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건축설계2]Villa Savoye< 목 차 >1. 건축가와 근대 5원칙1) 르 코르뷔지에2) 근대 5원칙2. 빌라 사보아의 개요 및 디테일1) 빌라 사보아2) 디테일3. 느낀점1.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와 ‘근대 5원칙’1-1. 르 코르뷔지에 (1887-1965)“ 나 개인에게 데생, 회화, 조각, 책, 집, 도시계획은 시각현상의 다양한 형태에 바쳐진 유일하고도 동일한 창조적 표현일 뿐이다. 우리는 돌, 나무, 시멘트를 사용해 집을 짓고 회관을 만든다. 이것이 건설이다. 여기에는 재간이 작용한다. 그런데 갑자기 그것에 내 마음을 사로잡고, 내게 도움을 준다. 그러면 행복해진 나는 이렇게 말한다. 아름답군! 건축이란 그런 것이다. ”Le corbusier (1887-1965)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는 스위스 태생으로 본명은 에두아르 쟈네레(Edouard Jeanneret)이다. 르 코르뷔지에의 초기 작품들은 사보아 저택(Villa Savoye, 1929)과 제네바 국제연맹본부 계획안(1927) 및 파리에 있는 스위스 학생회관(1932), 알제리의 도시계획(1929~34) 등을 들 수 있다. 르 코르뷔지에의 작품은 매우 개성적이고 충동적이다. 근대적 기술을 적용하였으나 건설을 한다는 것보다는 디자인하는 면에 치중한 감이 있으며, 그의 대표작품들은 큐비즘에 자극된 기하학적인 형태와 시적 상상력이 넘치는 기법을 나타내고 있다. 그는 자연에 도전하는 경향을 띠고 건축작품을 만들었으며, 근대구조를 이용하여 얼핏 보기에는 부자연스럽게 보이는 필로티(pilotis)를 활용함으로써 건물을 대지에서 공중에 띄워 올리도록 만들어 극적인 공간 구성 효과를 창안하였으나, 기하학적인 형태의 지나친 추상적인 표현과 기교에 흐른 감도 없지 않다고 생각된다.르 코르뷔지에는 그의 착상에 의한 건축표현의 수단으로서 철근콘크리트를 사용했다. 그는 이 관점에서 프랑스의 전통을 따라 오귀스트 페레(August Perret)와 토니 가르니에(Tony Garnier)의 작업을 계승하였다고도 생각된다. 당시 건축가들이 철근 콘크리트를 용이하게 사용할 수 있는 곳은 프랑스뿐이었다. 독일이나 영국의 건축법규는 철근 콘크리트에 의한 우아한 구조형태에 의구심을 갖고 있었으므로 불필요한 건축법 규제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프랑스인은 그들의 건축물에 경쾌성과 정확성을 요구하였으므로 그것에 맞는 건축법을 만들어 사용하였다.1-2. 근대 5원칙르 코르뷔지에는 현대건축과 구조를 설계하는 기본이 되는 것으로 다음과 같은 5원칙을 주장했다.① 필로티(pilotis): 개방된 공간에 독립하여 서 있는 기둥들 위에 건물이 세워져야만 한다. 주택은 필로티 위에 세워 공중에 떠 있는 모양으로 만든다.② 골조와 벽의 기능적 독립: 외벽뿐만 아니라 내부 칸막이벽에 있어서도 골조와 벽이 기능적으로 독립되게 만든다.③ 자유로운 평면: 르 코르뷔지에는 철근 콘크리트 골조를 기술적인 것에서 미학적인 수단으로 전환시켰으며, 그는 주택의 내부공간을 매우 변화 있게 만들기 위해 칸막이벽을 사용했다.④ 자유로운 파사드: 기둥은 건물 표면보다 후퇴시켜서 세워지며, 바닥면은 기둥 외부로 돌출하여 나간다. 파사드는 단순한 커튼월과 유리창으로 된 외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파사드의 형태는 자유롭게 설계될 수 있으며, 창은 방해 없이 수평으로 연속된 것으로 만들 수 있게 된다. 이것은 도미노 구조의 당연한 귀결이다.⑤ 옥상정원: 기술적, 경제적, 기능적 및 정신적인 이유로 평지붕과 옥상정원을 채택할 것을 르 코르뷔지에는 권유한다. 옥상정원에는 화초, 관목, 나무, 잔디 등이 심어진다.그가 건축설계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1922년 이래 르 코르뷔지에는 이 5원칙을 활용 발전시켜 왔다. 몇몇 개인주택의 설계에서 얻은 경험으로 그는 이 원칙들을 더욱 순화된 형태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2. 빌라 사보아의 개요 및 디테일2-1. 빌라 사보아 (Villa Savoye)- 제작 시기 : 1929년- 건축가 : 르 코르뷔지에- 위치 : 프랑스 파리 푸아시- 양식 : 인터내셔널 스타일- 재료 : 콘크리트, 스틸, 유리앞서 말한 근대 5 원칙들이 가장 순수하게 표현된 것은 1930년 포아시(Poissy)에 세워진 사보아 저택(Villa Savoye)이다. 