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중기의 대문호이며 정치가였던 이규보는 호부랑중 ( 戶部郎中 ) 윤수 ( 允綬 ) 의 아들로 초명 ( 初名 ) 을 인저 ( 仁氐 ), 자를 춘경 ( 春卿 ), 호를 백운거사 ( 白雲居士 ) 삼혹호선생 ( 三酷好先生 ) 남헌장로 ( 南軒丈老 ) 과 하였던 황려인 ( 黃驪人 ) 이다 . 그의 호 백운 거사는 구름처럼 자유분방하던 그의 모습을 구름에 빚대어 표현한 것으로 새로움과 개성을 추구하던 그의 문학적 세계를 잘 보여주는 호이다 . ' 거사 ' 란 불교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이규보가 살던 고려 시대 불교 위주의 분위기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는 어릴 때부터 총민 ( 聰敏 ) 하여 9 세 때 속문 ( 屬文 ) 에 능하니 그때 사람들이 기동 ( 奇童 ) 이라 일컬었다 . 그의 나이 14 세 되던 해에 문헌공도 ( 文憲公徒 ) 성명재 ( 誠明齋 ) 에 들어가 학업을 닦으니 , 경 ( 經 ) , 사 ( 史 ) , 백가 ( 百家 ) , 불 ( 佛 ) , 노 ( 老 ) 의 글을 한번 보면 죄다 기억하였다 . 명종 11 년 13 년 15 년의 사마시 ( 司馬試 ) 에 응시하였다가 낙방하였고 , 동왕 19 년 (1189) 의 사마시에서는 장원 급제하였으며 , 그 이듬해 예부시 ( 禮部試 ) 에는 동진사 ( 同進士 ) 로 급제하였다 .이규보가 저술한 동국이상국집 ( 東國李相國集 )명종 23 년 (1193) 에 그의 나이 26 세 때 동명왕편 ( 東明王篇 ) 을 지었다 . 고려 후기에 이규보 ( 李奎報 ) 가 지은 한문서사시 . 오언 장편 282 구의 장편 인물서사시로 약 4,000 자에 이른다 . <동명왕편>은 그의 문집인 ≪동국이상국집≫ 제 3 권에 수록되어 있다 .신종 2 년 (1199) 에 당시의 실권자인 지주사 ( 知奏事 ) 최충헌 ( 崔忠獻 ) 의 집에 초대되어 이인로 ( 李仁老 ) , 함순 ( 咸淳 ) , 이담지 ( 李湛之 ) 와 함께 천엽류화시 ( 千葉榴花詩 ) 를 지어 문재 ( 文才 ) 를 인정받게 되었으며 , 동왕 5 년 (1202) 에 경學士 ) 를 거쳐 1230 년 판위위시사 ( 判衛尉寺事 ) 를 지냈다 . 한때 위도 ( 渭島 ) 에 유배되기도 했지만 얼마 안 있어 복직되었고 , 1237 년에는 수태보문하시랑평장사 ( 守太保門下侍郞平章事 ) 를 지냈다 .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의 전성기를 누리던 때 벼슬이다 .이런 그의 행적이 오늘날까지 처신에서의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 1970~80 년대의 대표적인 논객인 평론가 김현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 “ 이규보로 대표될 수 있는 무인정권하의 기능적 지식인은 권력에 대한 아부를 유교적 이념으로 호도하며 , 그것을 유교적 교양으로 위장한다 . 가장 강력한 정권 밑에서 지식인들은 국수주의자가 되어 외적에 대한 항쟁의식을 고취하여 속으로는 권력자에게 시를 써 바치고 입신출세의 길을 간다 . 그가 입신출세하는 한 , 세계는 여하튼 태평성대다 .” 한마디로 권력에 아부한 지조 없는 문인이라는 평가이다 .긍정적평가 그에 반대되는 입장에는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 . “ 무신정권에서 벼슬을 하는 것을 주저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 기회가 오자 당당하게 나아가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 것을 자랑으로 여기고 , 최씨정권의 문인들 가운데 으뜸가는 위치를 차지했다 . 