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사회 간호는 간호와 공중보건을 합성한 영역이므로 지역사회 간호를 이해하기 위해서 간호와 공중보건의 변화과정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방문간호 시대 (1900년 이전)방문간호는 사람들이 자신의 가정에서 아픈 사람을 돌보는 것에서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유럽의 경우 초기 수녀나 여집사들이 방문간호단을 조직하였고, 미국의 경우에는 자선단체나 비정부 조직 등 비종교적인 성격을 띤 방문간호단이 조직되었다. 초기 기독교시대 여집사 푀베가 신자의 가정을 방문하여 환자를 돌본 것을 방문간호의 시작으로 보며, 이후에 자선수녀단에서 현대 방문간호의 원칙을 체계적으로 도입하여 종교적인 형태를 띠며 환자를 돌보았다. 비종교적인 형태의 방문간호사업은 1859년 영국 윌리엄 라스본이 조직한 방문간호단에 의해 최초로 시행되었다.표준화된 지역사회간호 사업에 대한 요구는 구역간호협회의 발달 초기에 인식되었다. 구역 간호체제는 전국적인 규모로 나타나 1875년 전국 규모의 간호협회가 설립되었고, 가난한 병자들을 돌보기 위해 훈련된 간호사들을 임명하였다. 구역간호협회는 근대 지역사회 간호학의 3가지 원리를 구현하였다. (3가지 원리 ; 지역사회에서 활동하기 위한 특별교육 제공, 물질적 제공을 간호활동에서 분리하기, 방문 중 종교 활동 금지)미국에서 릴리안 왈드는 구역간호와 방문간호의 개념을 좀 더 넓은 의미인 보건간호로 통합하였다. 가난한 이민자들에게 건강관리를 제공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간호사가 그들과 함께 살고 일하는 것이라 믿어, 1893년 빈민구호소를 설립하였다. 그곳에선 여러 문제를 도우면서 방문간호를 제공하여 사망률을 감소시키고, 간호요구가 있는 대상자들이 거주하는 지역에 사업소를 설치하여 간호의 접근성을 높였다. 이 방문간호 사업은 간호 비용 지불체계의 확립, 그리고 당시 가장 심각한 공중보건 문제인 감염성 질환으로 인한 사망률을 감소시켰다는 점에서 지역사회 간호의 발전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보건간호 시대 (1900-1960)1900년대 이후 구역간호 사업은 가난하고 병든 사람 뿐 아니라 일반 국민들을 포함하는 사업의 형태로 변화되었다. 지역 주민 전체의 건강을 유지, 증진시키기 위한 사회적 요구로 인해 보건사업기관이 점차 늘어나고 특수 보건사업이 전개되었다. 이러한 사업 하에서 간호는 특정 건강문제를 위한 전문화된 간호를 수행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구역간호사의 역할은 점점 확대되었고, 구역간호사의 명칭도 보건간호사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는 특정 건강 개념이 확대 되고, 결핵관리, 학교보건, 정신보건과 같은 영역의 지식과 기술이 향상되었다. 또한 세분화 된 간호사업의 대상자가 아닌 경우 일상적인 건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족단위로 일반화된 간호사업이 수행되었고, 학교와 산업장에서도 간호사의 활동이 시작되었으며, 산업보건간호 역시 지역사회 간호사에 의해 제공되었다.- 지역사회간호 시대 (1960-현재)1960년대에는 모자보건, 정신보건 정신박약 등의 보건사업과 보건사업을 위한 인력 훈련에 재정적 지원이 증가하게 되었다. 1970년대에 연방정부는 개인 중심의 보건의료에서 탈피하여 포괄적인 지역사회 중심의 보건 의료제도로 전환하였다. 1980년대 이후에는 병원과 의료시술의 비용이 강등되고 건강증진과 질병예방에 대한 우선순위가 높아졌다. 2000년대에는 재난예방 및 관리자로서의 역할이 지역사회 간호업무로 부각되었다. 또한 아동사망률감소, 안전한 물과 수질개선, 백신예방질환 관리, 성전염병 예방 및 통제, 결핵관리, 금연사업, 교통안전, 범국가적 건강위협에 대한 준비와 대응 등이 세계적인 건강이슈로 다루어지고 성과를 이루어내고 있다.맨 처음 방문간호는 건강문제가 있는 개인에게 질병치료에 대한 서비스를 종교단체에서 제공하였다. 이후에 나타난 구역간호는 방문간호에서 제공한 서비스에 더해 예방에 대한 서비스가 봉사단체에 의해 부분적으로 제공되었다. 그 다음 보건간호에선 요구가 있는 인구집단(가족)에게 질병치료와 예방을 위해 정부에서 힘썼으며, 현재의 지역사회간호는 전체 지역사회를 대상으로 정부이외에도 여러 기관/단체에서 건강증진과 질병예방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방문간호 시대(1945년 이전)1910년대에 선교사들에 의해 보건간호 사업이 시작되어 1920년대에 활성화 되었다. 이때 시행한 간호 사업은 임부진료, 아동의 건강진단, 우유/두유 공급, 학교 아동의 건강진단/위생 강연, 가정방문, 가난한 아동을 위한 무료 목욕탕, 자모회, 감염병 예방, 외래 산부인과, 치과, 간호부 위생 강습 등이 있다. 여러 지역에서 모자보건사업이 활성화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선교회의 수준 높은 보건간호 사업은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는 민간사업의 효과를 극대화한 것이었다. 그러나 사업 대상에 있어 중산층 이상의 가족이 중심이 되었고, 사업의 거점이 되는 기관을 중심으로 하는 등의 한계점도 있었다. 또한 제도화 되지 못한 보건간호 사업은 일본의 통치하에 위축 될 수밖에 없었다.