 증인이 된다. “나는 너를 이집트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출 20:2)고대 - 제재 조항이 있는데, 만약 쌍방이 모두 규정들을 잘 지키면 신들의 축복이 주어진다는 장담이 기록되어 있으며, 만약 의무를 깨뜨리면 끊임없는 신들의 저주 아래에 놓일 것을 단언한다.구약 - 이스라엘이 규정들을 잘 지키면 하나님의 소유, 즉 보배로운 백성인 되며(출 19:5-7),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신다는 축복을 약속해 주신다(출 20:6).그러나 만약 하나님을 노엽게 하면 허물을 용서하지 않을 것을 단언하신다(출 23:21).고대 - 언약 당사자들이 협정을 체결한 후에 함께 식사를 한다.구약 - 언약 체결 후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뵙고 먹고 마셨다(출 24:9-11).언약의 어원적 측면을다.
    인문/어학| 2015.05.14| 12페이지| 3,000원| 조회(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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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겔과 칼바르트
    기말고사 리포트헤겔과 칼 바르트헤겔과 칼 바르트1. 머리말헤겔의 철학적 신학은 철학과 신학, 이성과 신앙, 하나님과 세계를 종합하려는 하나의 위대한 시도라면, 바르트의 신학은 헤겔이 시도한 이 종합을 거부하고 "Sola gratia", "Sola fide", "Sola scriptura", "Solus Christus"라고 하는 종교개혁의 신학적 관심을 다시 한 번 회복시키고자 한 위대한 시도이다.여기서 우리는 두 학자의 체계 전체를 비교하려는 것이 아니라, 바르트의 "19세기 개신교 신학"과 그의 "교회 교의학"에 기술되 있는 헤겔에 대한 바르트의 비판을 고찰함으로써 헤겔의 위대한 철학적 신학이 그 속에 어떠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가를 파악하고자 한다. 이를 통하여 우리는 바르트 자신의 신학적 입장이 무엇인가를 좀 더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2. 죄의 현실에 대한 오해바르트에 의하면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서술하는데 있어서 헤겔은 "하나님과 인간을 분리하는 요소의 본질", 곧 인간의 죄를 경솔하게 다루고 있다. 그리하여 죄라고 하는 이 요소를 "정신의 통일성과 필연성"에로 환원시킨다. 죄라고 하는 것은 헤겔에게 있어서, "유한한 정신으로서의 인간 본질에 주어져 있는", "한 장애물에 불과"하며, 이 장애물은 인간의 존재에 있어서 한 필연적인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죄란 자기 "자신에 있어서 하나님과 동일한" 정신의 운동에 있어서 필연적으로 거쳐야 할 통과 점에 불과하다는 것이 헤겔의 생각이다. 그것은 하나님과 인간을 구분하는 요소가 아니라 신성에로 고양되어야 할 인간의 존재에 있어서 본질적인 요소로 주어져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죄는 인간 존재에 있어서 "죄과"인 동시에 "운명"을 의미한다.3. 사고하는 인간과 하나님의 동일화죄를 정신의 통일성과 필연성에로 환원시킴으로써 헤겔의 죄의 간과될 수 없는 현실을 상대화시키게 된다. 그 결과 헤겔은 하나님과 인간, 하나님과 세계 사이의 근본적인 한계를 무시하고, 하나님의 본성과 인간의 본성을 동일화시킨다. 따라서 헤겔이 말하는 "살아 계신 하나님"이란 그의 본질을 사고에 가지고 있는 "살아있는 인간"을 뜻하게 된다. 인간의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는 곧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인간의 역사"는 "하나님의 역사"를 뜻하게 된다. 그러나 헤겔이 말하는 살아 있는 인간이 "단지 사고하는 인간"에 불과하며, 이 추상적으로 사고하는 인간이란 "단지 사고된 인간이지, 현실적인 인간"이 아닐 수 있다면, 이 살아있는 하나님도 "단지 사고하는 하나님 그리고 사고된 하나님"에 불과하지 않겠느냐고 바르트는 헤겔을 비판하고 있다.헤겔에게 있어서 진리란 또 인식이란, "하나의 운동이요", "역사"이다. 그러므로 학문이란 "오직 행위가운데만, 사건 가운데만" 현존할 뿐이다. 헤겔이 말하는 하나님이란 바로 "이 사건" 이며, "이 사건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순수한 현실"로서의 하나님이란 헤겔에게 있어서 곧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말하며 자기 자신을 대상화시키고 자기의 대상성을 지양하며,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정신의 이 영원한 "과정"을 말한다. 