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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국유사의 설화 속에서 본 일연의 자주의식
    삼국유사의 설화 속에서 본일연의 자주의식목차Ⅰ. 서론1Ⅱ. 일연의 설화 속 역사인식2Ⅲ. 승려 일연의 자주의식과 불교5Ⅳ. 「삼국유사」 편찬 시기와 의도6Ⅴ.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의 자주성의 계승7Ⅵ. 결론8과목명 : --교수명 : --제출자 : --제출일 : --Ⅰ.서론제 오는 노예적 문화 사상을 파괴하고자 함이다.왜? 전해 내려오던 문화 사상의 종교 · 논리 · 문학 · 미술 · 풍속 · 습관 그 어느 무엇이 강자가 제조하여 강자를 옹호하던 것이 아니더냐? 강자의 오락에 공급하던 도구가아니더냐? 일반 민중을 노예화하던 마취제가 아니더냐?소수 계급은 강자가 되고 다수 민중은 도리어 약자가 되어 불의의 압제를 반항치 못함은 전혀 노예적 문화사상의 속박을 받은 까닭이니, 만일 민중적 문화를 제창하여 그 속박의 철쇄를 끊지 아니하면, 일반 민중은 권리 사상이 박약하며 자유 향상의 흥미가 결핍하여 노예의 운명 속에서 윤회할 뿐이라, 그러므로 민중 문화를 제창하기 위하여 노예적 문화 사상을 파괴함이니라.1923년 1월, 신채호가 의열단의 독립운동이념과 방략을 정리하여 만든 「조선혁명선언」이다. 신채호는 이 「조선혁명선언」에서 조선에 내려온 문화 사상을 노예적이라고 표현하며 조선에 내려온 문화 사상은 강자를 위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로 인해 일반 민중은 권리 사상이 박약하다고 이야기 하게 된다. 조선의 문화 사상이 강자 중심이라는 것은 외국을 대하는 태도. 즉 사대라고 명명할 수 있다.(여기서 사대라는 관계는 왜나 오랑캐들과의 관계와는 다르다.) 그렇다면 과거 조선이 사대하던 대상은 누구인가. 조선이 사대를 하던 명 혹은 청이다. 즉, 신채호가 생각한 조선의 문화 사상은 명과 청이 제조하여 명과 청을 옹호하던, 그리고 이 선언문이 쓰여질 당시의 일제 강점기와 같은 상황들을 염두에 두고 자주성이 결여된 사상이라고 해석하였다.그러나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조선의 문화 사상은 고려에서, 더크게 보면 고대, 삼국시대에서, 더 깊게 내려간다면 고조선부터 내려온 것이라고 그 내용을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서사적 기록으로 본다면 여러 설화 사이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즉, 「삼국유사」의 기이편의 설화에는 저자인 일연의 역사인식이 일관적으로 드러나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삼국유사」에서의 역사인식은 민간과 혹은 지역에서 전승되어오는 설화를 중심으로 수집, 보완한 것으로 우리 민족의 중심 사상, 중심 역사인식이라고 봐도 무방하다.「삼국유사」에서 서문이 있는 편은 기이편이 유일하다. 이는 자칫하면 역사가 아닌 허구의 이야기라고 생각될 수 있는 기이편을 싣는 이유를 밝힘으로써 그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그 중요성은 기이편이 정사가 아닌 설화를 묘사하면서 이 설화들이 우리 민족의 중심 사상이며, 우리 민족 자체가 자주성이 있는, 하늘에서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것을 먼저 짚어두고 시작한 것이다.첫머리에 말한다.대체로 옛 성인들이 예악으로 나라를 일으키고 인의로 가르침을 베풀려 하면 괴이, 완력, 패란, 귀신에 대해서는 어디에서도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제왕이 일어날 때에는 부명을 받고 도록을 받는 것이 반드시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점이 있었고 그런 뒤에 큰 변화가 있어 천자의 지위를 장악하고 [제왕의] 대업을 이룰 수 있었다.(중략)그러므로 삼국의 시조가 모두 신비스럽고 기이한 데서 나온 것이 어찌 괴이하다 하겠는가? 이는 「기이」편을 모든 편의 첫머리에 시든 까닭이며 의도다.이 서문에서 ‘그러므로 삼국의 시조가 모두 신비스럽고 기이한 데서 나온 것이 어찌 괴이하다 하겠는가?’라며 중국 옛 성인들의 탄생의 신비스러움을 인정하는 중화의식이 주변국, 즉 삼국의 시조를 괴이하다고 칭하는 것을 부정하며 삼국의 시조 모두 신비스러움을 강조하고 있다. 기이편에 나오는 여러 설화에서 제왕을 상징하는 황색(금색), 용, 신의 자손인 부모 등의 장치를 사용하여 삼국의 시조와 여러 인물을 중국의 옛 성인들의 탄생만큼 신비스럽고 성스럽다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동부여’에서는 왕 해부루가 큰 돌 아래에 있던 금빛 개구리 모양의 어린아이를 아들로 삼금과 같은 시기다. (중략) 환웅이 잠시 사람으로 변해 웅녀와 혼인하여 아들을 낳았으니 단군왕검이라고 불렀다.’일연은 나라의 시조로 단군을 언급하며 우리나라의 역사는 중국의 역사와는 다른, 자주적인 역사로 인식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요임금을 언급한 것은 중국의 태평성대의 왕과 같은 시기에 태어났음을 강조하며 단군왕검을 요임금과 같이 훌륭한 왕임을 이야기하는 것일 수도 있다. 단군왕검을 환웅에 자손으로 표현함으로써 스스로를 하늘의 민족으로 명하고 있는 만큼 우리 민족의 민족 자부심은 이 당시에도 대단했다고 볼 수 있다.「삼국유사」에는 나라를 수호하는 것과 관련된 여러 설화가 수록되어 있다. 나라를 수호하는 존재 혹은 물품은 대개 용 등 제왕을 상징하는 장치와 연관되어 있어, 삼국의 역사를 제왕이 다스리는 자주적인 국가로 인식했음을 알 수 있다.‘돌아가신 임금께서 지금 바다의 용이 되어 삼한을 지키며, 또 김유신 공이 33천의 한 아들이 되어 지금 내려와 대신이 되었습니다. 두 성인께서 덕을 같이하여 성을 지킬 보배를 내리려고 하시는 것입니다.’위의 내용은 만파식적 설화에서 만파식적을 만들 대나무가 있는 섬을 보고 이야기하는 부분이다. 이 부분을 보면 대륙의 지배와 연관된 설화가 아닌 우리의 역사 속 국가 그 자체를 보호하고 높이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 성인으로 표현된 이가 삼국통일에 기여한 문무왕과 김유신이다. 비록 삼국 통일 과정에서 어느 정도 당의 도움이 있었으나, 신라의 삼국 통일기 후반에 신라가 당을 한반도 대부분에서 몰아낸 것을 감안한다면, 이 두 성인은 신라의 자주성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용이라는 성스러운 동물이 한 나라를 수호한다는 것은 다시 말하면 수호의 대상이 되는 나라 또한 그럴 가치가 있는 나라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 신라는 ‘용이 수호할만한 가치가 있는 나라’인 것이다.‘동해의 용이 기뻐하여 일곱 아들을 거느리고 왕의 수레 앞에 나타나 덕을 찬양하며 춤을 추고 음악을 연주했다. 그 중 한 아들이 왕의 가 자세하게 나와 있다.