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구제조업의 특성• 노동집약적인 경공업에 해당• 내구재 성격을 가진 산출물• 가구제조업 내 서비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큼• 디자인이라는 서비스의 질에 따라 고부가치화가 될 수 있는 산업가구유통업의 특성• 내수의 비중이 높아 국내 경기변동에 영향을 많이 받음• 시공과 A/S까지 사업활동이 연결• 유통마진이 높음
평화체제 구축-2018.04.27. 제1차 남북정상회담-2018.05.26. 제2차 남북정상회담-2018.06.12. 제1차 북미정상회담-2018.09.18. 제3차 남북정상회담-2018.11 제2차 북미정상회담 예정기존 남북협력 모델의 한계1. 노동집약 제조업의 한계2.자본,기술 집약 사업의 어려움3.물류,관광,자원개발 이익의 제한성남북경협의 새로운 방향 모색1.지식기반 산업과 4차 산업 분야 협력의 필요2.북한의 성장동력 내재화-인재육성3.벨트 형식의 광역경제권 형성결론 및 시사점-남북경협사업 확대에 대비하여 준비 중
산업혁명(Industrial Revolution)- 경제사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issue- 그러나 우리가 통상 인식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분석과 해석상에 많은 견해차이가 있어 개념규정의 문제로부터 시작하여 혁명의 결과에 대해서 까지 모든 면에서 논쟁이 일고 있음.- 이하에서는?개념규정의 문제?산업혁명의 원인?산업혁명의 전제조건: 농업, 국제무역, 인구 및 기술?공업의 발전(을 통한 경제성장의 문제)?결과와 관련된 논쟁(생활수준에 관한 논쟁)을 중심으로 살펴봄개념규정의 문제- 산업혁명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것은 1820-30년대 프랑스, 그러나 이는 학술적으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당시의 상황을 묘사하기 위한 것.- 이 용어가 대중적으로(학술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Anold Toynbee가 1884년에 “Lectures on the Industrial Revolution"을 쓰면서부터.(농업이라는 1차 산업에서 공업이라는 2차 산업으로 바뀐 것이란 의미에서의 공업혁명)- 이 책에서 토인비는 산업혁명을 이전과는 다른 급격한 사회경제적 변혁과정으로 파악하고 그 본질은 경쟁의 출현, 내용으로는 인구증가, 농업혁명, 기술혁신과 공장제의 도입 등을 제시함. 이같은 경제과정과 함께, 자본 노동이라는 새로운 계급을 결과한 사회적 과정도 함께 인식.- 그러나 일부 경제사학자들은 혁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반대. 혁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학자들의 경우 단절성을 강조하여 산업혁명은 “위대한 단절”이었다고 말하고 있으나 이들이 언급하는 1760년에서 1830년 사이의 70년이라는 오랜 기간을 갑작스런 단절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변혁의 점진성을 강조-점진주의(gradualism)적으로 이루어 진 것이기 때문에 혁명이라는 용어는 적절치X.- Ashton은 그러나 다른 용어를 도입하는 경우 혼란만 초래하고 산업혁명이 설령 단절성은 없다하더라도 그 영향력의 측면에서 산업혁명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 있다.- 산업혁명에 대한 개념규정: 어떤 측면을 강조하는가에 따라 4개의중적 소비재로 수요가 급격히 증대했으며, 이러한 수요측면에서의 자극에 발명과 기술혁신이 적절히 대응했고(면직물 관련 기계O), 이것이 다시 공장제의 성립으로 이어지면서 산업혁명에 있어서 핵심적 역할-Kay의 飛梭(비상)(flying shuttle http://en.wikipedia.org/wiki/Flying_shuttle) 1733개발 1750년 이후 보급-방직(옷 만드는 것)과정에서 북의 이동을 자동화함으로써 생산성을 3배로 증대시킴. 