이 하나님은 곧 정반합의 변증법적 운동 가운데 있는 사건, 곧 지식의 운동을 말한다.4. 하나님 인식의 근거에 대한 오해여기서 "하나님과 변증법적 방법의 동일화"가 성립된다. 그리하여 "논리학의 변증법적 방법"이 하나님의 존재를 대치하게 되며, "은혜의 참된 변증법의 인식"을 불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우리들 자신이 그 속에 실존하고 있는 변증법, 우리 자신이 언제나 소유할 수 있는 방법"은 "은혜의 참된 변증법"은 아니라고 바르트는 말한다.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는 근거도 인간의 능력에 좌우되는 진리의 변증법적 운동에 있지 아니하며, 또한 인간의 능력에도 있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은혜에 있다. 바르트는 인간의 능력으로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다는 가설에 반대하여 자기의 명제를 내세운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통하여, 하나님은 오직 하나님을 통하여 인식된다." 인간은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자기 자신 안에 소유하고 있지 아니하다. 인간의 직관이나 파악의 힘으로써 이간은 하나님을 인식할 수 없다. 하나님에 대한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 자신일 뿐이다.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는 근거로서의 제시의 은혜는 조직으로 파악될 수 있는 보편적인 가능성이 아니라,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일 뿐이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을 오직 믿음 가운데서만 인식할 수 있으며,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의지하고, 예수그리스도를 순수하게 따르며, 감사하는 가운데" 인식할 수 있다. 만일 하나님의 존재가 진리의 변증법적 운동과 일치하며, 그래서 인간의 지적 능력으로 파악될 수 있는 분이라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와 이 계시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는 불필요하게 되고 말 것이다.창조는 필연적이며 화해도 필연적이다. 공동체도 하나님께 대하여 필연적이 다고 바르트는 비판한다. 하나님께 대하여 근본적으로 필연적인 것은 헤겔에게 있어서 바로 인간 자신, 나이다.5. 하나님의 주권의 제한여기서 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의 자유"에 대하여 말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유에 그 근거를 둔 은혜의 참된 변증법"에 대하여 더 이상 말할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존재를 변증법적 방법과 일치시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제한과 지양"을 의미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의 지양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사고의 변증법적 운동으로 해소시키는 것이며 인간을 신격화시키는 일이다. 인간의 자기 운동과 하나님의 자기 운동을 혼동하며, 그리하여 하나님의 존재를 인간의 존재에로 해소시키고, 인간을 신격화시키는 원인은 헤겔이 "하나님의 자유를 인식하지 못함"에 있다고 바르트는 지적한다. 더 정확하게 말하여 헤겔이 하나님의"이중의 예정"을 인식하지 못하였음에 그 원인이 있다고 바르트는 말한다.하나님과 인간의 화해란 하나님의 자유로부터 출발하는 하나님의 은혜의 행위가 아니라, 사고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이 자기 자신으로부터, 자기 자신의 능력으로부터 수행할 수 있고, 도달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하며, "분리와 화해, 제거와 재용납의 연속으로서의 전체 역사의 흐름"을 의미한다.6. 계시의 조직학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의 대상성"은 헤겔에 있어서 "모든 일반적인 대상성"에로 지향되고 있다. 왜냐하면 사고하는 인간의 의식과 관계되는 모든 대상의 대상성은 곧 계시의 대상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계시는 "한 특수한, 모든 다른 사건들과는 구별되며 또한 비교될 수 없고 반복될 수 없는 사건"이 아니라, 사고하는 인간이 자기 자신과 관계하는 이것이 곧 "하나님의 계시의 현재를 의미한다."
