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4일 구사 수요예배7:20분 준비 찬송가 302.182.325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 드리겠습니다.찬송가 257 마음에 가득한 의심을 버리고대표기도에스더6:4-14(구755p)에 6:4 왕이 이르되 누가 뜰에 있느냐 하매 마침 하만이 자기가 세운 나무에 모르드개 달기를 왕께 구하고자 하여 왕궁 바깥뜰에 이른지라에 6:5 측근 신하들이 아뢰되 하만이 뜰에 섰나이다 하니 왕이 이르되 들어오게 하라 하니에 6:6 하만이 들어오거늘 왕이 묻되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여야 하겠느냐 하만이 심중에 이르되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시는 자는 나 외에 누구리요 하고에 6:7 왕께 아뢰되 왕께서 사람을 존귀하게 하시려면에 6:8 왕께서 입으시는 왕복과 왕께서 타시는 말과 머리에 쓰시는 왕관을 가져다가에 6:9 그 왕복과 말을 왕의 신하 중 가장 존귀한 자의 손에 맡겨서 왕이 존귀하게 하시기를 원하시는 사람에게 옷을 입히고 말을 태워서 성 중 거리로 다니며 그 앞에서 반포하여 이르기를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시는 사람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하게 하소서 하니라에 6:10 이에 왕이 하만에게 이르되 너는 네 말대로 속히 왕복과 말을 가져다가 대궐 문에 앉은 유다 사람 모르드개에게 행하되 무릇 네가 말한 것에서 조금도 빠짐이 없이 하라에 6:11 하만이 왕복과 말을 가져다가 모르드개에게 옷을 입히고 말을 태워 성 중 거리로 다니며 그 앞에서 반포하되 왕이 존귀하게 하시기를 원하시는 사람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하니라에 6:12 모르드개는 다시 대궐 문으로 돌아오고 하만은 번뇌하여 머리를 싸고 급히 집으로 돌아가서에 6:13 자기가 당한 모든 일을 그의 아내 세레스와 모든 친구에게 말하매 그 중 지혜로운 자와 그의 아내 세레스가 이르되 모르드개가 과연 유다 사람의 후손이면 당신이 그 앞에서 굴욕을 당하기 시작하였으니 능히 그를 이기지 못하고 분명히 그 앞에 엎드러지리이다에 6:14 아직 말이 그치지 아니하여서 왕의 내시들이 이르러 하만을 데리고 에스더가 베푼 잔치에 빨리 나아가니라/ 간단한 광고왕께서 사람을 존귀하게생명의 은인을 알아보지 못해서 왕은 잠시 머쓱해 하다가 보상을 주기 위해 사람을 부릅니다. 왕 다음 가는 사람을 불러야 하니 당연히 하만이 불립니다.에6:4 왕이 이르되 누가 뜰에 있느냐 하매 마침 하만이 자기가 세운 나무에 모르드개 달기를 왕께 구하고자 하여 왕궁 바깥뜰에 이른지라하만은 뜰에서 마침 어슬렁거리고 있었습니다. 자기가 세운 나무에 모르드개를 달자고 얘기하려고 대기 타다가 불려갑니다. 참 우스운 일입니다. 하만은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장대를 준비하고 있는데, 왕은 그에게 상을 주기 위해 하만을 부릅니다. 동상이몽입니다. 한자리에 있지만 서로의 생각은 전혀 다릅니다. 더 재미있는 상황이 벌어집니다.하만이 왕에게 오자마자 왕이 급하게 질문을 합니다.에6:6 하만이 들어오거늘 왕이 묻되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여야 하겠느냐 하만이 심중에 이르되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시는 자는 나 외에 누구리요 하고예스! 하만은 신이 납니다. 왕이 이제야 나를 알아봐 주는구나! 그래서 돌려 얘기하는구나 싶습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이와 같은 상황을 적절하게 표현한 문장이 있죠. 뭡니까?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줄 사람은 생각도 없는데, 자기가 받을 생각으로 궁전을 만들고 있습니다. 전형적인 자아도취형입니다. 왕은 존귀히 여길 자가 누구인지 말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구한 사람에게 최고의 대접을 하기 원해서 물어봅니다.하만은 자기가 꿰찰 영광이라 생각 하고 본인이 받고 싶은 것을 줄줄이 읊어댑니다.에6:8 왕께서 입으시는 왕복과 왕께서 타시는 말과 머리에 쓰시는 왕관을 가져다가6:9 그 왕복과 말을 왕의 신하 중 가장 존귀한 자의 손에 맡겨서 왕이 존귀하게 하시기를 원하시는 사람에게 옷을 입히고 말을 태워서 성 중 거리로 다니며 그 앞에서 반포하여 이르기를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시는 사람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하게 하소서 하니라2인자로 만족 할 수 없는 하만의 시커먼 욕망을 내보입니다. 돈과 권력 그 이상, 제국을 다스리고 싶은 욕망입니다. 아하수에로 왕은 생명을 살린 모르드개를 높이려고 합니다. 하만은 유대인을 죽이려는 자신을 높이려합니다. 한나라에서 일하는 사람이 같은 꿈을 꾸면 좋을 것인데 다른 것을 보고 있습니다. 가슴 아픕니다. 아하수에로 왕은 하만과 모르드개의 관계를 모릅니다. 하만 또한 아하수에로 왕의 머릿속을 모릅니다. 각자 자신의 생각만 말하고 있습니다. 서로의 생각을 모른 채 일이 진행됩니다. 이 상황도 하나님의 개입임을 눈치 채셔야 합니다. 이들 사이 빈자리에 하나님이 역사하고 계십니다.이제 왕이 대답을 하기 시작합니다. 왕의 말이 진행될수록 하만의 표정이 찡그려 지는게 그려지십니까? 처음에는 환하게 웃던 표정이 악귀같이 찌그려집니다. 물론 왕 앞이라 너무 티를 내지는 못합니다.에6:10 이에 왕이 하만에게 이르되 너는 네 말대로 속히 왕복과 말을 가져다가 대궐 문에 앉은 유다 사람 모르드개에게 행하되 무릇 네가 말한 것에서 조금도 빠짐이 없이 하라왕이 높이려는 사람이 누구였습니까? 방금까지 하만이 뜰에서 서성였던 이유와 관련된 사람입니다. 하만의 말문이 막힙니다. 그의 꿈이 옥상에서 떨어뜨린 화분처럼 깨어집니다. 이것이 과연 우연이겠습니까? 권력도 있고 야망도 있는 2인자입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하만은 왕의 신하입니다. 왕의 명령을 따라야 합니다. 그는 자신이 경멸해서 죽이려고 했던 사람을 높여 주며 시가행진을 해야 했습니다. 왕이 타는 말에 모르드개를 태워 성안의 거리를 다니며 외칩니다.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시는 사람에게는 이렇게 할 것이다’ 하고 외쳤습니다. 씻을 수 없는 모욕입니다. 치욕을 당합니다. 유대인들을 학살하려고 했던 하만의 자존심이 여리고 성처럼 산산히 무너집니다. 이것이 에스더서에서 일어난 사이다 같은 반전입니다. 하나님의 진행되는 계획이 현실로 드러나는 시작입니다.반전이 일어나기 전에 하나님의 섬세한 손길이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개입하셔야 반전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이생을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이 늘 우리 삶 속에 개입하시고 역사하시는 복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하만이 뒷 목 잡는 모습을 보며 이 말씀을 생각해 봅니다.마23:12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하만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저에게도 일어납니다. 높은 곳에 올라갔더니 제가 높아진 줄 알았더니 그만큼 떨어질 때 세게 떨어집니다. 높아질수록 중력이 세지는 건 과학적으로도 증명이 됩니다. 떨어질 때 깨닫습니다. 