실의 부족을 초래- 방적(실 뽑는 것)기술의 발달을 촉진함- Hargreaves 1764 제니방적기(spinning jenny http://en.wikipedia.org/wiki/Spinning_jenny)Arkwright 1775 수력방적기(water frame http://en.wikipedia.org/wiki/Water_frame)Crompton 1779 뮬방적기(spinning mule http://en.wikipedia.org/wiki/Spinning_mule)-실의 과잉상태로 다시 1785년 Cartwright가 역직기(power loom)를 발명-수직기를 대체하고 공장제로의 발전에 실마리를 제공함(http://en.wikipedia.org/wiki/Power_loom)-철강공업에서는 면공업에서와 같이 급속한 기술발전은 없었지만 Darby의 코우크스(화력이 세다)를 이용한 제련법(1709), Cort의 교반압연법(Puddling & Rolling)(1784)-철강생산의 능력을 15배나 증가시킴.-영국에서 이같은 획기적 기술발전이 있었던 것은, 기술개발도 기술개발이지만 외부에서 개발된 기술을 경제적 상업적으로 활용하는데 뛰어났다(과학기술성 창의성大).염소표백 프랑스인 Berthollet 1785소다 생산과정 벨기에인 LeBlanc 1787가스등 프랑스인 Lebon 스코틀랜드인 Murdock 1789그밖에 기구 교량건조기술 등도 프랑스가 앞서 있었다.-또한 영국은 기술의 외부유출을 철저히 통제함-영국인들은 새로운 아이r Q = epsilon( dot Y over Y - n) + n, 국민소득증가율에서 인구증가율을 빼면 수소득 증가율, 여기에 소득탄력성을 곱하고 인구증가에 따른 수요증가를 더한다.균형식epsilon ( dot Y over Y - n ) + n = mu + alpha dot L over L여기서 영국의 공업화가 진행되었다면 농업부문에서의 인구증가율이 전체 인구증가율보다 낮아야 즉,dot L over L < n이며 균형식을 풀어서 대입하면,{epsilon ( {dot{Y}} over {Y} -n)+n- mu } over {alpha } 0이 됨.결국 순소득 증가가 없거나 ε가 0이라 하더라도 기술발전에 따른 생산의 증가율은 양수이어야 한다. n이 클수록 μ는 더 커져야 함.따라서 공업화가 진행되었다는 사실로부터 기술발전에 의한 생산증가율이 인구증가에 따른 한계생산물 감소보다 높다는 것이되고 1인당 생산은 증가.이로부터 공업화가 진행되면서도 즉 농업부문에서의 노동비중이 줄어도 농업생산은 증가할 수 있다.(농산물시장이 계속 균형을 유지하면서도 농업부문에서 공업부문으로 계속 사람이 빠져나갔다)실제 μ를 추정하고 위 식을 만족시키는 μ와 비교(필기내용data참고 21)1700년~1760년 사이는 실제 μ가 크고(실제μ=0.62 사람들이 빠져나가면서도 이를 뒷받침할 충분한 농업부문에 있어서의 기술진보가 있었기 때문에 농산물시장이 균형을 이룰 수 있었음)1760년~1800년 사이는 실제 μ가 작다.(실제μ보다 작기 때문에 조건식을 실제상황이 충족시키지 못했음/조건식: 농산물시장이 균형을 이뤘다, 공업화가 진행되었다 충족시키지 못함/ 실제상황을 살펴보면 농산물수입이 증가했고 농산물가격이 상승함/ 두가지 가정 중 농산물시장이 균형을 이뤘다는 가정이 틀렸을 확률이 더 큼/ 첫 번째 가정이 틀렸다는 증거자료가 많기 때문에 두 번째 가정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간주해도 무방)후자에 대해서는 농업생산성이 크게 빨라지지 못한 것을 의미하고 이로인해 수요초과현상이 발생, 물가상승으로 이어 기계의 동력으로 이용되면서 동력원을 중심으로 생산설비를 갖추는 공장제 확산의 계기-경제‘학’적인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는 생산단위인 기업과 소비의 단위인 가계를 분리했다는 점. (공장제가 설립되면서 소비와 생산이라는 것을 분리해서 볼 수 있게 되었음)- 이 같은 공업조직의 변화에 대해서도 두 가지 견해ㅇ 기술적 측면에서의 규모의 경제 때문에 불가피했다-대규모 동력원의 효율적 이용을 위해, 특히 19세기 중반 철강과 화학은 제조공정상 규모의 경제가 존재-일관작업, 조립생산 등의 노동분화가 보다 대규모 생산으로 확대 정착됨.