    인문/어학| 2015.05.14| 3페이지| 1,000원| 조회(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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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키에르케고르의 변증법
    기말고사 리포트키에르케고르의 변증법키에르케고르의 변증법헤겔이 '양적인 변증법'을 주장했다면 그거에 대한 반동으로 키에르케고르가 내세운 것이'질적 변증법' 이다. 이것은 실존의 3단계 미적, 윤리적, 종교적 실존형태로 설명된다. 실존하는 개체의 결단에 의하여 질적으로 비약하는 순간마다 진정한 새로운 역사적 현실이 시작된다. 실존적 자각이 심화됨에 따라 인간은 신을 통해서 자기의 실존을 다시 찾는 동시에 그 순간마다 영원과 접촉하는 것이다. 그것은 역설이나 이 역설을 가능케 하는 것은 신앙이다.1. 주체적 진리"주체성은 진리이다." 라는 명제는 키에르케고르의 사상의 핵심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가 객관적인 진리에 관하여 주체적인 진리를 주장하게 된 것은 헤겔에 체계를 향한 도전이기도 한 것이다.키에르케고르가 "주체성은 진리이다." 라고 말할 때, 이 말은 주체성이 모든 종류의 진리의 기준이라든가 어떤 종류의 지식을 성립시키는데 충분한 조건임을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참 자기를 실현하기 위한 과정속에서 절망적인 한계상황에 직면한 구체적인 개인을 절망에서부터 구해낼 수 있는 주체적인 진리였다.실존에 대하여 본질적으로 관계하는 주체적 진리는 경험적 세계의 정확한 파악을 제공하는 객관적인 지식이 아니라, 실존하는 개인에게 있어서 최고의 관심사인 것, 즉 유일회적인 구체적인 개인으로서의 자기이다. 그에게 있어서 실존하는 개인을 위한 최고의 진리는 그리스도교가 제공하는 신인 그리스도의 계시, 곧 그리스도안에서 인간이 된 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간의 죄를 대속하는 성육신한 신의 진리였다.주체성의 진리는 키에르케고르에게 있어서, 유한한 실존이 생생하게 체험하고 이해할 수 있는 주체성 즉, 자기 자신과 관계하는 관계로서의 자기 자신의 내면적 자기이다. 실존의 진리인 주체적 진리에 도달하는 것은 주체적 사고를 통해서 가능하다. 주체적 사고란 주체성으로 향하는 사고이다. 주체적으로 사고하는 자는 본질적으로 그 자신의 사고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주체적 사고는 결과보다는 사고하는 과정 그 자체에 관심을 갖는다. 이것은 주체는 실존하는 개체이며, 실존은 생성의 과정이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기억하는 것이다. 주체적으로 사고하는 자는 사고하는 자인 동시에 실존하는 인간이다. 이처럼 사고 속에 주체적인 태도를 굳게 지키는 실존적인 주체에 있어서만 진리는 올바른 진리로서 확보된다.2. 실존과 생성키에르케고르에게 실존은 정적인 것이 아니요 동적인 것이다. 즉"인간 실존은 연속적인 인간 행위이다." 인간은 무수히 많은 가능성 가운데 자유로운 결단에 의하여 선택함으로 실존한다. 따라서 생성의 과정인 실존은 놀리적으로 체계화될 수 없다. 키에르케고르에 있어서 실존은 자유로운 결단의 결과로서 지속하는 것이다.키에르케고르는 생성의 과정 안에서 인간은 이중적으로 자신에게 관계되어 있다고 한다. 실존은 자유로운 결단에 의한 자기실현이며 반성에 의하여 자신에게 관계되는 것이다. 변증법은 키에르케고르에게 있어서는 모순관계에 있는 것, 즉 주관과 객관, 존재와 사고, 정신과 필연 등의 관계를 통일적으로 파악하는 사고방법이다.결국 키에르케고르의 실존구조에 대한 분석은 연속적인 자아의식 혹은 절대 정신의 발전을 주장한 헤겔과는 반대의 입장에 있다. 키에르케고르에게 있어서는 주체적 현실화의 과정이 변증법이다.3.질적 변증법심미적 실존 - 심미적은 키에르케고르에게 있어서 예술 이론의 범주라기보다는 오히려 지각의 양태에 있는,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주어져 잇는 것에 대한 표현이다. 심미적인 실존의 자기는 아직 자기 자신을 갖지 못한 자기이다. 왜냐하면 심미적 실존의 자기는 직접적으로 주어진 자연 상태의 자신으로서 풍부한 구체성과 다양한 특성 및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직접적으로 주어지는 다양한 대상들을 관계로서의 자기 안으로 끌어 들이기보다는 언제든지 주어질 수 있는 대상들에 대한 호기심으로, 즉 자기로부터의 해방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자기이다.