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서피해자 김 0 0피의자 이 0 0위 피해자는 20XX.XX.XX. ZZ시경 서울 000구 00동 000 앞에서 발생한 차량 파손 사건(재물손괴)과 관련하여, 합의금으로 _원을 정히 수령하고 피의자와 원만한 합의를 하였습니다.따라서 피해자 김00은 이 사건에 대하여 앞으로 어떠한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임은 물론, 민·형사상의 소를 제기하지 않을 것임을 확약합니다.피의자와 원만한 합의를 하였기에 피해자 000은 피의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으므로, 후일 이를 증명하기 위하여 본 합의서에 서명 날인합니다. 이 사건에 대해 부디 피의자의 앞날을 생각하여 법이 허용하는 최대한의 선처를 하여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답 사 보 고 서제 목시흥시 죽율동, 타임머신을 타고 슝슝~!답사 일시2017.04.23답사 장소죽율동(한배미 마을), 생금집답사 목적-죽율동, 한배미 마을의 유래와 삶의 흔적을 찾아보자-생금집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듣고 탐구하자채록자 정보00과 000구연자 정보생금이 000, 죽율동 주민내 용경기도 시흥시, 내가 21년 간 살아온 나의 고향이다. 오랜 기간 이 곳에 머물렀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어떻게 해서 생겨났고 조상님들이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 이에 관해 깊이 고심해보고 탐구한 적이 없었다. 정왕동? 거모동? 포동? 등 시흥시에는 여러 동이 있지만 그 중 ‘죽율동’이 나의 눈을 사로잡았다.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기도 하고 말로만 들어왔던 생금집이 있는 동네라 하여 답사 장소로 지정하였다. 설레는 마음으로 떠난 죽율동은 아무래도 마을이다 보니 교통편이 원활하지 않고 한창 개발 중이라 땅이 울퉁불퉁하기도 하여 다소 험난했다. 하지만 그만큼 도시에서는 들을 수 없는, 값진 이야기들을 많이 듣고 와 더욱 기억에 남는 죽율동이다.◆ 한배미마을, 옛 풍습을 느끼다!답사를 하기 전, 죽율동의 유래에 대해 알아보았다. 조선시대 이곳에 대나무와 밤나무가 많아 ‘대밤’이라 했는데 후대에 내려오면서 ‘대암’이 됐다고 하며 근래에는 ‘댐’이라 불리기도 한다고 한다. 한배미라고 부르고 있는데 이는 일제 때 일본인들이 작명한 것이라 한다. 구술자료를 얻기 위하여 지나가는 여러 주민분들게 여쭤보았다.?Q : 죽율동이나 한배미마을의 유래, 전설, 풍습 등에 관하여 아시는 것이 있으신가요??A : 6·25전쟁 나고 군자 죽율동으로 피난을 갔어. 해변가라 육지인 얼미 마을 보다는 피해가 덜 할 거라 생각한 거지. 그때 다들 죽율동을 ‘대미’나 ‘댐’으로 불렀어. 해변가니까 대나무나 밤나무 같은 그런 나무가 많지는 않았지.A : 대나무랑 밤나무가 많은 마을이라 옛날부터 죽율이라고 부른 걸로 알고 있어요. 댐이라고도 불렀고요. 죽율동엔 세 마을이 있는데 첫댐, 큰말, 새말이에요.?A : 그건 잘 모르지만 이 마을이 대장간마을이라고 부른다고도 해요. 여기 유명한 대장간이 있었거든요. 대장하는 할아버지께서는 김태환?할아버지신데 돈도 무척 많이 벌었다고 해요. 한 30년 전에 돌아가신 걸로 알고 있어요. 그 분 대장간을 댐대장간이라 불렀는데 소발에 씌우는 편자를 많이 만들어 새벽에 소가 무척 많이 왔다고 해요. 대장간이 아직 있다면 보여드리고 싶은데 그분 돌아가시고 사라졌다고 들었어요.A : 우리 마을 뒷산엔 ‘동녘재’라는 산이 있어요. 거기 당나무 아래서 고사를 지냈었다고 해요. 흔히 말해서 돼지 잡고 잔치 하고 무당이 굿판을 벌이는 그런 것? 아주 큰 잔치를 했다죠. 