‘“나는 계림의 신하지 왜국의 신하가 아니다. 이제 우리 임금의 뜻을 이루어 드리려고 한 것뿐인데 어찌 감히 당신에게 말하겠는가?”(중략) “차라리 계림의 개나 돼지가 될지언정 왜국의 신하는 되지 않겠다. 차라리 계림 왕에게 볼기를 맞는 형벌을 받을지언정 왜국의 벼슬과 녹은 받지 않겠다.”(중략) 그러자 왜왕은 제상을 굴복시킬 수 없음을 알고는 목도 가운데서 불태워 죽였다.’발바닥 살갗이 도려내진 후 갈대를 벤 곳의 위를 걷고 나서도, 뜨거운 철판 위에서도 제상은 끝까지 굽히지 않았다. 『삼국사기』의 내용과는 다른 점이 확연히 보이는 부분이다. 『삼국사기』에서는 위의 대목을 찾을 수 없다. 「삼국유사」는 제상이 적에게 잔혹한 죽음을 당하는 대목을 적으며 일본이 적국이라는 사실과 충성심을 강조했다. 이는 일연이 「삼국유사」를 편찬하던 시기에 나라의 자주성을 알리기 위해 충성심이 강조된 설화를 쓴 것이라고 생각된다.Ⅲ. 승려 일연의 자주의식과 불교「삼국유사」에 실린 불교와 관련된 설화는 대부분 공통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바로 불교와 관련된 건축, 인물 등이 나라 수호와 관련되어 있거나 우리나라 역사의 신화적인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일연이 바라본 우리 역사 속의 불교는 나라를 지키기 위한 호국 불교이자 수용과정에서 자주적으로 변화된 불교인 것이다.‘황룡사의 호법룡은 바로 내 큰아들인데, 범왕의 명령을 받고 가서 절을 보호하고 있는 것이다. 본국으로 돌아가서 절 안에 9층탑을 세우면, 이웃 나라들이 항복하고 동방의 아홉 나라가 와서 조공을 바치며 왕 없이도 영원히 편안할 것이다.’황룡사 9층탑에 대한 설화에는 위와 같은 대목이 나온다. 보통 불교의 이론에서는 열반이라고 부르는 편안하고 흔들리지 않는 이상의 경지를 목표로 하고, 속세를 멀리하는 모습이 보인다. 이처럼 불교적 건축물이 하나의 나라를 수호하기 위해 건설되는 모습은 무차별적 자비를 강조하는 원래의 불교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우리나라의 불교와 관련된 설화에서 나는 신라의 역사에 초점을 맞추며 호국 불교의 면모를 많이 다루고 있다. 특히 통일이라는 대업을 이루어낸 신라의 불교에 관한 설화가 많이 소개되어 있다. 「삼국유사」에 나온 삼국의 불교는 무차별적인 자비 정신이 기본 정신 중 하나인 본래의 불교와는 다르게 ‘나라’를 수호하고, 안정시키려고 하는 목적으로 사용되는 불교인 것이다. 또한 만민을 구제해야 할 부처의 힘으로 자신의 나라, 민족을 지킨다는 사상은 삼국시대의 호국불교의 특이한 부분이다.「삼국유사」에는 신라 법흥왕 14년, 이차돈이 불교 공인을 위한 과정에서 몸을 바치는 이야기가 기술되어 있다. 특히, 이차돈의 죽음에서 나타난 기적이 잘 묘사되어있다.‘사인이 맹세하고 옥사정이 그를 베자 흰 젖이 한 길이나 솟구치고 하늘이 어두워지면서 석양이 그 빛을 감추고 땅이 진동하고 비가 후두둑 떨어졌다.’목을 베자 흰 젖이 솟구쳤다는 것은 불교보다는 우리 역사 속의 신화적 요소와 더 유사하다. 불교에서는 기적을 찾아보기 어려우나 우리나라의 역사 속의 설화에서는 많이 등장한다. 이와 같은 점이 불교 공인에 기여한 것은 불교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신화적 요소와 결합하여 불교가 자주적으로 변화의 과정을 거처 수용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Ⅳ. 「삼국유사」 편찬 시기와 의도한국사학계는 「삼국유사」를 고려에 닥친 민족 대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역사학적 대응으로 보고, 「삼국유사」에서 고려가 단순히 삼국의 영토를 계승한 것이 아닌 한반도와 북방의 다양한 정치 체제를 계승한 국가임을 드러내고 있다고 평가했다.그렇다면 일연이 「삼국유사」를 저술한 시기는 어떤 시기였는가? 일연은 원종과 충렬왕 때 가장 많은 활동을 했다고 역사에 남아있다. 이때는 원의 침략과 강요로 고려에서는 왕의 호에 충을 붙이고, 일상생활에서도 몽골풍을 따르던 시기였다. 왕호에 원에게 충성하라는 ‘충’을 포함해야 했고, 원에게 수많은 공녀를 보내야했다. 게다가 이 때, 삼국부흥운동이 연이어 일어나면서 몽골에게 대항하기 위한 자주의식은 물론 국민을 하나로 모을 구심 있다.
    사회과학| 2017.03.22| 9페이지| 2,500원| 조회(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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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크노피아, 실현 불가능한 열매
    테크노피아,실현 불가능한열매목차Ⅰ. 서론3Ⅱ. 본론41. 마르크스가 말하는 사회주의-디스토피아적 측면42. 영화 속에 나타난 테크노피아53. 테크노피아의 실현 불가능성64. 민주주의의 당위성7Ⅲ. 결론8Ⅳ. 참고문헌9Ⅰ. 서론멋진 신세계라는 책을 혹시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인간 문명과 과학의 발전으로 이룩된 유토피아, 즉 테크노피아에 대해 다룬 이야기이다. 멋진 신세계를 읽다 보면 책 안의 세계에 놀라게 된다. 이 세계는 자동조립 라인을 통해 자동차의 대량생산을 시작한 포드를 신으로 모시는 세계이다. 포드의 T형 자동차를 본떠, 이 세계는 T를 숭배의 상징으로 삼는다. 즉, 이 세계는 효율성이 중심인 포드 철학에 지배된 곳이다. 이곳에서는 인간 생산 공장인 ‘인공부화와 조건반사 양육소’에서 계급과 필요에 따라 산소 공급률을 조절하여 지능을 다르게 한다. 그렇게 태어난 지능이 다르게 태어난 아이들은 여러 조건반사를 통해 필요에 가장 적합한 상태로 만들어지게 되는데, 예를 들자면 열대 지방에서 일해야 할 아이는 열에 강하게 만들어 내고, 낮은 계급이기 때문에 일만 해야 하는 것으로 계획되어 있는 아이는 꽃과 책을 싫어하게 만든다. 즉 한마디로 말해서 인간은 필요 때문에 생산되고, 세뇌당하여 세상의 부품처럼 사용된다는 것이다. 또한, 이들은 행복한 기분을 가져다주는 음료 ‘소마’에 기대어 살며, 유희로 즐기는 성관계에서 얻을 수 있는 육체적 쾌락과 물질적 안락을 중시한다. 우리의 눈에는 비정상적인 이 세계를 책의 첫 장에서는 ‘공유, 균등, 안정’이라 말하며 찬양하고 있다.이 소설에는 ‘인디언 원주민 보호구역’이라는 곳이 등장한다. 이 장소에는 우리의 관점, 즉 현대인의 관점에서 우리와 같이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인간들이 살고 있다. 하지만 멋진 신세계의 세계관에선 이런 인간들은 문명인이 아니고 동물원의 원숭이처럼 구경거리인 인간으로 묘사된다. 특히, 감정 과잉으로 세계에 적응하지 못하는 버나드가 보호구역에서 데려온 존은 ‘야만인’이라는 별명을 지니고 있다. 존은 다.이 두 세계관을 비교해 보자. 계급을 나누는 방법, 교육 방법, 기본 구조에서 유토피아라는 목적을 위해 방향성으로 ‘철인’ 대신 ‘과학’을 이용한다는 점을 차이점으로 볼 수 있다. 즉, 유토피아라는 세계를 이루기 위해서 국가의 세계관은 철인이 통치하며 결정하고, 멋진 신세계의 세계관은 과학 기술을 통해서 체계를 확립한다는 점이 차이인 것이다. 