르 코르뷔지에는 주택계획과 설계에서 주택의 내·외부 공간을 연결하기 위한 새로운 가능성과 또 내부 공간 자체에서의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 내기 위해 주택을 개방적으로 설계하였다. 날렵한 기둥 위에 올라앉은 빌라 사보아는 눈에 확 빨려들어 오는 존재감을 지닌다. 하중을 부담하는 벽이 없으므로 파사드와 평면을 자유롭게 설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가로로 줄지어 낸 창문을 통해 최대한의 자연광을 들일 수 있다. 경사로를 사용한 동선 체계는 평평한 옥상에서 정점을 이룬다. 빌라의 콘크리트 구조는 기본적인 바둑판 레이아웃에 중간 중간에 기둥을 설치하여 얇은 콘크리트 벽이 구조에서 자유롭도록 했다. 빌라 사보아는 솜씨 있게 다룬 내부 공간과 뚜렷하고 이론적인 외부 모두 수많은 건축가에게 주택 설계의 이상으로 평가받고 있다.2-2. 디테일이 주택의 건축주는 보험회사의 중역이었는데, 그는 그가 사는 파리에서 30km정도 떨어진 프와시라는 곳에 주말주택을 갖고 싶어했다. 프와시라는 곳은 지금은 파리라는 거대도시의 일부분이 되어 있는 곳이지만 당시에는 한적한 시골마을이었다. 주말이나 휴일에는 파리에 있는 집과 자동차로 연결될 수 밖에 없는 주말주택이라는 점을 주목한 르 코르뷔지에는 빌라 사보아를 위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하는 기계시대의 주택 유형을 생각하게 된다. 그는 이미 ‘주택은 살기 위한 기계’라고 선언한 바 있다.건축주가 소유한 리무진이 바로 현관으로 연결되도록 하기 위해 그가 주장한 필로티는 가장 적절한 방안이었다. 자동차가 양탄자 같은 잔디를 지나 필로티 속으로 들어와 멈추도록 현관은 곡선으로 계획되었고, 현관으로 들어오면 상부로 향하도록 기다란 경사로가 동선을 이끈다. 이 경사로를 타고 오르면 서서히 2층의 풍경이 시야에 들어오면서 그의 다섯가지 원칙이 만든 드라마틱한 경관이 전개된다. 2층은 주인의 거실과 침실 그리고 중정이 건물 가장자리를 돌아가며 배치되어 있는 구조이다. 자유로운 칸막이와 가구 배치는 동선을 막힘없이 만들어 줄 뿐 아니라 시선을 무한히 넓혀주고 있다. 들어 올려진 거실의 창은 수평의 띠이며 이 기다란 창을 통해 주변의 전원이 그림처럼 들어오고 이는 중정과 만나게 되어 거실 내부에 있는 사람을 마치 전원의 한가운데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 즉 공간의 확장이다. 다음으로 가운데 있는 경사로는 다시 옥상으로 오르게 되어있다. 주변의 과수원과 멀리 있는 경관이 보다 선명하게 시야에 들어오고 옥상은 또 다른 정원이 된다.
" less is more "Villa Tugendhat 도면 리서치빌라 투겐타트는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이 지어지던 도중인 1928~1929년에 설계되었다. 그 때문인지 오닉스 도레 벽, 십자형의 크롬 기둥, 커다란 유리창 등 바르셀로나의 파빌리온에서 그대로 가져온 부분이 많이 있다. 이 집의 건축주는 체코의 투겐타트 부부이다. 이 부유한 젊은 부부는 결혼 전부터 미스가 건축 하였던 푹스의 집을 인상 깊게 보았고 실제 자신들의 집을 미스이게 의뢰하였다. 그들은 미스의 아이디어를 최대한 존중했고, 비용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1928년 9월 미스는 브르노로 가서 건물이 들어설 부지를 둘러보았고, 언덕 위의 급경사에 위치한 부지에서 도시를 바라보는 전망과 계곡 너머의 오래된 성에서 영감을 받았다. 미스는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에서 사용했던 구조 방식을 여기서도 똑같이 사용하였다. 이것이 바로 미스의 대표적인 철골 구조 방식인데, 이는 철골 구조를 개인 주택에 사용한 최초의 사례이다. 벽들은 단지 공간을 나누는 용도로만 사용되었기 때문에 공간 활용에 구애를 받지 않을 수 있었다.빌라 투겐타트는 총 3층이다. 3층은 침실, 2층은 거실 및 식당, 1층은 각종 기계실과 창고 등이 있다. 이 집은 언덕 위에 있기 때문에 길거리에서 보면 단층이지만 길 반대편의 정원 쪽에서 보면 3층이다.(3층)3층에는 길에서 들어오는 메인 입구가 있다. 남서쪽으로는 아이들의 방과 부부 침실 등의 주거 부분을, 북동쪽으로는 부속 부분을 배치했다. 도면에서 볼 수 있듯이 차고, 운전기사와 가정부를 위한 거주 시설 등이 있다. 