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수상자 코흐(Robart Koch)1905년「결핵에 관한 발견과 연구」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1843.12.11.~1910.05.27 독일의 세균학자 코흐는 파스퇴르와 함께 세균학의 시조로 일컬어진다.그는 소 눈의 방수(房水)로 순수배양한 배양균을 생쥐에 접종해 앞의 예와 같은 병변을 증명했다. 또 창상감염(創傷感染)의 병원균을 연구하여 농(膿)속의 포도상구균·연쇄구균을 병원으로 확인, 보고했다.82년 코흐는 결핵균의 발견에 관한 상세한 논문을 《베를린 임상주간지(臨床週刊誌)》19호에 발표했다.그는 염색하기 어려운 결핵균을 알칼리성 메틸렌블루 40도, 40~60분의 특수염색법을 고안, 모든 폐결핵 환자의 객담 속에서 그 존재를 증명한 데 이어 응고혈청(凝固血淸)을 사용, 결핵균을 배양하고, 실험동물로는 기니피그를 사용했다.코흐는 병원균의 결정에 있어, 후세의 사람들이「코흐의 원리」라고 부르는 다음과 같은 3개 조항을 이념으로 삼았다.① 문제의 미생물은 그 병의 모든 증례(症例)에서 증명되어야 한다. 또 병변에 일치해분포되어 있어야 한다.② 환자의 체외에서, 시험관 내에서 순수배양되고 몇 세대 계대되어야 한다.③ 그 배양균을 동물에 접종해 같은 병을 재현해야 한다.83년 그는 인도에서 콜레라균을 분리·증명하는 데 성공했다.오늘날 콜레라균의 학명은 Vibrio cholerae Pacini 1854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코흐의 연구보다 30년 전에 이탈리아의 F. 파치니가 콜레라로 죽은 사체의 장관(腸管)내에서 활발하게 운동하는 미생물을 발견, 그것을 콜레라의 병원(病原)으로 간주하고 학명을 발표했기 때문이다.그러나 콜레라균에 대한 실제적인 과학적 연구는 코흐로부터 시작되었다.90년 그는 결핵에 대한 특효치료약으로 투베르쿨린을 발표했다.투베르쿨린은 피부결핵에 대해서는 극적인 효과를 나타내었으나, 폐결핵과 그 밖의 결핵에 대해서는 역효과가 나타난 것이 문제가 되어, 결국 결핵의 알레르기 진단(투베르쿨린 반응) 약으로 활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참고문헌 - 사이언스올 과학사전 http://www.scienceall.com/%ec%bd%94%ed%9d%90robert-koch/- URL※ 코흐는 괴팅겐대학에서 수학하였고, 올스타인지방 위생기사, 베를린대학 교수 신설전염병연구소의 소장을 역임하였다. 그 후 이집트, 인도, 아프리카 각지에 연구여행을 하였다. 위생기사시절에는 탄저병의 병원균을 발견하여 F.J. Cohn의 인정을 받았고 최초의 현미경사진은 Cohn의 작품으로 발표하였다.미생물병 원인론의 확립, 배양과 염색 등의 검사방법, 그 밖에 병원균학 기술의 건설에 획기적인 업적을 남겨, Koch학파의 중심으로서 세균학사상에 Koch시대를 열었다.탄저병의 순수배양(평판배양법) 및 검사방법, 결핵균과 콜레라균의 발견, 투베르쿨린 등은 특히 유명하고 기타 트리파노소마증, 우역(牛疫), 말라리아, 장티푸스 등의 연구가 알려져 있다. 1905년 결핵균의 연구로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하였다.코흐멸균기: 종형(縱型) 원통형의 상압살균기. 뚜껑 부분이 원추형이고 중앙부에 증기의 내뿜는 입이 있다. 내부에는 선반이 있고 거기에 살균해야 할 기구를 놓고 그 하부에 물을 넣어 아래로부터 가열하여 끓인다. 소용량의 배지 및 소형 기구류의 살균에 사용하지만 배지 등의 완전살균을 위해서는 간단살균법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코흐의 원칙 또는 조건은 균의 병원성 문제를 균 대 동물의 관계에서 고찰한다는 점에 주목한 것으로서 오늘날의 감염발증학의 기초를 이룬것. 어떤 균이 어떤 특정한 병의 원인균으로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다음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소위 코흐의 원칙이란 다음과 같은 것이다.(1) 그 병이 있는 곳에는 항상 그 병변부위로부터 균이 증명되어야 한다.(2) 그 균은 다른 병에서는 우연히, 또는 무해인 기생체로서도 나타나서는 안 된다.(3) 그 균은 생체 외에서 순 배양하여 분리된 균이 감수성이 있는 동물에 접종했을 때에는 원래와 똑같은 병을 일으켜야 한다.이러한 코흐의 원칙에 따라 19세기 후반의 10수 년간에 여러 종류의 감염병 병원체의 발견이 계속되어 병원세균학이 크게 개척된 것이다. (3)에서 기술한 원칙은 숙주-기생체 관계 중에서 감염증의 고찰이라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이를 계기로 균 대 동물의 조합의 차이에 의해 일어나는 감염증의 종류가 달라진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티푸스균은 사람에 대해서 낭티푸스증을 일으키는 것이나, 사람에 급성 위장염을 일으키는 쥐티푸스균이나 장염균은 쥐에 대해서도 티푸스성 질병을 일으킨다는 것은 균 대 동물의 조합 차이에 따라 감염증의 종류가 달라지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2) 항목은 부현성 감염이라는 문제에 대한 고려가 없었다는 것과 (3) 항목에 대한 문제점은 현대 미생물학의 지식으로 볼 때, 검토해야 할 점이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해도 코흐의 원칙이 병의 원인론의 기본이 되는 문제를 숙주-기생체 관계를 중축으로 하여 고찰하고 있다는 것은 중요한 의의로 인정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 책 제목: 생명과학대사전, 저자: 강영희, 발행연도: 초판 2008. 