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okie를 활용한 해킹공격 관련 정의목록? Cookie 란?? Cookie 값 변조 관련 Tool1. Cooxie Toolbar2. EditThisCookie? Cookie 값을 이용한 해킹 기법1. XSS2. SQL Injection? Cookie 란?: 사용자가 특정 사이트에 방문을 할 당시에 생성되는 개인정보를 담은 "임시 파일"로 정의할 수 있다.쿠키는 초창기에는 사용자가 사이트를 재방문할 당시의 "편의성과 활용도"를 돕기 위해 만들어 졌지만,"사용자의 사생활을 침해할 수 있다."라는 문제점과, 웹 관련 해킹의 문제점을 부각할 수 있는데.쿠키는 탈취만 가능하다면 사용자의 '개인 신상'과, 그 와 관련된 웹 상에서의 행위들을 살펴볼 수 있고심지어 사용자 개개인의 기호(嗜好)까지 파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또한 심각한 보안문제를 유발하여 대규모 피해를 야기할 수 있는데, 때문에 "마이크로소프트는 인터넷 익스플로러 5.0 이상에서는 쿠키 거부기능을 첨가"①하였고, cookie를 암호화하는 방식으로 보안을 강화하고 있지만.이와 관련한 보안문제는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으며, 특히 고전적인 해킹수단으로 취급받는 SQL-Injection 공격으로 2017년 3월숙박앱(여기어때) 대규모 개인정보 탈취 사건②이 발생하는 등, 민감한 보안문제와 늘 연관이 되어있기 때문에 이와 관련한 보안을 강화하는 문제는모든 IT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숙제라 하겠다.①.네이버 두산백과 "쿠키[cookie]" 참조.②.2017년 3월 경에 숙박앱 (여기어때)에 SQL-Injection 공격이 가해져 사회적으로 큰 파장이 있었다.? Cookie 값 변조 관련 Tool1. Cooxie Toolbar: Cooxie Toolbar 프록시 설정, 쿠키 값 변조 이 두가지가 가능하다.검색창에 "Cooxie Toolbar"로 검색하면, 손 쉽게 다운이 가능하다.2. EditThisCookie: 크롬 플러그인인 EditThisCookie를 활용하여, 손 쉽게 Cookie값을 확인 변조가 가능하며,추가적으로 쿠키를 편집 및 보호, JSON 형식으로 불러오는 것도 가능하다.사용법이 매우 간단하여, 초심자도 조금만 익히면 쉽게 사용이 가능하다.? Cookie 값을 이용한 해킹 기법1. XSS? 개요- Cross Site Scripting 의 약자.- 웹 어플리케이션의 취약점을 이용한 해킹 공격으로, 권한이 없는 사용자가 악성 스크립트를 데이터에 의도적으로 삽입하여, 비(非) 정상적인 동작을 유발되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대표적으로 게시판'' 요소에 일반적인 텍스트가 아닌, 해커가 의도한 악성 스크립트 코드를삽입하여, 해당 게시글을 클릭 시 해커가 삽입한 악성 스크립트가 실행되어 개발자가 의도하지 않은비 정상적인 상황을 유발하여 사이트에 피해를 끼칠 수 있다.이에 해커는 악성 스크립트가 담긴 게시글을 클릭한 사용자의 쿠키를 탈취하여 지속적인 피해를 가할 수 있는데,이를 지속적인 공격(Persistent XSS)이라고 한다.악성 스크립트(XSS) 공격에 대한 대표적인 방어로는, 게시글 열람 시 특수문자("", "#")를 치환(replaceAll 함수를 활용한다.)하여 의도적인악성 스크립트가 적용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 있으며, 다양한 보안 관련 회사에서 제공하는 Anti XSS 라이브러리를 활용할 수 있다.또한, 지속적인 모의해킹을 통해 게시판의 웹 취약성을 지속적으로 점검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특징- 가장 많은 공격 대상이 되는 곳은 웹 게시판이며, 악성 스크립트를 유발할 수 있도록 게시글 클릭 시 "스크립트가 작동"할 수 있는 환경이어야 한다.- 한번의 악성 스크립트 공격으로 수 많은 피해를 야기할 수 있다.- 크게 XSS 공격 유형을 "비(非) 지속적인 공격(Non-persistent XSS)"과 "지속적인 공격(Persistent XSS)"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저장(Strored) XSS 또는 반사(Reflected)XSS 로도 구별할 수 있다.⑴⒧ XSS 공격과 대응방안 참조2. SQL Injection? 개요- DB로 전달되는 SQL Query를 해커의 의도대로 주입(injection)하여, 접근권한이 없는 해커가 원하는 DB정보를 탈취할 수 있다.Web Application에서 입력 받은 Parameter 값을 변조 후 인위적으로 삽입하여 비(非)정상적인 DB 접근을 시도하거나 SQL 쿼리문을재구성하여, 해커가 원하는 Data 정보와 그 외 해킹에 필요한 단서를 얻어낼 수 있는 막강한 파괴력을 가진다.특히 2017년 3월경에 숙박앱(여기어때)에 가해진 SQL-Injection 공격으로 개인정보 341만 건이 유출되었는데.⑴OWASP Top10에 첫 번째가 injection 공격으로 기재될 만큼⑵, 간단한 공격으로도 막대한 피해를 끼칠 수 있는
