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열어주는 철학이야기양심선언저는 리포트를 인터넷에서 다운을 받거나, 남의 것을 그대로 베낀 것이 아닌 본인 스스로 열심히 적은 것을 선언합니다.공자의생애공자는 춘추시대 말기, 기원전 551년 오늘날 중국의 산둥성 취푸(曲阜) 동남쪽에서 하급 귀족 무사인 아버지 숙량흘(叔梁紇)과 어머니 안(顔)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조상은 원래 송의 귀족이었으나 노(魯)로 망명하였다. 에는 공자가 상(商) 왕가의 후손이라는 서술 있어 때로는 공자를 상 왕족의 혈통으로 여기기도 하였으나, 에는 이에 대한 기록은 없고 단지 "그의 선조는 송(宋)나라 사람으로 공방숙(孔防叔)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역사적으로는 그를 송(宋)의 후예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름은 구(丘)이고 자(字)는 중니(仲尼)이다. 공자를 일컫는 영어 콘휴셔스(Confucius)는 존칭인 공부자(孔夫子)의 라틴어식 표기이다. 공자의 어머니는 아버지와 정상적인 혼인 관계로 맺어진 사이가 아니었다. 공자는 3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17살 때 어머니를 여의였으며, 19살 때 송나라 출신 여인과 혼인했다. 20살 때부터 계(季)씨 가문 창고지기로 일했고 가축 사육일도 맡았지만 주나라 관제와 예법을 꾸준히 공부하면서 예(禮) 전문가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35살 때 노나라에서 내란이 일어나 소공이 제나라로 망명하자 공자도 제나라로 떠났다가 2년 뒤 귀국했다.노나라의 창시자로 주왕조(周王朝) 건국의 공신이기도 했던 주공(周公)을 흠모하여 그 전통적 문화습득에 노력하였으며, 수양을 쌓아 점차 유명해졌다. 처음에는 말단 관리였으나, 50세가 지나서 노나라의 정공(定公)에게 중용(重用)되어, 정치가로서의 탁월한 수완을 발휘하였다.그 여정은 다음과 같다. 공자는 19세 때인 BC 533년 노나라 계씨의 창고 관리직이 되었다. BC 517년 삼환씨의 제가에 실패한 소공(昭公)과 함께 제(齊)로 갔다. 제에서 관직 등용에 실패한 뒤 노로 되돌아왔다. 공자는 51세 때인 BC 501년 노의 정공(定公)에게 중용( 꾀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는 BC 484년 69세 때 그 불가능함을 깨닫고 고향에 돌아가 제자들의 교육에 전념한다. 이 무렵 아들 이(鯉)와, 고제자(高弟子) 안회(顔回) 및 자로(子路)가 잇달아 죽는 불행을 겪었고, 74세로 자공(子貢)·증삼(曾參) 등 뛰어난 제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타계하였다.공자가 서술한 중요한 책공자의 제자는 모두 3,000명이며, 특히 육예(六藝:禮·樂·射·御·書·數)에 통한 문인(門人)이 72명이라고 한다. 그가 '사람을 가르치는 데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敎人不倦)'이라고 술회했던 것처럼, 공자는 이상을 미래에 건 위대한 교육자였다. 그의 언행은 《논어(論語)》를 통해서 전해지고, 그의 사상을 알아보기 위한 확실한 자료도 《논어》밖에 없다. 이는 그의 제자나 제자의 제자들이 기록한 것이지 공자 자신의 저술은 아니다. 오경(五經)을 편찬하였다고 전하나, 이는 교육목적에 따라서 《시경(詩經)》 《서경(書經)》 등의 고전을 정리했던 것으로 생각된다.공자의 철학 사상공자의 사상에는 중요한 3가지가 있는데, 인, 충 ,예 이다. 공자는 위정자는 덕이 있어야 하며 도덕과 예의에 의한 교화가 이상적인 지배방법이라 생각했다. 이러한 사상의 중심에 놓인 것이 인(仁)이다. 