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확산 중인 ‘미투’운동을 다루는 언론의 보도 행태는 적절한가, 적절하지 않은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미투 운동, 본질을 봐야 한다‘안절부절 기자를 응시하던 한 여성, 이윽고 자신이 과거 겪었던 성폭행 사실을 떨리는 목소리로 고백한다. 사안에 대해 재차 묻는 기자의 말에 여성은 결국 눈물을 보인다. 손은 한없이 떨리고 한동안 말을 못 잇는다...’성폭행·성추행 사실을 고백하는 이른바 ‘미투 운동’이 사회 전반으로 퍼지면서 피해자들이 방송 인터뷰에 직접 등장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피해자들은 대체로 과거의 아픈 기억을 되짚느라 힘들어하며 이후 벌어질 일들에 대해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래서 인터뷰 말미에는 자신을 지켜주기를 간절히 부탁한다. 하지만 힘겨운 증언 이후 피해자들에게 남는 건 2차 가해와 또 다른 언론사들의 인터뷰 요청 뿐, 피해자들을 카메라 앞으로 이끌었던 언론은 또 다른 증언들을 찾아다닌다. ‘미투’를 다루는 언론의 시선에는 ‘왜 그런 피해가 있었는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에 대한 고찰은 찾기 어렵다. ‘미투 운동’이 흥미 위주의 경마식 보도로 소비되고 있는 것이다.‘미투 운동’을 일종의 스캔들처럼, 흥미 위주로 소비하는 언론의 보도 행태는 적절하지 않다. 피해자들에게는 2,3차 가해를 가하고 가해자들에게도 필요 이상의 고통을 안기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처음 자신의 성폭행 사실을 고백한 한 검사는, 방송 이후 2차 가해에 시달려야 했다. 일부 부주의한 언론과 누리꾼들이 모욕적인 외모 평가를 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내뱉은 ‘피해자 코스프레’라는 말도 ‘진실보도’라는 미명 아래 더 많은 이들에게 퍼져 새로운 상처가 됐다.가해자들은 어떤가. 최근 성폭행 가해자로 언론에 매일 오르내리던 배우는 결국 죽음을 택했다. 일부 언론들이 일상생활이 불가할 정도로 파고든 데다, 다른 방송에 나왔던 가족들과 주변인들의 반응을 억지로 짜깁기해 연일 보도한 탓이다. 물론 가해자들의 고통은 피해자들의 고통과 비견될 수 없다. 또 가해자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고 하여 그들의 죄가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피해자들이 2중, 3중으로 고통을 받고, 가해자들은 감히 사과할 엄두도 못내는 이런 상황은 본질적인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든다. 여기서 본질적인 문제 해결이란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뉘우치고 사과하는 것, 그리고 성폭력, 성추행이 자행되는 불합리한 환경을 개선하는 것 등을 말한다. 하지만 피해자들의 자극적인 사연만 연일 보도하는 언론의 행태는 ‘미투 운동’의 본질을 흐려버리기만 한다는 것이다.따라서 언론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신상털이, 혹은 사연을 실어 나르는 데 집중하기보다 미투 운동 자체의 의미를 파악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이미 많은 ‘미투’ 증언들을 통해 성폭력, 성추행 등이 사회적 위계질서와 얽힌, 뿌리 깊은 폭력임이 드러났다. ‘미투 운동’을 사건성으로 소비할 것이 아니라 오랜 적폐 청산의 관점에서, 꼼꼼하고 무겁게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피해자를 철저히 보호하고, 가해자가 지은 죄에 대한 책임을 다하도록 여론을 조성하는 것도 언론의 역할이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처럼 가해자가 진심으로 뉘우치고 사과하며 나설 수 있도록 사회 환경을 조성하는 데 언론이 앞장 서야 한다는 것이다.
