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데이비드 흄의 취미의 등장 영국철학자, 경험론자경험으로 해봐야 진리라고 생각함. 이데아가 아니라 결과론 적으로 도출. 취미기준론이라는 책을 씀. 시민들의 계급이 왕성해짐. 문화향유가 일어남취향의 문제가 대두함--> 취미라는기준이 있을까? --> 취미기준론을 쓰게됨.취미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인데, 합의를 이루어내려고 하는듯. 갈등도 야기됨. 취향의 문제때문에 헤어지는 연인이 있다.모든 사람의 감정은 정당하다.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다.미는 아름다움은 밖에 있는것이 아니다. 대상이 아름다워서 아름다운것이 아니라 온전히 우리의 마음속에 있다. 자기 내면에 이미 상상력 같은 것들이 존재함. 미를 판정하는 문제도 똑같이 내 내면에 있다. 아름다움은 그것을 느끼는 내면에서 결정됨.보편적 기준에 대해서 ..어떤것이 쾌이고 어떤것이 불쾌인지. 일단은 건강한 기관들을 가지고 있어야한다. 섬세한정서의 부족!! 섬세한 상상력!!이 부족해서 다른사람과 다르게 되는것이다. 천재에게도 상상력이 중요한데 미를 향유하는 사람들에게도 상상력이 중요하다. 예) 돈키호테의 시종섬세한 상상력을 가진사람이 이 술이 어떤 맛인지 빠르게 조직할수있는 능력이있다. 상상력이란 일종의 구상력이다. 취미기준에 도달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할까? 많은 것들을 경험해야한다. 좋은 작품이라고 소문난것들에 대해서 접해봐야한다. 미술관도 여러번 가본사람이 자연스럽다.좋은 것들을 서로 비교하고 경험하는것이 중요하다 + 가장 중요한것은 편견에서 벗어나는것 !! 까딱하면 편견에 사로잡혀서 큰일을 저지르는 사람이 많다. 훌륭한것을 쓰레기라고 말해버리는것. 러스킨이 터너를 발굴해냄. 휘슬러라는 인상주의 화가가 있는데, 강건너 화재를 묘사하는 그림을 그림(이것을 러스킨은 물감한덩이를 캔버스에 뿌리고 돈을 강도짓한다) 마티스를 보고 또 쉐라가 디스.. 그리고 나면 피카소가 또 그 자리에 들어감. 근데 마티스가 아비뇽의 처녀들을 보고 디스.. 그리고 그 자리에 마르셸 뒤샹이 들어감.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 최고의 작품이라고을 교정하는 훈련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비극의 장점이라고 말한다. 곧 실제 상황에서 그에 적합한 감정으로 반응하도록 극을 통해 훈련하고 교정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공감은 정서적 인상을 교정하도록 허락한다.“이처럼 미적 판단에 적용되는 흄의 공감의 원리는 그의 감성 미학 및 관계 미학을 넘어서 미적 판단의 보편성과 상호주관적 소통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공감의 미학이라 부를 수 있는 토대가 된다. 흄에게 미적 판단은 보편 판단인데, 그의 공감이론의 하나의 예술작품에 대한 미적 판단의 보편성이 어떻게 가능한지 혹은 미적 감상이 개인마다 다를 수 있는 취미나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인식적 비평의 대상인지에 대해서 잘 보여준다.” (79쪽)이처럼 흄은 비록 미적 판단이 참과 거짓의 대상은 아니지만 공감의 능력과 함께 취미의 객관적 기준은 존재한다고 본다. 또한 이러한 기준을 제시하고 미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사람들이 갖추어야 하는 조건을 제시하는데, 바로 1) 대상을 예리하게 지각하고 식별할 수 있는 섬세함, 2) 비평의 감각을 키울 수 있는 부단한 연습, 3) 다양한 종류의 미를 올바로 평가할 수 있는 폭넓은 경험을 통한 비교 능력의 계발, 4) 작품 외적 요소로부터 영향을 받아서 생길 수 있는 편견의 제거, 5) 전체와 부분의 비교와 이해 등에 필요한 지적 능력으로서의 양식이다. 흄은 이런 미를 감상할 수 있는 안목이 연습과 학습을 통해서 향상될 수 있다고 본다.2. 칸트의 취미에 대한 판정, 칸트의 취미 판정칸트의 4계기범주와 미적판단, 칸트에게 있어서 숭고미와 도덕성과의 연결성보편적인 감정을 끌어내는 작품들이 있다. 