이 두 가지 영역은 중간에 지붕으로 연결되어 남서쪽 도시를 향한 전망을 제공하는 틀 역할을 한다. 집 한 가운데 나선형 계단을 따라가면 아래쪽의 거실로 연결된다.(2층)2층의 커다란 거실공간은 빌라 투겐타트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식당 공간은 둥근 벽으로 분리되어 있는데, 이 둥그런 벽체가 테이블과 의자를 부드럽게 감싸며 앞에 펼쳐진 자연에 더욱 집중 할 수 있도록 해준다. 둥근 벽 뒤의 거실에서는 오닉스 도레 벽이 서재 공간과 거실 공간을 분리하고 있다. 서재와 그랜드 피아노가 있는 공간은 벽으로 방을 완전히 막는 대신 커튼과 가구를 이용하여 큰 공간을 적당한 비례의 작은 공간으로 나누어 놓았다. 또 2층 거실의 커다란 유리창은 바닥 아래로 내려 갈 수 있어서 따듯한 날씨에는 커다란 거실 공간을 외부 테라스 공간과 연결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진정한 치유는 사랑이다.연극 를 관람하고과목공연예술문화교수님학과학번이름처음 연극 [푸르른 날에]가 5.18 광주민주항쟁을 소재로 한 연극이란 것을 알았을 때 조금 우려가 되었다. 광주민주항쟁은 분명 우리 국민들에게 중요한 사건이고 슬프고 안타까운 역사의 조각이지만, 교수님께서 수업시간에 언급하신 바 있듯이 간혹 어떤 연극과 매체에서는 이런 역사적 사건을 과하게 감성적으로만 표현할 때가 간혹 있기 때문이다. 때때로는 연극자체가 정치적인 성격을 띠고 특정 정치색을 강요하는 등 관객을 불편하게 만들기도 한다. 다행이 연극 [푸르른 날에]는 달랐다. 수업시간 ‘예술은 어떻게 상처를 치유하는가?’에 대한 생각을 해 본적이 있다. 조원들과 토론도 하였고 교수님도 도와주셨지만 여전히 그 답은 구체적으로 손에 잡히지 않는 느낌이었다. 이 연극을 본 후 그 답을 조금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진정한 치유는 사랑이다’[푸르른 날에]의 연출을 맡은 고선웅은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많은 사람에게 큰 상처를 준 역사적 사건이기에 그 아픔과 상처에 어떻게 접근할지 많이 고민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실제로 연출가의 이런 고뇌가 연극 전체에 잘 녹아 있는 것 같았다. 대표적으로 연극은 이 역사적 아픔을 무겁게만 표현하지 않았다. 연출가는 그 아픔을 너무 무겁지 않게 해학적으로 풍자하면서 접근했는데, 처음엔 이 부분이 많이 걱정 되었었다고 한다. 무거운 주제를 너무 가볍게 다루는 것이 혹 상처를 입은 분들께 더 큰 아픔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이다. 하지만 다행이 관객들은 변치 않는 작품의 주제와 진정성을 알아주고 오히려 더 좋아한 것 같다. 나도 이 연극의 이런 점이 좋았다. [푸르른 날에]는 슬프다고 무조건 계속 울고 앉아있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슬펐고 애잔할 수 있었다. 연출가는 진실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말을 틀 수 밖에 없다고 한다. 감정을 있는 그래도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농담 즉 허구를 통해 진실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가슴 아픈 이야기를 슬픈 언어로만 표현 할 수 없다는 점이 아이러니하지만 중요한 것은 변치 않는 주제를 지키는 것일 것이다. 연출가가 이 연극을 통해 원하는 치유는 ‘화해’라고 했다. [푸르른 날에]를 보고 당시 5.18 민주화 운동으로 인해 직접 상처를 받은 분들과 관객 모두 분노의 마음을 갖지 않았으면 하며, 지금 필요한 건 분노가 아닌 치유, 그리고 치유를 통해 공감하고 연대해 함께 미래를 살아갈 희망을 갖는 것이기 때문이다. 연극은 5.18 민주화 운동을 다루고 있지만 단순히 그 사건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날을 겪은 주인공들의 개인적인 이야기, 그 전과 후의 이야기를 보여주었는데 그런 점들이 내가 오히려 더 그날의 광주와 그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던 요소였다. 연출자의 의도대로 역사적 슬픔에 대한 공감과 연대가 형성된 것 같았다.