개정판 2014, 도서출판사: 아카데미서적, 챕터: 코흐, 코흐멸균기, 코흐원칙.※ 미생물이 질병의 원인이라는 사실을 입증한 사람은 독일의 의사인 로버트 코흐였다.코흐는 ‘Koch의 가설’을 발표하였다.① 질병에 걸린 모든 동물에서 미생물이 검출되어야 하며, 건강한 동물에서는 검출되지 않아야한다.② 질병에 걸린 동물로부터 미생물이 분리되어야 하고 또 순수배양되어야 한다.③ 분리된 균을 건강한 동물에게 접종했을 때 동일한 질병을 일으켜야 한다.④ 미생물은 재접종되었던 동물로부터 동일균종이 분리되어야 한다.→ 참고문헌 ? 책 제목: 핵심 병원미샐물학, 저자: 이광배, 발행연도: 2015, 도서출판사: 고려의학, 페이지: p. 8~9.※ 프러시아 출신의 코흐는 프프전쟁(보불전쟁)에 자원해 군의관으로 참전하는 등 모험을 좋아하는 성격이었다. 그러나 그의 첫사랑은 이러한 그의 성격을 못미더워했고, 결국 코흐는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하기 위해 조용한 시골에서 개업의사로 살아가겠다는 약속을 한다. 반복되는 일상에 따분함을 느끼던 그를 위로하기 위해 아내는 당시 사회의 큰 논점인 미생물과 세포학을 연구할 수 있도록 현미경을 선물하는데, 이것이 그의 인생을 바꾸어 버린다.이 무렵에는 탄저병이 대 유행했다. 가축도 일단 걸렸다 하면 하루를 못 버티고 죽었으며, 감염된 사람들도 죽는 경우가 많아 농촌마다 탄저병의 공포에 떨었다. 탄저병에 관심을 갖게 된 코흐는 탄저병에 걸린 동물의 혈액을 쥐에게 주사하자 이 쥐가 하루 만에 죽는 것을 알았다. 죽은 쥐의 혈액을 관찰한 결과 이미 앞선 연구자들이 발견한 간상체를 다수 발견했다. 이 간상체는 실 모양으로 늘어서기도 하고, 작고 둥근 모양으로 떨어져 나와 포자를 형성하기도 했다.이 세균은 환경변화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성질을 지녔지만, 일단 포자를 형성하면 주변 환경에 대한 저항력이 강해져서 어떤 상황에서든 죽지 않고 버텨나갈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코흐는 이 세균이 동물의 몸 안에서 늘어나면 탄저병이 발생하는 사실을 발견한다. 코흐는 이 내용을 1876년에 발표하며 이때부터 한 종류의 병원균만을 순수배양하기 위한 방법을 세우기 위해 연구를 진행한다. 코흐는 세균연구의 기초 방법을 세우고 현재도 이용하는 멸균법을 자신의 연구에 적용해 실험 기자재들의 오염을 방지하는 데 공헌했다.코흐의 능력을 인정한 독일 정부는 1880년에 베를린 국립 보건 연구소를 설립해 그를 소장으로 임명했다. 이 연구소는 프랑스의 파스퇴르 연구소와 마찬가지로 전 세계의 연구자들이 모여드는 중심지로 자리 잡는다. 코흐의 제자들 가운데에는 노벨상을 수상한 사람이 여럿 있고, 이 실험실에서 이룬 연구업적이 세균학 발전에 큰 공헌을 했다. 19세기 말에 속속 밝혀지기 시작한 각종 전염병의 원인균인 임균, 단독균, 매독균, 재귀열균, 나균, 디프테리아균, 파상풍균, 폐렴균, 뇌수막염균 등을 발견한 공로는 각 개인에게 돌아갔지만, 이들의 업적이 세균학의 기초를 다진 코흐의 영향임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탄저병의 원인균을 규명한 뒤 코흐는 산업혁명으로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큰 문제로 떠오른 결핵의 병원체를 찾아내기 위한 연구에 몰두했다. 드디어, 코흐는 1882년 3월 24일 베를린의 병리학회에서 결핵의 원인균을 찾아냈다는 발표를 했다. 또, 1800년대 초에 인도에서 시작해 수차례에 걸쳐 전 세계에 퍼지던 콜레라의 원인균을 살펴보기 위해 제자인 가프키를 데리고, 당시 가장 콜레라가 만연하던 알렉산드리아로 갔다. 경쟁자인 파스퇴르도 루를 단장으로 하는 그의 제자들을 파견해 선의의 경쟁을 펼친다. 그 결과, 코흐의 연구팀이 1883년에 콜레라균 상태를 살피고 그 감염경로를 밝혀 예방을 위한 기초방법을 내 놓는다.? 세균학의 아버지 코흐→ 참고문헌 ? 책 제목: 인류를 구한 항균제들, 저자: 예병일, 발행연도: 2007, 도서출판사: 살림, 챕터: 세균학의 아버지 코흐.※ 파스퇴르가 젊은 과학자로 명성을 얻기 시작하던 당시, 독일의 한 산골 마을에서 그의 강력한 라이벌이 태어났다. 바로 의사이자 미생물학자인 로베르트 코흐이다. 다섯 살 때 신문을 보고 글을 깨칠 만큼 똑똑했던 아이는 후에 괴팅엔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게 되었고, 코흐는 대학을 졸업하고 베를린, 함부르크 등지에서 경력을 쌓고 전쟁터에서 군의관으로 일하기도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