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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라도 방언의 특수성
    전라도방언의 특수성169101 국어국문학과 김길후첫째로. 전남의 중서부 지역에서는 ‘ㅔ’와 ‘ㅐ’가 변별되지 않는다. 하지만 타 지역은 상황에 따라 변한다. 둘째. 이중모음 ‘ㅢ’가 ‘ㅡ,ㅣ,ㅔ’ 등으로 실현된다. 셋째, 발음중세 국어 ‘ ?’가 ‘ㅗ’로 변한다. 예를 들어 ? →폴(팔), ?→폿/포치(팥)처럼 전라도에서만 볼 수 있는 특수한 발음들이 있다. 벌써가 폴쎄가 되는것도 이러한 현상의 하나라 볼 수 있다. 넷째, 유성음 사이의 [ㄱ]음 보존 현상은 미약하나, [ㅂ]과 [ㅅ] 음 보존 현상은 강하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더버서(더워서), 가실(가을),야시/여시(여우), 모시(모이), 부석(부엌)등 표준어의 발음보다 조금 더 쎄게 발음되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다. 이러한 부분들이 전라도방언은 욕같이 들린다는 오해를 낫게하는데 일조한다고 생각한다. 다섯 번째, 구개음화 현상과 어두 경음화 현상이 강하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쎄(혀), 심(힘), 숭(흉), 지름(기름), 까지(가지), 깡냉이(강냉이)가 있다.이러한 전라도도 노령산맥때문에 전라남도와 전라북도의 방언으로 나뉜다. 모두 같은 서남방언권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차이가 큰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차이점보다는 유사성이 더 많기 때문에 같이 묶이는 경우가 많다.서남방언 자음체계ㅂㅍㅃㄷㅌㄸㅅㅆㅈㅊㅉㄱㅋㄲㅎㅁㄴㅇㄹ발음pphp’ttht’ss’tstshts’kkhk’hmnnl모음체계는 전북방언과 전남방언이 약간 차이를 보인다. 전북방언은 대개 10개의 단모음을 가지지만, 전남방언은 7개의 단모음을 가진다.이런 전라도 방언권이 가지고 있는 특수한 음운변화의 특징 세가지 중 첫 번째는 구개음화이다. ‘ㄷ’ 구개음화, ‘ㄱ’ 구개음화, ‘ㅎ’ 구개음화가 있는데, ‘ㄱ’ 구개음화와 ‘ㅎ’은 어두음절에서만 일어난다. 두 번째로 원순모음화는 ‘、’의 원순모음화와 ‘ㅡ’의 원순모음화로 나눌 수 있는데, ‘ㅡ’원순모음화는 모두 겪은 것이나, ‘、’원순모음화는 일부지역에서만 쓰인다. 세 번째는 움라우트 현상이다. 단어 또는 어절에 있어서, ‘ㅏ’, ‘ㅓ’, ‘ㅗ’ 따위의 후설 모음이 다음 음절에 오는 ‘ㅣ1’나 ‘ㅣ’계(系) 모음의 영향을 받아 전설 모음 ‘ㅐ’, ‘ㅔ’, ‘ㅚ’ 따위로 변하는 현상이 강하게 일어난다. 잡히다가 ‘잽히다’로, 먹히다가 ‘멕히다’로 변화하는 것을 예시로 들 수 있다. 또 중부방언에서 일어난 ㅗ > ㅓ의 비원순모음화를 겪지 않았고 이중모음의 단모음화 과정에서 어말의 ㅓ(+y)는 그 앞에 p, k가 오면 u로 변하는 변화를 겪었다.이렇게 쎈 발음과 생략되는 부분으로 인해 방언사용자와 표준어사용자와의 대화 간 웃지 못할 사례들도 생긴다. 내가 경험한 것과 아는 부분들을 몇 가지 예로 추려보았다.1) 처음 서울에 간 날, 용산역에 막 도착해 먼저 서울에서 자취를 하고 있던 누나와 만났다. 내 딴에는 사투리를 최대한 안 쓴다고 조심스레 대화를 이어가고 있는데, 누나는 내가 사투리를 너무 많이 쓴다며 장난스럽게 핀잔을 줬다. 나는 기껏 조심하고 있는데 주의를 받은 것에 무안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해서 “나 지금 계속 서울말 쓰고 있는디?” 라며 나도 모르게 사투리로 받아친 기억이 있다. 물론 말하고도 사투리인줄 모르고 계속 화를 내며 표준어를 쓰고 있다 우겼다.