심미적 실존의 자기는 자기가 되어야할 바의 자기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오히려 "가능성의 거울"을 통하여 자기가 될 수 있는 것에 대한 상상만을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그런 상상을 지배하고 있는 원리는 쾌와 불쾌이다. 따라서 심미적 실존의 자기는 자기 밖에서 오는 자극들이 주어지는 상황으로부터 계속 해서 또 다른 자기만을 추구해 간다.심미적 실존의 자기는 가능성의 거울을 통하여 자기가 될 수 있는 것을 상상한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심미적 실존의 자기는 그 전제되어야 할 자기를 갖고 잇ㄱ지 않다. 따라서 심미적 실존의 자기는 반쪽짜리 자기이다. 그 반쪽자리는 단지 가능성만을 갖고 있다. 심미적 실존의 자기가 이런 반쪽자리 자기이기 때문에 심미적 실존의 자기는 결국 두 가지 형태로 방황하게 된다. 그 하나는 "소망하고 희망하는 형태이고, 다른 하나는 우울해 하며 공상하는 형태"이다. 절망의 모습 가운데 순수한 직접성으로 자기가 비로서 내면적으로 자기 자신을 관계로서의 자기로 지각하는 계기가 불안이다. 심미적 실존의 자기 역시 이 두 가지 방황을 통하여 자기 자신을 정신으로 자각하거나 자각하지 않거나 하는 갈림길에 서있게 된다.첫 번째 종류의 방황인 '소망하고 희망하는 형태'는 매우 희귀한 새를 발견한 기사가 그 새를 자신이 잡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계속해서 험한 숲 속에서 새를 따라가다가 결국 길을 잃게 되었다는 자기의 상실을 말한다.두 번쨰 종류의 방황인 '우울해하며 공상하는 형태'는 인간의 삶 가운데 만나게되는 불안의 가능성을 말한다. 쾌와 불쾌라는 삶의 범주 안에서만 살던 인간은 죽음이라는 한계에 부딪히게된다. 이때 인간은 불안을 느끼게 된다. 즉 불안의 가능성에 들어서는 것이다. 그러나 심미적 실존의 자기는 이 불안의 가능성을 떨쳐버리기 위해 또 다른 가능성으로 도피한다. 결국 자기 자신의 죽음이라는 필연성을 외면하려고 하는 것이다.무한하기만 하였던 가능성에 대한 절망은 심미적 실존의 자기로하여금 단절되엇던 필연성을 자각하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관계로서의 자기에로의 결단에 의하여 윤리적 실존의 삶이 시작된다.윤리적 실존 - 심미적 실존의 자기는 필연성의 요구들인 양심을 통해서 이제 윤리적 실존에 들어서게 된다. 심미적 실존의 자기가 가능성만으로 이루어진 자기를 추구하였다면 윤리적 실존의 자기는 필연성을 추구한다. 즉 내가 될 수 있는 것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되어야 할 것을 추구하는 것이다.그러나 윤리적 실존의 자기가 자기 자신의 가능성, 즉 심미적 실존의 자기를 지배했었던 원리를 완전하게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즉 윤리적 실존의 자기는 자기 자신의 개별적 인간으로서 갖는 감정과 성향, 충동 등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자기 자신이 속한 환경으로부터 개별 인간이 받는 영향들에 대해서도 배제하지 않는다. 윤리적 실존의 자기는 심미적 실존의 자기와는 다르게, 개별 인간으로서 갖는 감정과 성향, 충동 등과 더불어 자기 자신의 관계, 환경과 자기 자신의 관계에로 관심을 돌리게 된 자기이다.윤리적 실존의 자기는 관계 가운데에서 비로소 관계로서의 자기 자신을 의식하게 되고 타인들과 자기를 의식하게 된다. 따라서 윤리적 실존의 자기는 이제 자신이 행한 것들에 대한 책임이 등장하는 자기가 된다.윤리적 실존의 자기는 이미 주어진 관계를 의식하고 책임 가운데 살아간다. 그리고 그 관계 안에 들어서는 것은 인간에게는 의무이다. 또한 그 의무는 심미적 실존의 자기가 추구하던 외면적 세계를 반성을 통하여 자기 자신 안으로 내면화시킨 후 갖게 될 내면세계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윤리적 실존의 자기는 "관계의 유지를 위하여 타인에 대한 개방성과 솔직함을 요구받게 되고, 또 가져야한다." 왜냐하면 윤리적 실존의 현실성 역시 자신의 가능성이라 할 수 있는 양심에 대한 솔직함이 요구되는 것이다.
