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14세기 ~ 16세기 사이에 일어난 문화운동을 말한다. 신 중심의 사상과 봉건제도로 개인을 억압하던 중세시대에서 벗어나 문화의 절정기였던 고대 그리스 때로 돌아가자는 운동으로, 르네상스라는 명칭은 재생, 부활을 의미한다.북유럽 르네상스북유럽 르네상스 시대적 배경북유럽 르네상스는 지금의 벨기에를 말하는 플랑드르 지방, 그리고 네덜란드나 독일 등에서 활약한 화가들의 작품을 말한다. 이러한 북유럽 지방은 사회적 경제적인 밑받침이 있었기 때문에 독자적으로 르네상스가 발달할 수 있었다. 구체적인 이유로는 북유럽 지역에서 합스부르크가가 신성 로마 제국의 독일 영토를 지배하게 되면서 16세기 전반 에는 고도의 경제 성장과 문화 발전이 이루어졌다. 이에 따라 대규모 대학이 설립되고 바젤 지역은 회화의 중심지로서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와 비견될 만한 위상을 가지게 되었다.북유럽 르네상스의 미술 특징종교개혁1517년 마르틴 루터가 95개조의 반박문을 게시한 이후 종교 개혁이 발발하면서 이때 가톨릭에 대한 반발이 종교화를 금지하는 데까지 이어져 종교화 대신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주제로 하는 예술문화가 나타난다.북유럽 미술양식북유럽 르네상스의 미술양식은 이탈리아 전통적 르네상스 미술과는 달리 신화를 주제로 한 그림보다는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보여주는 그림이 많다.북유럽 회화는 수학적으로 철저히 따지면서 완벽한 그림을 그리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 눈에 보이는 대로 그렸기 때문에 시각적인 외양에 충실했다는 게 북유럽 회화의 강점이자 특징이다.유화북유럽은 유화를 많이 그렸다. 유화물감을 상용화하는데 힘 쓴 것은 북유럽의 화가들이기 때문이다. 북유럽 화가들은 캔버스나 목판에 유화물감을 써서 그림을 많이 그렸다. 유화물감은 잘 마르지 않기 때문에 색을 섞어서 다양한 색을 만들 수 있는 등 좀 더 그림 그리기가 용이했다.결론15세기에는 알프스 이북 지역의 미술가들은 이탈리아 미술의 양식이나 이념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이탈리아는 이상적인 그림을 추구했기 때문에 모든 인물을 다 이상적이고 아름답인인 조반니 아르놀피이와 그의 신부 잔느 드 쉬나니를 그린 것이다. 결혼이라는 일상적이고 평범한 주제를 바탕으로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회화를 구성하는 아리놀피니의 집을 묘사하는 다양한 디테일한 요소들은 우리가 마치 아르놀피니의 집에 방문한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이 그림에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점은 극적인 사실주의다.작품을 구성하는 인물 뒤쪽 거울에서 작품 속 보이지 않는 제3의 인물을 반영으로 비추고 있다. 또한 거울의 위에는 < Johannes de eyck fuit hic > 라는 라틴어를 확인할 수 있다. 거울 속 비춰지는 제3자는 얀반에이크이며 회화속 기록된 라틴어는 < 얀 반 에이크가 입회했노라 > 라고 해석된다. 이는 마치 그림을 그린 얀반에이크가 저 둘의 혼인에 대한 증인이며 혼인을 증명하는 법적인 순기능을 그림이 증명하는 듯하다. 당시 플랑드르의 회화의 특징인 사실적인 묘사의 장점을 살려 그림을 새로운 방법으로 이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독일 르네상스종교 개혁의 본고장이며, 16세기 초의 25년간을 통하여 의 주요한 전투들이 벌어진 독일에서부터 시작하기로 하자 독일은 1475년에서 1500년 사이에 배출된 중요한 화가는 미하엘 파허와 마르틴 숀가우어 , 알브레히트 뒤러 와 그뤼네발트 등이 있다. 