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군사?전쟁과의 연계성전쟁은 정치와 아주 밀접한 관계에 있다. 그 예가 되는 수많은 역사적 사건들을 통해서 군사적 측면과 정치적 측면의 연계성을 알아보겠다.먼저 두 사건을 본격적으로 다루기전 전쟁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할 것이다. 전쟁은 인간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으며 오늘날에도 지구상의 곳곳에서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전쟁의 개념은 간단히 정의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전쟁이란 상당한 기간 상당한 규모의 군대에 의해 수행되는 정치집단, 특히 주권국가간의 갈등을 의미한다. 따라서 전쟁이란 국가와 국가 사이의 무력에 의한 싸움이며, 다양한 폭력적 충돌속에서 당사자의 일방은 국가이며, 전투가 조직적이고 지속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을 기준으로 한다. 전쟁의 주체는 기본적으로는 국가이며 전쟁이란 국가의, 국가에의한, 국가를 위한 무력 대립을 특징으로 하는 폭력의 발현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수많은 학자들이 전쟁과 정치의 밀접한 관련성을 지적하였다. 그들은 전쟁은 정치집단의 존재를 전제로한 집단 현상이지 개인간의 투쟁현상은 아니라고 하였고 그에따라 아무런 조직이 없는 투쟁은 전쟁이 아니라고 정의 해왔다. 그리고 전쟁은 무력투쟁이며 보통 어떤 무기와 장비를 가진 다수인의 단체와 단체사이의 투쟁이라고 주장했다. 전쟁의 규모는 근대국가의 형성 및 발전과 함께 확대되어 왔다. 제 1차 세계대전은 전선의 병사뿐만 아니라 후방 체제를 포함한 전 국민의 총력을 집결하여 싸우는 총력전이었고 또 제2차 세계대전에서 핵무기가 실전에 사용됨으로써 전쟁의 형태는 극한적인 양상을 띠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에 의해 추진된 핵개발이 주요 연합국인 소련에 대해 비밀리에 이루어져 결정적으로 균열이 발생하였고, 이것이 전후 미소 냉전의 출발점이 되었다. 전쟁의 수단에 있어서 무력의 행사가 전쟁의 필수요건으로 되어 있었으나 오늘날 국제법상으로 한 국가의 명시나 묵시에 의한 전쟁개시의 의사표시가 있을 경우에는 현실적으로 무력행동의 유무에 관계없이 전쟁 상태로 간주되고 있다.만에 이르는 인명 피해가 나타났으며, 세계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영역에도 커다란 변동이 나타났다. 전승국인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중국을 중심으로 1945년 10월 24일 국제연합이 창설되었으며, 전후 경제 질서의 회복을 위해 1944년 체결된 ‘브레튼우즈 협정’으로 달러가 세계의 기축 통화로 자리를 잡음으로써 미국 중심의 경제 체제가 성립하였다. 또한 1960년대까지 패전국의 지배 아래 식민지 상태에 있던 나라들도 상당수가 주권국가로 독립을 이루면서 국제 관계에도 큰 변화가 나타났다. 2차세계 대전 후 가장 큰 변화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기존의 유럽이 가지고 있던 국제적인 패권자의 지위를 미국과 소련이라는 두 강대국이 나눠가졌다는 것이다, 유럽국가들은 제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에서 자신들의 부와 자국의 젊은이들의 생명을 낭비함으로써 급속하게 과거의 권력을 상실해 갔다. 세계대전은 미국, 일본등이 참여 하면서 ‘세계대전’이라는 호칭이 사용 되었는데 거의 모든 전투와 파괴는 유럽에서 집중적으로 일어났다. 위에서 말했던 국제정치적 측면에서의 큰 변화도 유럽 국가들의 이러한 힘든 상황에서 발생하였다. 새로운 두 초강대국인 소련과 미국이 출현해 힘의 공백을 채워나갔고, 유럽의 제국들이 더 이상 타국들을 복종시킬 만한 힘을 가지고 있지 않게 되면서 유럽의 패권은 종식되어졌다.