    인문/어학| 2015.05.14| 4페이지| 1,000원| 조회(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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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존 웨슬리 소그룹 운동의 형성 과정
    웨슬리의 전도 방법론소그룹 운동의 형성과정Ⅰ.서론웨슬리가 그의 위대한 전도 유산을 후대에 물려준 매개는 그의 탁월한 조직력에 기인한다. 웨슬리는 뛰어난 조직가이긴 했지만, 그가 아무런 본보기 없이 그의 조직들을 탄생 시킨것은 아니었다. 그가 태어나 성장하며 사역하던 시기는 다양한 목적의 소그룹이 산재해있던 시대였다. 웨슬리는 이 모든 소그룹에서 조금씩의 영향을 받고 또 종합하여, 마침내 그만의 소그룹을 조직하고 활용하게 되었다.주목하여야 할 사실은 웨슬리가 조직의 천재이긴 하나 그렇다고 단번에 성숙한 조직을 만들지는 못했다는 사실이다. 그에게도 오랜 경험과 시간이 필요했다. 오랜 기간동안 웨슬리는 여러 형태의 소그룹을 조직하고 운영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많은 실패와 좌절감도 맛보았지만, 기쁨과 열매도 맛보게 되었다. 이 처럼 다양한 경험의 결과로, 그리고 지속적인 소그룹 운동의 추구 때문에 웨슬리는 마침내 성숙한 조직을 이루어내었다.Ⅱ.웨슬리 당시의 소그룹 운동1. 시대 상황웨슬리가 태어나서 성장하며 사역을 시작하던 시대는 다양한 목적의 소그룹 운동이 산재하고 있었다. 웨슬리는 이 모든 그룹에서 조금씩 영향을 받았고 또 종합하여, 마침내 그의 소그룹을 조직하고 활용하게 된다.존 웨슬리는 주후 1729년 옥스퍼드에서 몇 명의 학생들과 더불어 신성클럽을 조직하고 거룩한 삶을 추구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웨슬리만의 독자적인 행보는 아니었다. 그 때에는 이미 런던과 웨스트민스터 지역만해도 사십여개의 신도회가 존재하고 있었을 뿐만 나이라, 그와 유사한 신도회들이 여지저기에서 생겨나고 있었다.이 신도회들의 발생영향을 살펴보면 경건주의자들의 "교회안의 교회" 로마 가톨릭교회 산하의 엄격한 "예수회" 형식을 강조하지 않는 드렌티의 신도회, 호넥의 종교적 신도회, 아씨씨의 성 프랜시스의 소그룹 운동 등 여러 형태의 소그룹 운동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이 모든 신도회들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웨슬리 시대의 신도회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무엇보다도 호 이 작은 종교적 신도회들을 위한 규칫을 재정하였는데, 그 규칙들과 역사에 대한 정보는 요사이 우드위드가 1698년 출판한 '런던 시에 있는 종교적 신도회들의 시작과 발전의 기록'에 자세히 설명되어있다. 이 규칙들은 그 후 모든 신도회들에게 필요한 모형이 되었다.호넥은 신도회를 위한 18개의 규칙을 만들었다. 규칙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① 입회하는 모든 사람은 성결의 삶을 살고자 결심하여야 한다.② 모든 회원은 16세 이상이여야 하며, 영국 국교회의 정식교인이어야 한다.③ 영국 국교회의 목사가 영적인 지도자로 선택된다.④ 모든 모임에서 신학적 논쟁을 하지 않는다.⑤ 교회와 국가정부에 관한 토론을 하지 않는다.⑥ 국교회의 연도(litany)와 매일의 기도, 그리고 국교회가 제공한 기도를 사용한다.⑦ 지도 목사가 실천신학을 가르친다.⑧ 기도와 성경읽기 후에 시편송을 부르는 것은 자유롭게 한다.⑨ 이상의 일을 마친 후에 시간이 있으면 영적인 관심사에 관하여 함꼐 대화하되 강요는하지 않는다.⑩ 주간에 하루를 정하여 모이며, 1회 결석에 3펜스의 벌금을 헌금상자에 넣는다.⑪ 모일 때마다 모든 회원은 6펜스를 헌금상자에 넣는다.