ㅇ Monitoring Problem; 선대제 하에서의 가내수공업(생산규모가 커져 작업장이 분리되어 있었음), 기업가는 투입물에 대한 통제가 불가능, 원료를 잘라먹거나 shirking. 공장제는 한 건물 안에서 생산이 이루어짐으로써 투입물, 연료와 원료의 이용, 작업에 대한 통제가 가능 (거래비용 중 하나인 모니터비용을 줄이기 위함)(막시스트-자본가가 노동자들을 통제, 감시하면서 보다 효율적으로 착취하기 위해서)- 최근 신제도학파의 견해가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지만 반론도 만만찮다; 특정산업에 있어서도 일부 가내수공업이 늦게 까지 존재. 면직물의 경우 방적 방직 염색 등은 공장제이었으나 옷을 만드는 Taylor는 가내수공업(이는 scale economy가 없었기 때문). 철강에서도 Puddling & Rolling은 공장제 못, 칼 등의 제조는 scale economy가 없어서 여전히 수공업(규모의 경제 때문에 공장제가 안 된 사람들이 있음 ?양복점,방적점-가내수공업, 옷을 만드는 것은 최근까지도 가내수공업 형태로 남아있는 이유?-사람마다 체형이 다르기 때문에 규모의 경제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과학기술의 문제경로의존성-기술과 과학사이의 상호의존성 ex)현미경/ 과학기술의 발전은 기술과 과학의 상호경로의존성을 강화시킴/상호작용이 강하게 나타나는 방향이 어떤방향인지 파악해야 할 필요성 제기Macro vs Micro양적팽창, 복잡미세, 학문 기술진보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음)외생적 성장-내생적 성장-3) Crowding-Out DebateWilliamson출발점; 영국이 프랑스와 전쟁을 치르면서 민간투자를 구축(驅逐-몰아내는)해 성장률이 높지 못했다.Y의 구성 중 정부지출↑함으로써 민간투자↓ -Crowding-Out :고전파 주장 (구축효과)정부가 국채발행을 통해 돈을 조달-영국 내 실질이자율↑투자와 저축에 관해 케인지언vs신고전파/화폐에 대한 수요로부터 출발-3가지 동기: 거래적 동기, 예비적 동기, 투기적 동기(저축과 반대개념) /케인지언“투기적동기”에 의한 화폐수요 중요하게 생각, 신고전파(통화론자)“거래적동기만 인정”이자와 저축 민감하지 않음, 기울기 가파름/화폐에 대한 수요는 투기적 동기를 생각한다면, 저축과 반대개념 : (화폐에 대한 수요↑⇔저축↓)케인지언-투자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서 투자의 수준이 결정되지 저축은 영향을 미치지XWilliamson 저축이 어떻게 되느냐가 중요 (like 통화론자)Williamson계산-당시 영국정부에서 국채를 발행할 때 의회승인이 필요/전쟁기간 중 추가로 발행된 국채를 전쟁에 쓰인 돈으로 환산-전쟁에 쓰인 돈이 민간투자로 들어갔을 것이다.(전쟁을 하지 않았더라면 민간투자가 증가했을 것이다)실질금리가 높아져서 민간이 투자를 줄였을 것이다비판Heim & Mirowski-실질이자율이 높아야하는데 물가상승률을 고려할 때, 실질이자율이란 것을 당시에 파악할 수는 없지만 사후적으로 판단했을 때, 가파르게 오르고 있었기 때문에, 예상물가상승률도 상당히 높았던 것으로 생각할 수 있음. 그렇게 되면 실질이자율이 크게 높지 않음-저축이 투자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주장하는데, 케인지언이 얘기하는 것보다 더 가파른 공급곡선(저축)/저축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서 투자가 어떻게 된다고 할 수 있음(?)Mokyr-Williamson의 논리 자체는 타당성 있음 but 그 크기가 과장되어있음/Williamson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문제는 순수한 Debt.