독특한 무대구조와 소름 도는 배우들의 연기[푸르른 날에]가 공연됐던 극장은 여타 다른 극장들과 조금 다른 점이 있었다. 퍼포먼스가 행해지는 무대가 관객석으로 조금 돌출되어 있어 관객석이 무대를 감싸고 있고, 무대를 마주하는 관객석의 경사가 꽤나 컸다. 나는 비교적 뒤쪽에 자리하여 관람을 하였는데, 무대 전체를 위에서 조망하는 듯 해서 비교적 평면적으로 보였던 그간 연극들과 달리 무대가 입체적으로 느껴졌다. 마치 내가 전지적 시점에서 이야기를 보고 있다는 느낌마저 받을 수 있었다. 이 때문에 많은 배우들이 비교적 넓은 공간을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들이 한 눈에 들어와서 극의 이해를 높이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무대의 독특한 여러 장치들도 연극을 더욱 다채롭게 해 주었다. 먼저 복층으로 이루어진 무대를 통해 등장인물들이 등장하기도 하고 나가기도 하며 1층의 무대와 함께 다양한 연출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여산이 현명한 말씀을 해주시던 노승을 떠올릴 때, 민호가 속옷 바람으로 경찰에게 연행되던 자신의 친구들을 회상할 때 노승과 친구들이 여산과 민호와 같이 1층에서 연기했었다면 그 효과가 분명 반감되었을 것이다. 또 1층 무대 뒤편에 난 4개의 통로가 막혔다 열렸다 하면서 북소리가 나기도 하고 경찰서의 유치장이 되기도 하고, 광주 학생들이 항쟁을 위해 달려나가던 통로가 되기도 하며 무대를 더 다이나믹하게 만들어 준 것 같다. 하지만 모든 것을 통틀어 가장 독특했던 무대 구조는 무대 한 가운데 있던 ‘물’이었다. 무대 위에 물이 담긴 수조라니! 처음엔 신기하면서도 저 물이 어떻게 쓰일지 굉장히 궁금했었다. 이 수조는 무대 위에서 굉장히 다양한 역할을 해 주었지만 무엇보다 민호가 물고문을 받는 용도로 사용되는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연극은 시간적, 공간적 제약을 많이 받는다. TV 드라마나 영화와 달리 무대와 소품의 사용 또한 제한적이다. 따라서 다루기 어려운 액체라는 점, 쏟아지면 주변을 젖게 만들고 그 처리가 어렵다는 점에서 연극 무대에서 물의 사용은 한계가 분명했다. 하지만 여러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번 연극에서는 과감하게 물이 담긴 수조를 무대장치로 이용했고 그 결과 연극에서는 느껴볼 수 없었던 사실감과 현장감을 가져오는 효과를 가져다 준 것 같다. 실제 그 효과가 너무 대단해서 실제 물고문을 당하는 배우와 무대에 흩뿌려지는 물방울들을 보며 배우가 연기하는 민호의 처절한 감정들이 관객에게도 전달되어 그 장면에서 많은 관객이 흐느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배우들의 연기 또한 이 연극의 백미라고 할 수 있었다. 무대 위에서 극중 ‘민호’역을 맡았던 주연배우 ‘이명행’의 에너지는 정말 대단했다. 특히 앞서 언급한 민호가 물고문을 받는 장면과 경찰서에서 나온 후 죄책감에 시달리는 부분은 어느 순간 내가 연극을 보고 있다는 것조차 잇을 만큼 그의 연기에 몰입해 있기도 하였다. 민호를 제외하더라도 모든 배우들의 연기가 정말 좋았다. 무거운 주제의 연극이지만, 배우들의 연기가 시종일관 진지하고 처절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과장된 몸짓과 어딘가 모르게 어색한 국어책의 대사로 익살스러운 편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 점이 그들의 삶에 더 흥미를 가지게 하고 극과의 거리를 둘 수 있게 하여 지나친 감상에 빠지는 것을 막아주었던 것 같다. 또 이런 절제가 모여 더 큰 감정의 폭발도 있을 수 있었다.
저리 비켜라내 인생, 내 운명막아진다고 막아지는게 아니다!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를 관람하고과목공연예술문화교수님학과학번이름공연을 관람한 날은 중요한 기업면접이 있던 날이었다. 이날을 위해 몇 일전부터 긴장을 하고 신경을 썼던 터라 면접이 끝나고 나서도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져 멍 한 상태로 공연을 관람하러 갔던 기억이 난다. 공연은 지친 나의 마음을 달래주기에 최적의 공연이었다. 뮤지컬 한편을 보는 듯 음악과 노래, 주체할 수 없는 흥이 넘쳐났다. (실제 제8회 차범석희곡상 뮤지컬부분에 수상한 경력이 있으니 뮤지컬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긴 하다.) 