인(仁)에 대한 공자의 정의는 에서만 해도 사람다움(人),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愛人) 등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 하지만 그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정의는 ‘극기복례(克己復禮)’ 곧, “자기 자신을 이기고 예에 따르는 삶이 곧 인(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정의를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보는 이유는 공자가 '인(仁)'을 단지 도덕적 규범으로서가 아닌 사회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정치사상으로 여겼기 때문이다.공자 사상의 인(仁)은 그리스도교의 사랑이나 불교의 자비와는 다른, 부모형제에 대한 골육의 애정 곧 효제(孝悌)를 중심으로 하여 타인에게도 미친다는 사상이다. 모든 사람이 인덕(仁德)을 지향하고, 인덕을 갖춘 사람만이 정치적으로 높은 지위에 앉아 인애(仁愛)의 정치를 한다면한 것이 증자(曾子) 일파의 문인이다.그러나 공자는 또한 인의 실천을 위해서는 예(禮)라는 형식을 밟을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 예란 전통적 ·관습적 형식이며, 사회규범으로서의 성격을 가진다. 유교에서 전통주의를 존중하고 형식을 존중하는 것은 바로 이 점에 입각한 것이며, 예라는 형식에 따름으로써 인의 사회성과 객관성이 확실해진 것이다.이처럼 공자의 사상은 사회적 ·정치적 인간을 위한 도덕이 중심을 이루고 있는데, 그 보편성을 보증하는 것으로서 하늘의 존재도 생각하고 있었다. 공자로서는 하늘이 뜨거운 종교적 심정으로 받들어지는 불가지(不可知)의 존재였지만, 이는 인간적인 활동을 지원하는 신(神)일지언정, 인간을 압박하는 신은 아니었다. 공자의 사상은 어디까지나 인간중심주의였다고 할 수 있다.자신이 여구한 것 가운데 가장 감명 받았던 내용 제2 위정편 7장子曰 : 今之孝者는, 是謂能養이니라. 至於犬馬하여도, 皆能有養이니, 不敬이면, 何以別乎리오?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지금의 효라고 하는 것은 단지 부모를 봉양할 수 있으면 된다고 말한다. 개나 말에게도 모두 길러줌이 있을 수 있으니, 엄숙하게 부모에게 효도하는 마음이 없다면, 부모를 봉양하는 것과 개나 말을 기르는 것을 어떻게 구분하겠는가? 제8 자한편 13장子貢이 曰 : 有美玉於斯하니. 而藏諸잇가? 求善賈而沽諸잇가?자왈: 沽之哉! 沽之哉인저! 我는 待賈者也로라.자공이 말했다. 여기에 아름다운 옥이 있으니, 그것을 궤에 넣어 감추어 두겠습니까? 아니면 물건을 볼 줄 아는 상인을 찾아 팔아 버리겠습니까?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팔아야지. 팔아야지! 나는 물건을 알아보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느리라. 제12 안연이편 11장薺景公이 問政於孔子한대.孔子對曰: 君君, 臣臣, 父父, 子子니이다.公曰: 善哉라! 信如君不君하며, 臣不臣하며, 父不父하며, 子不子면, 雖有粟이나, 吾得而食諸아?제나라의 경공이 공자에게 정치를 물으니,공자대왈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며,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아비는 아비다워야 하며, 자식은 자식다워야 하는 것입不懼하니라. 子貢이 曰:“夫子自道也삿다.”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가 행해야 할 세 가지 일이 있는데, 나는 한 가지도 하지 못했으니, 인덕이 있는 이는 근심하지 아니하고, 지혜로운 이는 미혹되지 아니하고, 용감한 이는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자공이 말했다. “이는 바로 선생님께서 스스로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다.” 제 1 학이편 16편子曰: 不患人之不己知요, 患不知人也니라.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다른사람이 나를 이해해 주지 않아도 나는 걱정하지 않는다.내가 걱정하는 것은 내 자신이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연구한 뒤의 학생의 소감공자의 논어는 공자와 그의 제자들 간의 대화로 이루어져있다. 대화 형식이라 쉽게 읽을 수 있다. 