한반도 內의 이념대립-한미일 세력과 親중親북 세력, 북한의 대남전략을 중심으로-목차.Ⅰ.들어가는 말.Ⅱ.중국과 북한의 한일 양국에서의 공작.ⅰ)북한의 대남혁명 전략.Ⅲ.맺은 말.참고문헌.Ⅰ.들어가는 말최근의 한국의 상황은 우리가 일제로부터 해방이 된 후, 극심했던 ‘좌우대립’의 양상이 재현되는 듯하다. 그 핵심은 ‘한미일 삼각동맹파(三角同盟派)’와 ‘親북, 親중, 좌파세력’간의 사실상의 내전상황이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親북’, ‘親중’, ‘좌파세력’의 궁극적인 목표는 한국을 ‘한미일 남방(南方)삼각동맹’에서 이탈시키는 것이다.” 즉, 1948년 대한민국이 건설된 이후, 근대적 자유민주국가를 건설하는데 일조한 해양국가(미국, 일본 등)들과의 연대를 끊고, 다시 중국 중심의 조선왕조 시절의 전근대적인 대륙국가로 회귀(回歸)시키려는 것이다.필자가 한국 내에서, 反일, 反미 시위를 배후에서 획책(劃策)하는 세력을 알게 된 건, 2008년 ‘광우병 사태’였다. 사실상 광우병 사태는 MBC KBS의 과장, 왜곡, 날조 보도로 인하여, 광우병에 대한 공포감을 극대화 시키고, ‘친북 좌파 반미단체들이 조직적으로 개입해서 정국(政局)을 뒤흔든 사건이다.’ 그 당시, 10대 였던 필자도, 부끄럽지만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뇌에 구멍이 뚫려 죽는다.’라는 선동에 넘어가 ‘이명박 대통령을 탄핵시켜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 당시, 시위를 주도한 세력의 진짜 목적은 ‘정권퇴진’이었다.) 그러나 17년 오늘날까지도, 필자는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해서, “인간광우병”이 실제로 국내에서 발발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한다.’필자는 대한민국에서, 반미감정을 폭발시킨 사건이 ‘효순이 미순이 사건’으로 기억한다. ‘親북 좌파세력’들은,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치여 사망한 ‘효순이 미선이 사건’을 ‘미군에 의한 학살’이라고 국민들을 선동했다. ‘효순이 미순이 사건’은 ‘안타까운 사건’임에는 분명하지만, 엄연한 ‘교통사고’이고, 미군이 고의로 대한민국 국민을 학살한 사건이 아니었다.그러 4월의 총선거에서도 매스컴을 이용하여 보수파를 궁지에 몰아넣음으로써 국회 내에서도 친북좌파 세력이 과반수를 차지하도록 했다.”오늘날 한국은 反일, 反미 반한사관(反韓史觀)이 만연(蔓延)해 있다. 특히 10대 청소년들까지 심각할 정도로 ‘좌편향’되어있어, ‘대한민국은 태어나지 말아야 했던, 부끄러운 역사를 가지고 있는, “이게 나라냐!”라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듯하다.’ 가장 심각한 건, 국민들 사이에 ‘북한에 대한 인식’에 굉장한 혼란이, 우리 사회에 있는 듯하다.대한민국 헌법 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에서 볼 수 있듯이, 대한민국의 주권은, 북한정권이 불법적으로 점거하고 있는 한반도 ‘북반부’에 까지 미친다. 따라서, ‘김정은 정권’은 대한민국의 영토를 불법적으로 점거하고 있는, ‘반란단체’에 불과하다.또한 헌법 4조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에서 볼 수 있듯이, 대한민국이 지향해야 할 통일방안은, ‘자유민주적’ 통일 방안이라고 명확하게 선언하고 있다. “한국 대법원 판결도 ‘북한 지역은 (舊)대한민국 헌법 제4조에 의하여 대한민국 영토에 속하는 한반도의 일부를 이루며, 이 지역은 대한민국의 주권이 미칠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주권과 충돌하는 어떠한 주권의 정치도 법리상 인정될 수 없다’(1961년 9월 28일)고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헌법 3조와 4조에 의거해서, 북한정권은 우리가 ‘해체(解體)’해야 할 대상이고, ‘북한주민’은 북한정권의 ‘폭압(暴壓)’과 ‘억압(抑壓)’에서 해방시켜야 할 대상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국민들 사이에서는 북한이 ‘주적(主敵)’이라는 인식에 관하여 큰 혼란이 있는 듯하다.Ⅱ.중국과 북한의 한일 양국에서의 공작황장엽 선생은 북한의 대남전략에 관하여, ‘생전(生前)’에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金日成은 생전에 미국과 일본의 지원만 없으면 남한은 하루도 살 수 없다고 하면서 미 국날아가 버리는 가엾은 신세가 되고 만다는 것이다.황장엽 선생의 증언을 통해, 북한의 ‘대남전략’은 ‘한일’양국의 역사적 악연(惡緣)을 최대한 이용하여, 한일 양국의 국민들을 이간질하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일 양국은, 한국의 주한미군(駐韓美軍) 일본의 주일미군(駐日美軍)을 매개(媒介)로 사실상 ‘준(準)동맹’ 관계에 있다. 