이중에 당시 전성기 르네상스 시기와 견줄 수 있을 만큼의 파급효과를 준 작가 뒤러와 그뤼네발트를 중심으로 독일 르네상스 회화의 특징을 알아보자.마티아스 그뤼네발트 – 종교화엘 그레코의 명성과 마찬가지로 그뤼네발트의 명성도 거의 전적으로 20세기에 들어와서야 높아졌다. 그는 생전에는 매우 유명했고 높은 공직에 있었으나 그의 생애나 성격에 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폐쇄적인 성격으로 쓸쓸한 삶을 지내왔다고 전해지는 그는 단적으로 종교적인 주제만을 다루었고 몇십 점의 드로잉과 그림만이 전해온다. 당시의 북구 미술에서는 오직 그만이 그의 주요 작품을 통해서 시스티나 대성당의 천정화가 갖는 그런 힘으로 우리를 압도하고 있다.작품이젠하임 제단화 ( 151모자를 위한 천사의 합주 , 부활 ) >제단화를 펼치면 나타나는 패널의 이미지들은 처음 보았던 닫힌 패널과는 대조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다. 즐겁고 기쁜 사건들을 축하하고 있다. 우리가 이 패널에서 주목해야할 점은 후기 고딕 회화에 비교하면 역동적이라는 것이다. 패널을 구성하는 개별적인 요소 하나 하나 그 자체의 생명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심한 굴곡을 이루고 있다. 이런 태동하는 힘이 후기 고딕 미술의 뻣뻣하고 뾰죽한 윤곽에서 비롯된 딱딱한 형태들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그뤼네발트의 형태들은 부드럽고 탄력성이 있고 육감적이다. 빛과 색채도 여기에 따르는 변화를 보여 주고 있다. 그뤼네발트는 플랑드르 거장들의 기법을 능숙하게 표현하면서도 자신만의 대담하고 유연한 화풍을 보여준다. 그가 드러내는 색채는 아주 풍부한데, 그처럼 색채를 폭넓게 사용한 것은 베네치아파 뿐이고 그뤼네발트의 빛의 표현은 다른 동시대 작가와 비교하여 차별적이게 두드러지는 장점이다.이러한 그뤼네발트의 화풍에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영향도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작품에 나타나는 원근법에 관한 지식과 인물들의 육체적인 표현은 후기 고딕의 전통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또 남유럽에 근원을 둔 건축의 세부 묘사, 무엇보다도 자유스럽고 개인주의적인 정신을 공유하였고 그림의 대담성은 자신의 자질에 대한 자신감을 보여주고 있다. 르네상스의 정신은 후기 고딕적인 여러 특성들을 독특한 격렬함과 개성을 가진 하나의 양식으로 집약시킬 수 있게 해주었다.알브레히트 뒤러 - 판화뒤러는 일찍이 소묘, 목판, 인쇄 부문에서 수련을 쌓았고 이것들은 평생동안 그의 주요한 예술적 표현의 수단이 되었다. 그는 당대 최고의 판화가로서 서유럽 전체에 이미 널리 사용되고 있었던 목판화와 동판화를 통해 16세기 미술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시각 예술분야에서 르네상스의 이상을 구현한 최초이자 가장 위대한 북유럽 미술가였으며,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영향을 받았지 만 결코 자신의 북유럽적 개성과 선묘에 대한 관심을 버리지 않았다. 후의 심판에 대한 예언이 들어 있는 첫 번째 네 개의 봉인을 열었을 때 네 명의 기수가 잇따라 달려나왔다. 첫 번째 기수는 백마를 타고 활을 들고 정복을 위해 달리며, 한 기수는 커다른 검을 둔 채 붉은 말을 타고 파멸시키기 위해 달리고, 검은 말을 탄 기수는 천칭을 들고 있고, 마지막으로 창백한 말을 탄 사신은 지옥을 거느리고 기아와 질병으로 멸망시키기 위해 달리고 있다.말발굽 밑에 쓰러진 사람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기사들은 모두 먼 곳을 응시 하고 달려나가고 있으며 이들은 판을 가로질러 하나의 연결된 구도를 이루면서 작품에 운동감을 불어넣는다. 운동감은 빛과 어둠의 대비, 펄럭거리는 안장 받침, 다른 의상들의 선의 동요에 의해 뒷받침된다. 