지금도 저기 보이면 나무가 아직 있어요.?A : 나 어릴 때는 우리 마을에서 뒷동산에서 대보름날 달맞이를 했어요. 군자봉 아래쪽으로 달이 떠오르면 비가 많이 와서 풍년이고, 군자봉 위쪽으로 달이 뜨면 가물어서 흉년이 든다고 했어요. 또 우리는 이 때 새해 소망을 기원했지.A : 전설을 찾는다면 생금집에 가봐. 생금집이 얼마나 부자였는지 알아? 마을 근처 어디를 가더라도 남의 땅을 안 밟고 다닐 정도로 땅이 많았대.◆ 전설 속 황금 닭을 만나다!한배미 마을 근처에는 시흥시 향토유적 제 7호인 생금집이 있다. 생금집은 말 그대로 풀이하면 금이 생기는 집이다. 과연 사실일까? 금이 어디로부터 나올까? 이름에서부터 신비함이 묻어나오는 생금집을 방문하여, 생금집을 지키시는 생금이 박윤숙 사회복지사로부터 전해져오는 이야기를 들었다.조선조 말엽에 이 집에 살았던 금녕 김씨가 집에서 10여리나 떨어진 옥구도로 나무를 하러 갔다가 우물에서 닭을 잡아온다. 이 닭을 집의 반닫이에 넣어 두었고, 다음날 열어보니 깃털이 빠져 있는데 황금이 이었다. 다음날도 역시 빠진 깃털은 황금이었다. 노인은 횡재를 한 후에도 변함없이 근검절약 하면서 며칠에 한 번씩 황금 닭털을 돈으로 바꾸어 살림과 땅을 마련하고 집도 새로 지었다. 노인의 집은 순식간에 부자가 되면서 ‘생금집’으로 소문이 나게 된다. 하지만 노인은 마을사람들에게 “열심히 일하고 절약하면 누구든지 부자가 될 수 있다.”라고만 말할 뿐이었다.어느 날 멀리 시집간 딸이 친정인 생금집에 왔다가 반닫이 안에 있는 닭이 생금닭인 것을 발견한다. 딸은 아버지 몰래 닭을 가지고 시댁으로 갔지만 닭은 돌덩어리로 변해버린다. 황금 닭의 주인이 따로 있음을 뒤늦게 깨달은 딸이 친정으로 돌아가 용서를 빌었으나, 돌덩어리는 다시 황금 닭으로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노인은 오히려 잘못을 뉘우친 딸을 칭찬하며, 재산을 나누어주었다. 그 뒤로 노인의 가족뿐만 아니라 이웃들에게도 욕심내지 않고 살아야한다는 교훈이 퍼졌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이런 재미있는 이야기가 깃든 집이면서도 시흥지역의 전통 가옥을 대표할 만하다는 평가 때문에 향토유적으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고 한다.분석 및 결론처음 두 명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 첫 번째 사람은 해변가라 대나무와 밤나무를 본 적이 없다하고 두 번째 사람은 대나무와 밤나무가 많아 죽율동이라 붙여졌다고 말한다. 이러한 인터뷰 결과를 보고 구비문학의 특징을 알 수 있었다. 그래도 우선 죽율동 이름의 유래는, 인터넷의 자료나 한자로 풀이해보면 대나무와 밤나무가 많은 마을에서 온 것이 아닐까 싶다.당나무 -> 당나무 아래서 인근의 성황제를 주관하는 큰 만신(무당)이 당굿을 크게 벌였다고 한다. 부잣집에서 주로 1년에 한 번씩 고사도 지냈는데 마을의 평안과 개인의 안녕을 간절히 빌었다. 땔감이 부족했던 시절엔 당나무 가지가 삭아 부러져도 땔감으로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마을 앞에 군자염전을 매립하면서 마을 뒷산이 토취장으로 되어 당나무가 없어질 위기에 처했었지만 당시의 마을 이장(里長)이셨던 고(故) 문병현 씨와 마을 분들의 노력으로 당나무가 있는 뒷동산인 동녘재는 남을 수가 있었다. 이런 사실들을 통해 우리는 사람들이 당나무를 신성시하고 소중히 여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무속에서는 당나무를 하늘과 땅, 신과 사람이 만나는 신성한 곳이라 하여 우주의 중심으로 여겨 왔으며, 그것을 함부로 베거나 훼손시키거나 하면 목신이 노하여 병을 주고 재앙을 내린다고 믿었다고 한다. 죽율동에서도 당나무는 여전히 우리 주위에 남아 신앙되고 있으며, 이곳 사람들의 생활 속에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