이에 대해 북한과 중국의 목표는 한일 양국의 연대를 방해하여, 한국을 한미일 삼각동맹에서 이탈시키는 것이다. 특히 중국은 1982년 중국군 해군사령관 ‘류화칭’이 설정한 ‘도련선’을 바탕으로, 미국에게 ‘아시아 문제에는 나서지 말라’라는 ‘아시아판 먼로 독트린’을 주장하면서, 한미일 삼각동맹 중 그 연결고리가 상대적으로 취약한 한국을 ‘親중국가’로 만들기 위해 공작을 해왔다. 특히 일본에서는, “中 공산당이 일본 내에 5만여 명의 간첩을 심어놓았고, 이들은 中 공산당 국가안전부(MSS) 해외공작담당부서 또는 中인민해방군 정보국의 지령을 받고 있다.”‘켄사쿠 토키토’ 기자에 따르면, 中공산당은 도쿄에 있는 중국 대사관을 중심으로 삿포르, 니가타, 나고야, 오사카, 후쿠오카, 나가사키의 영사관을 통해 일본 내 중공 간첩 네트워크를 운영하고 있다고 ‘재팬 타임스’는 덧붙였다.“ 특히 ”2015년 9월 일본 내 혐한 여론을 선도한 인터넷 매체 2곳이, 일본 국적으로 귀화한 ‘중국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바 있다.“ 이러한 정보를 매개로, 한국 내에서도 ‘중공 간첩이 최소 5만 명 이상 있을 것’이라는 개연성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ⅰ)북한의 대남혁명 전략.북한 김일성은, 6.25 기습남침(南侵)이 실패 이후, 칠레에 ‘아옌데 정권’이 들어서는 것을 보고, ‘대남적화(對南赤化)’ 전략을 ‘전쟁’과 ‘남한 내(內)에서의 선거를 통한 “합법적인 혁명”을 통해 취(取)한다는’ 양쪽의 전략을 모두 취한 것으로 보인다. 김일성은 1974년 5월 대남공작요원에게 다음과 같은 교시를 내렸다.칠레 아옌데의 경험은 선거를 통해서도 정권을 탈취할 수 있다는 충분한 심이 흔들리고 있다. 남조선 인민의 反박정희 감정을 잘 유도해서명망 있는 인물을 앞세운다면 국회에도 얼마든지 잠입할 수 있다. 지금부터는 對국회공작에서도 프락치分派 공작에 머물지 말고 의석을 확보하기 위한 공작으로 전환하지않으면 안 될 것이다.북한의 이러한 혁명전략(革命戰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이러한 북한의 대남전략(對南戰略)이 유감스럽게도 대단히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대표적으로, 자유한국당 전희경 의원이 지적한대로, 지금 청와대에는 상당수의 전대협 출신들이 진출해 있다. 한총련의 전신인 ‘전대협’은, 북한이 남한에 ‘혁명주력군’을 만들기 위해 조직한 대표적인 ‘주사파(主思派)’ ‘NL계열’들이다. 대한민국이 1987년 ‘6월항쟁’ 이후, ‘민주화’의 큰 성과를 거두었지만, 북한의 지령을 받은 ‘주사파’들이 활동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준 것도 사실이다.‘NL계열’들은 한국을 ‘미제국주의’에 의해 종속된 국가로, 한반도에서 북한을 정통성이 있는 정부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80~90년대에 캠퍼스를 기반으로 해서, 혁명투쟁에 나섰고 ‘舊소련’이 붕괴된 이후에도 세력이 약화됐지만,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대한민국에 암약(暗躍)하고 있다. 80년대의 연세대에서 열린 집회에서 당시 학생들은 ‘가자! 축전의 도시 평양으로’라는 구호를 외치며 학생회에서 준비한 전단을 살포했다고 한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애국의 화신, 문익환 목사는 평양 방문을 통하여 45년간의 분단의 벽을 허물고 자주적교류를 단호히 수행하여 자주 평화 민족 대단결의 조국 통일 원칙을 내외에 널리 알리는쾌거를 이룩했다. 그러나 민족 분열주의자들은 문익환 목사의 방북 성과를 인정하기는커녕, 대대적인 반공 반북소동을 일으키면서 북의 동포와의 모든 만남을 터부시하고애국민주세력에 대한 초토화 공격을 가하고 있다. 현재의 반공반북(反共反北) 책동을분쇄하는 것은 우리 백만 학도에게 주어진 의무이다. 내외의 민족 분열주의자들의반통일적(反統一的) 책동은 궁지로 몰리고 있으며 정부의 창구 단일화쟁의 광장을 향하여 나아가자!지금 보면, 6.25전쟁을 일으킨 원흉(元兇) ‘김일성’과 ‘스탈린’에 관해 책임을 묻는 내용이 전혀 없고, 북한에서 일어난 경제파탄, ‘고난의 행군’ 당시 ‘대량의 아사자’를 낸 북한의 현실에 관해 한마디 언급조차 없어, 터무니없는 내용으로 보일 수 있지만, 당시 ‘386세대’들에게는 “‘북한정권’이야말로 민족의 ‘정통성’을 갖춘 국가”라는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얼마 전,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사람의 생각은 바뀌기 아주 힘듭니다. 담배 끊기보다 더 힘듭니다.”라는 말을 했는데, 과거 대학교 캠퍼스를 기반으로 ‘주사파’활동을 했던 386세대들 중에서 ‘과거 자신의 사상은 잘못되었고, 더 이상 “김일성 주체사상”을 신봉하지 않습니다.’라고 전향한 이가 얼마나 될지 개탄스럽다.Ⅲ.맺은 말.