그 기준을 찾아보겠다고 흄이 시작하지만 결국 마지막에 명확한 답을 내리것은 칸트이다. 취미가 아주 주관적인 감정임에도 불구하고 보편적일 수 있다는것을 증명하려고 한다. 취미라는것이 개별적이고 모두가 인정받아야할 감정임에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보편적인 어떤것이 일어난다. 공감을 형성하는것이 일어남.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전체적으로보편성취미판단의 제3계기: 취미판단에서 고찰되는 목적의 관계 → 목적없는 합목적성취미판단의 제4계기: 대상들에 관한 만족의 양상 → 주관적 필연성(공통감)더 쉽게 이를 요약하면 without interest, concept, purpose으로 요약할 수 있다. 취미판단의 4가지 특성을 다시 상세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무관심성(uninterestedness) : 다른 말로는 무사심성이라고도 한다. 칸트는 미적 대상을 느낄 때 우리는 그 대상을 어떤 이해관계없이 보고 만족한다고 보았다. 칸트의 관점대로라면, 우리가 음식이나 섹시함이나 돈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는 건 진정한 미가 아니다. 반면 흘낏 아무런 관심없이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우연히 본 꽃잎이나 유리조각을 '사심없이' 아름답다고 느꼈다면, 그건 미이다. 한마디로 아름답다고 느끼는 과정에는 다른 일체의 개입요소 없이 그냥 아름답다 고 느끼는 게 전부여야 한다는 것이다.이 무관심성은 소위 예술을 위한 예술(art for art sake)을 주장하는 예술가나 이론가들 사이에서는 거의 금과옥조처럼 여겨진다. 예술가는 그냥 예술이 좋아서 하는거고, 예술애호가는 그냥 예술이 좋아서 감상하는 거라는 식의 예술지상론이 이 무관심성에 근거하고 있다. 다른 말로 이를 예술의 자율성(autonomy)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 미적 판단은 정치나 경제 등 다른 어떤 요소에 종속되지 않는 자율적인 존재라는 것이다.물론 당연히 이 무관심성이 정말인지는 후대의 미학자들이나 예술이론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이렇게 따지면 오늘날 경매에서 비싼 값에 거래되는 예술품들은 전부 무관심성에 위배되는 것이 된다. 그냥 투기하기 위해 사는거지 아름다워서 사는 게 아니게 되니까 말이다. 반대로 이렇게 따지면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서 비판하는 사회참여예술 같은 것도 성립할 수 없게 된다. 마찬가지 이유로, 소녀시대를 좋아하는건 엄밀히 말하면 무관심성에는 위배된다. 따지고 보면 소녀시대 맴버들의 여성적 매력 등에 끌리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주은 경험적 대상을 분류하고 규정, 정의하려는 인식능력이다. 반면 상상력은 판단력 산하에 있는 능력으로, 자유롭고 창조적인 정신행위이다. 상상력은 앞서 말한 무목적성을 가지며, 따라서 그 자체로 어떤 목적도 가지지 않는다. 당연히 이는 앞서 이야기한 예술지상주의(예술을 위한 예술)과 연관된다. 우리는 아름다움을 느낄 때 자기목적성, 자기지시성을 따른다.(앞서 말한 무관심성)그리고 칸트는 미적 쾌의 감정은 결코 사물이 주는 감각적 느낌이나 대상의 개념으로 환원되지 않는다고 봤다. [14] 사물화된 것(예술품 같은 것)을 볼 때의 경험은 인식행위가 된다. 진정한 취미판단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칸트에 따르면 미는 개념을 떠나 보편적으로 만족을 주는 것이다. 그리고 합목적성에 의해서, 미적 쾌(만족)는 궁극의 목적을 항한다고 한다. 인간이 제작한 미술작품에 대한 평가는 단지 성질, 분량, 관계, 양상 에 근거하여 형식적으로 미의 정도를 파악하는 것일 뿐이다.[15]숭고(sublime): 아름다움은 일차적으로 모든 대상의 형상에 관계하나 숭고는 우리가 대상의, 그것도 어떤 무한한 크기에 대하여 느끼는 심미적 정서이다. 이것은 조화와 질서가 아닌 혼란과 무질서에 의해 유발된다.