와, 내가 이런 자리에 욕심이 있는 사람이라고? 내가 이렇게 추한 마음이 있었다고? 담임이 된 한 목사님이 부교역자 시절 자신과 친했던 전도사님을 모시고 왔습니다. 1년도 안되서 그 전도사님이 교회를 뛰쳐나갔습니다. 사람이 변했다고요. “어찌 변해도 저리 변하냐고 다시는 안보겠다” 고 진절머리를 흔드는 것을 옆에서 봤습니다. 누구에게나 자신을 높이려는 마음이 있습니다.오늘날의 문화가 사람을 허영심에 빠지게 합니다. 자기를 드러내도록 부추킵니다. 다른 사람보다 네가 더 괜찮다고 밟고 올라서라고 합니다. 왜 이렇게 까지 할까요? 교만은 악으로 빠지게 합니다. 자신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합니다. 결국 더 큰 악에 빠지게 됩니다. 하만은 높아지길 원했습니다. 욕망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모르드개와 하만의 위치가 바뀝니다. 잠시라고 하지만, 2인자가 뜬금없이 자신의 아래라 생각했던 모르드개를 호위로 섬기게 됩니다.자신이 하자고 줄줄 얘기한 내용이라 반박은 할 수 없는데 자괴감이 듭니다. 자업자득입니다. 악인이 스스로 망함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교만을 싫어하십니다. 완전히 꺽으십니다. 자신이 하나님이 되려고 하고 하나님보다 높아지려고 하는 사람을 철저히 넘어뜨리십니다. 높이 올라간 시소는 내려가야 합니다. 교만으로 높아진 사람은 내려갈 수 밖에 없습니다.모르드개는 어떻습니까? 높아질 생각이 없습니다. 유대인을 이끄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에스더를 앞세웠습니다. 왕복을 입고, 왕이 타는 말을 타고, 왕관을 쓰고, 하만의 호위를 받으며 성 중 거리를 다닌다고 해서 흥분하지 않습니다.오히려 부담스러웠을 겁니다. 진정한 리더이기에 이스라엘의 위기를 생각합니다. 지금 다 죽게 생겼는데 이런 것이 무슨 소용일까? 하나님이 기류를 바꾸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갈 때 알 수 없는 변수입니다. 아무리 권력이 있고 강한 힘을 가져도 하나님이 힘을 쓰시면 누구도 저항 못합니다. 태풍에도 날아가는 것이 사람입니다.에6:12 모르드개는 다시 대궐 문으로 돌아오고 하만은 번뇌하여 머리를 싸고 급히 집으로 돌아가서숨을 구멍이라도 있다면 자신을 가리고 싶습니다. 머릿속이 담임교사가 없어진 초등학교 1학년 교실 같습니다. 도저히 이해가 안됩니다. 원래 하만의 계획이 무었이었습니까? 모르드개를 장대에 매다는 것을 시작으로 유대인 학살을 자행할 생각이었죠. 정신 차릴 시간도 없이 상황이 급변합니다. 아내와 친구들의 말을 들어보십시오.에6:13 자기가 당한 모든 일을 그의 아내 세레스와 모든 친구에게 말하매 그 중 지혜로운 자와 그의 아내 세레스가 이르되 모르드개가 과연 유다 사람의 후손이면 당신이 그 앞에서 굴욕을 당하기 시작하였으나 능히 그를 이기지 못하고 분명히 그 앞에 엎드러지리이다하만은 정신을 못차렸는데, 주변 사람들은 이상한 감을 느낍니다. 이길수 없는 게임이 시작되었음을 감지합니다. 하만은 모르드개가 믿는 하나님을 이기지 못합니다. 어느 순간부터 하만의 권력이 소용이 없어집니다. 힘을 쓰려고 할때마다 더 큰 힘이 눌러버립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옆에서 보고 알아차립니다. 하만은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망할때가 다가오면 악인은 감각이 무뎌지고, 분별력이 사라집니다. 심판의 날이 다가와도 전혀 모릅니다.
2024년 6월 12일 구사 수요예배7:20분 준비 찬송가 180 182 384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 드리겠습니다.찬송가 292장 주 없이 살 수 없네대표기도에스더2:16-18(구751p)에 2:16 아하수에로 왕의 제칠년 시월 곧 데벳월에 에스더가 왕궁에 인도되어 들어가서 왕 앞에 나가니에 2:17 왕이 모든 여자보다 에스더를 더 사랑하므로 그가 모든 처녀보다 왕 앞에 더 은총을 얻은지라 왕이 그의 머리에 관을 씌우고 와스디를 대신하여 왕후로 삼은 후에에 2:18 왕이 크게 잔치를 베푸니 이는 에스더를 위한 잔치라 모든 지방관과 신하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고 또 각 지방의 세금을 면제하고 왕의 이름으로 큰 상을 주니라/ 간단한 광고더 얻었습니다.몇 년 만에 기다리고 기다리던 큰 행사가 진행 됩니다. 새 왕후를 뽑기 위해 왕의 문서와 함께 명령이 뿌려집니다.에2:8 왕의 조서와 명령이 반포되매 처녀들이 도성 수산에 많이 모여 헤개의 수하에 나아갈 때에 에스더도 왕궁으로 이끌려 가서 궁녀를 주관하는 헤개의 수하에 속하니헤게는 왕궁에서 궁녀를 관리합니다. 제국 내에서 이 정도는 되 줘야 한다는 미모의 처녀들을 모읍니다. 왕후를 뽑기 위해 선발합니다. 왕후 후보자는 자신의 뜻으로 모이지 않았습니다. 그들 중 오늘의 주인공 에스더가 있습니다.결론부터 말씀드립니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내가 하는게 아니라, 주께 맡겨서 이끄심으로 더 복 받는 삶이 되어야합니다.유대 역사가로 유명한 요세푸스가 말하기를 이 시기에 4백 여명의 처녀가 모였다 합니다. 성경에서는 에스더가 왕궁에 이끌려 갔다 합니다. 누가 그러 했는지는 모릅니다. 모르드개가 그랬을 확률이 높겠죠. 모르드개나 에스더의 돌아가신 부모님은 포로로 사로잡혀 온 사람들입니다. 에스더는 자기 의지로 이곳 바사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살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도 그렇습니다. 나라, 성별, 부모, 잘생김, 이쁨 등은 내가 결정하지 못합니다.인생에 중요한 대부분이 우리 손에서 벗어나 일어납니다. 그생을 포기한 것은 아닙니다. 네 주변 일이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일어난 걸 알게 된 겁니다.사람은 자기 마음대로 살고 싶습니다. 멋대로 살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선한 뜻을 이루시기 위해 그런 우리의 마음을 접으실때가 있습니다. 종이 접듯 꾹꾹 접으십니다. 이때 잘 하셔야 합니다. 하나님 이기려고 하면 큰일납니다. 종이가 접히는 부분을 다시 펼쳐서 다른 것을 접으려 하면 쉽게 찢어집니다. 이때 우리가 취할 태도는 말씀의 순종입니다. 이것을 빨리 깨달아야 다치지도 않고 복을 받기도 합니다.오늘 말씀에서 에스더는 스스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자신을 어필하지 않습니다. 잘나오고 매력적으로 보이는 사진을 찍어 인스타에 올리거나 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납니다. 궁녀를 관리하던 헤겔의 눈에 띕니다.에2:9 헤개가 이 처녀를 좋게 보고 은혜를 베풀어 몸을 정결하게 할 물품과 일용품을 곧 주며 또 왕궁에서 으레 주는 일곱 궁녀를 주고 에스더와 그 궁녀들을 후궁 아름다운 처소로 옮기더라노력하지 않음에도 상대방이 발견해 버립니다. 좋게 봐줍니다. 에스더가 아리따운 것은 우리가 알죠. 그녀가 눈에 띈 것은 단순히 외모 때문만은 아닙니다. 도성 수산에 바사제국에서 고르고 고른 미스 바사들이 수두룩 합니다. 아무리 외모가 뛰어나다 해도 그 가운데 책임자의 눈에 띈다?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작정하신 일을 한 내시를 통해 이루시길 원합니다. 하나님이 간섭하심을 보통 은혜라 합니다. 그 이상으로 은혜는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말합니다. 요셉의 이야기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39장2절에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라는 말씀을 읽어 보셨을 겁니다. 