앞에서도 말했지만, 북한은 대한민국을 적화(赤化)시키기 위해, ‘전쟁’과 ‘남한 내에서의 지하조직을 결성하여 혁명투쟁’에 나서는 두 가지 방법을 구사해왔다. 김일성은 6.25전쟁에서 실패한 원인을 ‘미국의 개입’과 ‘남한 내(內)에서의 지하혁명 조직이 부재(不在)함’을 들었다.남조선 안에 혁명 세력이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혁명의 승리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우리는 이미 경험했습니다. 조국 해방 전쟁 때 남조선 사람들이 적의 후방에서 폭동을일으키고 인민군의 진격에 호응해서 싸웠더라면, 우리는 적을 철저하게 타파하여 이미조국 통일을 달성했을 것입니다. 그 후에도 남조선의 혁명 세력이 강화되어 있었더라면,남조선 혁명의 승리를 재빨리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적지 않았습니다. 문제의 핵심은남조선 인민 스스로 혁명을 위해 투쟁의 불꽃을 높이 태워 올리도록 하는 데에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우선, 혁명의 주력군을 다지는 일이 중요합니다. 혁명의 주력군이란혁명에 동원될 수 있는 기본 계급과 그 속에 깊이 뿌리를 내린 마르크스, 레닌주의 당을의미합니다. 마르크스, 레닌주의 당의 지도 아래, 사회의 기본 계급인 노동자와 농민이동원되어야만 혁명이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의를
임진왜란의 전쟁상황과, 충무공(忠武公)의역할에 관하여Ⅰ.전쟁의 배경.1592년 (선조 25)에 발발한, 임진왜란은 1910년 ‘한일합방’과 더불어, 한 일 양국의 국민감정을 악화시킨, 비극의 전쟁이다. 더불어 조선왕조가 개국(開國)이래 지속되어 왔던, 조선과 일본의 선린우호(善隣友好)관계를 무너뜨린 전쟁이기도 하다. 종전(終戰)이후에는, 동아시아의 패권(覇權)의 자리가, 명나라에서 후금(여진족)에게 넘어간, 한 지역의 국제질서를 개편(改編)한 중대한 사건이었다. 그 당시, 일본은 ‘오다 노부나가’의 뒤를 이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100여 년 간의 전쟁과 혼란을 수습하여 전국을 통일하였다. 명나라는 영락제(1402~1424) 사후(死後), 환관 왕진이 실권을 잡아 나라가 큰 혼란에 빠졌고, 토목의 변(1449년) 당시 ‘정통제(1435~1449)’가 오이라트 족의 포로가 되어 사실상 중화국(中華國)으로서의 체통을 잃었다. 또한 16세기 중반에 왜구가 중국 남부해안에 큰 피해를 입혔고, 북쪽에서는 몽고족인 ‘타타르 부’가 국경선을 침범(侵犯)해 명나라의 국력을 크게 약화시켰다. 이를 ‘북로남왜’라고 하였다.국제정세가 급박한 와중에 조선은 일본의 실상과,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황윤길을 통신사로, 김성일을 부사로, 그리고 허성을 서장관(書狀官)으로 임명하여 일본에 파견했다. 1591년 음력 3월 통신사 편에 보내온 히데요시의 답서에는 정명가도(征明假道)의 문자가 있어 그 침략의 의도가 분명하였으나, 통신사와 부사의 의견은 일치하지 않았다.” 나라가 위급한 와중에 조선조정에서는, 동인과 서인끼리 파벌을 지어 ‘당파싸움’을 한 셈이었다.일본의 조선침략은 두 가지 이유로 볼 수 있다. 첫째, “일본 통일과 더불어 공을 세운 다이묘들에게 공으로 땅을 나누어주어야 했는데, 일본의 땅만으로는 부족했기 때문이었다.”둘째, “100여 년 간의 내란으로 황폐해진 일본은 식량이 크게 부족하여 3포를 통해 조선에서 식량을 수입했다. 그 대가로 막대한 은을 조선에 지불하여야 했는데, 이는 일본 경제에 큰 부담이 되었다. 더욱이 3포 왜란 이후 조선은 일본과의 교역량을 반으로 줄여 버렸고, 명나라 또한 ‘영파의 난(왜인들의 난동 사건)’이후 일본과의 교역을 끊어 버렸다.” 즉, 일본은 전국시대 이후, 내부적인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외부로 칼끝을 돌린 것이라 볼 수 있다.이러한 과정에서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였고, 2차 침략은 ‘정유재란’이라 부르기도 한다.Ⅱ.이순신의 활약.일본은 부산과 동래성 한양을 20여일 만에 함락시킨 후에, 성공에 도취한 나머지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른다. 하나의 전역(戰域)에서는 지휘관을 일원화(一元化)시켜야 하나, 두명의 지휘관으로 군(軍)을 두 갈래로 나누어 북진한 것이다. 그 당시 히데요시는, ‘고니시 유키나가’에게는 1군(軍)을 맡기어 서부로 진격하게 하였고, ‘가토 기요마사’에게는 2군(軍)을 맡기어 동부로 양분하여 북진(北進)을 시켰다. 전투 지휘관들끼리 경쟁을 시킨 셈인데, 둘 사이가 좋을 리가 없었고, 상호협조는 안 될 것이 예견되었다. 마찬가지로 6.25전쟁 당시 ‘맥아더 원수’는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에 도취되어 군(軍)을 양분(兩分)하여 북진을 하게 했는데, 당시 상황을 ‘백섭엽 장군’은 다음과 같이 회상하였다.