칸트는 숭고를 논한 로마시대 학자 디오니시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를 인용한다. 롱기누스에 따르면 숭고는 신적인 것이며, 거대한 크기의 감각적 자연을 통해서 파악되며, 그 안에서 완결성을 가진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칸트는, 자연물은 단지 이성적 이념을 매개하는 감성적 대상일 뿐이며, 크기를 존재론적으로 완결짓는 요소로 이해하지 않는다. 칸트에게 있어 숭고한 것은 대상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에 대한 이성의 관념이다.칸트는 숭고를 다시 수학적 숭고와 역학적 숭고로 구분한다.수학적 숭고 : 단적으로 말하면, 매우 매우 큰 것이다. 칸트는 대표적으로 피라미드를 예시로 들지만, 그보다 더 큰 것이라고 했다. 요즘식으로 굳이 말한다면 우주나 수학의 무한 개념을 생각해보자. 이 수학적 숭고를 느낄 때 인간망하고 좌절하는 순간 그 한계의 초월에 이르게 되는 역설적인(paradoxical) 성격을 지닌다. 이러한 좌절을 통해 우리 내부의 초감성적인 능력이 일깨워짐으로써 그리고 상상력의 확장으로 인해 생겨나는 감정이 숭고함의 감정이다. 그래서 칸트는 ‘참된 숭고성은 자연 대상이 아니라, 단지 판단하는 사람의 심의에서 찾아야만 한다’라고 분명하게 밝혔다.많은 사람들은 보이는 대상에서 아름다움을 찾을려고 하는데, 칸트에 의하면 사실은 우리 내부, 즉 자신이 느끼는 감정 속에 ‘미’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플라톤의 ‘현실의 재현이 예술이다’라는 개념에 따라, 석고대상을 그리던 미술 academy들의 방향이, 칸트의 영향과 20세기 이르러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와 같은 반플라톤적 철학자들의 영향으로 자신의 미학, 철학을 통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미를 발현시키는 방향으로 예술교육이 변화하고 있다.숭고함을 경험할 때 우리의 심의 상태는 아름다움을 경험할 때와 분명하게 구별이 된다. 칸트는 아름다움을 경험할 때 우리들의 심의는 ‘정적인 관조(ruhige Kontemplation)’의 상태를 유지하면서 목가적인 안온함에 안주하는 상태인데 반해, 숭고함을 경험할 때는 ‘심의의 운동(eine Bewegung des Gem?ts)’이 수반되면서 자체 내의 불일치와 부조화를 통해 초감성적인 것으로의 고양이 유발되는 상태가 된다고 말하고 있다.크로서(Paul Crowther, 1953-)는 숭고함의 판단에 대한 역설적 성격에 주목하면서, 칸트에 의한 자연의 숭고함의 논의를 예술의 영역에까지 확장시키려고 시도하였다. 칸트에 의하면, 취미 판단은 상상력과 비규정적인 오성 간의 자유로운 유희에 근거하는 판단인데, 크로서는 이러한 유희를 우리 인간의 두 요소, 즉 감성적인 요소와 합리적인 요소 간의 조화로움으로 변경시킨다.그래서 크로서는 취미 판단은 합리적 요소와 감성적 요소 간의 양립성을 느끼는데 근거한다는 주장을 하면서 숭고함의 경험을 미학 자체와 관련된 것한다.
건국대학교 행정학과2015년 2학기정부 성과 관리론CAR-추가주제 : 리더십 이론의 세 가지를 기반으로 하여 한 사람의 리더십을 분석해보고 현대 사회에서 바람직한 리더의 요건이 무엇인지에 대해 논하시오.서론리더십이란, 조직의 목적을 달성하려고 구성원을 일정한 방향으로 이끌어 성과를 창출하는 능력이다. 리더십은 조직의 필수요소로, 조직의 한정된 자원의 극대화 정도는 리더에 달려있다. 따라서, 21세기에 필요한 리더십이 무엇인지는 사람들의 최대의 관심사다. 이러한 흐름에서, 3가지 리더십을 비교하여 현대 사회의 가치에 가장 부합하는 리더십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아보고, 그 리더십에 맞는 리더의 사례를 찾아본 후, 현대 사회에 바람직한 리더의 요건에 대해 논해보고자 한다.본론3가지 리더십 변천과정의 비교 표자질이론행태이론상황이론좋은 리더결정 조건선천적후천적후천적, 상황이나 부하바람직한 리 더좋은 자질을 가지고 태어났으며, 자기의 뜻을 잘 전달하는 리더업무지향과 인간지향성 모두 높은 수준인 리더부하의 잠재적 능력을 최대화해 스스로 성장했음을 확신시켜주는 리더keyword능력, 구조, 목표, 순응, 장악력, 추진력성취지향성, 관계지향성태도, 신념, 비전, 수용, 소통, 협력특 징- 통제, 규칙, 규정. 