마지막까지도 웃음과 노래로 무병장수하라는 등 관객들의 안녕을 빌어주어 환한 미소로 공연장을 떠날 수 있었다. 내 뒤에 앉아있던 나이 지긋하신 할머니께서는 공연이 끝나고는 물론이고 공연 중에도 끊임없이 ‘아이고야 요거 재미있네’ 라는 감탄사를 연발하시기도 하였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영어 자막이 있어 드문드문 보이던 외국인들 까지도 즐길 수 있었던 공연이었던 것 같다.우리 음악과 창의 매력사실 ‘창극’을 관람해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나는 비교적 무대와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게 되었는데 그 덕에 무대 앞에 있던 연주자 분들과 악기가 위치하고 있는 곳이 굉장히 잘 보였다. 바이올린과 첼로 대신 가야금, 해금 등이 있는 것이 처음엔 조금 낯설면서도 우리 음악과 공연이 만난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에 대한 기대가 동시에 생겼다. 그리고 그 기대가 만족으로 바뀌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여러 악기에서 나오는 풍성한 생음악이 배우의 창과 어우러져 무대를 꽉 채우고 관객을 매료시켰다. 어렸을 적 사물놀이, 난타, 판소리부터 가야금까지 배운 적이 있어 우리 음악과 소리를 좋아하는 나는 물론 보통 관객들 보다 배로 좋았던 것 같다. 또 연주자들과 배우의 교감도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연주자들 입장에선 자연스레 반복적으로 관람했었기 때문에 이 공연이 지루하거나 뻔하다고 느꼈을 법 한데도 불구하고 옹녀와 변강쇠의 익살적인 몸짓에 므흣한 미소를 짓기도 하고 장승들의 재롱?에 박장대소 하기도 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또 추임새를 넣거나 옹녀가 먹고 남은 청포도를 차지하기 위해 손을 뻗는다거나 하는 등(유심히 지켜봤는데 청포도를 차지하신 연주자 분 정말 행복하게 청포도를 드셨다.) 음악 외적인 장면에서도 공연의 일부가 되어 진정 공연을 즐기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이번 공연이 다른 연극과 차별되는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창극’이라는 독특한 형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공연에서 배우들은 그들의 감정이나 대사를 ‘창’을 통해 표현한다. 공연을 본 날 나는 ‘창’의 매력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가장 좋았던 부분은 가사였다. 배우가 노래를 통해 대사를 전달 할 경우 감정은 더욱 풍부해 질지 몰라도 자칫 그 전달력이 떨어 질 수 있다. 가청성이 떨어져 가사를 알아듣기 힘들어 지기 때문이다. 이번 공연은 공연 내내 배우들의 대사와 창의 가사를 무대 옆의 스크린으로 띄워주었는데 이것이 신의 한 수였던 것 같다. 그 덕에 나를 포함한 관객들이 스토리를 쉽게 따라갈 수 있었고 또 온갖 언어유희와 비유가 넘쳐나는 재미있는 가사를 즐길 수 있었으니 말이다. 또 웅장하고 바이브레이션이 많은 일반 뮤지컬 노래보다 그 소리가 담백하고 흥겨워 듣는 내내 질리지가 않았다. 사실 나는 이렇게 스토리도 물론이고 이 공연은 음악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던 공연이지만, 그날 같이 관람했던 친구의 경우 가사가 난해하고 조금 정신 사나워서 스토리를 따라가기 힘들었다고 하기도 하였다.21세기 완전 적응 완료한 ‘변강쇠전’무대장치와 배우들의 의상, 연출, 이야기 전개 방식 모든 것이 굉장히 세련됐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나라 전통 극 혹은 옛이야기를 소재로 삼은 공연이라고 하면 흔히 떠올리는 이미지는 조금 시대에 뒤처지는 고리타분한 것, 지루하고 따분한 것 정도가 될 것이다. [변강쇠 점 찍고 옹녀]는 이런 고정관념을 완전히 깨주었다. ‘19禁 창극’ 이라는 것부터 이 얼마나 파격적인가! 19금 창극이라는 타이틀에 누가 되지 않도록 변강쇠와 옹녀는 열심히 노력한다. 서로의 성기를 관찰하여 이를 묘사하기도 하고 장소를 가리지 않고 사랑을 하여 주위의 부러움을 사기도 한다. 