요셉은 노예였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니까 주인에게 은혜를 입습니다. 노예가 주인에게 은혜를 입는 것이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증거입니다.다니엘1장9절에 ‘하나님이 다니엘로 하여금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 는 말씀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다니엘에게 은혜를 뤘다고 합니다. 왕후 없이 3년의 시간이 지나갑니다. 어쩌다가 이런일들이 일어났나요? 한 사람을 왕후로 세우기 위해 준비된 시간입니다.내 마음대로 살려고 주위를 둘러보면, 시간이 더디 가는 것 같습니다. 반대로 아무것도 하는 일 없이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을 느낍니다. 시간의 주관자인 하나님이 야속합니다. 그러나 기억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늦지도 빠르지도 않게 역사합니다. 에스더가 왕후가 되기까지 수 많은 일과 사건이 있었죠. 그러나 그 시간 들은 하나를 향해 갑니다. 우연처럼 보였던 일이 겹쳐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왕후를 뽑는 과정이 그렇습니다. 도성 수산에 모인 처녀들은 아하수에로 왕 앞에 나가기전 12개월의 준비과정을 거칩니다.에2:12 처녀마다 차례대로 아하수에로 왕에게 나아가기 전에 여자에 대하여 정한 규례대로 열두 달 동안을 행하되 여섯 달은 몰약 기름을 쓰고 여섯 달은 향품과 여자에게 쓰는 다른 물품을 써서 몸을 정결하게 하는 기한을 마치며대 제국의 왕후를 뽑는 일입니다. 선발 과정이 문방구 앞에서 뽑기 뽑듯이 하지 않습니다. 먼저 왕후 선발전 후보자들은 왕과 하룻밤을 지내야 합니다.에2:13 처녀가 왕에게 나아갈 때에는 그가 구하는 것을 다 주어 후궁에서 왕궁으로 가지고 가게 하고2:14 저녁이면 갔다가 아침에는 둘째 후궁으로 돌아와서 비빈을 주관 하는 내시 사아스가스의 수하에 속하고 왕이 그를 기뻐하여 그의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면 다시 왕에게 나아가지 못하더라왕의 면전을 보았다고 기뻐하기에는 아직 이릅니다. 왕이 찾지 않으면 다시는 그의 앞으로 나가지 못합니다. 궁녀를 관리하는 내시 얼굴만 보게 됩니다. 후보자들의 운명을 좌지우지 하는 선택권은 왕에게 있습니다. 여인들이 왕에게 간택을 받으려고 얼마나 노력을 했을까요? 에스더는 달랐습니다. 여전히 돋보이려고 노력 하지 않습니다.에2:15 모르드개의 삼촌 아비하일의 딸 곧 모르드개가 자기의 딸 같이 양육하는 에스더가 차례대로 왕에게 나아갈 때에 궁녀를 주관하는 내시 헤개가 정한 것 외성경버전으로 보면 이런 표현으로 에스더 2장17절을 표현합니다. “왕은 에스더를 보고 한눈에 반했다. 어떤 궁녀, 어떤 처녀보다도 그녀가 맘에 들었다. 그녀에게 완전히 매료되었다. 그는 에스더의 머리에 관을 씌우고 와스디를 대신해서 왕비로 삼았다”하나님의 정하신 때에 에스더는 바사제국의 왕후가 됩니다. 하나님이 그녀를 왕후로 세웁니다. 다시 확인해 봅시다. 관리의 눈에 띄는거? 그럴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좋게 보이는거, 라이벌들인 여인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있었던거? 그보다 놀라운 일이 연속으로 일어납니다. 왕에게 은총을 받습니다. 모든 여자보다 사랑받습니다. 우연일까요? 에스더는 경쟁하지 않습니다.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상황에 조금 반응합니다.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그전에 중요한 것을 하나 건져 보자면, 하나님이 먼저 에스더를 주목하신 겁니다. 하나님이 먼저 선택하셔서 아하수에로 왕의 맘에 듭니다. 포로로 왕궁에 이끌려 온 에스더는 제국의 왕을 사로잡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주목하여 부른 사람들이 많이 나옵니다.수많은 우상을 섬기던 백성들 중 아브라함을 부릅니다. 복의 근원으로 세웁니다. 수많은 죄인들 가운데 노아를 부릅니다. 구원하십니다. 모세를 따르던 많은 사람들 중 두려움 많은 여호수아가 리더가 됩니다. 잘생기고 훤칠한 형들 가운데 보잘 것 없던 다윗이 기름 부음을 받습니다. 모두 하나님이 먼저 택하신 사람들입니다.이런 일이 어찌 일어납니까? 이스라엘 부터가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을 사랑하고 은총을 베푼 백성입니다.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이처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은혜와 사랑이 은총입니다.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은혜로 삽니다. 삶에 하나님의 은총이 임해야 삽니다. 세상의 것처럼 끼워 맞추어 쓰지 않습니다. 억지로 움직인다고 받는 것이 아닙니다. 자연스럽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은혜받기 위해 아등바등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의 힘으로 불가능한 것이 있다는 말입니다. 은혜가 임하면, 하나님이 가능케 하십 있음을 압니다. 하나님께서 되게 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증거가 삶에서 나타나는 삶입니다.그러면 함께하시는 이유가 있을까요?에2:11 모르드개가 날마다 후궁 뜰 앞으로 왕래하며 에스더의 안부와 어떻게 될지를 알고자 하였더라왕후가 되기 전에도, 되고 난 후에도 에스더는 어린 여성입니다. 밑바닥에서 권력의 상층부에 오릅니다. 광대한 영토의 제국이고, 바벨론을 무너뜨린 바사의 왕후입니다. 자칫하면, 권력의 중심부에서 휘둘릴 위치입니다. 제국의 왕도 자신의 뜻대로 못한 것을 우리가 봤습니다. 왕후는 어떨까요? 모르드개는 이때부터 날마다 후궁 뜰 앞을 왔다 갔다 합니다. 에스더를 지켜 봅니다. 그러며 조언을 던집니다.에2:10 에스더가 자기의 민족과 종족을 말하지 아니하니 이는 모르드개가 명령하여 말하지 말라 하였음이라아무래도 위험한 위치인데, 바사 사람이 아닌 사람이 왕후다? 안 봐도 뻔합니다. 자신을 드러내어야 사는 이 세상 관점에서는 의아합니다. 그 권력 나두고 뭐할건데? 물어봅니다. 보잘 것 없는 여성이 성공해서 아무것도 못한다고 비난 할 수도 있습니다. 세상은 이런 이야기 좋아 하거든요, 흙수저였는데, 금수저랑 결혼한 이야기 좋아합니다. 자신을 드높이고, 대리 만족을 느끼는 허영심이 가득한 세상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에스더서의 이야기는 초점을 거기에 맞추지 않습니다. 성경은 인간의 성공담에 집중하지 않습니다. 에스더가 왕후가 되려한 적 없다 말씀드렸습니다. 이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하셨고 여기에는 목적과 이유가 있습니다. 함께하시는 이유!아마도 이 나라 사람들은 왕의 지랄 맞은 성격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와스디가 물러간 이유만 봐도 압니다. 다음 타자로 세워졌어도 어찌 될지 모릅니다. 에스더는 안심할 수 없습니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합니다. 에스더는 유다 사람입니다. 이방 땅에 포로로 있는 공동체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공동체와 함께 위기를 넘어서야 합니다. 왕후라는 자리가 특권이나 성공이 아니라 사명이 됩니다.이런 관점으로 우리를 봅시다.니다.