⑫ 두 명의 청지기를 임명하고 그들은 모은 헌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져다 준다.⑬ 다음과 같은 규칙이 모든 회원에게 의무로 주어진다. 서로 사랑하라, 원수를 갚지 말라, 누구에 대하여도 악한 말을 하지 말라, 아무에게도 잘못된 일을 하지 말라, 가능한 하루 에 7번 기도하라, 영국 국교회에 충실하라, 모든 일을 평화롭고 온유하게 하라, 서로 도 우라, 안에서나 밖에서나 거룩한 생각을 하라, 매일 밤 자신을 성찰하라, 모두를 공평하 게 대하라, 성직자이건 평신도이건 윗 사람에게 순종하라.신도회마다 다른 규칙을 갖고 있었지만 호넥의 규칙은 모든 신도회의 규칙과 모임운영에 기본 틀이 되었다.3. 우드워드의 포플러 신도회역사적으로 가장 표준이 되는 신도회는 17세기 말에 활발하였던 요시아 우드위드 목사가 지도한 런던의 포플러 신도회라고 평가된다. 여야 한다.⑨ 입회하려는 사람들은 모든 종류의 오락을 버리고 술집과 극장과 모든 공중오락을 전적으 로 피해야 한다.⑩ 회원의 의무는 다음과 같다. : 모든 상거래에서 정직하라, 매일 가능한 한 여러 번 기도 하되 영적인 일만 아니라 세상의 일들을 위해서도 기도하라, 주의 만찬은 최소한 한달에 한번 받으라, 타인을 비난하지 말라, 모든 사람에게 온유와 인내와 동정을 실천하라, 매 일 성경을 읽을 때에는 자신을 성찰하라, 예견된 악을 미리 차단하라, 매일 밤에 자신이 어떤 선과 어떤 악을 행했는가 조사하라, 한 달에 한번 개인 금식을 지키라. 특히 주의 만찬을 받기 전에 금식하고, 또한 적절한 경우에 금식하라, 육체의 정욕을 죽이라, 세상 일에 과도히 신경을 쓰지 말고, 하나님 나라 일에 진보하라, 영적인 교만을 차단하라, 경건의 책을 읽되 특히 성경을 많이 읽어 서로를 깨우치라.우드위드가 종교적 신도회에 관한 기록을 출판한 결과 많은 사람들이 소그룹 운동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 분 아니라 실제로 많은 소그룹이 형성되는 계기가 되었다.처음부터 신도회의 유일한 목적이 실천적 성결을 증진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일체의교리적이고 신학적인 논쟁은 금지되었다. 이러한 규칙은 신도회가 일체 분리주의적인 요소를 띠지 않았을 뿐 아니라 지속적으로 영국 국교회와 충성스런 관계를 유지하게 하였다. 이와 같은 이유로 인해 신도회는 1770년 전후에 도덕 개혁운동으로 교회와 사회에서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었던 '생활 습관 개혁협회'와 함께 영국 국교회 안에서 최고은 인정을 받게 되었다. 당시 두 모임이 서로 친밀한 관계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회원들은 동시에 두 모임의 회원이 되어 활동하였다. 그리고 이와 같은 모임은 런던에만 8개가 있었다. 두 모임의 성경은 분명히 구분되었다.신도회들은 마침내 18-19세기 영국 교회사에 복음전도와 해외선교, 교육과 출판 사업, 사회개혁과 봉사에서 위대한 일을 햇던 '기독교 지식 증진회'(SPCK,1699)와 해외 선교에 위대한 공헌을 했던 '해외존 웨슬리의 삶과 사역에서 소그룹 운동을 얼마나 중요시 하였는가는 쉽게 짐작하고도 남을 수 있다. 그는 대학 생활에서도, 선교지의 선택에서도 각주 선교지의 생활에서도 심지어 그의 복음적 회심에서도 이 소그룹 운동과 긴밀히 연결되어 잇었다.Ⅲ. 신성클럽웨슬리가 펼친 사역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속회다. 그가 세운 속회는 당시 부흥에 큰 원동력이 되었고 부흥에 시작이 될수 있었다. 이렇게 놀라운 부흥에 도구로 사용되어진 속회는 그냥 뚝딱하고 조직되어진 것이 아니다. 이것은 그의 인생 속에 그가 경험한 것들이 응집되어져 탄생하게 된 결과물일 것이다. 웨슬리가 후에 조직하게 되는 속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생각되어지는 조직이 바로 그의 동생 찰스 웨슬리와 함께 한 신성클럽이다. 