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회차 과제물제 4장의 글은 연합정책협정을 둘러싼 정당 내, 정당 간 정치와 정당의 기본정책과 연합정책협정의 차이가 연립여당의 균열과 정당 내 대립에 미치는 영향을 가타야마 중도 연립 내각의 사례를 통해 분석한 글이다. 이 글에 나타난 1990년대의 일본 정치 체제는 각 정당들이 어떻게 연립 정권을 이루게 되는지 자세히 보여준다.일본은 제 2차 세계 대전에 의해 경제가 많이 황폐화되어 있었다. 일본 진보당의 몰락으로 지위를 굳히는 듯 했던 일본 자유당은 요시다 내각의 실패로 지지율이 떨어진 상태였다. 그 결과 제 23회 총선거에서는 일본 사회당이 1당으로 되었다. 하지만 단독 내각을 꾸리고 유지할 만한 수준에는 크게 못 미쳤다. 그리하여 자유당, 민주당, 국민협동당과 4당 연합정책 협정을 체결하게 되고 가타야마 중도연립내각을 성립하게 되었다. 연립정권의 참여문제와 관련하여 각 당의 내부사정이 복잡한 상황에서 제 1당으로 정권 수립을 주도한 것은 사회당이었지만, 중추정당인 동시에 완충정당의 역할을 한 것은 민주당이었다. 이념상으로 민주당의 정책은 자유당과 사회당의 중간에 위치하므로 완충적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합교섭의 내용은 사회당 정책을 반영하기보다는 오히려 민주당 정책을 중심으로 타협점을 모색하게 되었다.한편 자유당은 당시 국내 정치적 환경이 사회당 중심의 연립정권을 통한 경제부흥 실현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연립정권을 둘러싼 교섭에서 탈퇴할 명분을 찾고 있었다. 자유당의 요시다가 사회당과의 연립정권 형성에 반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자유당은 이념 차이를 핑계 삼아 사회당과의 연립정권을 거부하고 야당의 길을 택하여 자유주의를 선명히 했다.가타야마 내각은 집권 후 여러 가지 개혁을 주도했다. 꽤 긍정적으로 평가될 만한 업적도 있었지만 이로 인해 많은 분열이 일어났다. 첫 번째 위기는 탄광 국유화 정책이었다. 가타야마 내각이 야심차게 발의한 ‘임시 석탄 광업 관리법’은 탄광 국유화 정책이니만큼 사회주의적 성향이 강했다. 자연히 이 법안은 산업계의 반발에 부딪히게 되었고, 보수 정당인 민주당은 이 법안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표명했다. 사회당과 민주당은 관리 대상과 관리 방법, 관리 기관 이 세 가지 점에서 커다란 차이가 존재했다. 하지만 사회당은 연립정권의 틀에 구속되었기 때문에 당초 사회주의적 경제 사회화라는 목표와 매우 동떨어진 형태인 민주당 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석탄 국가관리 문제로 인한 정당 간 대립이 연립여당의 균열을 만들게 된 것이다. 두 번째 위기는 예산편성을 둘러싼 정치과정 속에서였다. 예산편성방침을 둘러싼 문제는 가타야마 중도연립내각의 통합 구심력을 크게 뒤흔드는 요인이 되었다. 사회당은 정조회에서 군사 공채 및 봉쇄 예금 이자 지불 정치 등을 포함한 예산 편성 방침을 단독적으로 결정했는데 이는 4당 연합정책협정에 크게 어긋나는 방침이었다. 이로 인해 가타야마 중도연립내각은 예산편성방침과 4당 연합정책협정을 둘러싸고 민주당과 사회당 사이에서 큰 대립이 일어났다. 경제안정본부에서는 재차 협의를 시도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하여 예산편성방침을 둘러싸고 양자는 첨예하게 대립했다. 민주당 내에서도 의견이 일치했던 것은 아니다. 석탄 국가관리 문제를 둘러싸고 아시다 주류파와 시데하라 비주류파의 대립이 계속되었다. 그 결과 민주당은 분열하게 되었다.이러한 와중에 사회당 내에서도 좌우파 대립이 존재했다. 사회당 좌파는 연립정권의 주도적 세력임에도 불구하고 왜 당 본래의 기본정책을 추진할 수 없는가 하는 내적 불만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사회당의 위치를 고려하면 탄광국유화 정책과 예산편성방침안은 비현실적이고 성급한 행동이었기 때문에 정국은 불안정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가타야마 중도연립내각은 양파의 타협의 도출하지 못하여 총사직을 단행했다.이 글을 통해 연립정권 형성과 연합정책협정을 둘러싸고 전개된 사회, 민주, 자유의 정당 내, 정단 간 정치와 연합정책협정이 사회당 정책과 어떠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지를 살펴보았고, 그 위에서 가타야마 중도연립내각이 입법화하려던 석탄 국가관리법안과 예산편성방침을 둘러싸고 전개된 정당 내, 정단 간 대립으로부터 파생하는 정책조정과 타협의 어려움을 알아보았다. 가타야마 중도연립내각은 오랜 시간동안 서로 의논하여 정당 간 정책의 조정 및 타협으로 체결된 것이 아니라, 단기간에 정권 장악이라는 목표 하에 체결되었다. 그러므로 정당 간 정책적 차이는 무시한 채 이루어졌다. 즉 가타야마 중도연립내각은 전후 일본 경제의 부흥이라는 대의명분 하에 결집한 것일 뿐 정책 타협에서 출발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 당시 일본 경제는 제 2차 세계대전에 의해 황폐화된 상황이었으므로 이해 못 할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충분한 협의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포괄적이며 애매모호한 연합정책협정의 체결로 출범한 가타야마 중도연립내각은 결국 사회, 민주, 양단 간 대립을 심화시켜 붕괴되고 말았다. 이것은 처음부터 이미 예상된 결과일지도 모른다. 쉽게 예를 들어서 학교 기숙사를 들어보자. 새 학기가 시작되면 학교에서 떨어진 곳에 사는 학생들은 대부분 룸메이트와 함께 기숙사에서 생활하게 된다. 기숙사를 배정 받은 학생들은 어떤 룸메이트와 함께 1년 동안 생활하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걱정 반, 기대 반의 마음을 갖고 있을 것이다. 운이 좋아 마음이 잘 맞는 룸메이트를 만나면 다행이겠지만, 나와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던 룸메이트와 한 공간에서 생활하다보면 여러 가지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다. 일상생활에서 룸메이트와 지내다보면 사소한 문제들이 많이 생기게 되는데 껄끄럽다는 이유로 하나, 둘 넘어가면 더 불편한 상황이 만들어 지게 된다. 그러므로 미리 룸메이트와 앞으로 생활하면서 지켜줘야 할 구체적인 규칙들을 서로 공유하면 불편한 일이 생기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단순한 예를 들기는 했지만 연합정책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각 정당별로 이해관계가 서로 다를 것이다. 그러므로 연립정권 형성을 위한 협상에서는 각 정당 간에 충분한 협의를 통해 연립정권의 정책을 구체화한 연합정책협정을 체결해야 한다. 정당 간 정책 차이를 무시하고 연립정권을 성립시키면, 결과적으로 각 정당과 연립정권이 추진하는 정책 사이에 필연적인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연립여당 내 정책 대립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당 내 각 세력의 이해관계를 능숙하게 처리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협의를 통해 연립여당 내 정책을 조정하고 타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