그리고 역할에 따라 인간을 분류하고, 교육으로 그 역할에 적합하게 하는 부분은 두 세계관의 유사성이라 할 수 있다.플라톤은 ‘국가’에서 철인 국가를 이상 국가, 즉 유토피아로 제시하지만, 시행되기는 어렵다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국가의 유토피아와 유사한 부분을 지닌 멋진 신세계는 테크노피아로 실현될 수 있을까?Ⅱ. 본론1. 마르크스가 말하는 사회주의 - 디스토피아적 측면‘멋진 신세계’는 기본적으로 과학으로 형성된 구조 위에 세워진 세계이며, 자유권, 생명권, 재산권으로 대표되는 인권이 무시된 세계이다. 과연 이런 세계를 유토피아라고 할 수 있는가? 이를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서 언뜻 보기에는 유토피아라고 말할 수 있으나 디스토피아적 측면을 볼 수 있는 예를 살펴보기로 하자.‘멋진 신세계’와는 다른 디스토피아 중 하나로 칼 마르크스의 사회주의가 있다. (이것은 공산주의와 구분된다. 공산주의는 1차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프롤레탈리아의 독재로, 독재라는 억압의 기제가 존재하는 곳에서는 유토피아의 발현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와 다르게 사회주의는 전제가 전체적으로 세계의 발전이 일어나야한다는 것으로 목적성이 유토피아를 향해 가고 있다.) 마르크스의 사회주의는 공동생산과 공동분배를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또한 사회 내 개개인, 특히 프롤레탈리아의 불합리성을 없애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사회주의 경제에서는 공동 생산 및 공동 분배라는 일종의 유토피아적 상황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사회주의에서는 개인의 능력, 인성은 개인의 소유가 아닌 사회의 기초를 이루는 것이기 때문에, (물론 칼 마르크스가 이야기한 이상적 사회주의는 현실에서 인간의 행복은 개인의 자아실현과 그를 위해 자신이 투자한 노력과 그 결실에 의해 이루어지는데, 개인의 이익 자체가 제한되는 상황이기에 자기 주체적 행복이 이루어지기 힘들다. 즉, 이런 사회주의에서는 인권과 자기 주체적 행복이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 제한되고, 결국 유토피아적 상황 안에 디스토피아적 측면이 존재하게 된다.사회주의와 ‘멋진 신세계’를 비교해보자. 사회주의에서는 기본적으로 유토피아적 상황이 이루어지지만, 개인의 능력과 인간 본연의 주체성 및 이익 자체가 무시되는 디스토피아적 측면이 존재한다. ‘멋진 신세계’ 또한, 공유, 균등, 안정이라는 부분에서 기본적으로 유토피아적 상황이 이루어지지만 디스토피아적 측면이 존재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국가, 혹은 공동체의 유토피아가 개인의 행복에 제한이 있어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출발해야 한다. 말 그대로 ‘유토피아’는 그 구성원, 그리고 그 구성원이 될 가능성이 있는 자 누구 하나라도 ‘불만족’한 상태여서는 안 되는 이상적인 상태인 것이다.2. 영화 속에 나타난 테크노피아이제까지 과학기술 발전으로 인한 유토피아적 발현은 여러 영화를 통해서 나타났다. 영화 속 테크노피아 속에서 디스토피아를 찾을 수 있는 영화를 소개하겠다.영화 ‘엘리시움’을 먼저 예로 들어보자. 이 영화에서는 지구가 오염되어 더 이상 풍요롭게 살 수 없는 환경이 되자, 가난한 자는 지구에 남게 되고, 부자는 행성 엘리시움으로 이주하여 살고 있는 세계관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엘리시움은 미래의 세계라고 불릴 만큼 이미 발전된 과학 기술을 통해, 지구가 이제까지 겪어온 산업 혁명 및 시행착오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세계로 문명과 평화가 유지되는 행성이다. 다시 말해 전형적인 일종의 테크노피아이다. 엘리시움은 모든 병을 치료할 수 있고, 오염된 지구와 달리 풍족하게 살아갈 수 있는 곳이지만, 그 이면에는 지구에서 흘러들어온 가난한 자와 용병을 사살하여 체제를 유지하려는 부분도 보이게 된다.이 영화의 내용은 지구의 가난한 자가 엘리시움에 엘리시움 자체는 유토피아가 아닌가?’ 하고 말이다. 모두가 유토피아를 꿈꾸듯, 지구에 남겨진 자들이 엘리시움을 꿈 꾸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듯이 말이다. 하지만 여기엔 당연한 오류가 숨겨져 있다. 서론에서도 이야기 했듯이 유토피아는 구성원뿐만이 아니라, 구성원이 될 자 모두에게 ‘불만족’을 안겨주어서는 안 된다. 또한 그 유토피아는 이상적인 공간이기 때문에, 차별과 폭력이 유토피아의 이름으로 행해져서는 안 된다. 차별과 폭력 또한 ‘불만족’과 ‘불합리성’을 만들어내는 억압 기제이기 때문이다.또 다른 영화인 ‘아일랜드’의 세계는 인간 복제가 발달한 세계이다. 이곳에 있는 한 인간 복제 공장에서는 부자들의 의뢰로 복제인간을 생산한다. 이렇게 태어난 복제인간은 같은 생활을 하며, 세뇌되고 통제받으며 생활한다. 그들은 오염된 환경에서 특별히 살아남았다고 믿는다. 그곳에서 유일한 희망인 테크노피아는 아일랜드로 복제인간은 추첨을 통해 갈 수 있는 곳이다. 복제인간에게는 낙원으로 그려지는 아일랜드는 실제로는 복제인간을 의뢰한 고객의 필요로 장기를 주기 위해 죽으러 가는 곳이다. 이 영화는 아일랜드와 영화 내에서 나타나는 체제에 의문을 가진 복제 인간의 주도로 진실을 알게 되어, 탈출하는 내용이다.이 영화에서도 엘리시움과 다른 것 같지만 같은 맥락의 디스토피아가 보이게 된다. ‘유토피아’라는 이름으로 폭력과 차별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영화 내에서도 인권 문제가 거론되는 것이 두려워 ‘아일랜드’라는 곳을 숨기고 장기 자체에 인격이 없는 것처럼 회사가 광고하듯이, 복제된 이들 조차 하나의 ‘인격체’라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아일랜드에서는 그들을 억압하고 통제하며 차별하고, 결국엔 장기 이식을 위해 살해하는 ‘폭력’을 저지른다. 이 또한 유토피아라는 이름으로 행해져서는 안 될 억압기제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유토피아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일들이 누군가에게 차별과 폭력, 억압, 통제가 되어 그 누군가의 어떤 한 부분이라도 침해하게 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유토피아진 신세계에서 이야기하는 ‘과잉 감정’과 같은 것을 지닌 이는 행복하게 살아가지 못한다. 즉, 테크노피아 내에서도 디스토피아를 경험하는 존재가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테크노피아가 실현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물론, 현재까지 소설과 영화처럼 과학기술이 고도화 된 적은 없지만, 이러한 예시를 봤을 때, 결국 테크노피아는 누군가에게는 유토피아가 아닌 디스토피아인 곳이다. 