지금 부터 신성클럽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존 웨슬리는 1724년에 옥스퍼드 크라이스트처지 대학을 졸업하고 문학사 학위를 받고, 1728년에 사제안수를 받았다. 아버지의 권유에 따라 1727년 부터 1729년 사이에 대부분의 시간을 엡웟과 룻 교구화의 부목사로 보내었다. 그러던 중에 웨슬리는 1729년 11월에 링컨대학의 부름을 받고 옥스퍼드에 돌아와 일개 그룹의 학부 학생을 가르치는 연구교수의 생활을 시작하였다. 한편 1727년에 옥스퍼드의 크라이스트처치 대학에 입학하여 공부하던 동생 찰스는 이미 두세 명의 동료와 연합하여 일종의 모임을 갖고 있었다. 웨슬리는 옥스퍼드에 오자마자 이 모임에 연합하였고, 곧 그 모임의 지도자가 되었다. 그 모임이 바로 신성클럽이다.존 웨슬리와 신성클럽 회원들은 1729년에 한 책, 곧 성경의 사람들이 되기로 헌신하였다. 그들의 모든 성질, 언어, 그리고 행동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판단되었다. 존 웨슬리가 제시한 자기 성찰의 계획표를 채택하기도 하였다.그 클럽은 회원 수는 물론 관심에 있어서도 발전하였다. 그것은 두말 할 필요도 없이, 존 웨슬리의 나이와 경험, 날카로운 통찰력과 논리적인 표현, 거룩한 삶에 대한 높은 동기 때문이었다.찰그러다가 결국 그들은 매일 저녁마다 모이게 되었다. 정규적인 독서외에 각자가 하루 동안에 한 것들을 나누게 되었다. 그들은 언제나 모일 때마다 기도로 시작하였으며, 끝낼 때마다 소박한 저녁으로 끝마쳤다. 그들은 “모두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었다. 이후에도 그들은 일주일에 두 번 씩 감옥을 방문, 굶주린 자들에게 먹거리를 제공, 추운 자들에게 옷을 입혀 주는 구제 사업까지 그들의 지경이 넓어지게 되었다. 뿐 아니라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일, 병든 자들을 찾아가 위로하는 일에도 힘썼다.이와 같은 영적 실습과 훈련을 통하여 존 웨슬리의 창조적인 소그룹 교제가 탄생되고 있었다. 1735년 웨슬리가 선교사로 조지아로 떠나기 까지 신성클럽을 인도하였다.신성클럽을 통해 웨슬리가 배운 것은 다음과 같이 3가지로 정리해 볼수 있다.첫째, 배움은 개인의 극기와 성결을 위한 소그룹 운동의 역동성이다. 인간의 죄된 성품 때문에 성경한 삶을 취득하고 유지하는 데는 극기가 아주 중요하다. 클럽에서 회원들 끼리 삶을 나누어야 했기에, 소그룹은 개인의 극기와 성결을 위한 막강한 수단이 되었던 것이다.두번째, 교제의 능력이다. 매일 삶을 나누고 서로를 위하여 기도해야만 했다. 서로의 잘못을 점검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세번째, 존 웨슬리가 성공적으로 그의 개인적 성결과 사회적 활동 사이에 균형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그는 신성클럽을 통하여 이 두 가지 요소를 다 실습함으로 개인주의적 성결이나 단순한 사회활동이라는 극단을 피하였다.존 웨슬리. 그는 결코 한 순간에 은혜로 만들어지고 변화되어진 전도자가 아니다. 1738년 올더스게이트 회심 사건 이전부터 하나님은 그를 준비 시키셨고 만들어 가고 계셨다.Ⅳ. 조지아 종교 신도회조지아 종교 신도회는 존 웨슬리가 1735년부터 1737년의 기간 동안 조지아에서 선교사로서 사역하고 있을 때 일어났다. 웨슬리가 신도회를 조직할 때 도움이 되었던 책은 신도회의 구성에 관한 제안을 담고 있는 『교구인들을 위한 지방교구 목사의 충고』와 프랑스의 신비주의자 드 다.
    인문/어학| 2015.05.14| 9페이지| 2,500원| 조회(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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