2024년 5월 8일 구사 수요예배7:20분 준비 찬송가 90 91 96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 드리겠습니다.찬송가 246 나 가나안 땅 귀한 성에대표기도다니엘 1:8(구1231쪽)(1:8)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 간단한 광고거룩한 다이어트여러분, 다이어트 해 보신적 있습니까? 단순히 살을 빼는게 다이어트가 아니죠. 자신의 몸의 건강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몸의 밸런스를 잡기 위해 식단과 운동을 겸해야 하는 것입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것을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맞습니다. 굳은 결심이 필요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작심삼일, 작심일일 이런일이 생기고, 요요현상이 생깁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거룩함을 지키기 위해 굳은 결심을 해야 합니다. 다이어트처럼 정말 지키고 유지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 거룩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오늘의 결론은 이것입니다. 거룩을 위한 굳은 결심을 하시길 바랍니다.오늘 말씀의 주인공인 다니엘의 처한 상황을 먼저 보겠습니다. 이름 있는 귀족의 자녀였습니다. 그러나 바벨론에게 유다가 망하고 포로로 끌려가면서 모든 것이 영이 되었습니다. 귀족 가문의 명예, 재산, 품위를 살려주는 것이 사라졌습니다. 제로부터 시작하는 포로생활입니다. 비참하죠. 그런데 정신 없게도 새로운 소식이 들려옵니다.“바벨론 정부는, 여러분들을 격하게 환영한다. 우수하고 탁월한 젊은 인재들을 모집하여 정부의 관리로 채용할 예정이니 출석해주길 바란다.” 자신이 포로가 된 바벨론의 윗선에서 내려온 공지입니다.자기 윗사람의 결정이나 왕에게 의문만 품고 불손종하지 않으면, 공무원으로서 꽃길을 걷게 된다고 합니다. 귀족 자제로서 배운 지식과 경험으로 잘 살아갈 길이 열린 것입니다. 이렇게 끝나면 이야기가 시작이 안되겠죠. 다니엘은 의문을 품습니다. 질문을 합니다. 무엇이 나를 더럽힐 수 있는가? 거룩함은 무엇인가?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거룩함은 다이어트를 넘어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어디든 그렇습니다. 꽃길을 걸으려면 중요 조건이 필수입니다. 돈이 많이 필요하다던지 노오력을 해야 한다던지, 블랙기업이 뒤에 숨어 있다던지, 바벨론의 조건은 윗사람의 결정에 의문을 품지 않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첫 단추부터 여상치가 않습니다. 질문을 하고 토를 답니다. 이게 얼마나 위험한 행동인지 환관장의 리액션에 드러납니다.단(1:10) 내가 내 주 왕을 두려워하노라 그가 너희 먹을 것과 너희 마실 것을 지정하셨거늘 너희의 얼굴이 초췌하여 같은 또래의 소년들만 못한 것을 그가 보게 할 것이 무엇이냐 그렇게 되면 너희 때문에 내 머리가 왕 앞에서 위태롭게 되리라 하니라야야, 니 왜 그라는데, 그런식으로 하면 왕한테 걸려서 내 모가지 날아간다 라는 말입니다. 다니엘이 이에 뭐라 합니까? 10일 동안 채소와 물을 주고 다른 이들보다 더 좋아 보이는지 아닌지 비교하라고 합니다. 말 잘못하면 자기 목숨이 날아갈 상황인데 이 말이 먹힐까요? 먹힙니다. 사람의 생각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인도함 가운데 이 채식 다이어트가 허가 됩니다.자, 우리는 여기까지 왔을 때 어찌 생각합니까? 우와 이 정도 믿음이면 우리 사는데 충분하겠는데? 이런 믿음만 있으면 소위 말하는 형통의 삶을 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잘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다니엘이 거절한 것이 단순히 음식뿐일까요? 성경은요, 우리가 주를 위해 사는 삶에 대해서 늘 형통하다, 즐겁다, 멋지다 라는 식으로 표현하지 않습니다. 과장하지 않습니다.우리가 와 멋지다 라는 그 믿음을 통해 얻으려고 하는 성공, 안전, 쾌락, 지위, 명예는 실제 믿음에서 우러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우리의 지금 삶이! 믿음이란 것에서 거룩을 제거하고 적절한 타협을 양념으로 뿌려서 내 앞에 놓여진 메이드 인 바벨론 음식을 먹고 있는 것은 아닌가? 화려하고 먹음직 하고 보암직함의 결정체인 우상의 제물을 눈 앞에 두고 언제 먹을까 노려보고 있는 모습이 우리일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현시대를 살아가 부모님들이 자녀를 양육하는 시간을 아까워 하고 상실감을 느끼고 의미 없다는 유혹을 받습니다. 기업가들은 성공에 눈이 멀어 남을 속이거나 사람의 가치를 물질보다 떨어뜨려도 된다는 유혹을 받습니다.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지극히 일상적이고 당연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것이 우상의 변형된 모습이라는 것을 모릅니다. 오늘 우리는 다니엘을 보기 원한다면 , 적어도 거룩하길 원한다면 ,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길 바란다면, 이것에 대해 생각해야 합니다.그러지 않는다면, 오늘 다니엘의 입에서 떨어진 그 말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쉬운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세상의 좋은 것에 눈에 불이 켜져 이런 말이 나옵니다. “아이고, 나만, 이렇게 사네, 아무도 이런 일로 고민 안 하고 사는데, 하나님은 다른 사람은 다 챙겨 주시고 , 나는 이리 사노.”다시 다니엘에게 돌아와 봅시다. 거룩하게 사는 것이 이리 힘든데. 다니엘은 무슨 베짱으로 이 일을 벌입니까? 주님은 왜 이런 일을 허락하십니까? 거룩한 삶을 위해, 성결한 삶을 살게 하기 위해 신앙생활에 안락과 평안을 잠시 떼어 두고 계십니까?바로 우리의 영적 전쟁을 위해서입니다. 다니엘서 전체를 한번 이미지를 그려볼까요? 첫 장을 잡을 때부터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사건들의 연속입니다. 자신의 목숨줄을 쥐고 흔드는 왕들과의 만남, 현실에서는 보기도 힘든 험한 꿈을 통한 환상, 어마어마하게 큰 황금 신상의 도전, 활활 불타오르는 용광로에 던져지는 세친구, 짐승처럼 변해 울부짖는 왕의 이야기, 굶주려 눈이 시뻘개져 있는 사자굴에 던져진 다니엘의 이야기가 연속으로 이어집니다. 심심할 틈이 없습니다. 저는 넷플릭스 예고편 말씀드린게 아닙니다. 그만큼 스펙타클한 우리 안의 전쟁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하나님 앞에 바로 서려고 거룩하게 살려고 하나님을 위해 살려고 하는 우리를 향한 공격은 결코 멈추지 않습니다. 다니엘의 선택은 무모한 죽음이 아닙니다. 다음 일어날 전쟁을 위한 준비 과정입니다. 그냥 나 거룩하게 살거야 하고 뗑깡 부리고 있는게 아닙니신의 삶으로 그 명제를 전면 부정합니다. 버리신 것이 아니라, 장차 있을 더 큰 일을 준비시키고 계심을 보여줍니다.오늘의 싸움은 내일을 위한 준비 과정입니다. 주님은 준비 시키고 계십니다. 