즉, 이처럼 테크노피아는 실현불가능하고, 누군가는 디스토피아를 겪을 수 밖에 없는 곳이다.그렇기에 테크노피아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만족하는 유토피아는 실현될 수 없다. 유토피아에서는 대부분 하나의 목적에 맞는 세계로 이루어진다. ‘멋진 신세계’에서는 첫 장에서 공유, 균등, 안정이라고 하는 목적이 제시된다. 이 세계에서는 모든 활동이 이 목적을 지지하고 유지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하나의 목적을 가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목적을 지지하고 유지하기 위해 이 목적에 맞지 않는 사람들은 소외될 수밖에 없다.물론 몇몇 사람들은 이 주장에 반박할 것이다. 필자가 말하고 있는 것은 성급한 일반화이며, ‘테크노피아’라는 유토피아의 한 방향성만을 가지고, 유토피아 전체의 불가능을 다루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테크노피아’의 측면을 다루며, ‘테크노피아’ 에서의 유토피아에서 필수 불가결한 조건을 가지고 와 그것이 실현될 수 없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귀납적 논증이다. 우리는 내일 해가 동쪽에서 뜰 것이라는 것을 어떻게 이야기 할 수 있는가? 어제도 그렇고 그저께도 그래 왔고, 그 먼 옛날부터 그래 왔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내일도 동쪽에서 해가 뜬다고 이야기 할 수 있듯이, 테크노피아에서 보인 유토피아의 이러이러한 점이 실제적으로 불가능 하고 이것이 테크노피아라는 예시로 계속 들어져 왔기에 유토피아의 실현 불가능성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4. 민주주의의 당위성위에서 이야기했듯이 테크노피아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만족하는 유토피아는 실현 불가능하다. 유토피아를
    사회과학| 2016.09.23| 9페이지| 2,500원| 조회(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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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대한 개츠비 속 시대와 심리 :기이한 행동의 위대한 개츠비
    위대한 개츠비 속 시대와 심리:기이한 행동의 위대한 개츠비[목차]1. 서론32. 본론31) 나르시시즘과 인물3(1) 나르시시즘3(2) 인물과 장면4(3) 개츠비62) 미국의 1920년대와 심리73. 결론81. 서론퀸스보로 다리에서 바라보는 뉴욕은,세상의 온갖 신비와 아름다움이 그 안에 다 있을 거라는 처음의 환상을여전히 품게 한다는 점에서, 늘 처음 보는 도시 같았다.개인적으로는 이 구절이 ‘위대한 개츠비’가 쓰인 시대를 잘 나타내준다고 생각하기에 이 구절을 이야기의 시작으로 두려고 한다. 나는 ‘위대한 개츠비’를 읽다보면 기묘한 존재의 위화감과 행동의 이질감을 느끼곤 했다. 세상이라는 거대한 퍼즐 속에서 제대로 맞지 않는 조각과 같은 느낌이 아닌, 우리들의 소위 ‘일반적인’ 관점에서 나오는 것들과 다른 행동과 사고를 한다는 점에서 위화감과 이질감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러한 것만이 나의 감상을 만든 것은 아니다. 1920년대의 시대 상황을 생각해보고 위의 구절을 읽어보자. 위에 둔 구절에 있는 ‘처음의 환상’이라는 단어가 표면적으로는 환상적이지만 속은 전혀 환상적이지 않은 미국의 시대를 나타낸다고 생각했다. 나는 문제가 있는 시대도 위화감과 이질감의 원인이라고 생각한다.이러한 느낌 속에서 나는 인물들이 미묘하게 일반적이지 않는 행동을 하고 있음에 생각을 집중시켜보았다. ‘위대한 개츠비’의 내용을 살펴보면 일반적으로 사고하는 방식과 다른 행동을 취하기도 한다. 그 시대상을 알고 있고, 시대상을 고려한다고 해도, 인물들의 과장되고 이질적인 행동들이 눈에 보인다. 나는 이러한 부분에서 모든 행동의 원인은 심리라는 ‘정신 결정론’을 토대로 인물들의 행동을 분석해보려 했다. 나는 이들이 자기애와 가치관이 특정한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그러한 부분을 통해서 기준을 세우며, 자신의 가치를 특정한 부분으로 내세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의 부분에서 ‘나르시시즘’에 해당하는 부분이 상당히 많다고 느꼈고, 이를 통해서 위대한 개츠비의 내용에는 전반적으로개츠비와 그에 엮인 인물들에게서 나르시시즘이 잘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이를 통해서 주요 인물인 톰, 닉, 데이지의 나르시시즘을 이야기하고 개츠비의 나르시시즘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나르시시즘의 소개와 나르시시즘을 가진 인물들, 그리고 그러한 근거를 먼저 이야기하려고 한다.(1) 나르시시즘우리는 흔히 나르시시즘을 리비도의 대상이 본인인 것을 뜻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뜻 또한 나르시시즘의 범주에 들어간다. 하지만 나르시시즘은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만큼 나르시시즘의 다양한 이야기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본 에세이에서는 샌디 호치키스의 ‘나르시시즘의 심리학’에 나온 나르시시즘을 중심으로 진행하려고 한다.일반적인 나르시시스트는 대등한 관계를 인정하지 못하고 어디에서나 지위의 차이를 만드는 사람들이다. 타인과의 비교와 낮은 자존감으로 인해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지 못하고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서 자신의 높은 가치를 찾고자 하는 사람인 것이다. 또는 자신이 생각하는 가치를 지닌 이에 집착하고 어떤 대상이 자신에게 가치를 부여한다고 생각하면 그에 집착하기도 하는 사람이다.그 외에도 나르시시즘의 원인과 증상은 다양하다. 원인으로는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한 좌절감, 자신의 처지나 상황에 대한 열등감, 혹은 유년 시절의 수치심, 양육자에게 맞추어야 했던 과거 등이 있다. 혹은 위대한 개츠비의 등장인물처럼 유년 시절 계급, 부 등의 기준에 의해서 나르시시즘이 생기기도 한다.‘나르시시즘의 심리학’에서는 나르시시즘의 증상을 죄악이라고 표현하여 ‘나르시시즘의 일곱 가지 죄악’이라고 기술하였다. 