이럴 때마다 무대 뒤의 스크린에서 적절히 나오는 이미지들도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또 변강쇠와 옹녀가 뜬금없이 관객석에서 등장하기도 하고 스크린 바로 앞 움직이는 구간을 통해 장승들과 아낙네들이 수군거리는 것을 표현하는 듯 지루할 듯 없이 역동적인 연출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이와 더불어 곳곳에 숨어 있는 웃음코드까지. 21세기에 맞게 완벽하게 다시 태어난 변강쇠전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었다.장하다 옹녀! 강쇠에게는 꿀밤 한 대 주고 싶네!나는 따로 변강쇠전을 읽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 공연의 스토리가 어떻게 흘러가게 될지 전혀 예상할 수 없었고 그렇기 때문에 굉장히 흥미진진하게 관람했던 것 같다. 처음 등장한 옹녀는 비운의 여자였다. 서방으로 맞이하는 남자마다 초상을 치르고 이도 모자라 옹녀에게 눈독 들이던 마을 남자들까지 하나 둘 죽게 되어 옹녀는 결국 마을을 쫒겨난다. 자기와 연관된 모든 남자들이 죽어버리니 얼마나 자기 자신의 운명을 원망했을까 또 얼마나 외롭고 쓸쓸했을까 나는 상상도 못하겠다. 극 속에서는 모두가 옹녀를 색녀라고 손가락질 했지만, 극 밖에서도 그녀에게 손가락질 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마을을 떠나 남으로 향하던 옹녀는 변강쇠와 만나 부부의 연을 맺는다. 이때까지와는 다르게 변강쇠는 옹녀와 함께여도 죽거나 아프지 않았다. 옹녀는 헌신적으로 변강쇠를 내조하지만 강쇠는 그녀의 말은 듣지 않고 노름과 싸움만 하여 그들은 여기저기를 떠돌다 지리산까지 가게 된다. 그 곳에서 빈집을 발견한 그들은 다시 한 번 (나무에 매달려서까지.. 대단하다..) 거사를 치루고 그곳에 정착한다. 하지만 강쇠는 변하지 않았다. 나무를 해오랬더니 낮잠만 실컷 퍼질러 자고, 도끼와 지게를 잃어버리자 나무 장승을 뽑아왔다. 여기서 멈추고 장승을 원래 자리에 돌려놓으라는 옹녀의 말을 들었더라면 좋을 것을 강쇠는 치기에 장승을 쪼개버리고 태워 그만 장승들의 노여움을 사 병에 걸린다. 참 답답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여자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기는 것을! 내가 옹녀였다면 변강쇠는 병에 걸려 죽기 전에 내 손에 죽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극에서 옹녀는 ‘전통적인 헌신적 여성상’의 모습을 십분 발휘하며 자신이 열심히 번 돈을 강쇠가 노름으로 날려도 남편이 최고 싸움질 하다 마을에서 쫒기듯 도망쳐도 남편이 최고 자신의 말을 무시하고 장승의 노여움을 사 몸져 누운 모습마져 그저 안타까울 뿐인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남편을 보살피지만 결국 강쇠는 장승처럼 꽂꽂이 서서 죽음을 맞는다. 강쇠 죽자 비로소 내가 좋아하는 옹녀의 모습이 나타난다. 남편의 죽음을 슬퍼하기만 하며 주저 않지 않고 남편의 목숨을 앗아간 장승들에게 복수를 다짐하며 ‘쎈 언니’가 된다. 마을에서 쫒겨 나면서도 상복을 벗어던지며 당당하게 걷던 옹녀의 본 모습말이다. 사실 옹녀는 그냥 강쇠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운명에 수긍하며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어미로부터 내려온 자신의 억센 운명을 옹녀 자신도 알고 있고 남편 초상을 한 두 번 치뤄본것도 아니니 슬프지만 강쇠의 죽음도 견딜만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옹녀는 자신의 저주받은 운명과 정면으로 맞서 스스로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쪽을 택했다. 그래서 ‘전통적인 여성상’을 가진 여리하고 내조잘하는 옹녀보다 ‘쎈 언니’ 옹녀가 좋다. 같은 여자로서 그녀가 정말 멋있다고 생각했다. 또 장했다. 결국 위기를 느낀 대장승과 장승들은 변강쇠와 옹녀를 만나게 해준다. 이미 죽어 장승이 된 변강쇠와 함께하기 위해선 옹녀가 장승이 되는 방법밖에 없었다. 여기서 옹녀는 다시 한번 멋있는 결정을 내린다. 장승되기를 거부하며 그토록 찾아 헤면 서방님과 평생 함께할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한 것이다. 