정책의 일관성과 신뢰성 추구측면에서 민츠버그의 기계모형에 가까움- 고전적 관리이론의 인간과 환경에 대한 가정과 비슷함- 업무지향적, 성취지향적 정도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리더를 가정함- telling, selling, participating, delegating- 부하의 신념과 태도를 중시, 부하를 무조건적 순응시키기보다 수용한다는 점에서 민츠버그 규범적 모형과 비슷함- 부하들로부터 자발적 협력을 이끌어내는 버나드의 이론과 닮아있음한 계- 학습과 노력으로 리더의 자질을 기를 수 있음을 간과- 리더가 어떤 부하와는 맞지 않는 상황을 이분법적 해석할 가능성이 있음-부하에 따라 바람직한 리더의 모습이 달라질 수 있음을 간과- 실질적인 측정, 조작, 활용, 관리 등이 어려움의 하는 리더가 바람직한 리더라고 주장한다. 통제, 규칙, 일관성과 신뢰성의 강조 측면에서 민츠버그의 기계모형에 가까우며, 고전적 관리이론에서와 같이 인간과 환경을 가정하고 있다. 바람직한 리더의 기준이 무엇인지에 대한 나름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고, 선천성과 비범함의 강조를 통해 리더의 권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 하지만 학습과 노력을 통해 자질을 기를 수 있음을 간과했으며, 리더와 부하가 맞지 않은 상황에서는 좋은 리더가 아니거나 좋은 부하가 아니라는 이분법적 해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한계를 갖고 있다.행태이론행태이론은 리더의 자질이 후천적으로 학습될 수 있다는 것부터 이전의 자질이론과 크게 다르다. 뿐만 아니라 행태이론은 과업지향성과 관계지향성의 정도가 리더마다 다르고, 그 둘의 정도가 서로 다른 다양한 리더가 현실세계에 존재할 수 있음을 주장한다. 이 이론에서는 과업지향성과 관계지향성이 모두 높은 리더를 바람직한 리더의 모델로 간주하고 있다. 행태이론은 후천적 노력이나 학습을 통한 리더십의 개발의 가능성을 열어두었다는 점과 다양한 리더십이 공존하는 현실을 잘 반영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지지만, 부하나 상황에 따라 바람직한 리더의 모습이 서로 다를 수 있음을 간과했다는 점에서 한계를 가진다.상황이론마지막으로 상황이론은 행태이론에서 바람직한 리더십의 결정조건에 상황이나 부하가 추가된 이론이다. 즉, 리더십을 부하가 최종 결정한다. 가지각색의 부하들이 존재하고, 리더십이 효과적이기 위해서는 부하들의 주관적 해석이 중요하므로 리더는 그들의 감정적, 심리적, 비합리적 요인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상황이론에서 주장하는 바람직한 리더는 부하가 가지고 있는 잠재적 능력을 최대한 이끌어내어 부하 스스로 성장했음을 확신시켜주는 리더이다. 상황이론은 실제로 조작, 측정, 관리 등이 어렵다는 한계가 있지만, 리더십의 대상인 부하들과의 쌍방향적 소통 부하들에게 미치는 영향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상황이 측면에서, 상황이론은 현대 행정에서 중요하게 대두되고 있는 사회자본, 네트워크와 협력, 조직학습, 전략적 기획 등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진다.상황이론은 리더십 이론 중 현대사회의 새로운 초점에 가장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환경, 사람, 조직, 그리고 자원의 측면에서 현대 행정과 추구하는 가치가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환경 관점에서, 개방적, 쌍방향적, 불규칙적인 환경을 가정하고 있으며, 인간을 y론적, 능동적, 이기적 존재로 바라보아 관리자가 부하 개개인의 특성과 주관적 해석, 신념, 태도에 민감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또 조직 관점에서, 이전의 구조와 경계, 안정성, 규칙성 추구에서 벗어나 기능과 결과, 신속성, 대응성을 더욱 중시하며, 자원 관점에서,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를 강조하고, 자원을 개발하기보다 계발하는 것을, 동원하기보다 기존에 있는 것들의 사용방식을 변경해보는 시스템화하는 것을 추구한다. 