이즈음 나는 군단사령부 미군 장교들로부터 왜 10군단이 8군 지휘 하에 있지 않은 지불안스럽게 수군거리는 소리를 자주 들을 수 이었다. 하나의 전역(戰域 theater)에는한 명의 지상군 사령관commander이 있어야 하나 이때는 두 명의 지상군 사령관이있어 상호 협조가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맥아더 유엔군 사령관은 독자적 판단에따라 험준한 낭림산맥의 동서를 분리 지휘했고, 결과적으로 작전에 실패함으로써전술가들의 비판을 한 몸에 받게 됐다.이러한 일본군의 무리한 북진(北進)은, 전쟁을 속전속결(速戰速決)로 끝내려는 움직임을 반영한 듯하다. 이는 전쟁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히데요시가 자신의 어머니에게 쓴 편지에서도 엿볼 수 있다.어머님, 우리 일본군은 곧 조선을 완전히 정복할 것입니다. 이번 추석이 되기 전에명나라의 수도까지도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결혼과 가족의 의미에 대해 각자의 관점에서 서술한 내용.기독교 성서의 가치관을 중심으로 결혼과 가정에 대해서 정의.결혼이라는 것은, 대한민국 헌법 36조 1항[①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에 정의되어 있듯이, 남녀 1쌍의 ‘정신적’,‘육체적’ 결합을 “결혼”,“가족(가정)”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와 같은 기준은 ‘기독교 문명’의 영향과 무관하지 않다. 성경 창세기에는, 하나님이 아담을 처음 창조하시고, 후에 짝이 없는 아담을 위해 그의 갈비뼈로 하와를 만들어, 배필로 삼아주시는 내용이 나온다. 즉, 하나님께서는, 남녀 1쌍을 결합을 이루어 가정을 이루게 한 것이다. 초대대통령(이승만 대통령)께서 미국에서 수학受學을 하셨고, 구한말 백성들의 윤리의식을 계몽하고 정치사회적 무질서나 폐단을 개선하기 위해 ‘기독교 교화론’을 주장하신 부분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이와 같은 대통령(이승만 대통령)의 사상적 배경은, 대한민국의 정치 문화 사회제도에 큰 영향을 끼쳤다.(단 종교는 국민을 교화하고 계몽을 시키는데 집중하고, 정치와 결탁하면 부패할 염려가 있으므로, 政敎는 분리한다.) 대통령의 저서 독립정신에서는 “윤리적 도덕적 기준을 위해서, 종교는 필요하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말하는 “도덕적 윤리적 기준은 ‘기독교 윤리적 가치관’을 말한다.” 이를 바탕으로 해서, 사회는 가정과 교회가 근간이 되어, 근면하고 성실하게 일을 하여 벌어들인 ‘근로소득’통해, 아이를 양육 교육하여 “자유시민”으로 성장을 시킬 책임까지 지고 있는 것이다. 즉, 가정이란 사회의 최소단위의 ‘사회기관’으로서, “ 중추적”역할을 맡고 있다. ‘가정이 무너지면 사회가 무너진다’라는 말도, 이런 개념에서 파생되어 나온 말일 것이다.정리하면 오늘날의 가정의 형태는,“서구의 기독교 문명”에 바탕을 두고 있다. 가정은 사회의 독립기관으로서, 가정의 연합을 사회라고 정의할 수 있으며, 그 확장을 ‘국가’라고 할 것이다. 가정은, 이처럼“사회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에 근간이 되는 혼인제도는, 반드시 “남녀 1쌍의 결합”이어야 한다는 것이다.현대사회의 가정의 다양화‘多樣化’ 의 문제점.필자筆者가 이 글에서 말하고 싶은 부분은, ‘대한민국은 기독교 성서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건국이 된 국가라는 점이다.‘ “2007년 아프간 인질사태 때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탈레반이 한국 크리스천을 납치했을 때 원인을 한국은 자본주의, 민주주의, 기독교 이념으로 발전한 국가의 모델이기 때문이라며 한국을 칭찬했다.” 동성애, 이슬람 등을 한국사회에 받아들이자는‘ 주장은, 우리 안보상황과 비추어 볼 때, 심도 있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공산주의, 이슬람 전체주의(全體主義) 세력들은 과거부터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의 ’표현의 자유‘, ’다양성‘등을 이용하여, 사회의 ’분열‘, ’반목‘, ’갈등‘을 획책한 것은 이미 오래 알려진 사실들이다. 레닌이 과거 서구의 좌파 지식인들을 향해, ’쓸모있는 바보들(Useful Idiots)이라고 한 사실은 세간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근래近來에는 우리사회에서, “다양한 ‘성적지향’을 지향하는 이들에게도‘가정’이라는 ‘법적지위’를 부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제법 있다. 대표적인 예가 ‘동성애’와 같은 성적 소수자들에게도 ‘가정’을 이룰 수 있는 법적권한을 요구하는 목소리다. 성적 소수자는 포괄적 개념으로 “동성애, 시체성애자, 아동성애자, 근친, 수간행위”다양한 성적지향을 포함한다. 