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평성모병원 자기소개서♥ 1. “점이 모여 선이 되게 하라”외향적인 부모님은 저의 내성적인 모습을 걱정하며, 완벽히 하지는 못해도 점부터 시작해보라며 항상 저를 시작의 출발점 앞에 세워주셨습니다. 어릴 적의 저는 치마를 입혀놓으면 교실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복도에 서있을 정도로 수줍은 성향이 가득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처음에는 울고 불며 부모님이 억지로 세워주신 점에서 시작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처음 찍은 점이 선이 되기도 하고 그저 점에 멈추기도 하는 일을 경험하는 과정을 거치며 저는 더 이상 점을 찍는 일에 두려움을 가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저는 오히려 그 시작을 두려워하지 않고 스스로 발전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나서기 힘들어 했던 지난날의 저의 모습들은 밑거름이 되어 이제는 100여명의 앞에 서도 어려움 없이 발표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는 저에게도 잠재적인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했습니다. 이제 저는 은평성모병원의 간호사로서 시작할 수 있는 점을 찍어 선으로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2. < 성격및특기사항>“저는 혼자보다는 함께의 소중함을 알고, 사랑을 할 것입니다.”학창시절, 제 개인적인 고민으로 인해 혼자서 끙끙 앓고 있었을 때가 있었습니다. 이 때 제가 주머니 속에 떨어뜨린 종이를 통해 친구들이 저의 고민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고민을 제 자신이 혼자 해결해야 된다고만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손뼉도 마주 쳐야 소리가 난다." 속담처럼 저를 힘들게 하던 고민을 친구들이 함께 모여 도와주니 눈이 녹듯 해결이 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이 때 저는 혼자보다는 함께했을 때 행복은 배가 되고, 슬픔과 걱정은 나눌 수 있음을 배울 수 있었고, 지나왔던 일든은 제가 임상에 가서도 동료의 슬픔과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게 했습니다. 아직도 저는 완벽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닙니다. 하지만 같이의 가치를 알고, 동료들과 서로 밀고 끌어주며 화합을 만들어 갈 줄 아는 사람이 되겠습니다.3.“활시위의 탄력성”휠지언정 부러지지 않는다. 라는 말은 어떠한 난관에도 결코 굽히지 않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위에 의미처럼 강인하고 굳세게 살자 라는 의미보다는 활시위를 당길 때 활시위는 있는 힘껏 휘지만 다시 제자리를 찾아간다는 의미로 해석을 하여 휠지언정 부러지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힘들 때마다 이 말을 되새기며 시련이나 고난 앞에서 넘어질 수는 있지만 좌절하고 쓰러지는 것이 아닌 다시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저에게 상기시켰습니다. 또 제가 걸어가야 할 간호사라는 길이 결코 평탄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바람 불면 휙 하고 쓰러지는 사람이 아닌 휘어질 때는 휘어질지라도 다시 제자리를 찾을 수 있는 유연한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겠습니다.4. “초심은 잃지 않되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으로 있겠습니다.”저는 현실에 만족하며 안주하는 삶이 아닌 계속 발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은평성모병원은 1944년, 제기동의 시약소에서 출발하여 70년에 걸쳐 현재에도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해온 병원입니다. 저는 성모병원이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발전해오는 모습을 보며 이 곳은 역사에서부터 배울 점이 많을 것이라 느꼈고 병원이 걸어온 발자취를 더듬으며 저도 함께 앞으로 그 길을 걷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저는 전문성을 지닌 간호사로써 임상에 오래 있고 싶어서 평생 다닐 수 있는 병원을 찾고자 했으며 은평성모병원의 최고 수준의 의료의 질을 추구하는 환경 속에서 저도 치열하게 일하고 싶어 지원을 하게 되었습니다.또한 은평성모병원에 입사하여 장래에 경력직 간호사가 되어 사랑으로 후배를 양성하는 훌륭한 간호사가 되고 싶습니다.5. “늘 깨어 있는 사람으로 있겠습니다.”간호학과에 입학하여 그동안 해온 활동이 간호사로서의 역량을 기르는데 발판이 될 일들을 쌓아왔습니다.우선 RCY라는 동아리를 통해 전남 고흥군에 있는 소록도에서 봉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소록도에서 한센병을 앓았거나, 앓고 계신 분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한센병으로 인한 겉모습은 저에게 생소했지만 이 분들과 지내면서 외향적인 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시각적인 관점이 아닌 다른 관점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사랑하는 마음가짐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또한 소록도에서 스쳐지나가는 사이라도 항상 마주칠 때마다 “안녕하세요”라며 웃는 얼굴로 인사를 했었는데 이러한 경험이 어느새 저에게 습관이 되어 소록도가 아닌 곳에서도 항상 밝게 인사를 하고 다니는 좋은 인사성을 기를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인사는 어떻게 보면 작은 것에 불과하지만 이 작은 것이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에 소록도에서의 활동은 저를 성장시키는 좋은 거름이 되었습니다.그리고 글로벌 리더쉽 캠프에 참여해 연변에 가서 호스피스 병동과 몸에 장애가 있는 아이들이 다니는 유치원을 방문하였고 그곳에서 다른 문화권의 호스피스 간호와 교육방법을 보며 세계적인 안목을 키워나갔습니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실습을 하면서 죽음은 환자 개인적인 면에서도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지만 떠난 사람의 빈자리를 받아들여야 하는 가족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가 없어보였습니다. 저는 이를 보며 가족간호에 대해 학생의 위치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은 없을까 하고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그 가족을 위해 한 번이라도 더 위로의 말을 건네고, 힘들 때 곁에 있어주는 것이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캠프에 참여한 친구들과 앞서 언급했던 의견들을 나누며 혼자였으면 하지 못할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임상에 나가서도 간호에 대해 의문이 들 때, 동료들과 대화를 나누면 훨씬 더 높은 수준의 직접적인 간호들을 해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