따라서 상황이론은 새로운 현대사회가 지향하는 가치와 가장 가까운, 현대에 가장 바람직한 리더십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김성근 감독의 리더십 소개와 분석김성근 감독은 야신(野神)’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야구 감독이다. 김응용 감독의 "마치 야구의 신과 싸우는 것 같았다"는 발언은 김성근 감독에게 ‘야신’이라는 별명을 안겨주는 동시에, 현재 프로야구에서의 그의 위치를 짐작하게 해준다. 그는 1984년∼1988년 OB 베어스 감독을 시작으로 태평양, 삼성, 쌍방울, LG 등 여러 프로 팀을 전전하며 극적인 성적 향상을 이끌어내며 감독으로서의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는 혹독한 훈련과 냉철한 운영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선수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는 감독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과업지향적 측면과 관계지향적 측면에서 살펴볼 때, 김성근 감독의 리더십은 (9,9)에 해당한다. 먼저 김성근 감독은 과업지향적인 성격이 아주 강한 편이다. 그의 별명인 ‘야신’에서도 프로야구에서의 그의 위치와 성과를 짐작할 수 있다. 또 김. 따라서 그는 야신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과업지향적 정도가 높고, 선수들을 진심으로 아끼는 어버지의 마음은 리더로서 높은 관계지향성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한편, 김성근 감독은 선수들이 가지고 있는 1%의 가능성을 찾아, 맞춤형으로 지도하고자 한다. 선수들의 1% 가치를 발굴하기 위한 그의 선수 지도는 항상 케이스 바이 케이스, 즉, 그때그때 다른 상황에 따른 대응을 기본으로 한다. 예를 들어, 김성근 감독은 선수들을 크게 네 종류로 구분하는데, 그것은 실력과 욕심도 있고 자기관리도 가능한 경우, 실력은 부족하나 욕심은 있는 경우, 실력은 있으나 목표 의식이 부족한 경우, 그리고 실력은 부족하나 욕심은 있는 경우이다. 그는 선수들 한 명, 한 명의 특성을 파악하고 적재적소에 배치해 역량을 살리는 맞춤형 리더십을 자신의 비결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그는 행태이론에서의 (9,9)에 해당하는 리더이며, 선수들에 따라 그들에게 필요한 맞춤형 리더십을 펼치고 있으므로 상황이론에 상당히 부합하는 리더라고 할 수 있다.김성근 감독의 상황이론적 리더십은 현대사회가 추구하는 가치와 맞닿아있다. 환경 관점에서 김성근은 불규칙적이고 개방적, 쌍방향적으로 환경을 바라보아 경기 전략이든 선수 지도든 ‘케이스 바이 케이스’를 강조했다. 사람 관점에서, 그는 선수들을 팀이지만 그 안의 개개인을 바라보았고, y론적, 능동적, 이기적인 존재로 여겨 위생요인적 측면에서 선수들이 훈련에 집중할 수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도록 구단에 요구했으며, 선수들이 자신만의 사고를 거쳐 스스로 동기부여 되도록 유도했다. 조직 관점에서, 기능과 신속성, 대응성을 중시하여 자신이 컨트롤 타워가 되어 경기마다 선수들의 특성을 살린 승리 전략을 세웠다. 마지막으로 자원의 관점에서, 김성근 감독은 하드웨어보다 구성원 하나하나의 의지와 실력 등에 집중하여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데 집중하였고, 실력 좋은 선수들에 안주하기보다 인정받지 못하던 선수들을 발견하고, 계발하는 것을 보람으로 여겼다. 이러한 맥락에서, 김개인의 잠재력과 조직의 시너지 효과를 얻는 것’이 현대에 주목 받고 있는 성과관리의 비법이다. 이러한 시선은 민츠버그가 주장한 미래의 가장 바람직한 정부 모델인 규범적 모델과 버나드의 협력 이론, 그리고 사회자본, 학습조직, 전략적 기획 등 최근 대두되고 있는 이론들의 흐름 속에 공통적으로 녹아 들어있다.