우려되는 부분은, 개개인의 다양한 성적지향이 사회의 “도덕적 윤리적 판단 기준”이 되면, 공동체는 ‘도덕적 타락’과 ‘사회적 책임의식의 부재’로 인해 사회의 기강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이다. 거대한 제국을 건설했던 로마가 ‘도덕적 타락’과 로마시민의 ‘책임의식 부재’로 인해, 제국이 멸망한 사례가 대표적인 사례다. 독일에서는 개와 수간을 할 수 있는 공창제가 있고, 영국에서는 동성애가 합법화 된 후에, 자신이 기르는 애완동물과 결혼을 하겠다는 사례까지 있다. 특히 미국에서는 ‘케네스 피니언’이라는 “젊은 남성이 숫말과 수간행위를 하다, 사망을 한 사건을 계기로 ‘수간금지법’을 제정을 한 사례”는 우리가 유념해서 살펴봐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된다.자유시민들의, 자유의 방종(放縱) 책임의식 부재로 인한 가족의 사회화, 다양화는 반드시 대가를 치를 것이다.자유시민들은, 자유와 질서는 대립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양립(兩立)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외부의 전체주의 세력들은, 자유진영을 무너뜨리기 위해, ‘자유시민’들이 자유를 방종하게끔 부추겼다. 이런 점에서 알버트 시드니 헐롱 주니어 (Albert Sydney Herlong . Jr) 미 상원의원의 ‘공산주의자들의 45가지 공산화 전술’은 주의깊게 살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25, 포르노 영화, 외설서적, 외설적 TV 및 라디오 방송 등 외설산업을 확산시켜 사회의 도덕 기준을 무너뜨린다.26, 동성애, 변태성교 및 난교 등의 행위를 일반적이고, 자연스럽고 건강한 성생활인 것처럼 선동한다.40, 가족을 하나의 사회기관으로 전락시킨다. 이를 통해 성적타락과 이혼을 부추긴다.가정의 ‘사회화(社會化)’, ‘다양화(多樣化)’는, 사회의 도덕적 타락을 야기하고, 반목, 분열을 조장하기 위해, 이를 부추기는 외부의 적(敵)들이 존재해 왔음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모든 시발(始發)점이 우리가 자유의 한계에 대해, 깊은 숙고熟考없이 무분별하게 자유를 확장하게 된데서 시작한다. 굳이 기독교적 가치관을 기준으로 살펴보지 않아도, 결혼과 가정을 “남녀의 평등을 기초로 한 남녀1쌍의 결합이다”라고 정의하고, 제도로 정비가 된 것은, 인류가 과거에 쌓아올린 지혜와 경험이 ‘농축’되어 있는 결과물 이라할 것이다. 즉, 가정을 ‘일부다처제’, ‘일모다부제’‘동성애’등 다양한 형태로 이루는 것보다, 1남1녀의 결합으로 정의하는 것이,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하고, “결혼이 성욕을 해소하는 것처럼, 자본주의는 인간의 탐욕을 해소한다.”라는 말처럼, 안정된 사회를 우리가 지향 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우리 사회가 무분별한 성적지향으로 인해 ‘도덕적 타락’에 빠진다면, 성경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게 될 것이다.
미국의 민주주의Ⅰ.들어가는 말_1Ⅱ. 미국의 민주주의를 견지堅持해 주는 요인._3ⅰ) 지리적인 요인._3ⅱ) 종교적 요인._5Ⅲ. 미국인들의 기업가정신_7ⅰ) 노예제도가 남부의 관습에 미친 영향._7ⅱ) 미국인들의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_9Ⅳ. 결론._11참고문헌._12Ⅰ. 들어가는 말.미국은 명실상부 자타自他가 인정하는 세계 패권국(覇權國)이자, 민주주의의 모범적인 수범(垂範)이 되는 국가이다. 군사력에서는, “미국의 해군력은 규모 면에서 세계 2위부터 17개국 해군력을 모두 합친 것과 같을 정도로 압도적인 세계1위”이고, 미국은 이러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2차 세계대전 중 ‘대서양 헌장(1941)’을 통해 전후(戰後) 세계질서를 개편(改編)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래서 “미국을 ‘자유주의 제국Empire of Liberty’ 혹은 ‘자유주의를 위한 제국Empire for Liberty’ 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사람도 있다.”하지만 19세기 까지만 하더라도 “미국은 대규모 상비군을 보유하지 않았고, 1880년대에는 미국 해군의 규모는 칠레 해군보다도 작았다.” 국제무대에서도 조지워싱턴 이래 ‘고립주의’ 정책을 고수하며, 의미 있는 역할을 하지 못했다. 오히려 미국은 남북전쟁(1861~65)을 겪으며, 한 때 연방이 분열될 위기를 맞기도 했다. 미국이 국제무대에 본격적으로 나선 시기는, “자본주의 경제제도를 본질적으로 부정하는 혁명국가 소련이 2차 대전 이후 막강한 강대국으로 국제무대에 등장한 이후이다.” 그 이전까지는, 미국은 전 세계에 상품을 팔기 위해 시장을 개척하는 일에만 몰두하였다. 