현실을 왜곡하는 환상, 오만을 통하여 연약한 자아를 보호하는 것, 시기심을 경멸로 가리는 것, 수치심을 외면하는 가면을 만들어 내는 것, 타인에게 자격을 부여하는 행위, 타인에게 사랑을 갈구한다고 생각하는 착취, 타인의 경계를 침범하는 이기심 혹은 자기중심적 사고로 분류했다. 특히 ‘위대한 개츠비’에서는 오만, 환상, 자격의 부여, 자기중심적 사고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러한 수 있다.또, ‘유색 인종 제국의 발흥’이라는 책을 과학적이고 좋은 책이라고 소개를 한다. 책에서는 백인종을 현재의 지배 인종이라고 소개한다. 이를 보아, 톰은 계급차별적, 인종차별적 면모를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는 작자가 자기 마누라와 바람을 피우는데 가만히 앉아 있을 수는 없지. 요즘 사람들은 가정생활과 가족제도를 비웃고 있는데, 이러다가는 모든 것을 다 팽개쳐 버리고 백인하고 흑인이 결혼하려 들 거야.” 라는 부분에서 데이지와 개츠비의 불륜은 비도덕적이라고 결론을 내리지만 자신의 불륜은 비도덕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부분에서 자기중심적 면모를 볼 수 있다.이를 통해서 나는 톰은 자신의 계급과 부, 인종을 통해서 상대에게 계급을 부여하여 자신의 대인 관계에서의 지위를 확고히 하고, 자기중심적 도덕을 설정한다는 점에서 오만을 통하여 연약한 자아를 보호하는 것, 타인에게 자격을 부여하는 행위, 타인의 경계를 침범하는 이기심 혹은 자기중심적 사고를 보이는 나르시시스트라고 생각한다.② 데이지데이지 역시 남편 톰과 비슷한 생각을 보인다. 톰이 ‘유색 인종 제국의 발흥’이라는 책을 소개할 때에는 유색인종을 때려눕혀야 한다고 이야기를 하는 부분에서는 인종차별적 사고를 옅볼 수 있다.“정말 아름다운 셔츠들이에요.”그녀가 흐느끼며 말했지만, 목소리는 겹겹이 쌓인 셔츠 더미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다.“이렇게…… 이렇게 아름다운 셔츠들을 본적이 없거든요. 그래서 슬퍼져요.”데이지의 속물적인 면을 볼 수 있다고 자주 소개되는 개츠비의 값비싼 셔츠를 보고 우는 장면에서는 데이지는 부를 하나의 가치인 ‘미’의 기준으로 본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그녀의 말은 순식간에 화제가 전환되고 조던과의 대화를 닉은 ‘화제 없이 일관성 없는’이라고 표현한다. 이러한 면은 대인 관계에서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나르시시스트들이 대화에서 주제를 자신의 의지도로 순식간에 전환되는 부분과 맞아 떨어진다.데이지는 돈으로 충만한 목소리를 내며 그녀의 사고의 기준은 부라고대함을 ‘자랑’하는 부분에서 타인의 생각을 ‘젊은이들의 비밀 고백이란, 아니면 적어도 고백할 때 사용하는 말들이란 대개 남의 글에서 빌려온 것이고, 표현을 억제하는 탓에 왜곡되어 있게 마련이다.’ 라고 일축한다. 또한, 웨스트에그에 이사 온 사내가 그에게 길을 묻는 것에 답하며 자신이 외롭지 않고, 안내자이자, 개척자, 원주민임을 깨닫는다. 이는 타인에게서 상대적 우월감을 느끼려하는 나르시시즘의 특성이다. 또한, 이러한 부분은 ‘그들이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것은 기쁜 일이었고, 내가 발꿈치도 따라가지 못할 만큼 부자인 그들에게 주눅이 들었던 기분도 덕분에 조금은 누그러졌다.’는 부분에서도 타인의 관심을 통해서 자신의 지위를 만드려고 하는 나르시시스트의 면모가 보인다. 조던 베이커와 다니면서 타인의 관심을 받는 부분에서 우쭐한 기분을 느꼈다는 부분도 그러한 면모를 보여준다. 그리고 톰이 그가 일하는 증권회사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하자 불쾌함을 가진 듯한 말투로 곧 알게 되리라고 말한다.또한, 인종차별적 사고도 보인다. 닉이 개츠비의 차로 퀸즈버러 다리를 지날 때에 백인기사가 운전하는 고급 차를 타고 지나는 흑인을 거만하다고 표현한다. 이는 흑인은 부를 지닐 자격이 없다고 보고 그것을 거만하다고 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은 도덕적 우월감이다. 기묘하게도 그가 생각하는 ‘좋은 사람’인 개츠비와 ‘나쁜 사람’인 톰의 공통점은 비도덕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러한 공통점을 지니고 있음에도 개츠비는 좋은 사람이라고 이야기하며 다른 이들이 그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에 쓰레기라고 표현한다. 이는 자신이 도덕성을 판단할 수 있는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는 위치라고 생각하는 것이다.이러한 면들을 보아 닉은 오만을 통하여 연약한 자아를 보호하는 것, 타인에게 자격을 부여하는 행위를 보이는 나르시시스트라고 생각한다.(3) 개츠비개츠비는 가장 두드러지게 기묘한 행동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의 기묘한 행동은 많은 사람들이 그의 사랑이 사랑이라기보다는 집착이라화려한 깃털을 모두 모아서 그 환상을 장식했던 것이다.이 장면과 더불어 나오는 장면은 데이지가 개츠비의 집을 볼 때, 개츠비는 데이지의 반응을 통해서 그의 물건의 가치를 재평가하는 것 같다고 묘사된다. 이러한 것으로 보았을 때, 개츠비는 데이지를 가지는 것을 자신의 목표로, 데이지를 이상화시켰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무엇을 목표로 하고 이상으로 하느냐는 개개인의 삶과 개인의 자존감에 영향을 끼친다. 개츠비는 상류층을 목표로 하였고, 그의 눈에 데이지는 상류층의 표본이었을 것이다. 이런 데이지는 상류층의 삶과 그에 맞는 행동으로 개츠비에 의해 이상화되어 그의 목표가 되기에는 충분했을 것이다.또한, 개츠비는 자신의 유년 시절과 출신에 대해서 열등감을 느낀다. 그러한 것은 유년 시절의 책 뒤에 적어둔 계획과 닉에게 자신의 과거를 속이는 장면에서도 볼 수 있다. 그에게는 이러한 출신에 대한 열등감을 해결해줄 방법이 다름 아닌 데이지를 가지는 것이었던 것이다. 그는 데이지를 소유하여 열등감과 불안을 해결하고 그가 줄곧 환상으로 덧칠해온 이상을 마침내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 그는 데이지를 위하여 삼년간 집을 꾸미고, 폭우가 내릴 때에도 잔디를 깎는다. 또, 데이지가 개츠비의 집을 둘러볼 때에 데이지에게 시선을 고정한다. 데이지를 가지기 위해서 데이지의 시각에서 자신과 자신의 것이 어떻게 평가되는 지에 집착하는 것이다. 또한, 데이지가 뺑소니 사고를 낸 후에도 그는 머틀의 죽음보다는 데이지가 받을 충격에 관심을 쏟는다. 이는 자신의 이상을 지키려는 것과 같은 행동이다.“그 여자는 죽었나요?”“예.”“그럴 줄 알았어요, 데이지에게도 그럴 거라고 말했고요.충격은 한 번에 받는 것이 더 나으니까요. 데이지는 꽤 잘 견뎌냈어요.”이러한 것은 개츠비가 데이지에 맞추어 데이지를 가지기 위해서 자신의 문제까지도 결정하는 면모를 보여준다. 이런 점은 사랑이라고 착각하게 되는 착취로 보인다. 나는 이러한 부분에서 그는 현실을 왜곡하는 환상과 데이지를 자신의 이상으로 만들어 집착하는, 타인에다.