그러므로 현대 사회의 바람직한 리더는 개개인의 사람, 그 사람들 사이의 무언가와 조직 전체, 그리고 조직 외부의 환경을 바라보는 균형 있는 눈을 가진 사람이다. 현대 사회에서 바람직한 리더의 시선은 이전의 자질이론에서와 같이 리더 자신, 엘리트 혹은 상층부에 있기보다 상층부부터 하층부까지의 전체 조직원 모두에게 골고루 향해있어야 한다. 이러한 시선은 조직원 한 명, 한 명에 대한 애정과 신뢰로 향해야 하며, 그들을 연구하고, 가능성을 발견하여 적재적소에서 능력을 발휘하도록 해주어야 한다. 또한 개인을 향한 시선은 전체의 조화로운 구성으로 이어져야 하는데, 조직 구성원들이 함께 협력하여 더 큰 성장을 이룰 수 있도록 미션과 비전을 명확히 설정하고, 그들 사이의 무언가를 끈끈한 연결고리로 만들어 줄 방법을 연구하고 또 연구하여야 한다. 뿐만 아니라, 리더는 예측 불가능한 환경에서 조직의 생존을 위해 미래를 보는 눈을 기르고, 끈임 없는 혁신과 상황에 맞는 모습으로의 변화를 항상 대비해야 한다. 이에 대해, 김성근 감독은 “위기를 극복하는 힘은 상식적인 생각이 아닌 비상식적인 아이디어로부터 나온다. 때문에 끊임없이 배우고, 자신을 혁신해나갈 때 존경 받는 리더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현대 사회의 바람직한 리더는 이러한 균형 있는 시선을 통해 각 개인의 잠재력과 조직 전체의 시너지, 그리고 외부 환경과의 조화를 극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결론지금까지 3가지 리더십을 비교하여 현대 사회의 가치에 가장 부합하는 리더십으로 상황이론의 리더십을 꼽아, 상황이론에 맞는 리더인 김성근 감독의 사례를 알아본 후, 현대 사회에 바람직한 리더의 요건에 대해 논해보았다. 사다.
행복한 삶과 문학 치료 기말 과제팀 활동 내용: 저희 조는 공통적으로 ‘감싸기’ 서사 유형에 친밀감을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특히, 부모서사에 있어서 감싸기 유형이 공통적으로 나타났기 때문에 감싸기 서사를 담고 있는 문학작품을 물색해 보았습니다. 천개의 찬란한 태양, 셜록홈즈, 데미안 등 다양한 문학작품들이 거론 되었는데 팀원 내부에서 공통적으로 익숙하고 발표할 때 전달력있게 할 수 있는 작품을 선정하다 보니 ‘미스리틀선샤인’과 ‘굿윌헌팅’이라는 영화로 발표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두 작품에서 ‘미스리틀선샤인’에서는 아이의 다소 허황된 꿈을 가족 전체가지지 해주고 감싸 안아가는 서사를 통해서 ‘감싸기’태도가 한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중심으로 분석해보았습니다. ‘굿윌헌팅’에서도 맷데이먼이라는 천재적인 성향을 띄고 있는 제자에게 각기 다른 두명의 스승이 대하는 태도를 통해서 ‘감싸기’서사를 분석해 보았습니다.동의하는 부분: 저 또한 연인 관계 등에서 ‘감싸기’성향을 지극히 많이 보이는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미스리틀선샤인에서도 아이를 위해서 가족 전체가 suv차량을 타고 여행을 떠나는 형식이 거부감없이 다가왔고 마지막에 다함께 무대에 올라가 춤을 추는 장면에서는 감동까지 느껴졌습니다. 또한 굿윌헌팅에서도 윌리엄스가 맷데이먼의 예의없는 행동에도 끊임없이 그를 믿어주고 여자친구를 만나러 떠나는 장면에서까지 모든 것을 감싸주는 그의 태도가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스승의 모습과 닮아있었습니다.다소 상반되는 입장: 하지만 사실 저는 ‘감싸기’성향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부모서사’에서 만큼은 ‘밀치기’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성장환경에서 몇몇 어려움을 겪으면서 느낀것인데 지나치게 감싸고 지나치게 보호적인 환경에서 자라면 오히려 아이가 나중에 겪을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장애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아이와 부모와의 관계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바람이 넘나들 수 있는 거리를 유지하고 정말 필요할 때만 아이를 감싸주거나 훈육해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그렇지만이다. 