산업혁명의 확산프랑스1789년 프랑스혁명으로 사회적 대변혁이 발생-경제사적 의의는 봉건제를 청산하고 산업혁명의 전제조건들을 창출했다.-특히 농노의 해방은 영주권의 무상폐기에 의해 근대적, 농민적 토지소유를 확립했고, 농업생산성 제고의 제도적 기초를 마련.(경제발전 측면에서는 그다지 긍정적이지 못한 영향을 미친 아이러니)-그러나 이같은 변혁은, 소토지경영화의 경향으로 이어짐으로써 영국에서처럼 농업부문이 공업발전의 기초를 제공했던 역할(식량의 공급, 노동의 창출)을 하지 못했다. 특히 혁명정부가 취한 길드제의 폐지, 매뉴팩추어에 대한 특권의 폐지, 정치적 통제 통합, 국내관세의 철폐, 도량형의 통일 등의(거래비용을 줄이는)제도적 개혁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정치적 불안과 사회적 혼란 등은 프랑스의 경제를 혼란시키며 공업발전을 지연시키는 요인이 되었다.assignats의 발행과 인플레이션-혁명정부가 당면한 가장 중요한 경제문제는 안정적인 재정의 확보-화폐를 발행하는데 무엇을 담보로 할 것인가? 금과 은은 이미 소유하고 있던 귀족들이 가지고 해외로 도피. 결국 몰수한 토지를 담보로 지폐를 발행 -> 이것이 assignats-토지는 (그 자체로서 가치가 있고) 감추거나 해외로 빼돌리거나 할 수 없고, 또한 공급이 제한되어있어 일부에서는 금이나 은과 같은 귀금속과 거의 같은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함.-처음에는 교회의 토지를 몰수, 이를 담보로 assignats발행.(1789년 당시 프랑스 전체 토지의 약 5분의 1을 차지) 1789년 12월 4억 livres 상당의 assignats 발행 5년내에 교회의 토지를 팔아서 상환해주도록 되어있었다. 이자 5%. 이듬해 다시 대규모의 assignats이 발행되면서 이자는 없어짐.(초반에는 성공적-재정적으로나 통화의 안정 측면에서)-혁명정부는 막대한 재정수요를 감당하지 못하고 assignats을 남발하게됨.-assignats 가치가 급격하게 하락했고, 마침내 1795년 mandats territoriaux로 대체됨으로써생산성이 떨어지긴 했지만 농업부문에 있어서도 기술발전으로 생산성이 증가했음)서점운동과 수송수단의 발달(Mid-West 애팔랜치아 산맥의 서쪽은 거대한 평원지역인구가 동부에서 서부로 계속 유입이 되면서도 토지가 계속 넓어질 수 있었기 때문에 한계수확체감의 법칙이 작용하지X 농업부문에 있어서 생산성이 떨어지지X-미국의 초기 경제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함)-1803 Louisiana Purchase, 1819 Florida Acquisition, 1845 Texas Annexation1846 Oregon, 1848 Mexican Acquisition, 1867 Alaska Purchase-새로운 영토는 먼저 공유지로 편입되었다가 민간에게 불하됨.-토머스 제퍼슨 등 반연방주의자들은 소규모자영농의 창출이야말로 안정적인 국가의 기반으로 보고 싼 가격으로 토지불하를 시행하고자함. 1804년 에이커 당 2달러의 최소 가격을 1820년에는 1.25달러로, 1862년 Homestead Act를 제정한 후에는 무료로 배분.-Turnpikes: 유료도로. 대부분이 New England 지방에 집중되어있었고 관리 등이 허술해서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했다. Turnpike를 건설한 회사들도 큰 이익을 보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1800년대 초 마차-비가 올 때 사용하기 불편, 도로개설-나무판넬을 깔아 그 위로 지나가게끔;Turnpikes/but 유지hard-실패)-운하: 운하의 건설은 1790년대부터 시작되었으나 본격화된 것은 1825년 이리운하가 건설되면서부터. (이리운하-뉴욕을 최대의 무역항으로 make/5대호 中 이리호와 Hudson강을 이은 것-애팔랜치아 산맥으로 인한 물자의 수송이 월활하지 못했던 것이 뱃길로 통해 可) 이리운하의 성공으로 각 주에서는 내륙과의 연결을 경쟁적으로 시도했지만(ex.