    인문/어학| 2016.01.10| 11페이지| 2,000원| 조회(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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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영과 이성계 : 라이벌 구도
    한국사 상의 라이벌 개인 레포트지키느냐 무너뜨리고 새로 세우느냐; 이성계와 최영.고려와 조선시대의 갈림길 앞의 두 사람Ⅰ. 서론 : 이성계, 최영의 선정이유고려 시대 말기, 이 시대는 이성계와 최영이 등장한 시기이기도 하지만, 말기라는 단어가 암시하듯 고려 왕조가 무너질 가능성을 내포하는 혼란함이 만연하던 시대이다. 사실 고려 말부터 조선 건국까지 다양한 크고 작은 사건들과 고려의 몰락과 조선의 건국에 이 두 사람의 이름은 자주 등장한다. 우리는 단순히 이성계는 조선의 태조, 최영은 금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말로 유명한 충신으로 생각해왔다. 또, 그들은 혼란했던 고려 말, 나라 혹은 백성을 혼란 속에서 구하려고 했던 인물로 평해지고 나 또한 그렇게 보는 입장이다.최영은 고려 왕조를 지키면서 이성계는 왕을 교체하고 새로운 왕조를 세우면서 혼란 속에서 나라를 구하려고 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지향점과 방식은 요동정벌론, 위화도 회군처럼 잘 알려진 사건에서도 대립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것을 살펴보면서 그들의 행적을 따라가며 비교 분석을 하고 지향과 방식에서 볼 수 있는 차이에서 이 둘을 라이벌 구도에 두려고 한다. 다만, 이성계와 최영이 고려를 개혁하려던 부분을 중점으로 비교하려 하므로 이성계는 조선 건국 이전까지를 주요하게 다루려고 한다.Ⅱ. 새롭게 등장한 중앙 세력,이성계(1335 ~ 1408)고려 27대 충숙왕 4년,1335년에 이성계는 화령에서 부 이자춘과 모 최씨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자는 중결, 호는 송헌이었다. 왕위에 오른 후 단(旦)으로 이름을 바꾸고 자 또한 군진(君晋)으로 바꾸었다. 이성계의 가문은 원 쇠퇴기 배원정책이 시작된 상태에서 공민왕 5년 고려가 쌍성 총관부 공격 당시 쌍성의 천호였던 부가 내부에서 공격에 응해 쌍성 함락에 기여했고 현 함흥 이북 탈환에 공을 세움을 인정받아 중앙 정계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게 되었다. 공민왕 10년 부가 삭방도 만호이자 병마사로 임명되어 지금의 함경도 지방인 동북면의 군사권을 장악하여 무가의 기반을 다졌다. 이는 후에 이성계의 고려 중앙 정계에서의 기반이 되었다.이성계는 부를 따라서 무인의 길을 걷게 된다. 강계의 만호 박의의 난 1361 을 시작으로 쌍성 총관부 공격을 돕고, 홍건적 침입 1361, 원의 나하추 침입 1362, 최유와 원군의 침임 1364, 동북면 삼선? 삼개의 난 1364, 왜구 토벌 1380, 여진족 호발도의 침입 1382 등에서 공을 세웠다. 특히, 왜구 토벌 당시 왜구가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에서 민가를 약탈하고 양민을 학살하였는데, 이성계의 군대는 왜구를 약 70명만 남겨두고 다 죽일만큼 큰 활약을 보였다. 그러한 공은 기존 세력 기반이 탄탄하지 못한 이성계를 고려 중심 정계에서 높은 지위와 탄탄한 기반을 다지는 것에 도움이 되었다. 이성계는 당시 연승을 거두며 개인의 능력과 전략, 지휘 능력을 인정받기도 했다.그 뒤 1388년 그는 삶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당시 철령위 설치 문제로 최영과 우왕은 요동 정벌을 추진한다. 이에 이성계는 사불가론을 제기했는데 첫째, 소국이 대국을 치는 것은 옳지 않으며, 둘째 여름철에 군사를 일으키는 것은 좋지 않다. 셋째 대대적인 원정은 왜에게 허점을 보이며, 넷째 여름이라 덥고 비가 많이 오기에 활의 야교가 풀려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전염병이 돌기 쉽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의견은 묵살당하고 출정하게 되었다.이성계와 조민수가 이끄는 요동 정벌군이 위화도에 도착하자 비가 거세게 와서 익사자가 속출했고, 진군이 어려워 군량도 부족해지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사기가 저하되고 이러한 상황을 보고하며 회군을 건의했지만 묵살당했다.이에 이성계는 조민수를 설득해 5월 22일 회군을 하였다. 우왕과 최영은 개경에서 방어선을 구축하나 최영은 체포되어 고봉현으로 귀양을, 우왕은 폐위되어 강화도로 쫓겨나게 된다. 이렇게 권력을 잡은 이성계는 초기 조민수와 왕위 후계를 사이에 두고 대립했으나 이색의 조민수 지지로 1388년 창왕이 즉위한다. 당시 이성계는 정도전, 조준 등의 신진사대부의 지지를 받고 있었는데 조민수를 제거하고, 김저 사건을 통해 반대 세력을 제거하고 창왕을 폐하고 공양왕을 즉위시켰다. 또, 후에 윤이 · 이초 사건으로 잔류한 반대 세력을 제거한다. 이후 역성혁명 이전까지 이성계를 지지하던 정몽주가 역성혁명을 반대하자 이방원이 정몽주를 제거하여 새 왕조를 연다.이성계의 특징 중에서는 그의 무에 대한 감각도 빼어나지만 정치적 감각 또한 빼어나다는 점이 있다. 이성계는 무인이지만 조준, 권근, 정도전, 정몽주 등 신진 사대부와의 교류를 통해 지지기반을 쌓았다. 당시 무신과 문신 사이에서 그러한 교류는 우연이라고 보기에는 힘들다. 즉, 당시 새로운 개혁 세력인 신진사대부와의 교류는 이성계의 사상과 정치적 감각이 빼어남을 알 수 있는 것이다.Ⅲ. 충신의 자리를 지킨 최영(1316 ~ 1388)고려 말의 충신 장군인 최영은 1316년 최원직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가문은 대대로 고위직을 지낸 철원 최씨이다. 군인이던 최영은 홍건적과 왜구를 격퇴하며 공을 세워 관직에 올랐다. 특히 수차례 왜군을 격퇴했는데 이로 인해 왕의 시위 · 숙위를 담당하는 특수부대인 우달치가 되어 왕의 측근에서 활동했다. 1354년 원에서 장사성이 들고일어나 원 내부에서는 군웅이 할거하게 되어 고려에 토벌군을 파견을 요청하였는데 이에 최영이 속했다. 이곳에서도 최영은 최전방에서 싸워 공을 세웠다.1359년, 약 4만의 홍건적이 고려 국경을 침범하였는데 홍건적 격퇴에도 큰 공을 세웠다. 특히 1361년에는 홍건적이 개경 아래까지 내려왔는데, 이에 공민왕이 안동으로 피난을 가고, 최영이 이성계 등을 거느려 개경을 수복했다. 또, 후에 김용의 난과 공민왕 피습 사건이 있었는데 최영은 직속 군대를 이끌고 난을 진압했다.그러나 신돈 집권 당시는 초기 좌천을 시발점으로 하여 수차례 모함을 당하고 죽을 위기를 겪었다. 하지만 충성심은 변하지 않고 후에 신돈이 제거된 후 재소환된다. 이후에도 최영은 탐라 정벌을 하고 우왕이 즉위한 후에도 왜구의 침략을 격퇴한다. 특히 홍산대첩에서 출정을 자원하여 격퇴한다. 이에 우왕은 시중의 지위를 내렸으나 최영은 출정이 어려워진다며 시중을 자리를 거절한다. 그 후에도 최영은 계속 무공을 세운다.