    인문/어학| 2019.10.27| 2페이지| 1,000원| 조회(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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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가사상과 법치주의, 한비자에 대한 레포트 평가B괜찮아요
    법가(法家)사상1.법가(法家)사상이란2.법가(法家)사상의 시대적 배경과 특징3.한비자와 법가(法家)사상1. 법가(法家)사상이란법가는 전국시대 제자백가에 나온 한 유파로 그 계통을 이은 정치 사상가에 대한 총칭이다. 전국시대의 전제적 지배를 지향한 진시황에게 채용되어, 진나라, 한나라의 통일제국 성립을 뒷받침한 중요한 사상이 되었다. 《한서(漢書)》 에 의하면, 신상필벌(信賞必罰)의 질서 있는 정치를 주장한 장점이 있고, 오로지 형법에 의거하여 때로는 가족의 정까지도 저버린 것이 단점이라는 평도 있다.위나라의 문후(文侯)를 받들어 부국강병의 실적을 올린 이회 진나라의 재상으로 국내개혁을 달성한 상앙, 저서를 통하여 진시황을 감탄시킨 한비자, 진(秦) 통일제국의 기초를 구축한 이사, 전한의 중앙집권화에 힘쓴 조조, 무제(武帝) 때의 유능한 경제관료 상홍양 등이 법가의 대표자들이다. 현대에 와서 중국은 유가들이 노예주인 귀족층의 세습적 권리를 옹호한 것에 대하여, 법가들은 새로운 봉건 지주계급을 대표하여 국내통일에 공헌하였다는 평가를 한다. 두산백과 2008 http://www.doopedia.co.kr법가는 중국 고대의 여러 학파 중에서 가장 현실적이고 실천성이 강한 이론을 냈다. 춘추 전국 시대의 제자백가 가운데 현실에 가장 적중했던 이론이 법가라고 할 수 있다. 일곱 나라로 갈라져 싸우던 상황을 진나라가 통일하고 전국 시대를 마감한 것은 법가의 이론에 힘입은 바가 컸기 때문이다. 당시의 현실적 모순을 이해하고 해결하는 데 비교적 과학적인 인식을 가졌던 것이 법가라고 할 수 있다. 김교빈, 이현구, 『동양철학 에세이』동녘 2006 p.2052. 법가 사상의 시대적 배경과 특징법가는 전국시대에 출현해서 실정법적인 법의 우위를 주장했다. 이것은 당시 중국의 시대적 변화를 의미한다. 즉 전국시대로 접어들면서 생산력이 발전되고 이에 따라 혈연적 지연적 공동체가 붕괴되자, 이를 대신하여 강제성을 띤 법의 지배를 요구했다. 따라서 법가사상가들은 발전적 역사관을 갖고 시대에 부응하는 지배를 실시할 것을 주장하였다. 거기에는 하나의 인간관이 전제되어 있다. 그것은 인간은 욕망의 충족을 추구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의 욕망을 이용하면, 상벌에 의한 통제를 가능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법가사상가들은 상벌을 통해 왕권을 강화하고 부국강병을 달성하고자 하였다. 이렇듯 법가는 상과 벌을 엄격하게 했다. 마땅히 받아야 할 사람에게 상을 주고, 마땅히 벌을 받아야하는 사람에게는 벌을 주었다. 이는 신분이 천하는 귀하든 공평하게 행해졌다. 법의 집행 앞에서는 신분이 공평해졌다는 말이다. 법가는 사람의 본성은 악하다는 성악설을 지지했다. ‘사람의 본성은 이기심일 뿐이다’라고 했다. 따라서 사람의 본성에 대해 신뢰하지 않았다.법가사상의 장점은 혼란한 사회를 통일하고 국가의 자원을 동원하여 국가를 발전시키는데 유리하다. 대신 단점은 인간의 감정을 무시하여 국민들의 지지를 장기적으로 유지하기 어렵고, 그에 따라 정권을 오래 유지할 수 없다. 그래서 장기간 존속한 대부분의 봉건왕권국가는 권력을 획득한 초기에는 법가사상을 이용하였으나, 정권이 어느 정도 안정이 되면 유가의 사상을 이용하여 국민들의 지지를 획득하였다. 