그 점을 두고 이규보를 낮게 평가하려는 견해는 수긍하기 어렵다 . 벼슬을 해서 생계를 넉넉하게 하자는 것은 당시에 누구에게나 공통된 바람이었다 . 정권에 참여해 역사의 커다란 전환에 기여하고자 한 것이 잘못일 수 없다 . 무신란이 중세전기를 파괴한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규보는 중세후기를 건설하는 방향을 제시했다 .” 국문학자 조동일의 평가이다 . 학계의 일각에서 나오는 , 몽골 항쟁에 강한 영도력이 필요하다는 판단으로 정권에 협조했다고 보는 시각과 입장을 같이 한다 .실상 문인 관료를 척결하고 일어선 무인정권에서는 국가 사무 특히 외교 문서를 맡아 할 전문 관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 과거 정권에 때 묻지 않은 사람을 찾으려는 풍조는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 문인이라곤 남기지 않고 내몰아 버린 게는 온건하게 자기의 새로운 어의(語義)를 창조하게 된 이유를 답전리지론문서 ( 答全履之論文書 ) 에서 다음과 같이 열거1) [ 중략 ] 무릇 고인의 체를 본받는 자는 반드시 먼저 그의 시를 익숙하게 읽은 뒤에라야 본받아 능히 이룰 수 있는 것이요 , 그렇지 않으면 표절하기도 오히려 어려울 것이다 . 나는 젊어서부터 방랑(放浪) 무검 ( 無檢 ) 하여 독서하는 데도 심히 정밀하지 못하여 [ 중략 ] 이미 그 글에 익숙하지 못하니 그 체 ( 體 ) 를 본받고 그 말을 훔칠 수 있겠는가 ? 이러므로 신어(新語) 를 부득이 만들게 된 것이다 . 2)[ 중략 ] 소위 지금 사람들의 시라는 것은 [ 중략 ] 조각(彫刻)과 천착에 힘쓰느라 사람으로 하여금 속박되게 하여 뜻대로 할 수 없게 하므로 짓기가 더욱 어렵다 . 그러나 그런 제약 속에서도 신의 ( 新意 ) 를 창작하고 묘미를 극도화하려 하지 않을 수 없으니 , 만일 고인이 이미 쓴 말만 낚아챈다면 무슨 공부가 되겠는가 ? 3) 성률(聲律)이 생긴 이래 중국의 근고(近古) 시인들은 한 사람도 선배 아무의 체 ( 體 ) 를 본받아 그 골수(骨髓) 를 빼어 먹었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 제각기 일가(一家) 를 이룸으로써 맛에 특징이 있었다 .4) 만약 모두 서로 답습만 한다면 이것은 탑본을 하는 것이라 한갓 종이와 먹만을 허비하는 것 일뿐이다 . 나는 옛 성현의 말에 익숙하지 못하고 또한 옛 시인의 체 ( 體 ) 를 본받기를 부끄러워하여 [ 중략 ] 반드시 특별히 신어(新語) 를 만들기 때문에 [ 중략 ] 부끄러움이 없게 되었다 . 5) 백세의 뒤에라도 뛰어난 인물이 있어 표절의 진위를 가리게 된다면 표절한 것은 반드시 사로잡히게 되고 , 도리어 나의 생삽 ( 生澁 ) 한 어구(語句)가 포상찬미 ( 褒賞讚美 ) 를 받게 될 것이다 . 위와 같이 문순은 새로운 의 ( 意 = 내용 ), 어 ( 語 = 형식 ) 창조에 대해 변명하고 있다 . 