이쯤 되니 더 이상 옹녀는 처음에 내가 알던 옹녀가 아니었다. 어느새 옹녀를 존경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는 강쇠와의 영원한 사랑보다 뱃속의 아기와 자신의 삶을 선택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결정에 조금의 후회도 없는 듯 ‘이 아기 잘~ 키워 볼라요!’ 하며 그녀는 당당히 미소 짓는다. 자신으로 인해 항상 누군가 죽는 것만을 지켜보았던 옹녀가 새생명을 잉태했다. 나는 이 아기가 저주 받았던 그녀의 운명이, 외롭고 쓸쓸하기만 하단 옹녀의 인생에 이제 달라질 것 이라는 희망의 씨앗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공연 안에선 그 누구도 이에 대해 감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매우 감동적인 부분이었다.
굳세어라 경숙아!굳세어라 어메,아베요!굳세어라 모두들!를 관람하고공연이 끝나고 객석의 관객들이 하나둘 일어서는 시점까지도 나는 참 ‘멍~’하니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재미있는 장면에선 깔깔 웃기도 하고 슬픈 장면에선 배우에게 감정이 이입되어 친구 눈치를 보며 끅끅 속으로 울음을 넘기기도 하였다. 그렇게 누구보다 연극을 즐겨놓고도 극이 끝난 후 복잡 미묘한 심경에 사로잡혀(혹은 너무 집중한 나머지 당이 떨어져서) 자리를 뜰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경숙아베가 밉기도 하고, 측은하기도 하고, 경숙어메가 참 안됐다 싶은 한편 미련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자야가 나쁜 년 같은데 동시에 정 많은 이모 같고. 내 머릿속을 내가 주체할 수 없는 순간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참 미디어가 만들어 놓은 ‘이미지’란 것에 집착하는 류의 사람이라 ‘가정에 헌신하는 듬직한 아버지’가 아닌 아버지 같지 않은 아버지와 기타 그 밖의 내 기준에 ‘정상적이지 않은’ 극의 요소들을 받아들이기에 힘이 들었던 것 같다.크면 다 멋있는 나무, 크지 못한 나무사실 지난 23년간 아버지, 어머니의 ‘딸’로서 자란 나는 자연스럽게 경숙이에게 감정 이입이 되었고 경숙이 입장에서 전체적인 극을 이해하게 되었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눈길이 가던 인물은 경숙이 아버지였다. 연극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도 극의 가장 후반부에 경숙아베가 홀로 조명을 받으며 ‘굳세어라 금순아!’라는 노래에 맞춰 멋들어지게 춤을 추는 장면이다. 집에 돌아와 이 노래를 다시 들어보니 어깨춤이 절로 나는 반주와는 다르게 슬픈 가사의 노래였다. 참 경숙아베스러운 노래다 싶었다. 처음엔 경숙이 아버지가 참 미웠고 이해할 수 없었다. 전쟁이 났는데 가족들을 팽겨 치며 한다는 말이 “뭉치면 죽고, 흩어져야 산다!”부터 시작해서 낯선 남자를 덜컥 집에 들이며 집문서를 줘버리질 않나, 어머니 앞에서 바람난 애인을 그리며 목 놓아 울기까지. ‘사랑과 전쟁’에 나오는 웬만한 출연자 스펙을 훌쩍 뛰어넘는 그런 인간말종이라 생각했을 정도다. 하지만 그런 모습만이 다는 아니었다. 어느 날 경숙아베는 오랜만에 집에 돌아와 경숙이에게 나무 이야기를 해준다. 나는 처음 이 장면이 탐탁지 않았다. ‘뭐야 이제와서 아버지 행세하며 설교질인가?’정도로 생각했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하면 그 장면은 처음으로 경숙아베가 경숙이에게 윽박지르지 않고 다정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준 장면이다. 어쩌면 경숙이에게는 몇 없는 아버지와의 소중한 추억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경숙아베는 경숙이에게 인정받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나무는 사람처럼 복잡하지도 않다. 지자라고 싶은 데로 자라도 크면 다 멋있다.”,“사람들은 누구나 다 자기 장단이 있는 기다. 니도 니 인생의 장단을 쳐라.”라는 대사로 미루어 볼 때 말이다. 