이전에 내가 겪은 일들, 부딪친 사건들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나는 여기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귀하게 쓰시는 그릇으로 다듬어지지 못했습니다. 그런 하나님에게서 나온 우리가 해야 할 말은 무엇일까요?본문 8절에 더럽다고 하는 단어에는 부정함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더러움에서 벗어나리라! 는 외침이자 선포입니다. ‘하나님, 나를 더러움에서 지켜주소서!’ 라는 간구하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거룩하게 살기 원하기에 하나님께 중심을 둡니다. 우리가 거룩하게 살려는 이유가 뭘까요? 첫째, 세상의 죄가 우리에게 들어오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야 하나님과 교제가 이뤄집니다. 거룩하지 못하면, 즉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교제가 막히면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가 없고, 도움이 와도 깨닫지 못합니다. 다니엘은 오늘 말씀을 통해 자신이 이해한 하나님의 나라로 가는 길을 말하고 있습니다.그는 성결을 지키고 거룩함을 지킴으로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도했습니다. 후에 올 사탄과의 전쟁을 지혜와 용기로 맞설 준비가 됩니다. 오늘의 싸움을 통해 자신을 단단하게 준비한 다니엘은 다음에 닥쳐올 더 큰 싸움에서 보호 받습니다.우리를 고난으로 부르시고 고난 가운데서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을 지키도록 권면하시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시련에는 다 목적이 있습니다. 고난 받는 지금, 그분을 의지하는 법을 배울 기회를 주심으로 더 큰 화를 물리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래야 이 세상의 시련과 유혹 속에서 억눌리지 않습니다. 넘어가지 않습니다. 지금 바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제 형편이 좀 나아지면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런 말씀을 하시는 분께 권면합니다. “그러시면 안됩니다.” 내가 마주하는 문제가 개인적인 것이든, 은밀하게 이뤄지는 것이든, 도덕적이거나 재정적이든 서있기 어렵습니다.제가 이래보여도 예전에 헬스장에 좀 다녔습니다. 처음 운동하게 되면, 눈이 휘둥그래집니다. 굵직하고 묵직해보이는 것을 쓱쓱 들어올리는 분들을 보면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 처음 입문하신 분이 처음부터 10kg 20kg의 역기를 들거나 데드리프트 이런걸 대뜸 하게 되면 어떤 일이 발생합니까? 그 당시에는 눈치가 있어서 하긴 하죠. 다음날 몸살이 나서 헬스장 못나옵니다. 그리고 천사 기부를 하는 거죠.무슨 말입니까? 갑작스레 일이 닥쳐야 움직이는 우리의 마음가짐을 다듬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영적인 일이 시작되면, 과하게 하거나 나중에 몰아서 합니다. 나중에 하면 늦습니다. 닥쳤을 때 몰아서 하면 다칩니다. 지금부터 조금씩 시작을 해야 합니다. 다니엘은 우리가 아는 것처럼 유별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거룩하기로 작정하고 복주시길 원하는 하나님을 본 것입니다. 그리고 시작했죠. 그래서 그 이 후의 일을 감당합니다. 그렇기에 책이 끝날 때 까지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까지 온 우리는 당돌하게 물어봐야죠. 하나님 그러면 상 있어요?단(1:15) 열흘 후에 그들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더욱 윤택하여 왕의 음식을 먹는 다른 소년들보다 더 좋아 보인지라거룩한 다이어트 가운데 건강을 지켜주십니다. 변덕스러운 왕이 그들을 못마땅하게 여겨 목을 치지 않도록 생명을 지켜주십니다. 그뿐일까요? 다니엘과 그 친구들에게 놀라운 영적 은사들을 주십니다. 모든 느부갓네살의 박수와 술객들보다 열배나 지혜로웠고 다니엘은 꿈과 환상을 이해하는 능력까지 받습니다. 하나님과 특별한 친밀함과 교제를 누리는 상까지 받습니다. 그의 일을 이해하는 능력을 받습니다.사실 다니엘의 다이어트가 제일 크게 영향을 미치는 이들이 있습니다. 다니엘이 하는 일을 보는 사람이 없었을까요? 저 뻘짓 하다 큰일나지 했던 사람들이 그 결과를 봅니다. 특히나 포로생활에 있는 백성들이 거룩한 삶을 살려고 발버둥치는 다니엘을 통해 하나님이 여전히 그들을 돕고 있음.
2024년 5월 1일 구사 수요예배7:20분 준비 찬송가 15 40 70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 드리겠습니다.찬송가 407장 구주와 함께 나 죽었으니대표기도벧후(2:20) (신386p)만일 그들이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간단한 광고진흙 피하다 똥 밟았네제가 국딩일 때 아버지께서 일하시는 곳이 외진 곳이라 집에서 나오거나 학교로 가는 길은 늘 흙더미가 가득했습니다. 비라도 올라치면 그냥 흝탕물이 가득한 갈색 천지의 진흙 위를 조심조심 걸어다녀야 했습니다. 장화를 신어도 학교에 도착하면 장화의 반은 흙더미가 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시골길이다 보니 밭에서 일하던 황소가 지나가는 길이 대부분입니다. 이 말의 의미를 아시는 분은 고개를 끄덕이실 겁니다. 네, 그 진흙 땅 위에 질퍽한 소똥도 즐비하다는 겁니다. 비가 오늘 날이면 물이 가득찬 진흙밭을 피하면 똥이 가득한 그곳을 절로 밟게 되곤 했습니다. 비가 오면 등굣길 조차 조심하고 조심해야 하는 삶을 살았습니다.결론부터 말씀드립니다. 이 험난한 세상에 오직 기준을 예수로 잡지 않으면 진흙 피했다고 안심한 순간 죄라는 똥을 밟습니다. 예수로 충만한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오늘 말씀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거짓 선지자들 때문에 교회에 많은 분들이 하나님을 떠나게 됩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한탄을 합니다.벧후(2:15-18)그들이 바른 길을 떠나 미혹되어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르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자기의 불법으로 말미암아 책망을 받되 말하지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 행동을 저지하였느니라이 사람들은 물 없는 샘이요 광풍에 밀려 가는 안개니 그들을 위하여 캄캄한 어둠이 예비되어 있나니그들이 허탄한 자랑의 말을 토하며 그릇되게 행하는 사람들에게서 겨우 피한 자들을 음란으로써 육체의 정욕 중에서 유혹하는도다그들에게 자유를 준다 하여도 자신들은 멸망의 종들이니 누구든지 진 자는언질을 준 악한 선지자입니다. 그 길을 따른 사람들은 음란의 죄에 빠져 죽음에 이르게 됨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 보았습니다. 자기만 죽은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유혹을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어찌 여기까지 왔는데, 구원의 길로 왔는데 어떻게 예수를 알게 되었는데 여기 예배의 장소에 왔는데 이 길을 버리겠습니까? 그런데 베드로가 그저 거짓 선지자만의 일로 글로까지 적었을까요?20절을 읽어보면, 예수를 알게 되어 그런 세상의 더러움을 벗어났다고 합니다. 