이 무렵 고려는 새로이 등장한 명과의 관계로 문제를 겪고 있었다. 명 건국 당시 고려에서는 사신을 보내 외교를 트려 했으나 명은 지속적으로 고려를 위협했다. 그러다 1374년, 고려에 사신으로 온 명의 채빈이 귀국하다 김의에게 피살당하는 사건이 일어났고 이로 인해 고려와 명의 관계는 악화되어 명이 고려 사신을 억류까지 했다.이후 이인임, 임견미, 염흥방이 백성들의 토지를 갈취하며 최영과의 갈등 관계가 시작되었다. 이로 이인임은 최영을 제거하려 했으나 되려 이인임 세력이 일부 제거당했다. 이런 상황에서 염흥방의 가노가 전 밀직부사 조반의 땅을 빼앗았고 조반은 가노를 제거하고 염흥방은 모반 혐의를 조반에게 뒤집어씌워 조반을 죽이려 했다. 그러나 최영과 우왕은 염흥방을 구금하여 이인암의 세력을 제거하고 최영은 시중에 올라 최고 실권자가 되었고 딸을 왕비로 만들어 왕의 장인이 된다.그러나 명과의 관계가 다시 악화되고 철령위 설치 문제로 요동 정벌을 단행하게 된다. 이성계의 반대를 묵살하고 정벌을 단행한 최영은 이성계의 회군으로 유배되어 참수된다.최영은 끝까지 왕조를 지키려 한 충신으로 칭송받는다. 하지만 신흥 강국으로 떠오르는 명을 정벌한다는 것은 무모한 일이었고 국제 정세 파악과 판단이 흐려졌다는 것으로 볼 수 있따. 그러나 최영은 이성계와는 달리 끝까지 고려 왕조에 충성을 다해 고려를 직접 바꾸기 보다는 왕조를 지탱하여 고려를 혼란 속에서 이끌어 내려고 했다고 생각한다.Ⅳ. 결론 : 지키느냐 새로 세우느냐.둘은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출발선, 고려를 지키는 무장으로 같은 길에서 시작했다. 그 둘 모두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부분이 있다. 첫 번째로 최영은 충신이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보이고, 두 번째로 이성계는 하극상이지만 혼란스러웠던 고려 말기를 개혁하였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보인다.
    인문/어학| 2016.01.10| 6페이지| 1,000원| 조회(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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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성황후와 흥선대원군 : 라이벌 구도 평가A+최고예요
    명성황후와 흥선대원군 : 조선 말 펼쳐진 이야기목차1. 서론 : 라이벌 선정 이유 32. 본론31) 흥선 대원군에 대한 역사적 사실32) 민비-시대 상황/ 정책 및 역사적 사실과 지향점43) 평가54) IF63. 결론71. 서론 : 라이벌 선정 이유19세기 말 흥선 대원군과 명성황후의 집권 당시 조선은 내부에서는 국력이 점점 쇠퇴해 지고 있었고, 외부로는 각종 외세의 유입으로 개항을 앞두고 혼란하던 시기였다. 다른 서구의 열강들이 점점 동아시아로 눈을 돌리는 와중에 일본은 개항에 성공하여 조선보다 앞서서 선진 문물을 수용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안, 밖으로 혼란스러운 시점에서 흥선 대원군과 명성황후는 나라의 부국강병을 위하여 각각 다른 방향의 정책적 가치관을 가지고 정책을 펼치며 대립 구도를 이어 나갔다.흥선대원군은 왕실 중심의 정치, 즉, 조선 왕실 내부의 힘을 강화하여 자주적으로 국력을 키우려고 했었던 반면, 명성황후는 외부세력을 이용하여 무너져가는 국력을 키우려고 했다는 점에서 외교정책에 있어서 서로 다른 행보를 보여준다. 이러한 정책의 방향은 당시 개항과 연관이 있고, 또 더 나아가서 일본의 식민 지배와도 관련이 깊다. 이는 오늘날에도 미치는 영향이 크며 중요한 역사적 사실로 남아있다. 따라서 당시의 혼란한 국제 정세 속에서 나라의 부국강병을 위해 서로 다른 길, 즉 쇄국과 개방이라는 선택한 흥선 대원군과 명성황후에 대하여 좀더 자세히 알아보고자 둘을 라이벌로 선정하였다.2. 본론1) 흥선 대원군에 대한 역사적 사실흥선 대원군의 집권 전 시기는 왕권의 약화와 세도정치, 지방 세력의 횡포로 설명할 수 있다. 우선, 외척양반가문에 의한 세도정치가 행해지고 있었다는 점 자체가 바로 전통적인 왕조 정치체제가 한계에 직면했음을 잘 보여준다. 또, 지방 세력의 횡포도 심해져갔다. 중앙 권력자의 매관매직이 성행하자 지방관은 자신의 부를 축척하기 위해 더욱 더 수탈을 일삼았다. 또한 서원 중심의 향족들이 지방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으며 서원에서의 농민의 수탈도 심그는 처음부터 외세에 대해 적대적이고 폐쇄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청, 청과 사대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 조선보다 하위 국가와의 외교 외에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외세와 교류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는 남진정책을 펼치는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프랑스와 교섭을 시도하였다. 천주교에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며 선교사를 통해 교섭하려 하나 이를 실패하고 그는 천주교를 박해하기 시작했다. 이에 병인양요 사건이 일어났고 그를 뒤이어 제너럴셔먼호 사건으로 인해 신미양요가 일어나자 그는 통상수교 거부 정책을 더욱 더 굳건히 하게 된다. 그 증표로 척화비를 세우기도 한다.대원군의 대내 정책은 크게 외척세력 탄압과 왕권강화에 있다. 그는 외척세력을 탄압하기 위해서 그들의 주요 세력 기반 이였던 비변사를 축소하고 의정부를 강화하였다. 왕권강화를 위해서는 왕족 중심으로 관직에 배치하고, 양반에게도 세금을 부담하게 하는 호포제를 실시하였다. 또, 양반들의 횡포와 폐단이 심하던 서원을 47개의 서원만 남기고 모두 철폐하였다. 경복궁을 중건하기도 했다. 이 때, 기부금 형태인 원납전을 징수하고 각종 세금을 거두고 당백전을 발행하였다. 이는 민심을 동요하게도 했지만 삼정의 폐단을 바로잡고 당시에 문제가 있었던 환곡제도를 민간에서 운영하는 사창제로 재정비하고, 서원의 농지를 조세제로 바꾸고 양전을 시행하여 지나친 세금을 줄이는 등 백성들의 생활을 안정되게도 하였다.즉 이러한 흥선 대원군의 대외적, 내외적 정책을 하나로 집약하자면, 조선의 국고를 마련하고 나라의 힘을 키우기 위한 정책이다. 흥선 대원군은 어지러운 나라 상황에서 왕실의 권한을 바로 잡고 외세로부터 독립하여 국력을 키우고자 했다. 물론 이러한 선택이 전체적인 국제 정세를 파악하지 못하고 시대착오적인 판단을 했던 것은 맞지만, 그가 나라를 다시 일으키고자 했던 노력들은 높이 사야 한다.2) 민비-시대 상황/ 정책 및 역사적 사실과 지향점명성황후는 여흥 민 씨로 인현왕후의 가문의 사람으로서 양반가에 속한 사외교정책을 추진하는데, 명성황후가 이러한 정책을 시행한 이유는 19세기 후반 조선의 시대적 상황이 내적으로는 세도 정치의 폐단으로 인한 국가의 혼란이 계속되어지고 있었으며, 쇄국정책으로 인해 조선의 발전이 뒤처지고 있었다. 