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만화ㆍ애니메이션학과90821975장원서이번 레포트의 주제로 한국 근현대사에서 전개된 사건 중 하나의 사례를 선택 하라는 글에 큰 부담을 느겼습니다.왜냐하면 누구나 알고 있는 임진왜란, 강화도조약, 6.25전쟁 정도만을 알뿐이지 다른 사건들을 알지 못 했기 때문입니다.그래서 레포트 준비를 하려 할 때 굉장히 어려움을 느꼈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정보를 모으던 중 제주 4.3 사건을 알게 되었습니다.제주 4.3 사건을 통해 죽은 사람의 숫자는 3만 여명에 이르렀고 이 숫자는 제주도민의 10명 중 1명이었고 그 중엔 여자와 어린아이들도 상당수 포함 되어 있었습니다.제주도 주민들을 빨갱이, 무장공비로 몰면서 학살한 제주 4.3 사건은 1948년 4월 3일 좌익 무장대가 단독선거를 추진하는 미군정을 죽음으로써 반대한다고 선언을 하면서 일어났습니다.무장대는 경찰과 우익단체요원들을 죽이면서 봉기를 일으켰고 이 사건 이후 미군정은 토벌대를 급파하여 사건을 진압하려 했습니다.하지만 무장대만을 제압 한 것이 아니라 무고한 양민들을 학살하면서 문제가 되었습니다.살해된 사람들은 대부분 무장대가 아니라 아무 죄도 없는 양민들과 어린아이들이었습니다.이러한 와중에 미군정은 4.3 사건의 무장대를 진압하기 위해 해상교통을 차단하는 도령을 발표 합니다.당시 총선거를 부정하는 무장대는 미군정한테 있어서는 굉장히 큰 걸림돌이었을 것 입니다.그리고 제주도 주민들의 70%가 좌익 이라는 보도가 있을 정도로 인식이 안 좋았기 때문에 몇 명의 여자와 아이들이 살해 되었다는 정보가 상세히 남겨져 있고 알고 있었음에도 미국은 이를 묵과했습니다.그런던 와중 김익렬 중령은 경찰, 서북청년단과 제주도 주민 간의 갈등에 군이 개입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판단하여 귀순 작전을 추진했고 4월 28일 무장대 총사령관 김달삼과 평화협상을 벌였고 좋게 마무리 되어갔습니다.그러나 회담 성사 4일째 되던 날 합의가 깨지는 돌발 사건이 발생 하게 되는데 이 사건이 제주 오라리 방화사건(1948.5.1.) 입니다.당시 오라리 마을에 방화를 일으킨 대동청년단 무리는 경찰과 소통하고 있었고 마을 사람들도 방화를 한 것은 대동청년단이다 라고 경찰에 말했지만 경찰은 제주 오라리 방화사건을 무장대의 소행이라 미군정에 보고했고 이로써 회담은 결렬 되었습니다.이 사건 이후 미국의 딘 소장이 제주를 방문했고 김병옥 경무부장과 김익렬 중령의 의견 중 딘 소장은 김병옥 경무부장의 토벌 작전에 손을 들어주고 김익렬 중령을 해임 시키는데 미국이 5.10 선거를 앞두고 4.3 진압에 얼마나 공을 들이는가를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5.10 선거 후 토벌은 보복전 양상을 보였고 선거 기권자는 빨갱이로 간주 되어 불과 한달 만에 6천여 명이 무장 폭도로 체포 되었고 무장대들의 행방을 알기 위해 그들의 가족들에게 고문을 했습니다.이후 정부 수립으로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던 토벌은 11월 ‘초토화 작전’으로 대학살을 몰고 오게 됩니다.당시 토벌대였던 2연대 소속 중사가 쓴 ‘진중일기’에 보면 군인들은 귀순에 힘을 썼다고 나와있지만 사실은 무장대가 아님에도 죽인 양민들이 있는 학살에 가까운 토벌이었습니다.‘초토화 작전’은 하나의 지역이 아니라 제주 전역에 걸쳐 벌여졌고 당시 피해 마을만 160개 부락에 달했습니다.