역시 예수님, 예수를 통해 우리가 세상의 악한 것을 멀리 할 수 있었어! 아쉽지만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우리의 옛 사람이 들고 일어납니다. 우리를 다시 죄악으로 끌고 갑니다. 어찌 하여 이런 일이 일어나나요, 방금 예수님을 알고 있다는 우리가? 세상과 악한것과 구별 되어야 할 이들이 더 형편 없이 되어버리는 것처럼 말할까요? 그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요?그리스도인은 기본적으로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쉽지 않습니다. 창세기에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나오는데요. 롯은 아브라함과 롯의 종들이 양들에게 먹일 풀로 싸우게 되자 아브라함에게서 독립합니다. 아브라함이 롯에게 가고 싶은 땅을 골라보라고 할떄 눈에 좋아 보이는 땅을 골라 갑니다. 우리가 잘 아는 소돔과 고모라 그 땅입니다. 이 배경을 두고 베드로는 말합니다. ‘그도 의인이었다.’벧후(2:8 쉬운성경) 롯은 선한 사람이었기에 이웃들이 날마다 행하는 악한 일들을 보고 들으면서 몹시 괴로워하였습니다.의로운 심령이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으로 상하였다고 말합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만연한 죄악들에 의로운 심령이 물들어 상했다는 말입니다.눈 앞에 악한 죄악의 모습들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매번 봅니다. 보게 되니 익숙해집니다. 익숙해지니 별거 아닌 것처럼 생각합니다. 외로웠던 사람이 죄악된 사람들과 동일한 행동을 합니다. 룻은 그렇게 죄악 가운데 살게 됩니다.그렇다면 여쭤 보겠습니다. 롯의 죄가 없는 겁니까? 이게 우리가 빠질 함정입니다.우습니다. 세상을 향해 아무 대비도 없이 성큼 성큼 나아갑니다. 말씀으로 전신갑주로 싸매지 않고 나갑니다. 믿음 없이 전진합니다. 세상이 좋아 세상을 즐기려고 나갑니다. 조금 구체적으로 말씀드려보겠습니다.요일(2:15-17)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혹시 여기에 세상이 너무 즐거우신 분 계십니까? 저도 놀 줄 몰라서 그렇지 좀 즐겁게 살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이 세상의 즐거음에 감사를 하지 말라는게 아니죠. 이 세상은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무대입니다. 문제는 이 무대를 너무 사랑하는 겁니다. 내가 사랑하는 것 때문에 예배를 버립니다. 예수를 닮아가는 것과 반대로 삽니다. 이것이 지속됩니다. 돌이킬 생각이 없습니다. 세상과 벗하고 사는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내가 이전에는 예수께 예배드리는 즐거움을 누렸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이 나를 인도했습니다. 그런데 점점 말씀을 보지 않습니다. 성령의 능력을 의지 하지 않습니다. 죄로 채워져 가는 내 생각과 마음을 회개하지 않습니다. 어찌 됩니까? 그냥 그대로 삽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무서운 형벌에 처하게 됩니다.벧후(2:9-10)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실 줄 아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에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시며특별히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자들에게는 형벌할 줄 아시느니라 이들은 당돌하고 자긍하며 떨지 않고 영광 있는 자들을 비방하거니와하나님께서 그냥, 그렇게 살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참 무섭습니다. 10재앙을 당했던 출애굽시기의 바로를 보십시오. 자신의 장자가 죽고 나라가 망할때까지도 정신 못 차렸습니다.자, 우리는 그러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그리개를 주셨습니다. 내 안에 더러움을 덜어버리라고 주셨습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진정한 은혜로 채우라고 행동하라고 주신 것이 회개입니다. 그런데 회개를 욕심을 비운다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시는데요 말씀 보겠습니다눅(11:24-26)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가서 보니 그 집이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느니라내 마음을 비웠습니다. 라는 말과 회개라는 말은 비슷한 것 같지만 큰 차이가 있습니다. 회개를 통해 정결해진 마음이 무엇으로 채워져야 합니까? 예수로 채워져야 합니다. 예수를 향한 선택으로 채워져야 합니다.한데 그저 마음만 비운 상태가 되면 그 안이 죄로 채워집니다. 세상의 즐거움 속에 숨어든 죄로 채워집니다.마(3: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그저 눈물 콧물 다 흘린 후에 ’주님, 잘못했어요‘ 말만하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눈물도 주님이 허락하셔야 나옵니다. 그러나 그저 감정적으로 후회되는 맘으로 흘리는 눈물로 끝나서는 안됩니다. 누가복음을 보시면 십자가에 달린 두 강도에 대한 얘기가 나옵니다.눅23: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이 얘기를 들었을 때 어찌 생각하시나요? 단순히 회개하면 되는 이야기로 생각하십니까? 이 강도는 구원자가 옆에 있을지 생각도 못했습니다. 예수를 알게 되는 순간 절박함으로 고백합니다. 이 사람에게는 우리에게 늘 있던 그 선택지가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이 절박한 심정이 필요합니다. 올바른 판단과 진실됨으로 예수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회개라는 선물이 합당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자 이렇게 회개라는 것을 알고 세상의 더러운 것에서 벗어났습니다. 다시 똥을 밟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내가 안다는 그 예수를 잘 알아서 다시는 벗어나지 알고 있습니까? 대부분의 믿음이 사라지는 이유가 회개를 하지 않는 이유가 예수를 모르기 때문아닙니까?우리의 삶이 예수를 안다면 그 예수가 우리 삶에서 드러나야 합니다. 공산주의자들은 말하지 않아도 공산당이라는 거 압니다. 그들의 사상이 삶에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예수의 삶이 우리 삶에 묻어 납니까? 아니 어찌 하면 예수의 삶이 우리에게 묻어날까요? 고민한번 해봅시다.일반적인 전자기구, 티비 같은 것은 사용 설명서를 읽지 않고도 잘 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배우는 것이 없이 교회 방송실에서 영상 돌리고, 자막 올릴 수 없습니다. 어떤 때는 동시에 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대단한 헌신입니다. 이제 막 요리를 시작한 초보 주부가 레시피 없이 고급 이탈리아 요리를 만들 수 있습니까? 어림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지 않고 성령의 인도하심이 없는 체로 하나님을 알 수 있을까요? 