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고트 왕국의 기원과 역사고트족이 처음 로마를 공격한 3세기 중엽부터, 내전과 외부의 침입에 몸살을 앓고 있던 로마제국은 고트족과 적대하기보다는 화평을 선택했다. 황제는 고트족 포로를 근위대에 포함시키고, 땅을 내어주어 정착하게 했으며 그 대가로 군사를 제공받았다. 4세기에 들어서며 고트족은 여러 번 제국과 대적했는데, 그 중 콘스탄티누스 황제 시절의 ‘고트 전쟁’에서는 당시 고트족 왕인 ‘아리아릭’의 장남이 황제의 인질로 잡히기도 했다.훈족의 침입 이후 고트족은 훈족으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땅을 제공받길 원했고, 황제의 허가에 따라 제국 안으로 들어온 고트족들은 반란을 일으켰다. 이때 고트족은 로마군과 벌어진 ‘하드리아노플 전투’에서 대승을 거둬 발렌스 황제를 전사시키는 등 로마에 막대한 피해를 일으켰다. 이후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친고트 정책에 따라, 고트족은 다시 다뉴브, 발칸반도 쪽에 거주하며 로마군에 입대하고 일부는 장군으로 복무하기도 했다.고트족 출신 ‘알라릭’ 또한 로마 장군이었는데, 그는 로마가 혼란한 틈을 타 세력을 키워 두 번에 걸쳐 그리스를 공격하고 일리리쿰 일대의 군사령관으로 임명된다. 이후 이탈리아 침공은 서로마의 게르만족 출신 장군 스틸리코에 의해 저지되지만, 스틸리코가 반역자로 몰려 처형된 후 로마와의 협상마저 무산되자 로마를 두 번에 걸쳐 침공하였다. 첫 번째 침공에서는 로마로부터 엄청난 양의 공물을 받고 물러나고, 두 번째 침공에서는 사흘에 걸친 약탈을 하였다. 이때 많은 유적지가 파괴되고 수많은 로마인들이 노예가 되거나 학살당했다. 그 중에는 테오도시우스의 딸이자 호노리우스의 동생인 갈라 플라키디아도 있었는데, 그녀는 알라릭의 후계자 아타울프와 결혼한다. 이후 알라릭은 아프리카로 건너가기 위해 이탈리아 남단으로 가지만 수해를 입어 계획이 틀어지고, 곧 병을 입어 앓다 죽는다.알라릭의 뒤를 이어 아타울프는 415년 암살당할 때까지 서고트족을 이끌고, 418년 왈리아 왕 대엔 서로마 황제에게 갈리아 서남부 아퀴타니아 지역을 할당받고 정착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때를 서고트 왕국의 시작이라고 본다. 왈라릭의 뒤를 이은 테오도릭 1세는 플라비우스가 이끄는 서로마군과 연합하여 오늘날 프랑스 상파뉴아르덴 지방에서 아틸라가 이끄는 훈족을 격퇴한다. 그러나 테오도릭 1세는 전사한다.서고트왕국은 점차 발전해 에우릭 왕 대엔 수에비족과 반달을 몰아냈으며, 이후 갈리아 남부와 이베리아 반도의 대부분을 차지한 대국으로 성장한다. 6세기에 들어서며 프랑크 왕국과의 전쟁에서 패배해 갈리아 남부 영토를 잃고 동로마 제국에게 이베리아 영토의 남부를 잃는 등 피해를 잃고 수도를 톨레도로 옮긴다. 이후 리우비길드(Liuvigild)왕 대에 혼란을 수습하고 수에비 족의 계승권을 얻어냈으며, 이베리아반도에서 동로마 제국을 다시 몰아내는 등 이베리아반도의 완전한 통합을 이루어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