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Fruhlings Erwachen-프랑크 베데킨트 作사춘기. 우리 사회에서 익숙한 이 단어와는 달리 이 비극은 충격적인 내용이었다.제목번역의 실패 때문일까. 책에 적힌 제목만으로는 안에 담겨진 내용을 상상하기힘들었다. 어린이 비극. 어린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행복하고 웃음이 지어지는데,이런 어린이들에게 얼마나 아픈 비극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사실 이 작품은 출간 초반에는 대중들의 관심을 끄는 데에 한계가 있었다.청소년들의 성문제와 자살을 다룬 내용이 당시 독일 사회의 관객들에게는상당한 거부반응을 일으켰을 것이기 때문이다.작가는 극에 등장하는 세 명의 청소년기 학생들 속에 자신의 경험을 담아냈다고 말한다.표현주의가 성행한 1900년대 초반, 독일에서 쓰여진 작품답게 작가는 본인의 모습을토대로 글을 작성한 표현주의적 기법을 잘 드러내고 있다.극에는 세 명의 청소년이 등장한다. 규율과 관습이 지배하는 당시 독일사회와 의문과질문으로 가득한 청소년의 세계가 대립되는 양상을 나타낸다. 학교와 학생의 대립,가정 내부 부모와 자식의 대립, 종교교육과 인물들의 대립까지 다양한 형태에서시민사회와 청소년간의 대립을 나타내고 있다.모리츠는 수학능력이 살짝 떨어지는 학생으로, 엄격한 가정에서의 과도한 성적요구로인한 스트레스와 우울증으로 부모의 절망적인 태도를 걱정한 나머지 권총으로 자살한다.이는 모두 모리츠의 부모의 견해에서 비롯된 결과라 볼 수 있다. 모리츠의 부모님은무능력자는 도태 될 수 밖에 없다는 능력위주의 경쟁사회를 요구한다. 모리츠의 감성과능력은 무시한 채, 무조건 결과와 성적만 가지고 판단하는 부모의 태도는 결국 아들을죽음으로 내몰았다. 또한 모리츠의 아버지는 자살을 죄악시하고 있다. 자살한 아들의장례식에서 이 아이는 자신의 아이가 아니었다고 부정하는 등 시민사회 위주의 은폐적인 태도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14세 소녀인 벤들라는 본인에게 신체적인 변화가 생기자 성에 대한 궁금증을 어머니에게 물어본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성을 금기시하여 진실을 은폐하려 한다.그렇게 정상적인 성교육을 받지 못한 벤들라는 결국 임신하게 되고, 임신중절 수술 중잘못된 수술로 인해 사망하게 된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도 벤들라의 어머니는 벤들라의임신사실을 끝까지 숨기려 하여 아이가 사망한 뒤에도 묘지에 빈혈로 사망했다는 글로끝까지 사실을 은폐하려 한다.벤들라의 어머니의 태도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는 당시 사회가 성을 금기시하며 수치스럽게만 받아들였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가정에서부터 비롯된 성에 대한 수치심은아이를 무지의 상태로 내몰아가게 되고, 결국 임신과 사망이라는 비극적인 결과로 몰아가게 되었다. 그 뒤로도 사회의 이목이 두려웠던 어머니는 끝까지 아이의 사망을 빈혈로포장하는 등, 성장하는 어린이들에게 성에 대한 관심을 이해하려 하기보다 수치심과은폐적인 태도가 결국 본인의 아이를 죽음으로 내 몰아 간 것이다.멜히오는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의 가정에서 성장하여 열린 교육을 받은 학생이다.세상의 진리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면서도 기성세대에 대한 반항심을 가슴속에 담고있던 그는, 변화하는 신체구조와 성적인 문제에 대해 꽤나 많은 지식을 보유하고 있었다.그러나 자신을 때려 달라는 벤들라의 청에 그녀를 때리면서 본능적인 유혹에 휩싸인다.결국 그 본능에서 비롯한 성관계가 벤들라를 임신하게 만들게 되었다.모리츠의 자살은 그의 친구인 멜히오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성에 대한 지식이 없는청소년기에 깨어나는 성의 충동에 관한 문제에 대해 모리츠는 멜히오에게 의문을 제시한다. 모리츠에 비해서 성적인 지식이 더 풍부했던 멜히오는 모리츠에게 성의 계몽에관한 내용의 글을 이라는 제목을 달아 적어준다. 모리츠의 자살 후 그 글을 발견한 학교 교사들은 모리츠의 죽음의 원인이 멜히오가 작성한 글로 인해 받은 수치심 때문이라며 그 책임을 멜히오에게 전가한다. 이후 멜히오는 교사회의를 통해 학교에서퇴학 당하여 감화원에 수감된다. 바로 이런 점에서도 작가의 비판이 드러난다. 학교에서의 위압적인 교육과 폐쇄적인 사상, 깨어나는 청소년기의 성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기보다는 은폐해버리는 선생들의 태도에서도 당시 사회에 대한 비판이 들어있다.멜히오의 수감까지 부모의 반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권위적이고 보수적인 아버지와는달리 어머니는 꽤나 열린 교육관을 보유하고 있다. 그녀는 멜히오의 수감을 반대하며아들을 보호하려 하지만, 벤들리의 임신이 멜히오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되자 파렴치한 놈이라며 혐오스러운 태도를 보이고 있다. 멜히오의 부모님은 본인의 아들이 더 이상 깨끗하고 순진한 아이가 아니라며 절망에 빠지고 이후 감화원 수감을 계속반대하던 어머니마저 멜히오를 감화원에 수감하는 데 동조한다. 이러한 태도에서 결국그녀의 부모님의 교육관의 한계가 드러난다. 본인의 아들에 대한 실망감과 함께 더 이상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멜히오의 부모님의 태도는 멜히오의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이후 벤들라에 대한 걱정 때문에 감화원을 탈출해 그녀를 찾아가지만 벤들라는 이미사망한 뒤였다. 그녀의 무덤을 바라보며 벤들라에 대한 책임감과 본인에 대한 경멸감이멜히오에게 자살하고자 하는 충동을 심어준다. 벤들라의 묘지를 바라보며 자살을 생각하는 순간 모리츠가 자신의 머리를 들고 멜히오를 찾아온다. 모리츠는 흔들리는 멜히오를죽음의 세계로 유혹하고, 멜히오가 모리츠의 손을 잡으려 하는 순간, 어디선가 나타난복면의 신사가 모리츠를 꾸짖으며 멜히오를 삶으로 인도한다.과연 이 복면의 신사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 복면의 신사는 시야를 열어줄 기회를주겠다, 이 세상에 있는 재미있는 것이란 것은 모두 알게 해주겠다며 멜히오를 삶의 길로 인도해준다. 모리츠의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도 나타났다던 복면신사는 도대체 어떤의미일까. 베데킨트는 복면신사의 자신의 관점을 녹여냈다. 본인이 비판하는 것은 시민사회의 규범일 뿐, 삶 자체가 아니다. 세상을 열어주겠다는 말로 그 닫혀진 규범에서의탈피를 말하고 있다. 본인의 자살을 후회하는 모리츠의 태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삶의소중함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삶의 세계로 다시 되돌아가고 싶어하는 모리츠를 통해현재 살고 있는 삶의 대한 가치를 인정하고 있다. 다시 말해 그의 목표는 단단하게 닫혀진 당시 독일사회에 대한 비판이었을 뿐 삶에 대한 비판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처럼작가의 생각과 경험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표현주의 대표적인 작품을 통해, 이론으로만공부했던 표현주의적 연극에 대해 한 발짝 더 다가간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