펜실베니아는 뉴욕주가 이리운하로 성장한 것을 보고 운하make but 실패) 뉴욕 남쪽에서는 애팔래치안산맥 때문에 운하의 건설과 운용이 성공적이지 못함. 운하와 함께 새로운 수송수은 농업의 노동생산성과 관련하여 중요한 의미.농업에 있어서의 노동생산성은 1) 1인당 토지의 규모 2) 단위 토지당 생산량 3) 한사람이 수확할 수 있는 곡물의 양에 의해 결정된다. 이 가운데 두 번째 요인은 남북전쟁이전에 그다지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 시기에는 첫 번째와 세 번째의 요인이 중요한 의미를 가짐.특히 수확에 관련된 기계의 필요성은 절실했고 마침내 1833년과 1834년에 수확기가 개발되었음. 처음에는 보급이 부진: 1850년 까지 팔린 수확기가 3,400대50년대 들어서면서 급격하게 보급:1850-58 사이에 70,000대 이상이 팔림절실하게 필요했던 수확기의 보급이 왜 그렇게 오래 걸렸을까??전통적인 해석은 1850년대의 밀 가격이 상승함으로써 농가의 수익이 증대되었고 동시에 노동력의 부족현상이 심화되었기 때문에 50년대 이후에 급속히 보급되었다는 것이었음.이에 대해 Paul David는 곡물생산의 평균생산비와 생산량 사이의 관계를 분석함으로써 설명함.CHCmC'HCHCmACACS1S2S1QQC sub H는 곡물생산에 필요한 노동비용(평균가변비용): 이용가능한 가족노동이 있는 경우에는 처음에는 수평선의 형태였다가 생산규모가 커지면서 급격히 상승하는 형태.(일정한 양을 생산하는 데 까지는 평균생산비용이 증가하지 않다가 가족노동을 다 소비하게 되면 그 이후부터는 사람을 고용해서 사용해야 했기 때문에 평균비용이 증가함)C sub m은 곡물생산에 필요한 기계구입비용 (평균고정비용): 처음에 기계를 구입하는데는 매우 큰 비용이 필요하지만 생산규모가 확대되면서 급격하게 하락함.(생산규모가 S1왼쪽에 있는 경우는 기계를 사는게 오히려 손해이고 S1오른쪽에 있는 경우는 기계를 도입하는게 유리하다)따라서 초기에 생산규모가 크지 않을 때는 기계를 사용할 유인이 존재하지 않음. 밀의 가격이 상승하면서 생산규모가 점차 커지면 (즉 생산규모가 S1을 넘으면) 기계를 구입하는 것이 유리함.전통적인 해석에 따르면 임금이 상승하면서 CH가 C'H로 상승할 경우,(Cm이rrill Act에 의해 관세를 인상하기 시작한 후, 계속된 남북전쟁 기간중의 재정수입을 목적으로 관세가 지속적으로 인상됨으로써 보호무역의 기초가 됨. 이같은 고율의 관세는 전쟁이 끝난 후에도 낮아지기는 커녕 조금씩 올랐다. 이같은 추세는 1913년 까지 계속되었는데 1913년의 관세인하조치는 1차대전의 발발로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말았음.-유럽의 보호주의: 유럽에서 보수주의로의 회귀가 일어난 것은 다소 특수한 사정 때문.o 1870년대 들어서 미국과 러시아로 부터 값싼 곡물이 대량으로 유입됨(농민들로부터 반발 생김)o 유럽대륙전체가 1873-79년 사이에 심각한 불황(유럽사람들은 이를 Great Depression라 함)이들 사건은 민족주의라는 ideology와 결합되면서 1880년 이후 보호주의가 심화됨.(어느 한 나라가 보호주의를 하게 되면 다른 나라도 확산될 수밖에 없음)이로 인해 독일에서 부터 농공업에 대한 보호관세를 실시, 이탈리아에서도 1878년 신관세법이 제정되면서 농공업에 대한 보호관세를 실시. 프랑스는 농민을 중심으로 1870년대 이후 보호관세의 실시에 대한 요구가 높아졌지만 실현되지 못하다가 기업가들과의 연합으로 정치세력화하고 이후 1890년에 이들이 정권을 장악하면서 92년에 농산물에 대한 관세를 25% 인상하는 등 고율관세정책을 실시-보호주의의 경제적귀결:1) 보호주의가 실시되면 (자유주의와의 반대로)국제간의 교역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해볼 수 있으나 보호주의 복귀라는 시대적흐름이 강력하지 못했고, 그 밖에도 교역량을 증대시킬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작용함으로써 전반적인 국제교역량은 증대됨(증가율 자체는 둔화되었을지 몰라도 교역량 자체는 감소하지X). 