박찬구, 『고등 윤리와 사상』천재교육 2006 p.115 참조3.한비자와 법가(法家)사상한비자(韓非子,기원전 약 280∼233년)는 법가사상을 완성한 사람으로, 전국 말기 한(韓) 출신이다. 원래는 한나라의 공자로 순자(荀子)에게 배운 중국 고대의 이름난 사상가이자 법가 학파를 대표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고분』,『오두』, 『내외저(內外儲)』,『설림(說林)』,『세난(說難)』등 십만여 자에 이르는 저작을 썼다. 그는 상앙의 법, 신불해의 술, 신도의 세를 비판하고 종합하여 법가 이론을 완성하였다. 한비자는 법과 술로서 국가를 통치할 것을 주장했다. 제왕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탄생시킨 한비자는 말 그대로 뜨거운 감자와 같은 존재였다. 이 때문에 숱한 오해와 공격의 표적이 되었지만 그만큼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제왕학과 정치사상을 제시한 인물은 지금까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권력관계와 그를 둘러싼 투쟁을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틀'로서 인성(人性)이란 문제를 제기했던 한비자는 존재 자체로 충격이었다. 그는 인간의 이기심을 섬세하고 날카롭게 간파한 다음 이를 제왕학(통치학)의 권술(權術) 이론으로 발전시켰다. 권력론-권술론-제왕학이 그에 이르러 하나로 결합되어 가장 실감나는 이론체계로 확립되었다. 그의 이론은 깨어 있는 시대의식을 바탕으로 당시 상황을 그대로 적용한 결과물이었다. 차이위치우(柴宇球) 외 『5000년 중국을 이끌어온 50인의 모략가』들녘 2006 pp.3-5, 107-109(1)한비자의 삶그는 원래 말더듬이 였으나 논리적인 문자을 갈고 닦는데 힘써 매우 탁월한 문장력의 소유자가 되었다. 그는 자라면서 유학자인 순자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웠다. 한비자가 살았던 당시의 한나라는 전국칠웅 중에서도 가장 작고 약한 나라였다. 영토는 사방 천 리도 못 되는데다가 서쪽으로는 진나라, 동쪽으로는 송나라와 제나라, 북쪽으로는 위나라, 남쪽으로는 초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어 잠시도 평온할 날이 없었다. 한비자는 계속되는 전쟁 속에서 약소국이 겪어야 하는 비애와 굴욕을 몸소 느끼며 살았다. 한비자는 한나라 왕이 법률과 제도를 정비하고 권력을 장악해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고 어진 인재를 등용하는데 힘쓰기는커녕, 도리어 실속 없는 소인배들을 등용하여 그들을 실질적인 공로자보다도 높은 자리에 앉히는 것을 매우 가슴아파했다. 또 유학을 내세우는 자들은 경전을 들먹이며 나라의 법도를 어지럽히고, 협격은 무력으로 나라의 법령을 어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게다가 군주가 나라가 태평할 때는 이름을 날리는 유세가들만 총애하다가 나라가 위급해지면 허겁지겁 갑옷 입은 무사를 등용하는 점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래서 한비자는 군주가 법으로써 나라를 편안하게 다스리는 방법을 건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초나라가 오기(吳起)를 등용하지 않은 결과 영토를 빼앗기고 나라가 혼란스럽게 된 예를 들면서, 나라를 법률로 다스리는 방법을 아는 인사를 알아주지 않는 세상에 대한 울분을 터뜨리며 『한비자』라는 책을 지었다.