이러한 미국이 성숙된 민주주의와 함께 세계 패권국으로 성장한 요인을, 토크빌의 저서(著書) ‘미국의 민주주의’ 에서 찾아내는 것이 필자의 목표다. 필자筆者는 저자의 책 속에서 두 가지 이유를 꼽는다.첫째, 미국은, 지리적으로 유럽대륙과 ‘바다의 차단성’으로 인해 ‘국가안보’가 보장되었다. 즉, 이웃에 강력한 적(敵)이 존재하지 않았다. 미국의 지리상의 이점에 관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멀리 떨어진 유럽에서 일어나는 문제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미국은 건국의 아버지 조지 워싱턴의 가르침을 물려받아, ‘고립주의’ 정책을 건국 이래 고수해 왔다. 윌슨이 1차 세계대전에 개입하여 전후(戰後) 국제연맹을 창설하여, 세계질서를 개편(改編)하려 했던 시도가 상원의 비준(批准) 거부로 무산된 까닭도 “조지워싱턴 대통령 이래 지속되어온 고립주의원칙에 위배된다는 것이 미국 의회의 생각이었다.” “1930년대 미국이 채택한 고립주의는 유럽의 일에 또 다시 개입하지 못하도록 입안된 여러 다양한 법률에 명시되어 있었다.”이러한 배경으로, 이웃에 강력한 적(敵)이 존재하는 유럽 국가들과 비교해서, 미국은 자국 내의 폐단과 악습에 관하여 여유롭게 대처할 수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로 토크빌은 필라델피아에서 ‘모든 범죄는 독한 술을 남용’함으로써 일어난다고 정치가들에게 지적하다 그들로부터, 다음과 같은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시간에 맡겨버리시오. 그러면 폐단을 경험한 국민들은 자신들의 진정한 이익을 깨닫게 됩니다.” 토크빌은 민주정치의 약점은, 실수를 할 가능성은 높지만, 반대로 쌓은 경험을 토대로 진실에 가까워질 수 있음을 언급한다. 하지만, “수많은 나라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실수의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에 멸망할는지도 모른다.”라고 말하며, 미국만이 가지고 있는 지리상의 이점을 다시 한 번 부각시킨다.또 다른 이점은, 미국에서 연방제도(聯邦制度)를 가능하게 했다는 점이다. 연방제도란, 국가의 권력을, 연방정부와 주(州) 정부, 지방 정부가 나눠가지는 것을 말한다. 건국자들은 “연방정부를 입법부와 행정부 사법부로 나누기도 했다.” 매디슨은, 국가권력의 ‘견제’와 ‘균형“을 위한 제도의 취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천사가 인간을 다스린다면 정부를 통제할 외부적인 장치도 내부적인 장치도 필요하지않을 것이다.매디슨의 “야망에는 야망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말처럼, 건국자들은 권력기관들의 대립과 경쟁 속에서 인민을 억누르는 ‘억압자’가 계약’을 맺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미국 해안에 첫 발을 디딘 102명의 청교도인들로 인해 미국에서는 2가지의 독특한 정신이 생겨났다.첫째, 미국인들은 인간은 모두가 ‘평등’하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독립선언문에도 볼 수 있듯이,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생명Life', '자유Liberty', 행복의 추구’pursuit of Happiness'는 창조주에게 부여 받은 양도할 수 없는 권리”라고 토머스 제퍼슨은 선언하였다. 창조주가 보기에는, “모든 사람이 인간이라는 똑같은, ‘도덕적 가치’를 지닌 존재로 보였다.” 즉, 미국에서의 자유란, 특권(privilege)계급을 가진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부여하는 ‘인위적 자유(人爲的自由)’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인류의 죄(罪)를 대신하여, ‘율법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주 신 것과 같이” 기독교에서의 자유란, 그리스도께서 주신 천부(天賦)의 자유(自由)를 의미한다. 이로 인한 다른 국가에서 볼 수 없는 미국의 독특한 특징은,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였다. 그래서 그 당시 미국인들은, 유럽의 귀족사회에서 주인이 하인을 대하는 방식을 이해하지 못했다. 귀족사회에서는 “주인은 그의 하인들을 자기 자신의 열등하고 부차적인 부분으로 간주하게 되고 최대의 이기심에서 하인들의 운명에 가끔 관심을 갖는다.” 토크빌은 이와 관련한, 미국인들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옮겼다.아메리카합중국에서는 그런 사람들을 결코 찾아볼 수 없었다. 아메리카인들은 그런 류의사람들에 익숙해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런 사람들이 존재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거의 불가능하다. 