노! 우리는 말씀과 기도로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하나님을 알아가는데 힘을 써야 합니다. 아무리 10년 20년 교회에 다녔다 하더라도 말씀이 그 안에 없으면 그분은 성도라고 할 수 없습니다. 신앙이 미미 하던 분이 군대에서 보초 서는 가운데 짬을 내는 가운데 화장실 등에서 성경 읽고 깊은 눈물을 흘리며 변화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말씀에는 능력이 있습니다.그렇기에 우리는 말씀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살기 위해 하나님 앞에 회개의 열매를 맺기 위해 하나님을 알기 위해 말씀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말씀 안에서 산다는 것은 단순히 말씀을 달달 외우는 것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말씀은 우리 유치부, 유초등부 아이들도 잘 외웁니다. 요즘 고린도 전서 13장을 외우는데 와..가끔 제가 부끄러울 정도로 잘 외웁니다. 무슨 말입니까?제가 찬양 인도하면서 늘 아쉬운 것이 기타를 못치는 것입니다. 한 10몇번을 잡았습니다. 굳은살이 생기려 하면 놓고 코드좀 쳤다 하면 놓았습니다. 마음 만은 우리 최상영 집사님처럼 멋지게 찬양 인도 하고 싶어요. 그런데 언제부터 그다.
2024년 4월 17일 구사 수요예배7:20분 준비 찬송가 421 423 429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 드리겠습니다.찬송가 301 지금까지 지내 온 것대표기도시편 73:1-28시 73:1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시 73:2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시 73:3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시 73:4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강건하며시 73:5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이 그들에게는 없고 사람들이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는 없나니시 73:6 그러므로 교만이 그들의 목걸이요 강포가 그들의 옷이며시 73:7 살찜으로 그들의 눈이 솟아나며 그들의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많으며시 73:8 그들은 능욕하며 악하게 말하며 높은 데서 거만하게 말하며시 73:9 그들의 입은 하늘에 두고 그들의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시 73:10 그러므로 그의 백성이 이리로 돌아와서 잔에 가득한 물을 다 마시며시 73:11 말하기를 하나님이 어찌 알랴 지존자에게 지식이 있으랴 하는도다시 73:12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들이라도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욱 불어나도다시 73:13 내가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시 73:14 나는 종일 재난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벌을 받았도다시 73:15 내가 만일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그들처럼 말하리라 하였더라면 나는 주의 아들들의 세대에 대하여 악행을 행하였으리이다시 73:16 내가 어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그것이 내게 심한 고통이 되었더니시 73:17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시 73:18 주께서 참으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시 73:19 그들이 어찌하여 그리 갑자기 황폐되었는가 놀랄 정도로 그들은 전멸하였나이다시 73:20 주여 사람이 깬 후에는 꿈을 무시함 같이 주께서 깨신 후에는 그들의 형상을 멸시하시리이다시 73:21 내 마음이 산란하며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간단한 광고진짜 받아야 할 복몇 년 전 그러니까 정확하게는 코로나 전만 해도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는 류의 이야기가 많이 있었습니다. 설교, 책, 유튜브 영상을 통해서도 예수 믿고 복 받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접하게 됩니다. 복음을 전할 때도 예수 믿으면 복받는다는 말을 먼저 건네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현실 자각이 많이 되고 배운 사람이 많아진 시대라 상황이 제법 바뀌었습니다. 질병이 전 세계를 덮치고 교회의 숨겨진 현실을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됩니다. 인터넷 상으로 신앙인들이 숨어 버렸습니다. 우리는 의심을 가져봅니다. 정말 복 받는가? 우리가 생각했던 그 복을 우리가 받게 되는게 맞는가?결론부터 말씀드립니다. 하나님 자신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가 받은 복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보통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라고 할 때 우리가 떠올리는 개념은 이것입니다. 솔로몬이 누렸던 부귀와 영화. 물질이 충만해지고,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보고, 만족 스런 결혼과 가정생활을 이루고, 자녀, 손자 손녀들이 잘되는 것을 생각합니다. 이것이 다 언제 얘기입니까? 이 땅에 살 때에 해당 되는 얘기죠? 우리의 관심이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의 일에 많습니다. 이런 복 누구나 좋아합니다. 특히나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세상 가운데 비싼 돈 주고 구한 보험 같은 신앙의 열매가 복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문제가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이 땅에 것에 집중하다보니, 뭔가 빠진 것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결과에 집착하게 됩니다. 나는 예수를 잘 믿는데, 왜 복이 없지? 왜 생활이 이 모양이지?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살아가며 고난 받는다는 얘기는 어디서 들은 것 같은데, 왜 이리 힘들지?시 73:3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어, 예수 안 믿는 저 원수 같은 사람들은 잘 사네? 불의를 저지르는 저 사람들은 왜 더 잘 되는거 같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 가운데 여기까지 옵니다. 도대 보시면 이 못마땅한 이들의 성공을 보여줍니다. 악인들이 잘 누리고 잘 삽니다. 이런 마음이 문득 울컥 올라옵니다. 내가! 정직하게 열심히 살고, 성실하게 쎄빠지게 일하고, 깨끗하고 정결하게 살면 뭐합니까? 