논어를 읽다보면, 많은 지식들을 배우게 되는데, 이 지식들을 돌아보면 지금 나의 생활에 대해 많이 반성하게 된다. 공자님께서는 “다른 사람이 나를 이해해 주지 않아도 나는 걱정하지 않는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내 자신이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라고 하신말씀을 보면서, 항상 나를 이해해 주지 못하는 부모님, 형제자매 등에게 이해해 주지 않는다고 화를 냈던 제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상대방의 상황도 이해해야한다고 생각은 하고있지만 실천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공자님께서“엄숙하게 부모에게 효도하는 마음이 없다면, 부모를 봉양하는 것과 개나 말을 기르는 것을 어떻게 구분하겠는가?”이부분을 읽으면서 지금은 부모님을 봉양하는 처지가 아니지만 나중에 보모님을 봉양할 때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닌까 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이 나에게 주었던 사랑들을 마음을 되새기면서 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또 공자님께서 말씀하신 “공부만 하고 사고하지 않으면 속임을 당하기 쉽고, 공상 만 하고 공부하지 않으면 믿음이 부족하게 된다.”고 하셨다. 이 부분에서 요즘 사회의 학습은 주도적인 학습이아니라 강제로 외우기만 시키는 학습인데 공자님의 말씀처럼 공부를 하고 사고를 하는 학습이 바탕이 되어하며 또 공상만 하면 안된다고 적혀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데 목적이 있다.” 라는 부분을 읽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을 남에게 보여주기 부끄러워서 하지 않았을 때가 많았었는데, 지금 와서는 참 후회가 됩니다. 앞으로 나를 위해 학문을 익히고 자신을 조금 더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바로 실천하기는 힘들겠지만 차근차근히 목표를 설정해 봐야겠습니다. 또 공자님의 “ 나는 열다섯 살에 학문에 뜻을 두고, 서른 살에는 (예의를 알게 되어) 말하고 일하는 것에 모두 자신이 있게 되고, 마흔 살에는 (여러 가지 지식을 익혀서 ) 미혹되지 않았고, 쉰 살에는 천명을 알게 되었고, 예순 살에는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면, 곧 참과 거짓을 분별하게 되고, 시비를 가릴 수 있게 되었으며, 일흔 살이 되어서는 마음속에 하고 싶은 대로 하되, 어떠한 생각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게 되었다.” 라는 구절을 읽으면 공부하지 않고 나이만 먹으면 이렇게 학문을 쌓을 수 없고, 차근차근 학문을 어렸을 때 부터 쌓아 올려가야지 비로소 저 단계들에 다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지금 어떤 단계일까 생각이 들고, 전 아쉽지만 조금 늦는 단계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제부터 학문을 조금 더 열심히 해서 저 단계들에 조금 더 다가가고 싶습니다. 또 증자가 말하신 부분도 와닿았습니다. “나는 매일 여러 차례 스스로 반성한다. 다른 사람을 위해 일 처리하면서 최선을 다했는가? 친구와 사귀는데 성실했는가? 선생님이 나에게 전수해 준 것을 복습했는가?” 이 부분은 특히나 요즘 젊은사람 모두에게 질문하고 싶은 말입니다. 저에 대해 저 질문에 답한다면 하나도 못했습니다. 매일 거만한 자세로 생활하였으며, 다른 사람의 일은 별로 신경쓰지 않았으며, 친구와 사귀는 것 보다 그냥 노는 것만 성실히 했습니다. 그리고 수업을 듣고 나서는 시험기간에만 공부를 하는 그런 거만한 학생이 였습니다. 이 질문들이 다 그렇다고 바뀌는 날이 언제 올지는 모르겠지만, 그날이 오도록 노력하고, 항상 생각하고 공부를 열심히 하며 학교생활도 더욱 열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