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자(Pizza)? 피자(Pizza)의 유래- 피자라는 말이 어디에서 유래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납작하게 눌려진' 또는 '동그랗고 납작한 빵'을 의미하는 그리스어(語) 피타(Pitta)에서 유래되었다는 설과, 'a point'라는 영어 단어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피자의 유래에 대한 설은 매우 다양하지만, 일반적으로 그리스·로마시대에 이스트 없이 기름과 식초로만 반죽해 구운 납작한 빵인 마레툼(Maretum)에서 유래했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당시에는 마레툼에 마늘과 양파를 곁들여 먹기도 하였는데, 18세기에 이탈리아로 건너오면서 토마토를 첨가해 시아치아타(Schiacciata)라는 이름이 되었다. 피사의 사탑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토스에트루리아인과 그리스문화에서 유래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18세기 말부터 모차렐라 치즈, 안초비, 마늘, 기름이 사용되기 시작하여 오늘날의 피자 형태가 나타났으며, 19세기에는 라드·돼지고기·토마토·치즈의 사용이 일반화되었다. 1830년에는 캄파니아주 나폴리에서 피체리아(pizzeria)라는 이름으로 상품화되었는데, 베수비오산의 화산암 요(窯)를 이용하여 만든 나폴리 피자는 이탈리아 전 지역에 퍼지게 되었다. 움베르토 1세의 왕비인 마르게리타가 피자에 관심을 보이자 1889년 6월 나폴리의 유명한 피자점 주인 돈 라파엘 에스폰트가 토마토 소스, 바질, 모차렐라 치즈로 이탈리아 국기를 상징한 유명한 '피자 마르게리타'를 만들었다.- 이후 19세기 후반에 이탈리아가 근대화를 추진하면서 빈곤이 격화되자 미국으로 이민한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 중 일부는 당시 세계대전의 와중에 빵 가게들이 불황을 겪게 되자 피자를 만들어 팔기 시작하였으며, 빵에 토마토 퓨레, 오레가노(향신료), 치즈 가루를 얹은 피자를 상품화하게 되었다. 1905년 조반니 롬바르디가 뉴욕에 처음으로 피자점을 열었고 1920년대부터 이탈리아 이민자 중 많은 수가 미국 북부를 중심으로 피자점을 개점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이탈리아 음식인 피자는 미국에서 매우 유명해졌으며, 미국의 피자 식품업체들은 거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세계시장에 진출하였다. 한국에는 미군부대에 의해 전파되어 일부 호텔, 레스토랑에서 특정인들의 식품으로 여겨지다 1986년 아시아경기대회, 1988년 올림픽경기대회를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음식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만드는 방법은, 이스트로 부풀린 밀가루 반죽으로 넓고 둥글게 밑면을 깔고, 그 위에 토마토 소스·올리브·안초비·버섯·베이컨·소시지·새우 등 여러 가지 재료들을 얹고, 맨 위에 모차렐라 치즈 다진 것을 뿌리고 약 300℃의 오븐에서 10∼15분 동안 위에 뿌린 치즈가 녹을 때까지 굽는다.케이크(Fruit Roll Cake)? 케이크(Cake)의 유래동양에서 쌀을 가공한 밥 → 떡 →과자가 만들어졌듯이 서양에서는 밀가루를 가공한 빵→케이크가 만들어졌다. 서양 케이크가 동양의 과자와 다른 점은 일찍부터 단맛을 내는 꿀, 계란, 동 ·식물성 기름, 버터, 치즈를 사용했을 뿐 아니라 발효 반죽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처음 케이크 형태를 갖춘 케이크가 출현한 곳은 이집트, 과당(Fructose)과 꿀을 넣어 설탕절임한 과일, 천연 얼음으로 만든 셔벗이 바로 그것이다. 8 ~ 9세기의 그리스 시대에는 이미 계란, 유지를 넣어 만든 케이크가 100종류에 달해 있었다. 로마제국 시대에 비로소 빵과 케이크가 분류되고, 그 각각의 직업별 조합이 생겼다. 5 ~ 15세기에 걸친 1,000년 동안은 종교과자가 득세한 시대였다. 그때는 교회, 왕후 귀족들만이 빵 ·케이크 오븐을 갖고 있으면서, 평민들에게 그 사용료를 물게 하는 특권제도가 있었다.11 ~ 13세기는 십자군 원정으로 동방에서 설탕, 향신료가 들어오게 됨으로써 케이크의 품질이 높아졌다. 또 15 ~16세기에는 포르투갈, 에스파냐가 중심이 되어 지리상의 발견이 이어졌다. 동양으로 가는 뱃길이 열리고 신대륙이 발견됨에 따라 동양에서 유입된 설탕, 향신료로써 케이크의 질을 높였다. 그와 동시에 인권존중의 분위기가 고조되어 빵 ·케이크 오븐을 교회에서 독점하는 제도는 무너졌다.18세기에는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났다. 그 결과 증기기관을 갖춘 공장에서 여러 가지 케이를 많이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반면 대량 생산에 알맞지 않은 생과자는 프랑스를 중심으로 하여 만들어졌다. 19세기가 되면 유럽 전체에 첨채(사탕무우)가 보급되어 첨채당의 공급체제가 이루어짐으로써, 이 때 비로소 케이크가 대중화 되었다. 그리고 20세기에 들어 점차 다양화 국제화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