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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반
    양반[ 兩班 ]양반은 고려·조선시대 지배신분층을 뜻한다. 처음에는 관제상의 문반과 무반을 지칭하는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조선사회에서 실제로는 그 의미가 확장되어 '양반(관료)이 될 수 있는 신분'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 신분 범주로서의 양반은 물론 후자를 가리키는 것이다. 여기서 양반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란 절대적 가능성이 아니라, '상대적 가능성'의 의미를 갖는다. 왜냐하면, 중세 후기 유럽의 귀족과는 달리 양반은 조상(부친)의 직위를 세습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관직이나 학위를 획득할 수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사회에서 양반으로 인식되는 집단은 다른 집단에 비해 관료가 될 가능성이 훨씬 높은 것으로 인식되었고, 이점에서 양반신분은 그 가능성에서 오는 사회적 명망과 위세를 포함하여, 특권적 지위에 있었다 할 수 있다.양반의 특권은 아주 많았다. 먼저 과거에 응시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역량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그리고 병역이 면제 되었다.조선 초기의 병역은 의무제도였다. 즉 징병 제도로, 국민이 된 자는 누구 할 것 없이 병역에 종사할 의무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제도상에서 그렇다는 것뿐이지 관리의 부패로 제도가 정한 바대로 실시되지는 못했다. 병역을 면제시켜 주고 뇌물을 받아먹는 예가 허다했다고 한다. 관리가 부패하도록 만든 것도 다름 아닌 양반이었다. 제도대로 하면 양반도 병역의 의무를 져야 했기 때문에 징병 제도였던 것을 용병 제도로 바꾸어 버렸다. 세 번째로 지조(地租:토지의 수익으로 걷는 세금)를 제외한 모든 세금 면제와 부역이 면제 되었다. 마지막으로 죄를 지어도 형벌도 특혜를 받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상민 같으면 장형이라 하여 엉덩이를 내어놓고 태질을 당했는데, 양반은 태 아닌 회초리로, 그것도 엉덩이가 아닌 정강이 밑을 그저 형식 치레로 때리는 시늉만 했을 뿐이었다. 때에 따라서는 집안의 종으로 하여금 대신 매를 맞게 할 수도 있었다. 이 밖에도 다양한 특권들이 있다.[출처 및 참고문헌] 이규태, , 조선일보사다음으로는 양반의 의식주를 알아보았다.양반의 의생활이다. 양반에게 옷은 생활의 한 부분이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을 아름답게 꾸미고, 신분을 과시하던 수단이기도 하였다. 경제력을 가진 양반일수록 품질이 좋은 비단으로 옷을 지어 입고, 옷에 수를 놓기도 하였으며, 장신구에도 신경을 썼다. 양반은 유교를 섬기고, 공부하였기 때문에 옷을 입는 데에도 유교의 원리를 지키려 하였다. 절차와 예절을 중시하는 유교의 영향으로 함부로 옷을 입지 않았고 단정한 옷차림에서 예절이 나온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집에서도 옷을 갖춰 입었다. 또한 몸을 함부로 밖으로 내보여선 안 되기 때문에 여름에도 긴 옷을 입었으며 양반 여성의 경우에는 몇 겹의 속옷을 입기도 하였다. 밖으로 나갈 때에는 더욱 옷차림에 신경을 썼는데 양반 여성은 장옷 등으로 최대한 몸을 감추었다.양반의 식생활은 첩, 5첩, 7첩의 상차림이 주로 쓰여 졌는데 보통 3첩이나 5첩을 즐겼으며 경제력을 가졌거나, 중요한 손님이 올 경우에는 7첩의 상을 차리기도 하였다. 양반은 같은 식재료나 같은 음식이어도 집안에 따라 다른 조리법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많았다. 또한 음식을 담는 것에도 정성을 다했으며 음식을 담는 그릇에도 신경을 썼다. 흙으로 만든 일반적인 도자기 식기 이외에 유기 등을 사용하기도 했고, 떡이나 다식 등의 과자를 만들 때에는 다른 집과는 구별되는 무늬를 가진 판을 사용하기도 했다. 간단한 음식을 만들 때에도 맛뿐만 아니라 멋까지도 생각하였다.마지막으로 양반은 주생활이다. 조선시대의 양반은 기와로 지붕을 올린 한옥에서 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양반이 살았던 한옥은 단순히 살기 위한 곳이 아니라 집에서의 생활을 통해서 유교적인 원리를 실천하는 공간이기도 하였습니다. 안채, 사랑채, 행랑채, 사당 등으로 건물을 따로 지었고, 건물이 들어서는 위치도 일정한 방법이 있었습니다. 신분과 남녀에 따라 생활공간을 다르게 하였습니다.높은 관직에 올랐거나 전통적으로 이름이 있는 양반일수록 공간이 구별된 큰 기와집을 가질 수 있었으며, 집의 규모는 칸으로 알 수 있다. 하지만 양반이라고 하여 지나치게 많은 칸을 가진 집을 가질 수는 없다. 관직 등에 따라 가질 수 있는 집의 칸 수가 정해져 있다.기와집은 우리 민족의 슬기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집이다. 처마나 지붕 등에서 느껴지는 곡선의 아름다움과 서까래, 방의 구조 등에서 느껴지는 직선의 아름다움은 서로 잘 어울린다. 거기에서 더 나아가 창문의 틀에도 문양을 넣어 아름답게 꾸몄으며, 집을 두르는 담과 굴뚝의 모양에도 세심하게 신경을 쓰고 문양을 넣어 꾸미기도 하였다. 이렇게 양반의 의식주는 단순한 생활이 아니라 그 속에서 유교적인 예를 실천하고, 자신만의 아름다운 감각을 드러낼 수 있는 다양한 기능을 가진 다.[출처] 양반들의 의식주|작성자 교육부조선 후기에는 농민층의 분화와 상품화폐 경제의 진전에 따라 영반 중심의 신분제가 동요하기 시작하였다. 부를 축적한 상민들은 국가에 곡식은 바쳐 합법적으로 양반이 되기도 하였고, 족보를 구입하거나 위조하는 등의 방식으로 양반 신분을 얻기도 하였다. 그 결과 양반의 수가 증가한 반면, 양반의 권위는 크게 떨어져 신분제에 따른 징서 의식은 약화되고 경제력이 보다 중요한 가치가 되었다. 한편 붕당정치의 질서가 무너지고 양반 지배층 내부의 대립이 격화되면서 양반층 내부에서도 계층 분화가 일어났다. 중앙 정치에서 밀려난 양반은 향촌 사회에서 겨우 위세를 유지하는 향반이 되거나 더욱 몰락하여 잔반이 되기도 하였다.
    사회과학| 2016.11.30| 3페이지| 1,000원| 조회(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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