의롭고 정직하게 살면 하나님이 밥먹여 주는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없습니다. 깊은 절망과 회의감에 빠집니다. 그냥 저렇게 악하게 살면 서럽지도 않지, 내가 바보 같습니다. 온종일 괴로운 생각만 가득해집니다.아침에 기상을 하면 찬송이 아니라 한숨이 나옵니다. 맘이 상해서 발을 헛디딥니다. 헛디딘 순간에 뭔가 찡 하고 이어집니다.아니야, 이게 아닐 거야 분명 뭔가 있을거야 하는 생각이 문득 드는데요.시(73:17)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너무 속상하고 문제 풀기가 어려웠는데 어디에 들어가서 깨닫게 되었다고요?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여기서 성소는 단순히 우리가 생각하는 예배당이라는 장소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임재에 들어갔다는 말입니다.나의 능력과 지혜로는 알 수 없었던 그것을 하나님의 손길 가운데 깨달았다는 고백입니다.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심을 알게 되면요, 우리의 시각이 달라집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면 그의 시각으로 나 자신과 세상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정리가 됩니다. 세상 만사 다 귀찮던 일들이 정리가 됩니다.그 깨달은 이후가 궁금하시지 않습니까? 함 보겠습니다.시(73:18) 주께서 참으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73:19) 그들이 어찌하여 그리 갑자기 황폐되었는가 놀랄 정도로 그들은 전멸하였나이다(73:20) 주여 사람이 깬 후에는 꿈을 무시함 같이 주께서 깨신 후에는 그들의 형상을 멸시하시리이다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은 한 사람도 예외가 없습니다. 죽음 이후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을 깨닫습니다.사람마다 죽음의 개념이 어찌 다르던 간에 상관 없습니다.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말합니다.죽는다고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끝이 아하십니까 라고 얘기할 수 있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단지 오래 참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시편기자는 이것을 깨닫습니다. 죽음 이후에 하나님의 심판이 엄중하게 진행될 것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내가 생각했던 온갖 악들이 그냥 내버려 두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죄에 따라 심판을 반드시 받는다는 것, 억울했던 시편기자의 마음이 위로 받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고백하기 시작합니다.시(73:21) 내 마음이 산란하며 내 양심이 찔렸나이다(73:22) 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함으로 주 앞에 짐승이오나사람의 시선으로 본 세상과 달랐습니다. 이전에는 유혹에 휘청거렸습니다. 선하게 사는 것 같은데 괴롭습니다. 그런 괴로움에 넘어졌습니다. 이제는 자신이 우둔했음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시선을 가지니 그런 고백이 나옵니다.시(73:23)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73:24)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의 오른손을 붙드시길 축복합니다. 오른손은 권능을 뜻하고 삶의 주도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능력을 말합니다. 그 손을 붙드셨다는 것은 우리를 인도하심을 말합니다. 말씀으로 우리를 가르치십니다.세상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차게 되면, 즉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늘 느끼는 때가 오면 다른 말로 하면 종말을 깨닫게 되면 우리는 알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종말은 우리에게 두려운 날이 아닙니다.주님께서 원수의 죄를 갚아주시는 날이자 주께서 이제 우리와 늘 함께 하시는 날입니다. 그 비밀을 알게 되면 우리는 지금부터 끝까지 주님이 함께 하심을 기뻐하게 됩니다. 시인이 깨달은 것이 그것입니다. 그래서 찬양을 터뜨립니다.시(73:25)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73:26) 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하나님과의 관계의 끈을 발견한 시인은 하나님이 주시는 복에 대해 말합니다. 하나님의 여기던 때가 있었습니다. 마음을 닦으며 종교적인 만족감을 채우기 위해 다녔습니다. 자신의 교회 안의 위치를 통해 이익을 보려 했습니다. 성경은 그것이 좋다라고 하는 말이 없습니다. 세상의 교양이 복이 아닙니다. 인맥이 복이 아닙니다. 등급이 복이 아닙니다. 우리가 받을 최고의 복은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바라마지 않을 전부입니다. 우리의 진정한 재산입니다. 그런 하나님을 우리 인생을 고상하게 만드는 삶의 일부로 만들 생각이 여전히 있다면 그들이 생각하는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닙니다.다시한번 여쭤 보겠습니다. 예수믿으면 복 받습니까? 복 받는거 맞습니다.세상에서 돈 잘 벌고, 자녀들이 잘 되는 것은 부산 물입니다. 제가 부산 사람이라 부산물을 얘기 하는게 아닙니다. 이런 복은 받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정말 받아야 하는 몫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피조물에 불과한 우리가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께 고백할 수 있습니다. 뭐라고요?나의 하나님이라고요. 예수를 믿고 복을 받는다는 것은 무언가를 그득그득 안아들고 받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감당하고 상상도 못할 하나님 자신을 받는 것입니다.사람관계에서 우리는 서로 무언가 얻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서로 뭔가를 얻어 먹겠다고 덤벼들면 그 관계는 끝입니다. 결혼이 실패하는 대부분의 이유 아십니까? 당신에 나에게 해준 게 뭐가 있는데? 이 문장으로 끝납니다. 결혼 이후 행복하게 보내는 사람들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행복한 이유가 뭘까요? 우리 부부끼리 서로 마주보고 이야기 할 수 있음 해볼까요?당신이 내 삶의 이유입니다. 이렇게 진심으로 말할 수 있기 때문 아니겠습니까?하나님과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내가 그분께 받은거 못받은 거 생각하기 시작하면 끝입니다. 예수를 우리가 믿으며 우리에게 주어지는 복이 있습니다. 그분이 화목제가 되시면서 하나님과 우리의 죄로 인해 끊어졌던 관계가 회복됩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됩니다. 그분을 알아갈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