우리가 로마시대의 노예나 중세의 농노가 무엇인지 깨닫는 것보다아메리카인들이 그런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 더 어렵다. 이런 모든 사람들은 정도야다르지만 사실은 같은 원인에서 생겨난 결과인 것이다. 그들의 생각은 우리와 아주 다른것이며 그들을 생겨나게 했던 사회적 조건과 함께 아득한 과거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오늘날에도 “미국은 종업원에게 마치 그렵다’라는 말을 시대상황을 들어 설명한다. 그 당시 로마의 부유층(富裕層)은 ‘약탈’과 ‘수탈’을 통해, ‘비(非)정직’한 방법으로 재물을 쌓아올린 타락한 계층이었다. 즉, 막스 베버가 말한, ‘투기적 자본주의’의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겠다. 칼뱅은 여기서 ‘정직(正直)’의 덕목을 강조하며, ‘정직한 방법으로 모은 재물은 죄(罪)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즉, ’사기‘, ’약탈‘을 통해 재물을 모을 것이 아니라, ’정직‘한 방법으로 “누구나 ’근면‘, ’성실‘하게 노동을 하여 부자가 될 것을 강조하였다.” 이것이 막스 베버가 말한 ’합리적 자본주의‘ 즉, ’자본주의 정신‘이었다. 자본주의 정신은 중세시대의 로마 교황청과의 “급진적인 단절을 통해 형성된 윤리적 색채를 띤 생활 관리의 격률이었다.”막스베버의 저서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나와 있듯이, 종교개혁으로 인해 탄생한 새로운 노동윤리는, 서양에서만 ‘근대적 자본주의’가 탄생한 배경이 되었다.토크빌도 “아메리카해안에 상륙한 최초의 청교도 속에 아메리카의 운명이 구현되어 있었다.”라고 말했다.오늘날 아메리카 사회는 신세계의 황무지를 공동개발하기 위해서 설립되어 사업번창에바빠진 모험가들의 회사와 같다. 아메리카인들을 가장 깊숙이 움직이고 있는 감정은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상업적인 감정이다. 오히려 그들은 사업습관을 정치생활에 도입하고 있다고 할 만하다. 그들은 사업융성의 기초가 되는 질서를 애호한다. 또한 그들은사업의 확고한 기초를 이루는 규칙적인 행동에 특별한 가치를 부여한다. 그들은 엄청난재산을 모으는 상식을, 재산을 흐트러버리는 일이 흔한 사업재능보다도 높이 평가한 다._379)미국은 이와 같이 ‘부를 창출’하는 노동윤리를 발전시킴으로써 성장한 국가이다. “미국은 전 세계에서 특허와 저작권에 헌법적 지위를 부여한 유일한 국가일 것이다.” 오늘날의 셰일혁명Shale revolution 또한 미국인들의 부(富)와 혁신을 향한 집념, 즉 기업가 정신에 기반을 둔 것이다. 이러한 ‘기업가 정신’을 지, ‘시장에서의 혁신과 파괴’로 인한 ‘기술발전’을 통해, 상품을 ‘교환’ ‘거래’를 하는 이윤창출의 방식으로 충족시켰다. “자본주의는 결혼이 성욕을 교화하듯이 똑같은 방법으로 탐욕을 교화한다.”라는 말처럼, 미국인들은 탐욕을 건설적인 방법으로 충족시켜 인류문명에 기여하였다. 그들은 좋은 상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였고, 비용절감을 위해 목숨까지 걸었다.아메리카인들은 프랑스인들이 정복을 위해서 한 일을 비용절감을 위해서 하고 있다.유럽선원은 신중하게 항해한다. 그는 날씨가 호조일 경우에 한해서 항해한다. 만일 예측하지 못한 일에 부닥치면, 그는 항구로 피한다. 밤에 그는 돛의 일부를 접어놓는다.흰 물결이 일어나 육지가 가까워졌음을 알리면 자신의 항로를 점검하고 해의 위치를관측한다. 아메리카 선원은 이와 같은 예비를 등한히 하고 그런 위험들을 무릅쓴다.그는 폭풍우가 지나가기 전에 닻을 올린다. 그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바람부는 쪽으로돛을 펴놓는다. 폭풍우로 입었을지 모르는 파손을 항해하면서 보수한다. 마침내 종착지에 가까워지면 벌써 항구를 찾아낸 듯이 해안으로 질주한다. 아메리카인들은 가끔 파선을 당하기도 하지만 그들만큼 빨리 항해하는 업자도 없다. 그래서 같은 거리를 더 짧은시간 안에 항해하기 때문에 그들은 더 싼 비용으로 항해 할 수 있다. 유럽인 항해자는오랜 항해 동안에 여러 다른 항구에 기항한다. 그는 입항하거나 아니면 항구를 떠나려고순풍을 기다리는 데 귀중한 시간을 허비한다. 또한 그는 항구에 머무는 데 드는 기항료를 매일 지불한다. 아메리카인은 보스턴을 출발하여 중국에서 차를 구입한다. 그는 광동에 도착하여 며칠간 그곳에 머물다가 돌아온다. 2년에 못 미치는 시일 안에 그는 지구의한 둘레를 모두 항해하지만 육지는 한번밖에는 보지 못한다. 8~10개월 걸리는 항해기간동안에 그는 소금기 있는 물을 마시고 소금에 절인 고기를 먹고 지내는 것이 사실이다.또한 그는 끊임없이 바다, 질병 및 권태와 싸워야 한다. 그러나 돌아오면 그는 차 1파운드를 영국상인보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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