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과제1장. 참된 신앙을 찾아-사자들 앞에서도 담대했던 다니엘 선지자초대 교회의 역사는 핍박의 역사였습니다. 수많은 순교자들이 지녔던 신앙은 어떤 것이었을까요?-순교자 유스티누스사마리아 출신의 철학자인 유스티누스는 진리가 무엇인지, 진리를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소요학파, 피타고라스학파 등 여러 학파에 들어가면서 고민의 해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다가 마침내 한 노인을 통해 답을 구하게 됩니다. 노인은 구약성경의 선지자들이 진리를 보았고, 그 진리를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했음을 말해주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존재의 근거와 기반이 되시는 주체자이며, 그분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셨는데 그분이 바로 진리라고 전했습니다. 여전히 철학 공부와 많은 사색, 대화로써 진리를 찾고자했던 유스티누스에게 노인은 진리의 문으로 인도해달라고 그리스도에게 간구하라고 권했습니다. 이후 노인을 다시 볼 수는 없었으나 유스티누스는 이 사건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는 기독교 공동체를 찾아갔고, 그 곳에서 자신을 해하는 자들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인들을 발견합니다. 이론과 삶이 일치된 그리스도교인들의 모습에 감명을 받은 유스티누스는 기독교 진리를 수용하기로 결정하고 전도자의 삶을 살게 됩니다. 이후 그는 165년경, 로마에서 참수형을 당합니다. 죽음앞에서 '너는 누구냐'는 질문에 '나는 기독교인입니다!'라고 한결같이 대답했던 유스티누스의 모습은 그의 신앙의 지조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보여줍니다.-그분의 가르침과 그분에 대한 가르침현재 한국 교회의 현실은 마치 유럽 교회의 전철을 밟고 있는 듯 합니다. 유럽 교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바른 길을 걷지 않았기에 지금의 불행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교회 역사를 통해서 바른 신앙이 무엇인지 점검받아야 합니다. 헤럴드 브라운은 초대 성도들이 가졌던 신앙을 그리스도의 인격 자체에 기반을 둔 신앙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석가나 모하메트의 인격이 아니라 가르침에 기반을 둔 불교나 이슬뤼카르포스의 제자 이레니우스는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하는 몬타누스파가 성행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로마감독을 방문하게 된다. 영지주의로 오염된 로마제국을 마주한 이레니우스는 10년간 라는 글을 써서 영지주의를 비판했다.-상상적 신앙세 번째 특징은 상상이다. 상상은 전혀 성경적이지 않으나, 이단들은 성경을 인용하여 재미있게 해석한다. 성경은 해석하기에 따라 뜻이 달라지기 때문에 바른 목회자가 성경을 해석해야 하며, 이단이 해석한 내용에 현혹되어서는 안된다.-비성경적이란?자기 사상을 정당화하기 위해 성경 구절들을 표절하는 행위를 비성경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이단자들이 행하는 대표적인 행위이다. 성경 구절들을 사용한다고 해서 성경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 오히려 아전인수식으로 성경구절을 끌어다 쓴 것은 아닌지 주의해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이 모든 것의 근본임을 인정하는 태도를 가지고 해석해야 한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세계의 중심을 인간으로 놓고, 정치,경제,사회의 원리에 맞추어 성경 구절을 사용하는 경우가 팽배하다. 이것은 오류이며 성경적 표절이다4장.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자-이원론과 이중성이중성이란 하나의 사물이 서로 다른 두 가지 성질을 갖고 있는 것을 말한다. 반면 이원론은 처음부터 두 개의 근원이 있다는 이론이다. 이 관점에서 육은 악이고 영은 선이다. 따라서 악한 육체를 제어해야 선한 영을 성장시킬 수있다고 믿는다. 이 사상은 금욕주의를 야기하는 위험한 사상이다.-영과 육을 보는 성격적 관점성경에서는 영적 삶을 유지하기 위해 육체를 제어하는 것이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육적으로 편할 때 더욱 죄짓고 싶어 하는 자신을 주의 깊게 살피라는 뜻일 뿐, 이원론과는 차이가 있다. 육체를 학대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소견을 부인하고 그리스도를 따를 때 생명이 풍성해진다. 그리스도인은 이중성도, 이원론도 따라서는 안 된다.-반삼위일체론초기에 성행했던 이단은 삼위일체론을 부인했던 반삼위일체론자들이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구하여 양털뭉치 표징을 본 이야기가 나온다. 요한복음 20장에서 도마는 예수님을 보았다는 제자들의 말을 믿지 못했으나, 8일 후 예수님을 만나고 믿게된다. 그러나 보고 믿는 것보다 보지 않고 믿는 것이 낫다. 표징을 바라는 태도는 하나님께 곽감히 순종치 못하는 인간의 나약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사사기 11장에서는 이스라엘이 암몬으로부터 위기를 당하게 되자 입다가 지도자로 급부상하는데, 그는 이 계획에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확신을 갖고 '나를 반기는 자를 여호화께 드리겠다'라고 하여 끝내 그의 무남독녀가 희생된다. 우리는 이처럼 자신의 생각을 하나님의 뜻이라 오해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콘스탄티누스도 마찬가지로, 로마 공격을 앞두고 하나님께 징조를 구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현상은 교회역사에도 많았다. 