현대미술을 비웃는 아트 테러리스트 뱅크시본 리포트의 주제로 ‘뱅크시’ 라는 작가를 정한 것은 요즘 돈과 능력, 취업에 관해 굉장히 큰 관심과 고민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마땅히 이뤄 놓은 것 없이 시간은 지나서 27살의 나이가 됐고 다시 학교에 입한 했지만 3학년에 소질이 없는 그림 관련 과에 다니게 되자 머리 속에 여러 가지 생각들이 들었고 ‘현대미술의 이해’ 강의를 들으며 몇 억, 몇 백억, 몇 천억의 그림을 그리는 작가들과 작품을 보면서 ‘저 사람들이 작업한 작품을 내가 만들었다면 과연 저 가격에 팔렸을까?’ 라는 생각이 들면서 저들은 무엇이 잘 났고 아무리 철학을 담았다지만 터무니 없는 가격에 팔리는 그림을 보면서 자괴감까지 들었습니다.이렇게 여러 가지 생각이 들던 요즘 발표 과제로 그래피티 작가를 찾던 중 ‘뱅크시’란 작가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뱅크시는 작가가 유명세에 따라 작품의 가격이 달라지는 현실을 비웃기 위해 명화가 걸려 있는 미술관 등에 무단으로 작품을 전시했고 이를 모르는 사람들은 다른 명화들과 똑같이 비싼 작품이라고 평가했고 이를 비웃기 위해 동영상을 공개한 사건도 있었습니다.그는 그래피티 작가이면서 영화제작자입니다그가 제작한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를 보면 terry라는 인물이 나옵니다terry는 유명 스트리트 아티스트들을 따라다니며 촬영을 합니다스트리트 아트는 불법이기에 위험했고 작품이 하루 사이에 사라지는 일이 빈번하기에 그의 촬영은 스트리트 아트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했습니다그렇게 계속해서 촬영을 하던 terry는 사회에 큰 이슈를 몰고 있던 뱅크시를 만나면서 급변하게 됩니다뱅크시를 따라다니며 그가 하는 작품을 촬영하고 보고 느꼈고 그의 권유로 인해 스트리트 아트를 촬영한 것으로 다큐를 제작하게 되었습니다.시간이 흘러 terry의 작품을 본 뱅크시가 너무나 끔찍한 결과에 자신이 만들었던 다큐가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입니다.이 다큐를 제작하기 전 뱅크시는 terry에게 전시회를 해보는 것을 권유 했습니다뱅크시의 권유로 terry는 전시회를 준비했고 그 기간 중에 촬영을 하며 친분이 있던 스트리트 아티스트들에게 도움을 청해 자신의 전시회를 홍보 했고 엄청난 성공을 거두며 전시회 기간 중에 백만 달러나 되는 작품을 판매 했습니다.terry는 현재 Mr. brainwash 라는 이름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위의 다큐를 보면 뱅크시는 ‘자신은 주위 사람들에게 항상 예술을 해보라고 권했다고 했지만 이제는 절대 권하지 않을 것’이란 말을 했고 다음부턴 다큐 제작에 협조하지 않을 것이란 말을 했습니다.예술이 상업적으로 보이는 것이 싫은 뱅크시의 성격이 나타나는 대목이었고 취미로 촬영을 하던 사람이 갑자기 백만 달러나 되는 돈을 벌었다는 말에 어이가 없었습니다.다큐 중간에 보면 Mr. brainwash가 하는 말 중에 ‘이건 마치 금광 같아요, 그냥 스프레이를 뿌리고 “이건 얼마에요?” 하면 만 8천달러, 만 2천달러!’진짜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 나왔습니다.
악마의 술 압생트를 즐기던 화가들본 리포트의 주제로 ‘압생트’ 라는 술을 정한 것은 빈센트 반 고흐가 이 술을 굉장히 좋아했고 그의 작품들에 ‘압생트’의 중독현상이 많이 나타나있기 때문입니다.압생트는 원래 술이 아닌 치료용 약물이었는데 당시 유명한 주류업체의 손에 처반전이 들어가면서 술로 바뀌었고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어 프랑스 한 시기를 대표하는 술이 되었습니다.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지원을 받아야 할 정도로 가난했었기 때문에 값싸고 독한 압생트에 빠져들었고 중독 되었습니다.고흐의 중독현상은 작품으로도 나타나게 됩니다.압생트에 중독 되어 있던 고흐는 황시증을 앓게 되어 노란색에 집착하게 되었고 그의 작품 중 ‘밤의 카페’, ‘압생트가 있는 정물’, ‘밤의 카페 테라스’, ‘해바라기’, ‘빈센트의 방’, ‘노란 집’, ‘아를의 다리와 빨래하는 여인들’,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 ‘오귀스틴 롤랭과 그녀의 아기’, ‘몽마르트르 언덕’, ‘까마귀가 있는 밀밭’, 등의 여러 작품들을 보면 모두 노란색이 많이 쓰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그리고 압생트에 중독 되면 환각, 환청, 착시 현상에 빠지게 되는데 고흐의 작품들을 보면 대부분 이러한 증상들이 나타납니다.꿈틀거리는 터치나 채도가 낮고 토할 것 같은 색깔을 썼다는 것을 보면 압생트의 중독현상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프랑스의 한 시기를 대표했던 만큼 빈센트 반 고흐 외에도 많은 예술가들이 이 술을 즐겼고 작품의 모티브로 사용했습니다.‘고갱’, ‘마네’, ‘피카소’, ‘로트레크’, ‘드가’ 등의 사람들이 있습니다.이들의 작품들 중 한 가지씩 예를 들면 고갱의 경우 고흐와 같이 지누 부인을 그렸던 ‘밤의 카페, 아를’ 이라는 작품, 마네의 경우 ‘압생트를 마시는 남자’ 라는 작품, 피카소는 ‘압생트를 마시는 여자’ 라는 작품, 로트레크는 고흐와 압생트를 마시며 그린 ‘빈센트 반 고흐의 초상’ 이라는 작품, 드가는 ‘압생트를 마시는 사람’ 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위의 작품들에는 압생트가 등장 합니다.고갱의 ‘밤의 카페, 아를’ 에서는 지누 부인의 테이블 위에 압생트가 놓여져 있는 것을 보실 수 있고 마네의 ‘압생트를 마시는 사람’ 에서는 남자의 왼쪽에 압생트가 있습니다.또 피카소의 ‘압생트를 마시는 여자’ 에서는 글라스에 담긴 초록빛 압생트가 보이고 로트레크의 ‘빈센트 반 고흐의 초상’ 에서는 압생트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만 생전에 고흐와 그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압생트를 마셨다는 것이 전해집니다.이들 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의 예술가들도 압생트를 즐겼습니다.당시 소설가였던 ‘에드거 앨런 포’, ‘어니스트 헤밍웨이’, ‘오스카 와일드’ 시인이었던 ‘아르튀르 랭보’ 등 많은 분야의 예술가들이 압생트를 즐겼고 고흐의 죽음 이후에도 많은 사람들이 즐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