기껏 인생을 소중하게 여긴다고 떠들어대지만 채 이년을 못가 돈을 탕진한다. 그나마 돈으로 뭔가를 사야만 버틸만한 인생이다. 울퉁불퉁한 국도는 뻥 뚫린 고속도로보다 익숙하다. 아니 맘에 든다. 이 소형차에 몸을 낑겨 넣고 타이어가 자잘구레한 조약돌들에 눌리는 것을 느끼다 보면 되려 내 인생을 사는 느낌마저 들곤 한다. 누군가에겐 인생이 한순간도 쉽지 않을 수 있으니까. 자작나무마저 내 꼬일 대로 꼬인 인생을 조명하는 듯 다닥다닥 붙어있다. 벗어나려고 달리지만 벗어날 수 없는 기분마저 익숙하다. 뻥 뚫린 고속도로에 크고 작은 승용차들이 쌩쌩 달리는 것을 보면 이질감이 느껴진다.북부간선도로를 타고 경춘북로를 거쳐서 내가 가려는 곳은 강원도 가평이다. 고3, 수험생활을 막 끝내고 친구들과 들뜬 마음을 가지고 왔던 가평을 35살 이 나이 먹도록 뻑하면 올줄은 몰랐다. 가평을 가려하니 내가 참 쉬운 여자구나 하는 경멸감을 지울 수 없다. 나는 그런 여자다. 사랑에 굶주려서 누군가가 아주 작은 호의만 베풀어도 그 사람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는 여자다. 그렇다고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매일 밤 아버지의 술주정도 이겨내고 대학에 입학한 나였다. 그 어렵다는 취업난을 이겨내고 취직에 성공한 나였다. 돈이 없어도 어떻게든 사고 싶은 것은 사야만 직성이 풀리는 나였다. 어떤 순간에도 무너진 자신감을 들키지 않으려 눈물을 삼켜냈던 나였다. 이런 내가 몇 번이나 실패하고 넘어진 사랑에 또 다시 희망을 품으며 승용차에 타있다니 스스로에게 픽하고 조소가 나온다.강원도에 이르러서 k가 예약해놓았다는 펜션을 찾으며 자꾸만 마음이 설렌다. 빨리 보고 싶다. 역설적으로 그런 마음을 가지는 내가 한심하다. 사랑을 할수록 상처만 남는다는 걸 그간 뼈저리게 배워왔다고 하더니 나는 나일뿐 인 것인가. k는 자기 성격에 맞게 펜션 예약마저도 펜션 촌에서 가장 변두리에 있는 그리 특출 나지도 그리 빠지는 구석도 없는 어중간한 규모의 펜션을 구해두었다. 강원도로 출장 온 김에 하루 소비에 대한 위안을 삼고 있다.k가 계단을 올라오는 것 같다. 적당히 가벼운 몸무게를 가지고 있는 k의 발소리는 익숙하다. 소심한 성격 탓일까 계단을 지긋이 밟고 올라오기 때문에 몸무게에 비해 꽤 둔탁한 소리가 난다. 출장중에 급하게 시간을 내서 온 여행이라 그럴까 몰골이 형편없다. 몸은 왜 이리 빼빼 마른건지 k의 모습에 신경질부터 난다. 누구나 알아줄 만한 대학을 나오고 성실하다는 것 빼고는 정말이지 봐줄 만한 게 없는 남자이다. 에블린 속옷을 입고 있는 나를 보고 k는 건성으로 ‘우와, 너무 이쁘다’라고 말한다. 구차하다. 비참하다. 하지만 나는 비참한 내색을 하는 법을 잊어버렸다. 오히려 ‘너무 고마워, k야’하며 오랜 기간 내면의 목소리와는 다른 표정과 말투로 비참함을 감추고 했던 나였다. 화장실에 들어가서 몰래 북받치는 울음을 유보하며 옷을 걸치고 나온다.그런데 k야, 이건 나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야. 중학생. 그래 그 정도의 이야기이지. 비가 오는 밤이었어. 유달리 밤이 되었는데 잠이 안 오더라고. 왜 그런 날 있잖아. 방문을 열고 어두운 거실을 지나서 화장실을 가려고 하는데 유달리 어둠이 뿌옇다고 해야 하나.. 내가 알던 어둠은 아니었어. 왠지 그런 느낌이 들었어. 나는 불을 켜봤어. 거실이 온통 연기로 가득 차 있었어. 집안의 가족들을 모두 깨우고 119에 신고를 했지. 우리 집에 불이 났다고 말이야.보일러 실에서 불이 난거였어. 좀만 더 시간이 지났다면 우리 가족 모두 위험했을 거라고 일찍 알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하셨지. 그런데 말이야, 방화범은 우리 아빠였어. 세상 되는 일 하나도 없던 아빠는 밖에서 큰소리를 치지 못하시고 집에 와서야 그 화를 다 풀어내셨어. 왜 그런 사람 있잖아. 비열하고 약한 사람. 아마 아빠 인생에서 풀리는 실타래가 거의 없으셨나봐. 그래서 집을 부수고 집에 불을 내고 그래, 그렇게 위로 받으셨던 것 같아.나는 어땟냐고? 나는 담담했어. 