클로비스 1세는 기독교 아내를 맞이한 뒤에도 개종하지 않았다. 이후 알레마니족과 전투에서 패배한 뒤 신께 도움을 청하자 기적적으로 승리하는 사건이 일어나 세례를 받는다.-중세시대의 명암이런 일들을 대할 때, 어떤 표징과 그 후의 일의 관계를 모두 인과관계로 생각하여 표징을 구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섭리가 위대함을 인정하고 경외심을 맞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화려한 결과는 하나님의 뜻이고 그 반대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콘스탄티누스 시대에 기독교에 대한 핍박이 멈춘 것을 콘스탄티누스의 덕분이라고 말하는 것은 인간중심적 해석에 불과하다. 사역의 주체는 하나님이심을 명심해야 한다. 또한 그리스도교인이 핍박을 받았던 시기에도 교회는 계속해서 성장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콘스탄티누스는 기독교에 대한 핍박을 멈췄고 클로비스는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했다. 그러나 이들의 어용신학과 정교유착은 결국 1000년이 넘는 중세시대의 기독교 타락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이렇듯 기독교가 주류가 되는 것은 양면성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6장. 들어서 읽어라-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아우구스티누스아우구스티누스는 위대한 기독교 사상가임 후손들로 바벨론 포로생활을 하게 했던 히스기야처럼 로마 감독은 문제를 육적으로 해결했다.-동방정교회의 변화프랑스에서 시작한 신성로마제국은 교회가 타락하면서 오토1세가 주도권을 독일로 옮긴다. 이후 1453년 동로마제국이 멸망하면서 동방정교회는 러시아로 옮겨간다. 그러면서 동방정교회의 중심은 ‘러시아 정교회’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불리게 된다.8장. 어둡고 침울한 역사 속에서도-교회와 정치가 손잡고7-8세기 로마 감독과 프랑크 왕국의 페피, 샤를마뉴가 손을 잡으며 정교유착이 시작됐다. 당시 성직자들은 인간 이하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부패했다. 이렇게 교회가 타락하면서 세속적 번영을 신앙의 결과로 여기는 어용신학과 번영신학이 등장한다.-창부정치 60년, 어두운 역사 속으로창부정치 시대란 60년에 걸쳐 테오도라와 그의 두 딸이 로마 가톨릭을 섭정하던 시기를 말한다. 10세기에는 모든 사람들이 종교에 종속되어 있었기에 족벌제도 하에 족벌제도 하에 자신에게 종속된 사람들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었다. 친척이나 마음이 맞는 사람들이 성직자가 되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기가 쉬웠다. 이렇게 자기 사람을 성직에 두려고 할 때 테오도라와 그 딸들이 중매 역할을 하며 교회를 쥐락펴락했다.10세기에 이르러 로마 교황들은 축첩을 일삼았다. 세르지오라는 사람은 교회로부터 추방을 당했는데 테오필락트 가문과 결탁을 하고 교황직을 얻고 마로치아를 첩으로 삼았다. 테오필락트 역시 권력을 잡기 위해 세르지오를 도왔다. 한편 마로치아는 매춘부 또는 여성교황이라고 언급될 정도로 사악한 여성이었다. 여러 번의 결혼을 하고 여러 정부를 두었으며 교황직에 자기 사람을 올리기 위해 갖은 방법을 다 썼다.-타락의 끝을 향해 치닫는 로마 가톨릭로마의 송장회의에서 로마 교황 포르모소의 정적들은 그의 시체를 교황 권좌에 앉히고 사후 재판을 열었다. 당시 군주들의 정치판에 로마 교황들이 뛰어 들어 이런 일이 발생했던 것이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정치적 이권을 따라 피를 흘려서라도 교황직을 차 완전한 휴식기간으로 지키며 노예를 해방시키고 상속받은 재산을 회복시켜주는 희년이어서, 보니파시오 8세는 필리프 4세를 달래보았지만 필리프 4세는 계속해서 세금을 거뒀다. 결국 1302년 로마 교황은 필리프 4세에게 파문을 내리기 전에 우남상탐이라는 교서를 발표하여 교황권이 세속군주보다 우위에 있음을 강조했고 본인을 베드로의 후계자로 천명했다. 그러나 필리프 4세는 영국 왕 존처럼 굴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국민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모니파시오 8세를 이단자로 몰아붙였다. 심지어 자신의 심복 중 노가레라는 사람을 보내 보니파시오를 검거하여 왕에게 굴복하라고 위협한다. 보니파시오는 몇 달 후 화병으로 세상을 뜨고 필리프 4세는 자기 마음에 드는 베네딕토 11세와 클레멘테 5세를 선출하여 그들을 쥐락펴락한다. 이뿐만 아니라 로마 교황청을 프랑스의 아비뇽 성으로 옮겨벼리기도 한다. 프랑스인이 로마 교황이 되면서 '아비뇽 유수'가 시작되었고, 사회는 혼란에 빠진다. 이 과정에서 템플 기사단 학살 사건이 발생한다. 템플 기사단이란 1차 십자군 운동에 참여한 자들 중 솔로몬 성전을 지키거나 그곳을 방문하는 자들을 보호하는 임무를 성직으로 알고 활동한 전사이자 수도사들을 말한다. 그들은 많은 부와 권력을 갖게 되었는데, 재정난에 처해 있던 필리프 4세가 이들의 재산에 탐을 낸다. 재산을 빼앗기 위해 그들을 이단으로 정죄하도록 로마 교황에게 압력을 가했고 약 1500명의 템플 기사단들을 체포한다. 그러나 끝내 재산을 빼앗는 데에는 실패한다.세 차례의 성직 수임권 논쟁을 통해 우리는 기독교가 세를 확장하려 하고 정교유착을 시작할 때 세상의 것을 교회에 들여올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세상의 그릇된 관습과 미신을 받아들이면서 교회는 부패하고 타락하게 되는 것이다.10장. 로마 가톨릭의 오른팔-십자군 운동의 동기십자군은 로마 교황이 지정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조직된 군대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악용하여 십자군을 로마 가톨릭의 오른 팔로 삼았던 것이다. 십자군 운동을 '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