논제 : 검찰 내 성폭력 행태를 고발한 현직 검사. 문학계 원로의 성폭력 사실을 폭로한 시 ‘괴물’을 시작으로 사회 각계각층에서 성폭력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을 밝히는 ‘미투’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그 의의를 논하고, 우리 사회가 ‘미투’운동 이후 지향해야 할 태도를 제시하시오.목소리를 내다. 연대를 꿈꾸다.‘Me too / 동생에게 빌린 실크 정장 상의가 구겨졌다.’최은미 시인은 ‘괴물’이라는 시에서 한 원로 시인의 성추행 사실을 폭로했다. 할리우드에서 여배우들이 까만 드레스를 입고 나타나고, 한국에서는 한 검사가 자신의 성추행 피해 사실을 고백할 때 즈음이었다. 특정 집단의 문제인 줄 알았던 성추행, 성폭행 피해 사태는 점점 사회 전반에 걸친 뿌리 깊은 문제로 드러나고 있다. 각계에서 자신의 성폭행 피해 사실을 밝히는 이른바 ‘미투 운동’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미투 운동’이 갖는 의의는 피해자들이 희망을 갖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만약 말을 해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경우, 피해자나 사건 당사자는 입을 열지 않았을 것이다. 어렵게 고백을 해봐야 바뀌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성추행, 성폭행 피해자들을 숨지 않는다. 대신 나 역시 당했다며 ‘미투’를 외친다. 자신의 고백으로 인해 불합리하게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당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이제는 바꿀 수 있다고 믿게 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회 분위기는 이전에 비해 많이 바뀌었다. 피해자를 혼내거나 숨기기보다는 가해자를 밝혀내 비난한다. 인권에 대한 생각, 그리고 합리와 불합리에 대한 판단 등이 이전보다 성숙해졌기 때문이다.다만 현재 ‘미투 운동’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우려스러운 부분도 있다. ‘미투 운동’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자칫 여성과 남성의 대립, 이른바 성대결로 치닫는 경우가 있어서다. 현재 피해 사실을 고백하는 이들은 전부 여성이다. 또 가해자로 지목되는 이들은 전부 남성이다. 이런 경향을 보이는 건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과거 사회에 만연했던 위계질서 때문이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의 인권을 유린하는 어떤 짓을 해도 용납되었던 시기가 있었다. 그리고 그 때의 여성은 이런 사회적 위계 질서에서 특히 벗어나기 어려웠다. 왜냐하면 당시 대부분의 여성들은 가정에서든 사회에서든 남성의 보조적인 역할로서, 남성의 말을 들어야 하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삐뚤어진 위계질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랬기에 혹시나 여성이 성폭력을 당했더라도 전부 피해자에게 탓을 돌리는 경우가 많았다. 또 같은 여성조차도 가해자를 비난하거나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삐뚤어진 위계에 대한 무관심과 피해자에게도 침묵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미투’ 사례를 더욱 확산시켰다는 것이다.
논제: 미연방통신위가 망중립성 원칙을 폐지했다. 폐지가 과연 옳은지에 대하여 논하세요.차별이 없어야 진정한 자유다.‘인터넷의 자유를 회복하겠다’. 아짓 파이 미국 연방통신위원장은 망중립성 원칙을 폐지하며 이렇게 선언했다. 망중립성 원칙이란 인터넷에서 데이터를 주고받을 때, 데이터의 내용이나 양에 따라 인터넷 속도와 망 이용료를 차별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그동안 대부분의 정부는 인터넷 서비스를 일종의 ‘공공서비스’로 보고 필요한 규제를 해왔다. 망중립성 원칙처럼 망 제공자가 인터넷 공급을 사유화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주요 골자였다. 그러나 미국에서 먼저 망중립성 원칙이 폐지되면서 인터넷 망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망중립성 폐지는 당장 IT 생태계를 파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옳지 않다. 이미 인터넷이 일상생활에 밀접해진 상황에서, 너무 많은 권한을 소수의 망 서비스 제공자에게만 쥐어준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은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가 사기업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더 크다. 