그냥 책을 읽었어. 구제할 수 없는 아빠 인생에 신경을 쓸 만큼 관대한 사람은 아 내가 싫어하는 나의 모습일 지도 모르지만. 그래 그는 나의 어떤 모습을 싫어했을지 알 수 없다. 그냥 마음에 안 든다. 다 마음에 안 든다. 그치만 마음에 든다고, 너무나 멋진 피조물이라 서로를 감싸든다. 그저 사라질 수 없어서 존재한다.미세하게 떨리는 소리, 오토바이가 다가오는 느낌이 든다. 이 오지까지도 배달이 되다니 한국이라는 나라도 참 대단하다. 돈이 되는 일이라면 불가능도 가능으로 만들어버리는 참 인간답지 못한 나라 같다. 나는 치킨이 오자마자 오바스러운 목소리로 구구절절 여행을 와서 즐겁고, 너와 함께여서 더욱 좋고, 치킨까지 시켜먹으니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이야기한다. 사실 모든 것이 마음에 안 들지만 말이야. 기껏 쉬는날 강원도 오지까지 나를 ‘혼자서’오게 한것도 마음에 안 들고, 마지못해 너랑 단둘이 여기에 남겨져서 하루 왠종일 너의 사랑을 갈구해야 하는 것도 짜증나고, 낭만이라곤 하나도 없는 치킨을 뜯어야 하자니 이거 좀처럼 술 없이는 버틸 수 없는 하루가 될 것 같다.대충 k의 센스와 매너에 대한 찬양을 마치고 치킨과 함께 부리나케 소주를 부어 넣는다. 한 반병 쯤 소주를 마셨을까 슬슬 볼의 감각이 없어지고 마음에서 북받치는 감정이 목구멍까지 올라온다. 술 마신 김에 좀 인간다워져 볼까. 마음에 있는 말을 좀 쏟아내 볼까. 이미 결정은 소주를 시킬 때부터 했던 일이다. 더 이상 참는 것이 지겹다. 인내는 미덕이며 남자의 답답함을 견디는 것은 여성 미덕의 결정체라고 믿었던 나였다. 근데 이러다가 내가 죽겠다. 답답해 죽겠다. 반병 쯤 술을 더 들이 붓는다.k야 너 그거 기억나니? 나 너가 지방근무지에 파견가있을 때 만났잖아. 촌스러운 까까머리한 너의 짧은 머리도 촉감이 좋다며 계속 쓰다듬었던 나였어. 서울에서 울산까지 너 만나러 가는길이면 그 전날밤에 설레서 잠도 못잤어. 5만원이 넘는 모텔비도 너가 부담이될까봐 내가 냈었잖아. 너가 동료들 만나는거 싫다고 밖에 나가기 싫다고 해서 모텔방에서만 내내 있는 것도 나는 이해했어. 사랑하니까 다 도 늘 너의 편이 되어주고 동갑내기인 우리지만 너를 오빠처럼 아빠처럼 받들어야 하니까.그래 내가 술을 먹고 이런 적이 한 두번은 아니야. 너랑 만나면서 처음 이년을 제외하고는 매년 한번 씩은 그랬던거 같아. 그냥 이렇게 말해야 너 곁에서 버틸 수가 있어서 그래. 너에게는 불편한 진실이겠지. 아니 그냥 없애야할 행동에 불과하겠지. 너는 내가 술을 먹은 날이면 어김없이 나를 때리고 온몸에 멍이 들어 울고 있는 나를 씻겨주며 위로해 주었어. 그리고는 허겁지겁 지갑을 들고 나가서 파스를 사와 붙여줬어. 너는 나를 사랑한다고 말했어. 우리 사이가 금이 가는게 두려워서 그랬다고 말했어.그런데 말이야 너는 그거 아니. 나는 너에게 맞는 동안 침대에 강제로 엎드려져서 맞고 있는 동안 침대보를 너 몰래 입술로 물고 참아냈어. 나는 그냥 참아 냈던 거야. 너가 없으면 안될거 같아서. 내 엉덩이를 발로 차고 머리채를 잡고 고개를 뒤로 젖혀대는 너에게 그냥 미안하다는 말을 했어. 근데 있잖아. 그렇게 너가 나를 패는 동안 그렇게라도 감정적인 너를 볼 수 있어서, 너의 진짜 모습, 내면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너가 그렇게라도 나에게 영향을 끼치는 모습을 보면서 이것도 사랑이다 나를 위로했어. 그래. 너가 나를 때릴 때면 나는 숨을 쉴 수 있었어. 도저히 소통이 되지 않던 너에게 가장 인간다운 모습으로 우리가 만나는 거 같았어. 그래서 그냥 참아냈던 거야. 이제 이 연극을 끝내야 겠지.여행 1주일 전,세종대왕과 이순신 동상이 서로 평행을 이루듯 큰 도로 위에 서있는 광화문 길거리를 지나가면 이상하게 기분이 좋다. 이 조그마한 차로 광화문의 4차선 도로를 지나가다 보면 작고 크고, 비싸고 싸고 다양한 차종들이 섞여서 자기네들의 목적지를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어딘가 목적지가 있다는 것, 어딘가에 속해져 있다는 것은 참 마음 놓이는 일이다. 불안하지 않은 일이다. 작은 차를 몰고 회사 지하에 있는 주차장 한 구석에 차를 주차한다. 왠지 중앙보다는 구석이 맘 편하다. 누군가에게 나를 보여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