이 변명은 어디까지나 그가 겉으로 겸손을 내세운 것 일 뿐 , 안으로 그의 새로운 사문에 시의 뜻을 잃게 된다네 邇來作者輩 ( 이래작자배 ) 근래 시 짓는 무리들이 不思風雅義 ( 부사풍아의 ) 풍아의 뜻은 생각하지 않고 外飾假丹靑 ( 외식가단청 ) 겉으로만 거짓 단청을 꾸며 求中一時嗜 ( 구중일시기 ) 한때의 기호만 맞추려 하네 意本得於天 ( 의본득어천 ) 뜻은 본래 하늘에서 얻는 것이므로 難可率爾致 ( 난가솔이치 ) 쉽게 이를 수 있기가 어렵다네 自揣得之難 ( 자췌득지난 ) 스스로 얻기 어려운 줄 알고 因之事綺靡 ( 인지사기미 ) 인하여 화려함만 일삼아 以此眩諸人 ( 이차현제인 ) 이것으로 여러 사람을 현혹시켜 欲掩意所匱 ( 욕엄의소궤 ) 뜻이 없음을 가리려 하네 此俗寖已成 ( 차속침이성 ) 이러한 습속이 점점 이루어져 斯文垂墮地 ( 사문수타지 ) 사문이 땅에 떨어졌네 李杜不復生 ( 이두부부생 ) 이백과 두보 다시 나오지 않으니 誰與辨眞僞 ( 수여변진위 ) 누구와 함께 진위를 분별할까 我欲築頹基 ( 아욕축퇴기 ) 나는 허물어진 터를 쌓으려 하는데 無人助一簣 ( 무인조일궤 ) 한 삼태기도 도와주는 사람 없네 誦詩三百篇 ( 송시삼백편 ) 『 시경 』 삼백 편을 외운들 何處補諷刺 ( 하처보풍자 ) 어느 곳에 풍자가 도움되리 自行亦云可 ( 자행역운가 ) 나만 행하는 것은 괜찮겠지만 孤唱人必戱 ( 고창인필희 ) 홀로 소리쳐도 남들은 반드시 놀리겠지위 논시의 내용은 시 ( 詩 ) 란 의 ( 意 ), 어 ( 語 ) 가 쌍미( 雙美 )해야 하는데 근래 시인들이 조충전각 ( 彫蟲篆刻 ) 에만 힘씀으로 인하여 시는 그 본지(本旨) 를 잃게 되고 사문(斯文)은 땅에 떨어지게 되었으니 어찌 시의 진위(眞僞) 를 분별할 수 있겠는가 라 통박하고서 , 자기는 허물어진 터를 쌓으려고 노력하나 , 아무도 조그마한 힘 도와주지 않고 다만 자기의 의 ( 意 ), 어 ( 語 ) 창조만을 희롱하고 있다라는 내용 이와 같이 새로운 의경 ( 意境 ) 과 새로운 어구(語句)를 창조하기에 힘쓴 문순은 시 창작에 있어서도 내용과 형식의 비중을 논시중미지약언 ( 論詩中微旨略言 ) 에서 못한데 훔쳐 쓴 것이 잘못된 것 만노불승체 ( 挽努不勝體 ) : 강운 ( 强韻 ) 으로 압운하되 근거(根據)가 없는 것 음주과량체 ( 飮酒過量體 ): 그 재주는 헤아리지 않고 압운이 지나치게 어긋난 것 설갱도맹체 ( 設坑導盲體 ): 험자 ( 險字 ) 쓰기를 좋아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미혹(迷惑)되기 쉽게 하는 것 강인종기체 ( 强人從己體 ) : 말이 순조롭지 못한 데 굳이 인용하는 것 촌부회담체 ( 村夫會談體 ) : 상말을 많이 쓰는 것 능범존귀체 ( 凌犯尊貴體 ) : 구가 ( 丘軻 ) 범하기를 좋아하는 것 낭유만전체 ( 稂莠滿田體 ) : 말이 거칠어도 깎아버리지 않은 것이와 같이 시 창작에 있어서 마땅하지 못한 아홉가지 체격(體格)을 면한 뒤에라야 시를 옳게 논할 수 있다는 문순은 시의 체격에 대해 “ 순전히 청고 ( 淸苦 ) 를 써서 체 ( 體 ) 를 삼는 산인(山人)의 격 ( 格 ), 온전히 연려 ( 姸麗 ) 로써 편 ( 篇 ) 을 꾸미는 궁액( 宮掖 )의 격 ( 格 ), 오직 청경 , 웅호 , 연려 , 평담을 잡용(雜用)할 수 있게 된 다음에라야 체격(體格)이 갖추어져서 사람들은 한 체 ( 體 ) 로써 그것을 이름지을 수 없게 된다 .” 라고 하여 , 시인은 경우에 따라 여러 체격을 두루 적절하게 구사 할 줄 알아야 하지 , 한 체격에 얽매이어서는 대성할 수 없다고 말하였다 .구상 ( 構想 ) 構 얽을 구 想 생각할 상 예술 작품을 창작할 때 , 작품의 골자 ( 뼈대 ) 가 될 내용이나 표현 형식 따위에 대하여 생각을 정리함 . 또는 그 생각 .추고 ( 推敲 ) 글을 지을 때 여러 번 생각하여 고치고 다듬음 . 퇴고와 같은 뜻“ 시를 급하게 지으면 군색하다 . 바야흐로 그 생각을 짜는데 생각이 깊이 들어가 나오지 못하면 빠지게 되고 , 빠지면 부딛히게 되고 , 부딛히면 미혹되고 , 미혹되면 집착되는 바 있어 통하지 못하게 된다 . 오직 출입왕래 ( 出入往來 ) 하고 좌지우지 ( 左之右之 ) 하고 첨전고후 ( 瞻前顧後 ) 하고 변화자재 ( 變化自在 ) 한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