나는 이 대사들이 자기 자신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전형적이고 모범적인 ‘아버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꿈 따라 내 장단을 치고 다니는 멋진 사람이며, 너도 틀에 벗어난다고 틀렸다고 생각하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라 하는 말로 들렸다. 배가 부른 어머니와 꺽꺽아재를 뒤로 하고 한바탕 고함을 친 뒤 경숙에게 “아버지 멋있재!”라고 하며 떠나는 것도 이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근데 사실 경숙아베에게 정확한 꿈이 있었나 싶기도 하다. 장구하나, 가방 하나 어깨에 걸치고 군화를 신고 허구한 날 집을 나가긴 하는데 가는 곳이 항상 다르다. 사업을 한다고 했다가 친구를 도와 숯을 만든다고 했다가... 어쩌면 당연하다. 경숙 아베의 꿈은 금발머리 로스께 가스나를 양옆에 끼고 만주벌판을 달리는 것인데, 이루어 질 수 없으니 말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다. 우리 아버지도 한때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고 꿈을 이루기 위해 사업을 하시던 때가 있었다. 결과는 망했고 아버지는 그 꿈을 포기하셨다. 그 땐 철없는 마음에 기울어진 가세와 고생하는 어머니를 보며 아버지 원망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아버지라면 가족부양을 첫 번째로 생각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힘들어할 가족은 생각 않고 이기적으로 본인 원하는 것을 하려 했다고 생각했다. 경숙이에게 좀 더 감정이입이 됐던 것도 이랬던 적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은 그때 자신의 꿈을 쫓아 용감하게 행동하신 아버지가 멋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의 꿈을 포기하고 작아지신 아버지, 또 꿈을 포기하지는 않았지만 계속 밖으로 겉돌며 가족에게 돌아올 수도 없는 경숙아베 둘 모두에게 짠한 마음이다. 나무는 크면 다 멋있다지만, 물이 부족하거나 토양이 좋지 않으면 나무는 다 크지 못하기도 한다.분명 경숙아베가 처한 상황은 나무가 크는데 좋은 조건은 아니었던 것 같다. 경숙어메와 경숙아베가 살았던 일제강점기와 전후 시절 말이다. 지금의 우리는 이해하기 힘든 비정상적인 가족구조도 이 때는 흔했다고 한다. 가족은 우리 사회의 근간이고 결국 나라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다. 연출가는 흔들리고 비정상적인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며 당시 혼란스러웠고 힘들었던 나라의 상황을 상상할 수 있게 했던 것 같다. 경숙아베의 아버지가 경숙아베에게 준 ‘군화’는 이런 터프한 세상을 살아남으려면 튼튼한 신발이 필요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군화’라는 것이 투박하고 남자다움이 물씬 나는 것처럼 군화를 신은 아베는 권위적, 가부장적이고 지치지도 않고 떠돌아다닌다. 경숙이 졸업식 날 나타난 아베는 자신이 아버지에게 군화를 물려받은 것처럼 경숙이에게도 구두를 선물한다. 경숙이 세대가 살고 있는 시대는 ‘군화’가 필요할 만큼 터프하지는 않다. 따라서 그 형태는 구두로 바뀌었지만 극 중에서 경숙아베의 정체성으로 연결되는 ‘신발’을 선물하며 자신의 아버지에게 받은 ‘그 무엇인가’를 대물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 때의 아버지가 싫고 그때의 자신이 싫은 경숙은 당연히 그 대물림을 거부한다. 하지만 아버지가 남긴 구두를 안고 눈물을 흘리는 경숙이는 어쩔 수 없이 아버지를 그리워한다. 경숙어메가 말 했던 것처럼 아버지는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경숙어메도 그렇다. 자신에게 그렇게 모진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평생을 그리워하며 사랑 받기를 갈구한다. 결국 그 공허함을 ‘종교’(하지만 정상적인 종교는 아닌)라는 것으로 채우려 하지만 경숙이 졸업식 때까지도 경숙아베의 생사를 궁금해 하며 걱정하는 것으로 보아 마지막까지 마음에서 놓아주지는 못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