끓어오르는 듯한 선은 뒤러의 초기 목판화에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다. 거의 천둥소리같은 그런 움직임이 목판화로 표현되었다는 것, 기술과 상상력에 있어서 이 작품을 능가할 만한 것이 없을 정도로 탁월한 대표작이다.기사의 죽음과 악마 ( 1513 / 동판화 / 24.6 x 19 cm )뒤러의 가장 훌륭한 판화다. 기마상 은 완벽하게 균형이 잡히고 자신 만만하게 아름다운 준마 위에 앉아 있는 기사는 미적이면서도 동 시에 도덕적인 이상을 구현하고 있다. 그를 위협하는 말 위의 무서운 인물이나 배후의 기괴한 악마에 흔들리지 않고 성스러운 도시(천국)을 향해 신앙의 길을 꿋꿋이 나아가는 기독교 병사이며, 그의 미덕의 또 다른 상징인 개도 가는 길에 도마뱀과 해골 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주인을 충실히 따라간다. 후기 고딕의 상징주의적 유산과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조형적인 조화가 결합되어 여기서 새롭고 현저하게 북유럽적인 특징을 띠고 나타난다. 이 주제는 뒤러 자신의 신념이었던 기독교적 휴머니즘을 보여주고 있는데, 뒤러는 그뤼네발트도 그러했듯이 카톨릭 후원자들을 위해 작품 제작을 하면서도 열광적인 루터 신봉자였다.한스 홀바인 – 초상화한스 홀바인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초상화가로 알려져있다. 정확한 사실주의와 선을 주로 사용하는 네현실, 찰나적인 현실은 죽음이라는 또 하나의 차원에 의해 침식당하고 있다. 이 인물들은 이 해골을 볼 수 없으며 그들의 과학적 지식도 이것을 이해할 수 없다. 과학적인 정밀함과 최상의 예술이 실현시킨 이 애매모호한 작품은 기념비적인 사실주의와 복합적인 상징주의를 결합시키고 있다.네덜란드 르네상스16세기의 네덜란드는 알프스 이북의 어느 나라보다도 소란스럽고 고뇌에 찬 역사를 갖게 되었다. 이 지역은 독일 보다는 이탈리아 적인 요소를 서서히 착실하고 조직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뚜렷한 혁신은 없지만 1550~1600년 사이에는 북유럽에서 일류급의 화가들을 배출하였고 17세기에 네덜란드와 플랑드르의 위대한 거장들이 출현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아 놓았다.네덜란드 회화의 주안점이 되는 특징을 살펴보자면 전통적인 종교적 주제를 소재로 삼던 기존의 회화 주제를 보완하면서 소재의 영역의 확대에 이바지한 점이다. 르네상스 이후 바로크 시대에 네덜란드를 지배하는 미술 경향인 풍경화, 정물화, 풍속화가 점진적으로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기존 미술 작품을 찾는 구매자인 교회의 주문이 감소하게 되자 대중들에게 소비하기 위하여 필요적으로 형성된 현상이라 할 수 있다.브뤼겔브뤼겔은 16세기 네덜란드의 대표적 화가이다. 그가 태어났을 당시의 네덜란드는 하나의 국가라기 보다는 여러 개의 독립된 주와 도시가 모인 것으로, 각각의 지방과 도시가 그들 나름대로의 독자적인 문화와 예술을 가지고 있었다. 브뢰겔은 1520년에서 30년 사이에 태어난 것으로 추측할 뿐, 정확한 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다. 마찬가지로 태어난 곳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주장이 있으며, 대체로 네덜란드 남서부의 브레다로 여겨지고 있다. 브뤼겔은 주로 풍경과 농민의 생활을 그렸다. 그는 민속이나 서민의 일상 생활에 관심을 쏟은 작품들로 미루어 그는 어느 정도 복잡하지만 일률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종교적인 신념은 무엇이며, 정치적인 태도는 어떠했던지 확실하지 않으나 네덜란드 화가들 중 눈에 뛰는 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