1870-1914년 까지 세계교역량은 연 3.4% 성장. 이는 같은 기간 중 세계경제의 성장률 2.1%보다도 높은 수준. 다만 부분적으로 보호주의의 영향이 나타남. 예를 들어 영국의 모직물공업은 수출시장이, 비교적 보호주의 색채가 강했던 미국과 유럽 일부국가들에 집중되어있어 수출이 감소.2) 유는 형태/ 농민들이 값싼 농산물로 타격을 받게 되니까 운영하기 어려움?credit union파산?은행 파산?다른 은행 예금자들 불안?돈을 찾으려는 사람들↑ “contagious”-이같은 상황에서 세계 각국은 싼 외국농산물로 부터 자국의 농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수입관세를 실시했는데, 이 중에서도 미국은 1930년 6월 Smoot-Hawley법을 가지고 미국에 수입되는 대부분의 공업제품에 대해 고율관세를 부과했다.(관세라는 것이 쌍방향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는 세계적으로 보복관세의 제정을 격화시켰고 이에 따라 세계경제는 심각한 하강국면을 맞게 되었다.-더욱이 1931년 오스트리아에서는 빈금융회사가 지불불능임이 밝혀지면서(1931년 파산→유럽에서도 금융문제발생) 금융공황이 독일을 비롯해서 유럽대륙 전체로 파급되었다. 1931년에는 영국이(25년에 금본위제로 돌아갔는데 파운드화를 고평가하여 경제가 악화됨에 따라 결국)금본위제를 이탈했고 1933년에는 미국이 금본위제를 이탈했다.(금본위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금리를 높은 수준에서 유지하는 것이 관건인데, 1929년부터 시작된 공황이 금리를 높은 수준에서 유지하거나 더 높게 하는 것은 어려움) ·(GDP디플레이터=명목GDP/실질GDP 실질GDP-물가변동X / 명목GDP-물가변동O디플레이터라는 말 자체가 명목GDP>실질GDP를 가정but 그래프는 명목GDP가 아래에 있음-물가가 하락했기 때문(종합주가지수-10월 말 급격히 하락-직접적인 계기가 됨/ 생산이 이루어지지 않음1929년 7월 직전이 가장高 7월 29일 이후로 점차 떨어지기 시작1929년 10월 그 이전부터 공업생산지수가 감소하는 양상을 보여 bubble이 꺼지는 계기를 만듦(1929년 1월부터/ 세계교역규모가 점차 축소했음을 보여줌 /안으로 파고드는 형태)?세계대공황의 심각성 show(마름모-주가 정사각형-배당)초기에는 왔다갔다했지만 갑자기 기울기가 달라짐- 급격하게 주가가 상승하게 됨1928년까지는 배당하고 주가가 같이 올라감-bubble이라 할 수 없다다초래.
1.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 제품 생산자나 포장재를 이용한 제품의 생산자에게 그 제품이나 포장재의 폐기물에 대하여 일정량의 재활용의무를 부여하여 재활 용하게 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재활용에 소요되는 비용 이 상의 재활용 부과금을 생산자에게 부과하는 제도 [근거:자원의절약과재활용촉진에관한법률 제16조 (제조업자 등의 재활용의무)]재활용의무 대상품목 4개 포장재군(종이팩, 금속캔, 유리병, 합성수지포장재) 5개 제품군(윤활유, 전지류, 타이어, 형광등, 양식용 부자)<중 략>Step 3.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 문제점허위실적 부풀리기 일부 의무 생산자들이 재활용 사업자에게 돈을 주고 서류상 실적 을 구매함으로써 재활용 의무를 이행한 것처럼 속이는 행태최종 재활용 실적만 확인하는 시스템을 악용하여 재활용이 불가능 한 쓰레기를 재활용 실적으로 둔갑시키는 부당 사례 발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