소련과 미국이 세계정치를 지배하게 된 상황은 그 이전과 매우 다른 종류의 체제를 만들어 냈다. 그것이 바로 미국과 소련 간의 양극경쟁 구도로 이루어진 정치체제였다.사실 이 두강대국은 히틀러와 대항해 싸우던 시기에는 연합하였고, 새로운 평화적 정치체제의 수립을 위해 협력할 것을 합의한 바 있다. 그러나 이 두 국가는 매우 상이한 정치적 철학에 기반하고 있었고, 정치적?경제적 목표에 있어서도 갈등요소를 내재하고 있었다. 1945년부터 1960년대까지의 소련과 미국 간 경쟁시기를 냉전시기라 부른다.냉전(cold war)왜 이시기를 ‘냉전‘이라고 부르냐면 양국이 상당한 적대감수 있다.탈냉전1970년대 중반까지 세계는 두 개의 주요 안보우산의 그늘 안에 지배 받는 매우 안정적인 체제로 볼 수 있었다. 소련 블록과 미국 블록간의 냉전을 통한 군사적 대립과 산업국가들 간의 경제적이면서도 정치적인 갈등이다. 그러나 30년간 안정된 체제는 주요한 변화를 겪으면서 새로운 세계질서의 지배이념을 낳게 되었다. 냉전종식과 더불어 출현한 미국 지배의 단극체제에서는 미국의 정치이념이 세계질서의 지배이념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었다. 개인의 자유와 존엄성을 존중하자는 범세계적 보편적 사상이 뒷받침하고 주요 선진국들이 예외 없이 국가기본이념으로 자유 민주주의를 선택하고 있는 정치적 현실이 미국의 정치적 지배이념인 자유민주주의가 세계질서의 지배이념으로 자리잡아갔다. 국가들은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자유롭게 파트너를 선정하면서 협력하고 서로 의존하는 상호의존이 심화된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리고 국가안보 우선순위가 경제우선순위로 급격히 변화하였다. 냉전시기에 있어서 가장 큰 소망은 미국과 소련과의 대결이 종식되어 핵전쟁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세계는 사람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평화의 시대가 아닌 오히려 더 많은 분쟁이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 탈냉전기에 들어와서 국제적 분쟁이 증가하는 이유는 국제체제의 구조상의 변화이다. 소련 붕괴 이후 양국의 한 축을 담당했던 소련이 붕괴된 이후 심각한 변화를 겪게 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에 대한 탈냉전기의 위협요인들은 핵과 이란, 이라크, 북한 등 소위 민주주의에 반하는 국가들에 의해서 생산되는 대량살상무기, 극단적인 민족주의, 종족, 인종, 테러리즘, 국제범죄 조직 등 위협 이 위협요인들로 지적되었다. 이러한 분쟁 중 테러의 대한 위협, 분쟁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다.테러리즘테러리즘은 조직적인 폭력사용을 사용함으로써 복종을 요구하고 특히 정치적 무기 정책으로 사용되는 것이다. 항공기 납치, 암살, 공중시설 폭파 등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형성하는데 강제, 협박, 위협을 통해 폭력국가정보를 컴퓨터 데이터베이스 화 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 정보화 시스템의 파괴는 국가기능을 일시에 정지시킬 수 있어 사이버 테러의 가능성은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테러리즘은 정부에 의해서도 이루어질 수 있고 비정부 행위자에 의해서 이루어질 수도 있다. 그렇지만 대게는 후자의 전략이다. 테러리즘은 사안에 대한 주목을 끄는데 효과적이다. 특히 무시되었을 만한 해결 불가능한 사안들에 대해 그렇다. 비교적 소규모의 집단들도 만일 그들이 극적이고 폭력적인 행위를 하고자 한다면 큰 이슈거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들의 전략이 항상 만족스러운 해결책을 주지 못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러리즘은 근대 정치에서 만연한 현상중 하나이고, 수년간 분쟁을 지속시키기에 충분한 지지자들을 얻도록 할 수있다. 