예를 들어 미국의 통신사기업 버라이즌은 자회사로 콘텐츠 플랫폼 파이오스를 소유하고 있다. 그런데 망중립성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면 경쟁 업체인 넷플릭스의 인터넷 속도를 낮춰 자신의 자회사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 수 있다. 또 인터넷 망을 소유하고 있지 않은 IT계열의 스타트업은 아예 인터넷 시장에 뛰어들 수 없다. 새로운 인터넷 망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비용이 부담되기 때문이다.또 이미 공공의 영역처럼 사용되고 있는 인터넷을 몇몇 기업의 소유로 전환한다는 것은 소비자들의 불편을 가중하고 선택권을 박탈하는 것과 같다. 망중립성이 폐지되면 망 제공 사업자가 인터넷 상의 콘텐츠를 임의로 통제, 왜곡할 수 있게 된다. 또 서비스에 가입한 소비자와 그렇지 않은 소비자를 차별할 수도 있다. 그동안 누구나, 거의 무료로 편하게 누려왔던 인터넷 상의 자유가 오히려 침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물론 일각에서는 망중립성을 폐지하면 망 투자를 하지 않고 무임승차하는 각종 콘텐츠의 트래픽을 차단해 과부하를 막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망 제공자의 입장만 고려한 것이며 인터넷에서 제공될 서비스를 선별하는 권리를 소비자에서 망 관리자로 넘기는 것과 같다. 망중립성이 유지되고 있는 요즘은 콘텐츠의 유용성을 소비자가 판단해 이를 계속 유지할 것인지 사라지게 할 것인지 결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망중립성 폐지 이후 망 제공자끼리 경쟁해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어차피 망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은 소수다. 공적인 규제가 가해지지 않는다면 경쟁보다는 담합을 할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이다.
논제 : 북한군 병사를 다루는 국내외 언론의 태도를 평가하시오.만들어진 ‘북한 병사’, 본질은 가려졌다‘검정 차량이 북한 초소를 넘어 남쪽으로 돌진했다. 그러나 곧 수렁에 빠졌고, 한 북한군 병사가 급하게 차에서 튀어나왔다. 정신없이 도망치는 병사 뒤로 수십 발의 총알이 날아들었다. 피를 흘리면서도 계속 도망친 이 병사는 남쪽 자유의 집 근처에 쓰러졌다..’영화의 한 장면 같은 이 모습은 최근 국내외 언론에 소개된 북한군 병사의 탈출기다. 그런데 주목할 만한 것은 이후 북한군에 대한 언론의 묘사다. 북한군 병사는 소위 불쌍하고 못 사는 북한 주민의 전형으로 그려지거나, 소설 주인공처럼 묘사되는 경향을 보였다. 탈북민이라는 취재 대상자의 특성상 주변인의 증언을 중심으로 재구성한 이미지, 또는 추측으로 만들어낸 정보들로 뉴스를 생산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이미지화 과정을 거치면서 탈북 북한군 뉴스는 허구에 가까운 이야기가 되었고, 결국 본질이라고 볼 수 있는 여러 핵심 정보들은 가려지고 말았다.탈북민이나 외국인 등 외집단이라 볼 수 있는 사람들을 열등하게 묘사하고, 한국인인 내집단을 우월하게 묘사하는 스토리텔링 방식은 자칫 상황을 왜곡할 수 있다. 특히 뉴스에서는 무조건 지양되어야 하는 이유다. 그러나 국내외 언론보도 속에서 북한군 병사는 계속 열등한 외집단으로 묘사됐다. ‘탈북 병사가 소위 잘사는 집안의 자제만 할 수 있다는 운전병이었다’는 사실과 ‘커다란 기생충들이 몸에서 계속 나왔다’는 사실이 연달아 보도되면서 ‘북한 주민들은 고위급 자제여도 영양적으로 풍족하지 못한, 불쌍한 상태’라는 인상이 남게 됐다. 여기에 ‘병실에 걸린 태극기를 보고 안정을 취했다’거나 ‘한국 걸그룹을 좋아한다’는 식의 보도가 추가되면서 뉴스에는 ‘한국이 구제해 줘야 하는, 불쌍한’ 북한 군인의 인상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북한군 병사의 신상을 추측해 묘사하는 경향이 나타난 것도 문제다. ‘북한군은 키가 큰 편이고 다부진 몸매에 얼굴이 어느 연예인과 닮았다더라’는 식의 정보는 정확한 사실 없이 추측으로만 쓴 것이며, 철저히 흥미를 끌기 위한 가십성 정보다. 그러나 이런 정보가 통신사를 포함해 다수의 언론에 계속 오르내렸다. 정확한 사실만을 전해야 하는 언론의 본질에도 부합하고, 공익성에도 맞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이렇게 북한군 병사가 이미지화 되면서 그가 탈북해온 과정 자체도 현실과 거리감을 갖게 되었다. 이 북한병사가 왜 남측에 넘어올 결심을 하게 된 건지, 실제 북한 정세는 어떻고 북한군은 어떤 상황인지 등 충분히 확인할 법한 사실들은 묻히거나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은 것이다.