『한비자』가 세상에 나오자 진나라 시황제는 우연히 이책을 읽고 크게 감동하여 “과인이 이 사람을 만나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구나”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객경(客卿)벼슬에 오른 이사(李斯)는 동문수학한 친구 한비자가 진시황의 총애를 받는 것을 꺼려 서슴지 않고 그를 모함했다. 이사(李斯)는 한비자가 한나라의 공자이기 때문에 진나라를 위해 일하지 않을 것이며, 그를 등용하지 않고 억류했다가 돌려보낸다면 후환이 될 것이니 죽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시황은 그것이 맞다고 생각해 사약을 내려 한비자를 죽이게 했다. 뒤늦게 자신이 저지른 일을 후회했지만, 이미 한비자가 죽은 뒤였다.한비자는 비록 진나라에서 죽음을 당했지만 그의 법가 사상은 진시황의 통치 원칙이 돼 훗날 진나라의 통치에 기여했다. 한비자, 김원중 역 『한비자』 글항아리 2010 pp.13-14(2)한비자의 법가(法家)사상한비자는 법가를 대표하는 인물이지만, 그가 나오기 이전에 세 갈래의 큰 학파가 있었다, 첫째는 법(法)을 강조한 상앙(商)이고, 둘째는 술(術)을 강조한 신불해(申不害)이며, 셋째는 세(勢)를 강조한 신도(愼到)이다. 상앙이 주장한 ‘법’은 백성들의 개인적인 이익 추구를 막고 나라의 이익을 우선으로 하는 원칙을 의미한다. 신불해의 ‘술’은 신하들이 내세우는 이론과 비판을 그들의 행동과 일치하게 하는 기술로서, 신하들을 잘 조종해 군주의 자리를 더욱 굳건히 하는 인사 정책을 말한다. 신도의 ‘세’는 군주만이 가지는 베타적이고 유일한 권세를 말한다. 한비자는 이 세 학파의 주장을 두루 수용해 발전시켰다. 한비자에 의하면, 일찍이 현명한 군주가 제도를 시행할 때는 공평하게 원칙을 지키고, 인물을 가려 뽑을 때는 귀신같이 밝았으므로 그를 비난하거나 곤경에 빠뜨리는 자가 없었다. 그리고 권세를 이용해 법을 엄하게 실시해도 군주의 뜻을 거스르는 백성이 없었다. 다시 말해 한비자는 이 가운데 그 어느 하나만 가지고 통치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군주는 반드시 ‘법’, ‘술’, ‘세’의 세 가지 통치 도구를 모두 갖추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비에게 있어서 법이란 군주가 공포하면 지위의 높낮이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이 따라야 하는 행위 준칙이다. 또한 이 법은 군주의 통치 도구이며 전제법이다. 군주는 법률을 제정하고 법에 따라 신하와 백성을 다스리는 권력을 가지고 있다. 법은 만인에게 두루 적용되지만 군주는 법률의 제재를 받지 않는다. 결국 법은 지배층과 일반 백성 사이의 불평등 관계를 반영하고 군주의 지위를 강화시킨다. 이렇게 볼 때, 한비자가 주장하는 법이란 겉으로는 군주와 신하 그리고 백성들이 모두 함께 준수해야 하는 법칙이지만, 실제로는 군주가 나라를 다스리는 도구에 불과하다고 비판할 수도 있다. 한비자, 김원중 역 『한비자』 글항아리 2010 p.17
    인문/어학| 2015.10.05| 5페이지| 1,500원| 조회(1,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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