또한 국외적으로는 서양의 통상요구로 인한 국가의 존립이 위태로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명성황후는 개화를 통한 조선의 부국강병을 도모하고자 하는 이유에서였다.초기 개화정책의 이유는 세자로 책봉된 완화 군을 밀어내고 자신 소생의 왕자를 태자로 바꾸기 위해 청에 허가를 구하러 갈 때 일본의 도움을 요청하게 되고 이때 운요호 사건이 일어나면서 강화도 조약을 채결하게 된다. 이는 일본의 강압아래서 맺어진 불평등 조약이었지만, 조선과 일본 사이의 봉건적인 관계가 아닌, 조약을 통한 국제 사회 속에서의 외교관계가 성립되어진 것이다. 이후 일본에 수신사를 파견하고 점차 서구 열강인 미국과 수교를 맺으려 조미수교 체결을 추진하는 한편. 통리기무아문을 성치하고 신사유람단과 연선 사를 각각 일본과 청에 파견한다.하지만 대내적으로는 대부분의 관직을 민씨 세력이 독점하고 왕실의 사치 등으로 농민계층과 일부 양반계층의 원성을 산다. 이는 대원군 중심인 위정척사파를 촉진시켰고, 별기군 등장으로 차별받던 구식군인의 불만이 임오군란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게 되고, 청과 일본의 간섭으로 사태를 수습하면서 이후 조선은 청의 내정간섭과 일본의 압박을 받게 된다.이를 완화하기 위해 명성황후는 일본을 모델로 삼는 개화사상을 주장하며 개화독립당을 구성하지만 개화당과 명성황후는 정책적으로 부딪히게 되고 개화파는 갑신정변을 일으키게 된다. 하지만 갑신정변은 3일 만에 막을 내리게 되고, 이처럼 내정은 매우 혼란하고 외세에 휘둘리고 있는 실정이었다. 이러한 와중에 관직독식과 폐단으로 인해 농민들의 생황을 더욱 더 힘겨워만 졌고 이러한 상황은 동학 농민운동이 이러나게 되는 원인이 되었고 명성황후는 또 한 번 청나라와 일본에 파병을 요청하게 되면서 외세의 힘을 빌려 사태를 수습하게 된다. 이후 조천주교가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닌 악영향을 끼친다는 생각이 들자 천주교를 박해하게 된다. 그는 6년간 8,000여 명의 천주교인들을 학살하게 되고 이로 인해서 병인양요와 제너럴셔먼호사건도 일어나게 된다.비록 흥선대원군 또한 처음부터 천주교를 박해한 것은 아니듯이 처음부터 쇄국정책만을 고집하고자 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쇄국이라는 정치적 방향을 가지고 자신의 정책을 펼치게 되었고 그로 인해서 국가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와 반대로 명성황후는 현실에 대한 고려가 부족한 급진적인 개화 정책을 위주로 펼쳤다.하지만 흥선대원군의 모든 것이 다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예를 들자면 흥선대원군이 왕실 중심의 국가를 지향했던 것은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것이 곧 민생을 안정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왕실이 강화가 되어야 다른 나라에서도 조선을 함부로 대하지 않을 것이며 그것이 곧 나라가 힘을 얻게 되고 나라가 힘을 얻게 된다면 민생이 안정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 속에서 왕권을 강화하기 위하여 흥선대원군은 왕실의 권위를 강화시키기 위해서 경복궁을 중건하게 되고 흥선대원군은 경복궁 중건을 위해 필요한 돈을 너무 무리하게 거두게 된다.그러한 과정에서 당백전이라는 것을 사용하게 되고 그로 인해서 물가는 올라가고 화폐의 가치는 떨어져버리게 된다. 그렇게 힘들게 중건을 하던 경복궁이 중건 도중 불이 나에 되고 흥선대원군은 끝까지 중건을 해야 한다며 원납전이라는 세금까지 거두게 된다. 이렇듯 왕실의 권위를 강화시킨다는 명목 하에 이루어진 것들이 많은 백성들과 양반들에게 질타를 받게 된다.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있듯이 지나친 왕실강화 정책이 그의 민생안정정책에 도움이 된 것이 아닌 오히려 악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또한 다른 나라와의 교류를 끊음으로 인해서 세계의 정세를 알지 못하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세계정세와 뒤떨어져 근대화를 지연시키게 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국제 정세를 읽지 못한 점은 비난을 받아 마 고종의 권력 기반을 다지고 왕권강화 중심으로 개화주의적 정책을 펼쳤다.하지만 명성황후는 주변의 여러 상황을 인지하지 못한 채 오롯이 자신을 위협하는 세력이 아닌 자신의 곁에서 자신의 편에 서줄 그러한 정책들과 사람들만을 찾게 된다. 그런 상황으로 인해 새로운 권력의 기반을 다지기 위한 정책이 주였고 이를 위해 본래의 지배층을 쳐내고 새로운 인재를 넣기 위해 개화정책을 급하게 펴는 상황에서 혼란과 잘못된 정책들이 생겨나게 되었다.진정으로 나라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적어도 진정으로 자신의 편에 설 수 있는 사람들을 등용했어야 했지만 그 당시에는 그런 것들이 많이 결여되어있는 쉽게 말하자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모여진 집단이라고 생각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명성황후의 그러한 급진적인 정책들이 다 실패를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인지 이러한 명성황후의 급진적이고 혼란스러운 정책들은 현재까지도 많은 비판을 받게 된다.4) IF본 조에서 명성황후와 흥선대원군 사이에서의 중요한 사건을 두 가지를 뽑아 가정을 해보려고 한다. 본래 역사에서 가정은 통하지 않지만, 때로는 이러한 가정을 통하여 역사적 사실을 재조명할 수 있기에 가정 부분을 넣었다.첫 번째로는 만약 명성황후가 원자를 낳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하는 의문이다.명성황후가 이 귀인에게서 고종의 총애를 빼앗아 왔지만 당시 세자는 여전히 이 귀인의 소생인 완화 군이었다. 물론 완화군은 13세의 나이로 요절하게 되지만 명성황후가 원자를 낳지 못했다면 명성황후의 권위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명성황후의 위치는 원자 생산이 가장 중요시되는 위치였고 그녀의 기반은 원자를 통해서 다져진 것이다. 그렇다면 원자를 낳지 못한 명성황후는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흥선대원군은 명성황후를 보다 쉽게 견제할 수 있었을 것이다. 원자를 낳지 못했다는 이유로 후비를 들여 내명부 다툼을 야기할 수도 있고, 이러한 행동을 통해 민 씨 가문과 후비의 출신 가문을 갈등 관계로 두어 잠시 정권 내의 민 씨 가문의 행보를 막을 수 있었을다.
    인문/어학| 2016.01.10| 8페이지| 1,000원| 조회(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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