뛰는 빅데이터 위에 나는 저널리즘을 꿈꾸며뉴욕 타임즈에는 최근 ‘택시 잡기 좋은 장소’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과거라면 이러한 기사를 쓰는데 너무 많은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뉴욕의 교통상황을 분석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뉴욕 타임즈는 뉴요커들이 좀 더 빨리 택시를 잡도록 돕는 기사를 쓸 수 있었다. 방대한 양의 데이터 뿐 아니라 데이터들 간의 연관성을 찾는 작업 전체를 우리는 빅데이터라 부른다. 그리고 빅데이터 덕분에 언론과 기업들은 대중들이 원하는 바에 대한 정보를 좀 더 쉽게 얻을 수 있다. 빅데이터는 필연적으로 등장한 사회적 현상이고 많은 가치를 창출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중요성이 점점 부각되고 있는 추세다.그렇다면 저널리즘은 빅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가. 저널리즘은 빅데이터를 보조적 으로 활용해야 한다. 여기서 보조적으로 활용한다는 것은 빅데이터에서 읽은 대중들의 욕구에 맞춰 저널리즘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저널리즘에 담긴 메시지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빅데이터가 이용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이는 요즘 언론이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방식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요즘의 언론은 메시지의 의미를 명확히 하기 위해 빅데이터를 인포그래픽으로 제작하여 사용하고 있다. 언론의 이러한 빅데이터 활용은 바람직하다.물론 언론이 빅데이터를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얻는 이점도 있다. 위에서 언급한 뉴욕 타임즈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만약 빅데이터를 분석하지 않고 보조적으로만 활용했다면 뉴욕 타임즈가 실은 ‘택시 잡기 좋은 장소’에 대한 기사는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대중들의 욕구와 관심을 외면하는 기사는 애초에 대중들이 접근하려 들지 않기 때문에 언론이 대중들의 트렌드를 반영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그러나 빅데이터에 포함된 정보는 한계가 있어 이를 적극적으로 반영한다고 해도 대중들의 욕구를 온전히 파악하기 어렵다. 빅데이터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것이 주로 인터넷을 통해 구성되기 때문이다. 인터넷이 가지는 한계에 대해 생각하면 좀 더 편할 것이다. 인터넷은 특정 연령층이 주로 사용하여 전 연령층의 트렌드를 파악하기 어렵고, 희소성이 중요한 희귀 정보들은 인터넷으로 공유되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불의한 일들도 역시 인터넷을 통해서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언론은 정보를 접하는 불특정 다수를 염두하고 정보를 생산해야 하며 사회적으로 불의한 일을 취재해 보도해야 한다.빅데이터 자체의 진실성에 대해서도 의문이 있다. 사람들은 인터넷을 통해 실제 자신과 전혀 다른 사람을 마치 자신의 참 모습인 양 꾸미고 그러한 정보를 생산할 수 있다. 빅데이터의 중요 축을 담당하는 SNS와 같은 곳에서는 정치, 경제 등 특정 주제에 대한 생각을 노출하는 것이 기피되기도 한다. 즉 데이터 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사회와 실제 사회의 모습에는 괴리가 있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