이에대해 국제사회는 테러와의 전쟁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이들을 대처 해나가야 할지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오늘날의 핵문제(핵억지)핵 억지란 상대방이 보복 공격을 우려해서 핵 선제공격을 단념하도록 만드는 핵전력을 말하는 것으로 사실상의 핵무기를 의미한다.핵 억지를 평가하는 것은 어려운 일미여 언제나 논쟁을 야기한다. 핵억지에 대한 강력한 옹호자와 극단적인 비판자가 동시에 존재한다. 핵억지에 대한 증거와 논쟁은 여전히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이지만 이를 판단하는 것이 나름대로 가능하다. 체제 수준에서 핵억지는 종종 새로운 세계전쟁의 예방에 기여한 점을 인정받고 있으며 일부 분석가들은 세계가 핵억지 없이 살아가는 것을 감히 생각조차 할 수 없다 고 주장한다. 그 증거는 명백하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후 국제체제는 초강대국 간에 심각한 정치적 이념적 갈등을 경험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세계대전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핵 억지가 체제안보의 유지에 도움을 주었다는 점에 동의하고 있다. 오직 소수만이 이것이 부적절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진실로 핵 억지가 체제안보에 기여했는가가 의문이다. 이에 대한 비판자들은 3가지 점을 주장하는데 첫째로 제 2차 세 안전성을 상호파괴의 위험성과 함께 살아갈 것을 요구한다고 결심했다. 무엇보다도 이것은 정부로 하여금 새로운 절차를 도입하도록 했는데 이 절차에 따르면 핵무기는 워싱턴의 발사명령과 함께 미사일 발사장에 보내진 암호의 입력 없이는 발사될 수 없게 되었다. 이 절차는 상부의 승인을 결여한 독단적인 발사의 방지를 의미한다. 하지만 미국 군대는 안전하게 국가의 생존을 지켜야 하는 자신들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만약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 가능한 아주 신속하게 공격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거의 아무도 모르는 비밀계획에 의거하여 미군은 소련의 핵전력에 대한 공걱을 계획하였고 만약 통제관이 올바른 암호를 집어넣으면 대륙간 탄도미사일 및 다른 미사일이 발사되도록 하였다. 즉 미사일은 워싱턴에서 보내는 암호 없이도 발사 될수 있었다. 상호억지는 생각되었던 것보다 결코 안정적이지 못했다. “핵무기의 보유가 모든 국제사회의 안보문제를 해결해준 것은 아니다.”즉 “안정과 불안정의 역설”의 이론을 이야기 할 수 있다. 핵무기가 안정을 제공하는 상황에서 국가들은 핵무기 아닌 다른 방식으로 공격하여 허를 찌르며 핵보유국들은 더욱더 심한 안보불안 상태에 처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만약 억지가 분쟁상태의 국가들이 서로에 대해 엄청난 피해를 입히는 수준의 분쟁으로 악화되는 것을 방지 할 수 있다면 분쟁국가 각각은 낮은 수준의 전쟁은 자유롭게 벌 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논리이다. 안정은 예를 들어 억지 때문에 핵전쟁이 없는 상태는 분쟁당사자들로 하여금 대규모 재래식 전쟁을 통해 분쟁을 지속하게 만들 수 있다. 요컨대 억지는 재래식 전쟁의 차원에서는 불안정할 수 있다. 전략무기제한협상은 미소 두 초강대국이 보유하고 있는 가장 강력한 장거리무기에 초점을 두었다. 그 목적은 장거리 무기의 제한을 통해 양측이 각각 제 2차 공격능력을 보유하고 엄청난 피해를 입히는 보복을 가할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목표는 특히 위기사태에서 선제공격의 감행을 통해 승리를 도모하게 할 수 있는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